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은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 한정판 가방의 가격은 3억 7천 만 원짜리였다. 누가 선물하겠다고 마음대로 말한다고 바로 선물을 할 수 있겠나?겨울과 원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그들이 입을 연 사람을 보았을 때 얼굴빛이 ‘싹’ 새하얗게 질렸다.우윤식!?어떻게 이 사람이!?아침에 미진이 우윤식이 원호의 절친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윤식이 등장했다. 종이로 불을 감쌀 수 있겠는가? 아침에 그 뉴스 때문에 설은아와 사람들은 우윤식의 사진을 봤기에 지금 모두 다 알아봤다. 그래서 지금 은아는 경악을 했다. 어째서 우윤식이 자기에서 이 가방을 선물한다고 하는 걸까?설마 방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나? 사진 속에 있었던 그 젊은 청년의 뒷모습이 하현? 자기가 그때 나름 추측을 해보긴 했지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윤식이 갑자기 등장했고 자신의 생각을 방증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자 은아는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한번 쳐다봤고 아무 표정이 없는 그를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현을 잘 몰랐지만 우윤식은 하현과 1년 넘게 친위로 지냈기에 하현이 조금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때 그는 몸이 약간 굳어졌고, 무의식적으로 은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설 아가씨, 너무 갑작스러우시죠? 제가 설명을 좀 해드릴게요. 전에 천일그룹에서 열린 회의에서 제가 아가씨를 한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오늘은 저희 면세점이 오픈한 이후로 10만번째 손님으로 오셔서 선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억지스러운 설명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 원호와 겨울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설은아와 우윤식이 무슨 관계가 있는 줄 알았다!이제 보니 설은아는 정말 개똥 운이 대단하다!천일그룹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우윤식에게 선물을 받다니!자신은 천일그룹의 부장이었다. 우윤식이 은아를 보고서도 이렇게 깍듯하게 대한다면 자기를 볼 때는 무릎을 꿇고 아첨을 떨어야 하는 거 아닌가?원래 전
우윤식이 떠나고 나서야 은아는 웃으며 말했다.“이모, 겨울아. 오늘 우연히 좋은 분을 만났고 따지지 않으셨으니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오늘 그녀는 겨울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겨울은 굉장히 어두운 얼굴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언니, 내 남편이 우윤식과 절친이 아니라고 해도 언니네 폐물 남편 보다는 천 배, 만 배는 나아!”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적어도 내 남편은 이렇게 들통나지는 않는데.”“언니……”겨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때 희정이 밖으로 나와서 말했다.“자, 자, 다 같은 친척인데 뭘 다퉈?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비웃겠어.”은아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현은 희정을 한번 쳐다보았다. 분명 희정은 겨울과 같은 편이었다. 보아하니 이번에 자신을 겨냥해 이 사람들과 오래 전부터 계획을 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하현은 오히려 화를 내지 않았고 희정과 장미진 사람들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은 하나의 연극일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이 추악한 드라마가 결국 어떤 방식으로 막을 내릴지 보고 싶었다. 일행은 샤넬점을 나왔고 겨울은 다시 체면을 살리기 위해 다음 가게로 들어가려고 했다. “맞다, 내가 깜빡 하고 물건을 놓고 왔네.” 하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하고 있을 때 하현이 빠른 걸음으로 샤넬 가게로 갔다.“은아야, 네 남편이 너한테 가방을 사주러 갔나 봐. 할인 상품인지 이월 상품인지 어떤 건지 모르겠네?”겨울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가득했다. 그녀는 하현이 가방을 사러 갔다 해도 이미 철 지난 상품이거나 엄청 할인을 해주는 물건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런 물건을 살 때도 은아의 카드를 긁어야 할 것이다. 은아는 하현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 가방을 사러 간 건
곧이어 겨울은 은아의 손에서 물건을 낚아채더니 웃으며 말했다.“언니, 무슨 볼썽사나운 물건도 아닌데 왜 굳이 집에 가서 봐요?”“물건이 너무 싸구려라 망신당할까 봐 두려운 거예요?”“이겨울, 너 너무 심하다!”은아는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이건 하현이 자신에게 준 선물인데 무슨 근거로 겨울이 빼앗아 가는 건가?겨울은 자신의 무례함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다 언니를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나는 이 쓸모없는 언니네 남편이 아무거나 선물해놓고 언니를 속일까 봐 그러는 거야. 만에 하나라도 몇 년 전 구형 모델을 0.5% 할인 받아서 37만원짜리 뭐 이런 거를 사온 거라면 다시 새로운 걸로 선물해달라고 해야지!” 말을 하면서 겨울은 벌써 선물 포장지를 뜯었다.그런데 포장지 안에 있는 물건을 보았을 때 그는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멍해졌다.한정판!?방금 그 3억 7천짜리 한정판!?지금 이 순간 겨울은 자신의 눈이 침침해 진 줄 알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눈을 비벼댔다. 그러자 원호는 이때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은아 누나, 만약에 쓰레기 같은 거라면 내가 10배는 더 좋은 걸로……”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목소리가 뚝 그치고는 비할 데 없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하현이 이 한정판 가방을 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원호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그는 돌아서서 하현을 보고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 폐물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었나?어떻게 이렇게 돈이 많을 수가 있지?거의 4억에 가까운 이 금액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일반 가정집에서는 평생 모을 수 없는 돈이다!“하현씨. 이거 당신이 훔친 거지!?”겨울은 하현을 정면으로 가리키며 물었다.“네가 못 산다고 다른 사람도 못 살 거 같아?”하현은 어깨를 으쓱 거리며 가벼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이것을 하현이 샀다고는
“당신들 장님이야? 이렇게 비싼 물건을 누가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고!”겨울은 이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도도하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몇 명의 점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곧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가씨,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가는 데요?”“무슨 말이냐고? 당신들이 봐봐. 저 사람이 뭘 샀는지! 뭘 가져갔는지 보라고!”겨울은 뒤에 있는 하현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점장은 이상한 얼굴로 겨울을 쳐다보고는 또 하현을 쳐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이게 뭐가 잘못 됐다는 거예요? 이 선생님이 이 물건을 사신 게 확실 한데요.”지금 점장의 공손함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하현이 방금 긁은 카드의 잔고에 0이 몇 개나 있었는지 그녀는 아직 다 세보지를 못했다. “그럴 리가? 당신 눈 똑바로 크게 뜨고 확실하게 봐. 이 사람이 어떻게 이 가방을 샀겠어!?”겨울은 지금 조금 다급해졌다.그녀는 하현을 망신시키러 온 것이지 자신에게 망신을 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아가씨, 말씀을 좀 삼가 주시면 좋겠네요! 여기 계신 이 선생님이 이 가방을 구매하신 게 확실합니다. 여기 영수증이 있으니 잘 보세요!”점장은 지금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얼굴이었다. 소란을 피우는 걸 본적은 있어도 이렇게 소란 피우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물건을 사는 거랑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너 미쳤어?겨울은 이 말을 듣자 순간 자신의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단념하지 않고 영수증을 확인했다. 곧바로 그녀의 얼굴은 ‘싹’하고 새하얗게 질렸다.영수증에는 금액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3억 7천 만원이었다.그러니까 이 가방을 정말 하현이 산 거라고?그럴 리가!?그는 분명 폐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돈이 많을 수가 있지?겨울은 자기도 모르게 은아를 쳐다보았다. 설마 하현이 정말 그녀의 카드로 긁었단 말인가?“언니, 정말 대단하다.
“폐물, 너 또 뭐 하려고?”겨울이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설마, 또 언니한테 선물 하려고?”“그래, 그럼 어디 한번 사봐! 능력이 있으면 여기 있는 가방 다 사봐!”“당신이 할 수 있으면 내가 무릎 꿇고 절이라도 할게!”지금 겨울은 거만하게 굴었다. 그녀가 보기에 하현이 4억에 가까운 가방을 산 건 억지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 가게에 있는 가방을 전부 사라고 하다니? 어쩜 이럴 수가?다 하면 몇 억은 되지 않겠는가?“네가 직접 말했어.”하현이 미소를 짓고는 은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이따가 동영상 찍는 거 잊지마.”말을 마치고 하현은 그 점장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여기 있는 가방 다 포장해주세요.”떠들썩 하던 점장은 얼떨떨해졌다. 정말 전부 다 달라고?여기에 있는 물건들을 다 하면 거의 15억원에 육박했다!“선생님, 농담이시죠?”정장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물론 아니죠.”하현은 단호했다. 점장은 숨을 한 모금 들이 마셨다. 물론 그녀는 하현이 돈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물건을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수풀로 뒤덮여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겨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하현이 정말 이렇게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일부러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려고?하지만 문제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비록 은아가 회장이라고 하지만 거의 십 몇 억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빨리 포장해서 계산하지 않고 뭐해요!”이때 겨울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지금 겨울은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폐물이 자신의 머리를 짓밟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옆에 있던 원호는 식은 땀을 ‘뚝뚝’ 흘렸다. 그는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하현이 굉장히 침착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너무 담담해서 조금도
희정은 이 순간 재빨리 반응을 하며 말했다.“은아야, 내가 너한테 몇 번이나 말했잖아. 돈이 있다고 이렇게 함부로 쓰지 말라고. 게다가 이 돈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건지, 너 확실히 물어봐야 해!”“만약 또 빌린 거라면 너 반드시 하현에게 그 빚은 자기 거라는 거에 서명을 받아 놔야 돼. 우리랑은 무관하다고!”희정의 이 말을 듣고 장미진 일가의 안색이 다시 피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서 이렇게 뻐기는 건 앞으로 어떻게 돈을 갚느냐에 달려있다!은아는 이상한 표정으로 하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하현의 돈이 어디서 났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하현이 돈을 빌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큰 돈을 바람에 날리듯 아무렇게나 십 몇 억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관건은 돈을 빌리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하현은 방금 전화할 시간도 없었다! 잠시 의아한 점들은 내려놓고 은아가 천천히 말했다.“엄마, 이모. 오늘은 아무도 괴롭힐 생각이 없어요. 방금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우려고 했는지 다 보셨잖아요.”“설마 겨울이 저를 괴롭히는 거는 괜찮은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제가 겨울이를 괴롭혔다고요?”은아는 오늘 단단히 화가 났다. 겨울이 너무 심하게 굴었다!미진과 희정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일련의 일들은 은아가 하현을 싫어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하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겨울, 너 네가 한 말 잊은 거 아니지?”하현이 이렇게 말하자 순간 모든 사람이 하현을 노려보았다. 물론 당연히 잊지 않았다. 방금 이겨울이 직접 말했다. 만약 하현이 이 물건들을 다 사면 하현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겨울은 하현을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정말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는가?겨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런 데릴사위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거기다 동영상까지 찍겠다고? 만
원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반드시 겨울을 무릎 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아가 그만두자고 해서 그만 둔 것이다.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쇼핑은 이제 그만하고 갑시다!”이때 겨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하현과 은아는 쳐다보지도 않고 화가 잔뜩 난 채 돌아서서 떠나버렸다. 미진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은아야. 네 남편은 예의가 없어. 앞으로 우리랑 친척으로 잘 지내고 싶으면 단속 잘해!” 말을 마치고 그녀도 가버렸다. 원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밋밋한 표정의 하현을 보고 오히려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하현은 오늘의 행동으로 하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현의 신분이 확실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원호는 하현의 기분을 계속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곧 그도 자리를 떠났다. 세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은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너 어디서 돈이 나서 이렇게 많은 걸 다 산 거야?”“빌린 거라고는 절대 말하지 마.”하현은 이미 3일 후 자산 통합식 때 설은아에게 모든 걸 고백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때 그는 미리 폭로할 마음이 없었다.“지난번 골동품시장에서 유아가 억울한 일 당했던 거 기억해?”“기억하지.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은아는 궁금한 얼굴이었다. 재석과 희정도 쳐다보았다. 그들도 이 일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무슨 관계가 있는 지는 생각해내지 못했다.“그때 그들이 우리에게 돈을 물어준다고 했는데, 마침 이틀 전에 내 카드로 돈이 들어왔어.하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설명은 완벽하다고 자부했다. 은아는 분명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뭐!? 유아에게 보상을 해준 거라고!? 그게 15억이라고!”희정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기절 할 뻔했다.15억의 보상금을 가지고 전부 가방을 샀다고? 하나도 안 남기고?지금 희정 자신도 그러면 안
“그럼 어떻게 하지?”재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뭘 어떡해? 당연히 계획대로 해야지!” 장미진의 얼굴은 냉랭했다.“원호야, 너 약속 잡았어? 오늘 밤은 네 홈그라운드니 너 반드시 잘 잘해야 돼!” 겨울도 입을 열었다. 원호는 하현에 대해 조금 두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희정이 하현의 돈이 어떻게 나왔는지 말해주자 그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올랐다. 그는 자신 같은 거물이 한낱 이 데릴사위에게 놀랐다니 이건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원호는 차갑게 말했다. “어머니, 겨울아. 안심하세요!”“다음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 데릴사위가 이렇게 뻐기는 걸 좋아하니 그럼 내가 고급스러운 곳으로 모시고 가야지!”“사람들도 제다 가 약속해뒀고 일도 다 잘 안배해 놨었어요!”“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요!”겨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거로는 부족해! 나는 그 사람이 나한테 무릎 꿇고 절을 했으면 좋겠어. 동영상 찍어주는 것도 잊지 말고!”……오늘 두 가족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도 저녁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하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은아를 데리고 송월만 호텔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너무 늦게 내려와 룸은 다 예약이 차 있었고 로비 자리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하현과 은아도 오래된 부부라 이런 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서 편하게 먹고 있었다. 하현도 자신이 은아와 이렇게 가깝게 지낸 지가 너무 오래간만이란 생각이 들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특히 남원에 온 후 둘만 가지는 시간이 더 줄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은아 누나. 이런 우연이!?”이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에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다가왔는데 그 중 하나가 류원호였다. 지금 원호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득의양양한 빛이 비췄다. 그는
나박하는 고성양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랐다.“진서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중천 그룹만큼이나 유명한 장청 캐피털 로얄패밀리 고성양 말이야?”“오호! 뭘 좀 아는 모양이군!”진서기는 콧방귀를 뀌며 나박하를 쳐다보았다.“맞아. 바로 그 장청 캐피털이야.”“자산은 수조 원이 넘는 그룹이지. 그러니 현금 이천억 정도 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청 캐피탈이 중천 그룹과 마찬가지로 배후에 금정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왕 씨 가문을 두고 있다는 거야!”“이제 내가 왜 이 거물을 소개하는지 알겠지?”나박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별로 아는 건 없지만 중천 그룹과 장청 캐피털의 배후에 금정의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5대 문벌인 금정 간 씨 가문이나 10대 가문인 금정 김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왕 씨 가문도 5대 문벌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해.”“그런데 그 가문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승부조작을 많이 일삼아서 지금은 5대 문벌에 들지 못한다고 해.”“그렇다고 해도 금정에 있는 왕 씨 가문의 역량은 어마어마해.”“어쭈! 촌뜨기인 줄 알았더니 꽤나 식견이 깊은데?”임만아는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쳤다.“이왕 이렇게 고성양의 출신 배경도 알게 되었으니 잠시 후에 그가 오면 다들 영리하게 잘 행동해야 해. 그게 설은아를 돕는 길이야.”임민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장청 캐피털은 원래도 유명한 데다가 배후에 힘이 막강한 왕 씨 가문까지 있다니!역사와 전통이 깊은 금정에서 이 왕 씨 가문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장청 캐피털과 고성양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왕 씨 가문을 배후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것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그래서 지금 많은 남자들
설은아의 말을 들은 진서기는 황급히 임민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임만아, 너도 너무해. 어떻게 그런 말을 자꾸 함부로 할 수 있어?!”“여기 왔으니 됐어! 우리 다 친구잖아!”“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우리 고성양이 언제 오시려나?”“어차피 우리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은 설은아가 고성양한테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거야.”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자신이 이미 설 씨 집안을 도와 오백억의 빚을 받아주었는데 설은아가 또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다니?!나박하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설은아, 무슨 일이야?”“당신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잖아?! 이번에 금정에 온 것도 더욱 그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장을 넓혀 보려고 온 거고!”“그런데 돈이 잘 안 도는 거야?”“음. 문제가 좀 생겼어.”설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가라앉히며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하현에게 이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하현에게 알려지더라도 할 수 없었다.나박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설은아, 얼마나 부족한데 그래? 말해 봐!”“내 체면도 좀 세워 주면 안 되겠어?”임민아는 나박하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쓰레기 처리 회사가 이미 멈췄는데 어떻게 은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나박하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 회사가 동결되긴 했지만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서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몇 채나 있어. 만약 필요하다면 그걸 팔면 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박하를 쳐다보았다.파산 직전에 자기 앞길도 막막할 텐데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의리는 꽤 있는 놈인가?조상의 집마저 팔려고 하다니?!설은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박하, 그 집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한테 넘겨준 마지막 자산이잖아!”“그걸 판다고 해도 난 절대 그 돈 못 받아!”“이
나박하의 말에 설은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박하, 그런 농담 그만해.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오해? 누가 오해할 수 있겠어?”나박하는 껄껄 웃었다.“금정에서 우리 설 사장의 미모와 인품이 빼어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을 쫓아다니고 싶어 했던 일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뭐!”“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옆에 있던 진서기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은아는 이미 임자가 있어!”“이분이시지. 바로 소문난 그 데릴사위 하현. 설은아의 남편이야!”“곧 혼인신고한다고 들었어!”“그러니 당신들한텐 기회가 없다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진서기의 발언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갑자기 된서리를 당한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박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고 눈동자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가득했다.이 볼품없는 남자가 설은아가 결혼했던 전설의 그 데릴사위라니!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런데 최 여사님이 아주 싫어한다던데 재결합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진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말인즉슨 설은아 정도의 조건이라면 이 데릴사위를 당장 발로 걷어차야 한다는 거야.”“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아도 이 데릴사위보다는 낫지 않겠어?”“진서기!”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라듯 진서기를 노려보았다.모두가 좋은 친구 사이이고 진서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무례했다.그러나 하현은 진서기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하현입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 명의 여자들은 하현의 더러운 시선에 자신의 긴 다리가 눈에 들까 얼른 다리를 모았다.그러나 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명함을 꺼내 하현에게 공손히 건네
소항 회관 2층 888호 룸.하현 일행이 럭셔리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십여 명이 쳐다보았다.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여자들의 목에는 커다란 보석이 달려 있었고 남자들의 손목에는 금빛이 도는 커다란 시계가 걸쳐 있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한테서는 부귀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시가 몸에 짙게 베어 있는 것 같았다.설은아 일행이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사람들은 설은아를 보자마자 눈동자에 희미한 빛을 반짝였다.머리를 매끈하게 뒤로 빗어 넘긴 젊고 유능한 남자들의 눈동자엔 설은아를 향한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설은아 같은 미녀는 이곳 금정에서도 매우 드문 게 분명했다.“설은아, 서기, 민아! 당신들 다 같이 왔네?”그때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싱긋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용모는 잘생기지도 훤칠하지도 않았지만 온몸은 명품으로 뒤덮여 있었다.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도 여러 개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졸부임이 분명했다.“나박하, 옷차림이 어떻게 아직도 이래?! 이제 육지로 올라왔으면 물속에서 놀던 티는 벗어나야지!”“좀 신경 써주면 안 돼?”“우리 모임에 자꾸 이런 식으로 오면 우린 당신이 우리의 품위까지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거야!”임민아는 차가운 눈길로 비아냥거리며 얼굴 가득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이 틈을 타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했다.“이 사람은 나박하야. 금정 토박이지. 원래는 그렇게 거물급은 아니었는데 쓰레기 분류 사업에 뛰어든 뒤로 수조원의 자산가가 되었어.”“모두들 그를 두고 쓰레기 왕이라고 칭하지.”“그런데 듣기로는 최근 금정 관청에서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처리하려고 해서 나박하의 사업이 자칫 도산할 수도 있다고 했어.”하현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임민아가 왜 그렇게 무시하는 투로 그를 대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만약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
”그래, 맞아! 아들이 하는 말에 무슨 토를 달아?”최희정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을 모양이었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네, 그렇게 능력이 많아?”“그렇게 은아랑 재결합하고 싶어?”“그럼, 좋아!”“자네가 우리 은아를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면!”“나도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게!”“둘이 같이 살고 싶으면 살아도 돼. 그건 내가 허락해 줄 수 있어.”하현은 최희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나이에 비해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희정이 표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계속하다간 양측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거란 걸 잘 알았다.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설은아의 모습을 보던 하현이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대구 정 씨 가문 수장이요? 문제없죠!”“설은아를 그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그래! 알았네! 자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두고 보겠어!”최희정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하현이 식탁에 않는 걸 더는 막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어색하고 불편한 식사를 마친 뒤 이영산 부부가 떠나자 하현은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그때 발코니에 있는 설은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설은아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오늘 저녁 소항 회관에서 모임이라고?”“그래, 꼭 시간 내서 갈게.”“그런데 내가 말씀드린 그 일은 가닥이 좀 잡혔어?”하현은 이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후 내내 휴식을 취한 설은아는 저녁 6시가 되자 단장을 하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려고 했다.차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현이 불쑥 조수석 문을 열고 히죽히죽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여보, 어디 가게?”설은아는 원래 하현을 소항 회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지만 하현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걸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중요한 비즈니스 모임이 있어. 친구가
”그래요?”하현은 최희정에게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우리 처남, 어서 밥이나 먹어!”이영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아예 하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최희정은 하현이 자신의 양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향해 뺨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내놓은 수표와 계약서가 모두 사실이어서 그녀로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가짜 처남! 당신은 신분도 가짜라서 한 마디 못하고 있는 거지?”“남자가 되어서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몰라? 본인이 한 말도 수습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못한 거 아냐?”하현이 이영산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그는 자신의 아내를 무시했던 이영산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지금 간이 너무 싱거워?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끓어줄까? 그러면 당신의 입맛에 맞게 될 텐데. 어때?”“자네, 그만해!”이때 최희정이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치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아주 기고만장하군!”“오백억 돌려받고 계약 한 건 따낸 것뿐이잖아?”“뭐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게 있어?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네더러 능력 있다고 추켜세울 줄 알았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쨌든 장모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난 돈을 받아왔구요.”“그러면 이제 저는 설은아와 재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호적등본은 어딨죠?”“제가 가져가도 되는 거죠?”하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눈앞의 하현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절대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허락하지 않으면 하현의 비아냥에 더욱 설 곳이 없어져 도저히 끝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설은아, 장모님이 별로 이의가 없으신 것 같으니
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그릇을 꺼내 대문 앞에 세차게 던졌다.이어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사죄해!”“저기 가서 무릎을 꿇으란 말이야!”딸과의 재결합을 허락받기 위해 온 남자라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을 것이다.그런데 엄도훈한테서 오백억을 받아왔다고?허튼소리도 정도껏이지!이를 본 설유아는 급기야 울상이 되어 말했다.“형부, 그냥 지금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수표도 계약서도 진짜입니다.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이라구요!”하현은 설은아가 건네주는 물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제가 무슨 죄를 인정해야 합니까?”“허허! 하현! 쓴맛을 봐야 피눈물을 흘리며 단념할 모양이군!”하현이 완강한 자세를 보이자 이영산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저따위 가짜 계약서와 수표는 인터넷에 뒤져보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이걸 모른다고?”“만약에 저것이 가짜로 판명된다면!”“당장 이 집에서 나가! 절대 돌아올 생각하지 마!”설은아를 포함해 설 씨 집안의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이영산은 하현이 철저히 없어져 주길 간절히 바랐다.하현이 끼어들어서 그의 수많은 계획들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으로 관련 사이트를 열어 계약서 번호를 입력해 조회하기 시작했다.최희정은 하현이 하루아침에 오백억이라는 거금을 받아왔다는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고 계속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조회는 왜 해 보는 거야?”“거두절미하고 당장 무릎 꿇어! 무릎 꿇기 싫으면 당장 꺼지라고!”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경호원 몇 명을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어?!”순간 이영산은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이럴 리가 없는데? 이, 이게 어떻게 진짜일 수가 있어?”“믿을 수 없어!”당황한 이영산의 목소리에 최희정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그러고 나서 이영산의 핸드폰을 잡아채듯 가져와 계약서와 대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