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마치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조연아는 곧이어 화장실을 나갔다.돌아와보니 침실 안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조연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다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마침 1층에 내려온 순간, 민씨 어르신이 과자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도 조연아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연아야, 좋은 아침이네!"조연아도 어르신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안녕하세요.""지훈이 이 자식, 오늘은 나랑 아침도 먹지 않았어. 재벌이 뭐가 그리 바쁜지 급히 나가더라고. 나랑 같이 아침 먹을래?"어르신의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본 조연아는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던 그녀는 민지훈이 확실히 없는걸 확인하고는 흔쾌히 대답했다."그래요, 저도 마침 배가 고프긴 했거든요.""자, 가자. 페이버가 오늘엔 뭘 준비했는지 나도 궁금해.”사실 어르신은 내심 조연아가 마음에 들었다. 무심결에 그녀의 목에 난 상처들을 보고는 조만간 증손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에 내심 기쁘기도 했다.곧이어 식당에 들어서니, 간단하고 맛있는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네가 찰떡을 좋아한다고 하던데."어르신은 친절하게도 떡을 몇 조각 집어 조연아의 식판에 놓아주었다.조연아는 쫀득쫀득한 찰떡을 먹고는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딱 제가 좋아하는 그 맛이에요.""그리고 이 게장도 맛있어. 얼른 먹어봐. 여기에서 직접 만든 거야. 건강하고 깨끗할 거야.""으음~" 조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게장을 입에 집어넣었다.한바탕 반찬 자랑을 하던 어르신은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연아야, 언제쯤이면 내가 증손자를 볼 수 있을까?"그러자 당황한 조연아는 몸이 굳어났다.이걸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되지?조연아는 조심스레 말했다."할아버지,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할아버님은 몸 잘 챙기시고, 잘 드시고 잘 주무시면서 오래오래 사세요.”"그래, 그래. 너도 말 참 예쁘게 하네. 네
페이버는 난처해하는 말투로 조연아를 일깨워주었다."어르신의 체면을 위해서, 전 산수마을의 하인들한테도 이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그냥 어르신께서 좋은 꿈을 꾼다고 생각하게 놔두려고요... 아가씨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굳이 신경 썼다간 본인이 더 피곤할 거 저도 잘 아니까요. 하지만... 1년 반 전 그 의도적인 살인이 발생한 후, 어르신의 몸은 예전만큼 못해진 건 사실이에요."어르신은 누구보다도 조연아에게 잘해 주던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페이버의 이 말들이 이해가 가긴 했다.다만, 이상하게 납득이 가지 않던 말이 하나가 있었다."근데 살인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페이버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가씨, 모르고 계셨어요?"영문을 모르던 조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정말 몰랐다. 연세가 많았던 어르신이 자연적으로 질병이 생긴 줄 알았는데, 이 모든 게 의도적인 살인이 그 원흉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전에 주방에서 일하던 한 요리사가 어르신이 드시는 음식에 만성 독약을 몰래 넣었고, 세월이 점차 흐르면서 몸이 편찮아지신 거예요. 다행히 일찍 발견하긴 했지만 이미 상황은 좀 심각해졌어요.""요리사요? 그 사람이 대체 왜요?" 조연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자 페이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탄했다."본인의 말로는 어르신이 자신의 원수라고 자백하더라고요. 하지만 어르신 성격이 얼마나 좋은데요. 하인들도 다 엄청 따르고 있고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원수가 된 건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분명히 누군가가 암암리에 사주한 거라 믿어요.""이 사실, 민지훈은 알고 있어요?"평범한 요리사가 감히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어르신에게 독약을 내리다니, 애초에 죽을 각오까지 하고 벌인 짓일게 뻔했다. 그럼 대체 민지훈은 어떤 사람이고, 민씨 가문은 어떤 집안인 거지?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가문이 한 평범한 요리사의 사적인 원한으로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다니. 대체 얼마나 큰 원한이 있었
조연아는 순간 백장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떠올렸다. "할아버님 말이 맞아. 굳이 진실을 알아서 좋을건 없지만 애써 무시하기에는 너무 억울해. 언제 또 당하게 될지도 모르고..."그녀는 반드시 이번 일의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곧이어 쏜살같은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한편 그 시각, 온라인에서는 인조이엔터가 스타엔터에 인수되였다는 소식이 이미 떠들썩하게 퍼지기 시작했다.기사가 올라간지 3분도 안 돼 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까지 올랐다.네티즌들의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곤 했다."이게 무슨 일이야? 스타가 왜 인조이를 인수한거지? 인조이 엔터는 조하율 말고는 볼 만한 연예인이 없었는데...""설마 조하율 때문은 아니겠지? 전에 조하율이 스타 엔터랑 같이 다니는걸 본 적 있어. 사촌 여동생이 조하율이 입원했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전에 조연아가 와서 돌봐주는 것도 봤대. 둘의 사이도 엄청 좋아보였대.""조하율이 뛰어나긴 하지만 굳이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인조이를 인수한거라고? 이건 좀 말이 안 되는데."얼마 뒤, 스스로를 연예계 관계자라 주장하는 누군가가 네티즌들이 궁금해하는 의혹을 풀어주기 시작했다."여러분들, 모노 영상과 인조이엔터이 종신 계약을 맺은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여태 인조이에서 제작한 모든 드라마는 크게 핫했고 홍보도 엄청 열심히 했었지요. 그만큼 모노 영상은 마케팅에 있어서는 훌륭한 전략을 지니고 있어요. 스타 엔터가 인조이 엔터를 인수하려는 것도 사실은 모노 영상이랑 합작하기 위해서예요.""맞아요. 제 친구의 친구가 바로 인조이의 직원인데요, 회사 내부에서도 이런 소문이 돈대요. 비록 이번 "D dream" 작품으로 모노와 합작하긴 했지만 사실 모노 측에서는 "D dream"을 제대로 마케팅할 의도가 전혀 없어 보였대요. 조연아가 혹시나 프로그램이 망할 가봐 아예 인조이를 인수한 것 같아요. 마침 조하율도 그 소속이긴 했고요.""그런데... 모노 영상은 애초에 민지훈한테 인수된 게 아
추연은 궁금했는지 조연아가 들고 있던 도시락을 빤히 바라보았다."친구가 만들어준 고등어 구이예요. 아침 일찍 친구 집에 가서 가져왔어요." 조연아는 대충 둘러댔다."고등어 구이? 이건 이모도 할 줄 알아. 다음엔 굳이 친구 집에 가지 말고 이모 찾아와.” "그래요. 다음에는 이모가 만들어준거 먹어볼게요!"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복도 안으로 걸어갔다."맞다. 내가 오늘 널 찾아온 건 너한테 물어볼 일이 있어서야."곧이어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뭔데요?"추연은 재빨리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뉴스를 보여주었다."sns에서 그러는데, 네가 인조이 엔터를 인수한 게 조하율 때문이라던데, 진짜야? 어떻게 된 일이야? 이모가 너더러 하율이랑 좀 떨어져 지내라고 했잖아. 더 이상 걔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네가 이렇게 한건 결국 그 애를 도와서 계약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잖아. 안 그래도 사람들은 전부터 계약 의혹에 대해서 얘기가 많았는데, 이젠 어떡하려고?"추연은 약간 화가 나기도 했다."이모, 인조이를 인수하는 건 스타 엔터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하지만 추연은 믿지를 않았다."거짓말하지 마! 업계에서 손꼽히는 큰 엔터 회사가 굳이 그 작은 인조이를 인수해서는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데?"조연아는 잔뜩 흥분한 추연을 달래주었다."이모, 저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어요. 하율이도 스타 엔터에 필요한 인재이기도 하니까, 이번 인수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에요."얼마 벌지 장담은 못 하지만 적어도 손해는 아니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스타 엔터도 홍보하여 더욱 재능 있는 연습생과 연예인들을 끌어들이려는 속셈도 있었다.추연은 반신반의하며 조연아를 바라보았다."그럼 하율이는? 네가 이렇게 인조이를 인수한 건 결국 하율이를 네 곁으로 두려는 거잖아. 난 반대야!"조하율에 대해 증오가 있던 그녀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말하다 보니 어느덧
“조연준. 하율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지금 걜 버리면 스타엔터에는 손해야.”조연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이모 잘 설득해 볼게. 그런데 누나… 하율이 조금이라고 수상해지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아니면 누나가 다쳐.”“응.”연아의 대답을 듣고 통화가 끝나버렸다. 연아는 머리가 복잡했다.어제저녁에 저지른 미친 짓 때문인지 이모와의 다툼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왜 항상 고민은 한 번에 몰려오는 걸가? 조연아는 그저 머리가 아팠다.소파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며 생각하고 있을 때 방금 조연준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인조이엔터랑 모노 영상이 협업 계약이 있었다고? 그것도 무기한으로?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서 인조이엔터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가?연아는 궁금한 마음에 이준국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오고 이준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주말인데 왜 저한테 연락하신 건가요? 저희 집에 오셔서 밥이라도 드시고 싶으신지?”“이 정도로 열정적으로 초대하다니. 저녁에 네 집에 가서 밥 먹도록 할게.”“하하하, 진짜지? 그럼, 오늘 저녁에 진짜 우리 집 오는 거다? 난 그러면 좀 있다 장 보러 가야지.”“응.”연아는 응답하고 다시 물었다.“인조이엔터랑 모노 영상이 협업하고 있는 거 알아?”“난 몰랐었는데 요즘 홍보팀 누나한테서 들었어. 홍보팀도 인조이엔터가 매수된 후에 안 것 같던데.”“매수되고 나서 알았다고? 업계에서 모노 영상이랑 협업하려고 하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인조이엔터가 왜 이걸 무기로 우리한테 가격협상을 하지 않은 거지?”“흠… 인조이엔터 사장이 바보인 건가? 몇 년간 하율 빼고는 다른 연예인도 키우지 못했는데 우리 직원들도 그 회사 내부 경영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당황했었거든. 연습생만 이 삼백명 계약해 놓고 뜬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노 영상이 왜 인조이엔터랑 협업하는 건지 다들 이해가 안 갔거든. 완전히 미친 짓이지…”이준국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이준국의 말을 들은 연아는 순간
“조연준. 하율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지금 걜 버리면 스타엔터에는 손해야.”조연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이모 잘 설득해 볼게. 그런데 누나… 하율이 조금이라고 수상해지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아니면 누나가 다쳐.”“응.”연아의 대답을 듣고 통화가 끝나버렸다. 연아는 머리가 복잡했다.어제저녁에 저지른 미친 짓 때문인지 이모와의 다툼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항상 고민은 한 번에 몰려서 오는 건가? 조연아는 그저 머리가 아파졌다.소파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며 생각하고 있을 때 방금 조연준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인조이엔터랑 모노 영상이 협업 계약이 있었다고? 그것도 무기한으로?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서 인조이엔터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가?연아는 궁금한 마음에 이준국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오고 이준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주말인데 왜 저한테 연락하신 건가요? 우리 집에 오셔서 밥이라도 드시고 싶으신지?”“이 정도로 열정적으로 초대하다니. 저녁에 네 집에 가서 밥 먹도록 할게.”“하하하, 진짜지? 그럼, 오늘 저녁에 진짜 우리 집 오는 거다? 난 그러면 좀 있다 장보러 가야지.”“응.”연아는 응답하고 다시 물었다.“인조이엔터랑 모노 영상이 협업하고 있는 거 알아?”“난 몰랐었는데 요즘 홍보팀 누나한테서 들었어. 홍보팀도 인조이엔터가 매수된 후에 안 것 같던데.”“매수되고 나서 알았다고? 업계에서 모노 영상이랑 협업하려고 하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인조이엔터가 왜 이걸 무기로 우리한테 가격협상을 하지 않은 거지?”“흠… 인조이엔터 사장이 바보인 건가? 몇 년간 하율 빼고는 다른 연예인도 키우지 못했는데 우리 직원들도 그 회사 내부 경영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당황했었거든. 연습생만 이 삼백명 계약해 놓고 뜬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노 영상이 왜 인조이엔터랑 협업하는 건지 다들 이해가 안 갔거든. 완전히 미친 짓이지…”이준국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이준국의 말을 들은 연아는 순간
이 생각만 하면 민지훈을 죽여버리고 싶다.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이를 꽉 깨물었다.“야야, 자냐?”이준국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연아는 몇 마디 수다를 떨다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치고 나니 잠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소파에 옹크려 앉아 자버리고 말았다.창밖은 햇볕이 쨍쨍한데 연아는 고이 자고 있었다.같은 시각, 임천산은 어둠으로 휩싸였다.오민은 민지훈의 뒷모습을 보고 함부로 옆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오민 씨, 왜 들어가지 않으세요? 30분동안 여기 서있기만 하네.”복 삼촌은 오민의 어깨를 툭 치더니 말을 걸어왔다.오민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도련님이 또 임천산을 보고 계시네요. 산수마을에서 돌아온 후부터 저러시더니… 복 삼촌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아요?”복 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느꼈죠. 도련님 기분이 안 좋으시네.”“아니에요. 진짜 최악인 상태거든요 지금.”오민은 오랜 시간 동안 민지훈 곁에서 일한 사람으로 이 정도 눈치는 있었다.“그러면 오민씨는 여기 서서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오민은 복 삼촌의 물음을 듣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전 무서워요…”복 삼촌은 키가 180이나 되는 오민이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면 계속 서 있으세요. 도련님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눈치를 채실거에요.”말이 끝나고 떠나려하는 복삼촌은 땅바닥의 핏자국을 보았다.“이 핏자국은 어디서 온거에요?”“피?”오민은 복삼촌의 눈길을 따라 바닥에 이미 마른 핏자국을 보았다. 곧이어 오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민지훈을 바라보았다.복 삼촌도 뭔가를 눈치챘다.“설, 설마… 도련님 거예요?”오민은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또, 또 다친 거예요? 설마 조 회장 때문에?”생각해도 뻔하다. 분명 조연아 때문이겠지.“도련님…”오민과 복 삼촌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민지훈 곁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민지훈의 몸이 최우선이다.“네?”민지훈은 가볍게 응답했다. 오민은 민지훈의 답장을 듣고
이제야 반응한 오민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실만 말해도 맞는다니…”곧이어 복 삼촌은 잔뜩 화가 나 있는 민지훈을 보고 말을 꺼냈다.“도련님. 오민씨가 도련님한테 할 말씀이 있다고 해서 전 먼저 내려가 저녁 준비하고 있겠습니다.”복 삼촌은 그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방에서 나갔다. 그가 떠나간 후 오민은 방금 맞은 자리를 만지며 말했다.“도련님. 스타 엔터가 방금 공식적으로 인조이 엔터를 매수했고 모노 영상도 스타 엔터와 협업을 계약했어요.”“네.”“협업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모노 영상더러 파티를 마련하라고 했어요. 모노 쪽에서 돈을 내고 스타 엔터랑 모노 영상의 핵심 직원들만 참석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민지훈은 오민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고 등을 돌려 오민을 바라보았다.오민은 건치를 자랑하며 웃었다.“도련님, 또 조 회장님이랑 만나시겠어요! 제 아이디어 괜찮죠!”오민은 자신한테 엄지척을 날렸다.민지훈은 냉소를 짓고는 대답했다.“방금 한 실수랑 퉁 치세요.”오민은 민지훈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는 조금 전 자신한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괜히 입방정을 떨어서! 아니면 연말 보너스 엄청나게 받을 수 있었을 텐데!오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티 준비를 하러 갔다.이런 자리를 스타 엔터에서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모노 영상이랑 협업을 달성한다는 건 이후에 스타 엔터에서 제작한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엄청난 기본 고객양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티 겸 단합회는 공식적으로 민지훈이랑 조연아를 두 번이나 만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이기에 소중한 것이다.“와, 나 진짜 천재!”오민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만 이마에 남은 빨간 자국이 눈에 띄었다…날이 어두워지고 핸드폰 벨소리에 깨난 연아였다.그녀는 잠결에 통화버튼을 눌러 귀에 갖다 댔다.“여보세요.”“언니, 자고 있어?”하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준국 오빠가 언니 데리고 오빠 집에 가서 저녁 먹으라고
오민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추연을 억지로 병실에서 내보내고 다시 조용해진 병실.조연아를 꼭 안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연기 좋았어.”단호한 말투에 조연아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큭.”피식 웃던 민지훈이 하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상관없어. 연기가 맞든 아니든 난 협조할 테니까.”“...”말없이 민지훈의 품에 안긴 조연아의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다.‘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 연기는 완벽했어. 그런데 왜... 들킨 걸까?’“나 피곤해.”대충 핑계를 대고 민지훈의 품에서 벗어난 조연아는 그를 등진 채 돌아누웠다.“재워줄까?”‘예전의 조연아라면 분명 그래 달라고 하겠지.’한편, 이미 들킨 거나 마찬가지지만 모르쇠를 대기로 했으니 조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어떻게 재워줄까?”이때 조연아의 곁으로 훅 다가온 민지훈의 숨결이 그대로 그녀의 귀를 적셨다.‘미친 변태자식.’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조연아의 볼이 슬그머니 달아올랐다.착잡한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조연아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까지 잘 덮어준 민지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눈을 감고 있고 돌아누워 등까지 진 상태였지만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조연아는 방금 전 추연의 말과 반응들을 다시 떠올렸다.‘추신수... 그 자식이 날 물속으로 잡아당길 때 분명히 봤어. 목에 걸린 옥 목걸이를.’그 옥 목걸이는 조연아의 어머니와 추연 두 자매의 어머니, 즉 조연아의 외할머니가 두 딸을 위해 특별 제작한 유일무이한 팬던트였다.‘하지만 엄마가 하고 있던 팬던트는 6년 전에 이미 깨졌어. 유품 정리할 때 분명 확인했다고. 그럼 추신수 목에 걸린 건 이모 거란 소린데... 이모 팬던트가 왜 추신수한테 있는 거지?’한번 불씨를 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추신수
“너무 무리하지 마.”민지훈이 조연아를 끌어안았다.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히 안긴 모습, 모든 게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이때 밖에서 요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왔다.“뭐? 연아가 기억상실증?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당장 들어가서 확인해야지.”“이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나 연아 이모야. 무슨 자격으로 날 막아!”그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추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리고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르던 오민도 눈을 질끈 감았다.‘세상에 두분 지금... 서로 안은 거 맞지?’“이모.”이때 추연을 발견한 조연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모도 왜 병원복 차림이에요? 이모도 어디 아파요?”“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충격을 받은 추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너...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거야?”“네.”그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미는 추연이었다.“민 대표, 두 사람 이렇게 스킨십하는 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봤어 봐. 우리 연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어? 두 사람 이미 이혼한 사이잖아.”“이혼이요?”조연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민지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우리 언제 이혼한 거야?”“이혼”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상한 민지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이모님, 이만 나가주시죠. 이모님도 다치셨는데 푹 쉬셔야죠.”오민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네, 의사선생님께서 이모님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얼른 가시죠.”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추연이 아니었다.“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기억상실증에... 걱정하지 마. 잃어버린 기억은 천천히 되찾으면 되니까.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 동안 있었던 일 이모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줄 테니까. 네 옆에 서 있는 이 남자 때문에 네가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이혼하게 된 건지 전부.”하지만 조연아의 맑은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이모 말
“환자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검사를 마친 의사가 물었다.말없이 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또다시 공허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대표님, 환자분 뒤통수에 생긴 상처는 아마 며칠 동안 통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이고 뇌출혈 증상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네.”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민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조연아를 향해 꽂혀있었다.“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민지훈을 향해 꾸벅 인사를 남긴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 조연아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의 정적을 깨트렸다.“저... 어떻게 다친 거죠?”그 질문을 들은 순간, 의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환자분, 어떻게 다치셨는지 기억 안 나십니까?”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조연아는 민지훈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여보, 나 어떻게 다친 거야?”“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여보?’확실히 어딘가 이상한 모습에 민지훈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아, 남편이라는 호칭 불편해? 미안. 그러니까 그렇게 화난 표정 짓지 말아줘.”3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조심스럽고 겁 많은 새 같은 모습. ‘뭐지?’혼란스러웠지만 민지훈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아니. 남편 맞아. 화난 거 아니야.”그리고 다시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민지훈이 꾸짖 듯 물었다.“별문제 없다면서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당황스러운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그러게 말입니다. 뒤통수 가격으로 인해 출혈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일 뿐입니다. 기억상실증까지 올 수준은 아닌데요... 물에 빠진 뒤 잠깐의 익수가 있었지만 구조가 빨랐기에 뇌손상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도 기억을 잃은 거라면 트라우마로 인한 단발적인 기억상실증이 큽니다. 이 문제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럼 가장 실력 좋은 의사로 컨택해 주세요.”“네.”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빠르게 병실을 나서고 조용해진 병실, 조연아의 옆에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걱정스레 민지훈을 바라보던 오민은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욕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얘기는 해야 해.’“저기... 대표님. 지금 총알을 빼내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연아 씨가 깨어나고 나서 대표님 이런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겠어요.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행여나 앞으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면 큰 결함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다른 라이벌들 이길 수 있으시겠어요?”민지훈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조연아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오민은 자극 요법을 사용했다.“대표님. 제발 연아 씨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세요!”그제서야 살짝 흔들리던 민지훈이 결국 일어섰다.“그래요. 치료하죠.”“네, 네.”잠시 후, 역시 수술실로 옮겨진 민지훈은 바로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바로 조연아가 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그리고 조연아가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녀와 함께 VIP 병동으로 입원까지 할 수 있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오민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지훈이 사랑 때문에 이 정도로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니.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었다.‘연아 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연아 씨가 깨어나야 저희 대표님 좀 쉬실 거 같으니까...’...조용한 병실, 차가운 달빛이 커튼을 넘어 침대를 비춰주었다.민지훈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조연아의 손을 꼭 잡았다.‘연아야...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봐.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힘든 건 다 내가 감당할 테니까 넌 그냥 행복만 해줘.’...한편 조연아는 깊은 꿈속을 걷고 있었다.오로라를 기다리던 그날 밤,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한 사랑의 말을 건네는 꿈이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는 잔인한 얼굴로 그녀를 불바다 속으러 밀어버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바다에 추락하는 걸 바라보는 조연아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리고 그런 조연아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겁 먹지 마.”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연아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핏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민지훈의 요트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이제 정말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다에 빠졌던 추신수가 불쑥 수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요트 난간을 부여잡은 추신수가 악에 받친 얼굴로 조연아의 다리를 잡아끌었다.“으악!!”비명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사방에 튕기고 그와 동시에 민지훈은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대표님!”이에 오민 역시 짧은 고함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두려울 정도로 조용한 바다...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소음이 전부 사라지고 턱턱 막히는 숨이 이곳이 물속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아... 이렇게 죽는 건가...’의식이 아득하게 사라지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에선 더 이상 바닷물의 차가움마저 느껴지지 않았다.바로 그때, 탄탄한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빠르게 수면위로 올라갔다.하지만 민지훈과 조연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탕탕탕 소리가 들려왔다.갑판 위에 남은 남자들이 해수면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조연아를 꽉 끌어안은 민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총 따위 무섭지 않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연아만 무사하다면...’한편,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뜬 조연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닷물에 엉망으로 젖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민지훈의 얼굴이었다.쿵.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위급한 이 상황이 잊혀질만큼 마음속 한 구석에 묘하게 따뜻해졌다.“탕!”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 민지훈의 팔을 관통하고 피가 뿜겨져나왔다.“민지...”바다 내음인지 피냄새인지 헷갈리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조연아의 의식은 다시 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이 갑판
추신수의 말대로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다가오는 요트들을 발견한 조연아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음이 다시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또... 민지훈이라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건가?’이때, 그녀의 머리채를 홱 잡은 추신수가 총구로 그녀의 머리를 겨누었다.“허튼 짓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아무리 구조 요트로 도망쳐 봤자 쾌속 요트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추신수는 조연아를 미끼로 쓰기로 결정했다.“민지훈. 이 여자 머리에 구멍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멈춰.”추신수가 무전기를 사용해 소리쳤다.한편, 인질로 잡힌 조연아를 발견한 민지훈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곧 모든 요트들이 멈춰서고... 방금 전까지 당황한 표정이던 추신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하, 전 와이프한테 남은 미련이 그렇게 많아? 그 유명한 민지훈 대표가 이렇게 순정남일 줄 몰랐어. 우리 동생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길래 잊지를 못하실까? 뭐 침대에서 끝내주나 보지? 하하하.”추신수의 음담패설에 오민이 확성기를 빼앗아들고 소리쳤다.“추신수 씨, 이쯤에서 그만 하십시오. 당신이 저희 대표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괜한 발버둥치지 말고 조연아 대표 풀어주세요.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하지만 오민의 경고가 굉장한 농담이라도 되는 듯 추신수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만 해? 의미없는 발버둥? 하하하, 정말 의미없는 발버둥일까? 조연아가 내 손에 있는 한 민지훈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너희 잘난 대표님 얼굴 좀 봐. 날 찢어죽이고 싶은데 어쩌할 방도가 없는 저 모습을.”“원하는 게 뭐야?”민지훈이 물었다.“아, 역시 통쾌하셔.”추신수가 피식 웃었다.“요트 한 대만 가까이 붙여. 조종수 한 명만 남겨두고.”잠시 후,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요트를 바라보며 추신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만!”“너, 뛰어내려.”추신수가 배에 타고 있는 오민을 향해 말했다.조연아가 인질로 잡힌 상황인데다 어차피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인 추연의 모습에 조연아가 소리쳤다.“이모, 이모. 정신 좀 차려봐요. 이모.”겨우 눈을 뜬 추연아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털썩.남자들의 손길대로 움직이다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진 추연을 바라보는 조연아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 역시 꿈쩍도 할 수 없는 터라 그저 애타게 소리칠 뿐이었다.“이모! 이모!”그녀의 목소리가 추연에게 닿아 정신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이모랑 사이가 이렇게 좋았어?”한편, 흥미롭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추신수가 피식 웃었다.“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연이 이모는 너한테도 이모잖아.”“동생아,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내가 가족, 핏줄 그런 데 얽매이는 사람처럼 보여? 그럴 거면 애초에 납치도 하지 않았어. 너희 두 사람 오늘 절대 살아서 여기서 못 벗어날 거니까 쓸데없는 기대 따위 하지 마.”추신수가 음침한 미소에 순간 소름이 돋는 조연아였다.“너... 진짜 미쳤구나? 왜? 나랑 이모 다 죽이고 스타엔터 네가 차지하려고?”“그래. 네 말이 맞아.”그 와중에 여유롭게 총구를 닦던 추신수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널 죽인다고 해서 내가 스타엔터를 차지할 거란 보장은 없지. 하지만 확실한 건... 네가 살아있는 한 그 회사가 내 몫이 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도 내가 널 죽였다곤 상상도 못할걸. 여기서 물고기밥이 되어서 시체도 못 찾을 텐데. 안 그래?”“너... 신수야, 너 어떻게 그런 짓을.”바닥에 쓰러져있던 추연이 소리쳤다.“아무리 미워도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야. 어떻게 가족한테 이런 짓을 해... 넌 죄책감 같은 것도 없어?”“죄책감?”한발 앞으로 다가간 추연이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죄책감 그게 밥 먹여줘? 돈만 가질 수 있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말을 마친 추신수는 추연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이모!”“왜 그런 눈으로 봐?”추신수가 증오로 번뜩이는 눈빛의 조연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배 위야. 동해일 가능성이 크고.”망망대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임천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동해라 그렇게 추측한 것이었다.“신수가... 신수가 벌인 짓이야. 네 얼굴 직접 보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추신수 그 자식을 만났어. 그리곤 바로 쓰러졌고.”피 묻은 추연의 옷을 바라보던 조연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모, 자세한 설명은 안전해지면 그때 해주세요.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추신수 그 미친 자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몰라. 구조정... 이 정도 규모의 배라면 구조 보트 같은 건 있을 거야. 그걸 타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하지만 추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연아야. 난 신경쓰지 말고 너 먼저 가... 이모는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괜히 따라나서봤자 너한테 짐만 될 거야.”“이모...”“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가. 이러다간 우리 둘 다 꼼짝 못하고 여기서 죽는 거야.”어느새 추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아니요.”하지만 조연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저 이모 버리고 못 가요.”“어차피 신수 타깃은 내가 아니라 너야. 당장 나한테 무슨 짓을 하진 못할 텐까 너라도 일단... 일단 도망쳐. 그리고 사람들이랑 다시 와서... 날 구해줘.”출혈이 너무 심해서인지 어느새 힘이 빠진 추연은 자꾸만 의식이 흐릿해져만 갔다.“그러니까 어서 가.”그리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추연은 조연아의 손을 뿌리쳤다.“얼른 가. 얼른!”“그럼... 저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요. 알겠죠?”조연아가 입술을 깨어물었다.추연 말대로 지금은 쓸데없는 고집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어떻게든 누구라도 도망쳐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 그게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마음을 독하게 먹고 갑판으로 나선 조연아는 한쪽에서 구조 요트를 발견했다.‘저기 있다.’그런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차가운 총구가 그녀의 뒤통수를 겨누었다.“하, 내가 정말
꽤 규칙적인 흔들림 속에서 조연아는 부스스 눈을 떴다.머리는 지끈거리고 사지에 힘은 풀린 와중에 피 냄새까지 풍겨왔다.칠흑같은 어둠속 나무판 사이 틈으로 흘러드는 빛 한줄기 덕에 조연아는 본인이 어디 있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여긴 배...잖아?’조연아는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았다.‘이모가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 나도 공격받았어. 아, 이모... 이모는 어디 계시지?’조연아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잡동사니로 가득 들어찬 방에는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그렇게 한참을 더 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는 구석에서 날카로운 철편 하나를 발견했다.어두운 이 공간에서 밧줄을 자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힘겹게 꿈틀거리며 조금씩 이동하던 그때, 바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헉, 뭐지?’당황한 조연아는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 아지 깨어나지 않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역시나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조연아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 여자 상당히 발칙한 X이라니까 조심해. 그리고 이 여자 이모는 옆방에 있으니까 종종 들여다보고. 어촌에서 잡아온 여자들이랑 노닥거리지 말고.”“참나. 형님, 저도 사내입니다. 저딴 여자 두 명 상대 못할까 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그럼에도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당부를 이어갔다.“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라고. 보통 여자가 아니야.”“대표면 뭐요. 결국 힘없고 약한 여자 아닙니까. 게다가... 얼굴에 몸매도 반반한 것이... 한 번 건드려보고 싶은데요?”“어허. 너만 그러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사실은... 엘리트 여자랑 해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거든.”역겨운 주제에 배멀미까지 더해져 순간 밀려오는 구역질을 조연아는 억지로 참아냈다.잠시 후, 남자들이 방을 나서자 다시 번쩍 눈을 뜬 조연아는 꿈틀거리며 철조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으윽...”겨우 철조각에 손이 닿아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