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혁이 빈정대는 모습을 보이자 하현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고 싶으면 당연히 갈 수 있고, 내가 가기 싫으면 누구도 나를 보낼 수 없어.”민혁은 비웃었다. “이렇게 허풍을 떨면서 말하다니, 그럼 너는 갈 수 있겠네! 네가 만약 잔치에 참석한다면 내가 너한테 무릎 꿇을게!”하현이 웃었다.“너 또 무릎 꿇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런 거에 관심 없어.”“너너너……”설민혁은 서울 골동품 품평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그는 심호흡을 한 후에야 입을 열며 말했다. “하현,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 네가 조금 솜씨가 있다고 안씨 집안이 골동품 품평회에 너를 초대한 거잖아!” “이번 생신 잔치는 이전과는 달라. 이건 일류 가문 최가의 생신 잔치야!”“최가의 주인, 강남의 3인자!”“이 집안은 네가 솜씨가 좀 있다고 해서 너를 초대하지는 않을 거야!”“나는 원래 이번에 너희 가족이 은아를 내세울 수 있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보니 은아를 안 보내는 게 좋겠다!”“은아가 그때 너처럼 우리 설씨 집안의 체면을 구기지 않도록!” 민혁은 말을 마치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돌아서서 떠났다. 설씨 어르신도 깊이 생각 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런 자리는 정말 은아를 보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설가에서 이미 권력이 너무 무거워서 그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설은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설민혁, 너 너무 과하다!”“할아버지, 최가는 우리 엄마의 친정이에요. 어찌됐든 저희 엄마는 갈 수 있도록 인원에 넣어 주세요!”설씨 어르신은 갑자기 싸늘하게 말했다.“은아야, 너 네가 설가의 무슨 가장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일을 네가 떠들어대다니!”“내가 경고하는데 누가 가고 못 가는 지는 내가 결정할거야!”말을 마치고 설씨 어르신은 노기등등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그는 이 기회를 틈타 화를 냈을 뿐이
이 말을 들은 희정은 갑자기 화가 나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말하지 않았어!”“우리 오빠가 최가의 주인이고 강남 3인자라고!”“네 말은 훌륭하신 강남의 3인자가 직접 너한테 초대장을 보낼 거라는 거야?”“네.”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원래는 제가 거절했었는데, 지금 은아가 가고 싶다고 하니, 그 사람한테 오라고 시키려고요.”희정과 재석 모두 화가 났다. 허풍 떠는 걸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허풍을 떠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게 꼭 진짜 같았다. 이때 희정은 화낼 의욕도 잃어버리고 은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은아야, 내가 엄마로서 한 번 더 좋은 마음으로 충고 하나 할게. 이렇게 큰 소리만 치고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은 일찍이 나가라고 했어야지!”재석도 한숨을 쉬며 떠났다. 이런 사람을 데릴사위로 삼았으니 그의 남은 인생을 처절하게 보낼 운명이었다. 설은아도 좀 화가 났다. 유독 설유아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형부의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형부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집안의 그 강남 3인자라는 외삼촌은 형부 앞에서 아마 깍듯하게 대할 것이다. 형부는 전설의 그 사람이다! 스마트 밸리로 돌아온 하현은 틈틈이 슬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맞은 편에서 슬기는 약간 긴장을 하고 있었다.“회장님, 저희 할아버지가 엊그제 회장님을 찾아 가셨다면서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이 어르신이 우리 둘의 관계를 알아보러 오셨는데 내가 그저 평범한 위 아래 관계일 뿐이라고 벌써 말했어……”“참, 최준에게 내가 생신 잔치에 갈 거라고 말해줘.”“네!”밤새 아무 말이 없었다. 이튿날, 천일 그룹.차 번호판이 00003인 아우디 A6가 주차장 은밀한 구석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천일 그룹 최상층 회장 사무실에 평소 위엄 있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슬기의 손에 초대장을 깍듯하게 건네 주었다.“이 비서님, 회장님이 시간이 없
남원 호텔. 이곳은 명성이 높진 않지만 사실 평소에는 외부 영업을 하지 않고 외빈과 투자자를 접대하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은 최가 할머니의 생신 잔치를 하는 곳이다. 이로써 남원에서 최가의 위상을 볼 수 있다. 오늘 이곳의 도로는 경찰들에 의해 봉쇄되었고 많은 사복 수사관들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초대장을 든 사람 외에도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었다. 듣기로 내부 서비스를 하는 종업원들 조차 특별히 엄선했다고 하니 이 일은 남원에서 최가의 영향력을 말해주었다. 고급차 한 대가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호텔 앞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원 관청의 거물들이었다. 상업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필경 최가는 벼슬아치 집안이다. 이 사람들 중에서 설씨 집안은 별종인 셈이다. 이때 설씨 어르신 외에 설동수, 설민혁, 설지연 등은 모두 왔으나 설은아 일가는 모두 오지 않았다. 설씨 가족은 초대장을 들고 겹겹이 쌓인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남원 호텔에 도착했다. 설민혁이 별안간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이번에 정말 지혜로우시네요. 이번 최가 할머니 생신 잔치에 얼마나 많은 남원의 거물이 나타났는지 몰라요!”“우리가 아무나 몇 명만 알게 되도 나중에 우리 설씨 집안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설씨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가장 중요한 건 최가 주인 최준이야. 강남 3인자라 만약 그 사람이 우리를 좋게 봐주면 말 한 마디로 우리 설씨 집안은 일어설 수 있을 거야!”“이게 바로 말 한 마디로 가문이 흥한다는 전설이야!”이 말을 듣고 설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만약 오늘 최가가 자신들을 좋게 봐 주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큰 행운이겠는가!같은 시각.스마트 밸리. 희정과 재석 두 사람 모두 왔다. 희정은 지금 화가 많이 나서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너 초대장이 올 거라고 하지 않았어?”“너 오늘 밤 최가 할머니 생신잔치가 있다는 건 알고 있
“아버지, 저희도 생신 잔치에 참석하러 왔어요. 초대장도 있고요.”이때 설재석은 살짝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비록 하현이 한 말의 진위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문제는 이 시점에서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 초대장이 있다고요? 그럼 꺼내서 보여줘 봐요!”설재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설재석은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한번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러는데……”“하현이 뭐라 그랬는데요!?”설민혁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초대장은 현장에 이미 있으니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한 건 아니겠죠?”“맞아.”설재석은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푸하하하______”곧이어 설씨 사람들은 모두 허리를 구부리며 웃었다. 하현의 이 치졸한 거짓말을 설재석 일가가 믿었다는 거야?어쩜 이렇게 웃길까!설씨 어르신은 설재석을 보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멍청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애초에 너희 가족을 남원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창피하다!”분명 설씨 어르신은 당시 설가가 어떻게 남원에 올 수 있었는지를 진작에 잊은 거 같다. 주위의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느끼고 무자비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설재석은 하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그들 집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설은아는 얼굴이 더 창백해졌고 설씨 어르신은 최근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하현이 그들에게 도움을 준 셈이었다.“초대장 없이 와 놓고 할아버지가 자비를 베풀어서 너희들을 같이 데리고 갈 줄 알았어?”설민혁은 문득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하현. 만약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빌면 내가 할아버지께 말씀 드려서 너희 집 한 사람은 들여보내 줄게. 어때?”설지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은아도 같이 무릎 꿇게 하자. 우리가 한 명 더 양보하면 되잖아. 좋은 일도 겹치면 좋으니까!”“너희들 너무 심하다!”설은아는 화가 나서 몸이 떨렸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우물 속에
“하 선생님, 설 아가씨, 오셨군요. 여기 초대장입니다. 받으세요.”이슬기는 정중하게 하현에게 초대장을 건네고는 돌아서서 떠났다.재석과 희정은 너무 놀랐다.정말 어떤 사람이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설씨 가족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하현이 큰 소리 없이 정말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게다가 천일그룹의 이슬기보고 가져오게 하다니!얼마나 체면이 서는 일인가!이어 재석과 희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설은아 가족은 정중하게 생신 잔치에 초대되었다. 잔치 자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벌써부터 사람들로 넓은 홀을 가득 메웠다. 이때 설은아는 홀을 둘러 볼 생각은 조금도 없이 오히려 하현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하현, 너 내 말 좀 들어봐!”“어? 우리 이미 들어 왔잖아.”하현은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다 들어왔는데 또 왜 그러는 거야?설은아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이전에 《부춘산거도》 일이 있었을 때 우리가 이슬기 비서에게 신세를 졌었잖아!”“근데 네가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지!”“슬기씨한테 네 초대장을 찾아오라고 하다니! 이렇게 하는 건 진짜 안 좋은 거야!”“하현, 앞으로 만약 이렇게 할 거라면 난 안 받을래. 나는 네가 스스로 노력했으면 좋겠어!”“우리가 뭘 얻으려면 스스로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면 안돼. 알겠어?”설은아가 진지하게 자신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하현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슬기에게 초대장을 가져오라고 한 게 어떻게 노력하지 않은 게 된 거지?하지만 이 일은 설명한다고 해도 통하지도 않고 게다가 자신의 신분을 말해도 설은아는 믿지 않을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응, 기왕 들어왔으니 좀 둘러보자.”“어쨌든 네 덕분에 오늘 외할머니를 만나게 됐어. 고마워.”말을 마치고 설은아는 방긋 웃었다. 하현은 눈앞이 번쩍 뜨였다. 자기 아내는 웃지 않아도 예
“엄마! 큰 오빠!”희정은 기쁨에 겨워 흐느끼고 있었다. 최가를 떠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서야 드디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재석도 감격해 하며 지금 인사를 나누려고 했다. 특히 최준을 보았을 때 그는 눈앞이 환해졌다. 만약 이 분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앞으로 설씨 집안에서 그의 자리를 흔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재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최준은 멋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가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은아네 집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눈을 감았다. 재석과 희정은 이번에는 좀 멍해졌다. 뜨거운 얼굴을 차가운 엉덩이에 붙인다더니? 이게 바로 이런 거구나! 난처해도 너무 난처하다! 희정은 최준을 한번 쳐다보았는데 그의 태도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분명 이 큰 오빠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 엄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더구나 만약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녀는 태도를 확 바꿨을 것이다.하지만 희정이 집을 떠난 지 이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돌아온 셈이었다. 이때 혜정이 앞으로 나서서 원만히 수습을 하며 말했다.“엄마, 유아네 언니 은아 얘기 계속 하지 않으셨어요? 엄마가 젊었을 때처럼 예쁜지 한번 봐봐요!”말을 하면서 혜정은 은아를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외할머니!”“외삼촌!”은아는 이 두 사람을 처음 봤다. 지금 너무 어색해서 몸이 굳은 채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최준은 얼굴에 한줄기 웃음을 드러내며 말했다.“은아가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를 세우고 있다고 들었어. 큰 프로젝튼데 일을 잘 하네!”최가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네, 예쁘다. 일도 잘하고.”분명 이 외손녀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때 재석이 하현을 한번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 왜 멍하니 서있어! 빨리 와서 너도 인사해!”하현은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외할머니, 안녕하세요
이 말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빛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특히 희정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라고 할 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시 재석에게 시집을 갔을 때 재석은 진취적인 편이었고 최가 할머니는 그런 그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 지금 은아의 남편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말을 하다니 그녀의 환심을 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가 할머니는 이때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발길을 돌려 떠나버렸다. 설은아 일가를 쳐다보기도 싫었던 것이다. 희정도 싸늘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들이 보기에 은아는 능력이 있으니 받아들일 수 있는 친척에 속했다. 하지만 은아가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 그럼 그들 일가는 설은아를 받아들일지 말지 신중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형부, 괜찮아요. 할머니가 성질이 좀 있으셔서 그래요. 금방 괜찮아 질 거예요.”설유아가 하현을 위로했다.“유아야. 지금이 어느 땐데 폐물한테 이런 말을 해!?”희정은 거의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하현이 이렇게 말한 건 할머니에게 자기가 폐물이라고 알린 거나 마찬가지야!”“할머니가 평생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 쓸모없는 남자야!”“이렇게 당당하게 폐를 끼치다니! 정말 구제불능이다!”희정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이번에 최가로 돌아갈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하현의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재석도 이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현, 너 오늘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아?”“오늘은 우리가 최가에 빌붙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어렵게 이런 기회를 얻었는데! 네가 지금 이걸 다 망쳐놨어!”재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만약 자기 사위가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었다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최가 할머니의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재석은 정말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때 왜 이 결혼을 승낙했었는지 정말 후회스럽다.은아 역시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재석은 그제서야 부르르 떨며 일어나 희정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여보, 울지마. 아직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잖아. 만에 하나 좋은 물건이면!?”“좋은 물건! 어떻게 좋은 물건 일 수가 있어!?”희정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지금 안에 골동품 옥만 하나 들어 있었으면 좋겠어. 만약 보통 물건이면……”이렇게 말을 시작하자, 희정은 또 쓰러질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렵사리 최가 할머니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만약 이 하현 때문에 다시 물거품이 된다면 그녀는 정말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날 거 같았다. 곧 생신 잔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생신 잔치에 참석해야 할 거물급 게스트들은 대부분 아직 오지 않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강남과 남원의 관청 우두머리들이었다. 최가는 설령 강남의 3인자로 관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이 거물들은 대부분 실세들이었다. 그러니 꼭 그의 아래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상대방이 체면을 세워주면 그는 분명 직접 환영하며 맞아 들일 것이다. 심지어 최가 할머니가 직접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왜냐하면 강남 1인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가의 후손들이 이때 그 뒤를 따랐고 설은아 식구들도 혜정에게 끌려 갔다. 이때 적지 않은 손님들이 희정과 식구들을 보며 수군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안 사람들은 누구예요? 어떻게 최가 사람들과 함께 서있는 거예요?”“맨 마지막에 서있긴 하지만 분명 최가의 친척이겠죠?”“이 집안은 최가의 사위라고 들었어요. 예전에 최가가 잘 나가기 전에 최준의 큰 여동생이 남편을 얻었는데 지금 최가에 의지하고 있으니 곧 출세하겠네요!” “허,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넉넉할 때는 깊은 산속에 살아도 먼 친척이 찾아오지만 가난할 때는 번화가에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잖아요.”“이 집안이 재주가 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뻔뻔하게 최가에게 빌붙어서 무슨 좋은 결말이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