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괜히 지아를 놀라게 해 꿈처럼 사라질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아는 손을 뻗어 주먹으로 도윤의 가슴을 때렸다.“나쁜 놈, 여기가 어딘지나 알아?”도윤은 겨우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지아의 손을 잡았다.“지아야, 여긴 뱀이 많으니까 빨리 나가. 얼른 여길 떠나.”경훈은 도윤이 왜 낯선 이를 껴안고 지아의 이름을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보스, 뱀들은 다 쫓겨났으니 이제 안전해요.”달빛 아래 무무는 사슴의 등에 올라타 피리를 손에 들고 숲속을 달리는 요정처럼 멋진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지아와 도윤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마음도 온기가 느껴졌다.엄마는 아빠를 포기하지 않았다.힐끗 주원을 돌아보자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도윤은 지아에게 뺨을 맞았지만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지아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던 도윤은 아이처럼 행복해했다.“지아야, 정말 널 찾았어. 넌 계속 내 곁에 있었어.”도윤은 손을 뻗어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감정을 가라앉힌 지아도 도윤을 밀어내며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안 죽었으면 얼른 돌아가 잠이나 자.”지아의 심장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늘 밤에도 몇 번이나 바닥을 쳤다가 다시 올라왔다가 오르락내리락했다.상황이 마무리되자 감정을 추스르고 집 나갔던 이성도 다시 돌아왔다.지아가 앞장서 걸어가자 경훈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사모님, 오랜만이네요.”지아는 경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여전히 바보 같네요.”경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모님은 온화한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때다 싶게 인신공격을 하며 평생 혼자 살라는 저주까지 퍼부었다.“아.”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는 경훈을 보며 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저 사람 다시 데려가요.”더 이상 죽든지
문밖으로 나오자 지아는 뒤에 서 있던 무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아가, 잘했어. 엄마가 잘 치료해 줄 거야.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지아는 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만약 도윤이 무무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무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스러웠다.과거 도윤의 차가운 얼굴과 함께 배신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자신과 강욱을 용서했다고 해도 그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무무의 존재는 항상 마음속 가시처럼 도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것이다.지아가 도착했을 때 도윤은 이미 옷을 다 벗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지아라는 것을 안 경훈은 눈치껏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나며 두 사람만 남겨두었다.도윤은 지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입술만 축였다.전에는 지아를 알아보고도 말할 수 없어 참느라 괴로웠는데 드디어 다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지아야, 난...”지아의 손가락이 도윤의 입술에 더 닿았다.“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이름을 감춘 건 당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지금의 이 균형을 깨뜨리지 마.”마지막 한 마디가 도윤의 모든 말을 삼키게 했고 도윤은 다소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균형?”지아는 차갑게 말했다.“난 의사고 당신은 환자일 뿐이야, 그게 다야.”지아는 그렇게 두 사람의 모든 과거를 일축해 버렸다.“오늘 밤 일은 내가 동생 대신 사과할게. 당신도 무사하니까 내가 구해준 걸로 퉁 쳐.”“그러니까 너한텐 나보다 주원이 더 중요한 거야?”불쑥 튀어나온 도윤의 말에 지아는 무언가 눈치챈 듯 그를 돌아보았다.“주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건가?어쩌면 주원이 일부러 덫을 놓은 것도 이미 눈치챈 걸지도 몰랐다.도윤은 그런 지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얼른 부인했다.“아니, 널
도윤의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약탕에서 몸을 담그자 모든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고 지아는 약을 발라 소독을 했다.옥 같은 피부는 온전한 곳 없이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상처가 있었다.도윤은 지아를 화나게 할까 봐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만약 처음부터 작정하고 꾸민 자신의 계략에 빠졌단 걸 알면 지아는 너무 화가 나서 밤중이라도 도망쳤을 거다.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아냈다. 지아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달려온 순간 도윤은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확신했다.지아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과거가 여전히 걸림돌이 되었지만 아무리 큰 구멍이라도 지아 앞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꾹꾹 채워야만 했다.긴 과정이 필요하니 서두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지아도 상처를 치료할 때 조금 겁이 났다. 녹음된 소리를 따라 달려갔는데 만약 무무의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백골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지아는 도윤과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마을 북쪽은 절벽이고 남쪽은 뱀굴이야. 세균뿐만 아니라 독극물도 득실거려. 안전한 곳은 마을뿐이야.”“네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안 그럴게.”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도윤의 태도에 지아는 전에 진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과 닮은 여자에게 손을 댈 수 없어서 다쳤다고 했다.그런 저급한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는 게 놀라웠다.“도윤 씨.”지아가 갑자기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나 여기 있어, 지아야.”“난 그동안 공부도 많이 했고 날 지킬 능력도 생겼어. 이름도 감추고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건 아무도 몰라. 앞으로 내 걱정은 하지 마. 매번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어.”다른 사람들이 도윤의 약점을 알면 분명 같은 수법을 반복할 것이다.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 해도 결국엔 서로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알겠어.”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지아는 도윤에게 약을 발라주었다.둘 다 각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지아는 무무에 대해 물을까 경
그러다 발을 헛디뎌 첨벙 소리와 함께 지아의 얼굴에 물보라가 튀었다.“누구야?”지아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자로 뻗어있는 도윤을 발견했다.지아는 그를 놀리고 싶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도윤은 당황한 얼굴로 물속을 더듬으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지아야, 어디 있어? 괜찮아?”그렇게 불쌍한 도윤을 보니 갑자기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도윤 씨, 난 괜찮아.”지아의 목소리를 들은 도윤은 급히 물속을 헤엄쳐 그녀에게 다가가 단숨에 품에 끌어안고 횡설수설했다.“지아야, 어디 있었어? 날 놀라게 하지 마, 힘들게 찾았는데.”동굴 안에는 지아가 가져온, 그리 밝지 않은 빛을 내는 작은 태양열 램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저 하늘에서 비추는 달빛만 있었다.지아는 걱정으로 가득 찬 도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순간의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순간 목이 메었다.그토록 고고하고 강인했던 도윤이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자 지아는 꿈을 꾸는 듯 어색했다.“지아야, 왜 말을 안 해? 무슨 일인데? 나 앞이 안 보여, 놀라게 하지 마.”도윤은 짜증이 나서 감고 있던 눈의 붕대를 잡아당겼다.“난 왜 앞이 안 보이는 거야. 지아야, 뭐라고 말 좀 해봐...”지아는 도윤을 밀어내고 차분하게 말했다.“도윤 씨, 무슨 일이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돌에 부딪혀 상처가 난 도윤의 손바닥을 지아가 붕대를 감아주었는데 조금 전 힘을 준 탓에 상처가 찢기며 새빨간 피가 물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거즈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온몸이 흠뻑 젖은 도윤의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한 방울씩 흘러내려 눈앞의 물 위로 떨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도윤 씨, 이럴 필요 없어.”도윤은 개의치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네가 괜찮기만 하면 난 괜찮아.”지아의 마음은 폭우가 쏟아진 듯 축축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어떤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와 걷잡을 수 없이 휩싸여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괜히 짜증이 난 지아가 도윤을 밀
물에 젖은 두 사람이 한데 얽혔고 도윤은 엉망진창이 된 채 일어나려고 허둥대다가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원래는 침착하고 자제력이 뛰어난 남자였지만, 지아만 보면 침착함이나 자제력이 모두 사라졌다.조심하면 할수록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움직이지 마, 내가 할게.”지아는 힘없이 말했다.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어떻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괜히 도윤이 상황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까 일단 그를 다독인 뒤 지아는 깨끗한 옷을 그의 손에 건넸다.“여기 옷과 바지야. 알아서 갈아입을 수 있지?”“응, 그런데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야?”“됐어, 내가 할게.”어차피 남자의 몸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지아는 체념하고 손가락으로 허리에 묶인 끈을 잡아당겨 가운을 벗겼다.남자의 탄탄한 등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3년 전 지아를 구하느라 남은 흉터였다.지금도 지아는 그때의 처참한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벌써 이렇게 지났다니, 시간이 참 무섭다.지아는 깨끗한 수건으로 도윤의 얼굴과 몸에 묻은 물기를 부드럽게 닦아주었고, 도윤은 얌전한 대형견처럼 그녀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전에는 이럴 때가 있었나?도윤은 워낙 강한 남자였고,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데 익숙했다.과거 도윤과 만날 때 그는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숨겼고, 지아는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를 전혀 몰랐다.살결이 부딪힐 때에야만이 비로소 도윤의 존재를 살짝 느낄 수 있었다.도윤이 자신의 마음을 전부 꺼내 지아에게 보여주어도 보는 척도 하지 않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지난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턱에는 수염이 두툼하게 자랐고 머리카락도 조금 더 길어졌다.게다가 중독된 탓에 사람이 무척 초췌해졌다.도윤은 눈을 가린 붕대를 뜯어내자 지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지금 지아의 시선도 하늘의 달빛처럼 부드러운지 궁금했다.
도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아의 몸에 밀착하고 다시는 헤어지지 못하게 영혼 깊은 곳에 새길 기세로 그녀를 몇 번이고 품에 끌어안았다.전에는 지아에게서 그런 약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가 느껴졌다.게다가 지금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몸의 모든 감각이 증폭되었다.원래는 적당히 가볍게 입만 맞추려 했는데, 홍수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손가락이 지아의 머리 뒤쪽 비녀에 닿아 부드럽게 당겨졌고 풍성한 머릿결이 쏟아지며 그의 손가락을 휩쓸고 지나갔다. 부드럽고 가벼운 그것은 은은한 향기까지 풍겼다.적당히 흘러가는 분위기에 지아도 거절하는 것을 잊은 듯했다.도윤의 손은 점점 더 거침없어졌고 아이를 하나 더 낳은 탓인지 지아는 예전보다 몸매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지아는 앞가슴이 서늘해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 개자식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자신은 악마에게 홀린 듯 그의 손에 휘둘리고 있었다.이성이 돌아온 지아는 도윤을 밀어내며 말했다.“선 넘지 마!”도윤도 그제야 꿈에서 깨어나며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상기했다. 자칫 이 작은 새가 놀라서 도망이라도 가면 또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우연한 사건으로 지아의 마음속에 아직 자신이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충분했다.도윤은 어린 시절 좋아하는 무언가를 사기 위해 힘들게 한 푼 두 푼 모으며, 이따금 유리창 앞에 엎드려 기쁨과 동경이 가득한 채 물건을 집에 가져갈 때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는 지아를 놓아주었다.“미안해, 지아야, 너만 보면 나도 모르게 그만.”지아는 매섭게 말했다.“한 번만 더 손대면 경훈 씨한테 맡길 거야.”도윤은 곧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안돼, 경훈이는 너무 딱딱해서 사람을 잘 돌보지 못해.”“그럼 얌전히 있어.”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얌전히 있을게.”혀를 내미는 대형견 사모예드처럼 아무런 공격력이 없었다
아니, 이 개자식이 아예 다른 사람이 됐네?이게 정말 예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캐릭터가 전혀 다른데.하지만 아내에 비하면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도망간 마당에 무슨 품위가 필요하겠나.지아의 대답을 듣지 못한 도윤은 곧바로 다시 말을 돌렸다.“미안, 너무 무례한 부탁이지. 못 들은 걸로 하고 얼른 쉬어. 난 혼자서도 괜찮아.”지아는 도윤이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단 걸 알았지만 눈이 멀고 독에 걸리고 뱀굴에 빠진 건 전부 사실이었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결국 체념한 듯 이불과 담요를 끌어안고 도윤의 옆자리에 다가가 자리를 폈다.“내가 왔으니까 이제 자도 돼.”“고마워, 지아야.”잠시 후 지아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옆 사람에게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오지 마.”지아는 눈을 떴다.“왜 그래?”그 순간 남자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고, 지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지아가 화를 내기도 전에 도윤이 먼저 말했다.“지아야, 뱀, 뱀이 너무 많아.”그 말이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는 비가 되어 지아는 꾹 참고 말했다.“다 지나갔어, 괜찮아.”“하지만 뱀이 기어 오던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어... 지아야, 나 좀 안아주면 안 돼? 네가 안아주면 너만 생각할 테니까.”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일부러 그러는 거지?”도윤은 천진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나 무서워.”지아는 의심스러웠지만 도윤이 계속 이렇게 뒤척이면 자신도 잠을 제대로 못 잘 것 같아 조금 더 다가온 뒤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고 손을 등에 올려놓았다.“이제 됐지?”“응.”‘너무 좋지.’지아는 도저히 도윤과 실랑이할 힘이 없어 웅얼거리며 말했다.“빨리 자.”지아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익숙한 품이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주었다.도윤은 품에 안긴 여자의 호흡이 평온해지자 입꼬리가 미치도록 올라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뱀을 무서워해?허, 죽음도 무섭지 않은데 그딴 걸 무서워할 리가.처음부터 끝까지 도윤이
그날 밤 도윤은 잠을 전혀 이룰 수 없었다.지아를 안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알기에 도윤은 당연히 보물을 놓을 수 없었다.지아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두 팔을 감싸안았고, 그의 눈에는 깊은 사랑이 가득했다.지아는 날이 밝을 때까지 푹 잠을 잤다.눈을 뜨자 초점 없는 도윤의 눈을 마주한 지아는 바로 깜짝 놀랐다.“밤새운 거야?”도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뱀만 생각하면 무서워서. 그리고 네가 나한테 꽉 매달리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지아가 시선을 내리자 문어처럼 두 손과 두 발로 그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서둘러 도윤을 밀어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일부러 그런 거라도 괜찮아.”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지아를 바라보았다.“난 상관없어.”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눈앞에서 흔들었고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도윤은 어젯밤보다 눈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지아의 이목구비 위치가 어렴풋이 보였고, 여전히 흐릿했지만 시력이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이제 좀 쉬어도 돼. 날이 밝으면 위험한 것도, 뱀도 없으니까.”“지아야, 나 배고파.”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알았어, 아침 만들어줄게.”제대로 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해 이 나이 먹고 어린이로 살 생각인지.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애지중지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지아는 간과했다.척박하던 마을에 지아가 와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농사와 축산 기술을 가르쳐서 지금은 매우 잘살게 되었다.처음 며칠 동안은 죽이나 과일만 먹다가 이제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자 도윤이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지아는 좁쌀 한 줌으로 죽을 만들고, 밭에서 갓 딴 옥수수를 갈아 전을 부친 다음, 직접 담근 작은 장아찌를 잘게 썰었다.이런 건 도윤이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들이었다.“지아야, 요리 실력이 늘었네.”“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