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고모님이 하용 씨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놓으면 고모님은 우울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고모님의 건강 회복에도 좋지 않을 거예요.” 지아는 마치 화연의 대변인처럼 그녀의 마음을 전했고, 화연은 흥분한 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딱 그거예요!” 민연주와 부남진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힘들게 되찾은 딸이자, 여전히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같은 화연이었다. 두 사람 역시 딸이 또다시 상처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 지아 말대로 하자.” 부남진은 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도 이견 없겠지?” 하용은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연이가 있는 곳에 제가 있을 겁니다.” “좋다, 그러면 이제 화연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자.” 부씨 가문의 저택은 이미 준비해 둔 두꺼운 패딩 잠옷을 가져와, 화연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친딸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한 준비가 완벽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화연이 하용과의 사이에서 말이다. 부남진은 지아, 부장경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댄 채 깊은 피로감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지아야, 화연이 상태는 지금 어떤 거냐?” 지아는 화연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 제가 병원에서 고모님을 만났을 때, 고모님이 하씨 가문에서 자란 아이인 줄 몰랐어요. 고모님의 병 때문에 관심이 생겨 알게 됐죠. 이번 미셸의 난동으로 고모님은 거의 죽을 뻔했어요. 이제 겨우 살아났으니, 앞으로 잘 돌봐야 합니다.” “지아야, 화연이 건강은 너에게 맡기자.” 부남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저는 고모님을 잘 돌볼 거예요.” 부남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아가 일부러 과장한 줄 알았던 화연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해 차가 천천히 멈추자, 하용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셸은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 민연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아니, 낯선 사람보다도 못한 것 같은데...’ 민연주의 눈빛에는 미셸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가득했다. ‘늘 날 사랑하던 엄마가 어쩌다 이렇게 차갑게 변했을까?’ 미셸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민연주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미셸은 급하게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엄마, 나 너무 배고파요.” “너처럼 잔인하고 못된 애는 굶어 죽어도 싸다.” 민연주는 서둘러 국수를 들고 떠났다. ‘지금 엄마가 향하는 곳은 침실도 아니고, 아버지 서재도 아니고, 대체 그 국수는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일까?’미셸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녀는 밖에 나가 난동을 부리려고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 밖에는 부장경의 명령으로 경비가 더 강화되었고, 그 누구도 그녀를 예전 집안의 금지옥엽으로 대하지 않았다. 경비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아가씨, 죄송하지만 지금은 나가실 수 없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진 눈밭을 보며, 미셸은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해왔다. 한편, 민연주는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를 화연에게 가져갔다. “어서 이 국수 좀 먹어라. 앞으로 네 세끼 밥은 엄마가 다 책임질게. 엄마가 직접 너 회복할 때까지 잘 돌볼 테니, 빨리 나아야 한다.” 화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부장경은 지아의 조언에 따라 여기저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부남진 역시 화연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에서 딸을 돌보며 모든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부남진은 한 번도 딸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가짜 딸인 미셸도 이미 성인이 된 상태로 그의 곁에 돌아왔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미셸의 온갖 요구를 다 들어주며 이 가짜 딸을 길러왔다.
민연주는 화연의 손을 잡으며 딸을 안심시켰다. “아가, 걱정하지 마. 여기는 네 집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셸은 완전히 폭발했다. “엄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기가 왜 이 여자 집이죠? 여기는 내 집이에요!” 며칠 동안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터라, 미셸은 이미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와중에 화연이 집에 있는 모습을 보자 불안감은 더 깊어졌다. “네 집?” 민연주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까지 왔으니 이제 네 출생의 비밀도 밝힐 때가 됐구나.” “제 출생의 비밀이요?” 미셸은 점점 더 당황하며 말했다. “엄마,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하나도 웃기지 않아요.” “누가 농담이래?” 민연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문 쪽을 보며 말했다. “저기, 누가 이명란 좀 데리고 와.” 화연의 건강이 나아지고 있으니, 민연주는 이제 그동안의 원한을 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엄마, 우리 문제에 왜 다른 사람을 부르는 거죠?” 미셸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민연주는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 정말 다른 사람이니?” “엄마, 왜 그러세요?” 미셸은 민연주가 대답하지 않자, 화난 얼굴로 하용에게 달려가서 소리쳤다. “하용, 내 배 속에 네 아이가 있잖아! 그런데 네가 우리 모자를 내버려두고 이 여자한테만 신경을 쓰고 있어. 미쳤어?” 미셸을 마주한 순간, 하용은 그날 미셸이 화연에게 저지른 폭력을 떠올렸다. ‘만약 부씨 가문의 보호가 없었다면, 아마 미셸은 살아남지 못했을 건데.’ 그런 상황에서 하용은 미셸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시하며 고발한 것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하용은 반쯤 무릎을 꿇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큰 손으로 미셸의 목을 세게 움켜잡았다. 그의 온몸에서는 미셸에 대한 살기가 고스란히 다 뿜어져 나왔고, 미셸의 몸은 순식간에 벽에 눌렸다. 미셸은 겁에 질려 굳어버렸다. 예전의 하용은 항상 미셸에게 무릎 꿇고 빌며 순
이명란은 이제 와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요 며칠 부장경이 이 일을 철저히 조사했을 거야.’그녀는 바로 민연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사모님, 제가 그동안 사모님을 성심성의껏 모신 것을 봐서라도 아가씨의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그 당시 제가 한 짓은 제 잘못입니다. 아가씨는 단지 죄 없는 아기였을 뿐, 어른들의 속셈은 전혀 몰랐어요.”“아줌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잘못했단 거야? 그 아기는 대체 누구야??” 미셸은 당황한 나머지 손발이 덜덜 떨렸다. 지금 부남진 일가가 자신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니 이번에는 단순히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내 편이던 엄마가 오늘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아.’이때, 민연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죄가 없다고? 그 말 한마디로 이 가짜가 내 친딸을 대신해 부귀영화를 누리게 만들었단 말이야? 네가 그동안 내 딸에게 잘 대해줬다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네가 한 짓은 뭐지? 아이에게 7년 동안 독을 먹였어. 그때 내 딸은 그저 어린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야!”미셸은 몇 걸음 뒷걸음질 치며 거의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민연주가 방금 자신이 엄마가 아니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사모님, 저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모님과는 다릅니다. 저도 그때 한순간의 사악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바꿨을 뿐...”이명란은 눈물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사모님의 따님에게 독을 먹인 것은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기 싫어해서 일부러 독을 먹인 겁니다. 그 당시 홍수를 핑계로 따님을 속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그저 따님의 명문가 집안 아가씨의 삶을 탐냈을 뿐, 따님의 목숨을 원한 건 아니었
이명란의 위협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전향자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금세 당시의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하늘과 땅에 대고 맹세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 우유에 독이 든 줄 몰랐어요. 그 우유를 제가 마셨다가 병원에 실려 가고 난 뒤에야 뭔가 잘못된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명란이를 찾아가 따졌더니 그제야 딸이 계획을 털어놓았어요. 이후로는 절대로 아이에게 독을 먹이지 않았어요.”전향자는 이명란을 비난하며 말했다. “그때 저도 명란이에게 속은 것뿐이에요. 당신들이 찾는 사람은 바로 명란이에요. 제가 아이에게 독 먹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할 거예요.”지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그렇다고 깨끗한 척은 하지 마세요. 독을 먹이지 않은 건, 할머니도 결국 책임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더 잔인한 방법을 선택했잖아요. 아이를 속여서 집에 보낸 뒤, 결국 홍수에 휩쓸리게 만든 거잖아요.”이명란과 그녀의 가족은 모두 악마였지만, 화연은 이런 악몽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살아남았다.“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어요. 제 남편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고, 저 혼자 시골에서 먹고 살길도 없는데, 제가 어린아이를 어떻게 키우겠어요? 아이가 7살이 되어서 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딸년이 양심도 없어서 저한테 돈 한 푼도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저 같은 가난한 늙은이와 함께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죠.”전향자가 어떤 의도였든, 결국 화연에게 독이 든 우유를 먹이지 않은 덕분에 화연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할머니, 저희가 할머니를 모신 이유는 지금 이 사건의 증인으로 나서서 경찰에 협조해 그때 있었던 일을 낱낱이 밝히길 원하기 때문이에요.”이명란은 눈을 감고,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발 미셸만은 살려주세요. 미셸은 어쨌든 사모님께서 정성으로 키운 아이입니다. 사모님의 친딸이나 다름없습니다. 미셸이
미셸은 자기 생모의 피가 묻은 과도를 쥔 채 민연주를 향해 걸어갔다. 이 광경은 어처구니없고,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하용은 미셸이 화연을 해칠까 봐 화연의 앞을 가로막았고, 부장경은 놀라서 새하얘진 얼굴로 민연주 앞을 지켰다.“세상에! 살인이다!”전향자는 비명을 지르며 피가 튈까 봐 멀리 도망갔다.지아는 이 광경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이 가족은 정말 정상적이 아니네. 어머니는 자식을 인정하지 않고, 자식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어.’‘이명란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자기 친딸도 엄마에게 조금의 연민조차 없었어. 이명란은 그런 대가를 치러 마땅하지.’민연주는 서둘러 미셸을 막아섰다. “이쪽으로 오지 마.”“엄마,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어요? 나는 설이에요. 내가 엄마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엄마가 나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어요.”부장경은 칼을 든 미셸을 간단하게 제압했다. 미셸은 사실 다른 사람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빠, 오빠는 나를 제일 아꼈잖아.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미셸의 눈물에 부장경이 느끼는 감정은 오직 단 한 가지였다. ‘악어의 눈물...'오늘 이명란의 세 모녀가 보여준 행동들은 부장경에게 크디큰 충격을 주었다. 잔혹함도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아는 이명란의 상처를 살펴보고 응급 처치를 했다. 집에는 더 이상의 의료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지아는 경호원들에게 이명란을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이명란이 저지른 일들은 분명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부씨 가문의 저택에서 죽는다면 부씨 가문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미셸은 다시 방으로 끌려가 감시를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민연주는 사람들을 불러서 혈흔이 있는 카펫을 교체하게 했고, 하용은 화연을 조심스럽게 달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화연은 이미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화연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지만
화연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이명란을 찌른 칼에서 떨어지던 그 선명한 피의 붉은색이 떠올랐다. 지아는 예정된 시간에 와서 화연에게 침을 놓으며 말했다.“고모님이 잠들지 않고 계시는 거 알아요.”화연은 눈을 뜨고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네.” 지아는 은침을 내리며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모님의 잘못은 너무 착하고, 지나치게 마음이 여리다는 거예요.”“지아야...”지아는 마치 아이같이 순수하고 맑은 화연의 눈동자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제가 고모님을 구해드린 이유도 바로 고모님의 이 눈동자 때문이었어요. 고모님은 정말 예전의 저와 많이 닮았거든요. 저도 한때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죠. 하지만, 고모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오히려 고모님이 남을 너무 많이 생각할수록, 그 사람들은 그것을 더 당연하게 여길 거예요.”“사실, 고모님의 연약함은 고모님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어요.”그 순간 지아는 과거에 강미연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때 죽지 않았다면 미연이는 지금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모든 걸 잃고 땅속에 묻히고 말았어...’“지아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남을 구하려는 집착은 이제 내려놓으셔야 해요. 그 사람들에게 자기 운명은 자기 스스로 감당하게 두세요. 불필요한 동정은 하지도 말고, 이제 고모님 자신만 생각하세요. 그리고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진 고모님의 아이를 기억하세요. 조금 더 단호해지셔야 고모님도, 가족도 지킬 수 있어요. 제 말, 이해하셨죠?”지아는 화연이 자신이 했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랐다. 지나친 선량함은 결국 남의 손에 내가 쥐여주는 칼이 될 뿐이니까.화연은 평평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소지아는 백채원이 저지른 일들을 절대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윤의 일은 차치하고라도, 백채원 때문에 자신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 소계훈이 죽은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지아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소계훈을 구해냈지만, 그는 결국 백채원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도대체 왜 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것일까?’...“엄마.”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아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는 바로 백채원과 꼭 닮은 모습이었지만, 키는 지아의 아들 지윤보다 훨씬 작았다. ‘이 아이... 바로 이채나군...’이채나, 전림과 백채원 사이의 유일한 혈육. 지금 채나가 아마 학교에서 돌아온 듯, 아직 교복 차림이었다.채나의 얼굴을 보자, 지아는 그동안 이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원은 딸을 보자 눈이 반짝였다. “우리 딸, 어서 엄마한테 와서 얼굴 좀 보여줘.”채나의 눈은 전효와 많이 닮아 있었다. 지아는 채나를 통해 채원과 전림, 두 사람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랑 우리 지윤이의 생일도 얼마 안 남았네. 올해 두 아이 다 만으로 아홉 살이 되는구나...’전효 때문일까, 지아는 이상하게도 채나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들지 않았다.“이분은 누구세요?” 채나의 시선이 지아에게로 향했다.채원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딸, 이분은 명의 바네사 선생님이야. 엄마 아픈 다리를 많이 회복시켜 주셨어. 이분 덕분에 수술만 하면 엄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채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의사선생님 되고 싶어요. 나중에 선생님께 질문해도 돼요?”지아는 어린 시절 채나와 지윤이 함께 자랐던 것이 기억났다. 지윤은 독립적이었고, 채나보다 훨씬 발육이 좋았다. 지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채나는 겨우 소파를 붙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모녀 간의 혈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채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