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런 건 위험한 문제예요. 누군가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 사람에게 전부를 맡기겠어요? 여자가 그렇게 쉽게 마음을 주다간 언젠가 다치게 될 거예요.”이청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둘러대고 안 말할 거라니.”“그게 도움이 돼요?”“도움이 되냐고요?”“그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데요?”이청하의 눈가가 붉어지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못 할 거라면 난 건우 씨 마음속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잖아요.”“그럼 내가 거짓말하면요?”“그것도 듣고 싶어요. 난 건우 씨가 그냥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돼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요. 나도 자신을 속일 핑계 하나쯤 갖고 싶은데 안 될까요?”이청하는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곤 땅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임건우는 이청하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임건우는 한숨을 쉬고 허리를 숙여 이청하를 품에 안았다. “사랑해라는 말은 아주 가벼워요.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죠. 하지만 또 이 말은 태산처럼 무거울 수도 있어요. 생명보다도 더 무겁죠... 청하 씨, 그 말을 해줄 순 있지만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에요. 청하 씨도 마찬가지예요.”이청하는 임건우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임건우는 말했다. “청하 씨가 어떤 상처를 겪었는지 알아요.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하는지도 알고 그 일로 인해 어릴 적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왔다는 것도 알아요. 난 청하 씨가 다시 그런 고통을 겪는 걸 바라지 않아요. 내가 건넨 세 글자가 청하 씨한테 파멸될까 두려워요. 내 눈엔 청하 씨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완벽한 여자로 보여요.”“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니? 그럼 와이프는요?”임건우는 말했다. “내가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알잖아요. 한때 이혼 직전까지 갔었고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었어요.
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심령혈맹까지 했는데 성혼 의식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임건우는 탁무범까지 불러들였다.성혼식에 증인이 빠질 수 없으니 탁무범이 그 역할을 맡았다.탁무범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축하합니다, 도련님! 축하합니다, 작은 사모님!”그렇게 해서 탁무범의 증인 아래 임건우와 이청하의 혼례가 시작되었다.“하늘에 큰 절을!”“부모님께 큰 절을!”부모님의 자리에는 임건우의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우나영과 이청하의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이흥방 부부의 사진이 있었다.“부부가 서로 절하시오!”“신부를 신방으로 모시시오...”탁무범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작은 사모님, 축하합니다! 여기 시설이 열악하지만 병원에 작은 사모님의 침실이 하나 있어요. 그 방에서 둘이... 하하하.”이청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신방은 다음으로 미루죠. 지금은 시간이 급해요. 빨리 독소의 해독제를 찾아내지 않으면 중독 환자들이 더 늘어날 거예요. 지금 병원의 격리 병실도 이미 꽉 찼잖아요.”이청하는 임건우를 보며 말했다.“자기야!”“응?”“나한테 키스해줘요.”임건우는 이청하의 말대로 입술에 키스했다.탁무범은 당황하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바로 그때 이청하는 미리 준비해 둔 독소 혈액을 일회용 주사기로 자신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순간 독소가 이청하의 몸속에서 퍼지기 시작했다.쉭.온몸의 경맥이 붉은 기운으로 들끓었고 이청하의 눈 흰자에는 핏줄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붉어졌다.이청하의 기세 또한 몹시 이질적으로 변해갔다.임건우는 즉시 그 변화를 느꼈다.“청하야, 너...!”딱!이청하의 손에서 주사기가 떨어졌다.이청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발이 경련을 일으키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아! 작은 사모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탁무범은 소리를 듣고 돌아보다가 그만 놀라 얼어붙었다.임건우는 이청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청하야, 어쩌자고 이렇게 어리석
탁무범이 임건우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이... 이거 무슨 상황인가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무리 작은 사모님께서 원혈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이 원혈은 특정 혈통에만 작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도무지 말이 안 되는데요?”임건우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임건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혹시...”임건우가 말을 시작하려 하자 탁무범이 그를 받아쳤다. “작은 사모님께서도 어떤 특별한 혈통을 지녔고 아주 깊이 감춰진 고대 혈맥이라 이런 큰 반응을 일으킨 건 아닐까요?”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로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이청하는 만인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기꺼이 몸을 던져 독을 시험했다.모든 것이 해독제를 얻기 위해서였다. 임건우는 이청하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임건우가 속으로 아무리 마음 아파도 이청하의 부탁을 완수해줘야 했다.임건우는 서둘러 이청하에게 달려가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이청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에 의해 손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수라의 마기!”“엄청난 마기야!”그때 갑자기 이청하가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눈동자는 온통 검게 물들었던 것이 살짝 돌아와 이번엔 붉은색으로 빛났다.이청하가 빠르게 말했다. “건우야, 어서! 내 심장이 원혈을 분리하고 있어. 빨리 피를 뽑아!”임건우는 지체할 수 없었다.임건우는 즉시 이청하의 손목을 잡고 피를 뽑으려 했지만, 이청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가 아니야, 여기를!”이청하가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뭐? 그건 너무 위험해.”“넌 날 살릴 수 있잖아. 얼른! 지금 아니면 늦어!”임건우는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심장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이청하는 몸을 격렬하게 떨었지만, 한 마디 비명도 내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임건우가 한 관의 심혈을 모두 뽑아낼 때까지 이청하는 그제야 이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쾅!실험실의 창문이 모두 산산조각
“꿈이었나?”임건우는 대수롭지 않게 물으며 이청하의 기운을 살피고 맥을 짚었다.참으로 이상했다.조금 전의 그 강렬한 기세와 엄청난 에너지가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마치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었다.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임건우와 탁무범은 서로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눈에서는 똑같은 충격이 엿보였다.그때 이청하가 입을 열었다.“꿈이 아니야. 아마도 그 원혈의 주인을 본 것 같아.”“뭐라고?”“원혈의 주인?”임건우는 놀라며 이청하를 바라보았다.그러다 조금 전 그 순간이 떠올랐다.이청하가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한 그 눈빛,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 차가운 시선은 누구든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그 순간의 이청하는 분명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임건우는 확신했다.이청하의 영혼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고 그 의지는 이청하의 것이 아니었다.그렇다면 이청하는 정말로 원혈의 주인을 본 것이었다.그 원혈에는 주인의 의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임건우가 말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괜찮을 거야. 이건 아마도 아수라족의 고귀한 혈통에서 남겨진 의지일 거야. 네가 본 것도 그 의지였을 거야.”이청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사람은 지위가 정말 높은 것 같았어. 마치 여왕처럼 보였어. 그 사람의 말은 우리와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 아마 이렇게 말한 것 같아... 삼천 년의 준비, 이제 내 것을 되찾을 때가 왔다. 7일 후, 공격이다.”“음... 그건 그녀의 기억이었을 수도 있어.”이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재빨리 말했다.“자기야, 그 혈액은 잘 보관됐어?”임건우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잘 보관됐어. 우선 네 몸 상태부터 검사해 보자. 특히 이번 혈액은 심장에서 채취한 거니까 더욱 신중해야 해.”“알겠어!”이청하는 탁무범을 힐끗 보며 말했다.“탁 선배님, 잠시 나가 계셔줄 수 있어요?”탁무범은 어색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곧이어 이청하는 외투를 벗으며 임건우의 검사를
시간이 이 순간에 영원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마침내 이청하는 부끄러운 듯이 임건우를 밀어내며 살짝 그를 바라봤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응? 왜?”이청하는 임건우를 흘겨보고 가방을 챙겨 나가버렸다.임건우는 코끝을 만지며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한 시간 후 실험실 안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성공이다!”“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분명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임건우와 이청하는 기쁨에 겨워 서로 껴안고 뜨겁게 입을 맞췄다.무려 삼일 밤낮을 꼬박 새우며 이청하는 몸을 던져 독을 시험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하기까지 하면서 드디어 해독제를 분리해낸 것이다.이 해독제는 아주 기묘한 성분으로 보통 방법으로는 절대 합성할 수 없는 물질이었다.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생산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하지만 해독제의 특성 중 하나가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최근 독성 감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 독이 복제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마치 영화에서 보던 좀비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독이었다.다만 수라족의 원혈 바이러스는 훨씬 고급이었다.이 독은 아무에게나 퍼지는 게 아니라 혈통이 강한 사람에게만 작용했다.그리고 이 해독제도 그 독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 셈이었다.사실 운이 좋았다.이청하의 몸속에 고대의 강력한 혈통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원혈의 독에 감염되자마자 심장에 항체가 생긴 것이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했을 테고 이청하 또한 큰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더 지체할 수 없었다.임건우와 이청하는 곧바로 격리병동으로 향했다.이곳의 격리병동은 일반 격리 병동과는 달랐다.가족들이 방문할 수는 있지만 병실 문 밖에서만 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또한 병상에 묶여 있는 환자들의 장비가 업그레이드되어 이제는 밧줄이나 가죽띠가 아닌 강철로 된 족쇄가 사용되고 있었다.이 장비라면 혈통이 깨어난 사람조차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두 사람이 병
이청하의 발길질은 남자를 정신없이 날려버렸고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 가족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병원의 원장인 이 의사에게 이런 폭력적인 면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큰 소란이 병원의 직원들과 보안요원을 불러 모았다.물론 그들은 전부 이청하 편에 섰다.하지만 그 남자는 꽤 배경이 있는 듯했다.뒤에 강력한 세력이 있는지 상황이 불리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그는 이청하와 임건우를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정말 대단하네. 내가 이렇게 당한 건 처음이야. 하찮은 병원 원장 따위가 감히 날 무시해? 두고 봐. 널 당장 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무릎 꿇고 내 발바닥을 핥게 하겠어.”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나야. 여기 천애 병원에서 사람들이 날 공격했어...”그때 다른 환자 가족 중 한 명이 이청하에게 다가와 말했다.“이 원장님, 저 사람 꽤 유명한 양승우라는 인물이에요. 한승 그룹의 회장인데 보안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공공기관과도 연이 많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양씨 가문은 상경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이고 정재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 그냥 사과하고 무마하는 게 어떨까요?”이청하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러자 임건우가 단호하게 말했다.“사과? 절대 안 해. 이런 사람은 무릎 꿇고 사과해도 받아주지 않아.”곧 누군가가 병원으로 들어왔다.그러나 들어온 사람들은 양승우의 일당이 아닌 신호부의 사람들이었다.그들을 이끈 것은 바로 임건우의 제자 진남아였다.현재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감염자들은 모두 특별한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었다.이 현상은 단지 경주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변 도시들, 예를 들어 강주와 중해에서도 발생했다.이러한 감염자들은 발견되자마자 전부 천애 병원으로 이송됐다.이 때문에 이청하는 병원 내 건물 하나를 비워 특별 격리 구역으로 지정했다.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독소는 공기나 침 등으로 전파되지 않고 반드시
신호부의 두 명의 요원도 표정이 굳어졌다. 양씨 가문의 위세는 상경에서 너무나 강력했다.만약 이들을 진짜로 화나게 하면 그 후폭풍은 단순히 그들 몇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신호부 고위층조차도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진남아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자 양승우가 진남아의 뺨을 세게 갈겼다.“이제 겁이 나? 이 망할 것들, 내 아들에게 손을 대다니! 너 끝났어. 각오해! 곧 잘려나갈 테니까. 그리고 황제국에선 네가 발붙이기 힘들 거야.”진남아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맞아 얼굴이 창백해졌다. 병실 안에서 들린 뺨 때리는 소리에 임건우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무슨 일이야? 남아야, 누가 널 때렸어?”한 요원이 손가락으로 양승우를 가리켰다. “나야, 어쩔 건데?”양승우가 목에 힘을 주며 비웃었다.“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너희 모두 끝장났어.”철썩! 철썩! 철썩! 철썩! 임건우가 다가가 양승우의 뺨을 네 번 연속으로 갈겼다.양승우는 돼지처럼 얼굴이 퉁퉁 부었고 코뼈는 부러지고 입안의 이빨이 부러졌다.양씨 가문의 사람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고 연달아 욕설이 터져 나왔다.진남아가 임건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스승님, 양씨 가문은 건드리기 어려운 상대예요.” “그래? 그래서 맞고도 가만히 있었던 거야?” “스승님, 잘 모르시겠지만 양씨 가문은 상경에서도 진짜 실세예요. 흔히 말하는 10대 가문이나 8대 왕족 같은 곳과는 달라요. 그건 이름뿐이고 실질적인 힘은 별로 없죠. 그런데 양씨 가문은 달라요. 그들의 가주는 현직 삼대 통솔자 중 한 명이고... 최근엔 독수리 부대까지 장악했다고 들었어요.”임건우는 눈을 좁혔다.“독수리 부대까지?” 그렇다면 임건우의 스승인 백옥이 밀려나면서 양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건가.그 순간 병원 밖에서 네 명의 인물이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그중 한 명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고 외모는 평범해 보였지만 임건우는 그가 고수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의 단계
“뭐라고?”“막아냈다고? 말도 안 돼!”박철호는 놀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번 임건우를 살폈다.하지만 방금은 고작 30%의 힘을 사용했을 뿐이었다.임건우가 그 정도를 받아냈다는 건 이제 50%의 힘으로 시험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윙.박철호의 팔뚝 위로 기가 몰아쳤다.막대한 기운이 임건우의 손바닥을 향해 쏟아졌지만, 예상과 달리 그것은 마치 깊은 바다에 돌을 던진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이 사라졌다.그제야 박철호의 얼굴에 진짜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임건우의 여유 있는 눈빛이 자신을 모욕하는 듯 느껴져 불쾌감이 치솟았다.박철호는 망설임 없이 전력을 다해 다시 기를 모았다.“죽어라, 꼬맹이!”윙.전신의 진원이 폭발하면서 팔을 감싸고 있던 옷이 산산이 찢어졌다.하지만 임건우의 팔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고 모든 기운은 그에게 무력화된 듯이 흡수되었다.“이, 이게 어떻게...”“이 자식이 대체 뭐지?”박철호는 내심 크게 흔들렸다.자신의 전력을 받아내고도 흔들림 없는 상대를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이 젊은이가 이렇게 강하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한편 양승우는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외쳤다.“철호 아저씨, 뭐 하세요? 당장 저놈을 죽여버리세요!”임건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죽이겠다고? 그러면 너도 내 한 방을 견뎌봐라.”임건우는 팔을 되돌려 내려놓은 후, 허리를 활처럼 굽히고 주먹을 움켜쥐었다.임건우의 진원에서 모인 기운이 파도처럼 주먹 끝에 집중되었고 피부밑으로는 용과 거북의 기운이 소용돌이쳤다.용의 기운은 조용의 기운, 거북의 기운은 현무방갑술이었다.임건우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박철호는 그제야 자신이 상대를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임건우의 주먹에는 일순간 두려움마저 일었다.그러나 박철호는 양씨 가문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이런 상황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으아!”박철호는 포효하며 임건우의 공격에 맞섰다.쾅!캭!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하면서 주변의 충격을 최대한 제어했다.임건우
“임 장로님, 이건 대체...”하중행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임건우가 차분히 말했다.“이건 취혼관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강력한 법보죠. 지금 당장은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남아가 이 취혼관 안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에요. 남아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고 흩어진 혼력을 다시 모아줄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손으로 관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거대한 관 안에는 조용히 누워 있는 진남아의 모습이 드러났다.임건우는 이미 그녀의 모습을 정리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두었다.그녀는 꼭 잠든 듯 보였고 조금도 시체 같지 않았다.“남아야, 남아야!”진남아의 어머니가 취혼관 옆에 엎드려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하지만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눈물이 터져 나온 그녀는 임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정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약속드리죠. 남아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그럼에도 임건우는 진남아의 가족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심어주었다.진남아의 가족들이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후, 임건우는 취혼관을 다시 회수했다.길이만 해도 3미터가 넘고 폭이 1미터에 달하는 관은 표면에 수많은 기묘한 부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이 거대한 취혼관이 임건우의 이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모두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진남아의 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장례식은 그대로 진행해야 합니까?”진남아의 집에서는 이미 영정을 걸고 빈소를 차렸으며 소식을 전해 들은 친척들이 곧 찾아올 예정이었다.하지만 어머니는 화난 듯 소리쳤다.“장례식이라니 무슨 소리야! 우리 딸이 아직 살아 있다는데 당신 귀가 막힌 거야? 안 해! 당장 그 하얀 천이랑 등, 전부 치워버려!”“그래, 그래 맞아!”“친척들한테 연락해. 아까는 착오가 있었다고 전해. 우리 남아는 살아 있어! 다만 중상을 입어서 해외로 치료받으러
신호부의 하중행이 임건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하중행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건우야, 진남아의 가족들이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들었어. 근데... 시신이...” 진남아는 강남 신호부에서 오래 머물며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그들과의 유대가 깊은 만큼 진남아의 죽음에 모두가 슬퍼하고 있었다.특히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 비보에 충격을 받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듣자마자 여러 번 실신할 정도였다.임건우도 진남아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임건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직접 중해의 진씨 가문으로 찾아가서 진씨 가문 분들께 남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중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세 시간이 흐른 후 우나영이 상경의 맹씨 가문에 도착했다. 우나영과 임건우 모자는 이전에 맹씨 가문의 이소현과 크게 다투고 난 뒤로 맹씨 가문을 찾지 않았다.이 때문에 맹진수 또한 이상에게 크게 실망해 한동안 상경을 떠나 있었던 적도 있다. 이소현도 결국 깨달았다.지금의 임건우와 우나영이 이미 맹씨 가문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으며 이를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나영과 재회한 이소현은 태도가 아주 달라져 있었다.한껏 몸을 낮춘 채 예의를 갖추었다.하지만 우나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우나영의 마음은 온통 김서진의 죽음으로 상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나영은 영안실에서 어머니와 잠시 머문 후 해가 저물 무렵 임건우는 중해로 떠났다.저녁 8시. 임건우는 진씨 가문 대문 앞에서 하중행과 만났다. 그들은 함께 안으로 들어가 진남아의 부모를 만났다.하중행이 임건우를 소개했다. “이분은 건우 씨입니다. 남아의 스승이자 우리 신호부의 장로십니다. 남아의 시신도... 임 장로님께서 거두어 가셨습니다.”진남아의 가족들은 이미 임건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진남아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임 장로님, 제 딸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압니다. 부디 그녀의... 시신을 저희에게 돌
“뭐라고?”“백옥이라고? 그 여자가 중독되어 죽을 지경이라더니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단 말이야?”“설마 독수리 통령 자리에서 밀려난 게 분해서 미쳐 날뛴 건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사람을 죽이다니!”“말도 안 돼! 난 그동안 백옥이 책임감 있고 정의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 가식이었단 말이야? 우리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죽이다니 죽어 마땅해!”이 소식에 달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연호 공식 기관에 연줄이 있는 대가문 출신이었다. 평소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이들이다 보니 고대 결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백옥에 대해 존경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특히 하씨 가문의 며느리는 울먹이며 양용진에게 말했다.“양 통령, 이제 독수리의 통령 자리에 오르셨으니 여기 죽어간 이들이 모두 당신 부하 아닙니까? 이제 세상이 이토록 밝은데 이런 살인마가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으니 양 통령님께서 직접 나서서 그 백옥이란 여자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양용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백옥은 많은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 공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총관에게는 이미 등록된 것이지요. 게다가 그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니 몇 명 정도로는 상대도 안 될 겁니다. 하물며 그녀는 떠날 때 대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 몇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과 뭉치면 상당한 세력이 형성되지요. 이러니... 차라리...”“차라리 뭐요?”“차라리 대총관님이 직접 명령을 내려 군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좋아요. 우리 가문이 뭉쳐서 통천대회를 열고 대총관님께 상소를 올리겠습니다.”한편 백옥과 임건우는 맹진수를 먼저 맹씨 가문에 데려다 주었다.그들은 양용진이 관가에서 영향력 있는 여러 가문과 손을 잡고 대총관에게 백옥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려고 통천대회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제야 임건우는 맹씨 가문에서 평생 헌신했던 김서진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임건우는 우나영과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준 은인이
장우용은 강한 실력을 갖춘 데다 고대 결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기회주의자로 독수리의 통령 자리에 야망이 꽤 큰 인물이었다.문제는 출신이 미천한 데다 독수리 내에서 실력도 두각을 나타낼 정도는 아니어서 정식 경로로는 결코 통령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양용진이 통령이 된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양용진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마치 왕을 조종하여 모든 권력을 쥐는 것과 다름없을 터.따라서 장우용은 어떻게든 양용진이 그 자리에 굳건히 자리 잡도록 보장해야 했다.바로 그때 양용진이 말했다.“장우용, 너 이 맹진수의 외손자에 대해 모조리 파헤쳐라. 내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저 자식은 반드시 죽여야 해!”그러자 장우용이 말했다.“통령님, 굳이 조사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알고 있어요! 그의 이름은 임건우, 백옥의 제자입니다.”“잠깐만, 임건우? 왜 이 이름이 이렇게 익숙하지?”양용진이 말했다.“얼마 전 국제사회가 들썩이며 여러 나라가 연호에 그를 넘기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요구 대상이 임건우예요. 제가 보기엔 동도에서 그 난리를 친 임건우가 바로 그 사람이겠지요.”양용진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후지산... 그 산을 파괴한 게 정말 저놈이었단 말이야?”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만약 임건우가 후지산을 없앤 그 수법을 양씨 가문 사람들에게 쓰게 된다면?자다가 한밤중에 양씨 가문 전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양용진은 섬뜩해졌다.저 인간을 절대 놔둬선 안 되겠다.어서 제거해야 했다.이내 양용진은 좋은 계책을 떠올렸다.양용진은 바닥에 널린 시체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이들은 모두 원래 이름 있는 가문의 자손들이야. 순수한 마음으로 독수리에 들어와 나라에 충성하려 했을 텐데 전장에 나가 공훈을 세우기도 전에 동포의 손에 비참히 죽다니... 우용아, 당장 그들의 가족에게 알려서 이곳으로 시체를 수습하러 오게 해라.”
잘린 팔과 다리, 바닥에 떨어진 사람 머리들, 눈에 보이는 건 온통 피와 살이 엉킨 잔혹한 광경뿐이었다. 백옥이 휘두른 단 한 번의 검격으로 20여 명이 순식간에 죽어버렸다.현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양용진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가슴 깊숙이 죽음의 공포가 파고들었다.그는 양씨 가문의 가주이자 군부 출신으로 연호의 고위 간부이기도 했다.하지만 연호에 큰 전쟁이 일어난 게 언제였던가?고대 결계에서의 혈전이 아니면 큰 싸움은 거의 없었다. 양용진은 고대 결계에 발을 들인 적도 없었고 인간 최강자의 단계에 오른 대수사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도 없었다.그저 백옥이라는 통령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었고 그녀를 대신해 통령 자리에 오르고자 했다.지난번에 통령 선발 회의를 벌인 것도 양용진이 앞장서서 부추겨 벌어진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양용진은 백옥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장우용 역시 백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녀가 정말 사람을 죽일 줄은 몰랐다는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여기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연호의 고위 가문 출신으로 각자의 배후에는 막강한 세력이 있었다.이들 배후 세력을 합치면 연호의 최고 집권자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백옥, 너 미쳤어?” “너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지 알아?”장우용이 땅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은 연호의 대가문들이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키운 인재들이야. 연호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인데 단칼에 죽여버렸으니 그들 가문이 가만있을 것 같아?”백옥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주변의 나무들조차 부들부들 떨려왔다.백옥은 장우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런 쓰레기들이 무슨 연호의 기둥이라고? 이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일이 뭔지 말해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요수를 처단하고 외적을 물리쳤지? 아니, 고대 결계가 어디 있는지나 알고 있을까?” “연호는 아첨이나 하는 벌레 같은 존재들
장우용은 정신없이 달려와 모두에게 알렸다.그 순간, 마치 파문이 일듯 일순간 모두가 술렁였다.“뭐라고? 저 여자가 백옥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젊어 보이지?”“백옥은 이미 버림받아 폐인이 되었다던데? 심한 독을 맞고 어디서 몰래 죽었다고 들었어.”“그래, 백옥이 한동안 안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나이도 거꾸로 먹는 일은 있을 수 없잖아. 이 여자가 절대 백옥일 리 없어.”사람들은 제각각 의견을 쏟아냈다.양용진의 얼굴빛은 점점 일그러졌다.양용진은 며칠 전 막 독수리의 통령 자리에 올랐고 이제는 인생의 정점에 서 있다고 여겼다.막강한 권력의 맛을 보며 양씨 가문을 전례 없는 위치까지 끌어올린 양용진은 절대 이 권좌를 놓을 수 없었다.설령 눈앞의 여인이 진짜 백옥이라 하더라도 양용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헐뜯어 몰아내고 가능하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백옥을 처치하여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이가 없게 할 생각이었다.“말도 안 돼!”“나도 분명히 들었어. 백옥은 독이 퍼져 죽었으니 저 여자는 백옥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저 여자는 누군가의 지령을 받고 여기 온 거야!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게 틀림없어!”“흥! 너희가 짜고 내 아들을 죽였고 내 가족을 죽였으며 이제는 내 집에 쳐들어와 독수리의 통령인 나를 노리고 있어! 대체 무슨 꿍꿍이냐? 연호를 전복시키려는 거냐!”양용진은 고함을 질러대며 독수리의 무리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당장 이 자들을 죽여라!”순식간에 모든 독수리의 고수들이 임건우 일행에게 덤벼들었다.이제 임건우의 상황은 위태로워졌다.임건우는 맹진수를 지켜야 하는 동시에 다수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비록 특이한 무공을 익혀 금단의 단계에 올랐고 원영을 순식간에 압도할 실력을 갖추었지만, 이 많은 공격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다행히 백옥이 나서서 임건우를 돕기 시작해 대다수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었다.백옥은 조금 전 분명 말했다.누가 임건우를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일 거라고.그러나 백옥은 삼십 년간 독수리를 이끌어오
슉.견곤검이 하늘과 땅을 가를 듯한 기세로 양용진을 향해 날아들었다.양용진은 기운이 자신을 노리는 걸 느끼고 섬뜩해져 맹진수를 내팽개치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동시에 독수리 부대의 몇몇 고수들이 나서서 양용진을 지키며 견곤검을 막아섰다.“건방지군!”“감히 독수리 통령을 암살하려 들어? 너 같은 놈은 만 번 죽어 마땅해!”그중 한 명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임건우를 단칼에 베여버리려 했다.이 자의 수위 단계는 분신에 도달한 강자.기운이 방출되자 공간이 일그러지고 무한한 살의가 사방을 휘감았다.“장우용, 언제부터 너도 권세에 아첨하는 자가 되었어?”백옥이 몸을 날려 임건우 앞에 서며 손바닥을 뻗어 일그러진 공간을 깨부수고 다가오는 중년 남자를 노려보았다.“뭐... 뭐라고?”장우용이라 불린 남자는 백옥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몸이 굳은 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너... 너랑 백옥은 무슨 관계지?”백옥이 눈썹을 치켜들었다.“내가 바로 백옥이다.”“뭐... 뭐라고?”“당신이 백 통령이라고?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젊어졌지?”이쪽에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임건우는 곧바로 내려가 맹진수를 지키며 그의 부상을 확인했다.그 상태를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외할아버지, 대체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맹진수는 신호부의 부주로 평생을 연호를 위해 헌신해 왔다.이제 나이 들어 겨우 쉴 만도 한데 독수리 사람들이 이렇게 모욕하다니 이 정도면 사회의 쓰레기나 다름없었다.맹진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건우야, 외할아버지의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니 신경 쓰지 마라.”“흥!”임건우는 무겁게 코웃음 치고는 손짓해 땅에 박혀 있던 견곤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가 무표정하게 양씨 가문의 생일잔치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원래 독수리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피를 흘리는 의로운 단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 보니 썩은 구석이 많군.”“이제는 날아오르기조차 힘든 추락하는 독수리일 뿐이지.”“죽음이
“여긴 왜 온 거지?” “하나도 빠짐없ㅇ 아는 건 전부 말해!”백옥이 땅에 내려서자 그녀의 기세는 마치 끝없는 바다 같았다.분노에 찬 눈빛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를 죽일 듯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곧이어 몇몇이 털어놓았다.그들은 양용진의 명령을 받아 천애 병원의 원장과 그녀의 남편을 체포하고 병원을 완전히 파괴해 폐허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폐허로 만들라고?” “너희 천애 병원의 원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나 알고 있어?”“그녀는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바이러스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어. 만백성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실험하고 있다고! 그런데 양용진의 한 마디에 그녀를 잡아가고 병원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너희는 대체 왜 독수리에 들어왔지?” “고작 권력 있는 인물에게 충성하기 위해서였나?”그중 한 명은 오늘 여기서 목숨을 잃을 것을 직감하고서는 뻔뻔하게 말을 쏟아냈다. “당신이 바로 백옥인가? 좋아, 그럼 내가 말해주지. 당신은 독수라의 통령으로서 항상 높은 자리에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생각 따윈 모를 거야! 고대 결계 너머는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요수들의 소굴이지. 거긴 요수들이 끝도 없이 나와. 전쟁이라고? 그런 전쟁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우리는 당신처럼 강한 힘이 없어. 우리는 전장에 나가면 거의 죽을 판이란 말이야. 목숨을 잃느니 비굴하게라도 사는 게 낫다고. 누가 죽고 싶겠어? 이 모든 게 바로 당신 같은 전쟁광 때문에 벌어진 거야.”백옥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안남수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 말은 우리가 싸우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자는 거야? 그냥 요수들이 와서 인류를 다 죽이게 놔두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그 사람은 비웃듯 대답했다. “사람과 요수가 꼭 싸워야 한다고 누가 정한 거지? 백옥은 죽이는 것밖에 모르지. 그녀는 아들이 요수에게 죽었기에 복수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요수를 몰살시키려는 것뿐이야
임건우 덕에 젊음을 되찾은 백옥은 이제 외관상 18세로 보이게 되어 독수리의 이들조차 처음에는 백옥을 알아보지 못했다.그러나 육예훈은 독수리 내에서 전투력 면에서 백옥 다음으로 손꼽히는 인물로 언제나 백옥의 오른팔이 되어주던 존재였다.이들 중 아무도 육예훈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지금 한 명의 목이 날아가고 머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나머지 여덟 명은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육... 예훈 씨, 저희는... 저희는 백 통령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한 명이 말을 더듬으며 간신히 변명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예훈의 도끼에 몸이 두 동강 나 버렸다.“무례하지 않았다고? 내가 귀먹었을 거 같아?”휙.또 다른 한 명이 허리에서 반으로 잘려나갔다.현장은 처참한 아수라장이었다.이게 바로 도살자였다.육예훈이 지나가는 곳은 어디든 지옥으로 변해버렸다.안남수가 내려와 육예훈을 힐끔 노려보며 투덜거렸다.“맨날 이렇게 피범벅으로 난장판을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냐고? 더럽고 혐오스러워서 못 봐주겠네.”육예훈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익숙해지면 별거 아니야.”그렇게 세 명을 연달아 베어버리자 나머지 여섯 명은 두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눈앞의 육예훈과 안남수 같은 고수들 앞에서 그들은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이들을 이끌던 대장은 양용진에게 아첨하려는 마음에 자원하여 이 작은 경주에까지 왔던 것이지만, 하찮은 인물들을 잡아 공을 세우겠다던 계획이 이처럼 독수리 최강 커플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이제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쿵!임건우가 그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용상권이 그의 가슴을 관통해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남자는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너... 너 대체 누구야?”“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자다.”임건우는 손에 향마추를 들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널 금방 죽이지는 않을 거야. 네 영혼을 이 향마추에 가둬두고 때를 봐서 무간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