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준은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서 모른 척하고 선물 가방을 내려놓았다.박민정은 의심쩍게 물었다.“내 물건 가지고 뭐 하는 거예요?”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봉지 안을 살펴보니 상자가 있었다.“보셨어요?”박민정이 또 묻는다.유남준은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아니, 안 봤어.”박민정은 믿지 않았다. 그가 분명 들고 있었고, 밖에까지 들고 갔으니 안 봤을 리가.“그럼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어요?”박민정은 일부러 그를 떠봤다.유남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아니요.”박민정은 화도 안 나서 선물을 바로 풀었다.“당신 동생이 준 선물은 꽤 귀중해요. 금목걸이를 제가 받을 건데 괜찮겠어요?”유남준은 묵묵히 그녀가 고의로 자신을 속이는 것을 듣고 있었지만 그저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박민정한테 질투가 가득 했지만 입으로는 마지못해 “응.”이라고 대답했다.박민정은 그의 모습을 보니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자기 물건을 몰래 보고도 인정하지 않으니 박민정은 그의 앞에서 버리지 않고 일부러 방으로 가져갔다.유남준은 거실에 혼자 있으니 안색이 더 나빠졌다.박민정은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그는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일부러 그를 무시하고 사과를 깎아 먹었다.“먹을래요?”“아니.”박민정은 그의 도도한 모습에 설명하기도 귀찮았다.“늦어서 먼저 자러 가요.”그녀가 일어서서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았을 때, 유남준이 팔을 들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박민정은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품에 기댔다. 입술은 그의 목덜미에 닿았고 두 손은 실수로 그의 허벅지에 닿았다.유남준은 숨을 쉬고 나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민정아, 오늘 밤 우리 같이 잘래?”박민정은 귀가 빨개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아니요.”그녀는 일어나려고 하다가 실수로 유남준의 다리 사이에 손을 닿았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피했다.유남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덥석 잡았다.“건드리지 않고 꼭 안고 잘게.”박민정이 처녀도 아닌데 어
유남준은 이지원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해명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기억을 잃은 척하고 있어 말하지 못했다.“아니.”유남준은 눈을 감았다.“자.”박민정은 그의 품에서 좀 나와서 불편하게 잠을 청했다.내일 그녀는 병원에 가서 임신 검사를 해야 하니 오늘은 푹 쉬어야 했다.......진주시 병원.윤소현은 병실에 누워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녀의 아버지 윤세권은 이미 사람을 보내 그의 딸에게 이런 짓을 한 게 누구인지 조사했지만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한동안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기가 어려웠다.한수민은 원래 약혼연회 일 때문에 화가 나 있었는데 그녀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녀를 보러 왔다. “소현아,괜찮아?”윤소현은 툴툴 맞게 대답했다.“보면 몰라요?”윤소현은 예전에는 한수민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었다. 어쨌든 한수민은 아버지에게 시집온 지 5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딸 박민정이 몰래 유남우를 꼬신 것을 생각하면 윤소현은 한수민에게 태도가 좋지 못했다.한수민은 윤소현의 짜증 나는 말투에도 화내지 않고 안쓰러워 이불을 덮어주었다.“미안해, 화내지 마, 다 잘될 거야.”윤소현 앞에서는 한수민은 진짜 어머니 같았다.윤소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엄마인 척하지 마세요. 무슨 의도가 있으신 것 같은데, 약혼 파티에서 제가 당신에게 말할 기회를 안 줘서 그러는 거에요? 그 일 때문에 제가 미워서 친딸 박민정에게 제 자리를 꿰차고 유남우를 꼬시라고 한 거예요?”윤소현의 말에 한수민은 순간 멍해졌다가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렸다.“소현아,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어떻게 민정이한테 유남우를 꼬시라고 할 수 있겠어?”윤소현은 한수민이 모두 연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유남우와 박민정은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말했고, 박민정은 또 몰래 유남우를 꼬셨다고 말했다.한수민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꽉 쥐었다.“나는 정말 민정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남자를 꼬실꺼라곤
윤소현은 이제야 왜 아빠가 한수민과 결혼했는지 알았다. 새엄마가 친엄마보다 자기한테 더 신경 써주었다.처음에는 한수민 단지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정수미는 올해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왜 딸 하나밖에 없는지 이유도 알았다.윤소현은 쓰레기통 속 파편을 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화장실 변기에 던져버렸다.“나는 사업가 정수미의 딸이지, 딴따라의 딸이 아니야.”정수미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한수민은 그저 가정주부였고 정수미만이 자기의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윤소현은 한수민을 다시 불러들여 가짜웃음을 장착하고 말했다.“엄마, 알겠어요. 앞으로 제가 꼭 효도할 거예요.”한수민은 이 말을 듣고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그 말을 들으니 엄마가 기쁘구나.”“근데 이 일은 우리가 사적으로만 알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아 줄래요?”한수민은 의문스러웠다.“왜?”“정수미는 아이가 저 뿐인데 죽으면 기업을 다 저한테 맡기겠다고 했어요. 지금 진실을 알게 되면 기업을 저한테 물려주시지 않을 거예요.”윤소현이 내뱉는 말들은 모두 도리가 있었다.한수민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애초에 윤소현을 낳고 윤세권에게 건네준 후 윤세권은 정수미에게 이 아이가 주운 아이이고 아이의 친부모를 모른다고 해서야 정수미가 키우기로 한 것이었다.“그래.”......다음날 박민정은 임신검사를 받으러 갔다. 유남준도 굳이 같이 가자고 했다.“출근 안 해도 돼요?”“휴가 냈어.”유남준이 대답했다.“하루가 멀다 하고 휴가를 내면 대표님이 내버려둬요?”박민정은 점점 그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었다.“우리는 자선사업이어서 대표님 월급도 많지 않은 데다 나처럼 눈이 보이지 않고 업무 능력은 뛰어난 사람은 드물어.”유남준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박민정은 이전에도 유남준의 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집중력이 훨씬 더 필요했다.기본적으로 같은 일을 하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보
박윤우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해도 시치미를 뗐다.“죽다니요. 저희 아빠는 죽지 않아요. 아저씨는 나쁜 사람.”유남준은 꼬마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눈앞의 이 아이는 그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짜증이 났다.“울지 마.”“싫어요.”박윤우는 계속 거짓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유남준은 박윤우가 가짜로 운다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이따가 박민정이 검사하고 나와서 보면 자기한테 화낼까 봐 무서웠다.“네 아버지는 죽지 않았어.”“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를 저주했어요!! 흑흑흑!!”박윤우는 더 크게 울었다.유남준은 머리가 아팠다.“울지 마, 농담이야.”박윤우는 자신을 달래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나서야 엄마의 건강검진 시간이 끝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보아하니 지금 이 아저씨가 엄마를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이걸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어른이신데 왜 이런 농담을 치는 거요? 흑흑흑,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흑흑, 엄마랑 에스토니아로 돌아가 아빠 장례를 치뤄줄거야...”유남준은 어린아이가 이렇게 진지할 줄은 몰랐다, 만약 박민정이 알면 큰일 났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농담이야, 어떻게 하면 안 울래?”“선생님이 잘못했으면 사과하라고 하셔서요.”박윤우는 쓰레기 아빠가 어떻게 사과했는지 보고 싶었다.유남준은 평생 박민정에게 사과한 것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았다.이 꼬마가 박민정 다른 남자의 아이이고 자기 몸에 오줌을 쌌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더욱 그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유남준이 계속 사과하지 않자 박윤우는 더 크게 울었다.“흑흑흑,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난 이제 아빠 없는 아이야, 우리 아빠...”그의 울음소리에 밖에 있는 간호사들이 다가왔다.“윤우야, 아버지가 왜요?”유남준이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줄도 몰랐다.“아버지는 잘 계세요.”유남준은 간호사가 차가운 시선에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괜찮으면 됐어요.”간호사가
한수민은 쌓인 눈을 밟으며 짜증스럽게 서 있다가 박민정이 오자 얼떨떨해졌다.그녀의 시선은 박윤우를 향해 곧장 쏠렸고 의문투성이었다.이 아이는 누구야?한수민은 박윤우를 몰랐다. 박윤우는 진작에 그녀를 알고 있었따.그녀가 할머니라는 것을.그는 눈에 분노를 가득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바로 이 할머니가 하마터면 엄마를 죽일 뻔했어, 내가 꼭 복수할 거야.’한수민은 어린아이의 눈에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분명히 보여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어린아이가 왜 그런 원망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까?그러나 너무 신경 쓰지 않고 한수민은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박민정은 본능적으로 박윤우 앞을 가로막았다.유남준은 낯선 사람의 발소리도 들었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박윤우는 엄마 앞에서는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유남준을 돌아보며 말했다.“아저씨, 우리 돌아가요.”“응.”유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방에 들어선 그는 박윤우에게 물었다.“누구 왔어?”박윤우는 발걸음을 멈췄다.“몰라요.”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유남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밖에 있는 경호원에게 누가 왔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입구.한수민은 박민정이 눈이 먼 사람과 아이를 데리고 방에는 병든 노인이 있는 것을 보며 비아냥거렸다.“애초에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지금 이런 생활을 하는 거야.”박민정은 이런 말이 듣고 싶지 않았다.“여기에 무슨 일로 왔어요?”한수민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이상 얼렁뚱땅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경고하는데 유남우에서 떨어져, 그는 지금 소현이의 약혼자야.”박민정은 이기적인 한수민이 남을 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며칠 전 그녀는 한수민의 머리카락으로 윤소현과 그녀의 친 모녀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나는 유남준과 결혼했고 유씨 집안의 며느리이기도 해요.”한수민은 울컥했다.지금의 박민정이 너무 고집스러워서 그녀는 좀 주체할 수 없었다.명령을 내려 다른 사람을 지휘하는 데 익숙했던 부잣집 부인 한수민은 욕을 먹고는
한수민은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박민정을 쳐다보았다. 예전처럼 얌전하고 순종적이었던 딸이 자신을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박민정은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뗐다.“한 여사님, 말 좀 가려서 하세요.”한수민은 그 자리에 굳어 있다가 바로 박민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하지만 이번엔 경호원 몇 명이 달려들어 그녀를 제압했다.한수민은 눈밭에 내팽개쳐졌고 귀부인의 자태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이거 놔, 이거 놔! 내가 내 딸을 때리는데, 너희들이 무슨 근거로 막는 거야?”유남준의 분부 없이 경호원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박민정은 한수민의 소란 피우는 소리를 들으며 가소롭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평소에 한수민은 자신이 그녀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다가 지금은 자신을 때리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인정하다니.박민정은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내보내. 이분을 보고 싶지 않아.”그녀의 말에 유남준의 경호원들은 한수민을 그대로 데리고 떠났다.소란 소리는 은정숙의 주의를 끌었다. 결국 그녀가 걸어 나왔다.“왜?”“괜찮아요, 들어가서 쉬세요. 추워요.”박민정은 은정숙을 데리고 들어갔다.한수민이 나갈 때 박민정과 한 가정부가 모자처럼 자상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은정숙을 은근히 원망하고 있었다....박민정은 집에 돌아와 은정숙을 부축하고 쉬게 했다.박윤우는 자기 방에 있었지만 조용히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박민정은 오늘 윤소현으로 감싸주던 한수민을 생각하면서 방으로 돌아와 피로연에서 뽑아준 한수민의 머리카락을 꺼냈다.그녀는 전화를 걸어 물었다.“윤소현의 샘플을 받았나요?”“네,오늘 막 받았어요.”전화 너머의 사람은 정민기를 통해 찾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운 문제를 많이 처리해 주었다.“그럼, 한 번 오세요.”얼마 전 박민정은 윤소현과 한수민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윤소현의 생물학적 샘플을 가져오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후 박민정은 머릿속에 한수민이 하는 말들로 가슴
박민정과 유남준은 당장 떨어졌다. 얼굴에는 어색함이 가득했다.“윤우, 왜 나왔어?”박민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박윤우는 겉으로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였지만 쓰레기 아저씨가 또 엄마를 꼬시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엄마가 그렇게 순진한데 쓰레기한테 또 속으면 어떡해.’박윤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했다.“위층은 너무 심심해요. 아저씨 나랑 같이 놀러 갈래요?”“그런데 너무 늦었잖아...”박민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이 대답했다.“그래.”남자로서 그는 어떻게 윤우가 자신에 대한 생각들을 느끼지 못할까?유남준은 이 아이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는 박민정의 아이이다. 민정 씨를 곁에 두고 싶으면 그를 남겨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그는 일찍이 두 아이를 버렸을 것이다.박민정은 부자가 화기애애하게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러나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박윤우는 허리를 굽혀 눈으로 공을 만들어 유남준의 등을 향해 내리쳤다.유남준은 발걸음을 멈추며 차가운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박윤우는 그 순간 긴장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아저씨, 우리 눈싸움이나 할까요?”그는 이 순간, 유남준이 무서웠다.“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너랑 눈싸움 해? “유남준은 이 녀석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역시 다른 남자의 아이는 나빠. 민정이와 나 사이의 아이는 절대 이 녀석처럼 나쁘지 않을 거야.’박윤우는 어린애라고 생떼를 썼다.“아니, 아저씨랑 눈싸움이라도 해야 하는데, 흑흑흑, 나랑 놀지도 않고 왜 우리 집에 왔어요?”박윤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만약 네가 보인다면 내가 너랑 무슨 눈싸움을 하겠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네가 눈이 안 보이니 너와 눈싸움을 해야겠지.’“그럼 먼저 약속해, 진 사람은 울지 말고.”유남준이 말했다.박윤우는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네. 딴말 하기 없기.”말을 마치고 그는 허리를 굽혀 눈덩이를 만들러 갔고 오늘은 쓰레기
박윤우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박민정을 닮은 탓에 은정숙은 유남준이 아이를 막 대할까 봐 한 마디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유남준이 말했다. 고작 어린 아이한테 막 대하진 않는다.욕실에서 박윤우는 샤워를 하며 엄마가 쓰레기 아빠와 그만 엮일 방법을 생각했다.결국 아이는 자신이 먼저 나서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해 밤에 자기 전 박민정의 손을 끌어당겼다.“엄마, 오늘은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전에 목욕하는 걸 부끄러워하던 윤우를 떠올리며 박민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그래.”원하는 것을 얻은 박윤우는 침대에 행복하게 누웠다.불이 꺼진 후 윤우는 박민정을 꼭 껴안으며 물었다.“엄마, 지석 삼촌은 어디 있어요?”박민정 역시 지난번 저녁 식사 이후 연지석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다.“엄마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사업하느라 바쁜가 봐.”하지만 박윤우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연지석이 아무리 바빠도 항상 엄마에게 연락이 왔었는데,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엄마, 지석 삼촌 너무 보고 싶은데 전화 좀 해줄래요?”박민정도 연지석과 연락한 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휴대폰을 들고 연지석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에스토니아 병원.전화벨이 울리자 연지석의 친한 동생 하민재가 다가와 확인하더니 발신자에 적힌 박민정이라는 이름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형이 사고 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전화하네. 양심도 없지.”하민재는 고개를 돌려 상처투성이에 의료 기기를 꽂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연지석을 바라보다가 박민정의 전화를 끊어버렸다.“형, 날 원망하지 마. 유부녀랑 얽히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았어야지.”이렇게 말한 후 하민재는 박민정의 번호를 차단하고 휴대폰을 다시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박민정은 다시 한번 연지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전화를 받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한 박민정은 다시 전화를 걸지
유남준의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고 정돈되지 못한 모습이 전반적으로 초췌해 보였다.“이지원 조사하고 왔는데, 민정이의 실종과는 아무 관련도 없던데요.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예요?”만약 윤소현이 임신 중인 아이가 유씨 가문의 아이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정수미의 양녀만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당장이라도 윤소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윤소현의 수려한 얼굴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그럴 리 없어요, 이지원이 분명 저한테 그랬다고요. 박민정이랑 그 두 아이들 처리해준다고...”윤소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남준은 천천히 윤소현의 앞으로 다가갔다.“말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정말로 이지원이었어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요.”윤소현이 다시 대답했다.유남준은 바닥나버린 인내심에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윤소현은 다시 어둠과 침묵 속에 갇혀 버렸다.“남준 씨, 얼른 저 내보내 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나 좀 꺼내달라니까!”그제야 윤소현은 자신이 유남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밖으로 나온 유남준은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찍혀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정수미에게서 온 것들이었고, 다른 몇 통은 고영란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는 제일 먼저 정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슨 일이시죠?”“유 대표, 민정이 소식은 있나요?”정수미가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없습니다.”유남준이 대답했다.정수미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더욱 절망스러워졌다.“그럼... 소현이는 어떻게 됐나요?”윤소현은 어릴 때부터 정수미가 직접 지켜봐 왔던 아이였고, 그 아이와 깊은 정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었다.“소현 씨도 아무 일 없습니다.”“그럼, 소현이 좀 풀어줄 수 있을까요? 내가 직접 물어볼게요.”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정수미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호사만 누리며 살아온 윤소현이 그런 감금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수미 본인 역시 윤소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엄마...”이지원은 떠보듯 정수미를 부르고는 말을 이었다.“엄마, 언니가 사라졌어요.”그녀는 박민정의 일부터 처리한 후 윤소현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뭐?”“소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저도 모르겠어요. 오늘 언니랑 같이 산부인과 검진 가려고 했는데, 어딜 갔는지 갑자기 사라졌어요.‘이지원이 대답했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이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상황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유남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윤소현은 제가 가둬놨습니다.”유남준이 말했다.정수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현이는 왜 가둔 거죠?”“민정이의 실종은 분명 윤소현이랑 관련이 있으니까요.”유남준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이지원에게로 옮기며 말했다.“윤소현이 그러더라, 이지원 네가 내 아이들 데리고 갔다고. 민정이는 아이들 찾으러 간 거라고 하던데, 어디로 데려간 거야?”그 말에 이지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준 오빠?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저랑 민정 언니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하지만 유남준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 리 없었다.곧바로 몇 명의 경호원이 다가와 이지원을 제압했다.“끌고 가!”이지원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유남준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그녀가 스스로 이곳에 등장한 것도 전부 유남우 때문이었다. 그가 이지원에게 직접 유남준을 찾아가 박민정의 실종이 자신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을 어필하라고 조언해주었기 때문이었다.“오해예요, 오빠. 소현 언니가 왜 그런 얘길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민정 씨 아이들 데리고 간 적 없어요.”뒤이어 그녀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엄마, 엄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그동안 집에만 있었고, 어디 간 적도 없어요.”하지만 정수미는
정수미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답했다.“유 대표는 이미 내가 민정이 친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죠?”유남준은 그 말에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런데 대표님은 제 말 안 믿었잖아요.”정수미는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내 잘못이에요... 저도 너무 후회 중이에요.”그동안 윤소현이 늘 박민정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놨던 탓에 정수미는 박민정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못했다.그 탓에 정수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민정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줘버렸다.박민정이 자신을 찾아왔던 그때도, 정수미는 그녀를 가차 없이 비웃고 쫓아내 버렸다.“지금 민정이 어디 있어요? 찾았어요?”눈시울이 붉어진 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유남준은 폐허로 시선을 돌리며 자신의 손에 꽉 쥐고 있던 반지를 보여주었다.“마지막으로 추적된 곳이 여기인데, 방금 민정이 반지를 찾았어요.”그가 낮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정수미는 몸을 휘청이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색을 보였다.놀란 비서가 다급히 정수미를 부축해 주었다.“대표님.”“얼른, 얼른 주변 수색해!”정수미가 지시했다.“알겠습니다.”비서는 곧바로 인력을 충원해 폐허 속에 남았을지도 모를 박민정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밤이 깊도록 폐허 속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박민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박민정과 관련된 물건만 몇 가지 발견되었을 뿐이었다.비서는 멍하니 서 있는 정수미의 곁에 서서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아가씨 말이에요,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그 말에 정신을 차린 정수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비서를 올려 보았다.“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대로 봐야 할 것이고, 죽었다면 죽은 대로 시체를 봐야만 했다.정수미는 박민정이 이렇게 실종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민정이 여기 없는 거 확실해. 다른 데서 계속 찾아봐.”“네.”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유남준도 폐허
“뭐라고요?”정수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어떻게 실종됐다는 거예요?”“저도 잘은 몰라요.”설인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아무튼 벌써 이틀이에요. 이틀 동안 찾아 헤매는 중인데 도통 안 보이네요.”그 말을 들은 정수미가 몸을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런 그녀를 비서가 붙잡아 주었다.“조심하세요, 대표님.”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정수미는 비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겨우 찾았는데 실종이라니?”“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누가 데려갔는지는 알아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비서가 애써 정수미를 위로했다.“그래, 얼른 사람 보내서 민정이 좀 찾아내.”정수미가 말했다.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박민정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박민정을 찾아낼 것이다.“알겠습니다.”정씨 가문에서도 사람들을 시켜 전국적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힘없이 자리를 뜨는 정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인하는 의아했다. 정수미가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민정 씨, 제발 빨리 좀 돌아와요.”설인하가 혼자 중얼거렸다....한편, 유남준은 거의 진주 시내 전체를 뒤집다시피 했지만 박민정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유남준은 주변 지역에까지 사람을 보내 수색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그렇게 마침내, 단서를 발견했다.유남준은 즉시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그리고 정수미는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 역시 박민정을 찾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결국, 두 세력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로 했다.그렇게 수색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사람들은 곧장 단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불에 다 타버린 집뿐이었다.차에서 내린 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까맣게 불타버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민정아!
그녀가 쥔 친자 확인 감정서에는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고 적혀 있었다.비서는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온 서류들을 건네며 말했다.“이번엔 틀림없습니다, 대표님. 박민정 씨는 대표님의 친딸이 확실합니다. 지난번엔 저희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친자 확인 감정서를 쥔 정수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어떻게... 그 걔가 어떻게 내 딸이야?”박민정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수미는 너무 갑작스러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녀 역시 자신이 친딸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 짓들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날 이런 식으로 갖고 놀아?”정수미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친자 확인 감정서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괴로웠다.“내가, 내가 그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라는 작자가 딸한테 오히려 모욕감만 잔뜩 줬으니...”정수미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오랫동안 찾고 있던 딸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다.더군다나 친딸을 괴롭히는 자신의 양딸을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했다.비서 역시 이런 운명의 장난에 착잡함을 느끼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 조금 더 일찍 아셨더라면 민정 씨를 해치지 않으셨을 겁니다.”정수미는 비서의 위로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그 아이가 날 찾아왔을 때도 난 상처만 잔뜩 줘버렸어. 얼마나 아팠을까.”오랜 세월 동안 눈물이라는 것을 거의 흘려보지 않았던 정수미였지만 하늘의 장난과도 같은 이 상황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난 정말 나쁜 년이야! 어떻게 친딸한테 그럴 수가 있어!”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전 재산을 내걸고서라도 얻고 싶을 지경이었다.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정신 차리라며 자신의 뺨을 수차례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가야
하지만 이 세상은 생각보다 컸고, 유남우가 박민정의 모든 인간관계를 전부 끊어버린 지금, 유남준은 어쩌면 평생 박민정을 찾지 못할 지도 몰랐다.“신경 쓸 필요 없어요.”유남우가 대답했다.“네.”이지원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럼 약속한 건 어떻게 된 건가요?”“아직 일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자꾸 서두르는 거죠?”유남우가 다시 말했다.유남우를 이미 따르기로 한 이지원은 지금 모든 것을 그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죄송합니다.”“이제 마지막까지 딱 한 단계 남았어요. 유남준한테 박민정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되거든요.”유남우가 입을 열었다.이지원은 그런 유남우를 보면서 보통 미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 한 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준비하죠.”“그래요.”이지원이 자리를 뜨자 유남우는 다시 코트를 입고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하자 홍주영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남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 요즘 안색이 안 좋아보이시는데, 따로 주치의라도 불러드릴까요?”“필요없어.”유남우는 단호히 홍주영의 말을 거절했다.“주영아, 난 요즘 하루하루가 정말 기쁘거든. 나쁜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 네가 괜한 걱정 하는 거야.”그 말에 홍주영도 더는 권하려 하지 않았다.유남우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더미를 한아름 안고 온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도련님, 실례가 안 된다면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요 며칠 동안 어디 다녀오신 건가요?”유남우는 퇴근 들어 계속 외출을 하는 것 같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서류 위로 사인 하던 남자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 묻지 말아야 할 질문 아닌가?”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냉기가 스며있었다.유남우의 이런 말투는 처음 들어보는 홍주영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유남준은 그런 윤소현의 말을 전부 믿을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다.“우선 이 여자 가둬요.”그는 부하에게 명령했다.“네.”그 말에 당황한 윤소현이 말했다.“아주버님, 남우 씨를 봐서라도, 제 배 속의 아이를 봐서라고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하지만 유남준은 그런 윤소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만 남겼다.“민정이를 찾았을 때, 민정이 입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면 그때 풀어드리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소현 씨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그렇게 윤소현은 가차 없이 차에 태워졌다. 혼자 남겨진 그녀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후회가 물 밀듯 밀려왔다. 자신이 왜 박민정을 찾아갔었는지, 왜 그 일을 인정했던 건지.이제 윤소현은 더 도망갈 곳이 없었다.남준은 계속해서 인력을 충원해가며 박민정을 찾는 게 총력을 기울였다.마침내 유남준은 서다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사모님께서 택시에 남기신 귀걸이를 찾았습니다. 택시 안에 내장된 블랙박스 영상으로 사모님의 이동 경로까지 모두 파악했습니다.”“알겠어, 그 영상 나한테 보내줘. 그 경로대로 찾아봐야 하니까.”“네.”수색 범위가 좁아지자 유남준은 김인우와 방성원의 인력까지 동원해 박민정을 찾기 시작했다.한편, 이지원은 유남우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장소 바꿔요. 유남준이 추적 중인 모양이니까.”“네.”이지원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유남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두 아이는 남겨놓고 가요.”두 아이가 작전을 방해할지도 몰랐다.이지원은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유남우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남우 씨가 어떻게 저를 유남준한테서 구해준다는 거죠? 유남준 그 냉혈한이 작정하고 저를 공격하면 어쩔 건데요?”이지원은 윤소현 같은 그 바보가 유남준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원 씨가 비밀만 지켜준다면, 제가 책임지고 지켜드리죠.”유남우가 약속했다.“좋아요.
윤소현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내랑 아이를 못 지킨 건 아주버님인데, 왜 그걸 저한테서 찾아요? 웃겨, 정말.”유남준의 인내심이 결국 바닥나 버렸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유남준은 곧장 CCTV를 통해 박민정이 스스로 병원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곧장 부하직원들에게 박민정이 병원을 벗어난 후의 행방을 추적하도록 지시했다.한편, 윤소현은 여전히 곁에서 비아냥거렸다.“아주버님, 제가 봤을 땐 굳이 찾을 필요도 없어 보여요. 분명 바람 나서 다른 남자랑 도망간 게 분명해요. 애도 있으면서 참... 그냥 조용히 살지...”윤소현은 끝을 모르고 혼자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 순간, 유남준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윤소현에게 다가간 유남준은 조금 전의 신사다운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는 손을 뻗어 윤소현의 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다.“네 애새끼가 20주쯤 됐다고 했지? 내가 지금 너 죽이고, 의사 찾아가서 애 꺼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우리 가문 재력 정도면 조산아 살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거든.”그 말에 윤소현의 동공이 커지더니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녀는 최대한 유남준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조금 전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건지 점점 땅에서 발이 떨어지더니 숨쉬기가 어려워졌다.이 미친놈은 지금 마음만 먹으면 정말 윤소현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윤소현은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며 발버둥 쳐봤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목을 움켜쥔 유남준의 힘은 점점 강해지기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제야 윤소현은 처음으로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유남준을 향해 눈빛으로 용서를 구했다.그녀의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갈 때쯤, 남자는 마침내 손에서 힘을 풀었다.윤소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목을 감싸고 거친 숨과 기침을 내뱉었다.“이제 말할 수 있겠지? 민정이랑 아이는 지금 어디 있어?”그 말을 하는
“그땐 내가 직접 이 애새끼 목을 졸라 죽여버릴 거니까!”이지원은 아이의 여린 목덜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솔직히 얘도 참 귀엽게 생겼어. 네 어릴 때처럼 말이야.”순간 당황한 박민정이 외쳤다.“애한테 손대지마! 네가 원하는 게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이지원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아이의 목에서 손을 뗐다.“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나도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이렇게 어린 애한테까지는 손대고 싶지 않단 말이야.”말을 마친 이지원은 다시 아이를 여자에게 넘겨주었다.혹시라도 박민정이 다시 반항할까 봐 두려웠던 것인지 이지원은 두 여자에게 아이를 이곳에 두고 가게 했다.뒤이어 누군가가 박민정의 결박을 풀고는 그녀를 의료용 침대 위로 눕혔다.앞서 나섰던 흰 가운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이제 눈을 감으시고, 제가 하는 말에 무조건 따르셔야 합니다. 아시겠죠?”“네.”박민정은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아직 이성을 잃지 않은 박민정은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그 남자의 말에 따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봤지만 결국엔 그가 유도하는 무의식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몸이 지나치게 허약해졌던 박민정은 의사에 유도대로 무의식 속에서 양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그리고 뒤이어 친모인 정수미가 했던 말들도 떠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니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흰 가운의 남자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치료는 하루 이틀만으로는 안 됩니다. 꾸준히 받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이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의사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이지원은 이내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이쪽 준비는 끝났어요. 약속하신 거 꼭 지키셔야 해요.”“걱정 마세요, 제가 지원 씨를 속일 리가 없잖아요.”그 한 마디에 이지원은 청심환이라도 삼킨 듯 마음이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