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유남준을 자극했다.“아저씨, 혹시 돈 때문에 저를 납치한 거예요? 우리 아빠는 돈이 엄청 많아요. 그리고 아빠는 저를 엄청 사랑하기 때문에 원하시는 대로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사람 하나 잘 골랐네요.”“...”유남준은 말문이 막혔다.“아빠가 그렇게 권력 있고 돈도 많으면서 왜 너를 잘 보호하지 않았대? 아니면 내가 널 납치할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박윤우가 흠칫했다.‘뭐야, 왜 이렇게 잘 대응하는 거야? 영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네.’박윤우는 대답하는 대신 갑자기 손으로 아랫배를 움켜쥐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유남준이 물었다.“왜 그래?”“배가 아파요.”박윤우가 허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다행히도 유남준은 의사와 동행했다. 의사를 리무진으로 호출한 후 박윤우의 불편한 곳을 검사하게 했지만 그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대표님, 도련님의 복부를 자세히 검사해 봤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박윤우는 배를 끌어안더니 침대에서 뒹굴기 시작했다.“너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흑흑...”“...”의사는 말문이 막혔다.유남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박윤우가 꾀병을 부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차에 의료기기가 없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는 건 아닌가요?”“그럴 수도 있죠.”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순간 유남준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방금은 문제가 없다고 하더니 왜 제가 물어보자 오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의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 안은 에어컨 때문에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지만 의사는 식겁한 나머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이때, 박윤우가 나서면서 분위기를 풀었다.“아저씨, 의사 선생님을 탓하지 마세요. 저는 원래 배가 자주 아프거든요, 배가 아플 때마다 아빠는 따뜻한 얼굴로 제 배를 녹여주셨어요, 그러면 바로 안 아팠거든요. 아저씨, 혹시 아빠처럼 얼굴을 제 배에 대주시면 안 돼요?”유남준은 어
박윤우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잠이 든 유남준을 힐끔 쳐다봤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를 대비해 워치폰을 챙겨 연지석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손목에는 워치폰이 없었다.게다가 입고 있던 옷도 모두 바뀌어졌다.그리고 박윤우의 워치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져 박윤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그의 곁에 누워있던 유남준이 두 눈을 뜨며 물었다.“아직도 아파?”박윤우는 유남준이 이렇게 쉽게 깰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안 아파요. 고마워요, 아저씨!”아저씨.아저씨라는 말이 유남준에게 찝찝하게 들렸다.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네 이름이 뭐야?”박윤우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연윤우예요.”연윤우라...연씨라...유남준의 얼굴색이 더 어두워졌다.박윤우는 유남준이 분명 자신과 엄마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기에 자기를 찾으러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모든 정보를 다 조사해 낸 건 아닐 것이다. 아니면 왜 이름까지 물어보겠는가? 더군다나 연지석은 그와 형, 그리고 엄마의 신분 정보를 잘 숨겼었다.유남준이 대답을 하지 않자 박윤우는 또 순수한 얼굴로 물었다.“아저씨, 제 이름 예쁘죠?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연씨가 흔히 볼 수 없는 멋있는 성씨잖아요, 안 그래요?”‘뭐가 멋있어?’녀석은 컨디션이 좋아지자마자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유남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왜 배가 아픈지 알아?”박윤우가 의아했다.‘뭐지?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아시는 건가?’“말이 너무 많아서 그래. 말 많은 애들이 배가 쉽게 아프거든.”유남준이 그 한마디 남기고는 휴게실을 떠났다.서다희는 방에서 나온 유남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대표님, 깨셨어요?”“응.”유남준이 자리에 앉은 후 서다희는 사람 시켜 아침을 가져오라고 했다.하지만 유남준은 식사하지 않고 서다희에게 물었다.“저 아이가 몇 개월인지 알아냈어?”“45개월이요.”45개월이라...유남준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만약 박
유남준은 박민정인 줄 알고 빠르게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아쉽게도 발신자는 이지원이었다.그는 귀찮은 얼굴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이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나 도와줘요.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은 지어낸 거란 말이에요.”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유남준은 갑자기 축하연 때, 뉴스에서 이지원이 표절했다고 보도된 일이 생각났다.“오늘 회사에 내 신곡, ‘세상의 한 줄기 빛’이 표절했다는 고소장이 도착했어요. 그리고 어떤 변호사가 인터넷에서 내가 표절을 일삼아 성공했다는 듯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막막해요.”그 얘기를 들은 유남준은 미간을 구겼다.“알겠어.”전화를 끊은 후 유남준은 법무팀에 연락해 허위 사실 유포자를 처벌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그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볼 시간도, 관심도 없었다.하지만 인터넷에는 이지원이 출생 이후 어떤 지원을 받고, 외국으로 나간 후 어떤 수단으로 부잣집 남자들을 이용해 성공했으며, 또 표절하고서도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그 내용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유남준이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 내용도 몰랐다.그리고 이지원이 말한 고소장을 보내온 사람이 바로 박민정의 친구인 조하랑인 것도 당연히 몰랐다.조하랑이 직접 작성한 이지원의 일대기가 금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친구를 위해 복수하려면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었다.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지원에 관한 실시간 검색어가 모두 사라졌다.1시간 후.박민정은 회사에 출근하려고 준비하던 중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조하랑을 보석해 달라는 전화였기에 그녀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하지만 경찰서에 도착한 후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한껏 예쁘게 꾸민 채 대기실에 앉아 있는 이지원과 그녀의 친구, 하예솔이었다.이지원도 박민정을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기선제압을 했다.“민정 씨, 나 미워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하랑아, 걱정하지 마. 내가 내일 너 데리러 올게.”박민정이 분명 유남준을 찾아갈 걸 알기에 조하랑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민정아, 굳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마. 여기서 7일 동안 있는 것쯤이야. 두렵지도 않은데, 뭘.”“괜찮아.”박민정이 경찰서를 나선 후 택시를 탔다.휴대폰을 확인했는데 바로 소셜 미디어에 올린 이지원의 글이 보였다.[결백한 자는 해명하지 않아도 결백하다.]‘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네.’박민정은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휴대폰을 꽉 잡았다.그녀는 먼저 회사로 향했다.하지만 비서에게 들은 바로 유남준은 CEO를 한 명 고용한 후 계속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한다.‘집에서 쉬고 있다고? 처음 듣는 얘기네.’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또 택시를 타고 두원 별장으로 향했다.두원 별장에 도착한 후.경비원은 그녀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녀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큼지막한 별장 밖은 유난히 고요했다. 주변의 경치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박민정이 입구에 들어서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지문을 사용해 문을 열었다. 사실 자신의 지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가자 바닥에 누워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방금 난 소리는 그가 소파에서 떨어져서 난 소리였다.그리고 집 안에는 옅은 담배 냄새가 남아 있었다.“유 대표님.”박민정은 유남준 앞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괴로운 듯 미간을 구긴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이마에는 땀까지 송골송골 맺혔다.“유 대표님...”그녀는 몸을 웅크려 앉아 유남준의 이마에 손을 올렸는데 그의 이마가 뜨겁게 느껴졌다.유남준은 열이 나고 있었다.차가운 그녀의 터치에 유남준은 잠깐의 편안함을 느꼈다.하지만 박민정이 손을 떼려 하자 유남준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 때문에 박민정은 하마터면 그의 몸에 넘어질
박민정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유남준이 잠잠해진 후였다.그의 이마를 만져보니 조금 전보다 더 뜨거워진 상태라 박민정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구급상자를 가지러 갔다.구급상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약품의 유통기한이 모두 지났다. 다른 비상약도 없어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낸 후 천에 꼭 싸고는 그의 이마에 올렸다.그리고 곧바로 인터넷으로 약을 주문했다.유남준에게 약을 먹일 때 그는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 꿀을 조금 섞은 후에야 그는 겨우 약을 목구멍에 넘겼다. 밖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위풍당당한 유남준이 쓴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을 줄은 누가 알겠는가?박민정은 유남준을 소파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는 워낙 무거웠고, 또 그녀에게도 힘이 남아돌지 않았으니 그를 그대로 바닥에 뒀다. 그래서 에어컨 온도를 높인 후, 그에게 얇은 담요까지 덮어줬다.한참을 고생했으니 어느덧 그녀도 소파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노을빛이 얼굴에 비치자 유남준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팔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자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든 박민정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잠깐 멈칫하다가 자기 몸에 덮인 담요와 옆에 놓인 젖은 수건, 그리고 약을 멍하니 바라봤다.유남준은 살며시 담요를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그때 머리가 핑 돌았다.‘내가 이렇게 심각하게 아팠었나?’“드디어 깼어요?”인기척에 박민정도 잠에서 깼다.유남준은 벌써 정신을 차렸고, 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니 박민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 내가 대표님 간호했잖아요. 그걸 봐서라도 하랑이 풀어줘요. 하랑이는 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하랑이 대신 이지원 씨에게 사과할게요. 죄송해요.”유남준은 막 잠에서 깨었는지라 정신이 없어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아이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라니.”“하랑 씨는 왜?”박민정이 설명했다.“인터넷에서 이지원 씨가
박민정이 흠칫했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소파에 앉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몸이 많이 불편해서 그러는데, 남아서 나 간호해 줘.”“내가 간호해 주면 하랑이를 풀어줄 거예요?”“응.”유남준의 잠긴 목소리는 유난히 감미롭게 들렸다.“알겠어요.”박민정도 어차피 유남준에게 접근하려던 참이었으니 그의 제의에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유남준은 위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해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젯밤에 에스토니아로 출국한 후로 지금까지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말이다.“아직 요리하는 거 까먹은 건 아니지? 나 배고파.”“배달 음식을 주문할게요.”박민정이 휴대폰을 꺼내 주문하려던 참에 유남준이 미간을 구긴 채 그녀를 말렸다.“당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싶은데?”“요리하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 걸려요.”박민정이 말했다.“기다릴 수 있어.”유남준은 그윽한 눈망울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그녀에게서 한 시라도 눈을 떼지 않았다.박민정은 그런 그의 눈빛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그럼 지금 요리 시작할게요.”그녀의 늘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남준은 저도 모르게 목구멍을 살짝 움직였다.주방은 마치 금방 인테리어를 끝낸 듯이 깨끗했다. 물론 냉장고도 새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내가 떠난 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어쩔 수 없이 그녀는 인터넷으로 식자재를 주문했다.유남준은 거실 소파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의 소리를 들었다. 마치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간 듯했다.몸은 힘들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법무팀 책임자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여론을 정리해 유남준에게 보고했다.이지원의 부정적인 여론을 보면서도 유남준은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면서 책임자에게 말했다.“조하랑 풀어줘.”그러고는 휴대폰을 껐다.이지원은 고영란의 생명 은인일 뿐, 그녀의 사생활에 관해서 유남준은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다만 주상 엔터테인먼트는 유앤케이 그룹 산하의 회
유남준은 박민정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 식사를 이어가려는 마음도 없었다.‘왜 예전에는 저렇게 말을 잘하는 걸 몰랐지?’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암울한 하늘에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더니 번개가 번쩍였다.휴대폰을 확인하자 시간은 벌써 저녁 8시였다.이때면 박민정은 보통 은정숙에게 연락해 예찬의 상황을 물어보곤 했다.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유남준이 어느샌가 그녀의 등 뒤로 다가온 것이었다.“뭘 보고 있어?”박민정이 바로 휴대폰을 거두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남자의 얼굴색은 방금보다는 밝아졌지만 여전히 예리한 눈빛을 보였다.“식사 끝냈죠? 그럼 나 이만 가봐도 돼요?”“왜 이렇게 급하게 가려고 해? 연지석에게서 연락이 온 거야?”유남준이 심드렁하게 물었다.‘이상하네, 왜 오늘 말끝마다 지석이 얘기를 꺼내지?’하필 이때, 박민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힐끔 확인했는데 연지석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 박민정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유남준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5분 줄게. 전화 받고 바로 돌아와.”그 얘기를 듣고 박민정은 곧장 별장 밖으로 나갔다. 주위에 CCTV나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민정아, 유남준이 윤우를 데려갔어.”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민정은 그제야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유남준 씨가 왜 윤우를 데려가? 윤우를 언제 발견했는데? 그럼 유남준 씨도 윤우의 신분을 알고 있어? 참. 예찬이는? 예찬이는 지금 어디 있어? 별일이 없는 거야?”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박민정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유남준이 이렇게 빨리 윤우를 발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이쪽 일을 다 처리하고 바로 돌아갈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함을 유지하는 거야. 유남준은 윤우의 정체를 아직 모를 거야. 알았다고 해도 자기 아들이니 윤우를 해치진 않을 거니까 겁먹지 마.”하지만 박민정은
“나 갖고 노는 거 재밌어? 연지석이 그러라고 가르쳤어?”눈가가 빨개진 유남준이 차갑게 물었다.밖에는 큰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잇따라 귀를 찌르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박민정도 더는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하지 않았다.“나는 그저 과거를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유남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그녀의 손목을 꽉 잡으면서 더 가까이 다가갔다.“과거를 잊는 방법이 죽는 척하는 거야? 내 기분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유남준의 다른 한 손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제야 그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내가 무서워?”박민정은 입 안에서 피비린내가 날 때까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유남준 씨, 제발 아이를 돌려줘요. 유남준 씨가 아닌 지석이와 나의 아들이라고요. 제발 부탁이니까 내 아이를 돌려줘요.”박민정에게서 윤우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유남준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당신은 우리가 이혼한 지 두 달도 안 되지 않았을 때 연지석에게로 가지 않았어? 그때 벌써 그 사람이 좋아졌던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서 죽은 척한 거였어? 그리고 내 아들은 어디에 있어?”눈시울이 붉어진 유남준은 박민정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 주었다.박민정은 이러다가 손목이 부러져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에게 윤우를 뺏길 고통과 비교한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내가 말했었잖아요.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박민정이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내 몸에 두 번째로 손을 댔을 때 난 이미 임신한 상태였어요. 아이를 죽인 건 남준 씨 본인이에요.”비겁하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도 박민정은 유남준이 죄책감 때문에 아이를 빨리 돌려주기를 바랐다.그녀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뭐라고?”그는 제대로 이성의 끈을 놓았다. 박민정을 침대로 밀어버리고는 그녀 위로 올라탔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광기 어린 눈빛의 유남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