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모습만 비슷한 줄 알았더니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떠안으려는 성격마저 닮았다는 말에 조연아의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졌다.‘그런 건 닮지 말지...’“대표님, 솔직히 지금 하율이 상황이 좋지 않아요. 대중들이 볼 때에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노예계약에 거의 회사를 혼자 먹여살리는 소녀 가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소처럼 일하면 뭐 합니까. 아마 정산도 제대로 못 받았을걸요?”"하긴 하율이 회사는 조하율이라는 연예인 한 명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린 엔터회사니까."“회사 쪽에서도 돈 벌어오라 닦달만 할 뿐 뭐 딱히 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행히 하율이 연기력을 좋게 봐준 제작자들이 꾸준히 좋은 대본을 보내주고 있긴 합니다만... 이러다간 하율이 몸이 버텨나지 못할 겁니다.”“그런데 왜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말없이 걷기만 하던 조연아가 우뚝 멈춰섰다.“솔직히 매니저님은 회사 소속 아닌가요? 하율이야 계약 끝나면 더 좋은 회사로 옮기면 그만이지만 매니저님은 아니잖아요. 회사 편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글쎄요... 하율이 좋은 아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언제부터인가 하율이가 친여동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나 봐요. 하율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랐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 항상 답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분이 스타엔터 대표라니. 하율이도 참 바보라니까요. 남들은 돈 주고도 못 사는 조건을 이용할 줄도 모르고...”김재준의 진심어린 말에 조연아가 싱긋 웃었다.“하율이가 회사 복은 없어도 매니저 복은 확실하네요.”“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김재준이 고개를 저었다.“사고 나고 하율이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대표님이라면서요. 말은 안 해도... 언니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이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조연아가 말없이 병실 문을 열었다.“언니...”초췌한 얼굴로 그녀를 부르는 하율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괜찮아. 많이 다친 거 아니래.”“엄마는요? 엄마는 괜찮대요?
“일단 무사하다고 SNS부터 올려야겠네. 그리고 병원 앞에 모인 팬들한테는 간식이라도 사주고 얼른 집으로 돌려보내 줘. 나 괜찮다는 소식도 전해 주고.”“응,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몸 회복에만 신경 써.”“고마워, 오빠.”“그럼 언니랑 얘기 나눠. 난 상처 받은 팬들 마음 좀 보듬고 올 테니까.”김재준이 병실을 나서자 조연아가 물었다.“갑자기 교통사고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게...”조하율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엄마랑 같이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골목길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튀어나왔어. 뭐 피하고 어쩔 새도 없이 바로 전복됐어. 골목길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니... 왠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습을 한 것 같달까... 뭐 안티팬의 복수 그런 건가?”다시 생각해도 아찔한지 조하율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사고낸 사람 얼굴은 확인했어?”“아니.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워낙 정신이 없어서...”그녀의 대답에 조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한여름에 차 안에서 마스크? 뭔가 수상한데...’“하율아! 하율아!”이때 병실문이 벌컥 열리고 조학찬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하율아, 교통사고라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래?”“아빠, 저 괜찮아요. 엄마는요? 엄마는 보고 오셨어요?”“응, 엄마도 괜찮아. 네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다행이야... 우리 가족 다 무사해서 다행이야...”넋이 나간 얼굴로 다행이라는 말만 중얼거리는 조학찬을 바라보고 있던 조연아가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족?’어느 순간부터 조학찬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왠지 그녀 혼자만 외부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조연아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조학찬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너지! 네가 낸 사고 아니야? 장미가 풀려났다는 게 고까워서 사고라도 내려던 거 아니냐고! 너... 어떻게 이런 짓까지...”일그러진 얼굴로 다짜고짜 그녀를 범인으로 모는 조학찬을 보고 있자니 방금 전 느꼈던 소외감이 부질없게 느껴
“대, 대표님.”“만두 오빠도 왔네요!”만두를 발견한 조하율이 활짝 웃었다.“아, 입원하면 필요할 게 많을 것 같아서... 좀 챙겨왔습니다. 먹을 것도 좀.”그 달콤한 미소에 얼굴을 붉히던 만두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진짜요?”쇼핑백을 받아든 만두가 눈을 반짝였다.“제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포장해 오셨네요. 고마워요.”“아,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말을 할 수록 얼굴이 빨개지는 만두를 바라보던 조연아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덩치는 산만해서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꼭 사춘기 남학생 같네.’조하율도 의식을 회복했겠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녀가 돌아서던 그때, 조학찬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연아야, 미안하다. 그게, 아까는 아빠가...”“사과하지 마세요. 뭐, 어차피 익숙한 일인걸요.”“연, 연아야...”전혀 상처받지 않은 듯한 딸의 의연한 모습에 조학찬은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조연아가 병실을 나서고 곧바로 그 뒤를 따른 만두가 그녀를 불렀다.“대표님.”“만두 씨는 여기서 남아서 하율이 곁에 있어줘요.”“네? 제가요?”만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사고... 우연히 난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하율이 만두 씨가 지켜줘요.”조연아의 설명에 만두가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께서는 누군가 일부러 사고를 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아직은 추측일 뿐이에요. 만두 씨는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고 덩치도 좋으니까 이번 일에 제 격일 것 같아서요.”“알겠습니다.”만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이 있어도 하율 씨 지켜내겠습니다.”자신만만한 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조연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병실을 돌아보았다.‘제발... 그저 내 기우이길...’“하율아, 많이 먹어. 많이 먹어야 빨리 낫지.”한편, 병실.조학찬이 만두가 포장해 온 음식을 조하율의 입에 떠넣어주고 있다.“아빠, 전 괜찮으니까 엄마한테 가보세요.”“너, 뭐 몸매 관리한답시고 이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늦춘 조연아는 옆에 주차된 차량 사이드미러로 뒷쪽을 살폈다.검은색 모자, 검은색 마스크.딱 봐도 수상한 차림의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어딘가 눈에 익은데. 누구지?’불안감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하고 조연아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코너를 도는 순간, 하이힐을 다른 쪽으로 벗어던진 조연아는 주차장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역시나 남자는 다른쪽으로 달려가고 그 틈에 조연아는 빠르게 차를 세워둔 차를 향해 맨발로 달려갔다.‘어서...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해.’하지만 그녀가 차문을 열려던 순간.탕!귀청이 찢어질 듯한 총소리와 함께 급박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입술을 깨문 채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남자를 바라보던 조연아는 차를 방패막 삼아 날카로운 총알을 막아냈다.‘상대는 총을 가지고 있어. 어쩌지... 어떻게 하지...’급박한 와중, 조연아는 운전석 문을 일부러 크게 연 뒤 미친 듯이 뒤편ㅇ르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저 앞이 바로 관리실이야. 경비원한테 이 사실을 알려야 해.’한편, 총을 든 채 차문을 벌컥 연 남자는 텅 빈 차안을 발견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젠장.”주차장 주위를 둘러보던 그가 말을 이어갔다.“이 건방진 계집애가 날 가지고 놀아? 좋아. 숨바꼭질을 하시겠다? 그래, 한번 도망쳐 봐.”하지만, 불이 켜져있는 관리실을 향해 달려가던 조연아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유리창에 가득 묻은 피와 의자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경비원을 발견한 조연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소리를 삼켜냈다.‘그래. 아까 총소리를 듣고도 경비원이 달려오지 않았을 때 진작 눈치채야 했어야 했는데...’깊은 한숨을 내쉰 조연아는 일단 급한 대로 경비실 뒤편에 몸을 숨겼다.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휴대폰을 꺼낸 조연아는 이미 수십통의 부재중전화가 와있음을 발견했다.바로 그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고...오래전 지웠지만 익숙한 번호에 조연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민지훈...’하
“조연아, 네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힘 빼지 말고 나와. 넌 오늘 무조건 죽을 테니까.”남자의 목소리가 텅 빈 주차장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그 소리에 조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추준?’방금 전 어딘가 눈에 익은 그 남자가 그녀의 사촌오빠 추준일 줄이야.충격에 몸이 덜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조연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꽉 틀어막았다.한편, 추준은 지하주차장을 이리저리 누비며 혼잣말을 이어갔다.“조연아, 내 자랑스러운 사촌동생. 이쁘고 똑똑한 내 동생. 널 죽이려니까 이 오빠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그런데 어떡해. 너 때문에 내가 백억이 넘는 빚을 지게 생겼는데. 게다가 날 상대로 소송? 하, 널 죽이고 내가 스타엔터 대표가 될 거야. 그럼 빚도 갚을 수 있겠지.”깊은 숨을 들이쉬던 추준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그래. 넌 어려서부터 재수가 없었어. 뭐라도 된 것처럼 고고한 그 눈빛이 얼마나 역겨웠는 줄 알아? 너도, 네 엄마처럼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빨리 뒤지는 거야.”추준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송 소식을 입수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조연아의 시야에 스위치가 눈에 들어왔다.천천히 몸을 옮긴 조연아가 스위치를 내리고...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주차장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빠졌다.‘지금이야.’추준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 조연아는 빠르게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한편,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추준은 어둠 속에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 탕!“꺄악!”죽음의 공포에 참았던 비명소리가 결국 터져 나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홱 잡아당겼다.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익숙한 향기에 휘둥그레진 그녀의 시야에 어렴풋이 민지훈의 모습이 들어왔다.우습게도 그의 존재만으로 공포로 경직되어 있던 몸에 힘이 풀렸다.“이제 괜찮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이제 곧 오민이 경호원들과 함께 도착할 것이다.그 사이에 시간을 벌려면 추준을 유인해야 할터, 민지훈은 기꺼이 자신을 미끼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다.하지만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꼭 잡은 조연아가 고개를 저었다.“안돼... 너무 위험해. 저 자식 총까지 가지고 있다고.”두려움으로 떨리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던 민지훈은 어이없게도 미소가 흘러나왔다.‘그래도... 내가 걱정되긴 하나 보지?’“괜찮으니까 얼른 놔.”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해도 민지훈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의 위협이라는 걸 알고 있는 조연아는 눈물 섞인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민지...”하지만 애써 그녀의 손을 뿌리친 민지훈은 단호하게 문을 닫아버렸다.새카만 통제실, 조연아는 좁디좁은 문틈 사이로 멀어져가는 민지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울지 마... 지금 울면 민지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거야.’조연아는 아직 민지훈의 체온이 남아있는 손으로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바로 그때.타다닥.민지훈의 인기척에 이끌린 추준이 어느새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안돼.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추준이 죽이려는 건 나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건 죽어도 싫어.’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깨문 조연아는 휴대폰으로 차량의 위치를 확인했다.발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확인한 조연아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차가 주차된 방향으로 달려갔다.“후우.”놀라운 직감으로 단번에 차에 탄 조연아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동 버튼으로 향하는 조연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여기서 시동을 거는 순간, 그녀의 위치가 바로 노출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부르릉.차에 시동을 건 조연아는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지하주차장을 질주하던 조연아의 시야에 드디어 민지훈의 모습이 들어오고...조수석 문을 연 조연아가 그를 향해 외쳤다.“어서 타!”탕! 탕!추준의 짧은 욕설과 함께 총소리가
‘설마... 추준인 건가?’조연아가 다시 액셀을 밟으려던 그때.“연아 씨, 저 오 비서입니다!”다급한 오민의 목소리에 핸들을 꽉 부여잡았던 핸들을 손에 힘이 턱 풀렸다.“연아 씨, 저희 대표님 만나셨습니까?”차에서 내린 오민이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제 옆에 있어요. 다쳐서 얼른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네? 대표님께서 다치셨다고요?”조수석 문을 벌컥 여니 창백한 안색의 민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피로 물든 흰 셔츠를 바라보던 오민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표정 짓지 마. 별일 아니니까.”“대표님, 얼른 병원으로 가시죠.”오민이 그를 부축하려던 그때, 민지훈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식은땀으로 차갑게 식은 조연아의 손을 살짝 잡았다.“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주는 듯한 그의 눈빛에 조연아의 가슴이 파르르 떨려왔다.“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한시가 다급한 상황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다급해진 오민이 조연아를 설득했다.“연아 씨, 부탁드릴게요. 저희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지금 거절하시면 저희 대표님 절대 치료 안 받으실 거예요. 제발... 제가 무릎이라도 꿇겠습니다.”조연아가 무릎을 꿇으려는 오민의 팔을 붙잡았다.“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병원으로 가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아 씨...”의사가 총알을 꺼낼 때까지 민지훈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의사도 살다살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지만 환자가 민하그룹 민지훈 대표이니 안 된다는 소리는 못하고 애원어린 눈으로 조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휴.”한숨을 내쉰 조연아가 어린 아이를 달래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민지훈, 이 손 좀 놔. 선생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꼭 놓아야 해? 나 무서워. 아프면 어떡해?”이게 무슨 억지란 말인가?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를 구하려다 다쳤으니 이를 악물고 애써 짜증을 밀어냈다.“마취
이에 조연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확신해요. 사촌오빠의 목소리를 착각할 리가 없으니까요.”지하주차장에 울리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해 조연아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부탁드리겠습니다.”경찰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조연아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민지훈을 노려보았다.“도대체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건데?”“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민지훈!”짜증을 내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민지훈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똑똑똑.이때, 오민이 병실로 들어왔다.“대표님.”“어떻게 됐어?”민지훈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대포폰이라 신분을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두 사람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조연아가 물었다.“대포폰? 그게 무슨 소리예요?”“아, 아직 모르셨습니까? 오늘 정체불명의 남자가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연아 씨가 위험하다고. 어서 임천병원 지하주차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상대가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 그렇게 여러 번 전화를 거셨던 겁니다.”“그랬군요...”‘그래서 부재중통화가 그렇게 많이 와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내가 문자로 위치를 보내자마자 바로 도착한 것도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누구지? 그 사람은 내가 위험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이때 오민이 말을 이어갔다.“전화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대포폰이더군요. 꽤나 신중한 상대인 것 같습니다. 뭐, 연아 씨가 무사하니 다행이지만요.”이때 조연아를 잡은 민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추준이 널 죽이려는 이유가 뭐야?”“그러니까요. 가족끼리 서로 죽고 죽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기막힌 사건에 경찰들도 혀를 끌끌 차던 모습을 떠올리며 오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연아 씨... 왜 그렇게 가족운이 없으실까.’“연아 씨가 스타엔터를 빼앗은 게 고까워서 그런 걸까요?”오민의 질문에 조연아
오민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추연을 억지로 병실에서 내보내고 다시 조용해진 병실.조연아를 꼭 안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연기 좋았어.”단호한 말투에 조연아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큭.”피식 웃던 민지훈이 하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상관없어. 연기가 맞든 아니든 난 협조할 테니까.”“...”말없이 민지훈의 품에 안긴 조연아의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다.‘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 연기는 완벽했어. 그런데 왜... 들킨 걸까?’“나 피곤해.”대충 핑계를 대고 민지훈의 품에서 벗어난 조연아는 그를 등진 채 돌아누웠다.“재워줄까?”‘예전의 조연아라면 분명 그래 달라고 하겠지.’한편, 이미 들킨 거나 마찬가지지만 모르쇠를 대기로 했으니 조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어떻게 재워줄까?”이때 조연아의 곁으로 훅 다가온 민지훈의 숨결이 그대로 그녀의 귀를 적셨다.‘미친 변태자식.’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조연아의 볼이 슬그머니 달아올랐다.착잡한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조연아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까지 잘 덮어준 민지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눈을 감고 있고 돌아누워 등까지 진 상태였지만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조연아는 방금 전 추연의 말과 반응들을 다시 떠올렸다.‘추신수... 그 자식이 날 물속으로 잡아당길 때 분명히 봤어. 목에 걸린 옥 목걸이를.’그 옥 목걸이는 조연아의 어머니와 추연 두 자매의 어머니, 즉 조연아의 외할머니가 두 딸을 위해 특별 제작한 유일무이한 팬던트였다.‘하지만 엄마가 하고 있던 팬던트는 6년 전에 이미 깨졌어. 유품 정리할 때 분명 확인했다고. 그럼 추신수 목에 걸린 건 이모 거란 소린데... 이모 팬던트가 왜 추신수한테 있는 거지?’한번 불씨를 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추신수
“너무 무리하지 마.”민지훈이 조연아를 끌어안았다.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히 안긴 모습, 모든 게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이때 밖에서 요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왔다.“뭐? 연아가 기억상실증?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당장 들어가서 확인해야지.”“이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나 연아 이모야. 무슨 자격으로 날 막아!”그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추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리고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르던 오민도 눈을 질끈 감았다.‘세상에 두분 지금... 서로 안은 거 맞지?’“이모.”이때 추연을 발견한 조연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모도 왜 병원복 차림이에요? 이모도 어디 아파요?”“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충격을 받은 추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너...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거야?”“네.”그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미는 추연이었다.“민 대표, 두 사람 이렇게 스킨십하는 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봤어 봐. 우리 연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어? 두 사람 이미 이혼한 사이잖아.”“이혼이요?”조연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민지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우리 언제 이혼한 거야?”“이혼”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상한 민지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이모님, 이만 나가주시죠. 이모님도 다치셨는데 푹 쉬셔야죠.”오민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네, 의사선생님께서 이모님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얼른 가시죠.”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추연이 아니었다.“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기억상실증에... 걱정하지 마. 잃어버린 기억은 천천히 되찾으면 되니까.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 동안 있었던 일 이모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줄 테니까. 네 옆에 서 있는 이 남자 때문에 네가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이혼하게 된 건지 전부.”하지만 조연아의 맑은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이모 말
“환자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검사를 마친 의사가 물었다.말없이 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또다시 공허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대표님, 환자분 뒤통수에 생긴 상처는 아마 며칠 동안 통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이고 뇌출혈 증상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네.”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민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조연아를 향해 꽂혀있었다.“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민지훈을 향해 꾸벅 인사를 남긴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 조연아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의 정적을 깨트렸다.“저... 어떻게 다친 거죠?”그 질문을 들은 순간, 의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환자분, 어떻게 다치셨는지 기억 안 나십니까?”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조연아는 민지훈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여보, 나 어떻게 다친 거야?”“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여보?’확실히 어딘가 이상한 모습에 민지훈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아, 남편이라는 호칭 불편해? 미안. 그러니까 그렇게 화난 표정 짓지 말아줘.”3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조심스럽고 겁 많은 새 같은 모습. ‘뭐지?’혼란스러웠지만 민지훈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아니. 남편 맞아. 화난 거 아니야.”그리고 다시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민지훈이 꾸짖 듯 물었다.“별문제 없다면서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당황스러운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그러게 말입니다. 뒤통수 가격으로 인해 출혈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일 뿐입니다. 기억상실증까지 올 수준은 아닌데요... 물에 빠진 뒤 잠깐의 익수가 있었지만 구조가 빨랐기에 뇌손상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도 기억을 잃은 거라면 트라우마로 인한 단발적인 기억상실증이 큽니다. 이 문제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럼 가장 실력 좋은 의사로 컨택해 주세요.”“네.”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빠르게 병실을 나서고 조용해진 병실, 조연아의 옆에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걱정스레 민지훈을 바라보던 오민은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욕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얘기는 해야 해.’“저기... 대표님. 지금 총알을 빼내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연아 씨가 깨어나고 나서 대표님 이런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겠어요.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행여나 앞으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면 큰 결함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다른 라이벌들 이길 수 있으시겠어요?”민지훈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조연아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오민은 자극 요법을 사용했다.“대표님. 제발 연아 씨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세요!”그제서야 살짝 흔들리던 민지훈이 결국 일어섰다.“그래요. 치료하죠.”“네, 네.”잠시 후, 역시 수술실로 옮겨진 민지훈은 바로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바로 조연아가 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그리고 조연아가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녀와 함께 VIP 병동으로 입원까지 할 수 있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오민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지훈이 사랑 때문에 이 정도로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니.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었다.‘연아 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연아 씨가 깨어나야 저희 대표님 좀 쉬실 거 같으니까...’...조용한 병실, 차가운 달빛이 커튼을 넘어 침대를 비춰주었다.민지훈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조연아의 손을 꼭 잡았다.‘연아야...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봐.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힘든 건 다 내가 감당할 테니까 넌 그냥 행복만 해줘.’...한편 조연아는 깊은 꿈속을 걷고 있었다.오로라를 기다리던 그날 밤,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한 사랑의 말을 건네는 꿈이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는 잔인한 얼굴로 그녀를 불바다 속으러 밀어버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바다에 추락하는 걸 바라보는 조연아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리고 그런 조연아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겁 먹지 마.”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연아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핏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민지훈의 요트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이제 정말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다에 빠졌던 추신수가 불쑥 수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요트 난간을 부여잡은 추신수가 악에 받친 얼굴로 조연아의 다리를 잡아끌었다.“으악!!”비명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사방에 튕기고 그와 동시에 민지훈은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대표님!”이에 오민 역시 짧은 고함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두려울 정도로 조용한 바다...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소음이 전부 사라지고 턱턱 막히는 숨이 이곳이 물속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아... 이렇게 죽는 건가...’의식이 아득하게 사라지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에선 더 이상 바닷물의 차가움마저 느껴지지 않았다.바로 그때, 탄탄한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빠르게 수면위로 올라갔다.하지만 민지훈과 조연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탕탕탕 소리가 들려왔다.갑판 위에 남은 남자들이 해수면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조연아를 꽉 끌어안은 민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총 따위 무섭지 않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연아만 무사하다면...’한편,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뜬 조연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닷물에 엉망으로 젖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민지훈의 얼굴이었다.쿵.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위급한 이 상황이 잊혀질만큼 마음속 한 구석에 묘하게 따뜻해졌다.“탕!”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 민지훈의 팔을 관통하고 피가 뿜겨져나왔다.“민지...”바다 내음인지 피냄새인지 헷갈리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조연아의 의식은 다시 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이 갑판
추신수의 말대로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다가오는 요트들을 발견한 조연아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음이 다시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또... 민지훈이라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건가?’이때, 그녀의 머리채를 홱 잡은 추신수가 총구로 그녀의 머리를 겨누었다.“허튼 짓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아무리 구조 요트로 도망쳐 봤자 쾌속 요트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추신수는 조연아를 미끼로 쓰기로 결정했다.“민지훈. 이 여자 머리에 구멍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멈춰.”추신수가 무전기를 사용해 소리쳤다.한편, 인질로 잡힌 조연아를 발견한 민지훈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곧 모든 요트들이 멈춰서고... 방금 전까지 당황한 표정이던 추신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하, 전 와이프한테 남은 미련이 그렇게 많아? 그 유명한 민지훈 대표가 이렇게 순정남일 줄 몰랐어. 우리 동생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길래 잊지를 못하실까? 뭐 침대에서 끝내주나 보지? 하하하.”추신수의 음담패설에 오민이 확성기를 빼앗아들고 소리쳤다.“추신수 씨, 이쯤에서 그만 하십시오. 당신이 저희 대표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괜한 발버둥치지 말고 조연아 대표 풀어주세요.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하지만 오민의 경고가 굉장한 농담이라도 되는 듯 추신수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만 해? 의미없는 발버둥? 하하하, 정말 의미없는 발버둥일까? 조연아가 내 손에 있는 한 민지훈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너희 잘난 대표님 얼굴 좀 봐. 날 찢어죽이고 싶은데 어쩌할 방도가 없는 저 모습을.”“원하는 게 뭐야?”민지훈이 물었다.“아, 역시 통쾌하셔.”추신수가 피식 웃었다.“요트 한 대만 가까이 붙여. 조종수 한 명만 남겨두고.”잠시 후,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요트를 바라보며 추신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만!”“너, 뛰어내려.”추신수가 배에 타고 있는 오민을 향해 말했다.조연아가 인질로 잡힌 상황인데다 어차피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인 추연의 모습에 조연아가 소리쳤다.“이모, 이모. 정신 좀 차려봐요. 이모.”겨우 눈을 뜬 추연아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털썩.남자들의 손길대로 움직이다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진 추연을 바라보는 조연아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 역시 꿈쩍도 할 수 없는 터라 그저 애타게 소리칠 뿐이었다.“이모! 이모!”그녀의 목소리가 추연에게 닿아 정신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이모랑 사이가 이렇게 좋았어?”한편, 흥미롭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추신수가 피식 웃었다.“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연이 이모는 너한테도 이모잖아.”“동생아,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내가 가족, 핏줄 그런 데 얽매이는 사람처럼 보여? 그럴 거면 애초에 납치도 하지 않았어. 너희 두 사람 오늘 절대 살아서 여기서 못 벗어날 거니까 쓸데없는 기대 따위 하지 마.”추신수가 음침한 미소에 순간 소름이 돋는 조연아였다.“너... 진짜 미쳤구나? 왜? 나랑 이모 다 죽이고 스타엔터 네가 차지하려고?”“그래. 네 말이 맞아.”그 와중에 여유롭게 총구를 닦던 추신수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널 죽인다고 해서 내가 스타엔터를 차지할 거란 보장은 없지. 하지만 확실한 건... 네가 살아있는 한 그 회사가 내 몫이 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도 내가 널 죽였다곤 상상도 못할걸. 여기서 물고기밥이 되어서 시체도 못 찾을 텐데. 안 그래?”“너... 신수야, 너 어떻게 그런 짓을.”바닥에 쓰러져있던 추연이 소리쳤다.“아무리 미워도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야. 어떻게 가족한테 이런 짓을 해... 넌 죄책감 같은 것도 없어?”“죄책감?”한발 앞으로 다가간 추연이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죄책감 그게 밥 먹여줘? 돈만 가질 수 있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말을 마친 추신수는 추연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이모!”“왜 그런 눈으로 봐?”추신수가 증오로 번뜩이는 눈빛의 조연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배 위야. 동해일 가능성이 크고.”망망대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임천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동해라 그렇게 추측한 것이었다.“신수가... 신수가 벌인 짓이야. 네 얼굴 직접 보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추신수 그 자식을 만났어. 그리곤 바로 쓰러졌고.”피 묻은 추연의 옷을 바라보던 조연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모, 자세한 설명은 안전해지면 그때 해주세요.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추신수 그 미친 자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몰라. 구조정... 이 정도 규모의 배라면 구조 보트 같은 건 있을 거야. 그걸 타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하지만 추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연아야. 난 신경쓰지 말고 너 먼저 가... 이모는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괜히 따라나서봤자 너한테 짐만 될 거야.”“이모...”“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가. 이러다간 우리 둘 다 꼼짝 못하고 여기서 죽는 거야.”어느새 추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아니요.”하지만 조연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저 이모 버리고 못 가요.”“어차피 신수 타깃은 내가 아니라 너야. 당장 나한테 무슨 짓을 하진 못할 텐까 너라도 일단... 일단 도망쳐. 그리고 사람들이랑 다시 와서... 날 구해줘.”출혈이 너무 심해서인지 어느새 힘이 빠진 추연은 자꾸만 의식이 흐릿해져만 갔다.“그러니까 어서 가.”그리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추연은 조연아의 손을 뿌리쳤다.“얼른 가. 얼른!”“그럼... 저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요. 알겠죠?”조연아가 입술을 깨어물었다.추연 말대로 지금은 쓸데없는 고집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어떻게든 누구라도 도망쳐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 그게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마음을 독하게 먹고 갑판으로 나선 조연아는 한쪽에서 구조 요트를 발견했다.‘저기 있다.’그런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차가운 총구가 그녀의 뒤통수를 겨누었다.“하, 내가 정말
꽤 규칙적인 흔들림 속에서 조연아는 부스스 눈을 떴다.머리는 지끈거리고 사지에 힘은 풀린 와중에 피 냄새까지 풍겨왔다.칠흑같은 어둠속 나무판 사이 틈으로 흘러드는 빛 한줄기 덕에 조연아는 본인이 어디 있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여긴 배...잖아?’조연아는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았다.‘이모가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 나도 공격받았어. 아, 이모... 이모는 어디 계시지?’조연아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잡동사니로 가득 들어찬 방에는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그렇게 한참을 더 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는 구석에서 날카로운 철편 하나를 발견했다.어두운 이 공간에서 밧줄을 자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힘겹게 꿈틀거리며 조금씩 이동하던 그때, 바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헉, 뭐지?’당황한 조연아는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 아지 깨어나지 않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역시나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조연아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 여자 상당히 발칙한 X이라니까 조심해. 그리고 이 여자 이모는 옆방에 있으니까 종종 들여다보고. 어촌에서 잡아온 여자들이랑 노닥거리지 말고.”“참나. 형님, 저도 사내입니다. 저딴 여자 두 명 상대 못할까 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그럼에도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당부를 이어갔다.“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라고. 보통 여자가 아니야.”“대표면 뭐요. 결국 힘없고 약한 여자 아닙니까. 게다가... 얼굴에 몸매도 반반한 것이... 한 번 건드려보고 싶은데요?”“어허. 너만 그러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사실은... 엘리트 여자랑 해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거든.”역겨운 주제에 배멀미까지 더해져 순간 밀려오는 구역질을 조연아는 억지로 참아냈다.잠시 후, 남자들이 방을 나서자 다시 번쩍 눈을 뜬 조연아는 꿈틀거리며 철조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으윽...”겨우 철조각에 손이 닿아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