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민지훈이 조연아의 턱을 꽉 부여잡았다.“납치범 주제에 어딜 도망치려고.”턱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보다 황당한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납치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민지훈은 대답 대신 상자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열린 상자 틈 사이로 붉게 물든 인형 하나가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이... 이게 뭐야?”“끝까지 발뺌을 하시겠다?”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조연아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떨리는 손으로 인형을 집어 든 조연아는 다시 기겁하며 인형을 던져버렸다.핏빛 액체로 물든 인형의 옷에 “송진희” 세 글자가 기괴하게 수놓아져 있었다.“설마... 내가 어머님을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 어제 저녁 내내 당신이랑 같이 있었잖아. 당신도 나랑 같이 있다가 아가씨 전화 받고 어머님이 납치됐다는 걸 알게 된 거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정말 깜박 속을 뻔했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내 곁에 있으면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민지훈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하... 어떻게 그런 생각을.”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마지막은 좋은 추억으로 장식하고 싶어서, 그래서 추운 겨울밤 별장까지 찾아간 거였는데... ‘뭐? 알리바이 조작?’하지만 더 기가 막히는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잔인한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었다.눈물을 머금은 조연아가 고개를 저었다.“그래, 나 어머님 싫어해. 아니, 끔찍해. 우리 아기 어머님 때문에 유산된 거니까. 나도 어머님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나 복수 같은 거 할 생각 안 했어. 당신 어머니니까. 엄마 잃은 자식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엄마 없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외롭고 슬픈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당신은... 당신은 그런 고통 모르고 살길 바랐으니까...”하지만 진심 어린 고백에 돌아온 건 민지훈의 비웃음뿐이었다.“조연아, 넌 항상 이런 식이야. 세상 가련한 척 날 바라보
“그래.”차갑지만 단호한 한마디가 비수처럼 조연아의 가슴에 꽂혔다.‘조연아, 잘 봐. 네가 사랑하는 이 남자를. 저 남자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상처뿐이야. 기대를 품었다 실망하고 절망하고... 천번, 만번도 겪은 일이면서 왜... 왜 자꾸만 기대하는 건데. 도대체 무슨 답을 바라는 거야... 네가 원하는 말, 절대 해줄 리가 없다는 걸 알잖아...’“하긴, 당신 눈에 난 항상 그런 사람이었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여자. 그게 나잖아? 이해해. 날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서 날 의심하는 거겠지.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말 믿어준 적 없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나 혼자 착각하고 나 혼자 상처받고 그런 거였지 뭐.”“됐고.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 찾기 전까지 어디든 못 가니까 그런 줄 알아.”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눈빛에도 조연아는 겁먹지 않았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결백한 그녀였으니까.“증거 있어? 내가 납치를 사주했다는 증거 있냐고? 그딴 얄팍한 심증으로 날 가둬두겠다고? 당신이 뭔데!”“내가 조인주업 최대주주니까.”민지훈이 파일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양조장 개조 프로젝트”, 조연아는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파일 커버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았다.“미쳤어? 양조장을 리조트로 개조한다고? 조인주업은 조인그룹에서 가장 큰 수익을 내고 있는 계열사야. 이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뭔데!”아무리 그녀가 싫다지만 뼛속까지 비즈니스맨인 민지훈이 이런 멍청한 결정을 내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왜? 그 양조장이 소중하긴 한가 보지?”조인주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전화위복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던 양조장, 추연이 벽돌 하나하나까지 골라가며 세운 양조장이니 그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네가 뭔데 이딴 종이 쪼가리 하나로 거길 엎어버려.”입술을 꽉 깨문 조연아의 손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런 그녀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
당황한 조연아가 옷깃을 여며쥐려 하지만 힘으로 민지훈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이거 놔...”그녀의 의미 없는 반항은 또다시 거친 키스와 함께 자취없이 사라졌다...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목적지에 도착한 건지 차량이 멈추고 운전기사는 눈치껏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정장 재킷으로 반라상태인 조연아를 감싼 민지훈이 번쩍 그녀를 안아 들었다.‘여긴 어디지...?’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의 눈동자가 불안감으로 거세게 흔들렸다.아직 대외적으로 분양을 시작하지도 않은 민하그룹 산하의 별장, 민하준의 의도를 알아챈 조연아가 그의 품속에서 버둥거렸다.“날 여기 가둬둘 셈이야?”“당연한 거 아니야? 용의자를 도망치게 둘 순 없으니까.”별장에 들어선 민하준은 조연아를 짐짝 부리듯 침대에 휙 던졌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날 가둬! 이건 범죄야!”“네게 선택할 권리 따윈 없어.”단번에 조연아를 제압한 민지훈이 오싹한 목소리로 말했다.“양조장도 네 동생도 지키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럼,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차가운 경고를 날리곤 방을 나서려던 민지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전에 말이야... 네가 했던 그 말 사실이야?”“무... 무슨 말?”조연아가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내가 너랑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그 말.”“뭔, 뭔가 기억난 거야?”민지훈의 질문에 벌떡 일어난 조연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아니.”차가운 대답만을 남긴 민지훈이 돌아서고 조연아는 잔뜩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몸에 걸친 정장 재킷에서 민지훈의 향수 냄새만이 은은하게 퍼지며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점점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조연아의 마음은 다시 차가운 지옥으로 추락했다. 난방이 잘 되어 있는 방임에도 차갑게 식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혼자 남겨진 조연아는 바로 창가로 달려갔다.임천시에서 가장 끝내주는 풍경을 볼 수 있는 별장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 따윈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탄탄한 유리창은 아무리 봐도 그
조연아의 부탁에 장연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건...”“제발요. 한 통이면 되니까 부탁 좀 드릴게요.”간절한 그녀의 표정에 주위를 살피던 장연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가씨, 저도 아가씨를 도와드리고 싶지만, 이 별장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요. 몰래 통화하시는 건 불가능합니다.”그녀의 말에 역시나 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가 피식 웃었다.‘하긴... 아줌마 한 명 달랑 남겨두고 갈 리가 없지.’“도청도 되고 있는 건가요?”깊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한 장연자가 국그릇을 그녀 앞으로 살짝 밀어주었다.“식기 전에 얼른 들어요.”혼자 남겨진 조연아는 젓가락을 더 세게 꽉 움켜쥐었다.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단절된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송진희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것뿐이었다.‘그런데 왜...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애초에 어머님이 왜 납치된 거지?’식사를 마치고 다시 2층 방으로 돌아온 조연아는 커다란 침대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제발... 제발 하루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그 뒤로 며칠이 흘렀을까? 그동안 민지훈은 다시 별장을 찾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혔다가 식사 시간 때만 잠깐 거실로 나오는 게 전부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말 그대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송진희는 무사한 걸까? 언제쯤이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끝없이 그녀를 괴롭혔다....한편, 민하준의 본가.누군가의 전화를 받은 민지아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오빠! 엄마야!”민지아가 건넨 휴대폰을 받아 든 민지훈이 영상통화 수락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다음 순간, 입에 테이프를 붙인 채 읍읍 소리만 내고 있는 송진희의 모습이 액정에 나타났다.“엄마!”입을 틀어막은 민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엄마... 엄마 괜찮아? 걱... 걱정하지 마. 우리가... 우리가 엄마 구해줄게.”“민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 동안 사모님 잘 먹고 잘 주무
“끼익...”굉음과 함께 민지훈의 롤스로이스가 저택을 나선다.한편, 조연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저녁 식사 시간대에 맞추어 주방으로 내려갔다.식사를 마친 그녀가 다시 2층 방으로 올라가려던 순간,쨍그랑!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별장의 적막을 깨트렸다.“어머, 도대체 정신줄을 어디 두고 있는 거야. 아가씨, 많이 놀라셨죠. 제가 바로 치울게요.”허둥지둥 그릇 조각들을 치우는 아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던 조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주머니. 손 조심하세요.”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조연아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조연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제 겨우 7시인데 왜 이렇게 졸린 거지...’침대에 누운 조연아는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쿵쾅대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거칠게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당겼다.“조연아, 말해. 어머니 어디에 숨겼어.”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뜬 조연아는 민지훈이 던진 휴대폰 속 영상을 확인했다.“조연아, 그 계집애 짓이야! 그 계집애가... 읍읍...”영상속 걸상에 묶인 송진희의 표독스러운 외침이 끝없이 반복 재생되었다.“그... 그럴 리가 없어...”민지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조연아의 손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아직도 거짓말이야?”“정말이야. 내가 한 거 아니야. 제발 믿어, 컥!”하지만 민지훈의 큰 손바닥이 가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힘없는 변명은 결국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속으로 되삼킬 수밖에 없었다.“말해! 어머니 지금 어디 있냐고!”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웠지만 조연아는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내... 내가 한 거 아니라고.”질끈 감은 두 눈에서 절망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왜... 왜 내 말은 믿어주지 않는 건데. 왜... 정말 지친다 이젠...’한편, 분노로 달아오른 눈동자에 벌건 손자국이 남은 흰 여자의 목덜미가 들어온 순간, 민지훈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왜...
너무나 사랑하지만, 또 그만큼 미운 이 남자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그녀의 외침에 발걸음을 멈춘 민지훈이 입을 열었다.“그래, 차라리 날 미워해.”“쾅!”민지훈이 저택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고 조연아는 결국 참고 참았던 울음을 뱉어냈다.“흑흑...”11년간 이어온 사랑, 비참하게 끝나긴 했지만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었으니, 최선을 다해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그런데... 그런데 이게 뭐야...’창밖을 뚫고 들어온 달빛이 조연아를 비추고 쓸쓸한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던 조연아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피어올랐다.별 하나 보이지 않는 새카만 하늘이 왠지 그녀의 처지인 것만 같아 가슴이 시려왔다.‘저 먹구름 뒤에는 분명 밝게 빛나는 별이 있을 텐데... 한때 내 사랑도 분명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조연아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냄새지?’고개를 돌려보니 방문 틈 사이로 짙은 연기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불?’힘 풀린 다리를 겨우 움직인 그녀가 문을 연 순간, 훅 밀려오는 열기에 조연아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이미 1층은 화염으로 잔뜩 뒤덮인 상태.‘아니, 갑자기 왜 불이...’“쿨럭쿨럭.”매캐한 연기에 당황한 채 멍하니 서 있던 조연아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대론 정말 죽을지도 몰라. 어떡하지? 휴대폰도 없고...’순간, 별장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장씨 아주머니의 말이 떠오른 조연아는 천장 구석에 설치된 CCTV를 향해 있는 힘껏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민지훈! 지금 나 보고 있어? 별장에 불이 났어! 쿨럭쿨럭!”“민지훈! 나 몸에 힘이 안 들어가... 나 왜 이러지...”“살... 살려줘...”역한 연기에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버렸지만 조연아의 절망어린 구조 요청은 계속되었다.한편, 1층을 태운 불길이 어느새 계단을 타고
이런 모습인 민지훈은 처음이었다.“민…민지훈”조연아는 눈을 붉힌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민지훈은 항상 이런 식이다. 번마다 잘해줘서 없던 희망도 다시 가지게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희망조차도 주지 않았다.민지훈은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몸에 힘이 빠진 그녀를 자기 품속으로 넣고 젖은 수건으로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아버렸다.“괜찮아?”조연아는 그의 재킷을 꼭 잡은 채 끊임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로 젖어있었다.어쩔 줄 몰라 하는 조연아를 보고 민지훈은 심란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그녀를 달래줬다.“다친 곳은 없어?”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걸을 수는 있겠어?”불이 서쪽까지 퍼지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조연우는 민지훈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상태다.“나 괜찮아.”울먹이면서 그녀가 대답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나타났기에 그나마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따라와.”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코를 막은 채 서쪽의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타오르는 불길은 이미 동쪽의 별장을 집어삼켰고 서쪽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다.별장의 출구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버렸기에 그들이 여기를 빠져나가려면 객실을 뚫고 깨져버린 창가로 뛰쳐나가야 한다.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맹수처럼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듯했다. 뜨거운 불길에 온몸이 데는 듯했고 연기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듯했다.갑자기 민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품에 안긴 그녀를 향해 물어왔다.“무서워?”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다시는 도망칠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연아는 아무 대답도 없는 채 그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의 의문을 꺼냈다.“내가 여기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거야?”민지훈은 표정도 없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연아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말했다.“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이번엔 널 평생 후회하게 할 거야.“따라와!”민지훈은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서쪽의 창가는 유일한 탈출 기회다. 객실만 지나갈 수 있다면 이곳에서 떠날 수 있다.그녀는 힘을 다해서 민지훈의 손을 잡고 그의 발걸음을 따라 빠른 속도로 객실을 향해 달려갔다.불길은 위로 향해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곧 객실을 지나가려던 찰나, 아슬하게 달려있던 샹들리에가 높은 온도 때문에 터져버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조연아는 그를 앞으로 밀쳐냈다.“쾅—”샹들리에는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버리면서 조연아의 길을 막아버렸다.찰나에 불길이 또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그녀는 창가 밖으로 민지훈을 밀쳐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갇혀버린 조연아를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조연아!”민지훈은 다시 그녀를 구하려고 했지만, 옆에 서 있던 오민이 극구 말렸다.“도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이젠 구할 기회가 없어요!”불길이 점점 세차게 타오르고 있고 연아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도망칠 기회가 없을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빨간 불길 사이로 민지훈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제일 잔인하면서도 제일 따뜻한 말을 하고 있었다.“원망하고 사랑해.”짧고 간단한 말이지만 마음이 미어지게 아팠다.오빠, 나 이번엔 진짜 떠나가는 거야.몇초도 지나지 않아 거센 불길이 둘 앞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이젠 진짜 삶과 죽음으로 갈려진 둘이다.“팍—”기둥이 떨어지는 소리로 다시는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불길이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렸다.“안돼! 조연아!!”찰나에 기억이 돌아왔다. 버려진 창고, 하늘을 찌르는 불길, 그리고 오빠라고 부르던 그 여자애. 마치 그녀가 그의 귓가에서 말 하는듯하였다.--오빠, 커서 꼭 나랑 결혼하는 거다. 알겠지?--그래. 꼭 결혼하는 거야.--그럼 약속하는 거다. 변하지 않기!“ 그래. 꼭 결혼하는 거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계속 내가 생각나길 기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