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는 이 말을 듣자 안색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녀는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왔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수모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황 사장님, 우리 회사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합니다. 정중하게 대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것이 저희 쌍방 모두에게 좋습니다. 관계를 완전히 끊으면 안 좋지 않겠어요?”“이번엔 그만 둡시다. 다음에도 나를 모욕하면 내 변호사에게 연락을 받게 될 겁니다!”“변호사 연락? 모욕?”황보는 웃더니 이때 차갑게 말했다. “설은아, 너 정말 네가 무슨 양갓집 규수라도 되는 줄 알아?”“내가 경고하는데 오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너네 회사와 합작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경고하는데 지금 수 많은 회사들이 앞다투어 우리와 협력하고 있어!”“우리 원자재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황보, 당신 정말 그날 내가 도와줬던 옛정은 잊어버렸구나!? 은아는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황보는 가볍게 웃으며 두 손으로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설은아씨, 이번 일은 아무래도 접어 둡시다! 다들 장사꾼이라 자기 이익만 챙기니!”“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는 하루만 중단돼도 손해가 크죠?”“가장 관건이 만약 기한 내에 준공할 방법이 없으면 천일그룹에는 어떻게 해명할 겁니까?”“이 상황에서 적은 돈이 뭐 그리 별거라도 됩니까?”은아는 인상을 썼다. 사실 한번 가격을 인상해도 회사는 그 돈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업 전쟁터에서 한 발 양보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한발 앞서 나간다는 것을 은아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오늘 50% 증가하면 내일은 아마도 60%, 70%, 심지어 배로 증가할 수도 있다! 상대방은 네 목숨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연히 계속해서 받아 내려고 독촉할 것이다. 은아를 보니 이때 너무 가여운 모습이라 황보는 순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설은아는 요괴급 미녀로 벌써 하 세자까지 청혼을 했
황보는 이미 사악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웠고,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는 없었다. 이때 그는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은아, 오늘 밤 우리 남원 호텔로 갑시다. 안심해요. 나 거기 회원이니까 틀림없이 프레지던스 스위트 룸에 갈 수 있어요. 당신이 만족하리라 보장합니다!”“그만 둬. 이 손 놓지 않으면 정말 신고할 거야!”은아는 몸부림을 치며 핸드폰을 꺼냈다.이 모습을 본 황보는 냉소하며 오른손으로 은아를 땅바닥으로 내리쳤다.“이 여자가! 정말 자기가 무슨 재주라도 있는 줄 아나? 나한테 깨끗한 척을 하다니?”“내 말 잘 들어. 너는 결국 내 침대위로 올라 가게 될 거야!”“내가 지시하지 않으면 남원에서는 아무도 너한테 원자재를 주지 않을 거야!”은아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황보, 너 잘난 척 하지 마.”“나는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다는 말은 믿지 않아! 그때 가서 부디 후회하지 않기를!”은아의 말에 황보는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 이렇게 광기를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뒤에는 강남 부동산 업계의 우두머리, 일류 가문 소씨 집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씨 집안이 뒷받침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황보는 남원 원자재 시장의 왕이 되었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 몰래 은아에게 원자재를 팔겠다면 그것은 바로 죽으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 황보는 이런 것들을 입밖에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에야 비웃으며 말했다. “설은아, 너 가서 한번 해봐.”“언제든지 납득이 되고 생각이 확실해지면 나 찾아오는 거 잊지마.”“사실, 상황은 어렵지 않아. 돈을 주던지 아니면 두 다리를 주던지.”“또 내가 너한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야.”황보는 날뛰고 광기를 부리며 웃었다. 은아는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차갑게 말했다.“황보, 너 후회하지 마. 내가 널
집에 돌아온 설은아는 소파에 자신을 내던지고 어두운 얼굴로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설유아는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자기 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니 분명 엄청나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곧 이어 그녀는 재빨리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아는 자기 형부가 절대 언니를 억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지 30분도 안 돼서 하현이 나타났다.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도 은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은아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줄 수 있어?”하현은 유아에게 위에 올라가 있으라고 눈짓을 하고 나서야 우유 한 잔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은아는 우유를 받고 화가 난 채로 마시다가 오늘 당한 억울한 일이 떠올라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거기다 황보 그 뻔뻔한 녀석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 그녀는 지금도 머리가 아팠다. “황보, 이 배은망덕한 놈.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가 세워졌을 때 그 사람은 파산 직전이었는데 내가 좋은 마음으로 도와서 다시 숨통을 트이게 해줬거든. 근데 지금 부자가 되고 나서 돌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게다가…… 거기다……”은아는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필경 여자아이라 어떤 일들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하현의 눈빛이 순간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그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한 거야?”은아는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됐어. 이미 지나갔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지금 나는 원자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돼.”“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오늘 밤은 푹 쉬어. 내일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쉽게 풀릴지도 모르잖아?”하현이 위로하며 말했다. 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정말 너무 지쳤다. 우유를 다 마신 후 은아는 소파에서 그대로 깊이 잠이
변백범은 입을 열지 않았고 손에 들려 있는 시가가 반도 타지 않은 것만 보고 있었다. 두 부하가 처리를 했으니, 이제 다음이 더 중요했다. 시가를 다 피운 후에야 변백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보, 너 같은 하찮은 인간은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야.”“그래서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을 수 없어.”“너 최근에 무슨 짓을 했는지,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아니에요! 전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았어요. 전 규칙대로 장사하는 사람이에요!”“그래? 그럼 내가 네 대신 잘 기억해볼게!”변백범은 말을 하면서 발로 황보의 얼굴을 걷어찼다.“퍽______”황보는 룸 벽에 몸이 부딪혀 입에서 이 몇 개를 직접 뱉어냈지만 그 순간 오히려 정신을 차렸다. 그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어코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다고 하면 설은아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만약 설은아가 변백범 같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 자기에게 협박을 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건 전혀 상식에 맞지 않다!“범 형님, 아니, 범 어르신, 틀림없이 분명 오해일 거예요.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게 분명해요!”황보는 마늘을 찧듯 이마가 땅에 닿도록 계속 절을 했다. 그는 정말 무서웠다. 변백범 부하들이 사람을 불구가 될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지만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줄곧 높은 지위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살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럼 네가 황보가 아니야?”변백범은 자기가 정말 사람을 잘못 찾을 줄 알고 궁금해했다.“맞아요!”“건축 원자재 하는 거지?”“네!”“그럼 맞네! 데려가!”변백범은 담담하게 말했다. “범 형님, 저를 데려 가실 수 없어요. 제 뒤에도 사람이 있거든요!”황보는 만약 변백범에게 끌려가면 자신의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때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 네가 빽이 있구나. 말해 봐. 혹시 내가 그 집안 사람을 몰라 봤을지도
새벽 2시, 하현은 스마트 밸리를 떠나 변백범의 거점에 도착했다. 황보는 지하실에서 끌려 나왔다. 그의 부상 정도가 가벼운 편은 아니었지만 하현이 보기에는 심각하지 않았다. 이때 황보가 일어설 수 있는 것을 보고 하현의 차가운 시선이 바로 변백범에게로 떨어졌다. 변백범은 벌벌 떨었고 황보에게는 말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변백범이 직접 황보의 배를 발로 걷어찼고, 그는 산지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몸이 땅에 내던져졌을 때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오해……”“범 형님, 이건 정말 오해예요!”황보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변백범이 어디 감히 하현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 수 있겠는가? 이때 그는 손을 드리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현 앞으로 나서며 오른 발로 천천히 황보의 얼굴을 누르며 차갑게 말했다.“너 오늘 설은아한테 뭐 했어?”황보는 잠시 멍해졌다. 설은아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때 그는 곤란해 하며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누구세요?”“나 은아 남편인데.”하현이 말했다. 설은아의 남편?데릴사위 하현?이때 황보는 화를 냈다.“난 또 누군가 했네! 너 폐물 아니야!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너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내 눈에는 그냥 폐인처럼 보이는데.”“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지. 마지막으로 한번만 묻는다. 너 설은아한테 무슨 짓 했어?”황보는 줄곧 약한 자는 업신여기고 강한 자는 두려워하는 사람이니 어찌 이 데릴사위 앞에서 무서워 할 수 있겠는가?비록 바닥에 누워있었지만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폐물, 어르신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서 어르신 잠자리를 좀 돕도록 했어. 이게 뭐 어때서?”“어르신이 네 여자한테 친히 가줬으니 이건 너에게 영광이지!”“너는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해!”옆에서 변백범은 눈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황보를 주시하다가 잠시 후 돌아서서 떠나고는 계속 손을 대지 않았다. 변백범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황보가 언제 이렇게 말을 잘했지? 하현이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도망가 버리다니?“세자, 저……”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저 사람 풀어 줘.”“왜요? 형수님한테 미운 털 박힌 거 아니에요?”변백범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세자께서는 안심하시고 저에게 맡겨 주세요. 깨끗하게 처리하겠습니다.”하현이 그를 힐끗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나랑 그렇게 오래 일을 했는데도 머리가 안 돌아가?”“너 눈치 못 챘어? 황보는 그냥 폐물이야. 남원 원자재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무슨 능력이 있겠어? 반드시 뒤에 누군가 있는 거야.”하현이 말했다. “그게 소씨 집안 아니에요?”변백범이 말했다. “글쎄.” 하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소씨, 나씨, 최씨, 구씨 이렇게 4대 일류 집안은 분명 진퇴양난일 거야. 얼마 전 자신의 손에서 손해를 봤으니 하현의 계산에 따르면 이 4대 일류 가문은 쉽게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 네 가주들 중 누구도 바보는 없으니 기껏해야 자신을 역겹게 만드는 소소한 일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지금 황보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은아를 겨냥한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이 점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그가 며칠 더 활보하고 다니도록 해도 나쁘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가서 한번에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제가 지금 어떻게 하면 될까요?”변백범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해했다고 하고 풀어주면 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30분 후 황보는 도시 외각의 한 길가에 버려졌다. 이때 그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늘에 30분 넘게 숨어 있다가 전화를 걸었다. ……남원 교외, 지하 마당. 이곳은 남원과 임성의 경계에 있는 회색 구역인 셈이다
“잘했어, 그 폐물은 나타났어?”하경원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폐물 이 두 글자를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것 같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현에게 손을 대더라도 하경원은 감히 주변사람들에게 하현의 진짜 신분을 알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신분의 사람에게 내 놓아도 사람들을 놀래 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지금 그 폐물 말씀하시는 거예요!? 데릴사위 하현이요!?”“그 사람은 도련님이 예상하신 대로 확실히 나타나긴 했지만 저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변백범이 저를 놔준 것도 그 사람이 지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말씀 하신 대로 어느 큰 인물의 대변인일 가능성이 큽니다.”하경원을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뻗어 휠체어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린 뒤 잠시 후에야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 사람은 신중해서 네 배후에 있는 사람이 소씨 집안이라고 최종적으로 확정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거든.”“이렇게 된 이상 너희들이 그에게 큰 선물을 하나 보내. 그와 소씨 집안이 절대 쉬지 못하게 해!”“네!”한 무리의 부하들이 모두 손을 드리우고 숙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경원 도련님은 역시 경원 도련님이시다. 지금 비록 불구가 됐어도 계략으로 천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곧 누군가 하경원의 휠체어를 밀며 자리를 떠났다. 현장에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흰색 양복을 입고 다가와 손을 뻗어 황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황군, 경원 도련님이 우리에게 임무를 맡기셨으니 우리 잘 협력해 봅시다.”눈앞에 서 있는 한 분을 보자 황보는 벌벌 떨었다. 이 분은 비록 남원 길바닥 인물은 아니었지만 회색지대의 형님으로 사람들은 이 사람을 웃는 용이라고 부른다. “용 형님, 모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회색지대 너머에는 렉서스 승합차 한대가 길가에 서 있었다. 문이 열렸고 한 켠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눈 앞의 아름다운
다음날 설은아는 아침 일찍 여느 때처럼 대모산 리조트 공사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텅 빈 공사장을 보며 인부도 없고 직원들도 오지 않아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제 하현이 오늘 모든 것이 쉽게 해결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제와 똑같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은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설은아, 설은아,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하현이 정말 그렇게 능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데릴사위가 될 수 있었겠어?때때로 은아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해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씨 집안에서 그런 비난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안색 하나 안 바뀔 수가 있을까?은아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승합차 한 대가 도로변에 조용히 멈춰 섰고 차 안에서는 누군가 망원경을 들고 끊임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용 형님, 저기 설은아가 있습니다.”“가서 잡아와. 지금 다른 직원들은 아직 출근을 안 했네. 사람이 많아지면 처리하는 게 어려워져.”용은 담배를 물고 사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시 후 공사장 입구에 업무용 차량 한 대가 멈춰 서자 은아는 혹시 시공사가 왔나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았을 때 은아는 순간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들건들해 보였고 딱 봐도 좋은 사람들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대도 경수 사람들도 아니었다. 대도 경수 사람들은 감히 자기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어찌 휘파람을 불며 걸어올 수 있겠는가?설은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약간 후회가 됐다. 이때 그녀는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 누구야? 여기 공사 현장인 거 몰라? 함부로 들어오면 경비원 부를 거야!”“미녀님, 형님들이 벌써 다 알아 봤습니다. 여기는 경비원이 없어요. 지금 근무시간이 아니잖아요!”“하지만 걱정 마세요.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