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 전신이 깨어났다 / 제5화 놀라 벙찌다

공유

제5화 놀라 벙찌다

작가: 우주멍
‘이 씨?’

표범이 동혁을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동혁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지금 손 좀 보려고요.”

잠시 조용하던 전화기 저편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표범이 얼른 물었다.

“보스, 왜 그러세요?”

다음 순간, 우레와 같은 성난 고함이 표범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지금 왜 그러냐고?! 이 개자식이 날 죽이려고 작정한 거 아냐?”

“지금 말할 테니 잘 들어! 당장 그 분이 시키는 대로 해. 조상님 모시듯이 대해야 해, 알았어?”

순간 표범은 멍했다. 최근 들어 보스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보스, 혹시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진씨 집안의 데릴사위에 불과한데요.”

“야 표범, 너 죽고 싶어? 그분의 눈에 우리는 하루살이 같은 신세야! 그분 눈 밖에 나기라도 하는 순간 우린 그냥 끝장이라고!”

“보스…… 어…….”

듣고 있는 표범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한다. 내가 무릎을 꿇어도 감히 바라볼 수 없는 분이니 알아서 잘 해.”

말이 끝나자 전화가 탁 끊어졌다.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표범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두 다리는 어느새 덜덜 떨고 있었다.

표범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진화란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표범 씨, 왜 그러세요? 빨리 이 두 인간들 혼내라고 하세요.”

“혼내 줘? 오냐 그래, 내가 널 혼내 주마. 씨X!”

난폭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짝!

표범이 손을 들어올려 진화란의 따귀를 때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뗀 화란의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얼굴을 가린 채 선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표범 씨…… 나는 차를 사러 온 사람이라고요. 당연히 저 두 사람을 때려야지.”

“때릴 건 바로 너 같은 년이야! 방씨 가문의 체면만 아니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었어! 당장 꺼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화란은 얼이 빠져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더욱이 화를 낼 용기도 없었다. 그저 세화와 동혁만 원망의 눈초리로 노려보다가 잔뜩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다.

물론 동혁 앞을 지나가며 한 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 이 바보, 어디 두고 보자!”

자신이 맞은 건 모두 동혁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진화란이었다.

세화는 자기도 모르게 동혁의 팔을 뒤로 잡아당기며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동혁씨, 우리도 빨리 가요…….”

동혁이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표범이 성큼성큼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더 무서워진 세화는 움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앞에 온 표범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게 아닌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이다.

“이 선생님, 진 여사님, 몰라보고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어?’

세화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니 전화를 한 통 받더니 표범의 태도가 확 달라졌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진씨 집안의 빚은 갚을 수 있겠지?”

표범의 태도에 대해 동혁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설전룡이 이미 일을 잘 처리한 것일 테니.

표범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러겠습니다…… 얼마 안 되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모터 월드를 나설 때 세화의 손에는 수표가 들려 있었다. 수표를 보면서도 세화는 그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간간이 고개를 돌려 동혁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모든 게 동혁 씨 때문이야?’

같은 시각.

H시의 어느 저택 안.

암흑가의 보스로 명성이 자자한 심용삼이 무릎을 꿇은 채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앞에는 군복 차림의 키 큰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설전룡이 냉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심용삼, 꽤 영리해? 만약 우리 큰 형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넌 지금 이미 저승길이었을 텐데.”

“사령관님의 관용에 감사드립니다.”

죽다 간신히 살아남은 심용삼은 이제야 심신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이어 머리를 숙이고 간청했다.

“그분이 H시에 왕림하신 줄도 모르고 하마터면 수하들이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습니다. 그분께 사죄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여쭤보지.”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

H시에 있는 수란 단지는 건축한 지 수십 년이나 된 낡은 아파트 단지였다. 지금 세화의 가족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세화와 동혁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류혜진 부부가 얼른 그들을 맞이했다.

“세화야, 너 괜찮니? 표범이 너를 때리지는 않았어?”

“엄마, 괜찮아요. 동혁 씨 덕분에 빚을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세화가 고개를 돌려 동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혁이는 무슨! 넌 정말 이 바보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어?”

류혜진이 동혁을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주태진에게 부탁 안 했으면 이 돈을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겠어?”

‘이 돈이 주태진에게 부탁해서 돌려받은 거라고?’

엄마의 말을 듣던 세화는 잠시 멍했다.

동혁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주태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화야, 너 이번에 진짜 주태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더니 두말없이 알았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니?”

“또 같이 저녁 먹자고 우리 가족을 초대까지 했어. 이번엔 더 이상 거절하면 안돼!”

세화가 무의식적으로 거절했다.

“엄마, 안 가면 안돼요? 오늘 동혁 씨 회복한 걸 축하해야지?”

류혜진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 바보가 회복된 게 무슨 경축할 일이야. 주태진이 오늘 크게 도왔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식사하러 가야 해.”

장인 진창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엄마 말이 맞다. 오늘은 꼭 가야 해.”

세화는 난처한 듯 동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밥 먹으러 가면 동혁 씨는 어떡해?”

“저 놈이 죽든 말든 네가 왜…….”

엄마 혜진이 세화를 밀며 위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너 빨리 옷 갈아입고 예쁘게 준비해야지, 어?”

마지못해 끌려 가던 세화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동혁을 바라보았다. 동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동혁, 그 면상을 누구한테 보여 주려고? 빨리 꺼져. 우린 네가 하나도 반갑지 않아.”

옆에서 지켜보던 진창하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랜드로바 한 대가 세화의 집 아래층에 세워졌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요염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세화의 오랜 절친 심장미였다.

“아저씨, 아주머니, 세화는요? 주태진이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순간 동혁을 본 심장미가 화들짝 놀랐다.

“이동혁, 이 바보가 어떻게 병원에서 나왔어요?”

혜진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고 한바탕 설명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심장미는 경멸의 표정으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3년전의 결혼식에서 동혁이 말없이 사라져서 자신의 절친은 도시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더니 또 바보가 되어 나타나 세화의 가족이 온갖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심장미는 절친의 이 바보 남편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이동혁, 정신이 돌아왔다면서? 그런데 왜 또 세화 옆에 붙어 있는 거야? 당신이 제대로 된 남자라면 세화에게서 멀리 떨어져! 세화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란 말이야!”

“주태진은 주원그룹의 후계자야. 또 아버지 주원풍은 건축자재협회 회장이라고. H시의 건축을 독점하고 있는. 주태진이라면 세화가 아무 걱정없이 호강하며 살 수 있다고.”

“고통과 굴욕 외에 당신이 세화에게 뭘 줄 수 있는데, 어?”

장미의 말을 듣고 있던 류혜진과 진창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표시했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심장미, 나는 너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세화에게 줄 거야.”

관련 챕터

  • 전신이 깨어났다   제6화 엠파이어 호텔

    “허.” 심장미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그래? 정말 보고 싶네.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오늘 주태진이 예약한 장소가 어디인지나 알아?”“자그마치 엠파이어 호텔 3층이야! 당신 같은 쓰레기들은 평생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이라고!”혜진이 두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엠파이어 호텔 3층? 적어도 골드 회원은 돼야 예약할 수 있다던데!”엠파이어 호텔 3층은 H시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이다. 골드회원이 되려면 최소 20억 구매력을 갖춰야 했다. 진씨 집안에서는 오직 진한영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리고 3층 이상의 층들은 더 비싸고 까다롭기가 상상을 초월했다!심장미가 고개를 돌려 동혁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이게 바로 당신과 주태진의 차이야. 세화에게 기대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기는지 정말 모르겠네.”“장미야, 이 쓸모없는 놈은 상대하지 마. 세화가 내려왔으니, 빨리 출발하자. 주태진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잖니?”혜진은 동혁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움직였다.랜드로버가 훌쩍 떠나자, 동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큰 형님, 심용삼이 엠파이어 호텔 9층 엠퍼러 홀에서 사죄하는 의미로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이리로 차를 보내라고 해.”……엠파이어 호텔 입구.랜드로버가 막 멈추자, 일찍부터 문 입구에서 기다리던 주태진이 바로 맞이했다.화이트의 명품 슈트를 걸친 주태진이 손에 선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세화를 도와 차문을 연 뒤, 웃으며 말했다.“세화야, 너 오늘 너무 예뻐.”세화는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장미가 세화의 허리를 찌르며 속삭였다.“태진이 너에게 말하고 있잖니? 대답 좀 해.”“아니…….”세화가 몸을 옆으로 돌려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그냥 동혁 씨 저녁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너 아직도 그 바보 걱정이야?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장미는 꽃길을 마다하고 굳이 가시밭길을 가려는 친구가 안타까워 탄식했다.“와!”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 전신이 깨어났다   제7화 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표범의 보스라면, 심 사장?”심장미는 저도 모르게 픽, 하며 비웃었다. “심 사장님이 어떤 위치인지 알기나 해? 정말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리 의부조차도 함부로 못하는 암흑가 보스야! 감히 심 사장님이 사죄한다고 말했다고? 죽고 싶어 환장했지?”“심장미, 믿기지 않으면 너도 같이 올라가 보면 되지.”동혁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심장미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충격에서 깨어난 주태진이 웃으며 말했다.“입구에서 심 사장의 차를 보고 이렇게 둘러대는 거지? 여기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야. 만약 이 말이 심 사장 귀에라도 들어가면 제 명에 못 죽을 거야.”순간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다.“정말 지긋지긋해!” 류혜진이 책상을 탁 치며 화를 냈다.“온종일 미친 척하면서 우리를 창피하게 하더니. 너 안 꺼져? 당장 안 꺼지면 내가 너를 때려죽일 거야. 응!”“동혁 씨, 빨리 가…… 나도 밥만 먹고 바로 돌아갈 거야.”몹시 난처해진 세화가 일어나서 동혁을 밀었다.동혁은 어쩔 수 없이 인사하고 나갔다.“알았어, 여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이따가 데리러 올게.”동혁이 나가자 룸 안이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류혜진은 연거푸 차를 마신 후 간신히 분노를 억눌렀다.주태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동혁이 갈수록 망신만 더 당하고 있으니, 자신이 이길 확률이 더 컸다. 이동혁이 계속 미친 척하기를 간절히 바랐다.……“심 사장님이 오늘 모시는 분은 누구십니까?”“엠퍼러 홀에 자리를 준비한 것도 모자라 우리 보고 직접 모시라고 하다니,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9층, 엠퍼러 홀 엘리베이터 입구.기운이 범상치 않은 중년 남녀 몇 명이 표범 심학표에게 묻고 있었다.누구라도 이들을 본다면 바로 이름을 댈 수 있을 것이다.도시계획국 국장 고진강, 가란은행 은행장 임보검, 홀리데이 주얼리그룹 회장 이향군…….이 사람들 모두 말 한 마디면 H시를 뒤집을 수도 있는 거물들이다!표범이 차갑게 말했다.“그분의 신분은 극비입니다. 분위기

  • 전신이 깨어났다   제8화 아버지도 안 때리는데

    심장미도 호기심에 그 거물을 만나보고 싶었다.“세화야, 이따가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서 기다려 볼까?”심장미가 세화의 옷을 잡아 끌며 말했다.“아니야, 나는 조금 있다가 동혁 씨와 집에 갈 거야…….”술을 한 잔 마신 세화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심장미는 아직도 이동혁에게 연연하는 친구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말렸다.“하, 세화야, 뭐 하러 그런 바보 같은 이동혁을 걱정하는 거야? 이건 정말 오기 힘든 기회라고. 혹시 알아? 그런 거물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면 너희 집 빚도 갚을 수 있을지?”“그럼…… 그래.”얼마 지나지 않아 고한비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모두 숨을 죽인 채 통화 내용에 온 신경을 모았다.‘설마 이제 거물이 내려온다는 건가?’잠시 후, 실망한 표정의 고한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아버님이 방금 전화로 식사가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분은 벌써 나가셨답니다.”“아휴, 그런 대단한 사람을 만나 볼 기회였는데 운이 안 따르네…….”다들 아쉬움에 탄식했다.“여보, 식사 다 했어?”바로 이때, 동혁이 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어딜 감히 또 와? 가요, 당장!”눈 앞에 나타난 동혁에게 화가 난 장미가 동혁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탁!동혁이 심장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성격이 우악스럽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세화의 절친이라 봐 주는 줄 알아! 다음은 어림도 없어!”“이 병신이 감히 나를 협박해?!” 화가 난 심장미가 가녀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자 고한비가 테이블을 탁! 치며 일어섰다.“이 자식, 당장 그 손 못 놔. 장미 양이 상대해 주는 것만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지!”“넌 또 누구야?” 동혁이 차갑게 물었다.“고 국장님 자제분이야! 빨리 손 안 내려!”“고진강 아들?” 동혁이 그를 힐끗 보고는 차가운 음성으로 내뱉었다.“네 아버지도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은 못해.”“죽을래?”동혁의 말에 잠시 멍했던 고한비가 벌컥 화를 내며 앞으로

  • 전신이 깨어났다   제9화 파렴치한 친족

    심장미는 냉랭하게 콧방귀를 뀌었다.눈을 가느다랗게 휜 주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웃었다.“그래, 이동혁. 그럼 네가 해. 그때 내가 두 눈 뜨고 지켜보지.”이런 바보 같은 작자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의 돈으로 세화가 원한다면 날마다 호강하게 해줄 수 있었다.‘이번 생일, 이동혁이 망치게 하는 것이 더 나아.’‘이런 쓸모없는 인간을 앞세우면 내 능력이 더 두드러져 보일 테지.’동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류혜진이 주태진에게 물었다.“태진아, 표범을 세화의 생일에 초대할 수 있겠니? 도와준 네 체면도 세울 겸 말이야. 늦었지만 고마워.”주태진의 웃음이 굳어졌다.사실 오늘 표범에게 전화를 걸기는 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욕설을 지껄이는 통에 참지 못하고 끊어 버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나중에 정말 돈을 갚아서 정말 놀랬었다.‘세화 생일에 초대하라고?’자신의 체면을 세울 수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그러나 고개를 돌리니 자신을 비웃는 듯한 이동혁이 보였다. 금세 오만한 마음으로 말했다.“아주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표범에게 전화하면 틀림없이 올 거예요.”말이 끝나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표범 형님. 3일 후에 세화 생일인데 오실 수 있어요?”[하하하…… 진세화 씨가 나를 생일에 초대한다고? 그럼 하늘이 반 토막 나더라도 무조건 가야지!]“표범 형님, 고맙습니다!”주태진이 기뻐 큰 소리로 인사했다.엠파이어 호텔을 나설 때, 류혜진은 이미 주태진을 자신의 사위로 받아들였다.뒤에서 걷던 동혁은 표범의 전화를 받았다.[이 사장님, 방금 주태진 그 녀석이 전화를 해서 진세화 씨 생일에 오라고 하는데, 제가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왜 그 놈이 초대하는 겁니까? 그래서 사장님의 뜻을 여쭙고 싶어서…….]동혁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오면 돼. 주태진은 자기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네가 돈을 갚았다고 말하더군.”[네, 뭐라고요? 주태진 그 놈이 뭔데?]표범이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화 생일 선물

    ‘뭐!’‘돈을 돌려받았다고?!’‘그게 말이 돼! 표범이 버럭 화를 냈다면서?’화란과 사람들은 멍해졌다. 진한영도 표정이 굳어지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두…… 두 사람, 정말이야?”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표를 공손하게 보여주었다.“할아버지, 수표예요. 보세요.”진한영은 눈을 크게 뜨고 수표를 살펴보았다. 곧 크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표범의 수표가 맞다.”진씨 가문 사람들의 긴장했던 안색이 이제야 풀렸다.빚을 돌려받았으니, 확실히 표범이 화를 낸 게 아니었다. 당연히 진씨 집안도 무사할 테고.“흥, 정말 너희들이 빚을 돌려받았다고 생각해? 꿈도 꾸지 마!” 바로 그때 화란이 앞으로 나가 냉담하게 흥얼거렸다.“내가 표범에게 뺨을 맞았는데, 어떻게 그가 너희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거야?”“틀림없이 나에게 보상하기 위해 표범이 너희들에게 빚을 돌려준 거야.”진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화란이 차를 사러 갔다가 이유 없이 맞았다. 표범이 보상을 하기 위해서 진씨 집안에 진 빛을 돌려줬다는 말은 완전히 합리적으로 들렸다.지금 화란은 그야말로 흑백을 전도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세화는 그저 간절한 눈빛으로 진한영만 바라보았다.그러나 잠시 망설이던 진한영이 화란을 편을 들어 말했다.“화란이 말 맞다. 이 공로는 화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화와는 무관해.”세화가 조급하게 물었다.“할아버지, 그럼 배당금은요?”그녀는 이미 누가 돈을 돌려받았는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 공제된 이익배당금을 자기 집에 돌려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었다.“화란이 덕에 빚을 돌려받았으니 너희 가족의 요 몇 년 간 배당금은 당연히 모두 화란이에게 돌아간다.”‘뭐?!’그 말을 들은 세화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 몸이 떨렸다.동혁의 안색이 완전히 가라앉았다.진씨 가족의 뻔뻔스러운 정도는 그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했다.화란은 할아버지가 건네준 수표를 받고 미

  • 전신이 깨어났다   제11화 업무상 귀한 손님

    “허풍을 치다니, 바보가 ‘여신의 마음’을 살 돈이 어디 있어.”화란은 세화를 향해 과시했다.“아, 3일 뒤에 이걸 하고서 생일 파티를 해야지. 또 이걸 하고 천룡투자그룹의 계약을 체결하러 가는 걸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뒤질세라 진태휘의 딸랑이가 마구 울려댔다.“화란아, 그때면 너는 H시에서 가장 빛나는 여자일 거야! 누구도 너 발 밑에 못 따라와.”모두들 부러워했다. ‘역시 방세한이야. 수십억 원의 ‘여신의 마음’을 선물하다니.’‘그야말로 호기롭기 그지없어!’인내심이 거의 바닥난 동혁이 주먹을 꽉 쥐고 한 걸음 나아가는 순간, 세화가 그를 부둥켜 안았다.“동혁 씨, 진정해요!”“어머, 저 바보 표정 좀 봐, 사람을 때리려고 해?”화란이 짐짓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치자, 진씨 집안 식구들이 나서서 진화란을 거들었다.“감히 사람을 때리면, 내일 할아버지께 너를 진씨 가문에서 쫓아내라고 하겠어!”“이 바보 멍청이가 간덩이가 부었나? 사람을 때리려고 해?”태휘가 휴대전화를 들고 위협했다.“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내 전화 한 통이면 세화 회사는 차압당해! 당장 보여줄까?”동혁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아내 회사를 차압해? 죽고 싶으면 한번 해 봐.”“어유, 그러셔? 아주 무서워 죽겠네?”태휘가 빈정대며 곧 어디론가 전화했다.곧 세화의 핸드폰이 울렸다.“진 사장님, 큰일났습니다. 은행에서 갑자기 회사 기물들을 압수하고 있습니다!”……세화가 황급히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회사에 들어가니 아수라장이 된 회사 사무실 안, 컴퓨터들이 사라진 채 휑한 사무용 데스크 위에는 볼펜이나 종이쪼가리 같은 것들만 마구 널려있었다.“오 과장님, 이 낡은 컴퓨터도 등록해야 합니까?”작업복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물자를 점검하고 있다.“모두 우리 은행의 재산인데, 왜 등록하지 않습니까? 모두 꼼꼼하게 체크하세요. 누락되면 절대 안 돼요!”빡빡한 인상의 중년 여자가 두 손으로 팔짱을 낀 채 가운데

  • 전신이 깨어났다   제12화 미스터리 블랙 카드

    김미경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받았다.“이 선생님, 우리 은행 카드가 맞습니까? 어째서 이런 블랙카드를 본 적이 없지요?”일을 처리한 화란과 방세한이 나가다가 직원의 말을 듣고는, 동혁의 손에 있는 은행카드를 힐끗 보았다.“하하, 이동혁 저 병신, 가짜 카드로 업무를 봐. 웃겨 죽겠어!”화란이 웃자, 방세한도 경멸하며 오 과장에게 말했다.“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빨리 저 X끼를 쫓아내요!”“아이고, 네,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오과장의 눈빛이 그 검은 카드에 떨어지자, 말을 뚝 그쳤다.그녀는 안색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앞으로 나가 동혁의 손에서 검은 카드를 빼앗았다.“김미경 씨, 지켜보고 있어. 내가 올라가서 지점장님의 지시를 듣고 올게!”오 과장은 카드를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뛰어서 올라갔다.화란이 다가왔다.“세화야, 가짜 카드로 은행을 속이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너희 둘은 정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거야!”세화는 놀라서, 얼굴이 파래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다.화란은 아직도 그곳에서 고소해하고 있다.“자, 이제는 밥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 국가가 너희들 먹을 것을 관리해 줄 거야!”말이 떨어지자마자 오 과장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안경 쓴 중년 남자가 뒤따랐는데, 바로 지점의 유 지점장이었다.세화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유 지점장님, 그 가짜 카드는 우리가 잘못 꺼낸 것입니다. 우리는 가란은행에서 카드를 만들었는데…….”“가짜 카드? 누가 이걸 가짜 카드라고 했습니까?”유 지점장은 손에 든 블랙카드를 들고 엄숙하게 말했다.“이것은 우리 가란은행이 가장 존귀한 고객에게 발급하는 지존블랙카드입니다. 지금까지 한 장만 발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좌대월액은 200억입니다!”‘뭐야!’‘지존블랙카드?’‘당좌 대월액이 200억?’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평범한 옷을 입은 이 젊은이가 가란은행의 가장 존귀한 고객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전신이 깨어났다   제13화 이혼해야 진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동혁을 노려보던 류혜진은 갑자기 주방으로 달려들어가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아직도 그딴 바보 같은 말을 해! 너 같은 바보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진씨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거야!”“오늘 내가 너를 찔러 죽이고 말겠어!”말이 떨어지자 류혜진은 손에 든 식칼을 던졌다.“엄마! 왜 이래!”세화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진창하도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 류혜진이 식칼을 던질 줄은 몰랐다.식칼이 ‘휙’ 소리를 내며 다가왔지만 동혁은 두려운 기색 없이 살짝 옆으로 돌아섰다. 식칼이 문 입구에 ‘쿵’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어이구!’문밖에서 한바탕 비명이 들려왔다.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주태진이 온 것을 보았다.“태진아?! 어떻게 온 거야!”류혜진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그를 맞이했다.주태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진씨 집안에서 쫓겨났다고 들었어요. 위로해 드리려고 선물을 좀 가지고 왔어요.”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에 분위기는 조용하게 변했다.“태진아…… 그게…….”류혜진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난처했지만, 주태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안심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황 갑부와 친분이 좀 있어요. 제가 모두 동혁의 잘못이고, 이 집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그러면 진씨 집안에서는 자연히 여러분을 탓하지 않을 거예요.”“진짜?”류혜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좀 믿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주태진은 오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하지만 그 전에 동혁이 얼른 세화와 이혼해야 해요.”“그건 확실해, 우리는 진작에 저 쓰레기를 쫓아내려고 했어.”류혜진은 주태진의 생각을 잘 알기에 웃음을 떠올렸고, 그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갔다.“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 세화야, 빨리 가서 차 한 잔 타라.”동혁과 이혼해야만 진씨 집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세화는 자기도 모르게 처량하게 웃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주방에 들어가 차를 끓였다.

최신 챕터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12화 인터뷰

    “이 사장님, 준비됐나요? 그럼 시작하죠.” 주다정은 프로였고 감독의 사인이 있자 바로 녹화 모드로 들어갔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원화투자회사의 이동혁 사장님을 모셨습니다. 이 사장님 여러분에게 자기소개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혁입니다...” 동혁은 아무도 없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텔레비전 시청자를 위한 제스처였다. 주다정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상식적으로 주요 대기업의 전문 경영인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까다롭고 또 상당한 실무 경험도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의 이력을 살펴보니 보기 드문 점이 하나 발견됐어요.” “원화투자회사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관련 업종에 종사한 경력이 없다는 겁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이 사장님은 그전까지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였는데, 맞나요?” 주다정은 동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래서 전 이 사장님이 어떻게 처갓집에 기대 살다가 갑자기 대형 투자회사의 사장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례지만, 그런 사적인 질문은 이번 인터뷰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요?” 동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동혁은 주다정이 나쁜 짓을 할 줄은 알았지만, 고약하게도 상대방이 본 녹화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이력을 언급할 줄 몰랐다. 주다정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 사장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기업 자체보다는 창업자의 창업 경력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명성, 왕일심 사장 같은 분들처럼 말이에요.” “지금 보니 이 사장님이 그 자리에 오르신 과정이 그 두 분보다 훨씬 더 전설적이고 보시는 분들에게 더 격려적일 것 같습니다.” “이러면 아마 홍보 효과도 더 클 겁니다.” 뒤에 있던 나연채와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은 주다정을 쳐다보았는데, 상대방이 제시한 이유에는 빈틈이 없었다.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확실히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입니다.” “제가 원화투자회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11화 좋은 화장품

    주다정의 말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모두 이상한 표정으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인터뷰하러 오신 분이 대단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쓸모없는 데릴사위였어?’ 한동안 모두는 동혁을 약간 경멸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정 씨, 그래도 저희 프로가 이 방송국의 메인인데, 원화투자회사가 데릴사위 따위를 보내서 인터뷰에 응하게 한 것은 너무 무례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차라리 다른 사람 보고 인터뷰하라고 할까요? 평범한 직원이라도 데릴사위 사장보다 낫겠어요.” 직원 몇 명이 연이어 말했다. 그들은 주다정이 동혁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거들었다. 나연채가 동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동혁과 주다정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이 설사 동혁이 데릴사위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이렇게 대놓고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다정의 태도가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다정 씨, 이 사장님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이분은 우리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입니다.” “게다가 저희 장 부사장님께서 앞으로 회사의 얼굴로 홍보하는 일을 모두 사장님께 맡기셨습니다.” 주다정은 나연채가 장가연의 비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동혁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는 어젯밤 대니얼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역시 이동혁은 인맥으로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저 이름뿐이야.’ 동혁에게 복수해서 망하게 만들 계획이 순식간에 주다정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다정이 웃으며 말했다. “나 실장님의 말씀이 맞아요. 이 사장님은 아내 집에 기대 사는 데릴사위가 맞아요.” “하지만 원화투자회사는 자금이 풍부하니 앞으로 H시에 기여를 많이 하는 회사가 될 거예요.” “당연히 인터뷰는 해야 하고, 인터뷰할 사람도 바꿀 필요 없어요.” 나연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아무런 사고 없이 부사장의 지시를 완수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날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주다정의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10화 원수를 본 눈빛

    “전 시청 옆 호텔에 있어요. 이리로 와 주시겠어요? ” 동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피스룩을 입은 젊은 여자가 차를 몰고 도착했다. 동혁은 임창호, 조동래 등과 헤어지고 장가연의 비서를 만났다. “성함이 뭐죠? 제가 회사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네, 제 이름은 나연채예요. 강오그룹 본사에서 부사장님과 함께 왔습니다.” 나연채는 마치 그녀가 강오그룹에서 파견돼서 한 단계 높은 신분인 것처럼 거만한 말투로 대답했다. 동혁의 옅은 술 냄새를 맡자 나연채는 불만스러워 은근히 입을 삐죽거렸다. ‘역시 낙하산으로 사장에 앉은 사람답네. 점심시간에 시청에 와서 고위 공무원들과 술이나 마시며 연줄을 만들려고 하다니.’ 아까 전 동혁과 임창호 등이 헤어질 때 그녀는 한눈에 그들의 신분을 알아봤다. 동혁의 대외적인 신분은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었기 때문에 나연채는 동혁과 고위 공무원의 만남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동혁이 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이 신분을 이용해 사방으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사람을 그녀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왔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갈까요?” 동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잠시 쉬었다. 그는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었기에 나연채에게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이었다. “이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곧 H시 방송국에 도착했고 나연채는 차에서 내린 후 아무 말 없이 앞서 걸어갔다. 그녀는 동혁이 뒤따라오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나연채는 동혁을 데리고 익숙하게 방송국 9층의 스튜디오로 갔다. 안에는 이미 많은 제작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지적이고 예쁜 여자가 대본을 들고 앉아 있는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수정해 주고 있었다. 동혁은 그 여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어젯밤에 본 적이 있었고, 동혁이 뺨도 때렸었다. ‘그 막돼먹은 개 같은 주다정이잖아?’ 나연채가 주다정에게 다가갔다. “다정 씨, 안녕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9화 시장 대행 취임식

    동혁이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자 장가연은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동혁을 더욱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다. “자, 오늘 회의는 여기입니다. 이만 끝내겠습니다.” 장가연은 손뼉을 치며 동혁이 할 말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바로 회의의 끝을 알렸다. ‘뭐야? 자기가 무슨 위안투자회사의 사장이야?’ 장가연이 떠나자마자 자리에 있던 임원들이 동혁을 둘러쌌다. “이 사장님, 저 천일환, 앞으로 회사에서 사장님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사장님의 결정에 절대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장님. 저희 모두 사장님의 지시만을 들을 겁니다. 장 부사장이 사장님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 같던데, 저희는 그녀의 지시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다퉈 동혁에게 충성을 표했다. 바로 어제 일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방금 전 동혁이 장가연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고 바로 장가연 쪽으로 갈 마음이 없었다. “그만하세요.” 동혁이 갑자기 소리치며 사람들의 말을 막았다. 임원들은 의아해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우리가 이 사장님께 충성하겠다고 했잖아.’ ‘기뻐해야 할 이 사장님이, 왜 갑자기 화를 내시지?’ “지금 파벌을 만들러 회사에 온 겁니까? 아님 일하러 온 겁니까?” “이곳은 투자회사입니다. 여러분들의 유일한 가치 증명은 여러분이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이리 몰려와서 뭐 하겠다는 건가요? 다들 할 일 하세요.” 동혁은 냉정하게 손을 흔들고 바로 회의실을 떠났다. 그의 진짜 신분으로 보면 회사 내 정치는 사실 그에게 아주 사소로운 일 일뿐이었다. 동혁의 눈에 장가연의 편견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우습게 보였다. ‘그 여자가 원칙을 해치지 않는 한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어. 일만 착실하게 잘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난 아무 간섭도 하지 않을 거야.’ “역시 이 사장님은 도량이 크신 분이야. 이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8화 새 부사장

    “좋아요. 그럼 오한민에게 맡기죠.” 이심은 독기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한민의 아들도 이동혁에게 두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지금쯤 오한민도 우리보다 그 잡종을 더 죽이고 싶을 거예요.” ... 동혁은 자신이 잠시 시장 대행하겠다고 했지만, 그 일로 그가 도지사 곽원산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덕분에 이씨 가문은 감히 직접 나서지 못했다. 다음날 원화투자회사에 도착한 동혁은 회의를 위해 회의실로 가야 했다. “무슨 일로 회의를 하는 거죠?” 동혁은 회의실로 도착해 송소빈을 불러 물었다. 송소빈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장님, 어제 회사를 떠나시고 나서 심천미 사장님이 오셨는데 이 사장님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꾸짖으시면서 자신의 부하 직원을 이곳 부사장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어요.” “그 부사장님이 이미 도착했고, 오늘 회의도 그분이 소집한 겁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오피스룩을 입은 예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한 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여자는 들어와서 회의실 안 모든 사람을 힐끗 둘러보고는 자신감 있게 소개했다. “제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장가연입니다. 오늘부터 정식으로 원화투자회사의 부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짝짝짝-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났다. 어제 동혁은 서진만을 처리하면서 이미 회사에서 그의 위신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은 장가연이 들어와서 동혁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것을 보고, 동혁에 대한 그녀의 존중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박수로 그녀를 환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가연은 표정이 조금 안 좋아졌다. “전 원화투자회사에 오기 전 강오그룹 본사에서 심 사장님의 비서를 맡았었습니다.” 짝짝짝- 그 순간 박수 소리가 좀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가연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안색이 더 안 좋아져서 갑자기 물었다 “이 사장님은 오셨나요?” 회의실의 임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는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7화 도지사의 사람

    3대 가문이 무너지자 H시는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세력들이 H시로 와서 한몫을 챙기려 했다. 하세량은 꽤 능력이 있는 시장이었지만 그동안 외부 세력들에 대처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이씨 가문이 이천성을 풀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만 봐도 지금까지 명문가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동혁이 시장 대행을 맡기로 하자 하세량은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든 우리 H시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시장님, 저는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시장의 일상적인 업무까지는 제가 좀 번거로울 수 있어요. 꼭 필요할 때만 제가 나설 겁니다.” 이때 동혁이 하세량에게 요구조건을 말했다. 그는 매일 시청에 앉아서 여러 공문서를 처리하며 바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선생님,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아랫사람에게 잘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아마 웬만한 일로는 절대 귀찮게 하지 않을 겁니다.] 하세량은 가슴을 치며 약속했다. 곧 H시 시청은 도시의 시장인 하세량이 고급 연수에 참석하는 일로 H시의 전반적인 업무를 이씨 대리인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N도 이씨 가문도 가장 빨리 이 소식을 들었다. 쨍그랑!N도 이씨 가문 본가에서 가주인 이연은 화가 나 자신이 좋아하는 찻잔을 산산조각 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세량 이 개X식, 알고 보니 곽 도지사의 사람이 됐다고 우리 이씨 가문의 요구를 묵살한 것이었어.” “어쩐지 그놈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했어. 앞으로 연수에 다녀오면 곧 승진을 할 거고, 그럼 우리 이씨 가문은 안중에도 없겠지.”그러나 이연이 아무리 욕을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씨 가문이 아무리 명문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감히 하세량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세량을 건드는 것은 도지사인 곽원산을 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세량이 승진까지 하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6화 시장 대행

    류혜진은 동혁을 붙잡고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동혁은 변명하기 귀찮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천미가 새로운 부사장을 원화투자회사에 파견해 네가 회사 일에 잘 적응하게 도울 거라고 했어.” 류혜진은 동혁을 노려보며 독기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동혁이, 너 내 말 똑바로 들었어?” “예.” 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는 회사 일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만약 새로 온 부사장이 능력 있고 이전의 그 서진만처럼 나를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뭐 아무 상관없지.’ 류혜진이 몸을 돌려 떠나자 세화가 동혁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충고했다. “동혁 씨,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을 잘 배워, 알겠지?” “당신이 회사에서 실적을 내면 엄마도 더는 동혁 씨를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거야.” “알았어. 여보 말 잘 기억할게.” 동혁은 웃으며 세화를 껴안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난 샤워하러 갈게.” 세화는 동혁을 째려보더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동혁도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려는데 갑자기 하세량에게 전화가 왔다. “시장님, 무슨 일이죠?” 동혁이 전화를 받아 물었다. 하세량이 말했다. [이 선생님, 이천성은 사람을 시켜 이미 N도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듣자 하니, 리성투자회사 부사장 오한민의 아들 오반석도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던데요?] “아, 제가 그러라고 했어요.” 동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하세량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오늘 밤에 오한민 아들 오반석의 다리가 부러졌는데 뒤이어 이천성의 다리도 부러졌어.’ ‘그런데 두 사건 모두 이 선생과 관련이 있는 거라고?’ ‘대체 이 선생과 이씨 가문은 왜 이렇게 자꾸 부딪히는 거지?’ “시장님, 뭐 또 다른 할 말이 있나요?” 동혁이 물었다. 하세량은 생각을 거두며 말했다. [이 선생님, 도청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가 이번에 마지막 모집 인원으로 보름간의 고급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거 좋은 일이잖아요. 축하드려요.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5화 심천미의 고자질

    동혁은 류성중 때문에 정말 분노했다. 오늘 저녁 연회에서 상대방은 거듭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만약 류성중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동혁은 진작에 손바닥으로 뺨을 날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세화의 외삼촌이라 동혁은 더는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류성중이 류혜진을 류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들먹이며 세화를 협박해 이혼하라고 했다. 이건 동혁에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동혁은 분노하여 표정을 굳히고 류성중을 향해 걸어갔다. “동혁 씨.” 동혁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젓는 세화는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동혁이 과격한 행동을 해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했다. 동혁을 붙잡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류성중을 바라보았다. 세화는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말했다. “외삼촌, 삼촌이야 말로 자기가 뭐든 할 수 있는 줄 착각하지 마세요.” “저와 동혁 씨의 결혼은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어요.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세화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이 말을 하고 세화는 동혁을 데리고 그대로 떠났다. 류성중은 그 자리에 서서 분노 한 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오늘 사람들 앞에서 세화와 동혁에 의해 큰 망신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며 오히려 오늘 밤 동혁과 세화 두 사람이 거듭 자신을 도발했다고 생각했다. “내 동의 없이 혜진 누나가 류씨 가문에 돌아올 생각 하지 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류성중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 동혁과 세화는 류성중의 말을 듣지 못했고 설사 듣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둘은 하원종을 쫓아 곧장 그와 함께 하늘 거울 저택으로 돌아왔다.하원종은 이미 고령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많았는지 지칠 대로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하원종에게 극진한 류혜진은 직접 그를 부축하여 위층 침실로 모시고 올라갔다. 하지만 위층에서 내려오자마자 웃고 있던 류혜진의 얼굴이 먹구름 가득하게 바뀌었다. “세화야, 너하

  • 전신이 깨어났다   제1004화 분노한 하원종

    류성중의 말을 듣고 하원종은 즉시 불만스러워했다.‘의료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불러 놓고 문제는 그냥 내버려두고 다른 사람을 치료하러 가자고?’‘게다가 류성중 부이사장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면 분명 환자는 아주 부자겠구만.’하원종은 이런 인맥을 이용하는 환자를 가장 싫어했다.그러나 병을 고치고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여긴 그는 참을성 있게 물었다.“무슨 환자죠?”“하 선생님, 외삼촌이 말한 그 환자는 아마 이천기일 겁니다. 아, 이제 이천성까지 추가해야 했군요.”동혁은 옆에서 냉정하게 말했다.그는 이씨 가문이 이렇게 오래도록 하원종을 데려가려 시도할 줄 몰랐다. 이씨 가문은 온갖 수단을 써서 하원종이 이천기의 다리를 치료하게 하려고 했다.동혁은 류성중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혹시 모르시겠지만, 그 이천기의 다리도 제가 부러뜨린 겁니다.”“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하 선생님은 절대로 이씨 가문에 가서 그놈들의 다리를 치료하지 않을 거니까요.”류성중은 멍해졌다.이천기의 다리가 다른 사람에 의해 부러져 폐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N도 상류층 사이에 이미 널리 퍼졌다.그런데 류성중은 그 범인이 동혁일 줄은 몰랐다.“동혁이 넌 닥치고 있어. 여기서 네놈은 말할 자격이 없으니까. 너 같이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놈이 하 선생님의 생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야?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지 말고, 저리 꺼져라.”정신을 차린 류성중은 동혁에게 독설을 퍼부은 다음 웃으며 하원종을 바라보았다. “하 선생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선생님께서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시기에 병자를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고요.”그 때.지금껏 조용하던 하원종이 갑자기 화약통에 불을 붙인 것처럼 폭발하며 소리쳤다.“동혁이 말이 맞아요. 난 다친 이유가 명확한 환자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이씨 가문 사람들이 다친 건 다 자업자득이에요. 나보고 그놈들의 다리를 고쳐주라고 하다니, 꿈 깨라고 전하세요.”“난 이 연회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