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데요.” 동혁은 류혜연의 태도를 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 ‘우리 집에 눌러사는 손님이면서 뭐 이리 당당하지?’ ‘이리저리 내 트집이나 잡고, 마치 내가 무슨 자기 하인인 줄 알아?’ “동혁이, 너 그게 무슨 태도야?” 그러자 류혜연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아직 투자회사 사장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위세 부리는 거야?” “능력이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세화의 절친이 아니었다면 넌 여전히 항난그룹에서 운전기사로 일했을 거야.” 동혁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한마디만 말했는데 류혜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거렸다. 동혁이 류혜연을 보고 말했다. “이모님, 항난그룹에서 운전을 하면 월급이라도 있죠. 가족들에게 운전을 해준다고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죄송해요.” 동혁은 자신이 항난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의 선입견은 무서운 법이다. ‘어차피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류혜연은 화가 나서 표정을 찡그리며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동혁이, 너 지금 가족을 위해 운전을 해줄 때에도 돈을 달라는 거야? 아주 돈귀신이 들었구나!” “친형제라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죠. 이모님 가족들이 우리 집에 살면서 집세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 가스, 식비도 내지 않잖아요.” 동혁은 류혜연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류혜연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발을 구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언니, 언니가 아주 훌륭한 사위를 뒀네. 우리한테 전기, 가스 값을 달래. 좀 있으면 우리를 쫓아내겠어!” 류혜진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동혁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동혁이 너 아주 간이 부었구나? 네가 집에서 놀고먹을 때 내가 언제 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있어? 감히 내 여동생 가족에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너 아주 길바닥에 쫓겨나봐야 정신을 차릴래?” 류혜진이 동혁에게 욕설을 퍼붓자 류혜연은 득의양양하게 팔
“운전 경력이 수십 년 된 베테랑 운전기사라고?” 류혜연은 얼떨떨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집안에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 밖에서 기사라도 불렀나?’ 류혜연은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구만.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이 지내니까, 돈이 아까워 내게 생활비를 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돈 낭비를 해서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어?” 류혜연이 생각하기에 동혁은 자기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돈을 주고 대리운전기사를 부를지언정 딸의 운전기사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대리운전기사요? 뭐, 이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동혁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류혜연이 또다시 류혜진에게 고자질했다. “언니, 잘난 사위 좀 봐. 자기도 생활비는 안 내면서 체면 좀 세우겠다고 돈을 헤프게 쓰네.” 류혜연은 동혁에게 화가 너무 났다. 그녀는 오늘 동혁에게 현소의 운전기사를 꼭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동혁아, 빨리 대리기사 부른 거 취소해.” 류혜진이 동혁을 꼬집었다.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돈은 안 썼어요. 이 대리운전기사는 돈이 필요 없거든요.” “돈이 필요 없다고? 지금 누굴 속이려고 그래?” 류혜연은 투덜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문 앞에서 헐떡이며 뛰어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여보, 집에는 또 왜 왔어? 오늘 근무하는 날이잖아. 또 괜히 사법부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서 반성문을 쓰려고 그래?”바로 세화의 이모부인 장영도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고 땀을 닦으면서 숨을 헐떡였다. “내가 사법부의 그 개X식들에게 붙잡혀서 이틀 동안 운전병으로 일하는 징계를 받았어.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여기로 와서 VIP를 태백산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VIP는? 우리 집에 오셨어?” “VIP라고? 우리 집에 VIP는 안 왔는데?” 류혜연이 류혜진 등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실이
장영도는 잠시 화를 참기로 하고 얌전히 차를 몰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세화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동혁과 현소가 짐을 싸서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궁금해하며 물었다. “동혁 씨, 현소하고 어디 가?” “현소의 친구들 몇 명이 왔는데 나보고 태백산에 같이 놀러 가자고 해서.” 동혁은 아이들 몇 명과 노는 것에 흥미가 없었고 그래서 세화를 초대했다. “여보도 같이 가자. 우리 지난번에 그곳에서 지낼 때 못다 한 일도 있잖아.” 동혁이 윙크를 하며 말하자 세화의 예쁜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지난번에 세화는 태백산장에 갔을 때 화란이 약을 먹여서 밤새도록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서둘러 태백산을 내려왔다. 세화는 비록 하룻밤 동혁과 호텔에서 묵은 적은 있었지만 항상 태백산장 같은 분위기 있는 곳이 그리웠다. “난 못 가.” 세화는 동혁을 노려보더니 둘만 알아듣게 조용히 말했다. “밤에 푹 쉬어야 해. 내일 중요한 파트너와 회의가 있거든.” “할 수 없지.” 동혁은 쑥스러운 듯 코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 그는 세화와 호텔에 묵었었다. 그는 계속 참아오다 드디어 기회를 만나 세화와 한밤중까지 침대에서 불타는 밤을 보냈다. 그 결과 다음날 세화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동혁은 세화가 그일 때문에 자신과 태백산에 가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조금 머쓱해졌다. 세화가 말했다. “잘됐어. 마침 중요한 협력업체가 오늘 밤 태백산장에 묵을 예정이니 동혁 씨가 신경 좀 써줘.” “알았어. 그쪽 대표가 누구야?” 동혁은 놀면서 세화의 일을 도울 수 있었기에 매우 행복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화가 대답했다. “천용훈이라는 인플루언서야. 이번에 태백산장 홍보대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 당연히 그전에 태백산장이 어떤지 알아야 하잖아.” 예전 태백산장은 3대 가문의 손에 있을 때는 무관심으로 거의 황폐화에 가까웠었다. 각종 부대시설이 부족해 오는 손님 또한 턱없이 적었다. 세화와 최원우를 돕는 전문
“형부, 안녕하세요.” “매형, 안녕하세요.” 주현영 등은 모두 현소를 따라 동혁을 형부나 매형이라고 불렀는데 태도가 아주 자유분방하면서 건성이었다. 심지어 이상한 눈빛으로 동혁을 훑어보기도 했다. 전에 현소이가 막 H시에 왔을 때 이들은 현소가 데릴사위인 자기의 형부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이후 몇 차례 연락을 하면서 동혁에 대한 현소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처음 동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동혁을 좀 얕잡아 봤다. 서진솔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형부가 운전기사로 오셨나 봐요. 감사해요. 잘 좀 부탁할게요.” “매형, 차비와 유류비는 저희가 내겠습니다.” 남학생인 하지성이 말했다. ‘저 사람이 그 데릴사위지? 현소의 사촌 언니 집에서 무시를 당하며 산다고 하던데? 장모님은 툭하면 욕설을 퍼붓고 말이야.’ 예전에 주현영은 현소와 영상 통화를 할 때 뒤쪽에서 갑자기 류혜진이 동혁을 집에서 놀고먹는다며 쫓아내겠다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현영은 이 일을 친구들에게 말했고 온라인에서 크게 떠들썩했었다. 친구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데릴사위는 정말 비참하다. 하지성이 동혁에게 차비와 기름값을 지불하겠다고 한 것에 악의는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지 동혁을 동정했고, 그건 다른 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동혁에게는 더 상처였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보다 동정하는 게 더 큰 상처일 때가 있다. 동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희들은 모두 현소의 좋은 친구들이면서 내 동생 같은 얘들인데 어떻게 너희에게 돈을 받아?” 이 말에 주현영 등은 동혁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하지성이 말했다. “태백산에 72번 길이 아주 험하다고 들었어요. 피곤하실 텐데 거기다 저희 때문에 일도 못하시잖아요. 그러니 비용은 저희가 부담해야죠.” 나머지 셋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정말 괜찮다니까.”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운전하는 것도
하지성은 매우 예의 있게 말했다. 그러나 말투에서 동혁에 대한 무시가 느껴졌다. 장영도에게 담배 두 갑을 사다 주라고 하면서도 심부름을 하는 동혁을 위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성이 너 지금 뭐하는거야? 집에서 대우받더니 밖에서도 도련님 노릇을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더운데 우리 형부는 덥지 않겠어? 음료수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와.” 현소는 불쾌해하며 가장 먼저 동혁 편을 들었다. 하지성은 재벌 2세였고 집안이 꽤 부자라서 현소는 그가 도련님 노릇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안색이 좀 안 좋아졌다. 그는 현소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H시에 와서 현소와 함께 태백산장에 놀러 가자고 한 것도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소가 동혁을 감싸며 하지성에게 가차 없이 화를 내자 하지성의 마음속에는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에 서진솔이 재빨리 말했다. “아이, 현소야 왜 그래? 지성이는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너무 뭐라 하지 마.” “그래 맞아. 우리는 이미 모두 차에 탔고 매형이 아직 타지 않아서 지성이가 그냥 편하게 매형에게 사 오라고 한 거야.” 주현영과 나호영도 모두 하지성을 거들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했다. 현소는 툴툴거리며 하지성을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괜찮아, 마침 나도 담배 사러 가야 했는데, 가는 김에 물도 사 올게.” 동혁은 아이들과 따지기 귀찮아서 4만 원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왜 다 물이지? 난 콜라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동혁이 생수 한통을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 서진솔이 작은 소리로 불평했다. 현소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았다. “진솔이, 너 콜라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 와서 마셔.” 서진솔 등 몇 사람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이런 사소한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그러니 집에서 매일 장모님께 야단맞지.’ 동혁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성이가 이렇게 잘 준비했다니 그럼 난 안심해도 되겠어. 너희들 안전에 주의하고 아저씨는 먼저 갈게. 동혁이 넌 현소하고 친구들을 잘 돌봐.” 장영도는 마지막으로 동혁을 노려보고는 동혁이 뭐라 하기 전에 재빨리 차를 몰고 떠났다. ‘군부로 복귀하면 바로 윗분들을 찾아 사법부 사람에게 말 좀 잘해달라고 해야겠어. 앞으로 저 이동혁 같은 나쁜 놈은 상대하지도 말아야지.’ 날이 저물자 하지성이 말했다. “우리 먼저 체크인하고 짐 풀고서 밥 먹자.” “어, 이게 누구야? 우리 현소 후배도 태백산장에 놀러 온 거야?” 일행이 로비 밖으로 나오자마자 맞은편에서 젊은이 몇 명이 다가왔다. 모두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태백산장 직원이 뒤에서 그들의 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현소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만으로 가득한 얼굴의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현소를 주시했다. “아, 반석 선배님.” 당황한 현소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녀의 시선은 의식적으로 동혁을 찾았는데 그가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는 것이 기억났다. 현소에게 말을 건 젊은이는 바로 오한민의 아들인 오반석이었다. 그는 예전에 현소와 같은 학교였는데 한 학년이 더 높았고 현소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현소는 예쁘고 노래와 춤에 능해서 학교에서 개최하는 문예종합공연에 자주 참가했었고 학교를 대표하여 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유명해져서 오반석의 주의를 끌었다. 오반석은 이씨 가문을 위해 일하는 자신의 아버지 오한민을 믿고 평소에 학교에서 엄청 위세를 부리고 다녔다. 항상 뒤로 사람들을 거느리며 다녔고 게다가 외부의 깡패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서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오반석은 항상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학교 앞에서 현소를 막아섰다. 그래서 힘없는 현소는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다행히 오반석이 대학에 간 후로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현소야, 체크인하고 저녁에 같이 놀자. 우리는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을 거야. 네 친구들 다 와도
하지성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는 현소 앞에서 오반석이 뻔뻔스럽다며 직접적으로 욕했다. 체면을 구기게 된 오반석의 얼굴에서 표정이 점점 사라지더니 방금까지 싱글벙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불만으로 가득해졌다. “이 자식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짝! 오반석은 두말없이 손을 들어 하지성의 뺨을 때렸다. 하지성은 오반석이 정말로 자신의 뺨을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맞아서 바닥에 쓰러졌다. “지성아!” “선배님,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요?” 현소와 친구들은 아연실색하여 얼른 하지성을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봐.” 하지성도 자존심이 강해 힘껏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출혈된 눈으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오반석, 이 자식이 감히 나를 때려?” “어쭈, 지금 덤비는 거냐? 또 맞으려고?” 오반석은 다시 손을 들어 때리려고 했다. 하지성은 놀라며 얼른 피했다. “하하, 바보 같은 놈. 우리 반석이가 못 때릴 줄 알았나 봐? 그렇게 반석이에게 대들다가 더 크게 혼쭐난다.” “이놈도 우리 형수님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거 알아? 저번에 반석이에게 여자를 뺏으려다 가 다리가 부러진 놈이 있는데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어.” 오반석 주변의 친구들이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이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하지성은 부끄러우면서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고,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상대가 무서웠다. “야, 넌 저리 꺼져.” 오반석은 하지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며 현소에게 다가갔다. “현소야, 룸이 어디야? 내가 데려다줄게. 이따가 같이 밥도 먹자.” 오반석이 또다시 현소의 짐을 들어주려고 했다.화가 난 현소의 작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오반석의 말을 듣고 캐리어를 몸 뒤로 가져가 피하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선배님, 지성이를 저렇게 때리다니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니에요? 선배님이 저를 데려다 주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선배님과 밥도 먹지 않을 거고요.” 오반석은 무서운 표정으로 하지성을 노려보더니 다시 싱글벙글 웃으
“현소야, 오늘 밤 나하고 함께 식사하지 않겠다면 네 친구들 누구도 태백산장에 묵을 생각 하지 마.” 현소가 계속 거절하자 오반석은 연기를 그만두고 아예 본색을 드러냈다. 현소와 친구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오반석, 이 사람 너무 거만하고 무례한 거 아니야?’ ‘지가 현소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현소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이런 식으로 성질을 부리다니.’ 현소는 더욱 분노했다. “선배님은 역시 넌 무서운 사람이에요. 선배가 날 좋아한다고 했을 때 안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오반석의 표정이 가라앉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날도 어두워졌는데 태백산 정상에는 잘 곳이 태백산장 하나밖에 없어. 한번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묵을 곳이 있는지 찾아보든가.” “그러지 말고 현소가 오늘 밤 나랑 같이 자는 건 어때? 하하하.” 오반석의 친구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형수님이 반석이에게 아이도 하나 낳아주면 되겠어요.” “흐흐, 형수님은 아직 학교 다니시니까 어렵지 않을까? 나중에 애 데리고 대학을 다니는 게 좀 이상해 보이지 않겠어?” 온갖 지저분한 언사가 난무했다. 현소는 수치스럽고 분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현영 등도 현소와 마찬가지로 화가 많이 났지만 오반석과 그의 친구들이 워낙 무뢰한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다른 남자에게 놀림을 받는 것을 보자 더욱 분노했다. “오반석, 태백산장이 무슨 너희 집인 줄 알아? 우린 이미 방을 예약했어, 그것도 태백산장의 최고급 룸으로.” 하지성은 울화통을 터뜨리며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예약서를 보여주었다. 그는 현소를 기쁘게 해 주려고 특별히 자신의 지인에게 부탁해 태백산장에서 가장 좋은 룸을 예약하게 했다.오반석이 그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고 냉소했다. “하하, 최고급이라고? 이거 어쩌지? 그럼 체크인이 안 되겠네.” 말을 마친 오반석이 고개를 돌려 캐리어를 들어주는 직원들에게 손
여비서가 보고한 소식은 양도형을 혼란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동혁이 정신병이 있다고 비꼬던 사람들은 창피하여 땅 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도 동혁에게 계속 빈정거렸었다. 하지만 갑자기 성신제약에 대한 2000억의 투자 유치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소식은 동혁을 빈정거리던 사람들에게 마치 얼굴에 따귀 한 대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세화 역시 약간 놀란 눈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그녀마저도 지금 들은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동혁 씨가 출근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잖아? 그냥 이름뿐인 사장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거액의 투자 결정을 지시할 수 있는 거지?’ ‘원화투자회사의 사람들은 모두 투자시장 쪽의 전문가들인데, 동혁 씨의 말을 그대로 듣는다고?’ “비켜.” 양도형은 갑자기 자신의 여비서를 뿌리치며 동혁 앞으로 다가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말해보시죠. 투자 거절은 쓸모없는 데릴사위인 당신과 아무 상관없지요? 모든 건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 안 그런가요?” 양도형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무려 2000억의 투자야.’ ‘그게 이렇게 한 순간 거절이 되다니.’ 양도형은 이번 투자 건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투자만 받으면 그의 회사는 더 빠르게 고속 성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희망이 완전히 허사가 되고 말았다. 특히 양도형이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이 모든 것이 그가 여태껏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우습게 여기던 동혁이 그저 쉽게 전화 한 통으로 벌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무시하던 쓸모없는 데릴사위에게 반대로 진흙탕에 밟히는 기분이 든 양도형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일이 동혁과 무관하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동혁은 다음 말로 그에게 다시 한번 강한 일격을 가했다.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군요. 투자
동혁의 말을 듣고 연회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혁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우습게 생각했다. “저게 무슨 헛소리야? 설마 자기가 2000억 투자 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저 쓸모없는 인간이 원래 정신병원에서 나왔잖아요. 아마 또 정신병이 도진 거겠죠.” “진 회장님, 이럴게 아니라 남편분을 치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늘 이곳에 많은 병원 원장님들이 와 계시니 분명 아는 정신과 전문의사가 있을 거예요.” 모두 비웃으며 경멸의 눈빛으로 동혁과 세화를 바라보았다. 세화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불쾌함을 느꼈다. “동혁 씨, 괜히 헛소리 좀 하지 마.” 세화는 동혁을 잡아당겨서 약간 화가 난 작은 목소리로 훈계했다. “당신 겨우 회사에 이제 첫 출근을 했을 뿐이야. 그런데 누가 당신 지시를 바로 따르겠어?” 세화는 동혁이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금 전 동혁이 전화로 한 말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그녀는 절친인 천미에게서 동혁은 그저 명목상 투자회사의 사장이며 실권이 없다고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2000억의 투자처럼 큰일을 동혁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혁 씨는 왜 갑자기 전화로 투자를 하지 마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괜한 모욕을 자초하고 그러지?’ “여보, 나 장난하는 거 아니야. 원화투자회사는 내 지시에 따르게 되어있어.” 동혁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하지만 세화는 동혁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그저 퉁명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세화가 동혁에게 핀잔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양도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 회장님, 당신 남편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허세를 부리는 걸 아주 좋아하네요. 어떻게 회장님의 체면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죠?” 세화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세화야, 동혁이를 그냥 돌려보내. 괜히 여기서 더 망신당하지 말고.”
동혁의 말투에는 상대에 대한 무시가 가득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쓸모없는 데릴사위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 양 사장을 무시하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동혁의 말을 조금은 이해했다. ‘하긴 진 회장은 자산 수 천억 규모의 두 그룹을 소유하고 있지.’ ‘그런 진 회장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확실히 별로 없기는 해.’ “하하하, 난 또 무슨 저 쓸모없는 데릴사위가 무슨 특출 난 점이라도 있어서 저리 양 사장님을 무시하나 했더니만, 역시 자기 아내가 대단한 것을 믿고 까부는 거였어.” 한 사람의 말에 연회장에는 다시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동혁은 그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양도형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물었다. “어디 말해 보시죠. 당신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이 제 아내처럼 훌륭한 여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양도형은 동혁의 말투에 담긴 무시에 분노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도 진 회장님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해요. 하지만 비교하자면 제 능력도 그리 나쁘지 않아요.” “제가 이번에 왜 H시에 왔는지 아나요? 회사 이름으로 H시에 사업투자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곧 원화투자회사로부터 2000억 규모의 투자를 받을 예정이기 때문이에요.” 양도형은 세화를 바라보며 자신감 가득 말했다. “이 투자를 받으면 우리 회사는 더 빠르게 성장할 거고 머지않아 자산 규모가 진 회장님의 두 그룹을 능가할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놀란 연회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2000억 투자라고? 이거 완전 빅뉴스 아니야?” “그 정도 큰 규모의 투자라면 웬만한 중소기업도 고성장을 할 텐데, 하물며 성신제약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기업이라면 더 할 거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양도형을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이미 수년간 사업을 해온 선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0억 투자면, 역대 투자 유치 기록에서도 상위권이야.’ “양 사장님
양도형은 류성중이 도와주자 세화와 자신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사과의 말을 하고 이어서 아까 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세화는 굳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양 사장님, 아까도 제가 말했었죠.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러니 사장님이 상관할 거 없어요.” 양도형은 세화가 여전히 차갑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류 부이사장님 앞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양도형의 안색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세화야, 말이 너무 지나치는구나.” 류성중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도형이의 할아버지는 네 외할아버지와 수십 년 동안 친분이 있는 사이야.” “두 가문이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 도형이가 너를 위해서 한말인데, 그렇게 표정을 구기면 어떻게 해?” 앉아 있던 동혁은 이 말을 듣고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류성중이 양도형의 편을 들며 말하는 것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세화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동혁은 일어나서 한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서 나오기 전 류혜진의 당부를 떠올린 세화는 재빨리 동혁을 가로막아 제지했다. 세화는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외삼촌, 양 사장님의 호의는 감사히 받을게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건 원하지 않아요.” 세화가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류성중 역시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는 줄곧 세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양도형을 보고 도와주고 싶었다. 류성중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겠어. 그래도 도형이를 이해해라.” “도형이는 가문에 기대지 않고 자수성가하여 성신제약을 세웠어. N도 의약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로 그 기세가 대단하지. 그러니 동혁이가 별로 눈에 차지 않았을 거야.” 류성중은 말하면서 동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도형이에 비하면 네 남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나서서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젊었다. 그들은 분명 세화의 미모와 재력을 탐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마음을 잘 숨기고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세화를 위해 말하는 것처럼 했다. 어느새 그들은 서로 호흡이 잘 맞아 같은 편에 섰다. ‘일단 골키퍼인 이동혁을 공격해 쫓아내고 그다음을 노려야지.’ ‘그때 가서 누가 슛을 성공시켜 진 회장을 차지할지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는 거니까.’ “진 회장님, 들으셨죠?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 그저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신 이야기 했을 뿐이에요.” 양도형은 당연히 자신이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세화는 아까 전 아래층에서부터 이미 화가 잔뜩 났었다. 그런데 지금 동혁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자 그녀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여러분은 아주 한가하시나 봐요. 남의 사적인 일까지 이렇게 신경 써주시고 말이에요.” 세화는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누구와 결혼해서 살든 그건 제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요. H시의 자랑이니, 무슨 대외적인 이미지니 하는 말은 할 필요조차 없어요.” “오늘 제가 이 연회에 저희 남편과 함께 온 것은 단지 가문의 어른 한 분을 뵈러 온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찾아와서 사업에 대해 논의하신다면 기꺼이 환영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일을 언급하실 생각이라면 죄송하지만 대화는 하지 않겠습니다.” 세화는 매우 불쾌한 어투로 말을 했고, 모두 그녀의 말투에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나서서 말한 사람들은 난처해져서 괜히 발을 구르며 무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동혁이 진씨 가문 안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어서 세화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동혁을 연회에 데리고 온 것도 어쩌면 마치 남자가 여자 파트너를 데려오는 것처럼 그저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세화가 이렇게 동혁을 보호할 줄은 몰랐다.그녀가
양도형이 말을 하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세화는 외모나 몸매 모두 최상이었고 두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부자였다. 한마디로 재색을 겸비한 완벽한 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여자가 이동혁처럼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인간과 살기에 정말 아깝기는 하지.’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생각만 할 뿐 말을 꺼내서 세화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도형이 사람들과 동혁 앞에서 세화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재미와 흥미 가득한 눈빛이 일제히 동혁에게 향했다. ‘H시에서 유명한 저 쓸모없는 데릴사위가 어떻게 나올까?’ 그러나 지금 동혁의 얼굴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아주 평온했다. “근데 누구시죠?” 동혁은 양도형을 대충 훑어보고는 담담하게 물었다. 이런 무심한 동혁의 태도를 보고 양도형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자신의 도발에 동혁의 분노가 폭발해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동혁이 내 말에 분노해서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하는데.’ ‘그래야 내가 한발 더 나가서 이 사람을 완전히 짓밟을 수 있지.’ 양도형은 의아했지만 동혁의 속마음은 지금 보이는 것만큼 평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세화가 주변 사람들에게 몇 마디 인사를 하고 눈살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양도형은 세화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 회장님, 제 이름은 양도형입니다. 현재 사업을 하고 있는데, N도 성신제약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성신제약이라면 N도에서도 아주 유명한 회사잖아? 지난 2년 동안 빠르게 성장해서 그 규모가 작지 않다고 들었어.” “저 양도형 사장이 2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내서 자수성가했으니, 아주 대단한 인물은 맞구만. 절대 얕보면 안 되겠는데?” 즉시 몇몇 사람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모두 성신제약회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현장의 일부 업계 선배들도 양도형을 대단하게 여기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서 그들의
“결혼을 했으면 이혼하면 되지.” “저 이동혁이라는 사람은 보기에도 그저 아주 평범해. 거기다 데릴사위이니 평소에는 구박이나 받고 살 거야.” “솔직히 골키퍼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양도형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결정한 듯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저 진 회장은 내 여자야.” 양도형의 넘치는 자신감을 보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지. 누군데 이리 자신만만해?’ 하지만 모두는 양도형이 단지 말뿐이 아니라 동혁과 세화 쪽으로 곧장 걸어가자 흥미로운 눈빛을 번쩍였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생겼네.’ 한편,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세화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비록 사람들이 두 배로 늘었지만 세화는 아래층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유롭게 사람들을 대했다. 동혁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며 약간 흐뭇해했다. ‘세방그룹과 혜성그룹을 경영하면서 세화가 두 그룹의 회장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아주 익숙해졌어.’ ‘이렇게 계속 성장하면 언젠가 우리 H국 재계 전체에서 세화가 한 자리를 차지할 거야.’ 동혁은 세화의 뒤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며 사람들의 주의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세화를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하필 양도형이 다가와서 문제를 일으키려 했다. “이봐요. 친구. 제가 그쪽과 좀 상의할 게 있는데.” 그는 앉아서 동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동혁은 멍해져서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남자를 쳐다보았다. 30살 안팎의 나이, 깔끔한 정장차림에 기세도 좋고, 눈썹에 힘이 있으며 온몸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한눈에 봐도 젊고 유능한 의기양양한 젊은 인재였다. “무슨 일이죠?” 동혁은 양도형의 의도를 알지 못해 그저 웃었다. 양도형도 웃더니 천천히 카드 한 장을 꺼내 동혁의 품에 건넸다. “이 카드에는 2억이 들어 있어요. 제가 지금 이걸 드릴 테니, 우리 거래하죠.” 동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
동혁은 아무런 상관없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화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진 회장님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회장님의 데릴사위 남편이 재주가 없는 건사실이잖아요. 그래도 보아하니 적어도 화를 참는 건 우리보다 낫네요.” “그러게요. 우리 같았으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면 못 참았을 텐데요.” “진 회장님 남편은 독립투사 같은 기개가 있어요. 외세의 굴욕을 견디고 마침내 나라의 독립을 이뤄낸 사람들 말이에요. 욕을 잘 참는 건 아주 꼭 닮았어요. 그래서 대단하게 생각해요.” “하하하.”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화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희고 청순한 얼굴에서 분노를 드러냈다. 류성중은 세화의 명성을 빌려 이번 연회에서 자신을 더 빛내려고 했다. ‘이렇게 세화를 계속 화나게 하다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그만하시죠. 어쨌든 동혁이는 제 조카사위예요. 농담들이 너무 지나치세요.” “다들 이러지 말고, 곧 연회가 곧 시작되니 들어들 가시죠.” “세화야, 너도 동혁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이따가 또 큰 어른들이 오실 거야. 너도 인사해 두면 나중에 좋을 거야.” 류성중은 일부러 정색을 하고 동혁을 감싸듯이 말했다. 그러나 동혁을 비꼬던 사람들은 류성중의 말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을 뿐이지, 류성중이 동혁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세화에게 상황을 벗어날 기회는 주었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로하듯이 동혁의 손을 잡아 쥐었다. “동혁 씨, 방금 전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동혁은 아무렇지 않게 세화를 따라 호텔로 들어갔고 뒤에 있는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 완벽히 쓸모없는 놈이네.” 류성중도 콧방귀를 뀌며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3층의 연회장으로 향했다.그 안에 이미 모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역시 H시 의료보건시스템의 크고 작
류성중의 설교 같은 말투에 세화는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류혜진과 류혜연의 당부로 인해 세화는 류성중의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를 해서 참을 수 있었다. 세화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외삼촌. 제가 외삼촌의 말씀을 잘 명심할게요.” 류성중이 세화를 자신의 아랫사람이라 여겨 대놓고 훈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현장의 사람들의 시선에 류성중에 대한 존경이 깊어졌다. 류성중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효과였다. 그는 아직 40대 초반으로 조직 안에서 확실히 젊은 편에 속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의료보건시스템과 병원에서 일하는 선배들의 경우 겉으로는 류성중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적으로는 다를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류성중이 세화를 훈계함으로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의 권위를 바로 세우게 됐다. 이때 세화가 고개를 돌려 동혁에게 눈짓을 하자 동혁이 류성중에게 다가갔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류성중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동혁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세화에게 말했다. “왜 동혁이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이 말을 듣고 동혁은 몸을 돌려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세화는 동혁의 성격을 알고서 얼른 그를 잡아당겼다. ‘동혁 씨가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외삼촌이 더 화를 낼 거야.’ ‘외삼촌이 화를 내든 말든 상관없지만 나중에 엄마가 알면 큰일이니까, 말려야지.’ 동혁도 세화의 생각과 같아 잠시 참기로 했다. “외삼촌, 저희 어머니께 전화로 동혁 씨를 만나야겠다고 하셨잖아요.” 세화가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류성중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개인적으로 보면 되지. 내가 언제 이곳으로 동혁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 대체 이놈이 이런 자리에 가당키나 해?”류성중은 말속에서 동혁에 대한 경멸과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동혁의 참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사람들도 류성중의 태도를 보자마자 따라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진 회장님,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