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속에서 소지아는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도윤과 주원은 동시에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분명히 처음 합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놀라운 호흡을 맞추며 단숨에 지아를 위로 끌어올렸다.도윤은 지아를 품에 안으며 차디찬 그녀의 몸을 꼭 껴안았다.“지아야, 미안해.”지아는 대답하지 않았고, 도윤은 일어서서 그녀의 몸을 안고 선실로 돌아갔다.주원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주원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는 방금 전 지아가 갑판 위에서 목소리를 낮춰 한 말을 떠올렸다.“주원아, 이따가 내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너를 구할 거야. 그리고 너는 가능한 한 빨리 A시를 떠나. 짧은 시간 내에 돌아오지 말고.”“누나,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요. 난 괜찮아요. 이미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나 때문에 자신을 다치게 하지 마요.”지아는 어쩔 수 없이 웃었지만 눈빛은 확고하기 그지없었다.“안심해, 난 잘 살아서 진실을 밝혀낼 거야. 죽지 않을 거라고.”지아는 싸늘하게 말했다.“만약 연기한 티가 너무 난다면, 우리 모두 끝장이야.”주원은 이제야 지아가 왜 이런 연기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를 가지고 도윤을 협박하고 있었다.지아는 이런 방식으로 주원과 그녀에게 살 길을 찾아준 것이다.만약 이전처럼 도윤에게 잡혀간다면, 지아를 기다리는 것은 암울한 구금 생활뿐이었다.그래서 지아는 어쩔 수 없이 자살하려는 연기를 했던 것이다.이것은 유일하게 도윤을 협박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 결과는 주원이 짧은 시간 내로 지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도윤은 그동안 지아의 연이은 타격에 놀랐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지아가 떠나는 것이다.가까스로 지아를 구했으니, 적어도 당분간 도윤은 감히 그녀를 감금하지 못할 것이다.도윤은 지아를 침대에 눕힌 뒤 드라이기로 부드럽게 그녀의 젖은 머리를 말렸고 또 뜨거운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에 묻은
갑작스러운 키스에 소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도윤의 스킨십에 반감을 느꼈지만, 그녀가 밀어내기도 전에 도윤이 스스로 입술을 뗐다.그는 지나치게 그녀를 차지하지 않았다.“음, 좀 맵긴 하네.” 도윤은 손으로 지아의 머리를 어루만졌고, 평소처럼 부드러웠다.다행히도 지아의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지아는 도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주원을 어떻게 처리할 거야?”방금 지아가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지금의 도윤은 또 어찌 감히 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그를 놓아줄 거야, 안심해, 나는 그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지아는 도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기세를 몰아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전에 A시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난 내가 납치될 줄은 몰랐어. 내가 납치당했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도윤은 재빨리 팔로 지아의 허리를 감쌌고,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알아.”“그녀는 정말 나를 죽으려고 했어. 만약 내가 미리 칼을 숨기지 않았다면, 이미 그녀의 손에서 죽었을 거야.”지아는 도윤의 옷을 잡아당겼다.“당신이 내가 제공한 정보에 근거하여 이미 일부 문제를 찾아냈을 거라고 믿어. 우리 아빠가 정말 네 여동생을 죽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이 일에는 분명히 또 다른 세력이 있어. 그 사람은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죽이려 하고 있고. 이 2년 동안 그녀는 많은 일들을 추진했어.”도윤은 지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슴 아파했다.“응, 알아. 그 사람은 심지어 내 곁에 사람을 배치했어. 네가 바다에 빠진 후, 그녀는 모든 사람을 철수했고.”도윤은 지아에게 자신이 찾아낸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위로했다.“지아야, 난 진실을 밝혀낼 거야. 네 아버지는 며칠 전에 다른 사람에게 끌려갔는데, 주원이 한 짓인가?”지아는 아빠가 주원 쪽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주원만이 자신을 해칠 이유가 없었다.이 일은 아직 명확하지 않
이도윤은 소지아를 위로한 다음 선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힌 그 순간, 지아는 그제야 긴장을 천천히 풀 수 있었다.그녀는 손바닥에 맺힌 땀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언제부터 나와 이도윤은 이렇게 서로를 방비하는 관계가 되었을까.’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상사와 직원의 관계도 아니었다.지아는 두 사람의 관계를 형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그러나 도윤이 주원을 귀찮게 하지 않는 한, 오늘은 성공한 셈이었다.갑판 위, 광풍과 소나기를 맞으며 주원은 온몸이 이미 흠뻑 젖었다.도윤은 위아래로 주원을 한 번 훑어보았는데,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주원은 오히려 등을 곧게 펴고 조금도 굴복하려는 뜻이 없었다.그리고 맑은 두 눈은 도윤의 몸에 떨어졌다.사실 도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주원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보기에 무척 단순했다.그래서 지난번 유람선에서 주원이 지아에게 그런 일을 하려고 했어도 도윤은 그냥 그를 아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지금 도윤은 오히려 주원이 신경 쓰였다. 그는 용감하고 생각이 있었는데, 만약 도윤이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지아를 찾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결국 주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날 어떻게 처리하려는 거죠?”“나는 지아에게 널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리고 난 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거든.”도윤은 주원의 눈빛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는 뜻밖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주원은 지금 이미 생사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진작에 도윤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모든 것은 주원의 예상대로였다.남에게 간파당한 이런 느낌에 도윤은 매우 불쾌했다.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몸에 상처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약을 발라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들어와, 내가 사람 시켜 상처 싸매주라고 할게.”주원은 놀라움을 느꼈다.“당신…….”도윤은 차갑
진환은 말을 이어받았다.“그때 유람선에서는 백채원 아가씨가 다른 사람을 통해 그런 일을 꾸몄는데, 마침 그를 이용했죠. 만약 그가 진작에 문제를 발견하고 또 스스로 그 주스를 마셨다면, 이 소년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무서울 뿐만 아니죠. 그날 만약 대표님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사모님은 기필코 당했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그는 모든 일을 약효에 떠넘길 것이고, 자신은 아무 핑계나 대고 빠져나갔겠죠. 정말 공포스럽군요.”“그가 사모님의 아버지를 구했든 안 구했든, 오히려 그 일을 구실로 삼아 부상을 입어 사모님으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다니. 지금 이 순간까지 사모님은 여전히 그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사모님에 대한 그의 감정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이도윤은 눈살을 찌푸렸고, 검은 눈동자는 아주 차가웠다.“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지?”“안심하세요. 그를 보내기 전, 이미 트렁크에 추적기와 도청기를 설치했습니다.”“도착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감시하게 하고, 절대로 들키면 안 돼.”도윤은 이 소년이 미리 준비하고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늘 자신에게 잡혔으니 그는 틀림없이 다른 대책이 있을 것이다.“그럼 이 일을 사모님에게 알려야 합니까?”“아니.”진봉은 불평했다.“왜 사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사모님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대표님을 줄곧 나쁜 놈이라 생각할 거잖아요.”진환은 그의 이마를 두드렸다.“멍청하긴. 그는 사모님의 마음속에 있어 이미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는 지금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사모님이 너의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는 그보다 더 예리해야 돼.”“그는 지아를 노리고 있으니 결코 이 두 가지 일만 한 게 아닐 거야. 잘 지켜보라고 해. 의외의 수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도윤은 마지막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려 떠났다.진봉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고, 진환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입단속 잘 해. 사모님한테
이날 밤, 바깥의 천둥과 번개, 그리고 수시로 흔들리는 배에 소지아는 이도윤의 품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깊이 잠들었다.그녀는 오랫동안 잠도 잘 못 잤고, 꿈에서도 자신이 다시 납치될까 봐 두려웠다.다시 한번 납치를 당하면, 지아는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잠결에 지아는 줄곧 잠꼬대를 했다.“당신 도대체 누구지?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으악!”도윤은 지아를 꽉 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위로했다.“지아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어.”지아의 정서는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도윤은 잠이 오지 않았다.희미한 빛을 빌어 지아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보며, 도윤은 그녀의 가녀린 손을 만졌다.그리고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과거의 지아를 떠올렸는데, 그녀는 항상 웃길 좋아하는 여자였다.방금 자신에게 시집왔을 때조차도 지아의 얼굴에는 젖살이 좀 있었고, 얼굴은 약간 앳돼 보였다.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지아는 살이 많이 빠졌고, 얼굴은 더욱 정교해졌지만 과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의 최근 만남을 떠올리니, 모두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찼다. 도윤은 이미 오랫동안 지아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도윤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 2년간의 괴롭힘이 아니었다면, 지아처럼 밝고 강인한 사람은 절대로 이렇게 빨리 시들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손을 뻗어 지아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그녀의 볼에서 1센티미터 떨어졌을 때, 도윤은 오히려 멈추었다.죄책감이 밀려오자 그는 뜻밖에도 겁을 먹었다.비록 도윤은 이미 남은 인생을 다 바쳐 지아를 치유할 준비가 되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녀가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그는 가장 그녀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지아는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잤는데, 마치 요 며칠 부족한 수면을 모두 보충하려는 것 같았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바깥의 번개 소리는 이미 사라졌고,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바깥의 날씨는 화창했다.곁에는 도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양이
오늘의 바닷바람이 너무 부드러워서인지, 아니면 석양이 너무 따뜻해서인지, 아니면 소지아가 엄동설한에 오래 갇힌 외로운 환자라서인지, 그녀는 남의 조그마한 호의에 천천히 방비를 내려놓았다.지아는 귀신에 홀린 듯 이도윤의 뒤를 따라 섬에 올라갔는데, 하루는 매우 얌전해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쉴 새 없이 따라갔다.이 섬은 매우 아름다웠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시설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섬에는 많은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사시사철 그에 맞는 꽃이 피곤 했다.예를 들어 지아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양쪽에는 큰 벚꽃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인공의 간섭 없이 벚꽃은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고, 길가에는 이미 두꺼운 꽃잎이 깔려 있었다.미풍이 불면, 온 하늘에는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하루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꽃밭에서 힘껏 뒹굴었다.그리고 바로 옆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는데, 바닷물은 아주 맑았고 조금의 티끌도 없었으며 해변의 모래조차도 아주 부드러운 우유 빛깔이었다.파도는 잔잔했고, 부드러운 햇빛에 흠뻑 젖은 해면 위에는 자잘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이곳은 매우 아름다웠다!마치 천국처럼, 5분만 있으면 모든 불쾌함을 잊을 수 있었다.도윤은 가볍게 지아의 손을 잡고 섬 가운데로 걸어갔다. 지아는 벚꽃 숲을 떠나 또 은행나무를 심은 길을 지나갔다.도로 양쪽에는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나타났는데, 가을이 되면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더 앞으로 가면 매화들이었다.그곳에는 과수원, 날짐승, 그리고 비옥한 땅도 있었다.이것은 바로 지아가 전에 도윤에게 말한 그 환상의 하우스였다. 이런 무인도에 있으면 지아는 바깥의 소란과 번뇌 따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그 하우스의 다지인조차도 도시의 별장과 달리 대나무와 일반 나무로 지어져 풍격이 원시적이지만, 안의 설비는 매우 현대적이었다.이곳은 하루 이틀 건설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기에 지아는 나름 감동
소지아는 진봉과 진환이 모두 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 섬에는 적지 않은 하인과 셰프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특별히 해산물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지아는 말을 하지 않고 죽 먹는 것에 몰두했다.이도윤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지아야, 너 전에 말이 정말 많았잖아.”지아는 멈칫했다. 그렇다, 예전에 그녀는 말이 적지 않았다.그때의 도윤은 매일 바빴는데, 그는 항상 출장을 가거나 회사에 있어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적었다.지아는 도윤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을 매우 소중히 여겼기에 말을 하면 안 되는 식사 시간에 그녀는 오히려 가장 활발했고, 작은 입을 놀리며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그러다 여러 번 사레가 들려 계속 기침을 해도 지아는 물 몇 모금을 마시고는 계속 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지금, 지아의 표정은 기쁘지도, 심지어 슬프지도 않았다.지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반문했다.“그럼 내가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어? 요즘 일이 잘 돼가냐고 물어봐 줘?”도윤은 말문이 막혔다. 언제부터인지 그와 지아는 정상적인 소통조차 없었다.그도 입맛이 떨어져 포크를 내려놓고 씁쓸하게 말했다.“나는 네가 기뻐할 줄 알았어. 여긴 코코넛, 파도, 모래사장, 햇빛이 있으니까, 내일 우리 잠수하러 가자.”지아는 가볍게 웃었다.“그럼 난 앞으로 오랫동안 여기서 지내야 하는 거야?”“너 살이 많이 빠졌더라. 섬에서는 아무도 널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몸 좀 잘 조리해. 그리고 난 이미 사람 시켜 네 아버지를 추적하라고 했어. 소식이 있으면 가장 먼저 너에게 알려줄게.”“이거 그냥 변칙적인 구금이잖아?”다만 이번에 지아가 구금된 철장은 범위가 좀 커졌다. 도윤은 더 이상 그녀를 가둘 필요가 없었는데, 여긴 사방이 바다여서 지아는 도망갈 길이 전혀 없었다.그녀는 바로 도윤에게 갇힌 애완 동물이었고, 철장을 바꾸어도 처지는 여전히 같았다.“난 그런 뜻이 없어, 그냥…….”그러나 지아는 더 이상 도윤이 말하는
이도윤은 몇 개월 전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지아가 아파서 이렇게 수척해진 것일까 봐 두려웠다. 이 때문에 도윤은 특별히 지아에게 전신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그녀는 큰 병이 없었다.지아가 약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도윤은 즉시 긴장했고, 그녀는 이미 약을 삼켰다.그리고 지아는 물 한 모금을 들이켠 다음 휴지로 입가의 물을 닦고서야 손을 도윤에게서 빼냈다.“위약.”‘참, 그녀에게 위장병이 있었지, 오래 전에 이미 말한 것 같은데.’도윤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내일 의사더러 한 번 오라고 할게.”“이미 나한테 검사를 해 봤잖아? 당신도 그 결과를 보았고. 난 아주 건강하다고!”지아는 말하면서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신체검사받은 날, 도윤의 그 표정을 떠올렸다.전에 그녀는 몇 번이나 자신이 아프다고 말했지만 결국 도윤의 비웃음만 받았다.그래서 지아는 더 이상 비굴하게 도윤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괜히 욕을 먹고 싶지도,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약병을 바라보았는데, 그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다.“이 약에는 왜 아무런 정보가 없지?”지아는 답답하게 말했다.“한 병의 양이 너무 적어서. 난 귀찮아서 아예 몇 병의 약을 한 병에 담았고.”이것은 주원이 특별히 지아에게 가져다준 약인데, 전에 제때에 약을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다.그녀의 설명은 도윤으로 하여금 조금의 문제도 발견하지 못하게 했고, 지아는 이미 뒤로 물러났다.“나 이제 쉬러 가도 되는 거야?”도윤은 입을 벌렸지만 결국 한 글자도 말하지 못했다.지금의 지아는 이미 그와 한담을 나누고 싶지 않았고, 그의 기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와 말다툼조차 하지 않았다.그녀는 햇빛도 광풍과 폭우도 없는 사해처럼 발버둥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이런 지아의 모습에 도윤은 더욱 괴로웠다. 그는 그녀가 차라리 자신을 때리고 욕하는 것을 원했고, 이렇게 다투지도 떠들지도 않고 낯선 사람처럼 자신을 대하는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