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 무슨 뜻이지?”“나도 잘 몰라. 어떤 능력자분이 봉인한 곳이라도 하는데 전하는 데에 의하면 무한히 넓은 곳이래. 물론 그곳은 영기와 요괴, 요단, 살육이 풍부한 곳이여서 위험하지만 기회도 많아. 백옥통령님도 그곳에서 수위를 엄청나게 올리셨거든.”임건우는 한참 지나야 이월이 전달한 소식 내용을 소화하였다. 실제로 천의도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때부터 이미 소천지, 밀경 등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일반인인 임건우는 단 한 번도 그곳을 접촉하지 못해 단기간 내에 모든 정보를 소화하지 못했다.임건우가 다시 물었다.“그럼 아빠의 행방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네 뜻은 아빠가 상고 결계에 갔다는 소리인 거야?”이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임건우는 초점을 잃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속으로 이월이 말한 가능성을 계산하였다. 이월이 원수성 무덤 안의 전송진에 대해 모를 것이다. 마한영도 인지하지 못한 곳이니까.‘그렇다면 전송진이 바로 결계 안으로 통하는 입구인 건가?’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혹은 다른 미지의 소천지로 통할 수도.“비밀이 하나 더 있는데 알고 싶지 않아?”이월이 재차 물었다.“무슨 비밀? 이번에는 또 뭐에 관한 건데?”임건우는 넋을 잃은 채 대답했다.이월은 살며시 미소를 드러냈다.“역시 네 아빠에 관한 거야.”“또 무슨 조건을 제시하는 거 아니야?”“똑똑해!”“그래, 약속하지!”“네 아빠를 만난 적이 있어.”임건우는 펄쩍 날뛰며 바로 몸을 돌렸다.“정말? 어디서?”몸을 획 돌리자 임건우와 이월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월은 놀라 한 손으로 임건우의 가슴을 눌렀다.“뭐 하는 거야?”사슴 같은 눈망울로 임건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임건우의 심장도 매료되었다.‘날 꼬시는 건가?’“어디서 봤는데?”그가 서둘러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건곤검도 따라서 문짝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이월은 발밑을 보더니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임건우 씨, 검이 원래 커
쟁-현을 당기는 음이 화살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음은 번개같이 음파를 형성하여 이월을 싣고 쏜살같이 나아갔다.“와!”“정말 대단한걸!”임건우는 입을 크게 벌린 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쟁쟁쟁’소리가 연달아 울리면서 멀어지자 임건우도 재빨리 영식으로 건곤검을 공제하여 이월을 쫓아갔다....무산 신녀봉와 무강 사이에 배 한척이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요한 장면과 다르게 배 안의 상황은 그러하지 못했다.퍽!한 여성이 뺨을 맞아 피를 토해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임건우가 있었더라면 바로 여성의 신분이 드러났을 것이다. 여성은 바로 신후청을 떠나 약신곡으로 돌아왔으나 다시 돌아가지 않았던 공손 아가씨였다.손찌검을 한 여성은 질투심이 가득한 박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천한 년, 감히 대선배님을 꼬셔?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지?”“네 면상을 봐봐. 선배님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공손은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글썽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선배님, 오해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퍽!또다시 따귀를 후려쳤다.“또 변명하는 거니? 내가 눈뜬장님인 줄 아나 본데 네가 대선배님 방에서 나오는 걸 직접 봤어. 그래도 인정 안 할래?”여기까지 말하자 여성은 또 화가 났는지 이번에는 가죽 채찍을 꺼내 공손 아가씨를 세게 때렸다. 공손 아가씨는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사로서 하염없이 매를 맞기만 하였다.주변을 둘러싼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매를 든 여성만 칭찬 일색이었다.공손 아가씨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고 상처도 더 악화하여 얼굴이 망가질 정도로 무너졌다.“그 누구라도 이 년 몸이 탐나면 언제든지 가져가렴.”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노골적으로 음침한 웃음을 드러냈다.“제가 원해도 될까요?”“그래. 가져가.”공손 아가씨는 화들짝 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오지 마, 오지 말라고! 대선배님이 아시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직도 대선배 타령이야?”짝짝짝-
임건우는 깜짝 놀랐다. 천리 밖에 있는 머나먼 무강에서 공손 아가씨를 만나다니.‘설마 죽은 건가?’그는 황급히 공손 아가씨를 물에서 구해내었다. 숨을 내쉬지 않았지만 가슴은 따뜻했다.‘아직 살아있어!’임건우는 재빨리 공손 아가씨를 건곤검 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의도법의 전기침술로 그녀의 심장을 자극한 후 인공호흡을 해주었다.그녀의 몸에 난 상처들이 안타까웠다. 임건우가 다쳤을 때도 공손 아가씨는 그를 극진히 보살펴주었으니 이러한 모습이 그로 하여금 가슴을 저리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도대체 누가 이런 모진 수단을 쓴 거지?’“헉!”공손 아가씨는 입을 벌려 물을 뱉어냈다. 심장 박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의식을 차린 순간, 임건우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임건우? 나 지금 꿈 꾸는 거 아니지?”“꿈은 네가 아니라 내가 꾼 거 같아. 왜 물에 빠졌었던 거야? 몸에 난 상처들은 또 뭐고? 누가 그런 거야?”공손 아가씨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공중에서 이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너무 실력이 약한 거 아니야? 벌써 지치면 어떡해?”이월은 행방이 묘연해진 임건우를 수소문 끝에 다시 찾았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어느새 그의 곁에 하얀 옷을 걸친 여자가 한명 늘어났다.이월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저 여자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물에 빠진걸 내가 구해줬어.”“아이고, 여복도 참 많으셔라.”이월은 공손 아가씨를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온 몸의 상처와 망가진 얼굴을 보더니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며 더 이상 농담을 꺼내지 않았다.“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악독하네.”“이분은 공손 아가씨라고 약신곡의 제자이자 강남 신후청의 의사셔.”이월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둘이 아는 사이야?”임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배 한 척이 무강의 물살을 따라 빠르게 돌진해 왔다. 뱃머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강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를 눈치챈 이월이 입을 열었다.“그쪽을 다치게 한 사람들이
“여자 한명과 남자 한명이 저년을 구해준 것 같습니다.”배 위에 서 있던 손기람이 소리쳤다.“모두 죽여버려라!”“네. 알겠습니다.”뱃머리에 서 있던 남성 제자 두 명과 여성 제자 한 명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 눈에는 임건우 일행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이때, 한 남성 제자가 이월의 미모를 보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는지 옆에 있던 남성 제자에게 말했다.“저 여자 예쁜데? 내 스타일이야! 십몇년 동안 약신곡에만 갇혀있어 미인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워.”옆에 있던 남성 제자는 이월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렇네요. 잡아서 실컷 논 다음 죽여도 늦지 않죠!”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다른 여성 제자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변태들아, 어떻게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니? 저게 뭐가 예뻐? 내가 더 아름답지 않아?”그녀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두 남성은 구역질이 났다. 임건우의 한마디에 이미 불같이 화를 낸 이월은 그들의 음침한 대화를 듣자마자 살의가 생겨났다.“직접 목숨을 끊을 기회를 주지.”“뭐?”“저기 예쁜아? 혹시 우리 때문에 많이 놀랐어? 무서워하지 마! 우릴 기쁘게만 해준다면 죽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널 거둬줄 수도 있어.”이때, 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전해져왔다.‘아직도 안 끝났어? 사람 죽이는데 왜 이렇게 질질 끄는 거야?”호통 소리에 여성 제자는 곧바로 검을 꺼내 들었다.“내가 먼저 저 남자를 죽일게.”말을 마친 후 여성 제자는 즉시 뱃전을 밟고 뛰어올랐다. 이월도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곧장 여성 제자에게 돌진하였다. 임건우는 그녀의 몸에서 솟구치는 일종의 마기를 보아냈다. ‘정말로 마력을 수련하는 여자라니!’쿵-여성 제자가 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굉장한 폭발음이 울리더니 얼마 안 지나 몸 전체가 폭발하였다.그 순간, 임건우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앞으로도 그녀 앞에서만큼은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어때? 스스로 목숨 끓을 결심이 생겼어?”감미로
이월은 황급히 도망가는 그들을 더는 쫓아가지 않았다. 임건우는 건곤검을 공제하는 한편 의아한 표정으로 이월에게 물었다.“왜 안 쫓아가?”“지금 날 쫓아내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끼리 꽁냥꽁냥할려고?”이월이 냉소했다.“꼬시는 건 너지 내가 아니야. 쫓아도 네가 쫓아야 맞는 거지.”‘내가 여자를 꾄다고?’“알겠어. 내가 쫓아갈 테니까 나 대신 잘 돌봐줘.”공손 아가씨를 대신해 복수해 주겠다던 약속 때문에 임건우는 하는 수 없이 쫓아갔다.“난 시간 없는데? 네가 직접 챙겨.”임건우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도무지 왜 이월이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임건우는 마지못해 공손 아가씨를 배우에 앉혀놓은 후 다시 쫓아가려는 찰나 공손소희가 그를 제지하였다.“건우야, 쫓아가지 마.”“왜? 저들이 밉지 않아? 저들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모두 나랑 동문이야. 죽일 놈들은 고작 한두 명뿐이고. 그리고 기란 선배는 대장로의 친손녀라서 문파에서 권력이 엄청 나. 저들도 반항할 수가 없어서 한패가 된 거지 사실 본성은 착해.”“하지만 난 본성이 악해 보였는데?”이월을 상대한 그 둘만 봐도 치가 떨릴 정도로 악해 보였다. 하지만 쫓아가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약신곡에 가면 그때 다시 상대해도 늦지 않으니깐. 그리고 공손소희가 길을 안내하니 약신곡에 가는 길이 더욱 수월해졌다.“근데 건우야, 넌 왜 여기에 있는 건데?”공손소희가 물었다.“좀만 더 가면 약신곡 입구야. 외부인은 잘 모르는 곳이지.”임건우가 웃으며 말했다.“약신곡에 약을 구하러 왔어. 입구를 못 찾을까 봐 걱정했는데 덕분에 일이 잘 풀리것 같아.”공손소희는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손기람이 동문 제자들을 꼬드겨 자신을 죽이려 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처음마저 빼앗으려 들었으니 그 누구라도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녀는 반드시 이 모든 사실을 자신의 사부에게 알려주리라 마음을 먹었다....공손소희의 상처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특히 채찍으로 인
이월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물었다.“연애는 이제 그만하지? 날도 어두워지는데 안가?”임건우는 흠칫 놀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놀이용 배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왜 배를 안 몬 거지?”이월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뱃사공이 아니라 몰 줄 몰라.”놀이용 배의 모든 시설은 최고급이었다. 조종실은 선진적인 설비로 갖춰져 최고급 요트를 방불케 했다. 다행히도 임건우가 부잣집 아들이었을 적에 요트를 운전하는 법에 대해 배웠었다. 요트뿐만아니라 기동선 등 각종 교통수단도 모두 섭렵했는데 모두 그의 아버지인 임우진이 손수 가르쳐 주었다.쿵-모터가 굉음을 내더니 놀이용 배 아래에 있던 네 개의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하였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놀이용 배가 부두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미 약신곡의 영지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배가 아직 기슭에 닿기도 전에 부두에 많은 사람들이 총칼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음.”“상황이 심상치 않은데?”임건우는 창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일일이 살폈다. 한편 이월은 의자에 앉아 발을 높이 들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녀는 건방진 태도로 심드렁했다.“딱봐도 손기람이겠지 뭐. 먼저 일러바쳤나 봐. 대장로의 외손녀라 하지 않았나? 권력 있는 인물이니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이거 용혈등을 순조롭게 가져가기는 어렵겠는걸?”임건우는 그녀를 보며 넋을 잃었다.“야, 너랑 얘기하는데 왜 멍하니 서 있어?”“손기람이 우리가 약신곡에 들어 못 가게 막을 텐데. 혹시….”이때, 동그란 검은 공 열 몇 개가 갑자기 배 안으로 던져졌다.“폭탄이다!”“빨리 도망쳐!”임건우는 재빨리 한손으로 이월을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3미터 떨어진 공손소희를 안았다.쏴-천둥번개 속성이 두 다리를 관통하더니 빠르게 배 밖으로 도망갔다. 2초 후, 배안에서 맹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건설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초고급 요트급 배가 이렇게 허무하게 산산조각이 나서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역시나 손기람이 바로 해안가에 있었다. 다행히도 날이 점점 어두
천마는 다름 아닌 이월이었다. 그녀는 현재 몹시 화가 난 상태다. 임건우가 그녀를 안고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폭탄의 피해를 봤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수위로는 폭탄 탓에 죽지는 않고 작은 상처만 입을 것이다. 약신곡 제자들은 그녀의 날뛰는 모습에 수근수근대기 시작했다.“폭사하지 않았다니!”손기람은 악랄하게 공손소희를 해한 일이 절대로 폭로되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일단 대선배님의 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녀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이다.“저 마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저년이 손을 쓰기 전에 얼른 죽여라! 안 그럼 우리가 죽어!”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임건우의 위치가 멀어 공격이 전혀 먹히질 않았고 더군다나 그들 손에는 대형 열무기가 없었다. 그 중 약신곡 제자 한 명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공손소희! 넌 외부 악마 사력과 결탁하여 동문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점점 악독해지다니! 책임자님이 어떤 분이라고 너 같은 악마가 보자고 하면 볼 수 있겠니? 얼른 너의 죄를 뉘우쳐라!”딩딩딩-거문고 줄이 당기는 소리다.딩-슈욱-한줄기 음파가 번개같이 공중을 가로지나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사람은 머리가 터져버리고 말았다.부두 쪽은 삽시에 혼란에 휩싸였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공격을 가할 수 있다니 정말로 그들은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나씨 가문의 주인도 손쉽게 굴복시키는데 그들쯤이야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울 것이다.임건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 우린 약재를 구하러 온 건데 네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일을 벌여놓으면 어떡해? 약재를 못 구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이월은 눈에 살기가 넘쳐난 채 답했다.“약재를 못 구한다면 모두를 죽여야겠지? 이런 기세로 약재를 구한다고? 꿈도 꾸지 마. 그리고 남자면 사나이다운 기세도 있어야지 넌 뭔가 남자 같지도 않아.”이월의 도발에 임건우는 어이가 없었다.“알았어, 알았어. 그럼 네가 다 죽여버려
하지만 그녀가 말 못 한 사실이 있다. 바로 밤마다 대선배가 그녀의 방에 드나든다는 것을.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건 상관없지만 대선배님에게까지 누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말 못 하겠지? 하긴 증거가 확실한데 변명할 것도 없겠네. 네 이년,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것도 모라자 악마와 결탁하여 약신곡을 해하려 들다니. 약신곡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넌 조상님들과 사부님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해.”“할아버지, 더 이상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얼른 영원포로 저들을 죽이세요!”약신곡의 대장로이자 손기람의 할아버지인 손대동도 현장에 나와 있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얼른 영원포를 가져오너라!”임건우는 영원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 탓에 손대동을 막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때, 큰 키에 아우라가 넘치는 사람이 약신곡에서 뛰쳐나왔다.“전 소희가 외부 세력과 결탁하고 동문을 죽이지 않았다고 믿어요. 필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그는 바로 약신곡의 대제자이자 공손소희의 대선배이다. 소희는 멀리서 자신을 위해 나서는 대선배를 보자 눈시울을 붉히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선배님, 전 억울해요. 기람선배가 절 오해하시는데, 전...”이월은 참지 못해 그들의 대화를 가로챘다.“뭐가 억울하고 무서운데! 고작 네 대선배를 꾀는 일이잖아? 꼬셨다고 쳐, 그것도 능력껏 아냐?”그리고 임건우를 힐끗 보며 다시 이어 말했다.“보아하니 이미 임자 있으신 것 같은데 넌 그만 마음 접어야겠어.”순간 어이가 없어진 임건우다.“난 공손 아가씨와는 동료 사이일 뿐이거든? 그리고 난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야, 알겠어?”“와이프도 있는 놈이 바람을 펴?”“...”“말 안 한다는 건 인정한다는 뜻이겠지. 남자들은 다 똑같이 위선적이야!”“너 남자한테 버림받은 적 있어? 왜 극단적으로 생각해?”퍽-이월은 임건우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말 함부로 하지 마! 다시 한번만 더 그래면 죽여버릴 거니까.
왜 붕이가 그렇게 놀란 반응을 보였을까?그 이유는 간단했다.백의설이라는 여자는 백리 가문에서 가장 잔혹하고 독살스러운 여인으로 악명 높았다.백의설의 손에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천성성에서만도 다섯 개 이상의 가문이 그녀에게 멸문지화를 당했다.그녀는 어린아이조차 남기지 않고 철저히 몰살시키는 잔혹함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천성성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 정도였다.“차라리 염라대왕을 건드려라, 독부인은 건드리지 마라!”이 독부인, 즉 독과부가 바로 백의설이었다.임건우는 계단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의설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그 순간, 임건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임건우는 백의설에게서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마치 피로 연결된 것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이 임건우를 사로잡았다.동시에 백의설도 임건우를 응시하며 눈빛이 뜨거워졌다.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선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듯한 애틋함을 담고 있었다.그 뜨거운 눈빛은 임건우의 뺨을 데울 만큼 강렬했다.하지만 취보재의 사람들은 이들 사이의 묘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대장은 백의설에게 급히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보고했다.“아가씨, 이자가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리다 여진 아가씨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희 경비원까지 죽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위로 돌아가 주시면 이자를 반드시 잡아 처리하겠습니다.”퍽!백의설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그러자 공중에 떠오른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대장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꺼져라.”백의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그 말에 모든 이들이 몸을 떨었다.이제 독과부가 분노해 진짜로 화를 내는구나 싶었던 것이다.뺨을 맞은 대장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급히 무릎을 꿇었다.“소인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아가씨!”주변의 구경꾼들도 숨을 죽였다.그들은 임건우와 임하나를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취보
“가고 싶다고? 꿈 깨!”“이 여종부터 죽여라!”몇 명의 경비원들이 사나운 기세로 휠체어를 붙잡았다.그중 한 명이 힘껏 주먹을 휘둘러 붕이에게 내리쳤다.이 취보재의 남자 경비원들과 비교하면 붕이의 실력은 그야말로 미미했다.그런 공격 앞에서 붕이는 피할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단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아!”퍽!하얀빛이 번쩍이 붕이의 눈앞에서 머리가 하늘로 솟구쳤다.피가 붕이의 머리와 얼굴에 튀었다.임건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견곤검을 잡았다.휠체어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휠체어는 저절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붕이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임건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붕이의 귀에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임건우가 강여진과 취보재의 경비원 한 명을 죽였다는 사실에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이제 정말 끝났어!”“완전히 죽었어... 도망친다 한들, 백리 가문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이 남자, 어떻게 이렇게 충동적일 수 있지?”붕이는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백리 가문 사람들이 오면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그런데 임건우는 취보재의 경비원들에게 포위당하고 있었다.붕이는 임건우를 끌고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다.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있었고,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몇몇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이 사람, 두 명이나 죽였는데도 이렇게 태연하네. 배경이 있을 거야.”“배경? 다리도 없는 남자, 어린아이까지 안고 있는데 배경이라니. 뒤에 궁녀나 시녀가 따라다닌다든가 그런 게 있을까? 그냥 머리가 핑 돌아서 날뛰는 바보 같은 녀석일 뿐이야.”“강여진은 여섯 번째 부인의 친조카라는 거 알아? 이거... 그냥 끝장이야.”사람들의 속삭임 속에서 임건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임건우는 아버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바로 위층에서 온 기운이
임건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눈앞의 여자는 이 장신구 가게의 점원임이 분명했다.손님으로 가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다니?임건우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말했다.“너희 사장은 손님이 왕이라는 걸 안 가르치더냐? 네가 감히 손님한테 빈정거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에 붕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깜짝 놀랐다.붕이는 급히 임건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이 가게는 취보재, 천성성에서 백리 가문의 소유로 유명한 곳이었다.여기는 함부로 소란을 피울 곳이 아니었다.백리 가문은 가주가 단약을 구하러 갔다가 재산의 절반을 약신궁에 빼앗겼지만, 가주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오히려 백리 가문은 쇠락하지 않고 더 번성해졌고 지금은 재력으로 천성성에서 으뜸가는 가문이었다.윤씨 가문과 비교해도 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더구나 눈앞의 여자는 단순한 점원이 아니었다.그녀는 백리 가문과 먼 친척 관계에 있는 강여진이라는 여자였다.원래 강여진은 지금처럼 잘나가는 인물이 아니었다.과거에 붕이처럼 윤씨 가문의 하녀였고, 그것도 임시 하녀로 지위는 붕이보다 낮았다.어느 날, 강여진이 윤씨 가문에서 물건을 훔치다 붕이에게 들켰고, 붕이는 그녀를 심하게 꾸짖었다.이 일로 강여진은 붕이를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다.하지만 세상은 아이러니했다.강여진의 고모가 백리 가문의 여섯째 아들과 결혼하면서 그녀도 자연히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고, 천성성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얻게 되었다.그 후로 강여진은 붕이를 볼 때마다 온갖 방법으로 모욕하며 괴롭히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윤서희는 백리 가문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붕이가 모욕을 당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그런 강여진이 지금 분노를 터뜨렸다.그녀는 임건우의 다리, 그것도 다친 다리를 걷어차며 손가락으로 임건우의 코앞을 겨누고 욕설을 퍼부었다.“웃기지 마! 너 같은 불구자가 감히 우리 백리 가문의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려? 네가 개똥이라도 먹었냐?”그녀의 발길질로
임건우는 깜짝 놀랐다.‘이렇게 비쌀 수가?’임건우는 윤서희에게 그 대해장단을 줬던 걸 후회했다.‘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텐데...’임건우는 탑을 한 번 바라봤다.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기혈단은 연금술 약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 속하는 것이었기에 그 약의 가치는 낮았다.그렇지만 그 약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바로, 수련하지 않은 사람도 복용할 수 있다는 점.그래서 많은 사람이 수련을 시작할 때 기혈단을 먹곤 했다.그때 윤문용과 윤서희가 임건우의 집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모두 검은색 밤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그리고 빠르게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혹시 소식 듣고 도망쳤나?”윤문용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임건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만약 임건우가 도망쳤다면 그 기회를 놓친 셈이 될 것이다.“그럴 리 없어요! 그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어요?”윤서희는 차분하게 답했다.비록 윤서희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사업가였고, 게다가 이미 얼굴에 상처를 입은 상태라 마음이 조금 왜곡되었다.윤서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 다른 건 다 부수적이었다.게다가 임건우는 그저 평범한 사람, 윤서희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보물은 아직 남아있어요!”“이건 붕이의 물건이에요. 남겨두었으니 분명 돌아올 거예요.”윤서희가 말했다.“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자. 반드시 돌아올 거야.”임건우는 딸을 안고 붕이와 함께 상업 거리에서 잠시 걸었다.시간이 이미 늦어져 딸은 하품을 연달아 하며 졸고 있었다.임건우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오자고 했다.그때 임건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윙!심장이 잠시 쿵쾅거렸다.“뭐지?”“이 느낌... 익숙해!”“그건... 아버지의 기운이야!”임건우는 자신의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감지한 것을 깨달았다.이 사실에 그는 가슴이 뛰었다.그동안 임건우는 아버지가 실
“둘째야, 이번 일은 내가 가는 게 좋겠다.”윤중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동근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형님, 혹시 내가 보물을 독차지할까 봐 그러는 겁니까?”윤중위는 태연히 답했다.“그럴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단지 내가 전에 그 집에 다녀온 적도 있고, 그 자를 직접 본 적도 있으니 처리하기가 더 수월할 것 같아서 그래.”이때 이희연이 나섰다.“동근아, 넌 성격이 급하고 덜렁대는 편이잖아. 이건 고인이 남긴 보물이라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야. 차라리 형님에게 맡기는 게 안전해. 넌 그냥 집에서 좋은 소식 기다리면 돼.”두 형제는 물론이고 여자인 이희연까지 가세해 의견이 오가며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였다.“그만!”“내가 아직 죽지 않았어! 이건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윤문용이 단호하게 말했다.“서희야, 오늘 밤이 되면 나와 함께 가서 그자를 데려오도록 해라.”윤서희는 잠시 망설이며 물었다.“할아버지... 설마 그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죠?”윤문용은 답했다.“그건 그가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에 달렸다.”한편, 윤씨 가문 사람들이 밤에 임건우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동안, 임건우는 붕이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딸 임하나를 안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임건우는 붕이가 휠체어를 밀게 해 집 밖으로 나왔다.처음으로 이 낯선 수련도시를 둘러보는 기회였다.임건우는 이곳을 구경하며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 연호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짧은 시간 동안, 임건우는 붕이를 통해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그러던 중 붕이가 물었다.“도련님... 강북 풍화성에서 도망쳐 나온 난민은 아니죠?”임건우가 단약을 건네며 붕이를 구해낸 후, 붕이는 그를 도련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아무리 임건우가 고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대가문의 규율 속에 세뇌된 영향일 터였다.마치 아직도 악덕 봉건 사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비록 임건우가 자유를 줬지만, 붕이는 여전히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귀한 약초가 있을 수 있지?”“그럼 임건우가 엄청난 고귀한 연단사라는 말인가?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어린 고수 연단사가 어디 있을까?”윤서희는 임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너는 어떻게 이런 약초를 갖고 있지?”임건우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이 약초로 붕이의 매매 계약서를 사면 되겠지?”“너... 이 약초로 붕이를 사겠다고?”“어때? 부족해?”“...”부족할 리가 없지!이건 바로 대해장단!하나만 먹어도 수십 년의 장애를 풀 수 있는 약, 이걸로 붕이를 사면 충분히 넘칠 정도였다.윤서희는 붕이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붕이는 네 거다.”임건우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럼 이제 가라.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윤서희는 몇 마디 하려 했지만, 이미 손에 쥔 대해장단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녀는 즉시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했다.윤서희는 임건우를 한 번 깊게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떠났다.윤서희가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붕이는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당신... 정말 대해장단으로 나를 샀다고요?”“샀다기보단 자유롭게 해준 거죠.”임건우는 교훈을 주듯 말하며 정정했다.“공짜로 밥을 먹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 내가 몇 숟가락 못 먹고 몇 마리 파리가 날아왔지만... 자, 재료는 아직 남아 있어요? 남아 있다면 좀 더 만들어 줄 수 있겠어요?”붕이는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그리고는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임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윤서희가 방금 한 말이 임건우에게 하나의 경고처럼 다가왔다.천성성에서 강자가 존중받고 법은 중요하지 않다.윤씨 가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하니 몇 개의 약초만으로 자신을 처치할 양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그러니 대해장단 같은 고급 약초를 꺼내면 그들의 욕심이 더 커질 것이다.“흥!”
“건우 씨,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당신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어요.”윤서희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당신이 큰 회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윤씨 가문에 알려졌어요. 아까도 보셨죠?”“제 삼촌은 워낙 말을 안 듣는 사람이에요. 간신히 설득해서 돌려보냈지만, 만약 그분이 정말로 당신을 공격한다면 당신은 이 생에서 모든 걸 잃게 될 겁니다. 당신 딸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임건우는 휠체어를 앞으로 몇 걸음 밀며 다가갔다.그리고 붕이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들었다.임건우는 임하나의 동그란 눈을 보며, 그 눈이 마치 엄마를 빼닮은 것 같아 묘한 충만감을 느꼈다.아이가 태어났을 때 임건우는 그녀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다.“역린.”용에게는 건드리면 죽음을 부르는 역린이 있듯, 그의 딸은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윤씨 가문이 만약 임하나에게 손을 대려 한다면 그는 그 즉시 윤씨 가문을 뿌리째 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갓 한 달 된 아기를 바라보며 임건우는 가볍게 아이와 놀아주었다.보통이라면 신생아의 시력은 거의 발달하지 않아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일 터였다.하지만 이 아이는 자연여신의 신격을 물려받았기에 평범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임건우는 자신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책임감을 강렬히 느꼈다.“당신 삼촌께 그런 생각을 접으라고 확실히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임건우는 차분히 말했다.윤서희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비록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그녀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윤동근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다.비록 외모가 손상되었어도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자신이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다시 말해 그녀는 임건우를 하찮은
윤동근은 큰 소리로 외쳤다.그 소리에 집 전체가 진동했고, 심지어 그 소리에 임건우의 딸, 임하나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임건우는 화가 치밀어 올라 윤동근을 쏘아보며 말했다.“너, 당장 내 집에서 나가!”“뭐라고?”“세상에!”이 순간, 붕이, 그리고 윤서희도 모두 깜짝 놀랐다.윤동근에게 그렇게 말하다니?이건 정말 큰 일이다!쿵!윤동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손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책상은 그대로 부서졌고, 붕이가 힘들게 만든 맛있는 요리도 모두 망가졌다.윤동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이 자식, 내가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다. 큰 회춘단의 출처를 말하고, 네가 가진 값진 것들 모두 내놔. 그렇지 않으면 이 손바닥 한 번에 네가 죽는 건 물론, 시체도 남지 않을 거다!”임건우는 윤동근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윤서희를 보며 말했다.“서희 씨, 나는 본래 당신한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는데 지금 상황은 조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당신들이 내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강도질이라도 하러 온 건가?”윤서희는 얼굴이 붉어졌다.윤동근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뭐? 너는 윤씨 가문 앞에서 무슨 존재라고? 너 같은 놈이 내 손에 죽은들 뭐가 문제겠어?”“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임건우는 윤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윤서희는 윤동근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내며 속삭였다.“삼촌, 큰 회춘단 문제는 할아버지께서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하면 오히려 일이 커질 수 있어요. 이러면 안 됩니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요.”윤동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비웃으며 대답했다.“그게 뭐 대수라고? 이 다리가 없는 장애인, 외지에서 온 쫄병,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 하나 데리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거라고? 너랑 할아버지가 너무 걱정이 많아. 내 말 들어, 그냥 처리해버리자. 간단하고 직설적으로 끝내는 거지.”윤동근은 고집을 꺾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만약 그가 끝까지 버티
“금단기 고수!”임건우는 윤동근의 기운을 감지하며 그의 수련 경지를 단번에 알아챘다.하지만 왜 이 자는 마치 개미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가?보통 상황이었다면 임건우는 이런 자들을 한 손으로 몇 명이고 때려눕힐 수 있었다.더 황당한 건 이 집은 이미 임건우 소유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멋대로 침입해 놓고선 이토록 당당하다는 것이다.옆에서 있던 붕이는 놀란 표정으로 급히 일어나더니 식사 중이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했다.“아가씨, 그리고... 도... 도련님, 어떻게 여길 오셨습니까?”윤동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 우리 윤씨 가문에서 떠나 이 다리 없는 폐인과 함께 살겠다고 했지? 좋아, 내가 오늘 너를 완전히 풀어주마.”그는 이어 임건우를 향해 말했다.“야, 나는 윤씨 가문의 도련님, 윤동근이다. 그런데 이 녀석, 네가 우리 집에 살면서 도련님을 보고도 앉아서 밥을 먹다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거야? 얼른 무릎 꿇고 인사드리며 네 죄를 고해라!”붕이는 급히 말했다.“도련님, 이분은... 이분은 다리가 없어서 무릎 꿇는 건 좀...”짝!윤동근은 갑자기 붕이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이미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금세 부어올랐고 코피까지 흘러내렸다.“이 년아, 네가 감히 어디서 말을 보태?”“옆에 가서 무릎 꿇어라!”붕이는 코와 입을 움켜쥐며 분함을 삼켰다.그러나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눈길을 윤서희에게로 향했다.자신의 주인인 윤서희가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윤서희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그녀는 약간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삼촌, 굳이 사람을 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요?”윤동근은 비웃으며 말했다.“뭐라고? 내가 이 가문의 도련님인데 네 하녀를 때리는 것조차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냐? 서희야, 네가 요즘 천단루를 경영한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그리고 너, 올해 스물네 살이지? 석 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