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서로 사랑할 때 자주 손을 맞잡았었다. 사람의 외모도 가리고, 분위기도 바뀌고, 하다못해 눈빛도 연습하면 감출 수 있지만 유독 손의 크기만은 바꿀 수 없다.그렇게 수없이 잡았던 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지아의 작은 손은 도윤의 큰 손바닥 안에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았다.다만 손바닥이 예전처럼 평평하지 않고 굳은살이 박인 걸 보아 편히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지아가 격하게 손을 뿌리치자 도윤의 얼굴에 죄책감이 번쩍 떠올랐다.“미안해요, 전 부인이 생각나서 당신한테 무례한 행동을 했네요.”지아는 도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색에 별다른 변화가 없고 눈동자도 초점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괜한 생각이겠지.“괜찮아요.”“전 왜 이런 겁니까?”“아마 약이 너무 독해서 부작용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늘부터 복용량을 줄이고 다른 약을 몇 가지 더 만들어 줄게요. 뒷산 샘터에 가서 자주 몸을 담그면 좋을 거예요. 우선 약식을 만들어 줄 테니까 그거 먹고 잠시 후에 다시 맥을 재 보죠.”“감사합니다.”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도윤은 한눈에 봐도 무척 약해 보였다.지아는 얼른 뒷방으로 가서 닭을 잡아오고, 버섯과 약재를 딴 다음 닭을 깨끗이 손질하고 재료들과 함께 솥에서 끓여 죽을 만들었다.지금 도윤의 몸은 영양이 필요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보충해서도 안 되니 비율을 잘 맞춰야 했다.도윤은 지아가 가자마자 진환을 불렀다.“보스, 부르셨어요? 아직 약 드실 때는 아닌데.”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문 닫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들어와.”“네.”진환은 진봉보다 더 믿음직스러웠고 일을 마친 그가 도윤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 됐어요, 보스. 무슨 일이에요?”도윤은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무무가 몇 살인지 정확히 알고 싶으니까 가서 정보를 좀 알아봐.”“갑자기 무무는 왜요?”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키는 대로 해.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조용히 움직여야 해.”“네.”진환은 조금 이상
지아가 손가락을 잡아 확인해 보니 손가락 끝이 길게 베인 것을 발견했다.“괜찮아요, 전 늘 다쳐서 이건 작은 상처일 뿐이에요.”도윤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손을 빼냈다.“잠깐 기다려요.”지아는 서둘러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지혈했다.“됐어요, 앞으로 이틀 동안은 물 닿지 않게 해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아니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도윤은 지아를 밀어내고 힘없는 몸을 스스로 끌어올렸다.비록 지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똑똑한 지아는 조금만 방심해도 알아차릴 수 있기에 도윤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일부러 모르는 척 거리를 두었다.지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듯 말했다.“여기선 남녀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예요. 계속 저와 거리를 두면 그쪽 독 저도 상관 안 해요.”도윤은 고개를 숙였다.“미안합니다.”지아는 아직 남아있는 삼계탕을 건넸다.“빨리 낫고 싶으면 나한테 협조하세요.”“성가시게 굴어 미안합니다.”도윤은 다시 사과했다.지아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인 도윤을 바라봤다. 늘 사람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이고 강한 그가 언제 이럴 때가 있었나?지아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괜찮아요, 이해하니까 우선 닭백숙 먼저 먹어요. 오래 끓였으니까.”말을 마친 지아는 당황했다. 마지막 말은 할 필요가 없는데, 괜히 도윤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뼛속 깊이 새겨진 습관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빨리 낫게 하려고 약초를 좀 넣었어요.”지아는 한마디를 덧붙였다.“고마워요.”지아는 도윤에게 한 모금씩 먹여주었고,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가 없었지만 분위기는 다정했다.지아는 떠나던 날 평생 도윤을 피해 다니며 이생에서 더는 그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도 이런 식의 재회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도윤은 빨리 낫기 위해서인지 차갑던 사람이 얌전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도윤은 애써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그동안 도윤은 미셸을 어린 동생으로 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녀를 돌봐주었고, 당시 구해준 것도 얼떨결에 벌어진 일인데 그로 인해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과거 도윤이 작전을 나갈 때마다 미셸은 꼭 같이 가겠다고 고집부렸다. 그때는 어리고 진급을 위해 훈련하려는 줄 알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수혈해 줄 수도 있으니 데리고 다녔었다.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한 애정이 더 분명해지자 도윤은 미셸에게 결혼했다는 걸 알렸다.겨우 몇 년 동안 잠잠하다가 자신의 이혼 소식이 들끓자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도윤이 아무리 거절해도 미셸은 계속해서 달라붙었다.도윤은 이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고 스승의 체면도 더 이상 봐 줄 수가 없었다.진환은 서둘러 말했다.“보스, 이렇게 아픈데 치료도 안 하고 돌려보내면 윗사람들한테 한 소리 들을 테고, 그건 보스의 평판에도 안 좋을 것 같은데요...”도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본인이 자초한 거잖아. 됐어, 신경 쓰지 마.”일어나서 나가려던 도윤이 문 앞에서 문틀에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 그를 제때 붙잡은 것은 지아였다.“오두막집은 큰 별장과는 달라서 익숙하지 않으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요.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내가 장례를 치러줘야 하잖아요.”“미안합니다.”지아는 도윤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했다.“그래도 눈먼 사람한테 화내지는 않아요. 천천히 내려와요.”진환은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도윤이 부탁한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하자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고 지아가 그를 다시 바라봤을 때는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착각이었을까?진봉은 여전히 울부짖었다.“선생님, 저 여자한테 큰일이 생기면 제가 죽습니다! 전 아직 어리고 아내도 얻지 못했어요.”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며칠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보아하니 미셸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고, 그녀가 다치면 도윤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지아는 생각했다.
도윤은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 입을 진환에게 말했다.“다 들었지, 나는 남아서 독을 해독해야 해. 밖은 이미 아수라장이니 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수습하고, 미셸도 큰 문제가 없다면 같이 데려가.”진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아내를 찾았다고 형제를 버리다니, 곧바로 그들을 내보내고 지아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알았어요, 보스. 그럼 경훈이한테 연락할게요.”오두막집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둘기를 날리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그래, 내 행방은 비밀로 해줘.”“네.”일 핑계를 댔지만 사실 아내와의 재회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도윤이 지아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두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었기에 진환은 눈치껏 자리를 떠났다.물을 붓고 불을 붙이던 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왜 저렇게 빨리 보냈을까, 진환이 떠나면 도윤의 옷은 누가 벗겨주나?무무처럼 새를 시켜 경훈에게 연락할 재주도 없었다.됐다, 지아는 마음속으로 자신은 의사고 도윤은 그저 평범한 환자일 뿐이라고 계속 되뇌었다.“옷 벗어요.”“그럼 돌아서요.”도윤은 꿋꿋이 연기했다.“알량한 살덩어리를 내가 보고 싶어서 보겠어요?”지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뒤에서 도윤이 중얼거리는 듯 말했다.“알량하지 않은데.”지아는 곧바로 얼굴을 붉혔다.‘이 변태가, 아무 여자한테나 이런 농담을 하는 거야?’“자, 다 벗었어요.”도윤이 말했다.전에는 전부 진환이 이끌어줬는데 이젠 진환이 갔으니 전부 지아의 몫이었다.지아는 도윤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손 줘요.”지아는 도윤의 손을 잡고 이끌었고, 도윤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순순히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전에는 군말 없이 버텨왔다. 이제 지아의 존재를 알았으니 고통이 기쁨으로 바뀔 정도였다.지아는 그런 도윤의 마음도 모른 채 근처에서 약초를 찾아 빻은 후 즙을 모아 그의 눈을 치료해 줄 약물을 만들 생각이었다.도윤은
지아의 심장이 멈칫했고 도윤은 이렇게 덧붙였다.“이번에 그쪽이 아니었다면 난 진작 죽었을 겁니다.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 나으면 꼭 제대로 보답하겠습니다.”왠지 지아의 머릿속에는 영웅이 여자의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이 떠올랐고, 구해준 여자들은 보통 드릴 게 없으니 자신을 바쳐서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오래전에 이혼했고 더는 서로 상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이였다.앞으로 다른 아내를 맞이할 도윤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미련이 남은 거다.학생 시절부터 한 남자만 사랑했고, 그와 함께 자식과 손주들을 거느릴 때까지 백년해로하는 미래를 수없이 상상했다.처음 결혼했을 때만 해도 눈과 마음에 도윤이 가득했는데, 언젠가 결혼 생활이 깨지고 남편 옆에 다른 사람이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차가운 법이다.지아는 도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보답하시려고요?”“그건 당신한테 물어봐야 할 질문이겠군요, 원하는 게 뭐죠?”도윤이 되물었다.지아는 제일 먼저 지윤을 떠올렸다. 도윤이 아들의 양육원을 자신에게 넘겨줄까?“원하는 게 있으면 나중에 이 선생님께 말씀드릴 겁니다.”도윤도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말하는 억양으로 봐서 A국에서 오신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예요?”“바네사, 그냥 그렇게 불러요.”“A국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없었을 텐데, 그게 본명은 아니겠죠.”지아는 왠지 불쾌했다.“대체 왜 이렇게 자세히 물어보시는 거죠? 설마 드라마에서처럼 몸으로 은혜를 갚기라도 할 생각인가요?”“내가 결혼하고 싶어도 당신이 허락해야죠.”지아의 마음은 점점 더 불쾌해져만 갔다. 마음속에 한 사람만 있기는 무슨, 저 한심한 남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꼬드겼을지 누가 알겠나.“걱정 마요, 돼지랑 결혼하더라도 당신이랑은 안 하니까.”말을 마친 지아는 씩씩거리며 뒤돌아
지아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허리띠를 묶어주었다.“됐어요.”그런 다음 허리띠를 잡아당기며 동물 가죽 위에 눕게 했다.“잠시 쉬면서 먹고 기력 보충해요.”동굴 안에는 생필품이 꽤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지아가 자주 이곳에 머무는 것이 분명했다.도윤은 지아의 병도 이곳에서 고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아이와 함께 지냈을까?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퍼즐은 언젠가 풀릴 테니까.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한 방울 소리가 도윤의 귀에 들렸다.마음이 흠칫 떨렸다. 무무다!아직 무무의 생일을 알아내지 않았지만 도윤은 이미 무무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다.도윤은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고 방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다 마침내 그의 옆에서 멈췄다.작은 손이 얼굴을 쓰다듬자마자 도윤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무무도 내가 아빠란 걸 알고 있나?’도윤은 감히 이 아름다운 순간을 방해할 수 없었고 곧 무무는 손을 뗐다. 소리를 들으니 지아 곁으로 간 것 같았다.“배고파?”낮은 지아의 목소리는 원래의 목소리와 다소 비슷하게 들렸다.작은 아이가 손짓을 하자 지아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가서 재료 가져와. 엄마가 사탕 만들어 줄게.”방울 소리가 매우 쾌활하게 울려 퍼졌다.도윤은 갑자기 사람의 냄새가 아닌 무언가가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마치 짐승이 자신의 손을 킁킁거리는 것 같았고 무슨 짐승인가 싶어 겁이 났다.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무서워하지 마요, 사슴이에요.”“여기 사슴도 있나요?”“당연하죠. 저쪽에 샘물이 있는데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많이 와요.”“사나운 짐승은 없습니까?”지아의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예전에는 있었는데 사라졌어요.”그 표범이 죽은 후 모든 짐승들은 깊은 산으로 도망갔고 다시는 지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도윤은 이유를 몰랐기에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만 들었다.동물들은 기운을 느끼기에 과거 야생
도윤도 지아 쪽을 바라보았다. 눈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볼 수도, 올 수도 없다는 걸 알았지만 지아는 속으로 당황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 만든 사탕을 바구니에 담았다.“엄마는 할머님께 드리러 갈 테니 네가 여기 남아서 지켜보고 있을래?”무무가 고개를 끄덕였다.지아가 떠나고 무무는 도윤의 곁에 앉아 새끼 사슴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가끔 새끼 사슴의 몸이 도윤과 부딪히는 걸 보아 도윤은 새끼 사슴과 아이가 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기뻐하던 도윤은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이 동네에는 산사나무가 전혀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열매를 가져왔을까?가능성은 단 한 가지, 누군가 밖에서 가져온 것이다.전효!갑자기 도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떠올랐다.지아는 완성한 사탕 일부를 도윤에게도 나눠주었다.몇 년이 지났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을지 아무도 모른다!자신이 없는 수천 번의 밤낮 동안 지아의 옆자리는 다른 남자가 채운 것이었다.도윤은 왠지 당혹스러웠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무무가 손을 잡고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왜 그래요?”도윤은 직접 물을 수 없었기에 이렇게 말했다.“무무야, 나 여기 있는 게 좀 심심한데 산책 좀 시켜줄래?”무무는 이미 하루치 약을 다 먹은 도윤을 보며 조금 걷는 것도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는 도윤의 손을 잡고 길을 이끌었다.도윤은 자신이 딸과 이런 식으로 소통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렇게 작은 손이 자신을 잡아주자 도윤은 매우 든든하게 느껴졌다.도윤은 혹시나 아프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무무의 손을 잡았다.이 순간 그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권력도, 어떤 지위도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손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제 해 지는 거야?”딸랑-차분한 방울 소리는 긍정의 의미였다.“엄마는 어디 있어?”도윤이 다시 물었다.“갑자기 눈이 좀 아픈데.”무무는 역시나 지아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고
도윤은 다른 남자 밑에 누워 있는 지아를 생각만 해도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쳤고 살기가 온몸을 가득 채웠다.무무의 몸에서 나는 방울 소리가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주원은 기쁜 마음으로 무무를 향해 달려갔지만 무무 옆에 있는 남자를 보자 얼굴에 미소가 얼어붙었다.그는 도윤을 가리키며 지아에게 물었다.“누가 말한 환자야?”“응, 얘기하자면 길어.”지아는 주원에게 눈치를 주자 주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윤은 제대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바네사, 손님 오셨어요?”주원은 피식 웃었다.“누가 손님인지 모르겠네.”도윤은 모르는 척 물었다.“선생님께선 저한테 적대감을 느끼고 계시는 것 같은데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지아는 차갑게 끼어들었다.“모르는 사이에요. 여긴 왜 왔어요?”무무가 손짓을 하자 지아가 도윤을 돌아보았다.“눈이 아파요?”“네, 그쪽이 가고 살짝 통증이 느껴져서 무무한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지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따라와요.”앞으로 걷던 지아는 도윤이 앞을 못 본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와 그의 허리띠를 당기며 데리고 갔다.주원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살기가 눈동자 깊숙한 곳을 휩쓸고 지나갔다.방으로 돌아온 지아가 명령했다.“앉아요.”도윤이 순순히 자리에 앉자 나무 침대가 그의 큰 덩치에 삐걱거렸다.지아는 그의 앞에 서서 눈을 감싸고 있던 거즈를 벗겨냈다.눈꺼풀에는 아직 약이 남아 있었고 지아는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냈다.“눈 떠요.”도윤은 매우 협조적이었다.“불빛이 보여요?”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의 눈앞에 흔들었다.도윤은 고개를 저었다.“윤곽만 어렴풋이 보일 뿐 전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요.”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다.“아직도 아파요?”“조금 아파요.”지아는 어디서 난 약인지 또 가져와 도윤의 눈에 떨어뜨리며 부드럽게 불었다.눈앞이 시원해지자 머리도 훨씬 맑아져서 눈은 물론 두통도 많이 완화되었다.다만 지아가 희미한 체온까지 느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