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속도를 다그쳤다. 뱀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안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도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었다.뱀굴에 빠지면 분명 뱀에게 잡아먹혀 죽을 것이 분명했다.그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비릿한 뱀 냄새와 함께 찬바람이 불자 지아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지아는 마치 사냥하는 맹수처럼 최대한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지나가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지아는 겁에 질렸다.쿵 소리와 함께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닥에 쓰러졌고, 경훈은 서둘러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괜찮아요?”그런데 지아의 온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빨리 가요! 바로 앞에 뱀굴이 있어요!”지아는 까진 무릎도 개의치 않고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뛰어갔다.이 순간 지아에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도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절대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온 힘을 다해 달려갔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뱀굴로 뛰어드는 도윤의 모습만 보였다.수천 마리의 독사들 속에서 지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살려줘요, 살려줘요...”도윤이 목숨도 뒤로한 채 죽기 살기로 달리며 뱀굴에 뛰어든 이유였다.이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안 돼!”지아의 처절한 목소리도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고 도윤의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단지 앞을 보지 못할 뿐 바보가 아닌데, 분명 눈앞에 뭐가 있는지 알 텐데도 도윤은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들었다.지아도 이성을 잃고 도윤을 쫓아가려 했지만 주원이 그녀를 붙잡아 품에 꽉 가둔 채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늦었어, 이제 다 끝났어.”지아는 그제야 소름 끼치는 소년이 절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배에서 일부러 약을 먹고도 순진한 척, 좋은 사람인 척 자신의 곁에 있었고, 나중에는 그녀의 아이까지 없애려고 했다.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주원이었기에 잊으려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진 게 없었다.오직 자기밖에 몰
“보스, 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요.”“물러서, 명령이야! 가만히 서 있어!”경훈은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많은 형제들이 전장에서 죽는 걸 보면서 생사에 무뎌진 지 오래였다.당시 미연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미 망가진 다리를 최선을 다해 재활하면서 도윤의 곁을 지키려 했다.하지만 결국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비 내리던 밤 미연이 누군가의 총에 맞아 무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때처럼.지아는 주원이 방심한 틈을 타 그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경훈을 가로질러 뱀굴을 향해 달려갔다.이성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지금 지아의 눈앞에는 자신을 바다에서 안아 올리던 젊은 소령이, 교통사고 당시 유리 파편을 막기 위해 앞을 가로막던 전남편이, 겨우 녹음된 목소리에 망설임 없이 뱀굴에 뛰어든 멍청이만 보였다.개자식, 나한테 빚진 게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죽어, 네가 어떻게!지아가 두말없이 뱀굴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주원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깨달았다.오랜 세월이 지나도 도윤을 향한 지아의 마음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주원은 바닥에 누워 망설임 없이 도윤을 향해 달려가는 지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년을 더 기다려도 지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 같았다.지아 누나,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날 쳐다보지 않는 거야?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매화나무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던 어린 소녀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때만 해도 소녀의 눈은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지아에는 뱀을 쫓는 가루를 뿌리지 않아 그곳에 내려가면 죽는 거나 다름없었다.이 또한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갑자기 귓가에 피리 소리가 울리고, 소리와 함께 붉은 뱀이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뱀굴을 덮쳐들자 순식간에 도윤의 몸과 주변에 있던 뱀들이 파도에 휩쓸리듯 사라져 버렸다.붉은 뱀은 지아를 위해 길을 터주며 어떤 뱀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뱀 동굴은
도윤은 괜히 지아를 놀라게 해 꿈처럼 사라질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아는 손을 뻗어 주먹으로 도윤의 가슴을 때렸다.“나쁜 놈, 여기가 어딘지나 알아?”도윤은 겨우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지아의 손을 잡았다.“지아야, 여긴 뱀이 많으니까 빨리 나가. 얼른 여길 떠나.”경훈은 도윤이 왜 낯선 이를 껴안고 지아의 이름을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보스, 뱀들은 다 쫓겨났으니 이제 안전해요.”달빛 아래 무무는 사슴의 등에 올라타 피리를 손에 들고 숲속을 달리는 요정처럼 멋진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지아와 도윤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마음도 온기가 느껴졌다.엄마는 아빠를 포기하지 않았다.힐끗 주원을 돌아보자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도윤은 지아에게 뺨을 맞았지만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지아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던 도윤은 아이처럼 행복해했다.“지아야, 정말 널 찾았어. 넌 계속 내 곁에 있었어.”도윤은 손을 뻗어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감정을 가라앉힌 지아도 도윤을 밀어내며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안 죽었으면 얼른 돌아가 잠이나 자.”지아의 심장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늘 밤에도 몇 번이나 바닥을 쳤다가 다시 올라왔다가 오르락내리락했다.상황이 마무리되자 감정을 추스르고 집 나갔던 이성도 다시 돌아왔다.지아가 앞장서 걸어가자 경훈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사모님, 오랜만이네요.”지아는 경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여전히 바보 같네요.”경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모님은 온화한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때다 싶게 인신공격을 하며 평생 혼자 살라는 저주까지 퍼부었다.“아.”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는 경훈을 보며 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저 사람 다시 데려가요.”더 이상 죽든지
문밖으로 나오자 지아는 뒤에 서 있던 무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아가, 잘했어. 엄마가 잘 치료해 줄 거야.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지아는 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만약 도윤이 무무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무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스러웠다.과거 도윤의 차가운 얼굴과 함께 배신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자신과 강욱을 용서했다고 해도 그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무무의 존재는 항상 마음속 가시처럼 도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것이다.지아가 도착했을 때 도윤은 이미 옷을 다 벗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지아라는 것을 안 경훈은 눈치껏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나며 두 사람만 남겨두었다.도윤은 지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입술만 축였다.전에는 지아를 알아보고도 말할 수 없어 참느라 괴로웠는데 드디어 다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지아야, 난...”지아의 손가락이 도윤의 입술에 더 닿았다.“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이름을 감춘 건 당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지금의 이 균형을 깨뜨리지 마.”마지막 한 마디가 도윤의 모든 말을 삼키게 했고 도윤은 다소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균형?”지아는 차갑게 말했다.“난 의사고 당신은 환자일 뿐이야, 그게 다야.”지아는 그렇게 두 사람의 모든 과거를 일축해 버렸다.“오늘 밤 일은 내가 동생 대신 사과할게. 당신도 무사하니까 내가 구해준 걸로 퉁 쳐.”“그러니까 너한텐 나보다 주원이 더 중요한 거야?”불쑥 튀어나온 도윤의 말에 지아는 무언가 눈치챈 듯 그를 돌아보았다.“주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건가?어쩌면 주원이 일부러 덫을 놓은 것도 이미 눈치챈 걸지도 몰랐다.도윤은 그런 지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얼른 부인했다.“아니, 널
도윤의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약탕에서 몸을 담그자 모든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고 지아는 약을 발라 소독을 했다.옥 같은 피부는 온전한 곳 없이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상처가 있었다.도윤은 지아를 화나게 할까 봐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만약 처음부터 작정하고 꾸민 자신의 계략에 빠졌단 걸 알면 지아는 너무 화가 나서 밤중이라도 도망쳤을 거다.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아냈다. 지아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달려온 순간 도윤은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확신했다.지아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과거가 여전히 걸림돌이 되었지만 아무리 큰 구멍이라도 지아 앞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꾹꾹 채워야만 했다.긴 과정이 필요하니 서두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지아도 상처를 치료할 때 조금 겁이 났다. 녹음된 소리를 따라 달려갔는데 만약 무무의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백골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지아는 도윤과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마을 북쪽은 절벽이고 남쪽은 뱀굴이야. 세균뿐만 아니라 독극물도 득실거려. 안전한 곳은 마을뿐이야.”“네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안 그럴게.”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도윤의 태도에 지아는 전에 진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과 닮은 여자에게 손을 댈 수 없어서 다쳤다고 했다.그런 저급한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는 게 놀라웠다.“도윤 씨.”지아가 갑자기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나 여기 있어, 지아야.”“난 그동안 공부도 많이 했고 날 지킬 능력도 생겼어. 이름도 감추고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건 아무도 몰라. 앞으로 내 걱정은 하지 마. 매번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어.”다른 사람들이 도윤의 약점을 알면 분명 같은 수법을 반복할 것이다.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 해도 결국엔 서로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알겠어.”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지아는 도윤에게 약을 발라주었다.둘 다 각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지아는 무무에 대해 물을까 경
소지아가 위암을 확진한 날, 이도윤은 그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숄더백 어깨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의 표정이 무척 심각했다."선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 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내가 바로 입원시켜 줄게.""아니요, 난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딜 수 없을 거예요."임건우는 또 몇 마디 더 말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소씨네 가문이 파산해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해야 했고 이제 또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알려주는 것은 틀림없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임건우는 어쩔 수 없어 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생,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이 화제를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녀가 대학을 휴학하고 시집갔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 의과 천재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가 치료를 받는 이 2년 동안, 오직 소지아 만이 바쁘게 그를 돌보았는데, 그녀 자신이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남편은 그림자조차 보
어두컴컴한 밤, 그녀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뜨거운 물은 그녀의 추위를 씻어냈고, 그녀는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한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늑한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방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그녀가 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의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렸다. 방의 등불은 무척 따스한 불빛이었고, 분명히 아름다운 화면이었지만 소지아는 눈물을 멈출 수 없이 줄줄 흘렸다.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받아야할 벌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잘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하느님은 그녀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다.소지아는 1.2미터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자신의 온몸을 웅크렸고, 왼쪽 눈의 눈물은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몸 아래의 담요를 촉촉하게 적셨다.그녀는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모두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 두려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죽은 후, 그녀의 정신은 줄곧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 어두운 야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 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은 아침을 먹었는데,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녀도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하여 이미 수술실로 들어갔어요.”"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지아는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이다.이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비용 명세서를 그녀에게 건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 백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그녀의 목에 있는 숄만 해도 수백만 원 했고, 점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았어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써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그녀를 무척 총애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명실상부한 아내라는 것을 몰랐다.소지아는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왜 하필 가장 낭패할 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은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적지 않은 손실을 볼 거 같은데요."소지아는 손을 뻗어 반지를 빼앗아왔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난 이 반지를 매우 좋아하는데, 우리가 아는 것을 봐서,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부족하지 않나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부족했다. 그것도 엄청.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은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어렵게 아가씨의 반지가 마음에 든 이상, 기필코 아가씨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우리 쪽의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무척 귀에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절대로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그녀가 이런 마음 먹지 못하게 했다.겨우 1년이라는 시간에, 사람들은 이미 백채원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소지아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