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이번 생에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지아야, 소시월이 그렇게 악랄한 사람인 줄 몰랐어. 그 X은 너를 몇 번이고 암살하려 했고, 우리 가족을 산산조각 냈어!” “전에 오빠가 너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어?” “여러분이 제 가족이라는 걸 몰랐을 때도, 저는 한 번도 오빠들을 원망한 적 없어요.”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고,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지만, 이예린만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소지아가 날 속였다니, 어떻게 날 속인 거지?”예린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시후는 예린이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이만 일어나.”예린은 시후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고, 지아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모든 게 내 잘못이에요.” 본래 예린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윤이 그녀의 손과 발의 힘줄을 끊었을 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예린은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머리를 몇 번 조아리자, 예린의 이마에서는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고, 머리뼈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이야기해.” 하지만 시후의 말은 예린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예린은 지아의 손목을 붙잡은 채, 피와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언니, 미안해요. 저도 속아서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예요.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게요.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예린은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고,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지아는 예린을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후회로 가득 찬 예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너는 분명히 죽어 마땅하지만,
시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아. 일단 진정 좀 해봐.” 시후가 도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어서 데려가서 좀 쉬게 해줘.” 도윤의 입장에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것은 이미 불편한 일이었다. 소씨 가문의 남자들이 맹수처럼 당장이라도 도윤을 물어뜯을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도윤의 목적은 예린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예린은 고집이 세고 완고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장인어른, 몸조리 잘하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도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소임호는 도윤에게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임호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자기 딸이 밖에서 고생하며 학대받을 때, 도윤이 그저 방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지아가 급히 다가가 소임호를 달랬다.“아빠, 진정하세요. 아직은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이름이 지아라고 했나?”소임호는 지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아는 환희와 많이 닮아 있었지만, 눈매와 이목구비는 소임호와 조경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네, ‘지혜 지’에 ‘맑을 아’예요.”“아주 훌륭한 이름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겠니... 너를 잘 키워주신 양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내가 직접 방문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구나.” “제 양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저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신 것을 아주 기뻐하실 거예요.” 지아는 이 방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가족을 만나던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빠, 제가 처방전을 써드릴게요. 그대로만 복용하시면 곧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아가 처방전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다들 소시월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지아는 무심한 듯 물었지만, 소시월은 소씨 가문 사람
한편, 도윤은 혼란스러운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예린은 총알에 스쳐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표정은 마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예린은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이 부서질 듯한 상태였다. 진실이 주는 충격은 예린에게 너무도 컸다. 그녀의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가득 찼는데, 고개를 들어 도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그때 날 죽이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라는 걸 알았으니까.” 예린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나도 이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 나는 소 선생님을 돕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소 선생님의 여동생을 죽일 뻔했어. 나는 죽어야 해!” 도윤은 스스로를 질책하는 예린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신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어. 내가 네 목숨을 살려둔 건,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어.”도윤이 예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린아, 우리는 원래부터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잖아. 우리 부모님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도 왜곡된 마음을 심어줬어.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게 된 거지. 오빠도 과거에는 너처럼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지아가 어떤 벌을 내리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야.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거든.”“잘못은 잘못이고, 그걸 변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계속 괴로워한다면, 소 선생님이 널 구할 필요가 있었겠어?” 예린은 시후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동자에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 “그분의 선의를 배신하지 마. 넌 살아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을 거야.” “예린아, 앞으로는 반듯하게 살아가야 해.” “오빠
소씨 가문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시월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비록 지금은 소임호의 신분을 입증할 절대적인 증거가 없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임호의 혈통은 소씨 가문 내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시월과 조경선의 원래 계획은 소씨 가문을 후손 없이 무너뜨려 소씨 가문의 대부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은 아무리 아껴주어도, 결국 시월은 시집가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시월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몫의 축의금뿐이었고, 그것마저 심씨 가문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게다가 결혼한 뒤에는 시월이 남자의 부속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시월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단지 조경선을 위해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월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데, 조경선처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과는 달리, 시월은 훨씬 더 영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야.’ 물질적인 안정만이 시월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조경선은 시월이 친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월은 이미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파헤쳤다. 조경선은 평생 소임호만을 사랑하며 집착했기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사실, 시월은 생모는 깊은 산골에 살던 농부의 아내였다. 시월은 집안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마음이 약해진 시월의 생모는 시월을 산에 버렸고, 마침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조경선이 그녀를 발견해 데려간 것이었다. 조경선은 그 순간부터 복수를 위한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다.시월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난 후 더욱 노력했고, 조경선이 자신을 산속에서 데려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시월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노력으로 부족함을 메웠다. 게다가 소씨 가문의 풍부한 자원과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무사히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시후는 약간 놀랐다. 조경선을 모든 게 들통나자마자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는데, 오히려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고 시후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말이다. ‘지아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독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야망도 끝이 없었던 거라고.’ 시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오빠야, 무슨 일이야?] “오빠, 그동안 연락이 안 돼서 정말 걱정했어요. 괜찮은 거예요?” [난 괜찮아.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노력 중이었거든.]“그럼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구했어요?”시월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만약 시후가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시월의 태도와 과거의 일을 연결 짓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말 무서운 여자였구나.’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망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런 사람을 그냥 죽여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처벌이야!’ 시후는 지아가 미리 알려준 대로 대처했고, 시월은 즉시 소임호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 괜히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오빠,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시후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역시 네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 계획을 진행하려고 하는 중이었다고.” “소시월은 아주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왔어요. 저는 죽이려 한 것만 봐도, 소시월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잖아요. 그 여자는 절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할머니의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소시월한테 속고 있었을 거예요. 그 여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거라고요!” “그렇게 독한 사람은 죽이는 것도 아까워!”시하는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내 다리, 내가 잃어버린 지난 세월이 다 소시월 때문이었어! 그리고 시영이의 죽음도... 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그 여자를 죽이
소임호는 눈가가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는 시월을 바라보았다.그 소녀는 한때 소임호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빠,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아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시월은 병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 의문을 품었다. “아빠...?”시언은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증오를 억누르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월아, 아버지는 지금 많이 허약하셔.”“아빠,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집안일은 제가 잘 챙길게요.”시월은 한참 동안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소임호는 단지 짧게 ‘그래’라는 대답만 했다. 다만, 시월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침대를 꽉 잡은 소임호의 손등에는 불거진 핏줄이 선명했다. 소임호는 시월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과거 시월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면, 소임호는 결코 마음이 평온할 수 있었다. ‘우리 시영이는 이 냉혈한 때문에 죽임을 당했어. 시영이는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심지어 시신을 거둘 사람도 없었다고.’소임호는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소임호는 눈을 감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지금은 참아야 해. 지아의 계획이 아직 진행 중이니, 절대로 폭발해서는 안 돼.’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과 기회를 제공했는지를 소임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시월은 이미 보통 사람이 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월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고, 끝까지 탐욕을 부렸다. “큰오빠, 할 말이 있어요.”“잘됐네, 나도 마침 할 말이 있던 참이야.”두 사람은 한 명씩 방을 나섰고, 시후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오빠랑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우리 소씨 가문에 더
시후는 계속해서 부드럽게 설득했다. “지금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어. 어머니의 행방은 아직 알지도 못하고, 이젠 방계 친척들까지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까.”“그 사람들은 원래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편애한다고 불만이 많았고, 아버지의 회사도 할아버지의 재산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회사 지분의 일부를 몰래 사들이기 시작했던 거야.”“물론 원래는 걱정할 일이 아니었어. 그 지분들은 큰 위험이 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잖아.” 소시월은 표정이 크게 변했다.“그래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그래, 큰 문제가 생겼어. 그 사람들이 가진 소액 지분에 할아버지의 지분까지 더해지면서 아버지께서 가진 모든 지분을 넘어서고 말았으니까.”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탓에, 자식들에게 지분을 나눠주셨던 게 화근이 된 거야. 그 누구도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고, 친척 쪽에서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거지.” “이제 아버지께서 가진 지분은 그 사람들보다 훨씬 적어. 이대로라면 회사의 주도권도 그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말 거야. 우리가 소송을 해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거라고.” “그럼 이제 어떡해요?”시월이 그 거대한 재산에 눈독을 들이며, 지금까지 도망가지 않고 시후와 대치 중인 것도 그 탐스러운 금은보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손실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지분을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해.” 이는 시월이 가지고 있는 3%의 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비록 3%라고 해도, 시월이 매년 받는 배당금은 수십억대에 달했다.“그걸로 충분할까요?”“부족해.”시후는 단호히 말했다.“그 사람들은 그동안 치밀하게 준비했어. 우리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을 거란 뜻이지. 그 사람들이 몰래 사들인 지분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 거기에 할아버지의 20% 지분까지 더
2조는 시월에게 전 재산이었다.만약 시월이 그 돈을 들여 소씨 가문의 적자를 메우고도 돌려받지 못한다면, 시월이 수년간 힘들게 세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분명히 말했다.“회사가 안정을 되찾으면, 우리 소씨 가문은 너에게 맡길게.”즉, 시월이 2조를 투자하면, 소씨 가문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그것은 몇 배의 높은 수익을 의미했다. 1을 투자해 100을 얻는, 그야말로 엄청난 도박인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박꾼에게 있어 베팅이 클수록 보상이 풍부해지면, 유혹도 더욱 커지는 법이었다. 시월은 자신이 실패할 가능성도 고려했지만, 소씨 가문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본 결과, 시후는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실패했을 때의 대가와 성공했을 때의 수익을 비교했을 때, 성공의 가능성이 시월을 더 사로잡았다. ‘그래, 수년 동안 공들여 기다려온 기회를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어.’ 시후가 시월을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2조는 적은 금액이 아니야. 월아, 큰 부담이 되지 않겠어? 우리가 이미 은행에서 2조의 대출을 받지 않았다면, 은행에 도움을 요청했겠지만...”“오빠, 오빠는 어릴 때부터 저를 보호해 주셨잖아요. 이제 집안에 문제가 생겼으니, 이번엔 제가 나설 차례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저축한 돈도 있고, 그동안 밖에서 조금씩 모은 돈도 있어요. 방법을 조금 더 찾아볼게요.”“월아, 정말 잘 자라줬구나. 하지만 최대한 빨리 돈을 마련해야 해. 친척들도 우리가 반격할까 봐 계속해서 지분을 사들이고 있거든.” “당장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래,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회사를 지키게 되면, 아버지께서 너에게 회사를 넘겨주실 거야.”“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오빠들은 잘 지키고 싶을 뿐이니까요.” 시월은 참으로 감동적인 말을 했는데, 시후조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였다. ‘아주 완벽한 연기가 따로 없네.’두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시
예린이 진봉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죽이면 안 돼요. 만약 소시월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새언니의 목숨은 저 여자랑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소시월을 죽이면 새언니도 살 수 없게 된다고요!” 진봉은 나무 바가지를 바닥에 내던지고,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아가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우리 대표님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사모님께서 사라졌던 몇 년 동안 대표님은 하루하루 지옥 속에 살았어요. 분명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죠? 저 X처럼 나쁜 사람들은 멀쩡하게 잘만 살잖아요!” “정말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왜 저런 사람들은 일찍 죽지도 않는 거냐고요!” “알아요, 다 알아요.”“저는 오빠가 새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에요.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도 저 때문이고요. 그래서 저도 소시월은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소시월은 절 속이고 새언니에게 해를 입히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소시월의 목숨을 붙들고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눈가가 붉어진 진봉은 억울한 마음을 참지 못했는데, 진봉이 이렇게 슬퍼했던 건 도윤이 독에 중독되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도윤이 독이 너무 깊어 곧 죽을 것이라 했지만, 도윤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지아가 독벌레에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진봉은 문가에 서 있는 도윤을 바라보았는데, 도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방 안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토록 초조하면서도 신중한 모습은 예전의 도윤과 전혀 달랐다. ‘하늘은 왜 이렇게 무심한 걸까? 왜 이렇게 두 사람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거냐고...’한편, 진환은 구석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먹을 것 좀 줘. 아가씨 말이 맞아. 그 여자를 죽이면 안 돼.” 시월은 이미 부상을 입은 데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거의 하루 동안 굶주린 상태였다. 그야말로 반쯤
낯익은 방울 소리가 들리자 거대한 붉은 뱀이 빠르게 기어 왔다. 비록 진작에 이 뱀을 본 적이 있는 진봉과 지환이었지만, 이번에 다시 마주했을 때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산처럼 거대한 몸집의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내뿜는 기운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 말이다.특히 수직으로 된 동공이 사람을 바라볼 때면 진봉은 곧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예린 역시 이렇게 큰 뱀은 처음 보는 터라 깜짝 놀랐다.게다가 그 뱀은 한 눈에도 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긴장한 예린은 몸을 움츠리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뱀을 피하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무가 뱀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조심해!”예린은 본능적으로 무무를 잡아당기려 했으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거대한 뱀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무무 앞에 몸을 웅크린 것이었는데, 그렇게 거대한 몸집을 가진 뱀이 어린 소녀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무무는 거대한 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오랜만이야’라고 인사하는 듯했다. 예린은 지금껏 수많은 황당한 일을 겪었지만, 이런 장면은 처음이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무는 거대한 뱀 위에 올라타고 일행에게 손짓으로 말했다.“이제 출발해요!”지아의 상태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고, 시월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입에는 헝겊이 물려 있고, 양손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시월은 그저 묵묵히 일행을 따라가며 그 기괴한 숲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마을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였고, 세월이 흘러도 바깥의 화려한 도시와는 달리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5년, 10년이 흘러도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당에서 약초를 말리던 조원주는 방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무무는 재빨리 조원주를 향해 달려갔고, 조원주는 손에 든 당귀를 곧장 내려놓았다. “아가, 방학하면 날 보러 올 줄 알았단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예린은 급하게 도윤의 손을 붙잡으며 외쳤다.“오빠, 지금은 흥분하면 안 돼. 지금 상황에서 새언니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저 여자를 살려두는 거란 말이야!” 도윤은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아를 바라보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총을 단단히 쥐었다.도윤의 손등에는 핏줄이 불거졌는데,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다 이 미친X 때문이야!’도윤의 손이 서서히 내려가는 모습을 본 시월은 속으로 안도하며 자신이 승부수를 제대로 던졌음을 확신했다. 시월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바로 지아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아끼는 소지아를 이용하면, 아무리 이도윤이 날 미워한다고 해도 날 죽일 수는 없을 거야.’ 도윤은 속수무책으로 무무가 지아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무무가 손짓으로 말했다.“엄마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저 여자가 한 말이 사실인지도 확인할 수 있어?”무무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겉으로만 봐서는 무슨 주술에 걸렸는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아직은 괜찮다는 거예요.” 그렇다 해도 무무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는데, 독벌레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고, 각각의 특성이 달랐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어떤 종류의 독벌레는 알을 낳고 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무무는 결단을 내렸다. “마을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 지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외딴 산속에 있는 ‘그분’뿐이었다.“좋아, 지금 바로 헬리콥터를 준비할게.”무무는 시월을 가리키며 손짓했다.“저 사람도 데려가야 해요.” 시월은 비록 수화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무의 행동과 분위기로 자신이 끌려가야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도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시월의 얼굴에는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이도윤, 내가 말하는 대로 해야 소지아를 살릴 수 있어. 나를 풀어주지 않으면 소지아도 살 수 없을 거라고!” 예린은 차갑게 웃으며 시월의 입
지아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쓰러지자, 도윤은 순간 당황해 손도 쓰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들은 단지 상대의 계획에 지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그들의 목표는 지아였다.무무는 다급히 지아에게 달려갔다. 아이가 뛰기 시작하자 방 안은 방울 소리로 가득 찼고, 그것만으로도 무무가 얼마나 급한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도윤은 지아의 곁으로 달려가 무무를 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 도윤은 주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지아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가 다시 멈칫하며 물러섰다.평소 침착하던 도윤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무무야, 엄마는... 엄마는 괜찮은 거야?” 바닥에 누운 지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는데, 겉모습만 보면 그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무가 지아의 상태를 확인하던 찰나, 뒤쪽에서 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거 없어. 소지아는 끝났다고!” 시월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윤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도윤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시월을 노려보더니, 시월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목을 거칠게 붙잡아 벽에 내리쳤다. 쇠사슬이 철컥거리며 큰 소리를 냈고, 뒤이어 벽에 부딪힌 시월의 머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월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고,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도윤의 붉게 충혈된 눈이었는데, 그 눈동자에는 극도의 분노와 증오가 담겨 있었다.시월은 그 눈빛을 보자 자신이 입을 열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도윤, 네가 날 죽이면 소지아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방금 소지아를 문 독벌레는 내 몸에 있는 것과 연심독충으로 이어져 있어. 이 세상엔 단 한 사람만이 그 독벌레를 풀 수 있다고!” 도윤의 손에 힘이 들어간 순간, 시월이 핏빛으로 물든 아랫입술을 핥으며 다급히 덧붙였다.“연심독충은 매혹술의 대가라고도 불려. 원래 M족 여인들이 배신한 연인을 벌하기 위해 만든 건데
시월은 이미 기운이 다 빠져 있었지만, 자신이 가장 큰 눈엣가시로 여겼던 지아가 곧 눈앞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피어올랐다. 운명이 바뀐 그 순간부터 지아와 시월 사이에 평화란 있을 수 없었다.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관계였으니 말이다. 시월은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결코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내가 어떻게 죽든, 그건 한순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어.’ ‘설령 소지아가 죽더라도, 그 뒤에는 소씨 가문, 부씨 가문, 이씨 가문이 남아 있으니 나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서 시월은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시간을 끌기 위해 지아와 일부러 협력하는 척하며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독벌레는 종류가 매우 많고, 사람마다 길러내는 방식도 달랐는데, 지아는 상대가 어떤 종류의 독벌레를 사용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했다. 독벌레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반드시 인간의 피부에 접촉해야만 했는데, 독벌레가 공격하기 전에 피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한 지아는 얼굴, 손, 목처럼 노출된 부위를 철저히 방어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지아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며 시월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잠시 후, 지아는 갑자기 앞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월을 방패로 삼는 것뿐이야.’ 지아는 정확한 타이밍에 시월을 잡아 앞으로 내세웠고, 마침내 마독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마독왕은 분명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생물이었는데, 여섯 개의 날개와 여덟 개의 다리, 두 개의 긴 촉수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린 큰 입을 가진 벌레였다. 그 크기는 아기 주먹만 했고,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눈은 마치 파리처럼 생겼다. 지아는 그 생물의 기괴한 모습에 단번에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 벌레는 시월은 복부에 부딪힌 뒤 다시 날아오르려 했는데, 지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깥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지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방울 소리를 듣고 순간 긴장했고, 무무는 빠르게 바깥으로 달려갔다. 밖으로 나가 보니 일부 보초들이 쓰러져 있었다. 도윤이 무무를 재빨리 안아 들며 외쳤다.“어서 피해야 해!” 하지만 무무는 손으로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손짓을 보이며 도윤에게서 벗어났다. 예린은 독벌레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람들이 쓰러진 걸 보면, 분명 독벌레와 관련이 있을 거야.’ 사실 조금 전 몰려왔던 독벌레 떼는 단지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는데, 그 틈을 타서 적은 또 다른 독벌레를 사용해 공격해온 것이었다. 도윤은 군사 작전에 익숙했지만, 레이더는 무인기를 탐지할 수 있을 뿐 진짜 벌레는 감지할 수 없었으며, 작고 미세한 벌레들은 사람도 모르게 신체에 침투해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다. 듣기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 겪어 본 사람들은 독벌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무는 곧장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갔다.그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증상을 보였는데, 입에선 하얀 거품이 흘러나오고, 눈을 뒤로 뒤집힌 채 온몸에서 심한 경련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입술은 빨갛게 변했다가 점점 푸른빛으로 바뀌어 갔다. 무무는 망설임 없이 자기 손목을 칼로 그어 흐르는 피를 그들의 입에 떨어뜨렸다. 아이의 피는 모든 독을 해결할 수 있었고, 도윤 역시 그 효과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린은 이 광경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저게 네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무무는 상황이 급박한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아주 냉정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조심해!”도윤은 갑자기 예린을 밀쳐냈는데, 초록색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예린에게 달려들던 참이었다.벌레는 허공에서 목표를 놓치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주변 바닥과 비슷한 색으로 몸 색상을 바꾸었다. “모두 조심해! 위장할
지금 상황은 꽤 난처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시월은 이제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아와 마찬가지로 시월 역시 군사적 대응에는 전혀 문외한이어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 ‘독은 독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모든 진리는 대포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 몇초만에 믿어왔던 ‘살인 독벌레’가 전부 타버린 것을 보고 시월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단할 줄로만 알았던 살인 독벌레가 이렇게 순식간에 소멸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시월은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소지아! 너와 난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 지아는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됐어, 널 구하려고 온 지원군은 이미 전멸했어. 이제라도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널 곧장 수술대에 올려버릴 거야.” 시월은 벽에 기대며 완전히 기력이 빠진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다 말하면 되잖아!”“내가 심세호에 대해 아는 건 별로 많지 않은데,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워낙 신비한 사람이라 우리랑 손을 잡은 것도 일시적인 목표를 위해서였어. 사실 엄마가 납치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그 사람의 목표가 우리랑 같은 줄 알았어. 그 사람이 소씨 가문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거든.”“넌 아직도 그분을 ‘엄마’라고 부르는구나. 그분이 얼마나 널 아꼈는지 안다는 뜻이겠지. 네가 조금만 더 많은 정보를 준다면, 우리는 그분을 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그 사람은 천재 의학자이고, 이전엔 독충과 협력해서 항바이러스 약을 만든 적도 있어. 물론 효과는 좋았지만 부작용이 심한 탓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긴 했지만, 그 사람이 가장 잘하는 건 독약이야! 그 사람은 몸 자체가 독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나도 그 사람과 만날 때는 일부러 멀리 돌아가곤 했을 정도니까.” 잠시 말을 멈추었던 시월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아는 건 다 말했어. 이제 조경선을 잡고 싶다면 날 해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날 이용해서
지아는 무무가 전에 말했던 ‘시월 몸에 독벌레가 있다’는 말을 떠올렸지만, 시월의 손발은 모두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독충을 조종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뭔가 잘못됐어. 시월은 직접 조종하는 주술사가 아니라, 몸 안에 독벌레가 들어 있었던 건가 봐!”무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아의 추측에 동의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어서 별장으로 들어오게 해야 해.” 진짜 위험한 건 시월이 아니라 그녀의 몸속에 있는 독벌레였다.그 독벌레는 일종의 위치 추적기 역할을 했고, 다른 독벌레들이 정확하게 시월의 위치를 찾아내게 할 수 있었다. 지금 하늘을 뒤덮고 몰려오는 수많은 벌레 역시 평범한 존재가 아닐 것이었으며, 적은 그 벌레들을 이용해 대규모 살상을 감행한 뒤, 시월을 구출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과거의 지아였더라면 이런 상황을 그저 황당한 이야기로 여겼을 터였다.하지만 지아는 무무와 함께 지냈던 산골 마을에서 경험한 일들을 통해 독벌레의 위력을 직접 목격한 바 있었다. 그 마을에는 수백 년 전부터 외부와 단절된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고, 그 사람들은 주술을 다루는 데 뛰어났다. 무무는 난산으로 태어났고, 지아도 과다출혈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무무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무무가 신의 아이라고 여겼는데, 마을에서는 아이에게 특별한 주술을 사용해 보호 의식을 치렀고, 그 결과 무무는 독이나 독벌레에 면역이 생겼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틈만 나면 무무에게 주술을 가르쳤고 아이는 빠르게 익혔는데, 지아도 몇 번 배우려고 했으나 전혀 재능이 없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직접 다룰 수는 없었지만, 지아는 주술의 무서운 위력을 몇 번이고 목격하곤 했다.작고 미미한 독벌레는 사람 몸에 들어가면 그 사람을 조종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전설 속의 1급 암살자는 무형의 독벌레를 이용해 사람을 죽였으며, 외관상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지아는 그 암살자가 주술사일
지아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음 섞인 표정을 지었다. “너도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구나? 소시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대신 네가 그토록 집착하며 쌓아 올린 모든 걸 네 눈앞에서 무너뜨릴 거야. 무력함이 어떤 건지 똑똑히 알게 해 줄게.” “소지아, 이건 학대야! 너, 인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거야?!” “인간성? 너한테도 그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나?” 지아는 시월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는데, 이미 쇠사슬에 묶여 있는 시월은 제대로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시월은 지아가 오기 전 예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한 탓에 기운이 다 빠져 있었다. 시월은 결국 숨을 몰아쉬며 지아가 차가운 액체가 든 주사기를 자기 팔에 주입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거 알아? 네가 내 적이라는 걸 모를 때도 나는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어.” 곧 주사기 안의 액체가 모두 주입되었고, 지아는 시월의 손을 거칠게 놓아버린 뒤 그녀의 턱을 꽉 잡았다. “난 네가 똑똑하다는 걸 알아.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가족도 사랑도 아닌, 끝없는 권력과 부라는 것도 알지. 넌 필사적으로 네 몸속에 흐르는 가난한 산골 출신의 피를 지우고 싶어 했지만, 난 네가 겨우 걸쳐 놓은 그 고급스러운 가면을 하나씩 벗겨 줄 생각이야. 우선 이 얼굴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지아는 시월의 얼굴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남의 얼굴로 참 오래도 살았네. 그동안 네 원래 얼굴은 다 잊어버렸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너는 내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아, 그래?”지아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재미있는 사진이 몇 장 있는데, 한번 볼래?” 화면에는 시월이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나타났는데, 마지막 몇 장에는 지아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시월은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그 사람들은 시월이 태어난 산골 마을에 있는 친부모와 두 명의 남동생, 그리고 언니였다.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