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찬이 자기 증손자가 아니라면서 말끝마다 강조하는 유명훈의 말에 김훈은 화가 난 것이었다.조하랑은 그 긴 이야기의 끝에 자기가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화가 잔뜩 난 김훈은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조하랑은 바로 등을 토닥거려주었고 어느새 김인우도 도착했다.“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왜 이렇게 나오신 거예요? 그냥 저 부르시지 그러셨어요!”김인우는 어이가 없었다.그러자 김훈은 보란 듯이 기침을 더더욱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이제 겨우 괜찮아진 김훈이었는데, 김인우가 부채질하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으로 변해버렸으니 말이다.“그만 좀 해요! 기침하시는 거 안 보여요?”한마디 하고서 바로 김훈을 토닥거려주었다.“할아버님, 그만 화 푸세요. 이게 다 저랑 인우 씨 탓이에요. 증손자 말고 다른 건 갖고 싶지 않으세요? 가능한 한 만족시켜 드릴게요. 그리고 일단은 연애부터 하고 나중에 결혼한다고 이미 약속했었잖아요.”조금 괜찮아진 김훈은 문득 무엇인가 떠오른 듯했다.“그럼, 일단 아이부터 가지고 그러고 나서 연애하고 결혼하면 안 되겠어?”“...”“...”김인우도 조하랑도 모두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마침 세 사람 쪽으로 다가오고 있던 박민정 역시 김훈의 말을 듣고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여기 무슨 할리우드야?’유명훈과 최현아가 유치원을 떠난 뒤였다.당황한 두 사람을 보고서 김훈은 부랴부랴 덧붙였다.“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지금 이 사회에서 혼전임신은 극히 평범한 일이란다. 적어도 우리 인우가 가능한 사람인지 한 번 시도는 해보아야 할 것 아니냐.”그 말을 듣고서 조하랑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고 김인우는 귀까지 빨개졌다.“할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면 경로당으로 확 보내버릴 거예요! 꼭 잡혀 사시게 할머니도 찾아드리고요!”“...”박민정은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어느 정도 상황을 마무리하고 난 뒤, 박예찬은 자기 교실로 향했다.가는 도중에 가만히 홀로 서 있는
윤소현과 같은 사람에게는 인간성 따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만약 한수민이 엄마 노릇을 하지 못하여 모녀 관계를 끊은 것이라면 그나마 말이 통하는 데 그와 정반대로 한수민은 엄마 노릇을 너무 잘해 왔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자기한테 마음을 다해 주는 엄마를 버리고 돈과 권력이 많은 정수미를 엄마로 선택했다.윤소현의 본성을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이제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혈연관계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윤소현 씨가 그러지 않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윤소현 씨 몸에는 한 여사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요?”윤소현은 자기가 했었던 말을 도로 받으면서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화가 미친 듯이 치오르고 있음에도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여하튼 한수민한테 당장 소송 취소하라고 해!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하는데 소송만 취소해주면 우리 아빠가 그 뒷일을 책임져줄 수 있다고 했어.”그 아빠에 그 딸이라고 어지간히 어이가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하지만 박민정은 두 부녀에게 버림을 받은 한수민이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마음대로 해요.”이윽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윤씨 가문에서.윤석후가 윤소현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윤소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미친년이 싫다고 하잖아요!”“네 엄마 원래 걔 좋게 보지도 않았어. 대신 나서서 말린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야.”윤석후는 한숨을 내쉬면서 덧붙였다.“한수민은 이혼하겠다고 난리지 박민호는 또 재산을 빼앗아 가겠다고 난리지... 해외에서 잘 살 수 있었는데, 걔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국한 거잖아!”박민정에게 거절을 당하자, 윤소현은 박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기고만장하기 그지없는 윤소현으로붙터 전화가 걸려오자, 박민호는 의아해하면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받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발레를 하는 우리 누나 아니야? 누나한테 나 같은 동생이 있었다는 거 이제야 기억난 거야?”잔뜩 비아냥거리고 있는 박민호의 목소리를 듣고서 윤소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
한수민의 말을 듣고서 유남우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죄송합니다만, 제가 나서기에는 좀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아요. 소현이 엄마시면 저한테는 장모님이시고 윤석훈 씨도 제 장인어른이나 다름없잖아요. 두 분이 하시는 법정 싸움에 제가 끼어든다는 건 여러모로 걸리는 부분이 많아요.”한수민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도 풀이 죽지 않았다.유남우가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찾아온 것도 윤소현을 위해서가 아님을 내심 알고 있는 한수민이다.“지금껏 살면서 내가 누구한테 가장 미안해하는지 알아요? 민정이요. 하지만 그 죄를 모두 갚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서 가능한 한 재산을 도로 빼앗아 와서 민정이한테 줄 생각이에요.”한수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유남우는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병원에서 나가고 나서 그는 박민호에게 말했다.“병실에 경호원 좀 붙여서 민호 씨 엄마 보호해 드리도록 해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박민호는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그냥 시킨 대로 해요.”“네.”박민호는 이제는 캐묻지 않았다.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그렇게 박민호와 헤어지고 나서 차에 오른 유남우는 자기 변호사팀과 연락을 닿았다.어떻게든 이번 이혼 소송에서 한수민이 이기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내심 결정을 내렸다.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암암리에 진행할 생각이었다....두원 별장.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심심한 나머지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해 보았는데, 마침 한수민 이혼 소송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유명 무용가 시한부 판정받음. 재혼한 남편과 현재 이혼 소송 중.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그 이유는... 하찮음.]자극적인 말로만 구성된 기사 제목을 보고서 박민정은 링크를 누르고 자세한 보도를 확인했다.하지만 형편없는 기자가 쓴 기사일 뿐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도 못했다.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의 한수민은 그때 그 유명한 무용가가 아니라 일반인보다 못한 존재로서 이
보름 남짓이 못 본 사이 한수민은 몰라보게 변해버렸다.온몸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간병인의 부축 하에서 간신히 걸어왔다.현장 기자들 안중에 한수민은 더는 소문이 자자한 무용가가 아니었다.후회와 참회의 마음으로 법정에 나선 한수민은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친딸인 윤소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한수민의 눈빛과 마주친 윤소현의 얼굴에는 그에 대한 혐오감과 놀라움만 쓰여 있을 뿐,다른 감정은 전혀 없어 보였다.“한수민은 왜 왔어?”그녀가 비서에게 물었다.“그건 모르겠어요.”비서가 고개를 살살 흔들면서 대답했다.“쓸모없는 놈!”한수민은 윤소현을 향한 눈길을 박민정 쪽으로 돌리더니 끝내 박민정의 얼굴에 머물고 말았다.박민정은 여전히 냉정했다. 그의 눈동자는 고요한 호숫물처럼 아무런 파문도 없었다.한수민의 가슴은 칼로 도리는 듯 아팠다.자신에 지나간 세월에 박민정에게 끊임없는 상처만 주지 않았더라도 이런 눈빛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정민기가 그녀의 곁을 지나서 박민정한테 다가서 말했다.“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양쪽 싸움이 붙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차에 태워서 데려왔어요.”“네, 수고했어요.”박민정이 머리를 끄덕하면서 말했다.정민기는 자리를 찾아서 앉고, 재판은 바로 시작됐다.한수민은 이혼소송을 제출하면서 부부 공동재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이어서 그녀는 자기가 입원하고 있는 사이 윤석후의 불륜 증거를 제출했다.윤석후가 계속 사실을 부인하려고 발버둥질했지만, 호산 그룹 법무팀의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했기에 윤석후는 결국 깡그리 지고 말았다.판사는 당장에서 이혼 판결을 내리고, 윤석후의 재산 절반을 한수민에게로 줄 것으로 판결 내렸다.재판이 끝난 뒤윤소현은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그녀는 당장 달려 나가서 유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남우 씨,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호산 그룹에 왜 한수민의 소송을 돕는 거예요?”재판 결과를 알고 있는 유남우는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서 창밖의 빌딩을 보면서 대답했다.“소
한수민의 입에서 자신을 배려하는 말이 나왔다는 점이 박민정은 너무 가소롭게 느껴졌다.“우리한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에 올라서 떠나갔다.그녀는 오늘 뜻밖의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 밖으로 잠잠했다.한데 눈만 감으면 한수민의 가냘픈 말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계절이 바뀌고 있으니, 너랑 아기랑 다 건강을 잘 챙기고…’그녀는 방금 앞에 서 있던 한수민이 진심인지, 아니면 여전히 허위적인지 분별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한수민이 준 받은 상처는 한평생 아물 수 없을 것이다.박민정은 그 누구보다도 한수민을 증오했다.“도착했습니다.”정민기의 말소리에 박민정은 어렴풋한 사색 속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두원 별장에 도착했다.오늘따라 유남준도 일찍 돌아왔다. 소파에 앉은 채 그녀한테 물었다.“어떻게 됐어?”“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한수민이 재판에서 이겨서 뜻대로 이혼하고 재산까지 절반 가졌어요.”박민정이 옆에 다가와 앉으며 대답했다.한수민이 소송을 걸어 얻은 돈을 윤소현한테 주지는 않을 것이고, 아마도 박민호에게 줄 계획일 것이다.그렇다면 그 돈이 다시 박씨 가문에 돌려준 셈이지.피곤함이 막 몰려오자, 박민정은 유남준의 팔짱을 끼면서 애교를 부렸다.“매일 저를 회사까지 바래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오늘 나 혼자 두고 아침 일찍 나갔대요?”그녀도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 화나서 한 말이 아니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놀란 유남준은 말문이 탁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머리를 다독여 주었다.“당신이 좋아하는 프로젝트 몇 건 가져왔는데 한번 봐.”“싫어요… 왜 또 업무에요?”박민정이 한숨을 지었다.‘유남준, 당신은 정말로 인간성이 없는 금수야.’“당신이 이 몇 건의 프로젝트만 완성할 수 있다면 당신의 마케팅 5팀은 절대로 안 쫓겨나.”유남준이 덧붙여 말했다.그는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김인우한테서 검진을 받았다.이번 주만 지나면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뭐라고? 질렸다고?’이 대답을 들은 박민정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유남준을 감쌌던 두 팔을 어디에 둘 줄 몰라 어쩔 바를 몰라 했다.박민정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숨을 한껏 들이켠 후 말했다.“남준 씨,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에요?”방금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갑자기 이혼을 제출하니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런 거 없어.”유남준이 차디찬 눈빛을 보이면서 대답했다.더 이상 유남준과 상대하기 싫다는 듯 박민정은 그와 몇 미터 사이를 두고 앉아서 사색에 잠겼다.드디어, 거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다.박민정이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던 유남준이 말을 꺼냈다.“절대로 당신이 섭섭지 않게 할 테니 잘 생각해 봐.”말을 마친 그는 몸을 일으켜서 계단으로 향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당장 달려가서 유남준한테 한바탕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박민정은 미심쩍었다. 유남준이 올라간 뒤 급히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건너편의 서다희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혹시 요즘 유남준 씨한테 무슨 일 없나요?”오늘 대표님이 병원에 가셔서 김인우 의사 만나서 검진받고 다음 주부터 수술받기로 했다.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하게 했다.만일 수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박민정 모자가 유씨 가문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할 걸 예측했다.그래서 먼저 이혼서류를 밟아서 거액의 위자금을 박민정한테로 돌리려고 했다.“대표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서다희가 시치미를 뚝 떼며 되물었다.박민정은 이혼과 관련한 말을 서다희 에게 말하기는 머쓱했다.“아니요, 혹시 남준 씨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해서요. 이를테면 머리를 어디에 박았다는가…”“그럴 수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항상 안전이 일 위라고 하십니다.”허다희한테서 아무런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것 같지 않은 박민정은 전화를 끊었다.어느덧 저녁이 되어 박윤우가 돌아왔다.저녁밥을 먹고 있던 박윤우가 궁금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유남준은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졌다.“잉꼬부부도 7년째의 권태기에 접어들어 갈 수 있다고 해요. 당신과 나는 결혼한 지 7년이 되지만 진정으로 같이 생활한 지는 일 년조차 넘기지 않았어요. 근데, 벌써 무미건조하나요?”박민정의 입김이 유남준의 가슴에 뜨겁게 닿았다.유남준은 간지러움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했다.“이러지 마.”유남준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거칠어졌다.박민정은 턱을 위로 살며시 들고 귀 방울까지 빨개진 유남준의 얼굴을 그윽하게 지켜보았다.그가 입으로는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몸은 성실하다.“당신 진짜 저랑 이혼 할 샘인가요?”“음.”유남준이 둣걸음 치면서 그녀를 몸에서 밀어내려고 했다.박민정은 일부러 ‘앗!’ 하며 뒤로 넘어지는 시늉을 마치기 바쁘게 유남준은 잽싸게 그녀를 도로 안아 당기였다.그러다 당황해서 또다시 밀어냈다. 그리고 또 안아 당기였다.이에 재미를 본 박민정은 또다시 앞으로 달려가 유남준을 꼭 안았다.“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말아요. 전 당신의 아기를 가진 임신부예요. 당신이 밀어서 아기가 잘못되면 저를 원망하지 말아요.”유남준은 지금처럼 속수무책 인적이 없었다.“말 좀 들어. 이 상황에서 이혼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선택이야.”비로소 박민정은 유민준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확인 했다.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을 꼭 안은 채 말했다.“유남준 씨, 지금 내 말을 잘 들어요. 오늘 당신이 나랑 이혼하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깐 잘 생각해 보고 말해요.”‘절대로 후회 안 해!’유남준은 자신이 수술을 받은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 꼭 다시 박민정을 되찾아올 타산이었다“그래.”유남준은 속에 없는 말을 해버렸다박민정은 곧 돌아버릴 직전이었다.“여봐요, 남준 씨! 당신은 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어요? 당신이 앞을 못 봐도 상관없는데 또 뭘 나한테 숨기려 해요?”박민정은 지금 왕짜증이 났다. 이런 유남준이 진짜 얄미웠다.
이튿날아침 일찍 일어난 박윤우는 따끈한 온수 팩을 안고 이불속에 드러누웠다.박민정이 박윤우를 깨워 주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걸 발견했다.“윤우야…”박민정이 부드럽게 불렀다.박윤우가 살며시 눈을 뜨더니 허약하게 말했다.“엄마…”“아들, 어데 아파?”박민정이 걱정되어 물었다.“엄마, 나 어지러워요…”“얼른 일어나, 엄마가 옷 입혀줄게, 병원에 가자.”애가 어지럽다고 하자, 놀란 박민정은 다급히 서두르기 시작했다.박윤우는 어릴 때부터 백혈병으로 앓고 있었기에 설사 작은 병이더라도 끌면 안 되기 때문이다.“엄마, 나 병원에 가기 싫어요. 그냥 집에서 누워 쉬면 안 돼요?”“안되지, 윤우의 이마에 장국 끓일 수 있겠네…”“나 어제 비 맞아서 그래요. 좀 누워 있으면 금방 나을 것 같아요.”박윤우가 변명했다.유남준이 말소리에 깨어나 방에서 나오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지금은 아들이 일 순위이다. 박민정은 어제저녁의 불쾌한 일로 유남준을 무시하지 않았다.“윤우 지금 열이 많이 나고 있어요. ““엄마 출근 안 해요? 아빠랑 병원 가게 해줘요.”박윤우가 유남준을 훔쳐보면서 말했다.“윤우가 아픈데 엄마가 어떻게 출근해? 오늘 휴가 내면 되지.”“근데 엄마 어제도 휴가 냈잖아요. 어차피 아빠는 한가하신데…”그러는 박윤우는 문 입구 편에 서 있는 유남준을 올려보면서 말을 이었다.“아빠가 윤우를 병원에 데리고 가줄 수 있지요? 네? ”유남준은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다.“그래, 민정 씨는 출근해, 윤우는 내가 병원에 데려가면 되지.”유남준이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을 원하는 박윤우를 보고 박민정은 묵묵히 옷을 입혀 유남준에게 안겨 주었다.두 사람이 차에 오르기까지 배웅했다.차에 앉은 유남준은 또 박민정을 보면서 신신당부했다.“어제저녁에 한 얘기, 서둘러 결정해.”박윤우만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당장 유준우를 한 대 갈기고 싶은 심정이다.“어제 무슨 일 인데요?”박윤우가 능청스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