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유남준 씨, 우린 끝났어요. 이러지 마요!”유남준은 박민정의 옷을 벗기면서 얘기했다.“이혼은 혼자서 하는 거 같아?”박민정은 벗어나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유남준을 깨무는 것이었다.그녀는 바로 유남준의 어깨를 꽉 물었다.유남준은 신음을 약간 흘렸지만 멈추지 않았다.박민정의 입가에는 피비린내가 났다. 그녀는 유남준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욕했다.“유남준, 이 쓰레기! 미쳤어요? 결혼했을 때는 내 몸에 손도 대지 않겠다더니, 난 이제 당신을 안 좋아하는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그녀는 울먹이면서 겨우 말을 뱉어냈다.“내가 잘못 봤어요. 이제 당신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한 사람은 처음부터 당신이 아니었어요!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유형도 아니에요! 그냥 미친 조울증 환자죠! 당신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했다. 커다란 손으로 박민정의 얼굴을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계속해봐.”박민정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유남준 씨,. 남자답게, 나랑 이혼해줘요. 돈도 이미 다 돌려줬는데 인제 와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유남준은 바로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너무 아픈 나머지 박민정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등을 치며 놓아달라고 발악했다.하지만 유남준은 놓아주지 않았다.박민정은 그저 그를 같이 깨물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의 입속에는 어느새 피 맛이 가득했다. 유남준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고 미소지었다.“너도 아픈 걸 알아? 너랑 연지석은 아들을 둘이나 낳았어. 난 3년 동안 널 무시했지만 넌 죽은 척하고 5년이나 도망쳤고. 누가 더 너무한 건데.”박민정은 그대로 굳었다.둘이라니.박예찬의 존재를 알게 된 건가?유남준은 그런 박민정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고 그녀의 얼굴을 잡은 채 가까이 다가갔다.“내가 그 둘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박민정은 유남준을 철저히 끊어내리라 생각했다.그날 저녁, 눈보라가 거세게 쳤다.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 꽁꽁 갇혔다.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이 마시고 싶었다.“물 마시고 싶어요.”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유남준은 눈을 천천히 뜨더니 손을 뻗어 침대 맡에 있는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손등에는 아주 선명한 잇자국이 나 있었다.어깨에도 있었고 입술은 이미 부르터있었다.그는 물병을 따서 박민정에게 건넸다.물을 조금 마신 박민정은 몸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위에서 위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고 토가 몰려왔다.“우욱.”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유남준의 손을 뿌리친 채 침대 맡에서 구역질했다.유남준이 일어나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박민정은 바로 그의 손을 쳐내고 말했다.“건드리지 말아요.”유남준은 그대로 굳었다.박민정이 차갑게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이제 꺼져줘요.”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에 그늘이 졌다. 다시 손을 뻗은 유남준은 박민정의 발악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한 시간 준다. 정리하고 나와. 진주로 가게.”이곳에 있은 시간도 꽤 길었다. 더는 박민정과 함께 이곳에 남을 시간과 힘이 없었다.유남준은 손에서 힘을 풀고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가운을 입은 후 문을 열고 나갔다.박민정은 이제 도망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젯밤 알게 되었다. 유남준이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두 사람이 아직 결혼한 사이기 때문이다.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랑아, 너 이혼 소송도 알아?”...한 시간 후.박민정은 캐리어를 들고 입구에 왔다.유남준은 뒤에 경호원을 데리고 나왔다.그는 이미 박민정을 억지로 데려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박민정이 고분고분하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정장을 차려입은 유남준은 박민정에게로 걸어왔다.“잘 생각했어.”“네.”박민정은 모호하게 대답했다.경호원이 나서서 그녀의 캐리어를 들고 두 사람 뒤를 따
박민정이 조하랑에게 이혼 소송에 대해 얘기했을 때, 조하랑은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다.“응. 이렇게 계속 지내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박민정은 고소장을 보더니 조하랑에게 얘기했다.“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알려줘. 이 소송을 빨리 끝내고 싶어. 우리 이길 수 있을까?”조하랑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보면서 얘기했다.“민정아, 만약 전의 진단서를 증거로 가져온다면 80%의 승률이 있어.”결혼했을 때, 박민정이 계속 아이를 갖지 못해 계속 치료를 해왔다. 그러다가 심한 우울증이 생겼고 또 유남준과 몇 년 떨어져서 살았다.이 증거들로 이혼이라면 이길 수 있다.박민정도 떠올리고 얘기했다.“알겠어. 준비해서 보내줄게.”“응. 만약 유남준과 이지원이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도 있으면 더 좋아. 혹은 유남준이 너한테 불리한 짓을 했다는 증거도 좋고.”조하랑이 얘기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가서 고소장 제출한다?”“응.”...다른 한편.유남준은 돌아오자마자 몰래 이상한 짓을 한 주주들을 혼냈다.그는 아직 박민정이 이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일을 처리한 그는 얼른 두원으로 돌아왔다.박민정도 돌아와 있었다. 보일러를 틀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꽁꽁 싸매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유남준은 돌아와 코트를 아무렇게 던지고 보일러를 더 크게 틀었다.“밥 먹었어?”박민정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네.”유남준은 걸어와서 박민정 앞에 섰다. 박민정이 만두처럼 자기를 이불 속에 감춘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게 되었다.“난 아직 못 먹었어. 저녁 먹으러 가자.”“가고 싶지 않아요.”몸이 허약해진 박민정은 추위를 잘 탔다. 해외는 국내보다 기온이 높았기에 잘 몰랐다.유남준은 옆에 앉아 그녀를 꼬옥 안았다.“이제 좀 따뜻해?”박민정은 약간 굳었다.“병원 가볼까?”“아니요.”유남준의 질문에 박민정이 바로 거절했다.그녀도 병원을 가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의사는 그저 추위를 많이
그렇게 말하던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유남준은 잠에 들지 못하고 유남우의 말을 떠올렸다.“그 애가 좋아하는 건 나야. 그 애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나고.”겨우 잠에든 유남준은 박민정이 그를 떠나는 꿈을 꾸었다.그가 잠에서 깼을 때, 박민정은 아직 옆에 있었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유남준은 잠을 설치고 유남우의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어쩔 수 없이 고영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유남우는요?”“남우의 병세가 악화되어서 병원에 갔어. 왜?”고영란이 물었다.유남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얘기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는 전화를 끊었다.고영란은 박민정의 일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유남준이 바로 전화를 끊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고영란이 비서에게 물었다.“예찬이는 유치원에 갔어?”“원장님 말로는 예찬이 아버지가 예찬이를 데려간 후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비서가 대답했다.고영란은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조하랑과 약속 잡았어?”비서는 고개를 저었다.“조하랑 씨가 만나 뵙기 싫다고 합니다.”고영란도 어쩔 수가 없었다.박예찬이 눈에 보이지 않자 그녀는 식욕을 잃었다.“난 언제쯤이면 손주를 보려나...”유남우는 몸이 좋지 않았고 유남준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했다.유남준이 애써 만들어낸 모든 것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고영란은 치가 떨렸다.“원장한테 가서 물어봐. 예찬이 아빠가 누군지. 내가 만나봐야겠어.”네.”비서는 바로 일을 처리하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찬이 아버지가 김인우라는 것을 알아냈다.고영란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얼른 김인우를 데려왔다.병원에서.김인우는 수술을 마치자마자 고영란 비서의 전화를 받았다.김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항상 사이가 좋았다. 김인우도 고영란을 친족처럼 생각했기에 그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옛 저택으로 향했다.그러면서 유남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남준아, 사모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너랑 민정 씨
그녀는 이렇게 썼다.[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전 이 사업이 꼭 필요했어요. 그리고 왜 이혼의 일에 대해 물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결혼 생활은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하지만 모든 결혼 생활이 똑같은 결말인 것은 아니니 만약 결혼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얼른 해결하고 사모님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라요.]긴 문자를 보면서 유남준의 마음은 더욱더 복잡해져 갔다.그는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이제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박민정은 자면서 핸드폰 알림 소리를 듣고 문자를 확인했다.상대방도 정말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상대방이 대답을 해줬다는 것에도 놀랐다.박민정이 얘기했다.[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요?]유남준은 생각하다가 글을 썼다.[내가 전에 잘 해주지 못해서...]이윽고 그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예전에는 날 사랑했었어요.]하지만 그 말을 보내려다가 유남준은 삭제해 버렸다.박민정이 사랑한 건 그가 아니었다.유남준은 멈칫하고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얘기했다.[내가 전에 잘 해주지 못해서 지금은 다른 남자랑 아이까지 낳았어요.”박민정은 대화 상대가 유남준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글만 읽어볼 뿐, 자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죄송해요.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박민정이 대답했다.이윽고 상대가 또 대답했다.[괜찮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못 도망가게 할 거니까요.]그 말을 본 박민정이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상대방이 이미 로그아웃을 했다.그 사람을 위해 위로의 글이라도 남기려던 찰나, 누가 침실의 문을 두드렸다.언제 온 것인지 모를 유남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깼어? 일어나서 아침부터 먹어.”박민정은 얼른 핸드폰을 거두었다.유남준은 그런 박민정의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까까지 자기와 대화 중이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물었다.“누구한테 문자를 보내는 거야.”박민정이 침대에서 일어나 표
유남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원하는 건 항상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박민정도 더 캐묻지 않고 따뜻한 소파에 앉아 익숙한 주변 환경을 보면서 그리움을 드러냈다.“여기가 마음에 들면 앞으로 여기 살자.”유남준이 얘기했다.박민정은 그가 오해했다고 생각했다.어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박민정은 이곳이 전혀 좋지 않았다.물론 아버지가 잘 대해주긴 했지만 그는 일하는 시간이 더욱 많았다.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 그녀는 이 집에서 엄마와 남동생의 오붓한 장면을 보고 자기는 낯선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여기서 살고 싶지 않아요.”유남준은 침묵했다.박민정은 유남준을 보면서 얘기했다.“집을 이지원한테 돌려줘요. 계산은 제대로 해요.”조하랑은 전날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러 법원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유남준도 알게 될 것이다.박민정이 몸을 일으켰다.“다른 일 없으면 하랑이한테 가볼게요.”유남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밖은 정말 추웠다.유남준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시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박민정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유남준과 소송을 할 준비만 하고 있었다.차를 타고 조하랑의 셋집으로 간 그녀는 소송에 쓸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민정은 해외의 입원 기록과 진료 기록들을 가져다주었다.“법원 쪽은 어떻게 됐어?”“응. 심사가 끝났어. 곧 유남준도 이 소식을 알게 될 거야.”조하랑이 대답했다.“그럼 오늘 밤은 돌아가지 말아야겠어.”박민정은 조하랑의 담요를 무릎에 덮으며 얘기했다.조하랑이 걱정하면서 물었다.“오늘 밤 돌아가지 않으면 유남준이 미치는 거 아니야?”“미치는 게 차라리 낫지. 너한테 녹음기도 있지?”박민정이 물었다.조하랑은 바로 이해했다.“물론이지. 변호사로서 녹음기가 없을 리 없지.”그녀는 작은 브로치를 박민정의 옷에 달아주었다.“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바로 여기를 눌러, 그럼 녹음이 되거든.”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
박민정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다른 한편, 유남준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부술 뻔했다.옆에 서 있는 서다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남준은 거대한 바위가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얼마나 남았어.”“보름입니다.”일반적으로 사건을 접수한 후, 보름 정도 자료를 준비할 시간을 준다.서다희도 박민정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서다희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박민정이 유남준을 용서하고 예전처럼 돌아올 줄 알았다.박민정 같은 여자에게 유남준은 아주 과분한 남자였으니까 말이다.유남준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박민정의 변호사는 누구야.”“조하랑이라고, 친구입니다.”유남준은 서다희를 보면서 얘기했다.“조하랑의 전 남자 친구도 변호사라고 했지?”서다희는 바로 유남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주 잘나가는 변호사죠. 강연우라고 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서다희는 빠르게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소송으로 유앤케이 그룹을 이겨본 사람은 없다.유남준도 적지 않은 소송을 견뎌왔으니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대방이 박민정이니 상황이 난감했다.그는 운전해서 조하랑의 아파트로 갔다.한정판 슈퍼카가 이런 곳에 주차되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유남준은 그런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와. 얘기 좀 하자.”10분 후, 박민정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걸어 나왔다. 그녀는 차 앞에 우뚝 서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그의 어두운 시선이 박민정을 향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박민정은 눈을 밟고 건너가면서 몸에 지닌 녹음기를 켰다.“무슨 말을 하려고요?”“차에 타서 얘기해.”유남준이 차 문을 열었다.박민정은 차에 타기 싫어 뒤로 물러났다.“여기서 얘기해요.”“차에 타라고!”유남준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커졌다.그 점을 안 유남준이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추위 타잖아.”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차에 탔다.유
유남준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박민정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 안았다.“어떻게 해야 취소할 건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유남준은 이기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지고 싶지 않았다.정말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박민정을 곁에 붙잡아 놓아야 할지 몰랐다.“네가 얘기하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정도에서 다 들어줄게!”유남준이 얘기했다.박민정은 애써 그한테서 벗어나려고 했다.유남준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얘기했다.“연지석이 연락했어?”박민정은 그를 밀어내면서 얘기했다.“난 원하는 게 없어요.”유남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는 그렇게 박민정을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차는 길가에 서 있었고 눈은 여전히 펑펑 쏟아졌다.밖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유남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박민정이 약간이라도 움직이면 유남준은 그녀를 더욱 세게 그러안았다.박민정은 시선을 내리고 얘기했다.“남준 씨, 날 좋아해요?”전에도 이 질문을 했었다. 그때는 애매모호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다.유남준은 멍해졌다. 고개를 숙여 똘망똘망한 박민정의 눈을 본 그는 목울대를 꿈틀거렸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박민정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박민정은 씁쓸하게 웃었다.“날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날 놓아줘요. 우리 이혼해요, 네? 내가 이렇게 빌게요.”유남준은 마치 목에 커다란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숨만 쉬는 데도 아팠다.“안 돼.”박민정의 눈에는 실망이 비춰졌다. 이윽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남준은 예전의 박민정이 그리웠다. 만약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박민정이 유남준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 안겨 있다가 저도 모르게 피곤해서 잠에 들었다.유남준은 품에서 자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박민정을 데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
오늘 저녁은 학교에서 준비해 줬다.사실 물고기를 잡아서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다들 많이 잡지 못한 바람에 식사가 조금 부실했다.하여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에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유지훈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박예찬을 신경 썼다.그리고 내심 박예찬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게 부러웠지만 이제 와서 그에게 붙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한편, 최현아는 오늘 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되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 쪽을 바라보았는데 세 가족이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저녁 식사가 다 끝난 뒤 각자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최현아가 어느새 유남준의 곁에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남준 씨,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요? 제가 음식을 따로 싸 왔는데 괜찮으시면 좀 드실래요?”그러나 유남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괜찮습니다.”어제랑 다르게 차가운 그의 태도 때문에 최현아는 순간 멍해졌다.분명 어제 자신이 땀을 닦아줘도 가만히 있던 사람인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나 싶었다.“그래도 제가 남준 씨 형수인데 너무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제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최현아는 유남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음식 가지러 달려갔다.그저 유남준이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까 봐 철벽친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박예찬과 무료함을 달래려 잡초를 뽑고 있다가 무심결에 최현아와 유남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박예찬에게 물었다.“저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박예찬은 박민정이 풀 뽑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열심히 같이 뽑다가 문득 그녀의 뜬금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또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있었다.“엄마,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하나는 유남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것 같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괜히 박예찬이 가서 물어보면 마치 그
오후가 되니 날씨가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박민정네는 산언덕에 앉아 바람도 쐬고 구운 생선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박예찬은 특별히 물고기 한 마리를 남기더니 조동민에게 주며 말했다.“아마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그의 말에 조동민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예찬아, 고마워. 넌 참 착한 아이야.”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자기 아들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 앞으로도 친구 사귀는 건 문제없겠다고 생각되었다.“고작 고기 한 마리 가지고 뭘.”박예찬은 아직 칭찬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했다.조동민은 고맙기는 한데 오늘 발생했던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민정 이모, 혹시 오늘 일은 진짜로 제가 잘못한 걸까요?”어린아이의 세계는 그저 흑과 백으로 단조롭게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하여 당연히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자기더러 사과하라던 아버지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박민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이모는 동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넌 단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었을 뿐, 유지훈이 먼저 잘못한 거지.”그녀의 말에 조동민은 더욱 억울한 얼굴로 되물었다.“그런데 저희 아빠는 왜 저더러 사과하라고 했을까요?”“그건 어른들의 세계에는 옳고 그름만이 있는 게 아니거든. 이건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이해가 될 거야.”조동민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그녀에게 답했다.“저도 알 건 알아요. 저희 아빠는 지훈이네 엄마가 무서웠던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유지훈에게 잘 보여야 우리 집안 사업도 잘되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거라고 습관처럼 말하셨어요.”그의 말에 박민정은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이렇게 어린아이가 그런 말 때문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까?’그녀는 어떻게 조동민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그러나 조동민은 고개를 들고 박민정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이모, 저 오늘부로
한가영은 한껏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리고 박민정이 한마디 하자마자 장연수도 빠르게 거들었다.“최 회장님, 다 아이들 일이고 누구도 피해 본 사람이 없는데 이쯤 하시죠.”몇몇 학부모들도 최현아를 말리기 시작했다.“아이가 이 정도로 우는 걸 보면 분명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맞아요.”최현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두운 얼굴로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았는데 보는 눈이 이리도 많은데 계속 아이를 혼내기도 뭐한 것 같았다.“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겠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조민혁은 심장이 다 타들어 갔다가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건넸다.“역시나 최 회장님은 아량이 깊으십니다.”한가영은 일이 이대로 마무리되자 단번에 조민혁을 옆으로 밀쳤다.“어떻게 여동생보다도 간이 작아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제가 멍청이네요.”부모님이 자기 앞에서 다투기 시작하자 조동민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자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박민정 덕분에 사건이 종료된 뒤 조동민은 박예찬과 놀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박민정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박민정은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어 조동민과 잠깐 통화하게 했다.조동민은 화면 속의 조하랑을 보자마자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졌고 조하랑은 겨우 그를 달래서 울음이 그쳤다.“민정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아직 아이라 표현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조하랑은 자기 조카가 뭔가 억울함을 당했다고는 느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하여 박민정은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조하랑에게 알려줬고 그녀는 듣자마자 불같은 화를 냈다.“최현아라는 사람 진짜 너무하네! 이렇게 어린아이더러 동급생 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시켰다고?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싶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 여자 가면을 벗겨버리는 건데!”조하랑은 씩씩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오빠는 진짜 쓸모없는 인간이라니까.
“지훈아, 우리 동민이가 먼저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리는 건 아니라고 봐.”조동민의 아버지 조민혁이 말했다.그리고 어머니 한가영도 다시 최현아에게 애원했다.“최 회장님, 작은 오해로 아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시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최현아는 고작 조 씨 가문 따위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습이 너무 기분이 언짢았다.또한 두 사람은 박민정의 친구이자 조하랑의 친척이라는 사실에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만약 사과할 수 없다면 법원에 고소해야겠네요.”말이 고소지, 분명 다른 방법으로 조씨 가문을 괴롭힐 게 뻔했다.그래도 한가영은 자기 아들이 이런 수모를 겪게 내버려둘 수 없어 재빨리 조동민을 품에 안았다.이 시각, 조동민은 아주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분명 잘못한 사람은 유지훈인데 왜 자신이 무릎을 당연하게 꿇어야 하는지, 왜 어른끼리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엄마, 저는 잘못하게 없어요.”순간 목이 메어왔다.한가영도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민혁만 바라보았다.그러나 조민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씨 가문의 세력으로는 최씨 가문이나 유씨 가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동민아, 미안하다!”괜히 아이 하나 때문에 큰 집안을 말아먹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아들을 무릎 꿇리게 해야 했다.한가영은 순간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자기 남편이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구는 데도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 씨, 제발 저희를 좀 도와줘요. 민정 씨는 하랑 씨 친구잖아요. 하랑이는 동민이 고모예요.”조동민은 어렸을 적부터 조하랑을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러면 여태껏 잘못 부른 것이다.느닷없는 부탁에 박민정은 순간 눈앞의 아이가 조하랑의 조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조동민도 어느새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때 최현아의 떨떠름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인 유석진이었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오늘 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떴던데 남준이랑 민정이 모두 거기에 있어?”“네.”“그러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주 자연스럽겠지?”유석진이 묻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현아는 다급히 그에게 설명했다.“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계세요.”“난 그저 유남준이랑 박민정만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어.”유석진의 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최현아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더니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알겠어요. 그럼 준비되면 알려주세요.”“그래. 너랑 지훈이는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네.”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릿속에서는 진짜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사고 나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지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박민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몰래 마음을 두고 있는 유남준이 이대로 죽는 건 아쉬웠다.두통이 몰려오던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싸우고 있는 듯했다.이때 여교사 한 명이 최현아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지훈이 어머님, 빨리 가보셔야겠어요. 지훈이가 다른 아이랑 지금 싸움 났거든요.”이건 선생님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지훈의 부모님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 감히 먼저 말리지 못했다.또한 유씨 가문의 세력만 봐도 선생님들 쪽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처지였다.“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최현아가 빠르게 싸움 현장에 달려와 보니 유지훈과 조하랑의 조카인 조동민이 한창 주먹다짐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훈은 조동민보다 덩치가 한참 작았기에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내 물고기 당장 물어내! 우리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인데 물어내라고!”
햇빛 아래서 그의 덩치는 유난히 우람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웬만한 부잣집 도련님들은 보통 이런건 모르지 않나? 그런데 왜 유남준은 개울에서 물고기 잡을 줄도 아는 거지?’이때, 마침 유남준도 그들을 보고 있었고 물고기를 받으라고 손짓했다.그 모습에 박예찬은 한껏 흥분한 상태로 그를 향해 외쳤다.“여기로 던져주세요.”유남준은 그의 말대로 손바닥보다 더 큰 물고기를 박예찬에게 던져줬다. 필경 아직 어린아이라 물고기를 만져보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첫 번째로 잡은 물고기는 구덩이 하나를 파서 물을 채운 뒤 안에 넣었다.그 모습에 많은 어린이들이 구경하러 오게 되었다.“와! 예찬아, 이게 너희 아빠가 잡은 물고기야?”박예찬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어떤 여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너희 아빠 참 대단하다. 우리 아빠는 아직 아무것도 못 잡았는데.”다른 아이들도 유남준을 칭찬하며 박예찬을 한껏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준은 또 다른 물고기를 잡아 그에게 던져줬다.최현아 따라 땔감을 주우러 가려던 유지훈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엄마, 저도 가서 볼래요.”그의 말에 최현아도 말리지 않았다.“그래.”최현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유지훈은 재빨리 아이들이 몰린 쪽으로 달려가더니 자기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밀쳐내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나도 물고기 좀 보게 다들 비켜봐.”아이들은 이런 유지훈의 행동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내키지 않지만 저마다 자리를 비켜줬다.유지훈이 맨 앞에 다가가 두 마리의 물고기를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또 얼마나 대단한 물고기를 잡았다고. 저건 작아도 너무 작잖아? 우리 아빠가 돈 주고 산 물고기가 훨씬 크고 이뻐!”아이들이라 그런지 한창 비교하기 좋아하는 나이다.특히 유지훈은 모든 아이가 박예찬을 둘러싸고 칭찬하는 모습에 질투심을 느꼈다.그러나 아쉽
유남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어젯밤에 네가 계속 춥다고 잠꼬대해서 내가 안고 같이 잤어.”“네?”박민정은 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날씨도 이젠 어느 정도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더구나 어젯밤도 전혀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옆에 누워있던 박예찬이 침낭에서 일어나더니 박민정에게 말했다.“엄마, 나도 봤어. 어젯밤에 분명 엄마가 계속 춥다면서 안아달라고 했어.”박예찬의 진지한 말투가 전혀 거짓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자 순간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내가 그런 잠꼬대를 했다고? 나이 먹으면서 외로워졌나?’이때, 박예찬이 박민정 앞에 다가와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예전에도 두 사람이 자주 그렇게 잤으니까.”박민정은 그의 말에 더욱 부끄러워 어딘가 숨고 싶어졌다.“알았어.”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유남준에게 말했다.“그럼 어젯밤은 고마웠어요. 혹시 저 때문에 못 잔 건 아니죠?”유남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야. 내가 이따가 이불을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 오늘 밤에는 우리 이불 덮고 자자.”“그럴 필요 없...”박민정이 단번에 거절하려는 순간 텐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서, 남준 씨, 깼어?”최현아였다.그녀의 물음에 박민정이 재빨리 답했다.“네. 무슨 일이에요?”“우리 지금 땔감 주어서 아이들한테 야외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는데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여기까지 직접 와서 물어보니 박민정은 거절하기 힘들었다.“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박민정이 침낭에서 나오자 유남준이 갑자기 그녀의 팔목을 잡으면서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이때,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최현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남준 씨, 동서가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이따 남자분들은 개울에서 낚시해야 해요.”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말없이 얼굴을 찡그렸다.박민정은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최현아는 자
유남준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알겠어.”빠르게 저녁 시간이 돌아왔고 산기슭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유난히 별들이 잘 보였다.박민정과 박예찬은 같이 앉아 쉬고 있었고 유남준은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바비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기 굽는 냄새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해 자기도 모르게 시선들이 이쪽으로 쏠리게 되었다.박민정은 살짝 난감한 듯 박예찬에게 말했다.“예찬아, 네가 다른 친구들이랑 학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도 데리고 와서 같이 먹자고 해.”전날 밤, 그냥 가벼운 말로 야외에서 캠핑하면 바비큐 먹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걸 유남준이 기억하고 준비해 줬다.“네.”박예찬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일어서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그렇게 잠깐 박민정과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녀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틈에 유남준은 어느새 다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박민정에게 건넸다.“먹어.”“먼저 먹어요. 저는 제가 구워서 먹을게요.”박민정은 방금 그와 다퉜는데 그가 구워준 고기를 덥석 받아먹는 게 왠지 미안했다.하여 스스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유남준은 여전히 자신을 거절하는 그녀 때문에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난 고기를 원래 안 좋아해. 네가 안 먹으면 이건 그냥 버릴게.”살짝 화가 난 목소리였다.그의 말에 박민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재빨리 그의 접시를 받아서 들었다.“아깝게 왜 버려요. 고기 안 좋아하면 더 이상 굽지 말아요.”생각했던 대로 말했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다.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순간 질투가 많은 여느 여고생처럼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이제 자신이 구워주는 고기도 마다한다고 생각하니 유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박민정은 이 상황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즐겁게 고기를 먹고 있다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몰려오자 그들과 같이 식사 자리를 즐기기 시작했고 금세 유남준이라는 사람을 잊어버리게 되었다.그런 유남준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웃고
그러다가 최현아는 무심결에 유남준의 튼실한 팔뚝과 또 잘생긴 그의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애초에 남준 씨랑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러다가 그에게 다가가 휴지를 꺼내며 물었다.“땀 흘렸네요. 제가 닦아 드릴까요?”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그의 땀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막 거절하려던 순간 박민정과 박예찬이 들꽃을 꺾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괘씸한 마음이 들어 일부러 가만히 서 있었다.순간 최현아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유남준때문에 심장이 또다시 나대기 시작했다.‘들은 소문에 의하면 유남준에게 첫사랑인 이지원을 제외하면 여자라고는 박민정뿐이라고 했는데?’‘역시나 남자들은 다 똑같네!’순간 최현아는 진작에 유남준에게 접근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아니면 진작에 IM 대표의 사모님 자리를 꿰찼을 텐데.마음속 욕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손은 점점 바빠졌다.박민정과 박예찬은 마침 돌아오자마자 두 사람의 애틋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그러다가 박민정은 문득 머릿속에 기억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장소는 비슷했지만 유남준의 맞은편에는 최현아가 아닌 이지원이 서 있었다.순간 박민정은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유남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예찬도 화가 난 나머지 잡고 있던 박민정의 손을 놓고 재빨리 달려가 두 사람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물었다.“현아 이모, 지훈이가 급한 일이 있다고 이모 찾던데요?”그의 말에 최현아가 재빨리 되물었다.“무슨 급한 일?”“가서 직접 물어보세요.”박예찬의 말에 최현아는 두말없이 유지훈 쪽으로 향해 달려갔다.박민정은 어느새 유남준에게 다가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보통 이런 식으로 바람피웠나 보네요?”유남준은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무덤덤해 보이는 박민정에게 다가가 되물었다.“화 안나?”“그저 유치해 보이는데요?”박민정의 입에서 들리는 유치하다는 말이 단번에 유남준의 가슴에 꽂혀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