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집이 아닌 호텔을 향했다.엘리베이터에 오른 소지아가 물었다.“여긴 왜 온 거야?”도윤이 지아의 코끝을 긁으며 말했다.“그동안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짧았어. 우린 부부였지만 보통의 커플보다도 못한 사이였지. 그러니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나하나 해보고 싶어.”밝은 조명이 도윤을 비추고 부드러운 시선은 지아를 향했다.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도윤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이어 도윤이 허리를 숙이고 지아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100층이 넘는 건물에서 하면 더 짜릿할 것 같지 않아?”“...”‘이런.’도윤은 뻔뻔하게 지아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띵-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지아는 거의 떠밀리듯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방문이 열리고 지아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스위트 룸은 보이는 모든 곳이 장미로 장식되었고 카펫에도 장미꽃이 깔려있었으며 장미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지금...”도윤은 지아를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메이크업 지워. 키스하는 게 바람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지아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지아는 메이크업을 지우고 샤워도 했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드레스로 갈아입었다.도윤이 참 꼼꼼하다고 생각하며 지아는드레스를 입었고, 머리를 예쁘게 땋아 올렸다. 그리고 화장대에 있는 하얀색 베일을 발견했다.‘또 무슨 서프라이즈를 하려는 거야.’문을 열자, 방안의 모든 조명이 꺼졌고 장미꽃 위의 예쁜 별빛이 방안을 채웠다.지아는 어느 구석에서 사람이 뛰쳐나와 컨페티를 터뜨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하지만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도윤은 꽃으로 만든 하트 위로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지아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양팔에 팔짱을 끼고 말했다.“아니, 지금 촌스럽게 프러포즈 같은 걸 하려는 거야?”그 말이 끝나고 도윤은 바로 무릎 한쪽을 꿇고 말했다.“지아야, 우린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고 프러포즈도 하지 못했잖아. 이건 그냥 형식적인 거니
날이 밝기도 전에 도윤의 핸드폰에서 계속 진동이 왔고, 그는 끄고 계속 자려고 했지만 전화를 건 상대가 우서진임을 발견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 분인데?’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도윤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을 한번 쳐다보더니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분이 다쳤어.] 이도윤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언제요? 왜 저는 소식을 받지 못했죠?” [30분 전쯤, 방금 위쪽에서 소식이 왔어.] “빨리 갈게요.” 도윤은 전화를 끊고 품속에서 막 깨어난 지아를 보고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지아야 미안해. 처리할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거 같아.” 지아는 도윤의 신분에는 언제라도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몸을 다시 돌려 잠을 청했다. 그녀의 무심한 모습을 보고 도윤은 헛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내가 이렇게 날이 밝기도 전에 나가려 했다면 지아는 분명 잠을 이루지 못했을 텐데. 아마 바로 일어나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배웅했겠지.’ 도윤은 황급히 떠났고, 지아가 다시 깊은 잠에 빠지려 할 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였지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전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지아는 그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내가 좀 다쳤어.] “어디예요? 제가 금방 갈게요.” 지효는 이미 전효를 친오빠처럼 여겼고 그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 나갔다. ‘오빠가 블랙X에서 도망친 이후로 블랙X가 계속 끈질기게 오빠를 추격했는데, 설마 이번에도 블랙X의 사람들에게 당한 건가?’ ‘하지만 난 이런 소식을 받지 못했는데.’ 그녀가 별장에 도착하자 거실은 마치 살인 사건 현장 같이 온통 핏자국이었다. ‘이건 작은 부상이 아닌 것 같은데?’전효는 카펫 위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 정신력으로 버티며 지아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카펫을 더럽혀서 미
병원에 도착한 도윤은 우서진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박사님, 어떻게 된 거예요?” 우서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최고의 의사들이 모두 총동원됐어. 총알이 각하의 심장 위에 박혀서 위치가 너무 안 좋아. 다행히 제거를 하지 않은 상태에도 호흡에는 문제없지만 만약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수 있어. 각하는 현재 혼수상태고.” “누가 그런 거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일단 각하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야. 방금 하용이도 도착했어.” “각하께서 이런 상황이라면 그가 와도 아무 소용없어요.” 도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긴 하지. 아, 그리고 네게 알려줄 말이 있어. 지금 세상에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이야. 네가 하용이보다 먼저 찾아서 각하를 살려야 해. 그렇게만 된다면 네 선거에 크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야.” “누군데요?” “심외과전문의 장연후!” 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퇴직한 사람 아닌가요? 그 사람을 지금 어떻게 찾아요?” “찾을 수 없어도 찾아. 그것도 이틀 안에 찾아야 해. 각하에게는 기껏해야 이틀의 시간 밖에 없어. 너와 하용의 형세는 지금 막상막하야. 만약 그가 먼저 장연후를 찾아 각하의 지지를 얻는다면 이번 판은 그가 이길 거야.” ‘이틀이라.’ 장연후는 퇴직 후 잠적했고, 도윤이 작년에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었지만 별성과는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잠깐만 보고 바로 갈게요.” 복도에 주저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설아의 옆에는 온화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함께 있었다. “울지 마.” “엄마, 아빠 죽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빠가 왜 죽어? 저렇게 많은 최고 의료 전문가들이 모두 안에서 아빠를 치료하고 있잖아.” 옆에서 하용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설아야 안심해. 각하께서는 그냥 돌아가실 분이 아니야. 이 정도는 반드시 이겨내실 거야. 사모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장 선생님을 꼭 찾을 겁니다
진환의 표정이 밝아졌다. “맞아요, 우리 사모님이 잊었죠. 작년에 사모님이 한 심장 수술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유명하잖아요. 그렇다면 하용이 진작에 장 선생님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우리 쪽에도 승산이 있어요.” “만약 하용이 미리 준비를 했다면, 장 선생님은 지금 분명히 그의 손에 있을 거야.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진 카드를 빨리는 내놓지 않을 거고 아마 내일 아침에야 장 선생님을 데리고 나타나겠지.” “그럼 대표님은 빨리 사모님을 찾아가 보세요. 저희도 서두르겠습니다.” 도윤은 차를 몰고 호텔로 돌아갔는데 이른 시간이라 지아가 아직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룸에 도착하여 보니 룸 안은 텅 비어있었고 지아는 보이지 않았다. 룸 안에는 어젯밤 두 사람이 뒹굴었던 흔적까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상하네.’ ‘지아의 성격이면 떠날 때 자기 옷이 이렇게 바닥에 흐트러지게 그냥 놔둘리는 없고 모두 잘 정리하고 떠났을 텐데.’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 가능성뿐, 매우 급하게 떠날 일이 생겼다는 거지.’ 도윤은 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어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멀쩡하던 지아가 왜 갑자기 떠났지? 그리고 이 번호로는 연락이 된다고 했는데 휴대폰은 왜 꺼져있고?’ 지아의 반감을 사기 원하지 않았던 도윤은 최근 몇 년간의 그녀의 과거와 행적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윤은 지아의 휴대폰이 꺼져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급히 사람을 시켜 CCTV를 확인했는데, 화면에서 지아는 그가 떠난 지 5분 만에 떠났고 매우 급박한 일이 생겼는지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 상태였다. 어젯밤에 진봉을 시켜 지아의 차를 집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에 그녀는 도로로 나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대표님, 사모님이 택시를 타고 떠나신 거 같은데 마침 그곳이 CCTV 사각지대여서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빨리 찾아봐. 장민호 쪽도 살펴보고. 함께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 이 시간에 누구지?’ 지아는 A시에 친구도 없었고 배달이나 택배도 시키지 않았다. 살펴보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도윤이었다. ‘여기를 찾아왔다고? 무슨 비밀경찰이라도 되는 거야?’ “오빠, 도윤 씨가 왔어. 나가 볼게.” “그래.” ‘우리 사이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잖아. 그 일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왔을 리는 없을 테고. 분명히 일이 생긴 거야.’ ‘어쨌든 내게 피해를 줄 사람은 아니니 만나면 찾아온 이유를 알겠지.’ 지아는 문을 열었다. “도윤 씨 왜...”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윤이 지아를 품에 안았고 도윤의 갑작스러운 뜨거운 포옹에 놀란 그녀가 말했다. “왜 그래? 약이라도 잘못 먹은 거야?” “지아, 네가 괜찮으니 다행이야. 휴대폰이 꺼져서 하루 종일 찾았잖아.” 지아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도윤과 연락한 그 휴대폰을 수술할 때 방해받을까 봐 아예 꺼버린 것이 떠올랐다. “저기... 하루 연락이 안 됐을 뿐인데, 그렇다고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녀는 도윤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가볍게 떨리는 몸을 느끼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거두었다. “지야야, 너 환득환실이라는 말 들어봤어? 난 너를 잃은 고통을 맛보았고 오랫동안 너를 찾으면서 더 큰 고통을 견뎠어. 그리고 겨우 너를 찾았지. 지아야,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저 네가 아무 일 없이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야. 오늘 아침에 네가 급하게 호텔을 떠난 것을 보고 네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 약간 감동을 받은 지아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도윤이 자신을 걱정하며 이렇게 겁에 질린 줄 몰랐다. 그녀는 손을 뻗어 도윤의 등을 두드렸다. “걱정 마. 당신 눈에 내가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여?” 당황했던 도윤의 눈빛이 그제야 사라졌다. “내가 백씨 가문에 갔었는데, 그분들이 네가 아픈데도 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지아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어젯밤 네가 너무 흥분해서 나
“응, A시에 있을 때 잠깐 사용하는 집이야.” “아닌데? 딱 보니 임시로 있는 게 아니야. 여기 있는 모든 게 다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가구도 직접 고른 거잖아? 맞지?” 지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역시 도윤이다.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A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야. 나는 이곳에 집을 갖고 싶었어.” 그래서 지아는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의료기기를 구입해 둔 것이다. 도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지아야, 미안해.” 지아는 원래 집이 있었는데 소씨 가문이 파산한 후 집이 저당을 잡히게 되었고 나중에 다시 찾았지만 이미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지아와 도윤의 신혼집도 너무 많은 나쁜 추억을 담고 있었다. 블린시트는 백채원이 살던 곳이었고 예전 아파트는 임선호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집만은 지아가 직접 장만했기에 다른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이 집에 있는 풀과 나무 한 그루 모두 그녀가 직접 구입한 것이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국수 한 그릇 만들어서 갖다 줄게.” 지아는 빠른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도윤의 눈에 식탁 위에 놓인 꽃다발이 들어왔는데 지아는 여전히 신선한 꽃을 좋아하는 거 같았다. 방은 살구색으로 아주 아늑했다. 도윤은 마치 수사자가 자기 구역을 살펴보듯이 집안 이리저리를 둘러보았다. 물 한 잔을 받아 잠시 앉아서 쉬려고 할 때 차 열쇠가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은 몸을 웅크리고 차 열쇠를 줍다가 소파 안쪽에서 검붉은 빛을 언뜻 보게 되었다. 소파가 베이지색이어서 검붉은 색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피다. 그것도 10시간도 지나지 않는 핏자국.’ ‘소파 안쪽에 왜 핏자국이 있는 거지?’ 도윤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바닥을 보았는데 빛이 거의 반사될 정도로 아주 깨끗했다. 그는 방금 들어올 때 본 카펫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카펫 위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그게 소파 안쪽까지 퍼진 거
지아는 사람을 잘 찾아내는 것뿐 아니라 동물적인 육감도 뛰어난 도윤에 대해 그냥 감탄할 수 없었다. “도윤 씨, 나와 당신이 지금 무슨 관계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해도 아니 설사 사람을 숨겼다고 해도 당신이 무슨 권리로 상관할 수 있는데?” 지아의 차가운 반응에 도윤은 옛날일이 떠올랐다. 과거에 지아가 도윤에게 백채원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었을 때 그는 설명하기 귀찮아 비슷한 말을 내뱉었었다. 이제 지아는 같은 방식으로 도윤에게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래, 우리가 무슨 관계지?’ ‘애인이라고도 할 수 없잖아.’ ‘지난밤의 잠자리도 그냥 요구해 의해 이루어진 것뿐이야.’ ‘굳이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적나라하게 진실을 말한다면 나만 손해 일뿐이지.’ ‘내가 지금 누구를 탓해? 예전에 내가 지아에게 이렇게 똑같이 했었잖아? 이게 다 인과응보지.’ 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얼굴을 만졌다. “도윤 씨, 내가 당신의 몸에 관심이 있을 때, 그냥 얌전히 있어.” 마치 도윤의 몸을 감싼 아름다운 독사처럼 지아는 그의 귓가에 말을 토해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언제든지 이 황당한 관계를 끝낼 수 있으니까? 당신은 어때?” 도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을이 되면 갑에게 주도권과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지.’ ‘이런 불공평한 관계를 지아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도윤의 입가에는 어이없는 쓴웃음이 흘렀다. “하지만 지아야. 오늘 밤 너를 찾아온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야. 내가 부탁할 일이 있어.” 지아는 몰을 돌려 식탁에 앉아 뺨에 손을 괴며 말했다. “그 대단하신 이 대표님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나 같은 어린 여자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넌 심장에서 총알을 제거할 수 있잖아.” 지아는 놀라서 그제야 도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가 사고라도 난 거야?” ‘만약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윤 씨가 굳이 내가 부탁까지 하지는 않을 텐데.’ 그 순간 지아는 도윤의 주변 사
이때 지아는 마치 장사꾼처럼 이른바 말하는 선량함을 떠나 오로지 이익과 득실만을 계산했다.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아야, 그건...”몇 명의 아이들이 모두 지아 곁에서 자랐는데 도윤은 그녀와 아이들의 양육권으로 다툰 적이 없었다. 그는 오직 지윤만이 이씨 가문의 모든 책임을 짊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가했다.“난 당신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어. 하지만 지윤이만큼은 안돼. 당신이 그 아이를 아끼는 것은 알아. 하지만 이씨 가문은 나 이후에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해.”“당신이 주지않겠다면 나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도윤은 갑자기 몸을 숙여 지아의 입술을 사납게 깨물며 키스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벌주었다.지아는 이미 도윤과 싸우며 협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도윤는 지아와 다시 불편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진한 키스 후에 지아를 놓아주었다. “알았어. 지아,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을게. 그럼 오늘 내가 한 부탁은 없었던 것으로 해.”그는 뒤로 물러났다. “네 말이 맞아.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그저 당신 곁에 내 자리를 내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기뻐. 어렵게 얻은 이 유일한 기회를 잃고 싶지는 않아.”“오늘 밤 쉬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도윤은 자신의 외투를 들고 떠났다.지아는 배웅하며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픈 보였고 예전의 그 고고함은 온데간데없었다.지아는 순간 이유없이 그녀를 바다에서 끌어올리던 양 팔이 떠올랐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갑자기 없던 정이 생기더니 점점 켜졌다.그 순간 그녀는 이미 마음이 약해져 완전히 진 거나 다름없었다.“저기, 도윤 씨!”도윤은 황급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지아는 문 옆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도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지윤이 양육권은 필요 없어.”지아는 본래 도윤과 다툴 생각은 전혀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