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이 달뜬 호흡을 뱉었고 다행히 키스는 오래가지 않았다.유남준의 손이 그녀의 뜨거운 얼굴에 닿자 그는 멈칫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나 때문에 놀랐지?”박민정이 얼굴을 돌리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그가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너 임신했어. 움직이지 마.”“나 임신한 거 알면서 이래요?”박민정은 화를 내며 말했다.“우린 부부니까 키스는 당연한 거야.”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꾸하지 않았고 유남준은 그녀가 그렇게 조용한 게 익숙하지 않았다.“뭐라고 말 좀 해봐, 응?”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비굴하게 애원하는지 몰랐다.“할 얘기 없어요. 내 방에 갈 테니까 나 좀 놔줘요.”박민정이 차갑게 말하자 유남준은 동의하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이제부터 그는 박민정을 찾는 사람들이 없도록 박민정의 곁을 지킬 생각이었다.“요즘 어렴풋이 어렸을 때가 기억나.”박민정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내가 너 처음 봤을 때 바닥에 쓰러져서 무릎이 다 까지도록 괴롭힘당했던 거 기억나?”박민정은 멈칫했다.솔직히 지금까지도 자신이 언제 유남준을 만났는지, 언제 유남우를 만났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그녀가 유남준을 처음 본 것은 집사를 따라 박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였다.당시 두 가족은 이웃집에 살고 있었고, 유남준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마당 밖에 서 있었다.지금 보니 그녀가 처음 만난 사람은 유남우였던 것 같다.“그리고 나서요?”박민정이 되물었다.“그때 나를 남준 오빠라고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 모르겠네.”유남준은 박민정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유남우의 대체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당신이 그 양아치들을 때려눕혔어요?”박민정은 너무나도 낯익은 유남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충격의 파도가 가슴을 파고들었다.“응, 그때 네가 너무 불쌍해서.”그의 말에 박민정의 동공이 움츠러들었고 저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
정민기는 박민정에게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모두 말했다.그가 지금 궁금해하는 것은 수사를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였다.“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부탁드릴게요.”박민정은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그동안 추측만 했지 그것이 모두 사실인 줄은 몰랐다.멍청한 동생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다니.유남준은 박민정이 통화를 끝낸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이야?”박민정은 정민기가 한 말을 그에게 전했고 그녀는 유남준을 그저 털어놓는 상대로만 생각했다.“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유남준은 오래전부터 눈치를 챘지만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박씨 가문의 것을 되찾고 싶어요.”박민호가 재산을 다 잃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이거는 사기를 당한 것이 분명해졌다.아버지가 만약을 대비해 유언을 남긴 건 어쩌면 한수민의 속셈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어리석고 유남준에게만 집중하느라 박씨 가문의 몰락 원인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그래, 그렇게 해.”유남준은 박민정을 돕기로 결심했고 박민정은 굳이 그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했다.“어머님께 빨리 말씀드려서 빚진 돈 다 갚아요.”그녀는 동시에 유남준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나 좀 쉴게요.”유남준의 허전한 품에 팔을 뻗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그녀가 나가자 유남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확인했고 서다희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가 한수민의 과거를 알아낸 후 정민기에게 전했다고 알렸고 유남준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YN그룹 잘 지켜봐.]서다희는 이불 속에 누워 대표님의 새로운 지시를 보고 조금 의아한 표정이었다.‘갑자기 YN그룹은 왜?’[네.]그는 바로 답장을 보낸 뒤 휴대폰을 옆으로 치우고 한숨을 내쉬었다.“언제까지 가난한 척할 건지 모르겠네.”...다음 날 이른 아침.박민정은 전 변호사인 장명철 변호사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유언장을 전달한 뒤 전반적인 상황을 전했
유남준의 낯빛은 별로 수그러지지 않았다.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박민정이 물었다.“출근한 거 아니었어요?”그러자 그의 잘생긴 얼굴에 불쾌한 내색이 더 훤히 드러났다.집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출근은 무슨.“오늘 출근 안 해도 돼.”“아, 그래요? 그럼 푹 쉬어요.”박민정이 일어나자 유남준은 그의 앞을 떡하니 가로막았다.“뭐 할 말 더 없어?”어젯밤 일이 떠오른 박민정은 서둘러 대답했다.“없어요. 나 일해야 되니까 이만 나갈게요.”말을 마치고 방을 나가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품에 꼭 감싸 안았다.그의 목울대가 약간 울렁였다.“민정아. 기억해, 난 유남우가 아니야. 또한 영원히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없어.”박민정이 멈칫하며 그를 올려다봤다.“다 기억해 낸 거예요?”“아니.”그의 큰 손바닥이 박민정의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네가 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거 싫어, 난.”박민정은 그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저 잠시 말실수한 거예요.”“그래? 그래야 할 거야.”유남준의 말에는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그의 말투가 왜 갑자기 이리 퉁명스러워졌는지. 박민정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유남준의 휴대폰이 울렸다.그가 전화를 받는 틈을 타 박민정은 재빨리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방에서 나온 뒤, 그녀는 얼른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품 안이 텅 비자 유남준은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대표님이 살고 계신 집 밖에 최근 자꾸 수상한 놈들이 기웃거리는데 오늘 드디어 한 놈을 잡아서 족쳤더니 사모님께서 보냈다고 합니다.”저편에서 경호원이 보고했다.유남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왜 보냈대?”“아이 하나 감시하라고 했다는데요.”아이라...지금 이 집에 아이라곤 예찬이밖에 없는데, 고영란이 왜 예찬이를 감시하라고 했을까.잠깐 생각하다 유남준은 휴대폰으로 지시했다.“그놈 어머니 앞에 내다 버려.”...유앤케이.온몸에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든 한 남자가
호산그룹.유남우가 사람을 보내 윤소현을 배웅하게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비서 홍주영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진짜 저 여자랑 약혼하실 거예요?”윤소현이 비록 이력 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지만 오만하고 도도한 데다가 지나치게 공리주의적인 성품을 지녀 유남우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라고 홍주영은 생각했다.컵에 담긴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유남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결혼 해야지.”그와 같은 나이면 진작에 결혼해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도 남는다.“하지만 결혼을 목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하는 건 너무...”“가서 일해.”홍주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남우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홍주영은 분에 겨워 살짝 붉어진 눈시울로 하는수 없이 떠나갔다....약혼식 청첩장은 금방 하객들한테 전달되었고, 유남준도 물론 받게 되었다.한창 일 하고 있던 유남준은 서다희가 유남우와 윤소현의 약혼식 소식을 알리자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이 없었다.“안 간다고 할까요?”유남준이 그의 친동생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서다희가 제안했다.“약혼한다는데 당연히 참석해야지.”유남준은 며칠 전 박민정이 자신을 보며 유남우의 이름을 불렀던 일을 떠올렸다. 유남우의 약혼식에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는 궁금했다.집에 돌아가자 유남준은 청첩장을 박민정한테 내밀었다.예기치도 않은 소식에 박민정은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다.슬프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왜 나한테 이걸...”“우린 부부니까 당연히 같이 참석해야 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듣자마자 거절하려고 하는데, 곁에 있던 은정숙이 입을 열었다.“네가 형수님인데 참석하는 게 예의상 맞는 거야.”은정숙이 웬일로 유남주의 편을 드는지 박민정은 얼떨떨했다.“알겠어요. 그럼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녀가 이리 쉽게 승낙할지는 유남준도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이왕 선물 얘기
“바보야, 그렇게 신통한 의사가 어딨어.”박민정이 농담한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는 은정숙은 그녀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늙은이야, 오래 살아봤자 젊은 사람의 미움이나 받지. 이만큼 산 것도 충분해.”박민정은 눈시울이 젖어 들었으나 애써 눈물을 삼켰다.“무슨 말씀이에요... 살아 계셔서 예찬이랑 윤우가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고 결혼해서 애 낳는 것도 보셔야죠. 그러면 외증조할머니가 되시는 거예요.”그녀의 말을 들으며 은정숙은 눈에 희망이 어렸다. 그때까지 살 수만 있으면 너무나 좋으련만 자신이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친딸보다 더 친한 아이를 얻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유일하게 시름이 놓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박민정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은정숙은 며칠 전부터 유남준이 일부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빚을 졌다는것도 거짓말이거니와 그가 박민정의 곁에 남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아챘다.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내고 있지만, 박민정이 구했다는 해외 전문가도 유남준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걸 알고 있다.그 일을 제외한 다른 일에서도 유남준이 정말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응, 그래.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애들이 결혼하는 걸 지켜보마.”“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럼 전문가분들한테 모레 오라고 할게요.”“그래.”박민정은 그제야 안심하고 은정숙이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다 방을 나와 전문가한테 연락을 취했다.그녀가 나간 후 누군가 또 방문을 두드렸다.은정숙은 눈을 떴다.“들어와요.”유남준이 방안에 들어섰다.“고마워요, 아주머니.”그는 누구한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이 드물었다.은정숙이 그를 대하는 낯빛은 여전히 그리 좋지 않았다.“고맙다는 말은 넣어둬요. 유남준 씨를 도우려는 게 아니니까.”박민정이 유남준한테 일말의 감정이 남아 있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고, 유남준도 변했기에 그녀가 나선 것이다.“
유남준의 준수한 외모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잘생기니까 참 좋네. 눈이 멀어도 스폰해 주는 사람이 있고.”“여자가 스폰해 준다고 어떻게 단정해? 저 여자도 예쁘게 생긴 거 같은데.”“그것도 그렇네? 그럼 남자가 여자를 스폰해 주는 건가? 아니, 굳이 왜 장님한테?”물건 사는 여자 몇 명이 조심스럽게 의논하고 있었다.그녀들의 대화가 유남준의 귀에 속속들이 박혀 들어왔다. 말끝마다 장님, 장님 하는 통에 유남준은 온몸으로 찬 기운을 내뿜었다.“민정아, 나 잠시 나갔다 올게.”“내가 도와줘요?”“아니, 괜찮아.”유남준은 혼자 나가기로 했다. 길은 다 기억하고 있지만 사람과 부딪힐까봐 걱정이었다.이때 매장 여직원이 얼른 유남준의 곁에 가서 부축하며 홀딱 반한 얼굴로 물었다.“손님, 어디로 가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까요?”그러나 그녀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은 겨우 3초밖에 유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남준이 그녀의 손을 홱 뿌리쳤기 때문이다.유남준은 지극히도 불쾌한 어조로 짧게 한마디 했다.“꺼져!”여직원은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매장안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박민정도 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유남준이 화를 내는 모습은 기억을 잃고 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얼른 다가가서 바닥에 주저앉은 여직원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죄송해요. 이 사람이 낯선 사람이 만지는 걸 싫어해요.”여직원은 유남준의 사나운 반응에 놀라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아, 네. 괜찮아요.”그제야 박민정은 유남준의 팔을 잡으며 비난했다.“왜 그래요? 무슨 일이든 말로 하면 되지, 왜 여자를 밀치고 그래요?”방금 여직원한테 팔이 잡혀 속이 엄청 불편한 데다가 박민정이 이렇게 얘기하니 유남준은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난 밀친 게 아니라 그저 손을 뿌리쳤을 뿐이야.”“그래도 좀 신사답게 행동해요, 네?”박민정이 소리를 낮추어 타이르자 유남준은 마지못한 얼굴로 대답했다.“알았어.”신
윤소현!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박민정은 온몸이 경직되었다.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유남준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왜 그래?”박민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무것도.”유남준의 미간을 찌푸리며 좋았던 기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네가 가기 싫으면 나 혼자 갈게.”“아줌마가 얘기했잖아요. 내가 형수니까 반드시 가야 한다고요.”유남우의 형수임을 인정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유남준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집에 돌아가서 산 선물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박민정은 소파에 쓰러져 휴식을 취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전화를 받아 누군지 묻기도 전에 전화기 저편으로부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정아, 나 남우야.”그 한마디 말에 박민정은 일순 가슴이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이전에 두 사람이 만나긴 했었지만,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관계상 두 사람이 지켜야 하는 선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무슨 일이에요?”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갑자기 입을 열려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만나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유남우가 물었다.전에 박민정을 여러 번 만나고 싶어 했지만 전부 그녀한테 거절당하여 이번에는 직접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자신을 만나기를 원하는지 그도 확실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어렸을 때 유남우가 항상 자신을 도왔다는 생각에 거절하기가 미안하여 대답했다.“좋아요.”“그럼 너희 집에서 우회전하고 200미터 되는 곳으로 와. 내가 거기서 기다릴게.”유남우는 박민정이 사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가 벌써 근처에 와있을 줄 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은 전화를 끊자마자 외투를 가지고 나갔다.유남준은 서재에서 일을 보느라 그녀가 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유남우가 이곳까지 찾아 올 줄은 그도 전혀 예상 못 한 일이었다.박민정은 외투를 걸치고 우산을 쓰고 나갔다. 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 눈앞이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허
유남우는 마침내 그녀가 묻자 얇은 입술을 살짝 벙긋했다.“민정아, 너 아주 어릴 때부터 유씨 가문에 왔잖아. 유씨 가문에 쌍둥이가 있다는 거 들었어?”박민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유남준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착각한 건 아닌지 궁금해했을 것이다.하지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진주로 온 이후 가끔 유씨 가문에 드나들었다.남들 입에서조차 유남준이 쌍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나는 심각한 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햇볕을 무서워해서 어릴 때 거의 모든 시간을 중환자실에서 보냈어. 가족들은 심지어 내가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내 존재를 외부에 알릴 수가 없었어. 상태가 조금 호전된 후에야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몸이 너무 약해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너 외에는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지.”유남우는 말을 이어갔다.“애초에 내가 형인 유남준이라고 말한 이유는 네가 큰 병을 앓는 나를 싫어할까 봐, 그리고 유씨 가문에서 나 같은 놈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박민정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고초를 깨달았다.“미안해요, 전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일부러 남우 씨를 만나지 않고 모른 척하려던 게 아니라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에요. 어렸을 때 남우 씨가 나를 도와주고 곁에 있어 주던 모습 아직도 기억해요.”박민정은 붉어진 눈으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한때 자신을 오빠보다 더 아껴주던 사람과 이런 이유로 멀어진 자신이 갑자기 바보처럼 느껴졌다.유남우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자 박민정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그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민정아, 우리 약속 기억해?”박민정은 그를 올려다보았다.“나 돌아오면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기억나?”유남우가 분명하게 묻자 박민정의 몸이 약간 굳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때 그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칼에 찔렸다.그는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