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아. 일단 진정 좀 해봐.” 시후가 도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어서 데려가서 좀 쉬게 해줘.” 도윤의 입장에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것은 이미 불편한 일이었다. 소씨 가문의 남자들이 맹수처럼 당장이라도 도윤을 물어뜯을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도윤의 목적은 예린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예린은 고집이 세고 완고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장인어른, 몸조리 잘하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도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소임호는 도윤에게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임호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자기 딸이 밖에서 고생하며 학대받을 때, 도윤이 그저 방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지아가 급히 다가가 소임호를 달랬다.“아빠, 진정하세요. 아직은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이름이 지아라고 했나?”소임호는 지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아는 환희와 많이 닮아 있었지만, 눈매와 이목구비는 소임호와 조경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네, ‘지혜 지’에 ‘맑을 아’예요.”“아주 훌륭한 이름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겠니... 너를 잘 키워주신 양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내가 직접 방문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구나.” “제 양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저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신 것을 아주 기뻐하실 거예요.” 지아는 이 방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가족을 만나던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빠, 제가 처방전을 써드릴게요. 그대로만 복용하시면 곧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아가 처방전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다들 소시월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지아는 무심한 듯 물었지만, 소시월은 소씨 가문 사람
한편, 도윤은 혼란스러운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예린은 총알에 스쳐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표정은 마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예린은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이 부서질 듯한 상태였다. 진실이 주는 충격은 예린에게 너무도 컸다. 그녀의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가득 찼는데, 고개를 들어 도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그때 날 죽이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라는 걸 알았으니까.” 예린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나도 이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 나는 소 선생님을 돕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소 선생님의 여동생을 죽일 뻔했어. 나는 죽어야 해!” 도윤은 스스로를 질책하는 예린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신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어. 내가 네 목숨을 살려둔 건,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어.”도윤이 예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린아, 우리는 원래부터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잖아. 우리 부모님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도 왜곡된 마음을 심어줬어.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게 된 거지. 오빠도 과거에는 너처럼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지아가 어떤 벌을 내리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야.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거든.”“잘못은 잘못이고, 그걸 변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계속 괴로워한다면, 소 선생님이 널 구할 필요가 있었겠어?” 예린은 시후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동자에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 “그분의 선의를 배신하지 마. 넌 살아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을 거야.” “예린아, 앞으로는 반듯하게 살아가야 해.” “오빠
소씨 가문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시월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비록 지금은 소임호의 신분을 입증할 절대적인 증거가 없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임호의 혈통은 소씨 가문 내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시월과 조경선의 원래 계획은 소씨 가문을 후손 없이 무너뜨려 소씨 가문의 대부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은 아무리 아껴주어도, 결국 시월은 시집가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시월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몫의 축의금뿐이었고, 그것마저 심씨 가문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게다가 결혼한 뒤에는 시월이 남자의 부속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시월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단지 조경선을 위해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월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데, 조경선처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과는 달리, 시월은 훨씬 더 영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야.’ 물질적인 안정만이 시월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조경선은 시월이 친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월은 이미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파헤쳤다. 조경선은 평생 소임호만을 사랑하며 집착했기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사실, 시월은 생모는 깊은 산골에 살던 농부의 아내였다. 시월은 집안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마음이 약해진 시월의 생모는 시월을 산에 버렸고, 마침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조경선이 그녀를 발견해 데려간 것이었다. 조경선은 그 순간부터 복수를 위한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다.시월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난 후 더욱 노력했고, 조경선이 자신을 산속에서 데려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시월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노력으로 부족함을 메웠다. 게다가 소씨 가문의 풍부한 자원과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무사히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시후는 약간 놀랐다. 조경선을 모든 게 들통나자마자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는데, 오히려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고 시후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말이다. ‘지아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독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야망도 끝이 없었던 거라고.’ 시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오빠야, 무슨 일이야?] “오빠, 그동안 연락이 안 돼서 정말 걱정했어요. 괜찮은 거예요?” [난 괜찮아.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노력 중이었거든.]“그럼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구했어요?”시월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만약 시후가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시월의 태도와 과거의 일을 연결 짓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말 무서운 여자였구나.’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망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런 사람을 그냥 죽여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처벌이야!’ 시후는 지아가 미리 알려준 대로 대처했고, 시월은 즉시 소임호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 괜히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오빠,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시후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역시 네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 계획을 진행하려고 하는 중이었다고.” “소시월은 아주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왔어요. 저는 죽이려 한 것만 봐도, 소시월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잖아요. 그 여자는 절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할머니의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소시월한테 속고 있었을 거예요. 그 여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거라고요!” “그렇게 독한 사람은 죽이는 것도 아까워!”시하는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내 다리, 내가 잃어버린 지난 세월이 다 소시월 때문이었어! 그리고 시영이의 죽음도... 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그 여자를 죽이
소임호는 눈가가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는 시월을 바라보았다.그 소녀는 한때 소임호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빠,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아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시월은 병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 의문을 품었다. “아빠...?”시언은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증오를 억누르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월아, 아버지는 지금 많이 허약하셔.”“아빠,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집안일은 제가 잘 챙길게요.”시월은 한참 동안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소임호는 단지 짧게 ‘그래’라는 대답만 했다. 다만, 시월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침대를 꽉 잡은 소임호의 손등에는 불거진 핏줄이 선명했다. 소임호는 시월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과거 시월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면, 소임호는 결코 마음이 평온할 수 있었다. ‘우리 시영이는 이 냉혈한 때문에 죽임을 당했어. 시영이는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심지어 시신을 거둘 사람도 없었다고.’소임호는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소임호는 눈을 감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지금은 참아야 해. 지아의 계획이 아직 진행 중이니, 절대로 폭발해서는 안 돼.’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과 기회를 제공했는지를 소임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시월은 이미 보통 사람이 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월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고, 끝까지 탐욕을 부렸다. “큰오빠, 할 말이 있어요.”“잘됐네, 나도 마침 할 말이 있던 참이야.”두 사람은 한 명씩 방을 나섰고, 시후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오빠랑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우리 소씨 가문에 더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산 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목에 두른 숄만 해도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점원은 백채원을 알아보고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은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으셨네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착용해 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승리에 도취되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백채원을 무척 아낀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공식적인 법적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소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왜 하필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손해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소지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도로 빼앗아왔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이 반지 정말 맘에 드는데, 그래도 아는 사이니까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간절하게.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이 나서서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아가씨 반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저희 쪽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소지아의 귀에 무척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이도윤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백채원이 감히 이도윤의 아내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는데.겨우 1년만에, 사람들은 모두 백
소임호는 눈가가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는 시월을 바라보았다.그 소녀는 한때 소임호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빠,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아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시월은 병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 의문을 품었다. “아빠...?”시언은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증오를 억누르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월아, 아버지는 지금 많이 허약하셔.”“아빠,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집안일은 제가 잘 챙길게요.”시월은 한참 동안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소임호는 단지 짧게 ‘그래’라는 대답만 했다. 다만, 시월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침대를 꽉 잡은 소임호의 손등에는 불거진 핏줄이 선명했다. 소임호는 시월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과거 시월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면, 소임호는 결코 마음이 평온할 수 있었다. ‘우리 시영이는 이 냉혈한 때문에 죽임을 당했어. 시영이는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심지어 시신을 거둘 사람도 없었다고.’소임호는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소임호는 눈을 감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지금은 참아야 해. 지아의 계획이 아직 진행 중이니, 절대로 폭발해서는 안 돼.’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과 기회를 제공했는지를 소임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시월은 이미 보통 사람이 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월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고, 끝까지 탐욕을 부렸다. “큰오빠, 할 말이 있어요.”“잘됐네, 나도 마침 할 말이 있던 참이야.”두 사람은 한 명씩 방을 나섰고, 시후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오빠랑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우리 소씨 가문에 더
시후는 약간 놀랐다. 조경선을 모든 게 들통나자마자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는데, 오히려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고 시후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말이다. ‘지아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독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야망도 끝이 없었던 거라고.’ 시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오빠야, 무슨 일이야?] “오빠, 그동안 연락이 안 돼서 정말 걱정했어요. 괜찮은 거예요?” [난 괜찮아.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노력 중이었거든.]“그럼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구했어요?”시월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만약 시후가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시월의 태도와 과거의 일을 연결 짓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말 무서운 여자였구나.’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망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런 사람을 그냥 죽여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처벌이야!’ 시후는 지아가 미리 알려준 대로 대처했고, 시월은 즉시 소임호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 괜히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오빠,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시후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역시 네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 계획을 진행하려고 하는 중이었다고.” “소시월은 아주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왔어요. 저는 죽이려 한 것만 봐도, 소시월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잖아요. 그 여자는 절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할머니의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소시월한테 속고 있었을 거예요. 그 여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거라고요!” “그렇게 독한 사람은 죽이는 것도 아까워!”시하는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내 다리, 내가 잃어버린 지난 세월이 다 소시월 때문이었어! 그리고 시영이의 죽음도... 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그 여자를 죽이
소씨 가문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시월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비록 지금은 소임호의 신분을 입증할 절대적인 증거가 없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임호의 혈통은 소씨 가문 내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시월과 조경선의 원래 계획은 소씨 가문을 후손 없이 무너뜨려 소씨 가문의 대부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은 아무리 아껴주어도, 결국 시월은 시집가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시월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몫의 축의금뿐이었고, 그것마저 심씨 가문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게다가 결혼한 뒤에는 시월이 남자의 부속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시월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단지 조경선을 위해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월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데, 조경선처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과는 달리, 시월은 훨씬 더 영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야.’ 물질적인 안정만이 시월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조경선은 시월이 친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월은 이미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파헤쳤다. 조경선은 평생 소임호만을 사랑하며 집착했기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사실, 시월은 생모는 깊은 산골에 살던 농부의 아내였다. 시월은 집안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마음이 약해진 시월의 생모는 시월을 산에 버렸고, 마침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조경선이 그녀를 발견해 데려간 것이었다. 조경선은 그 순간부터 복수를 위한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다.시월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난 후 더욱 노력했고, 조경선이 자신을 산속에서 데려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시월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노력으로 부족함을 메웠다. 게다가 소씨 가문의 풍부한 자원과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무사히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도윤은 혼란스러운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예린은 총알에 스쳐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표정은 마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예린은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이 부서질 듯한 상태였다. 진실이 주는 충격은 예린에게 너무도 컸다. 그녀의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가득 찼는데, 고개를 들어 도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그때 날 죽이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라는 걸 알았으니까.” 예린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나도 이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 나는 소 선생님을 돕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소 선생님의 여동생을 죽일 뻔했어. 나는 죽어야 해!” 도윤은 스스로를 질책하는 예린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신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어. 내가 네 목숨을 살려둔 건,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어.”도윤이 예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린아, 우리는 원래부터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잖아. 우리 부모님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도 왜곡된 마음을 심어줬어.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게 된 거지. 오빠도 과거에는 너처럼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지아가 어떤 벌을 내리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야.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거든.”“잘못은 잘못이고, 그걸 변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계속 괴로워한다면, 소 선생님이 널 구할 필요가 있었겠어?” 예린은 시후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동자에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 “그분의 선의를 배신하지 마. 넌 살아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을 거야.” “예린아, 앞으로는 반듯하게 살아가야 해.” “오빠
시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아. 일단 진정 좀 해봐.” 시후가 도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어서 데려가서 좀 쉬게 해줘.” 도윤의 입장에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것은 이미 불편한 일이었다. 소씨 가문의 남자들이 맹수처럼 당장이라도 도윤을 물어뜯을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도윤의 목적은 예린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예린은 고집이 세고 완고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장인어른, 몸조리 잘하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도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소임호는 도윤에게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임호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자기 딸이 밖에서 고생하며 학대받을 때, 도윤이 그저 방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지아가 급히 다가가 소임호를 달랬다.“아빠, 진정하세요. 아직은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이름이 지아라고 했나?”소임호는 지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아는 환희와 많이 닮아 있었지만, 눈매와 이목구비는 소임호와 조경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네, ‘지혜 지’에 ‘맑을 아’예요.”“아주 훌륭한 이름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겠니... 너를 잘 키워주신 양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내가 직접 방문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구나.” “제 양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저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신 것을 아주 기뻐하실 거예요.” 지아는 이 방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가족을 만나던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빠, 제가 처방전을 써드릴게요. 그대로만 복용하시면 곧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아가 처방전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다들 소시월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지아는 무심한 듯 물었지만, 소시월은 소씨 가문 사람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이번 생에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지아야, 소시월이 그렇게 악랄한 사람인 줄 몰랐어. 그 X은 너를 몇 번이고 암살하려 했고, 우리 가족을 산산조각 냈어!” “전에 오빠가 너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어?” “여러분이 제 가족이라는 걸 몰랐을 때도, 저는 한 번도 오빠들을 원망한 적 없어요.”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고,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지만, 이예린만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소지아가 날 속였다니, 어떻게 날 속인 거지?”예린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시후는 예린이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이만 일어나.”예린은 시후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고, 지아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모든 게 내 잘못이에요.” 본래 예린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윤이 그녀의 손과 발의 힘줄을 끊었을 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예린은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머리를 몇 번 조아리자, 예린의 이마에서는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고, 머리뼈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이야기해.” 하지만 시후의 말은 예린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예린은 지아의 손목을 붙잡은 채, 피와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언니, 미안해요. 저도 속아서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예요.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게요.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예린은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고,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지아는 예린을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후회로 가득 찬 예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너는 분명히 죽어 마땅하지만,
지아는 예린과 시후 사이에 얽힌 사연을 알지 못했기에, 예린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다소 놀라웠다. 하지만 예린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지아는 특별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예린의 정체를 고려하면, 지아의 입장에서는 예린이 죽는 게 마땅했겠지만, 도윤의 입장에서 예린이 죽었다면, 그는 분명히 괴로웠을 터였다. 그래서 지아는 예린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예린의 등장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지아가 방금 던진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찰나, 시후가 예린에게 물었다.“괜찮은 거야?”예린은 상처를 입은 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지아는 공기 중에 희미하게 풍기는 피비린내를 감지했다. “전 괜찮아요.” “아버지, 이 사람이 아버지를 구한 사람이에요. 만약 이 사람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저도 손쓸 수 없었을 거예요.” 소임호는 지금 모든 관심이 지아에게 쏠려 있었지만, 예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워요. 꼭 보답하겠습니다.” 예린은 소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유난히 어색해 보였고, 손을 연신 내저을 뿐이었다.“아니에요,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소임호의 시선이 다시 지아에게 향했다.“소 선생님, 방금 한 말이 사실인가요?” 그들은 조경선과 심세호를 의심했지만, 정작 그들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월이 그들 앞에서 너무도 완벽한 연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윤은 예린을 한 번 힐끗 본 뒤 성큼성큼 걸어왔다.“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윤은 지금 지아의 감정이 아주 격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아를 먼저 의자에 앉힌 후 예린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무릎 꿇고 들어!” 그 순간, 예린은 긴장감에 휩싸였는데, 소씨 가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었다. 도윤은 지아의 기구하고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그녀가 국내에서
지아는 뒤돌아 도윤을 한 번 바라보았고, 도윤은 지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조금 있다가 바로 갈게.” 지아는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더는 따지지 않고, 시후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시언과 시후는 이미 소임호의 곁에 있었는데, 지아가 방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모두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만난 기쁨과 과거의 날들에 대한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그 많은 고난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 모양이었다.지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녀의 눈앞에는 소임호가 있었다. 소임호는 이전에 봤던 사진과 영상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지만, 몸 상태는 더 약해 보였고,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눈앞의 소임호가 바로 지아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아버지였다.소임호를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지아는 그대로 멈춰 서버렸다. 마치 누군가 지아의 움직임을 봉인한 것처럼 말이다. 지아는 소계훈이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수없이 상상해 왔다.‘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실까?’‘그분들은 날 사랑해 주실까?“지아야, 왜 그래?”시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지아를 깨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분이... 소 대표님이신가요?”두 사람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고, 소임호는 지아를 보자마자 멈칫했다.시월은 지아를 본떠 성형했지만, 지아와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지아의 얼굴은 환희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하지만 환희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다른 자녀들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다만, 소임호만큼은 환희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가 환희와 함께 했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그쪽은...”소임호가 지아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키려 하자, 시언이 부드럽게 설명했다.“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소지아 선생님이에요. 저희와 의형제를 맺기도 했죠.”“이번에도 지아 덕분에 많은 도움을
많은 일들은 한 번 실마리를 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기 마련이다.도윤은 살아남은 예린이 직접 진실을 듣기를 바랐다. 한편, 지아는 이미 부남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부남진의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 한 통도 없고, 너 때문에 걱정돼 죽을 뻔했구나. 그래도 도윤이가 너랑 있었다니 참 다행이었어.] 지아의 치료 덕분에, 부남진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목소리에서도 힘이 넘쳤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할아버지, 정말 큰 소식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부남진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좋은 소식이에요. 저, 친아빠를 찾았어요!” 쨍그랑!지아는 수화기 너머에서 컵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부남진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놓친 것이 분명했다. [얘, 정말이니? 거짓말 아니지?]“더 일찍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복잡하던 상황이 이제야 조금 안정됐어요.”지아는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부남진은 감격에 겨워했다.부남진에게 있어서 이 소식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았다. 특히 지아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혈육이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소임호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부남진의 표정에는 곧장 걱정이 어렸다.‘그 아이는 유일한 내 혈육이야!’[지아야, 네 아버지는 좀 어떠니? 많이 다친 게야?]“할아버지, 오빠가 방금 아빠를 구해냈어요. 지금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요. 남은 치료는 저한테 맡겨주세요.”지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부남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네가 있다니 안심이구나. 지아야, 네 아버지는 네가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이만 들어가 봐라.]수화기 너머의 부남진은 기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