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소야, 오늘 밤 나하고 함께 식사하지 않겠다면 네 친구들 누구도 태백산장에 묵을 생각 하지 마.” 현소가 계속 거절하자 오반석은 연기를 그만두고 아예 본색을 드러냈다. 현소와 친구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오반석, 이 사람 너무 거만하고 무례한 거 아니야?’ ‘지가 현소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현소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이런 식으로 성질을 부리다니.’ 현소는 더욱 분노했다. “선배님은 역시 넌 무서운 사람이에요. 선배가 날 좋아한다고 했을 때 안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오반석의 표정이 가라앉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날도 어두워졌는데 태백산 정상에는 잘 곳이 태백산장 하나밖에 없어. 한번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묵을 곳이 있는지 찾아보든가.” “그러지 말고 현소가 오늘 밤 나랑 같이 자는 건 어때? 하하하.” 오반석의 친구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형수님이 반석이에게 아이도 하나 낳아주면 되겠어요.” “흐흐, 형수님은 아직 학교 다니시니까 어렵지 않을까? 나중에 애 데리고 대학을 다니는 게 좀 이상해 보이지 않겠어?” 온갖 지저분한 언사가 난무했다. 현소는 수치스럽고 분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현영 등도 현소와 마찬가지로 화가 많이 났지만 오반석과 그의 친구들이 워낙 무뢰한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다른 남자에게 놀림을 받는 것을 보자 더욱 분노했다. “오반석, 태백산장이 무슨 너희 집인 줄 알아? 우린 이미 방을 예약했어, 그것도 태백산장의 최고급 룸으로.” 하지성은 울화통을 터뜨리며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예약서를 보여주었다. 그는 현소를 기쁘게 해 주려고 특별히 자신의 지인에게 부탁해 태백산장에서 가장 좋은 룸을 예약하게 했다.오반석이 그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고 냉소했다. “하하, 최고급이라고? 이거 어쩌지? 그럼 체크인이 안 되겠네.” 말을 마친 오반석이 고개를 돌려 캐리어를 들어주는 직원들에게 손
“여보, 이렇게 씻겨 주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야…….”“우리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도 아직…….”“이혼하기 전에 내 처음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세화는 욕조에 앉아 있는 이동혁의 뒤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가느다란 손으로 남편의 몸을 정성을 다해 씻겼다. 물에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모습이 아주 선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세화는 남편 동욱의 건장한 몸에 바디워시를 칠하기 시작했다. 탄탄한 복근이 손끝을 스치지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그러나 동혁의 얼굴을 보는 순간 콧날이 시큰거리더니 결국 두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너무나도 잘 생긴 외모였다. 하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비뚤어진 입가를 따라 침까지 흐르고 있었다. 정교하게 빚었다가 찌그러뜨린 점토 공예품과 같다고 할까.“여보, 도대체 지난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세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끼기만 했다.3년 전,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첫날밤에 남편 이동혁이 갑자기 사라졌다. 영문도 모르게.하룻밤 사이에 신랑이 도망쳤다고 소문이 나면서 세화의 친정인 진씨 집안은 H시 전체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진씨 가문 최고 어른인 진한영이 강제로 이혼을 시키려고 했지만, 세화는 남편을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동혁이 말도 없이 떠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리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크게 노한 진한영은 세화의 가문 내 모든 자격과 권리를 박탈했다. 그 뿐만 아니라 세화의 가족을 진성그룹에서 쫓아냈다.그런데 3개월 전, 동혁이 세화의 집 앞에 던져졌다. 당시 모든 기억을 잃었고, 말은커녕 침만 질질 흘리는 완전 바보가 된 상태로.울고 싶은데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기막힌 상황에도 세화는 매일 동혁을 데리고 병원을 오갔다. 남편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바라며.이 사실이 알려지며 진씨 집안의 체면은 더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자 진한영은 또다시 세화에게 당장 이혼하라는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다. 정말
전화기 너머에서 탁자와 의자가 뒤집히는 듯한 소리가 한바탕 이어졌다.감격에 겨워 떨리는 설전룡의 음성이 들려왔다.[큰 형님, 정말 큰 형님이십니까? 어디 가셨던 겁니까?][그동안, 큰 형님 소식이 전혀 없어 저희들 모두 초조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형님 신분이 극비라 명령 없이는 찾으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동혁이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귀찮은 인간들이 있었어. 괜찮아, 지금은 이미 회복했어.”[설마 형님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누굽니까? 큰 형님이 명령만 내리시면, 제가 모두 이끌고 가서 납작하게 밟아버리겠습니다.]분노한 설전룡이 목소리를 높였다.“됐어.” 동혁의 얼굴이 살을 에일 듯이 차가워졌다. 이씨 집안의 일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았다. 반드시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네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오늘 밤 안에 천룡투자그룹이 H시에 진출하는 걸로 조치를 취해!”“동시에 2조 원을 H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해!”종군 3년 동안, 수하들을 데리고 전장에서 싸웠을 뿐 아니라 해외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게 바로 천룡투자그룹이었다!그는 천룡투자그룹을 이용해서 세화를 도울 생각이었다![예!]설전룡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큰 형님, 제가 즉시 H시에 가겠습니다. 형님이 안 계시는 동안, 안팎으로 시끄럽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부 사항들은 제가 직접 보고하는 게 좋겠습니다.]“좋아.”……천룡투자그룹, H시 전격 진출!이 소식은 마치 천둥 같이 그날 밤 H시 전체로 퍼졌다!이렇게 되면 H시 내의 여러 세력 가문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권력 재편이 불가피하다!천룡투자그룹은 세계 최고의 대자본이다. 수중에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투자 전문 기업이었다.만약 H시 어느 한 가문이라도 천룡투자그룹을 먼저 잡는다면 분명 엄청나게 그 세력을 키우게 되는 건 물론, H시 최정상에 서게 될 것이다!이튿날 아침, 스스로 병원을 나온 동혁은 먼저 진씨 가문으로 갔다.진씨 집안의 저택.진씨
“동혁 씨, 설마 당신…… 정신이 돌아온 거야?”동혁의 맑은 눈동자를 보던 세화가 믿기지 않는 듯 작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응, 나 회복했어, 여보.”동혁이 세화를 바라보았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맹하고 대담하던 그가 지금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세화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 동혁이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요 몇 년 동안 정말 고생했어.’“흥! 정신이 돌아오면 또 뭐해!”화란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봤자 폐급일 뿐이잖아!”화란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구석의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헛소리 말고 앉기나 해. 2조 원을 기여하다니, 정말 웃겨 죽겠어!”동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 세화가 그를 말리며 구석 자리로 데리고 가서 앉았다.구석의 접이식 의자에는 달랑 세화 가족만 앉아 있었다. 그저 다른 테이블에 한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을 바라만 보면서. 그들 앞에 올려진 건 고작 국수 네 그릇.상석에 자리한 진한영은 눈앞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보며 마음이 흡족한 듯 호탕한 음성으로 말했다.“다들 조용, 내가 한 가지 발표하도록 하겠다!”진한영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진한영이 자못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젯밤 천룡투자그룹이 H시에 진출한다는 발표를 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천룡투자그룹은 세계 최정상의 기업으로 빅맥과 같은 존재야. 이번에 H시에 진출하면서 H시의 세력 판도가 재편될 게 분명하다. 이건 우리 진씨 집안에 엄청난 기회가 될 게야!”“지금은 우리 진씨 집안이 H시에서 꽤 잘나간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또 언제든 다른 집안에게 쉽게 추월을 당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그러니 우리는 천룡투자그룹을 꼭 붙잡아야 한다!”“천룡투자그룹에서 흘린 작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주울 수 있다면 우리 집안이 한 단계 더 높이 오르는 건 문제도 아니야.”진한영은 말할수록 점점 더 흥분되는지 얼굴이 불그스레했다.“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선포하겠다! 우리 진
세화는 남편의 자신에 찬 모습을 보면서도 머뭇거렸다. 하지만 결국 현재 집안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 채 일어서서 말했다.“할아버님, 제가 빚을 받아오겠습니다. 약속드릴게요.”“너! 이 계집애가 미쳤어! 만약 네가 표범에게 맞아 얼굴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널 주태진이 계속 원할 것 같애?”다급해진 류혜진이 안절부절못했다.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진한영조차 세화가 하겠다고 대답할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진태휘를 비롯해 모두 냉소를 금치 못했다.진태휘가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세화의 발 밑에 던졌다.“네 용기가 참 가상해서 주는 거야. 이 돈으로 차비나 해.”진화란도 두 손으로 팔짱을 낀 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건 네가 자원해서 가는 거야. 맞아서 불구가 되더라도 집안에서 너를 강요했다고는 하지 마.”동혁의 차가운 눈빛이 몇몇 사람을 훑으며 지나갔다.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나 하는 소인배들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곧장 세화의 손을 잡은 채 저택 밖으로 나갔다.류혜진 부부는 뜨거운 솥 위에 올라탄 개미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 주태진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어. 주태진은 계속 세화를 좋아해 왔으니까…….”……모터 월드.세화는 방금 산 과일 두 봉지를 들고 옆에 있는 동혁에게 신신당부했다.“되도록 말은 하지 말아요. 절대 표범을 화나게 하면 안돼요, 알았죠?”동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는 세화다.두 사람이 표범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려 할 때였다. 뒤에서 갑자기 클락션 소리가 들리더니 분홍색 포르쉐 한 대가 달려와 두 사람 앞에 섰다.그리고 창문이 열리며 진화란의 까칠한 얼굴이 나타났다.“어머, 두 사람 용감하게도 빚을 받으러 왔네? 그냥 허풍을 떠는 줄만 알았는데 말이지.”“진화란, 여긴 왜 온 거야?”세화가 눈썹을 찌푸리며 짜증나는 말투로 말했다.“당연히 차 한 대 뽑으러 왔지. 설마 너희 두 병신처럼 얻어 맞으려고 빚 갚으라는 소리 하러 왔겠어?”화란이
‘이 씨?’표범이 동혁을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동혁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지금 손 좀 보려고요.”잠시 조용하던 전화기 저편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표범이 얼른 물었다.“보스, 왜 그러세요?”다음 순간, 우레와 같은 성난 고함이 표범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지금 왜 그러냐고?! 이 개자식이 날 죽이려고 작정한 거 아냐?”“지금 말할 테니 잘 들어! 당장 그 분이 시키는 대로 해. 조상님 모시듯이 대해야 해, 알았어?”순간 표범은 멍했다. 최근 들어 보스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보스, 혹시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진씨 집안의 데릴사위에 불과한데요.”“야 표범, 너 죽고 싶어? 그분의 눈에 우리는 하루살이 같은 신세야! 그분 눈 밖에 나기라도 하는 순간 우린 그냥 끝장이라고!”“보스…… 어…….”듣고 있는 표범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한다. 내가 무릎을 꿇어도 감히 바라볼 수 없는 분이니 알아서 잘 해.”말이 끝나자 전화가 탁 끊어졌다.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표범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두 다리는 어느새 덜덜 떨고 있었다.표범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진화란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표범 씨, 왜 그러세요? 빨리 이 두 인간들 혼내라고 하세요.”“혼내 줘? 오냐 그래, 내가 널 혼내 주마. 씨X!”난폭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짝!표범이 손을 들어올려 진화란의 따귀를 때렸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비틀거리며 몇 걸음 뗀 화란의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얼굴을 가린 채 선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표범 씨…… 나는 차를 사러 온 사람이라고요. 당연히 저 두 사람을 때려야지.”“때릴 건 바로 너 같은 년이야! 방씨 가문의 체면만 아니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었어! 당장 꺼져!”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화란은 얼이 빠져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더욱이 화를
“허.” 심장미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그래? 정말 보고 싶네.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오늘 주태진이 예약한 장소가 어디인지나 알아?”“자그마치 엠파이어 호텔 3층이야! 당신 같은 쓰레기들은 평생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이라고!”혜진이 두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엠파이어 호텔 3층? 적어도 골드 회원은 돼야 예약할 수 있다던데!”엠파이어 호텔 3층은 H시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이다. 골드회원이 되려면 최소 20억 구매력을 갖춰야 했다. 진씨 집안에서는 오직 진한영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리고 3층 이상의 층들은 더 비싸고 까다롭기가 상상을 초월했다!심장미가 고개를 돌려 동혁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이게 바로 당신과 주태진의 차이야. 세화에게 기대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기는지 정말 모르겠네.”“장미야, 이 쓸모없는 놈은 상대하지 마. 세화가 내려왔으니, 빨리 출발하자. 주태진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잖니?”혜진은 동혁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움직였다.랜드로버가 훌쩍 떠나자, 동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큰 형님, 심용삼이 엠파이어 호텔 9층 엠퍼러 홀에서 사죄하는 의미로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이리로 차를 보내라고 해.”……엠파이어 호텔 입구.랜드로버가 막 멈추자, 일찍부터 문 입구에서 기다리던 주태진이 바로 맞이했다.화이트의 명품 슈트를 걸친 주태진이 손에 선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세화를 도와 차문을 연 뒤, 웃으며 말했다.“세화야, 너 오늘 너무 예뻐.”세화는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장미가 세화의 허리를 찌르며 속삭였다.“태진이 너에게 말하고 있잖니? 대답 좀 해.”“아니…….”세화가 몸을 옆으로 돌려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그냥 동혁 씨 저녁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너 아직도 그 바보 걱정이야?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장미는 꽃길을 마다하고 굳이 가시밭길을 가려는 친구가 안타까워 탄식했다.“와!”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표범의 보스라면, 심 사장?”심장미는 저도 모르게 픽, 하며 비웃었다. “심 사장님이 어떤 위치인지 알기나 해? 정말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리 의부조차도 함부로 못하는 암흑가 보스야! 감히 심 사장님이 사죄한다고 말했다고? 죽고 싶어 환장했지?”“심장미, 믿기지 않으면 너도 같이 올라가 보면 되지.”동혁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심장미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충격에서 깨어난 주태진이 웃으며 말했다.“입구에서 심 사장의 차를 보고 이렇게 둘러대는 거지? 여기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야. 만약 이 말이 심 사장 귀에라도 들어가면 제 명에 못 죽을 거야.”순간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다.“정말 지긋지긋해!” 류혜진이 책상을 탁 치며 화를 냈다.“온종일 미친 척하면서 우리를 창피하게 하더니. 너 안 꺼져? 당장 안 꺼지면 내가 너를 때려죽일 거야. 응!”“동혁 씨, 빨리 가…… 나도 밥만 먹고 바로 돌아갈 거야.”몹시 난처해진 세화가 일어나서 동혁을 밀었다.동혁은 어쩔 수 없이 인사하고 나갔다.“알았어, 여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이따가 데리러 올게.”동혁이 나가자 룸 안이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류혜진은 연거푸 차를 마신 후 간신히 분노를 억눌렀다.주태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동혁이 갈수록 망신만 더 당하고 있으니, 자신이 이길 확률이 더 컸다. 이동혁이 계속 미친 척하기를 간절히 바랐다.……“심 사장님이 오늘 모시는 분은 누구십니까?”“엠퍼러 홀에 자리를 준비한 것도 모자라 우리 보고 직접 모시라고 하다니,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9층, 엠퍼러 홀 엘리베이터 입구.기운이 범상치 않은 중년 남녀 몇 명이 표범 심학표에게 묻고 있었다.누구라도 이들을 본다면 바로 이름을 댈 수 있을 것이다.도시계획국 국장 고진강, 가란은행 은행장 임보검, 홀리데이 주얼리그룹 회장 이향군…….이 사람들 모두 말 한 마디면 H시를 뒤집을 수도 있는 거물들이다!표범이 차갑게 말했다.“그분의 신분은 극비입니다. 분위기
“현소야, 오늘 밤 나하고 함께 식사하지 않겠다면 네 친구들 누구도 태백산장에 묵을 생각 하지 마.” 현소가 계속 거절하자 오반석은 연기를 그만두고 아예 본색을 드러냈다. 현소와 친구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오반석, 이 사람 너무 거만하고 무례한 거 아니야?’ ‘지가 현소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현소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이런 식으로 성질을 부리다니.’ 현소는 더욱 분노했다. “선배님은 역시 넌 무서운 사람이에요. 선배가 날 좋아한다고 했을 때 안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오반석의 표정이 가라앉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날도 어두워졌는데 태백산 정상에는 잘 곳이 태백산장 하나밖에 없어. 한번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묵을 곳이 있는지 찾아보든가.” “그러지 말고 현소가 오늘 밤 나랑 같이 자는 건 어때? 하하하.” 오반석의 친구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형수님이 반석이에게 아이도 하나 낳아주면 되겠어요.” “흐흐, 형수님은 아직 학교 다니시니까 어렵지 않을까? 나중에 애 데리고 대학을 다니는 게 좀 이상해 보이지 않겠어?” 온갖 지저분한 언사가 난무했다. 현소는 수치스럽고 분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현영 등도 현소와 마찬가지로 화가 많이 났지만 오반석과 그의 친구들이 워낙 무뢰한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다른 남자에게 놀림을 받는 것을 보자 더욱 분노했다. “오반석, 태백산장이 무슨 너희 집인 줄 알아? 우린 이미 방을 예약했어, 그것도 태백산장의 최고급 룸으로.” 하지성은 울화통을 터뜨리며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예약서를 보여주었다. 그는 현소를 기쁘게 해 주려고 특별히 자신의 지인에게 부탁해 태백산장에서 가장 좋은 룸을 예약하게 했다.오반석이 그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고 냉소했다. “하하, 최고급이라고? 이거 어쩌지? 그럼 체크인이 안 되겠네.” 말을 마친 오반석이 고개를 돌려 캐리어를 들어주는 직원들에게 손
하지성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는 현소 앞에서 오반석이 뻔뻔스럽다며 직접적으로 욕했다. 체면을 구기게 된 오반석의 얼굴에서 표정이 점점 사라지더니 방금까지 싱글벙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불만으로 가득해졌다. “이 자식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짝! 오반석은 두말없이 손을 들어 하지성의 뺨을 때렸다. 하지성은 오반석이 정말로 자신의 뺨을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맞아서 바닥에 쓰러졌다. “지성아!” “선배님,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요?” 현소와 친구들은 아연실색하여 얼른 하지성을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봐.” 하지성도 자존심이 강해 힘껏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출혈된 눈으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오반석, 이 자식이 감히 나를 때려?” “어쭈, 지금 덤비는 거냐? 또 맞으려고?” 오반석은 다시 손을 들어 때리려고 했다. 하지성은 놀라며 얼른 피했다. “하하, 바보 같은 놈. 우리 반석이가 못 때릴 줄 알았나 봐? 그렇게 반석이에게 대들다가 더 크게 혼쭐난다.” “이놈도 우리 형수님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거 알아? 저번에 반석이에게 여자를 뺏으려다 가 다리가 부러진 놈이 있는데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어.” 오반석 주변의 친구들이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이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하지성은 부끄러우면서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고,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상대가 무서웠다. “야, 넌 저리 꺼져.” 오반석은 하지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며 현소에게 다가갔다. “현소야, 룸이 어디야? 내가 데려다줄게. 이따가 같이 밥도 먹자.” 오반석이 또다시 현소의 짐을 들어주려고 했다.화가 난 현소의 작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오반석의 말을 듣고 캐리어를 몸 뒤로 가져가 피하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선배님, 지성이를 저렇게 때리다니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니에요? 선배님이 저를 데려다 주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선배님과 밥도 먹지 않을 거고요.” 오반석은 무서운 표정으로 하지성을 노려보더니 다시 싱글벙글 웃으
“지성이가 이렇게 잘 준비했다니 그럼 난 안심해도 되겠어. 너희들 안전에 주의하고 아저씨는 먼저 갈게. 동혁이 넌 현소하고 친구들을 잘 돌봐.” 장영도는 마지막으로 동혁을 노려보고는 동혁이 뭐라 하기 전에 재빨리 차를 몰고 떠났다. ‘군부로 복귀하면 바로 윗분들을 찾아 사법부 사람에게 말 좀 잘해달라고 해야겠어. 앞으로 저 이동혁 같은 나쁜 놈은 상대하지도 말아야지.’ 날이 저물자 하지성이 말했다. “우리 먼저 체크인하고 짐 풀고서 밥 먹자.” “어, 이게 누구야? 우리 현소 후배도 태백산장에 놀러 온 거야?” 일행이 로비 밖으로 나오자마자 맞은편에서 젊은이 몇 명이 다가왔다. 모두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태백산장 직원이 뒤에서 그들의 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현소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만으로 가득한 얼굴의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현소를 주시했다. “아, 반석 선배님.” 당황한 현소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녀의 시선은 의식적으로 동혁을 찾았는데 그가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는 것이 기억났다. 현소에게 말을 건 젊은이는 바로 오한민의 아들인 오반석이었다. 그는 예전에 현소와 같은 학교였는데 한 학년이 더 높았고 현소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현소는 예쁘고 노래와 춤에 능해서 학교에서 개최하는 문예종합공연에 자주 참가했었고 학교를 대표하여 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유명해져서 오반석의 주의를 끌었다. 오반석은 이씨 가문을 위해 일하는 자신의 아버지 오한민을 믿고 평소에 학교에서 엄청 위세를 부리고 다녔다. 항상 뒤로 사람들을 거느리며 다녔고 게다가 외부의 깡패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서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오반석은 항상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학교 앞에서 현소를 막아섰다. 그래서 힘없는 현소는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다행히 오반석이 대학에 간 후로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현소야, 체크인하고 저녁에 같이 놀자. 우리는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을 거야. 네 친구들 다 와도
하지성은 매우 예의 있게 말했다. 그러나 말투에서 동혁에 대한 무시가 느껴졌다. 장영도에게 담배 두 갑을 사다 주라고 하면서도 심부름을 하는 동혁을 위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성이 너 지금 뭐하는거야? 집에서 대우받더니 밖에서도 도련님 노릇을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더운데 우리 형부는 덥지 않겠어? 음료수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와.” 현소는 불쾌해하며 가장 먼저 동혁 편을 들었다. 하지성은 재벌 2세였고 집안이 꽤 부자라서 현소는 그가 도련님 노릇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안색이 좀 안 좋아졌다. 그는 현소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H시에 와서 현소와 함께 태백산장에 놀러 가자고 한 것도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소가 동혁을 감싸며 하지성에게 가차 없이 화를 내자 하지성의 마음속에는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에 서진솔이 재빨리 말했다. “아이, 현소야 왜 그래? 지성이는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너무 뭐라 하지 마.” “그래 맞아. 우리는 이미 모두 차에 탔고 매형이 아직 타지 않아서 지성이가 그냥 편하게 매형에게 사 오라고 한 거야.” 주현영과 나호영도 모두 하지성을 거들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했다. 현소는 툴툴거리며 하지성을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괜찮아, 마침 나도 담배 사러 가야 했는데, 가는 김에 물도 사 올게.” 동혁은 아이들과 따지기 귀찮아서 4만 원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왜 다 물이지? 난 콜라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동혁이 생수 한통을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 서진솔이 작은 소리로 불평했다. 현소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았다. “진솔이, 너 콜라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 와서 마셔.” 서진솔 등 몇 사람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이런 사소한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그러니 집에서 매일 장모님께 야단맞지.’ 동혁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부, 안녕하세요.” “매형, 안녕하세요.” 주현영 등은 모두 현소를 따라 동혁을 형부나 매형이라고 불렀는데 태도가 아주 자유분방하면서 건성이었다. 심지어 이상한 눈빛으로 동혁을 훑어보기도 했다. 전에 현소이가 막 H시에 왔을 때 이들은 현소가 데릴사위인 자기의 형부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이후 몇 차례 연락을 하면서 동혁에 대한 현소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처음 동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동혁을 좀 얕잡아 봤다. 서진솔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형부가 운전기사로 오셨나 봐요. 감사해요. 잘 좀 부탁할게요.” “매형, 차비와 유류비는 저희가 내겠습니다.” 남학생인 하지성이 말했다. ‘저 사람이 그 데릴사위지? 현소의 사촌 언니 집에서 무시를 당하며 산다고 하던데? 장모님은 툭하면 욕설을 퍼붓고 말이야.’ 예전에 주현영은 현소와 영상 통화를 할 때 뒤쪽에서 갑자기 류혜진이 동혁을 집에서 놀고먹는다며 쫓아내겠다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현영은 이 일을 친구들에게 말했고 온라인에서 크게 떠들썩했었다. 친구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데릴사위는 정말 비참하다. 하지성이 동혁에게 차비와 기름값을 지불하겠다고 한 것에 악의는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지 동혁을 동정했고, 그건 다른 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동혁에게는 더 상처였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보다 동정하는 게 더 큰 상처일 때가 있다. 동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희들은 모두 현소의 좋은 친구들이면서 내 동생 같은 얘들인데 어떻게 너희에게 돈을 받아?” 이 말에 주현영 등은 동혁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하지성이 말했다. “태백산에 72번 길이 아주 험하다고 들었어요. 피곤하실 텐데 거기다 저희 때문에 일도 못하시잖아요. 그러니 비용은 저희가 부담해야죠.” 나머지 셋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정말 괜찮다니까.”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운전하는 것도
장영도는 잠시 화를 참기로 하고 얌전히 차를 몰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세화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동혁과 현소가 짐을 싸서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궁금해하며 물었다. “동혁 씨, 현소하고 어디 가?” “현소의 친구들 몇 명이 왔는데 나보고 태백산에 같이 놀러 가자고 해서.” 동혁은 아이들 몇 명과 노는 것에 흥미가 없었고 그래서 세화를 초대했다. “여보도 같이 가자. 우리 지난번에 그곳에서 지낼 때 못다 한 일도 있잖아.” 동혁이 윙크를 하며 말하자 세화의 예쁜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지난번에 세화는 태백산장에 갔을 때 화란이 약을 먹여서 밤새도록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서둘러 태백산을 내려왔다. 세화는 비록 하룻밤 동혁과 호텔에서 묵은 적은 있었지만 항상 태백산장 같은 분위기 있는 곳이 그리웠다. “난 못 가.” 세화는 동혁을 노려보더니 둘만 알아듣게 조용히 말했다. “밤에 푹 쉬어야 해. 내일 중요한 파트너와 회의가 있거든.” “할 수 없지.” 동혁은 쑥스러운 듯 코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 그는 세화와 호텔에 묵었었다. 그는 계속 참아오다 드디어 기회를 만나 세화와 한밤중까지 침대에서 불타는 밤을 보냈다. 그 결과 다음날 세화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동혁은 세화가 그일 때문에 자신과 태백산에 가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조금 머쓱해졌다. 세화가 말했다. “잘됐어. 마침 중요한 협력업체가 오늘 밤 태백산장에 묵을 예정이니 동혁 씨가 신경 좀 써줘.” “알았어. 그쪽 대표가 누구야?” 동혁은 놀면서 세화의 일을 도울 수 있었기에 매우 행복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화가 대답했다. “천용훈이라는 인플루언서야. 이번에 태백산장 홍보대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 당연히 그전에 태백산장이 어떤지 알아야 하잖아.” 예전 태백산장은 3대 가문의 손에 있을 때는 무관심으로 거의 황폐화에 가까웠었다. 각종 부대시설이 부족해 오는 손님 또한 턱없이 적었다. 세화와 최원우를 돕는 전문
“운전 경력이 수십 년 된 베테랑 운전기사라고?” 류혜연은 얼떨떨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집안에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 밖에서 기사라도 불렀나?’ 류혜연은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구만.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이 지내니까, 돈이 아까워 내게 생활비를 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돈 낭비를 해서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어?” 류혜연이 생각하기에 동혁은 자기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돈을 주고 대리운전기사를 부를지언정 딸의 운전기사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대리운전기사요? 뭐, 이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동혁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류혜연이 또다시 류혜진에게 고자질했다. “언니, 잘난 사위 좀 봐. 자기도 생활비는 안 내면서 체면 좀 세우겠다고 돈을 헤프게 쓰네.” 류혜연은 동혁에게 화가 너무 났다. 그녀는 오늘 동혁에게 현소의 운전기사를 꼭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동혁아, 빨리 대리기사 부른 거 취소해.” 류혜진이 동혁을 꼬집었다.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돈은 안 썼어요. 이 대리운전기사는 돈이 필요 없거든요.” “돈이 필요 없다고? 지금 누굴 속이려고 그래?” 류혜연은 투덜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문 앞에서 헐떡이며 뛰어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여보, 집에는 또 왜 왔어? 오늘 근무하는 날이잖아. 또 괜히 사법부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서 반성문을 쓰려고 그래?”바로 세화의 이모부인 장영도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고 땀을 닦으면서 숨을 헐떡였다. “내가 사법부의 그 개X식들에게 붙잡혀서 이틀 동안 운전병으로 일하는 징계를 받았어.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여기로 와서 VIP를 태백산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VIP는? 우리 집에 오셨어?” “VIP라고? 우리 집에 VIP는 안 왔는데?” 류혜연이 류혜진 등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실이
“싫은데요.” 동혁은 류혜연의 태도를 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 ‘우리 집에 눌러사는 손님이면서 뭐 이리 당당하지?’ ‘이리저리 내 트집이나 잡고, 마치 내가 무슨 자기 하인인 줄 알아?’ “동혁이, 너 그게 무슨 태도야?” 그러자 류혜연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아직 투자회사 사장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위세 부리는 거야?” “능력이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세화의 절친이 아니었다면 넌 여전히 항난그룹에서 운전기사로 일했을 거야.” 동혁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한마디만 말했는데 류혜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거렸다. 동혁이 류혜연을 보고 말했다. “이모님, 항난그룹에서 운전을 하면 월급이라도 있죠. 가족들에게 운전을 해준다고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죄송해요.” 동혁은 자신이 항난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의 선입견은 무서운 법이다. ‘어차피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류혜연은 화가 나서 표정을 찡그리며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동혁이, 너 지금 가족을 위해 운전을 해줄 때에도 돈을 달라는 거야? 아주 돈귀신이 들었구나!” “친형제라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죠. 이모님 가족들이 우리 집에 살면서 집세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 가스, 식비도 내지 않잖아요.” 동혁은 류혜연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류혜연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발을 구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언니, 언니가 아주 훌륭한 사위를 뒀네. 우리한테 전기, 가스 값을 달래. 좀 있으면 우리를 쫓아내겠어!” 류혜진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동혁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동혁이 너 아주 간이 부었구나? 네가 집에서 놀고먹을 때 내가 언제 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있어? 감히 내 여동생 가족에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너 아주 길바닥에 쫓겨나봐야 정신을 차릴래?” 류혜진이 동혁에게 욕설을 퍼붓자 류혜연은 득의양양하게 팔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실. 정장 차림의 오한민이 가죽 소파에 앉아 고급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오반석이 들어왔다. 오반석은 20대 초반으로 얼굴에는 거만함이 가득했다. “아버지,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에게 왜 사흘이나 주셨어요?” 오반석이 오한민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아 고급 담배를 뽑아 물자 오한민의 여비서가 알아서 다가와 불을 붙여주었다. “제가 보기엔 하루면 충분해요. 제가 직접 몇 사람 데리고 가서 조금 겁만 줘도 될걸요? 불복하면 면전에서 그놈의 아내를 좀 괴롭혀주면 저항을 포기하겠죠.” 오한민이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괜히 일 키우지 마.” “제가 틀렸어요?” 오반석이 다시 말했다. “이씨 가문에서 사흘의 시간을 허락했어요. 그럼 우리는 이씨 가문을 도와 되도록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잖아요.” 오반석이 철이 들 때부터 오한민은 이씨 가문의 일을 했다. 그 덕분에 오반석은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이천성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심부름을 해왔다. “네놈이 뭘 아는데?” 오한민은 오반석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이씨 가문이 준 사흘을 활용해서 이참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만약 이천성이 지금 풀려난다면 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단 말이야.” 대화 도중 오한민은 바로 조금 전에 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식이 생각났다. 동혁이 곧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을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오한민은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원화투자회사를 손에 넣을 필요성을 느꼈다. “아버지, 천성 도련님이 구치소에서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어요. 빨리 꺼내주지 않고 뭐 하려고요?”오반석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설마 아버지 이씨 가문을 떠나 독립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오반석의 눈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아버지가 원래 이렇게 배짱이 있었나?’ “아버지, 미쳤어요?” 오한민은 오반석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씨 가문을 위해 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