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백채원이 저지른 일들을 절대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윤의 일은 차치하고라도, 백채원 때문에 자신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 소계훈이 죽은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지아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소계훈을 구해냈지만, 그는 결국 백채원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도대체 왜 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것일까?’...“엄마.”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아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는 바로 백채원과 꼭 닮은 모습이었지만, 키는 지아의 아들 지윤보다 훨씬 작았다. ‘이 아이... 바로 이채나군...’이채나, 전림과 백채원 사이의 유일한 혈육. 지금 채나가 아마 학교에서 돌아온 듯, 아직 교복 차림이었다.채나의 얼굴을 보자, 지아는 그동안 이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원은 딸을 보자 눈이 반짝였다. “우리 딸, 어서 엄마한테 와서 얼굴 좀 보여줘.”채나의 눈은 전효와 많이 닮아 있었다. 지아는 채나를 통해 채원과 전림, 두 사람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랑 우리 지윤이의 생일도 얼마 안 남았네. 올해 두 아이 다 만으로 아홉 살이 되는구나...’전효 때문일까, 지아는 이상하게도 채나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들지 않았다.“이분은 누구세요?” 채나의 시선이 지아에게로 향했다.채원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딸, 이분은 명의 바네사 선생님이야. 엄마 아픈 다리를 많이 회복시켜 주셨어. 이분 덕분에 수술만 하면 엄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채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의사선생님 되고 싶어요. 나중에 선생님께 질문해도 돼요?”지아는 어린 시절 채나와 지윤이 함께 자랐던 것이 기억났다. 지윤은 독립적이었고, 채나보다 훨씬 발육이 좋았다. 지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채나는 겨우 소파를 붙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모녀 간의 혈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채나는
지아는 이들의 복잡한 관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딸이 도윤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이것 역시 지아가 도윤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 많은 ‘가시’가 있었고, 그 가시들을 다 뽑아낸다고 해도 남은 상처는 여전히 지아에게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끊임없이 상기시킬 것이다. 도윤과 지아 사이에는 백채원과 이채나뿐만 아니라, 도윤의 여동생 이예린도 존재했다. 최근 며칠 동안 도윤과 지아는 가까워졌지만, 채나가 도윤을‘아빠’라고 부른 한마디는 마치 차가운 물이라도 끼얹은 듯 지아의 마음속 도윤에 대한 열기를 식혀버렸다.[음, 오늘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도윤은 천천히 말했다. [아빠 일이 좀 많아서. 나중에 시간 나면 꼭 데리러 갈게. 함께 가고 싶은 식당도 예약해 둘게.]도윤은 채원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만약 식사한다면, 그것은 오직 채나와 단둘이서 할 생각이었다.채나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났다. 아이도 진정으로 도윤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채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일 엄마한테 수술해 주신대요. 아빠, 오늘 밤에 우리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면 안 돼요?”잠시 후, 도윤은 마침내 승낙했다. [그래, 아빠 퇴근하고 나서 갈게.]지아는 도윤이 왜 승낙했는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도윤은 밤에 담을 넘으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다. 어젯밤에는 부남진이 직접 부하들을 데리고 와 도윤을 붙잡았고, 도윤은 외벽을 넘으려다 결국 궁지에 몰렸다. 미리 도윤에게 신호를 보내주던 사람도 다른 곳으로 전출되어, 도윤은 어쩔 수 없이 붙잡히고 말았다.부남진은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도윤을 바라보았다. “이 늦은 밤에 자네는 이걸 운동 삼아 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도윤조차도 얼굴이 붉어졌다. 이 일이 알려지면 도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부남진에게 몇 마디 훈계를 들은 후, 도윤은 경비병의 호위를 받아
지아는 두 손가락으로 백지수표를 집어 들며 차가운 시선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백호는 담담하게 답했다. “사적인 이유입니다. 선생님이 협조해 주길 바랍니다.”“하지만 제가 이미 동생분에게 내일 수술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백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수술이란 시험과 같은 것이죠. 가끔 실수하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그럼 백호 씨의 뜻대로 하죠.” 지아는 펜을 들어 수표에 ‘200억’이라는 금액을 적었다. “백호 씨, 이 정도면 괜찮으신가요?” 지아는 일부러 큰 금액을 불렀다.백호는 수표를 한 번 쓱 보고 말했다. “문제없어요. 좋을 대로 하세요.”지아는 수표를 챙기며 말했다. “그럼, 좋은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백호는 ‘바네사’의 명성을 들어왔었다. ‘바네사’는 어느 병원에도 속해 있지 않고, 사람을 살리거나 치료하는 것도 그녀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백호는 ‘바네사’가 이 거래를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바네사’가 동의해주었다.백채원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윤이 도착한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고, 지아는 차실에서 백중권을 모시고 차를 마시며 도윤이 오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도윤의 손에는 투명한 작은 선물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흰색과 빨간색 에콰도르 장미로 만든 작은 눈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 눈사람은 옆으로 빼뚜름하게 산타모자를 걸치고 있었고, 매우 귀여워 보였다.이제야 도윤이 늦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물을 사러 갔던 것이다.채나는 멀리서 도윤을 보자마자 달려갔다. 도윤은 눈사람을 채나에게 건네주었고, 아이는 무척 기뻐하며 도윤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우리 채나도 많이 컸구나!”도윤은 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채원은 오랜 시간 화장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객관적으로 보면, 채원의 외모는 미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식사 자리에서 백중권은 진지한 표정으로 도윤의 손을 잡고 말했다.“내게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다, 도윤아. 원래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손녀사위감은 자네였는데, 자네와 채원이는 인연이 없었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많은 걸 바라지 않겠네. 다만 우리 두 집안의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앞으로 우리 집안에 해를 끼치지 말고, 많이 도와주게나.”백중권이 이 말을 할 때 백호는 잔을 꽉 쥐고 있었지만, 백중권의 시선을 의식하자 백호는 다시 가식적인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이전에 백호가 하용과 만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백호가 분명 하씨 가문과 한 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백중권의 말에 백호가 불만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백호야, 너도 도윤이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백호는 잔을 들며 도윤에게 겸손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도윤은 백호의 시선을 스치며 알 수 없는 깊은 눈빛을 보였다. “그래요.”채원도 잔을 들어 올리며 도윤에게 말했다. “도윤 씨, 나 내일 수술 받는데... 와줄 수 있겠어요?”채원은 도윤에게 수없이 거절당했기에, 이번에도 도윤이 어떻게 대답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와 행동에는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다.“그래.”이 수술은 지아가 집도하는 것이었고, 도윤은 지아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 특히 그는 이제 부씨 가문의 저택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채원의 제안을 승낙했다.채원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도윤 씨가 있으면 난 정말로 안심이 될 거예요.”백호는 채원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서 질투가 일어나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질투 때문에 백호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졌다.지아는 아무렇지 않게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백호는 진심으로 백채원을 사랑했지. 정말 뼛속까지 깊이 사랑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채원의 눈과 마음속에는 오직
지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도윤을 밀었다. “장난치지 마.”하지만 차가운 눈 속에서 도윤은 술기운에 살짝 취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난 네가 그리웠어. 이제는 저 ‘늙은이’가 담 넘는 것도 막아.”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서글픔이 묻어 있었고, 지아는 비록 현장을 보지 못했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니 꽤 흥미진진했다. ‘언제나 단단하고 고고했던 이도윤이 그런 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지아는 발끝을 살짝 들어 도윤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알았어, 그만해. 밤에 보상해줄게.”두 사람은 자신들 가까이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광경을 몰래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채나였다. 채나는 엄마가 또 그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밖으로 나왔지만, 자신이 본 화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채나는 의식이 생긴 후로 줄곧 아버지 이도윤을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어머니 백채원에게는 더욱 냉담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가 엄마에게 미소 지은 적이 없었어. 아빠는 늘 엄마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지.’ ‘난 그게 아빠의 원래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아빠가 의사 선생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고,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안아주다니!’ ‘나에게조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그 미소를...’ ‘왜일까? 아빠는 엄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다른 여자에게는 저렇게 따뜻하게 웃어주는 걸까.’채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아빠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채나는 언젠가 아빠가 다시 엄마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장면을 본 이상, 그 희망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벗어나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는데, 다이닝 룸으로 돌아오니 채나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때 백중권이 말했다. “채나가 엄마를 찾으러 갔는데, 너희는 못 봤니?”지아는 눈빛이 흔들렸고, 무슨 일
도윤과 지아의 아이들 중 지윤은 여전히 외부에서 훈련 중이었다. 나머지 세 아이도 각기 다른 곳에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과거에 지아가 스스로 도윤과 아이들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아는 도윤조차도 아이들이 어디에서 학교를 다니는지 알 수 없게 비밀에 부쳤다.설령 도윤이 채나에게 잘해줄 만한 이유가 있다 해도, 지아는 도윤이 남의 아이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지아는 운전대를 꽉 잡으며 스스로에게 채나에게 화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결국 지아는 부씨 가문 저택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한편, 백씨 가문의 저택에서는 백채원이 백호의 폭력적인 욕망에 억눌려 있었다. 차가운 거울 앞에서 백호의 거친 행동을 참아내며 채원은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몇 분이 지나고서야 백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물러났다.채원은 그의 어깨를 꽉 물며 소리쳤다. “이 쓰레기 같은 놈!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어!”백호는 광기로 가득 찬 표정으로 답했다. “너에게 내 아이를 낳게 할 거야!”“넌 미쳤어!” 채원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같은 놈의 아이를 가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백호는 그녀의 턱을 꽉 잡고 말했다. “넌 평생 내 거야! 절대 너를 떠나보내지 않을 거다.”채원은 자신이 왜 이런 미친 사람과 얽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만한 그녀도 할아버지인 백중권에게는 한마디도 감히 꺼내지 못했다. 백중권은 이미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풍전등화 같은 나이였고, 이런 일로 자극을 받았다가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기 때문이다.채원은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냈다. 백중권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채원은 백호의 모든 학대를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 이제 채원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수술을 통해 다시 걷
지아는 온갖 복잡한 마음을 안고 부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방 안은 따뜻한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고, 화연은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민연주는 직접 짠 목도리를 화연에게 둘러주며 말했다.“딱 맞네. 내일은 장갑이랑 모자도 짜서 줄게.”“고마워요, 엄마.” 화연의 안색은 며칠만에 눈에 띄게 좋아졌고, 얼굴에도 약간 살이 붙었다.“엄마한테 뭐가 고마워? 앞으로 엄마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빨리 건강해져야 해.”그때 지아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화연은 지아를 보자마자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고, 그로 인해 화연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지아, 돌아왔구나. 오늘 어디 갔다 왔어?”“환자 좀 보러 갔어요. 고모님 몸은 괜찮으세요?” 지아는 화연의 밝은 얼굴을 보며 오늘 하루 나빴던 기분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걸 느꼈다.“응, 괜찮아. 배도 안 아프고, 식욕도 늘었어. 다 네 약 덕분이야.”화연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보였다. 그녀는 비록 속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미소를 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화연은 미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미셸은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었지만, 화연은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그러나 때로는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지아는 알고 있었다. ‘그래, 나를 지키려면 우리 다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해...’지아는 이렇게 생각하며 잠시 화연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느라 알지 못했다.그동안 도윤은 부씨 가문의 저택까지 지아를 쫓아왔지만, 문 앞에서 저지당했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각하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밤에는 들일 수 없다고 지시하셨습니다.”도윤이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하용은 손에 간식
도윤은 마치 지아가 위에서 내려다볼 것을 먼저 예상한 듯, 가로등 아래 서서 온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아가 날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아마 이 눈을 뚫고 나에게 내려오겠지.’지아는 욕실 가운을 걸치고 손에 도윤이 보낸 선물을 안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도윤을 내려다보며, 지아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고는,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도윤에게 확인하라고 했다.도윤은 지아의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우리 지아가 날 걱정해 주고 있네.’하지만 그는 핸드폰을 열어보는 순간 미소는 완전히 굳어버렸다.[선물 고마워.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히 가.]도윤은 문자를 확인한 후, 지아가 창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커튼은 단단히 쳐졌고, 지아의 모습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지아가 잠옷 차림으로 폭설을 뚫고 내 품에 뛰어들던 날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지금의 지아는 이미 달라졌고, 나도 더 이상 이 여자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거야.’...지아도 도윤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방금 전, 도윤이 단지 작은 ‘연민 유발’ 정도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는 작은 토끼 인형들을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았다. 비록 선물을 받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도윤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은 지금 이 정도의 거리감이 서로에게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지...’그날 밤, 지아는 푹 자고 일어나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인해 하인들이 정원에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맞았다.“지아 아가씨.” 길을 지나던 고용인들이 지아에게 미소로 인사했다. 많은 이들이 손에 빨간 등롱을 들고 있었다. 곧 설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집안은 이미 설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