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______”류원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이 폐물이 감히 자신을 막아선 건가?이때 장미진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너희들 친척이잖아. 처음 만났으니 내가 소개를 좀 해줄게.”“원호는 지금 강남 천일그룹의 부장이야. 천일그룹은 너희들도 다 들어봤지? 전설의 그 하 세자가 세운 그룹이잖아!”“원호는 헤드 헌팅 회사가 엄청난 돈을 들여서 해외에서 스카우트 한 거라 앞으로 천일그룹에서 할 일이 어마어마해!”“이번에 귀국해서 우리는 남원에서 성장하려고 준비하고 있거든. 그러니 다들 앞으로 많이 돌아 다녀!” 원호는 장미진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듣고 겸허한 표정으로 일부러 은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은아 누나, 누나 회사가 천일그룹 소속 회사라고 들었어요. 앞으로 우리 다 한 가족이니까 내가 누나 회사는 반드시 잘 돌봐줄게요.”은아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너무 고마워.”“당연하죠. 내가 천일그룹 고위층 사람들도 잘 알고 있고, 전에 이슬기 비서가 직접 나를 만나러 오기도 하고 그랬어요!”원호는 이 말을 꺼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현은 이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슬기는 지금 매일 밥 먹고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데 보잘것없는 부장을 그녀가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왜 웃어요!?”원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눈동자에는 온통 한기가 감돌았다. 천일그룹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고, 특별히 한 사람 아래 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이슬기 비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원호에게는 가장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쓰레기가 감히 이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다니, 이건 그에게 굉장히 무례한 짓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계속해. 내가 들어줄게.”하현은 손사래를 쳤다. “당신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내가 천일그룹에서 일하는 게 창피한 일인가?”원호는 지금 하현에게 화낼 기회를 얻지 못할 까봐 걱정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원호는 숙연한 얼굴이었다.“내가 하 세자를 봤을 때 마침 한 줄기 햇빛이 그의 몸에 비쳐서 마치 신선처럼 느껴졌어!”“1인자, 딱 그 이름이 걸 맞는 모습이었지.”“게다가, 이건 별거 아닌데, 그의 차는 맞춤 제작 롤스로이스였고, 게다가 그의 차에는 다이아몬드가 가득 박혀 있었어. 마치 하 세자의 풍격 같았어!”“가장 중요한 건, 하 세자 곁에는 거의 천명에 가까운 경호원들이 있어서 일반인들은 그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는 거야!”“푸______”하현은 다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원호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흥분하며 화를 냈다.“너 이 폐물이 또 웃네? 너 나 비웃는 거야? 아니면 하 세자를 비웃는 거야!”이 말이 나오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강남, 특히 남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 세자의 역량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감히 하현 이 폐물이 하 세자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죽으려고 환장했나?하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네가 나가서 허풍을 떠는 거야 나랑 상관없지만 네가 내 아내를 오해하게 만드는 건 안 좋네.”“내가 바로 잡아 줄게.”“네가 나를 바로 잡아 주겠다고? 무슨 자격으로? 허허허……”원호는 냉소를 연발했다.“첫째, 하 세자는 밖에 다닐 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아.”“둘째, 하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렉서스를 모는 것이 가문의 규칙이야. 하 세자도 한때 하씨 가문 사람이었으니 자연히 그런 습관이 있어.”하현이 이렇게 말하자 다들 서로 마주보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유독 설은아만 진지하게 하현을 쳐다보았다. 하현은 슬기씨와 사이가 좋은 것 같던데 그가 말한 하 세자가 더 진실에 가까운 거 아닐까?원호가 말한 하 세자는 정말 너무 과장된 것 같다. 원호는 이 말을 듣고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당신 같은 미물이 그걸 알 수 있겠어?”“은아야, 네
하현이 말을 마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의 시선이 ‘샤샤샥’ 그에게로 떨어졌다.겨울이 제일 먼저 냉소하며 말했다.“언니, 언니네 남편 재미있다. 마치 자기가 하 세자인 것처럼 말하네!”미진도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듣기로 한때는 자칭 당도대의 대장이라고 했다가 지금 또 자칭 하 세자라고 한다던데?”“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매일 망상에 사로잡혀 있나?”은아도 나무라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원망했다.“내가 진작에 못 오게 했어야 했는데, 겨울이 앞에서 당신이 함부로 지껄여서 망신 당했잖아.”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어. 내가 누구에게 청혼을 해야 하는지!도대체 이런 소식은 어디서 들은 거야?원호는 비꼬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다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은아 누나, 어머니, 겨울아. 내 말은 그냥 소문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있어요. 이것 때문에 천일그룹 내부에서 모두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그럼, 너 하 세자가 어떤 사람에게 청혼하는지 알아?”모두 조금 흥분했다. 이건 정말 가십거리였다. 특히 은아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설가와 하 세자는 사실 관계가 많은 편인데 한번도 하 세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연 하 세자가 어떤 사람에게 청혼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하현 조차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이 도대체 누구에게 청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었다. 어째서 자신도 모르고 있는 걸까?원호는 일부러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이 사람은 말하면 다들 아실 거예요. 하 세자가 청혼하려는 대상은 설씨 집안 딸이래요!”“전에 하 세자가 예물까지 보냈대요!”“근데 하씨 가문이 아직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청혼을 하지 않았던 거예요!”“이번에는 분명 청혼을 할 거예요!”“뭐? 우리 설씨 집안 여자라고?”은아도 놀라 멍해졌다. 근데 돌이켜보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 “설마 유아인가?” 이때 은아는 기괴한
남원. 설씨네. 설씨 어르신은 지금 철 왕좌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늘도 무심하지! 원래 재석과 희정 두 녀석이 빌붙은 최가가 우리 설가를 잘 봐줄 줄 알았는데!”“생각지도 못하게 우리가 역습을 당하다니!”이 말이 나오자 밑에 있던 설씨 가족들은 하나같이 솥뚜껑이 열리는 거 같았다. “할아버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설민혁은 아직 소식이 없어 긴장한 얼굴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직접 핸드폰의 내용을 로비에 있는 TV로 보냈고 모두들 무의식적으로 훑어보고는 모두 놀라 멍해졌다. 천일그룹의 하 세자가 3일 뒤에 자산 통합식에서 그의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여자는 설씨 집안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민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말한 설가가 우리 집안인 거죠?”“그렇지!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어!”“설마 너 잊었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별장도 남원에 막 왔을 때 하씨 집안에서 보내온 예물이잖아!”“그 당시에 예물을 보냈던 사람이 바로 하 세자였다는 게 지금 확실히 확인이 됐네.”“나는 이 일이 흐지부지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일이 이렇게 잘 풀리다니!”민혁은 이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하 세자 쪽에서 우리 설씨 집안 딸 누구라고 하던가요?”이때 민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여자가 설유아 이거나 설은아가 되는 것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신비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방금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물어 봤으니 곧 소식이 올 거야!”말이 끝나자 설씨 어르신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그는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상대방이 하는 말이 하 세자의 여자는 올해 스물 세 살밖에 되지 않았대. 그러니 우리보고 실수하지 말래!”“뭐!? 스물 셋!?”설씨 집안 사람들은 순간 깨달았다. 설씨 집안의 여자 중에 스물 세 살인 여자는 설은아와 설지연뿐 이었다. 설은아에게는 이미
송월만. 하현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오니 은아는 이미 체크인 수속을 마쳤다. 은아를 깊이 쳐다보았지만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일 후 자신은 그녀를 놀라게 해줄 것이다. ……호텔 방안. 장미진은 이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겨울아, 원호야. 예전에 너네 희정 이모가 나한테 이런 임무를 맡겼을 때 나는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어!”“근데 지금 와서 보니 희정의 말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아. 이 데릴사위는 정말 쓸모없는 놈이야!”“은아를 행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설씨 집안에서 내쫓는 거야!”“원호야, 계획대로라면 네가 그 폐물을 잘 자극해서 그를 열 받게 만들어서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아!”원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이번 임무는 할머니의 뜻이니까요.”“우리가 계속 할머니랑 관계가 좀 서먹했었잖아요. 이번에 확실히 이 기회를 잘 잡아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근데, 이 하현은 정말 쓰레기예요! 능력도 없으면서 체면을 차리려고 하다니. 이런 남자가 뭐가 좋은지 정말 모르겠어요. 은아 누나는 왜 이혼을 안 하려고 할까요?” 이 말을 꺼내는 원호의 말투는 조금 질투하는 듯 했다. 은아는 연예인보다 예쁘고 몸매도 글로벌 모델들보다 좋은데다 회사 회장이다. 이런 여신급 여인이 어째서 하현 같은 폐물한테 눈이 멀었을까?이해가 안 된다!겨울이 웃으며 말했다.“만약 이 폐물이 은아 언니랑 계속 잘 지내려고 하면 이번엔 우리가 뭘 더 해야 하지?”“하지만 우리도 이 폐물한테 감사해야 돼. 이 폐물이 없었다면 우리도 할머니 앞에서 활약할 기회가 없었을 거야!”미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원호야, 이번 일 마치고 나서 네가 할머니에게 주목 받고 천일그룹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내가 남은 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모두 다 네 덕이야!”원호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저희 류씨
“누구지? 우윤식이 직접 차 문을 열어 주다니!”“나이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어. 많아 봐야 스물 몇 살 정도로 보였는데 대단하다.”“보니까 남원의 귀인인 게 분명해! 정말 대단하다!”“……”워낙 사람이 붐비는 호텔이라 군중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차 안아서 우윤식은 고개를 숙이고 감격과 흠모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다니, 이건 그야말로 선산에 푸른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운전기사조차 충격을 받았다. 송월만에 온 많은 사장들과 관청 사람들도 우윤식을 한번 만나보기 어려웠고, 이런 사람들은 사양하는 말만 했을 뿐 함부로 말을 내뱉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젊은이 앞에서 우윤식은 오히려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굴었다. 이 거물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운전 기사는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회……”우윤식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하현이 기침을 했다.“하 도련님.”윤식은 공손한 얼굴로 재빨리 반응을 했다.“1년 가까이 못 뵈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요즘 잘 지내고 있구나. 롤스로이스도 타고 다니고.”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윤식은 롤스로이스 내부의 개인 유리를 열고나서야 열광적인 얼굴로 말했다.“모두 다 도련님 덕분이지요. 만약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죽기를 기다리며 그럭저럭 먹고 사는 재벌 2세로 끝났을 거예요. 도련님이 제 운명을 바꿔주셨어요.”“나야 그저 플랫폼만 제공했을 뿐이고, 결국 이렇게 잘 지내는 건 네 능력이 따라 달린 거지. 솔직히 너무 기쁘다.”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당시 당도대는 대하 재벌 2세들에게 커리어를 쌓도록 해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뒤 이 재벌 2세들에게 일련의 철혈 훈련을 시켰다. 지금 보니 자신이 당시 잘 한 것 같다. 아직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군왕들이었다. 은퇴한 사람들도 모두 성
호텔 로비.장미진 가족은 이미 로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 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야 말로 하이라이트였다. 원호는 지금 심심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며 말했다.“보니까 우리가 오늘 큰 구경거리를 놓쳤네!”“송월만의 우씨 집안 우윤식이 오늘 우리 호텔 앞에 마중을 나왔었대!”우윤식은 송월만에서 지위가 매우 높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 들었을 것이다. 이 송월만에 있는 거물을 직접 데리러 왔다는 얘기를 듣고 미진과 겨울은 너무 놀랐다. 그들은 모두 모여서 핸드폰에 뜬 새로운 뉴스 사진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이것 봐, 이분이 전설의 그 사람이야. 우윤식이 직접 문을 열어주다니. 정말 대단하다!” 원호는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윤식은 송월만의 맹주인데 이런 인물이 직접 접대를 해주고 직접 차 문까지 열어 주다니!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왜 이렇게 신났어?”이때 마침 재석 일가가 돌아왔다. 미진은 그들 일가를 보고 다시 핸드폰에 있는 뉴스를 보더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때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형부, 언니. 마침 잘 왔어요!”“자자, 이것 봐봐요. 송월만의 맹주 우윤식, 들어본 적 있죠?”“우리 원호도 그를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대요. 절친인 셈이죠!”이건 거짓말이었다. 원호는 자신도 얼굴이 좀 빨개졌다. 자기 장모도 때로 허풍을 심하게 떨었다. 자신의 이런 지위에서 어떻게 우윤식과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재석 일가는 분명 우윤식을 모르기 때문에 들통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원호는 이때 부인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아도 한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은아는 우윤식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롤스로이스에 올라탄 그 젊은이의 모습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해했다. 뉴스에 이 젊은 청년이 차에 올라탄 자세한 시간이 적혀 있었는데 마
미진이 묻는 말에 재석과 희정도 은아를 쳐다보고 조금 화를 냈다.“그 쓰레기 어디 갔어?”은아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아침에 일찍 모시러 나갔는데 차가 막히나 봐요. 지금 반쯤 왔을 텐데 곧 돌아올 거예요.”“그럼 다행이다. 난 도망갔을까 봐 걱정했네!”장미진은 안심을 하며 동시에 희정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번엔 두 사람이 이 일에 있어서 목적이 일치했다. 바로 원호의 도움으로 하현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를 아주 창피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은아를 떠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오후에는 설가와 장미진 일가가 모두 모여 애프터눈티를 마셨다. 하현이 왔을 때 미진이 그를 열정적으로 불렀는데 어제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하현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설마 재석과 희정이 왔다고 미진이 완전히 달라진 건가?이때 겨울이 기침을 하며 찻잔을 들고 말했다.“은아 언니한테 듣기로 아직 직업도 없고 빈둥빈둥 놀고 있다던데 집에 가서 밥하고 빨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맞아.”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그러면 안 되죠. 남자라면 직업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겨울이 말했다. “내 아내가 대단해서 먹고 입을 걱정 할 것도 없고, 남원 최고급 동네에 살아서 괜찮아.”하현이 말했다. 겨울은 하현이 던진 반쪽 짜리 농담을 듣고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희정 일가가 이 놈을 어떻게든 내치려고 하더라니. 남자로서 이렇게 뻔뻔할 줄이야. 이렇게 한숨 나올 소리를 하다니, 정말 장난 아니네! 은아는 이렇게 훌륭한데 어떻게 이렇게 쓸모없는 남자를 선택했지?정말 이해가 안 돼!“그렇게 말하면 안되죠. 허풍 떠는 걸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생각도 안 해본 거예요? 은아 언니는 회장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천일그룹을 대신해서 일하고 있는 것뿐이라고요!”“자기 사업이 아니잖아요. 아마 언젠가 잘릴 수도 있어요!”“만에 하나 그런 날이 오면 누가 당신을 키워주겠어요?”겨울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