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한대경... 정말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화연을 달래고 난 뒤, 지아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방을 나섰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그놈한테 약을 발라줘야겠어.’ ... 지아가 거실에 다다르기 전, 남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당신이 왔어요? 당장 나가요.” 도윤은 한 손에 핀셋으로 솜을 집고, 다른 손에는 알코올 병을 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알코올을 한대경의 머리 위에 들이붓고 불이라도 붙일 듯 위협적이었다. 도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 알레르기가 있다면서요? 제가 의사는 아니니까, 지금 직접 해드릴게요. 진환아,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줘.” “네.” 진환은 사람들을 데리고 한대경에게 다가갔다. 이 광경을 보자마자 지아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해마다 섣달에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잡으려고 건장한 체구를 가진 이웃들을 불러모으는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큰 돼지를 힘껏 붙잡고, 도축사가 칼을 들어 돼지의 멱을 따는 모습처럼, 지금 한대경은 마치 도살을 기다리는 커다란 돼지 같아 보였다. 바로 그때, 배이혁이 다가와 진환의 앞을 가로막았다. 양측의 긴장감이 한순간에 폭발할 듯 팽팽하게 감돌았다.“그만해요.” 부남진은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 분, 이쯤에서 멈추시죠.” 부남진은 이도윤과 한대경 사이의 오랜 원한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 아끼는 부하를 잃은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만날 때마다 서로를 적대했다. 두 세력 간의 암투와 갈등은 끊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대립은 점점 깊어져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 부씨 가문의 저택에서 만나 일대일로 대놓고 싸운 것은 처음이었다. 거실은 넓었지만,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과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방 안 공기는 무겁고 숨 막히는 듯했다.한대경은 셔츠의 단추를 단정히 잠그고, 냉담한 표정으로 예전의 장난스러운 태도를
이런 한대경을 바라보며 지아는 침착하게 말했다.“저는 지금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한대경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만약 지아 아가씨가 모르신다면, 이 세상에 아는 분은 없겠죠. 제 요구는 간단합니다. 그저 아가씨께서 저에게 약을 발라주기만 하면 이번 일은 농담으로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한대경은 이번 사건을 테러 공격으로 규정해 사태를 크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지아는 이도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도윤 씨, 나에게 줘.”“지아야...”도윤은 한대경의 속셈을 알기에 지아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염려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지아는 이미 부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가족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부남진이 지아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라카에 갔던 것처럼, 이제는 지아도 부씨 가문을 위해 할 일이 있었다.‘단지 약 좀을 발라주는 거지, 별일 아니야.’지아는 도윤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를 안심시켰다.“금방 끝날 거야.”도윤은 망설였지만, 결국 지아의 결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는 무겁게 숨을 내쉬며 약을 지아의 손에 건네주었다.지아는 약을 받아 들고 한대경에게 다가갔다. 한대경은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지아에게 한대경은 그저 또 다른 환자일 뿐이었다.도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비록 단순히 약을 바르는 일이었지만, 도윤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는 과거 자신이 백채원에게로 떠나갔을 때, 지아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인과응보, 결국 이런 식으로 벌을 받게 되는구나.’한대경은 도윤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수고 좀 부탁드립니다.”도윤은 손가락에 핏기가 사라지고 흰색으로 변할 정도로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지아를 향한 걱정과 한대경을 향한 분노가 뒤섞여 마음이 복잡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과한 말씀입니다
이 뜻밖의 제안은 놀라운 결과였지만, 어쩌면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한대경처럼 쉽게 앙심을 품는 사람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자를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대경은 상대방을 쉽게 용서하고, 심지어 이 사건을 더 이상 조사하려 들지 않았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이 한대경의 차에 있었을 때, 지아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한대경과 지아는 혈연도 아니고, 특별한 관계도 아닌데, 부남진은 한대경의 행동이 오로지 지아에 대한 호감을 가졌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대경이 그 말을 꺼냈을 때, 부남진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여전히 차분하게 물었다. “우리 집안에는 두 명의 아가씨가 있는데, 자네가 원하는 건 누군가?” 사실 오늘 하용은 단지 자리만 지키면 되는 상징적인 역할로 불려온 것이었다. 부남진은 아직 하용의 사직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하용은 더 이상 예전처럼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저 맡은 일을 성실히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남진의 이 한마디는 하용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하용과 도윤 둘 다 부남진에게 미움을 살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도윤은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고, 하용은 과거 미셸을 이용해 출세하려 했던 일로 부남진의 눈 밖에 났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지아와 화연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하용과 도윤은 동시에 긴장하며 한대경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그러나 한대경은 두 사람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두껍디두꺼운 얼굴로 지아를 향해 말했다. “저는 지아 아가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정했습니다. 부디 지아 아저씨께서도 제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부남진은 지아를 보며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우리 집안은 자유연애를 존중해 왔으니, 지아야, 지금 내 눈 앞에 너랑 혼인하고 싶은 대단한 분이 나타났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지아는
한대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연애 경험도 없이 곧바로 결혼 생각으로 직진할 만큼 단순했다. 당연히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제 조건이 부족하다면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지아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내 기준을 낮추겠습니다.” 지아는 한대경의 의아한 눈빛을 마주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부씨 가문은 딸을 팔아서 이익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은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각하께서 결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먼저 연애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겁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닙니다. A 국과의 우호 관계를 원하신다면, 결혼을 빼고도 두 나라의 협력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건 국민들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한대경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결혼을 빼고, 제가 왜 국민들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합니까? 제가 불편한데, 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야 합니까?” 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 도윤은 지아 옆에 앉으며 비꼬듯이 말했다. “행복하든 말든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죠. 정말 웃기네요. 우리에게 당신의 그 수십 조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한대경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돈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방을 거절할 나라는 없겠죠. 만약 제가 Z 국이나 H 국과 손을 잡으면, 이 나라에는 그게 더 큰 골칫거리가 될 것 같은데요.” “정말 본인이 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아는 모양이군요. 본인이 없으면 지구가 멈추고 태양이 빛나지 않을 것 같아요? 웃기지 마세요. 우리 A 국은 당신이 있든 없든 아무 문제도 없어요.” “이도윤, 지금 정말 전쟁을 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끝까지 상대해줄 테니까!”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고, 팽팽한 기운이 방 안을 휘감았다. 지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하니 두 분이 정말 잘 어울리네요. 차라리 두 분이 결혼하는 게 어때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지아를 불타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누가 이 사람이랑
식사 중에 부남진은 공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며 한대경의 입을 막았다. 도윤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한대경과 맞붙어 본 경험이 있었기에, 한대경이 한 번 먹은 마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대경은 이번에 A시에 온 이유는 지아의 일뿐만 아니라 분명 철저히 준비한 후속 계획이 있을 거야.’ 예상대로, 식사를 마친 후 한대경은 부남진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요청했다. 부남진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세 시간 전.백채원은 며칠간의 휴식 후, 자신의 의족에 상당히 잘 적응해 있었다. 비록 가끔 통증이 있었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하지만 백호는 채원이 무리하게 움직여 다리가 더 다칠까 염려해 휠체어에 앉아 더 오래 쉬도록 권했다. 백호는 채원의 다리에 위치 추적 칩을 심었기 때문에 이제는 한결 안심할 수 있었다. 채원이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백호를 피해 숨을 수 없을 것이다. 채원은 이틀 동안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백호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백호는 그녀에게 잠깐 외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는 휠체어를 밀며 채원과 함께 쇼핑을 하러 다녔다. 채원은 여러 가지 물건을 산 후, 식당 예약을 잡고 백호에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백호는 집착과 강한 애정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채원을 마음에 두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백호는 채원의 몸을 수없이 가졌지만, 이번이 채원이 먼저 그를 직접 초대한 자리는 처음이었다. 백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겪고 채원의 마음이 진정으로 변했다고 믿는 듯했다.그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겼고, 비서에게 새 양복을 준비하게 하고, 머리도 새로 단정하게 깎으며 마치 연애를 시작하는 젊은 남자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나 백호는 알지 못했다. 채원은 쇼핑이 끝난 후 가정부를 식당으로 먼저 보낸 뒤,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가정부는 채원을 기다리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산 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목에 두른 숄만 해도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점원은 백채원을 알아보고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은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으셨네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착용해 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승리에 도취되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백채원을 무척 아낀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공식적인 법적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소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왜 하필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손해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소지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도로 빼앗아왔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이 반지 정말 맘에 드는데, 그래도 아는 사이니까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간절하게.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이 나서서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아가씨 반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저희 쪽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소지아의 귀에 무척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이도윤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백채원이 감히 이도윤의 아내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는데.겨우 1년만에, 사람들은 모두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