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A시에 있을 때 잠깐 사용하는 집이야.” “아닌데? 딱 보니 임시로 있는 게 아니야. 여기 있는 모든 게 다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가구도 직접 고른 거잖아? 맞지?” 지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역시 도윤이다.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A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야. 나는 이곳에 집을 갖고 싶었어.” 그래서 지아는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의료기기를 구입해 둔 것이다. 도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지아야, 미안해.” 지아는 원래 집이 있었는데 소씨 가문이 파산한 후 집이 저당을 잡히게 되었고 나중에 다시 찾았지만 이미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지아와 도윤의 신혼집도 너무 많은 나쁜 추억을 담고 있었다. 블린시트는 백채원이 살던 곳이었고 예전 아파트는 임선호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집만은 지아가 직접 장만했기에 다른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이 집에 있는 풀과 나무 한 그루 모두 그녀가 직접 구입한 것이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국수 한 그릇 만들어서 갖다 줄게.” 지아는 빠른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도윤의 눈에 식탁 위에 놓인 꽃다발이 들어왔는데 지아는 여전히 신선한 꽃을 좋아하는 거 같았다. 방은 살구색으로 아주 아늑했다. 도윤은 마치 수사자가 자기 구역을 살펴보듯이 집안 이리저리를 둘러보았다. 물 한 잔을 받아 잠시 앉아서 쉬려고 할 때 차 열쇠가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은 몸을 웅크리고 차 열쇠를 줍다가 소파 안쪽에서 검붉은 빛을 언뜻 보게 되었다. 소파가 베이지색이어서 검붉은 색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피다. 그것도 10시간도 지나지 않는 핏자국.’ ‘소파 안쪽에 왜 핏자국이 있는 거지?’ 도윤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바닥을 보았는데 빛이 거의 반사될 정도로 아주 깨끗했다. 그는 방금 들어올 때 본 카펫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카펫 위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그게 소파 안쪽까지 퍼진 거
지아는 사람을 잘 찾아내는 것뿐 아니라 동물적인 육감도 뛰어난 도윤에 대해 그냥 감탄할 수 없었다. “도윤 씨, 나와 당신이 지금 무슨 관계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해도 아니 설사 사람을 숨겼다고 해도 당신이 무슨 권리로 상관할 수 있는데?” 지아의 차가운 반응에 도윤은 옛날일이 떠올랐다. 과거에 지아가 도윤에게 백채원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었을 때 그는 설명하기 귀찮아 비슷한 말을 내뱉었었다. 이제 지아는 같은 방식으로 도윤에게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래, 우리가 무슨 관계지?’ ‘애인이라고도 할 수 없잖아.’ ‘지난밤의 잠자리도 그냥 요구해 의해 이루어진 것뿐이야.’ ‘굳이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적나라하게 진실을 말한다면 나만 손해 일뿐이지.’ ‘내가 지금 누구를 탓해? 예전에 내가 지아에게 이렇게 똑같이 했었잖아? 이게 다 인과응보지.’ 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얼굴을 만졌다. “도윤 씨, 내가 당신의 몸에 관심이 있을 때, 그냥 얌전히 있어.” 마치 도윤의 몸을 감싼 아름다운 독사처럼 지아는 그의 귓가에 말을 토해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언제든지 이 황당한 관계를 끝낼 수 있으니까? 당신은 어때?” 도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을이 되면 갑에게 주도권과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지.’ ‘이런 불공평한 관계를 지아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도윤의 입가에는 어이없는 쓴웃음이 흘렀다. “하지만 지아야. 오늘 밤 너를 찾아온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야. 내가 부탁할 일이 있어.” 지아는 몰을 돌려 식탁에 앉아 뺨에 손을 괴며 말했다. “그 대단하신 이 대표님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나 같은 어린 여자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넌 심장에서 총알을 제거할 수 있잖아.” 지아는 놀라서 그제야 도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가 사고라도 난 거야?” ‘만약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윤 씨가 굳이 내가 부탁까지 하지는 않을 텐데.’ 그 순간 지아는 도윤의 주변 사
이때 지아는 마치 장사꾼처럼 이른바 말하는 선량함을 떠나 오로지 이익과 득실만을 계산했다.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아야, 그건...”몇 명의 아이들이 모두 지아 곁에서 자랐는데 도윤은 그녀와 아이들의 양육권으로 다툰 적이 없었다. 그는 오직 지윤만이 이씨 가문의 모든 책임을 짊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가했다.“난 당신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어. 하지만 지윤이만큼은 안돼. 당신이 그 아이를 아끼는 것은 알아. 하지만 이씨 가문은 나 이후에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해.”“당신이 주지않겠다면 나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도윤은 갑자기 몸을 숙여 지아의 입술을 사납게 깨물며 키스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벌주었다.지아는 이미 도윤과 싸우며 협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도윤는 지아와 다시 불편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진한 키스 후에 지아를 놓아주었다. “알았어. 지아,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을게. 그럼 오늘 내가 한 부탁은 없었던 것으로 해.”그는 뒤로 물러났다. “네 말이 맞아.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그저 당신 곁에 내 자리를 내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기뻐. 어렵게 얻은 이 유일한 기회를 잃고 싶지는 않아.”“오늘 밤 쉬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도윤은 자신의 외투를 들고 떠났다.지아는 배웅하며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픈 보였고 예전의 그 고고함은 온데간데없었다.지아는 순간 이유없이 그녀를 바다에서 끌어올리던 양 팔이 떠올랐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갑자기 없던 정이 생기더니 점점 켜졌다.그 순간 그녀는 이미 마음이 약해져 완전히 진 거나 다름없었다.“저기, 도윤 씨!”도윤은 황급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지아는 문 옆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도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지윤이 양육권은 필요 없어.”지아는 본래 도윤과 다툴 생각은 전혀 없었
지난번과 달리 아직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입구에는 경호원, 의사, 눈시울이 붉어진 설아 등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아는 우서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아저씨, 이 의사가 정말 아버지를 구할 수 있나요?” 지아는 도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저 여자도 여기 있어?” 도윤이 설명했다. “이름은 부설아야.” “제발 당신이 말하던 그분이 저 여자 아버지라고는 하지 마.” 도윤은 난감한 듯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그게 얘기하자면 길어. 네 짐작 대로 설아는 확실히 각하의 딸이 맞고 각하는 나의 은사이기도 해.” 지아가 차갑게 말했다. “아주 좋은 소꿉친구 납셨네.” 도윤은 이런 개인적인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조금 난처했다. 그때 누군가가 차문을 열었다. 설아가 재빨리 달려왔다. “의사 선생님...” 설아는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네사인 것을 보고는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녀는 녹색 눈동자의 한 소녀가 자신을 죽일 듯이 쳐다보던 무서운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천사처럼 착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악마가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괴물을 낳은 여자라면 좋은 사람 일리 없잖아!’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여기는 또 뭐 하러 왔죠?” 반면 우서진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자식, 그래도 네가 방법을 찾았구나. 바네사를 모셔오다니!” 원래 우서진이 처음 염두에 둔 인물은 바로 지아였다. 단지 마을에 연락이 되지 않았고 설사 자신이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그녀가 정말 올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지아는 사라진 상태라 그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윤이 뜻밖에도 지아를 데려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서진은 설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설아야, 괜히 무례하게 굴지 마. 이분은 정말 최고의 심외과의사야. 이제 선생님이 오셨으니 각하도 살 수 있게 됐어.” 설아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육감은 마을에서 처음 지아를 본 이
지아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네, 전 못 하겠어요.”우서진도 전에 있었던 일로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말했다.“아이고 두 사람도 참, 설아야 넌 옆으로 가 있어. 넌 바네사에 대해 몰라. 작년에 했던 수술이 오늘보다 더 어려웠어. 그때는 심장에서 총알을 빼내는 거였는데 그 사람 결국 살았어.”“웃기네, 총알이 심장에 박혔는데 어떻게 살아요?”지아는 비웃었다.“서로 전문 분야가 다른데 그쪽한테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해요?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는 있고? 선생님, 이곳에서 절 반기지 않는다면 하겠다는 사람한테 맡기세요. 전 안 할 거예요.”“그러지 말고 여기까지 왔는데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보는 게 어때요?”“그래요.”지아는 우서진을 따라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오기 전에 이미 모든 검사 결과를 살펴본 그녀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실에 들어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보았다.뉴스에서 늘 보던 남자가 지금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미셸과 제법 닮았는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에 미셸이 그토록 오만한 것도 당연했다.“언제 다쳤어요?”“새벽 5시 30분요.”그 말에 전효가 다친 것도 그때였기에 지아의 눈이 번뜩이며 머릿속에는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설마 부남진을 죽이려 했던 게 전효였을까?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지아는 자신이 이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전효가 자신과 상대의 목숨을 바꿨는데 도윤을 위해 그를 살리는 데 동의하다니.“왜 그래요, 힘든가요?”지아의 얼굴은 여전히 침착했다.“상황은 알겠고 나가서 얘기하죠.”지아는 전효가 죽이고자 하는 적이 이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밖으로 나오자마자 도윤이 다가왔다.“어때?”지아가 둘러댈 말을 생각하던 중 복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달려왔고 상대는 다름 아닌 하용이었다.하용의 곁에는 개량 한복을 입고 안경을 쓴 백발의 노인이 동행하고 있었다.지아가 알기로 그는 유명한 심장
하용은 젠틀한 척 보여도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몇 년 전 눈 내리는 밤, 상대가 비록 도윤을 노리긴 했어도 도윤이 온몸을 던져 지아를 지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작 죽은 시체가 됐을 것이다.이 모든 일의 주범은 하용이고, 지아는 단 하루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하지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하용과 달리 지아는 정체를 숨겨야 했다.미셸이 서둘러 말을 꺼냈다.“오빠, 저 여자 막아야 해. 선생님도 뭐에 홀린 것 같아. 아빠 목숨이 위태로운데 저 어린 여자가 무슨 경험이 있겠어? 우리 아빠를 실험용 쥐로 취급하는데 자칫하면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설아야, 진정해.”하용은 미셸을 진정시키고 민연주를 돌아보았다.“사모님, 설아 말도 일리가 있어요. 이 아가씨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도 젊은데 어떻게 경험 많은 장 교수님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민연주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도윤이 넌 늘 진중하니까 네 생각에는...”도윤은 긴 말 대신 딱 한 마디 했다. “전 이 사람 믿습니다.”지아는 속으로 믿지 말라고 되뇌었다. 정말 전효가 죽이고 싶었던 게 이 사람이라면 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상했다. 총알이 조금만 비껴갔으면 부남진은 바로 죽을 수 있었는데 전효가 거리를 잘못 계산한 걸까?하지만 잘 보이기 급급한 하용의 모습을 보며 지아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모든 게 전효가 일부러 꾸민 것 같았다.전효의 목적은 살인이 아니라 하용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왜 하필 다친 부분이 심장이며, 하용이 장연후를 미리 찾아냈겠나.진실은 오리무중인데 외부인인 지아가 어떻게 알까.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우서진도 장담하듯 말했다.“이 여자가 나이는 어려도 정말 대단해. 이 사람 아니었으면 도윤이는 진작 죽었을 거야. 작년에 했던 수술도 아주 완벽했어. 장 교수가 경험이 많긴 해도 젊은 사람들한테 기회를 줘야지.”장연후는 하용과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당장에 반박했다.“우 교수, 자네 체면을
윤공훈이 성큼성큼 지아에게 다가왔다.“그쪽이 바네사죠? 우 교수한테 얘기 들었어요.”지아는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며 남들에게 들킬까 봐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썼다.“안녕하세요. 윤 교수님, 바네사라고 합니다.”“그 유명한 바네사가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네요. 이 수술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지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미셸이 외쳤다.“윤 선생님, 저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수술해요? 장 교수님만큼 나이도 많지 않고 경험도 없는데 우리 아빠가 죽으면 누가 책임져요!”“얘야, 바네사가 수술하는 영상 봤어. 나이가 어려도 침착하고 손놀림이 빨라. 장 교수는 나이도 들고 젊은 사람들처럼 빠르게 반응하지 못해, 그리고...”윤공훈은 장연후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수술할 수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윤 선생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우 선생님과 두 분이 장 교수님을 포기하고 이 정체불명의 의사를 감싸는데 각하께서 정말 수술 과정에 큰일이라도 나시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하용이 다그쳤다.“수술은 원래 100% 장담할 수 없는 것인데 저렇게 어린 의사면 더 그렇죠.”도윤이 반박하려 하자 지아가 몰래 손바닥을 긁으며 말렸다.“됐어요, 다들 그만 다퉈요. 나도 중요한 일인 만큼 장 교수가 집도하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민연주가 결단을 내리자 미셸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럼 더 늦기 전에 미루지 말죠, 아빠가 혹시라도...”우서진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윤공훈은 걱정이 가득했다.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는 장연후에게 몰래 물었다.“장 교수, 솔직히 말해봐. 손은 좀 어때?”두 사람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최고의 의사였고, 10년 전 장연후는 갑자기 병을 앓으며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던 적이 있었다.때마침 윤공훈이 함께 수술하며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 후로 장연후는 드물게 수술을 진행했고 병원에 재취업하는 것을 거부하며 정년퇴직했다.윤공훈은 지난 몇 년 동안 다시는 장연
지아는 받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상관없어요. 위험이 큰 수술이라 잘하면 유명해지겠지만 여차하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죠. 이도윤 씨만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 저한테는 아무 영향도 없지만 장연후 씨가 실패하면 당신들한테 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무슨 소리야! 감히 우리 아빠를 저주해?”상대가 누구 딸이든 상관없다. 법과 질서가 있는 이 사회에서 말 한마디 했다고 죽이기야 하겠나.“미셸 씨, 저는 진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진심으로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고 나중에 저한테 부탁할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도윤 씨가 절 데려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미셸이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민연주가 입을 막았다.“그만하지 못해? 너랑 저 여자 신분이 같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엄마, 저 오만하게 구는 게 싫어요. 의사가 얼마나 많은데 제까짓 게 뭐라고, 저 여자는 괴물을 낳은 요물이라고요!”민연주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됐어, 너랑 장난칠 기분 아니야. 네 아빠는 아직 병원 침대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고 네 오빠는 밖에서 상황을 안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얌전히 있어, 성가시게 굴지 말고.”“네, 엄마.”하용도 지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는데 지아가 먼저 차에 올라타자 하용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도윤을 바라보았다.“이번엔 네가 질 거야.”“그래.” 도윤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99번을 이겨도 이번 한 번 지는 걸로 충분해. A시 하늘이 바뀔 때도 됐지.”도윤이 눈을 흘겼다.“밤새우지 말고 일찍 집에 가서 잠이나 자. 꿈속엔 뭐든 다 있으니까.”그렇게 말한 뒤 차에 올라타 문을 닫고는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지아를 품에 안고 대형견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지아야, 고생시켜서 미안해.”지아는 미소를 지었다.“당신 부탁만 아니었으면 수술하고 싶지 않았어. 도와주지 않았다고 화 난 건 아니지?”“저 자식 한 번 이기게 해 주지 뭐.” 도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