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선생님, 설 아가씨, 오셨군요. 여기 초대장입니다. 받으세요.”이슬기는 정중하게 하현에게 초대장을 건네고는 돌아서서 떠났다.재석과 희정은 너무 놀랐다.정말 어떤 사람이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설씨 가족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하현이 큰 소리 없이 정말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게다가 천일그룹의 이슬기보고 가져오게 하다니!얼마나 체면이 서는 일인가!이어 재석과 희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설은아 가족은 정중하게 생신 잔치에 초대되었다. 잔치 자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벌써부터 사람들로 넓은 홀을 가득 메웠다. 이때 설은아는 홀을 둘러 볼 생각은 조금도 없이 오히려 하현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하현, 너 내 말 좀 들어봐!”“어? 우리 이미 들어 왔잖아.”하현은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다 들어왔는데 또 왜 그러는 거야?설은아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이전에 《부춘산거도》 일이 있었을 때 우리가 이슬기 비서에게 신세를 졌었잖아!”“근데 네가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지!”“슬기씨한테 네 초대장을 찾아오라고 하다니! 이렇게 하는 건 진짜 안 좋은 거야!”“하현, 앞으로 만약 이렇게 할 거라면 난 안 받을래. 나는 네가 스스로 노력했으면 좋겠어!”“우리가 뭘 얻으려면 스스로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면 안돼. 알겠어?”설은아가 진지하게 자신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하현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슬기에게 초대장을 가져오라고 한 게 어떻게 노력하지 않은 게 된 거지?하지만 이 일은 설명한다고 해도 통하지도 않고 게다가 자신의 신분을 말해도 설은아는 믿지 않을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응, 기왕 들어왔으니 좀 둘러보자.”“어쨌든 네 덕분에 오늘 외할머니를 만나게 됐어. 고마워.”말을 마치고 설은아는 방긋 웃었다. 하현은 눈앞이 번쩍 뜨였다. 자기 아내는 웃지 않아도 예
“엄마! 큰 오빠!”희정은 기쁨에 겨워 흐느끼고 있었다. 최가를 떠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서야 드디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재석도 감격해 하며 지금 인사를 나누려고 했다. 특히 최준을 보았을 때 그는 눈앞이 환해졌다. 만약 이 분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앞으로 설씨 집안에서 그의 자리를 흔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재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최준은 멋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가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은아네 집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눈을 감았다. 재석과 희정은 이번에는 좀 멍해졌다. 뜨거운 얼굴을 차가운 엉덩이에 붙인다더니? 이게 바로 이런 거구나! 난처해도 너무 난처하다! 희정은 최준을 한번 쳐다보았는데 그의 태도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분명 이 큰 오빠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 엄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더구나 만약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녀는 태도를 확 바꿨을 것이다.하지만 희정이 집을 떠난 지 이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돌아온 셈이었다. 이때 혜정이 앞으로 나서서 원만히 수습을 하며 말했다.“엄마, 유아네 언니 은아 얘기 계속 하지 않으셨어요? 엄마가 젊었을 때처럼 예쁜지 한번 봐봐요!”말을 하면서 혜정은 은아를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외할머니!”“외삼촌!”은아는 이 두 사람을 처음 봤다. 지금 너무 어색해서 몸이 굳은 채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최준은 얼굴에 한줄기 웃음을 드러내며 말했다.“은아가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를 세우고 있다고 들었어. 큰 프로젝튼데 일을 잘 하네!”최가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네, 예쁘다. 일도 잘하고.”분명 이 외손녀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때 재석이 하현을 한번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 왜 멍하니 서있어! 빨리 와서 너도 인사해!”하현은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외할머니, 안녕하세요
이 말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빛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특히 희정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라고 할 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시 재석에게 시집을 갔을 때 재석은 진취적인 편이었고 최가 할머니는 그런 그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 지금 은아의 남편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말을 하다니 그녀의 환심을 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가 할머니는 이때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발길을 돌려 떠나버렸다. 설은아 일가를 쳐다보기도 싫었던 것이다. 희정도 싸늘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들이 보기에 은아는 능력이 있으니 받아들일 수 있는 친척에 속했다. 하지만 은아가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 그럼 그들 일가는 설은아를 받아들일지 말지 신중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형부, 괜찮아요. 할머니가 성질이 좀 있으셔서 그래요. 금방 괜찮아 질 거예요.”설유아가 하현을 위로했다.“유아야. 지금이 어느 땐데 폐물한테 이런 말을 해!?”희정은 거의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하현이 이렇게 말한 건 할머니에게 자기가 폐물이라고 알린 거나 마찬가지야!”“할머니가 평생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 쓸모없는 남자야!”“이렇게 당당하게 폐를 끼치다니! 정말 구제불능이다!”희정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이번에 최가로 돌아갈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하현의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재석도 이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현, 너 오늘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아?”“오늘은 우리가 최가에 빌붙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어렵게 이런 기회를 얻었는데! 네가 지금 이걸 다 망쳐놨어!”재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만약 자기 사위가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었다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최가 할머니의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재석은 정말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때 왜 이 결혼을 승낙했었는지 정말 후회스럽다.은아 역시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재석은 그제서야 부르르 떨며 일어나 희정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여보, 울지마. 아직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잖아. 만에 하나 좋은 물건이면!?”“좋은 물건! 어떻게 좋은 물건 일 수가 있어!?”희정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지금 안에 골동품 옥만 하나 들어 있었으면 좋겠어. 만약 보통 물건이면……”이렇게 말을 시작하자, 희정은 또 쓰러질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렵사리 최가 할머니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만약 이 하현 때문에 다시 물거품이 된다면 그녀는 정말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날 거 같았다. 곧 생신 잔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생신 잔치에 참석해야 할 거물급 게스트들은 대부분 아직 오지 않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강남과 남원의 관청 우두머리들이었다. 최가는 설령 강남의 3인자로 관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이 거물들은 대부분 실세들이었다. 그러니 꼭 그의 아래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상대방이 체면을 세워주면 그는 분명 직접 환영하며 맞아 들일 것이다. 심지어 최가 할머니가 직접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왜냐하면 강남 1인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가의 후손들이 이때 그 뒤를 따랐고 설은아 식구들도 혜정에게 끌려 갔다. 이때 적지 않은 손님들이 희정과 식구들을 보며 수군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안 사람들은 누구예요? 어떻게 최가 사람들과 함께 서있는 거예요?”“맨 마지막에 서있긴 하지만 분명 최가의 친척이겠죠?”“이 집안은 최가의 사위라고 들었어요. 예전에 최가가 잘 나가기 전에 최준의 큰 여동생이 남편을 얻었는데 지금 최가에 의지하고 있으니 곧 출세하겠네요!” “허,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넉넉할 때는 깊은 산속에 살아도 먼 친척이 찾아오지만 가난할 때는 번화가에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잖아요.”“이 집안이 재주가 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뻔뻔하게 최가에게 빌붙어서 무슨 좋은 결말이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위엄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들어왔다. 맨 먼저 들어온 젊은 이는 스물 일곱, 여덟 살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윗사람의 기품이 있었다. 이 분은 최준의 아들이자 설은아의 사촌, 최우현. 그는 남원 경찰서 소대장급의 수사팀장이며, 남원에서는 약간의 권력이 있는 셈이었다. 지금 그는 신이 나서 몇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제가 소개 시켜 드릴게요. 이 분은 남원 경찰서의 2인자, 부총수사반장 임기석씨, 이 분은 남원 경찰서의 3인자, 부총수사반장 방희찬씨……”곧 최우현은 7-8명의 남원 경찰서 고위층을 소개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최우현 보다 한두 단계 위였다. 하지만 남원 경찰서의 총수사반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온 고위층들은 모두 최우현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이때 최우현의 안내로 잇달아 선물상자를 건넨 뒤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할머니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환영합니다. 우식이 경찰서에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최준은 이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최가 할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더 크게 웃었다. 최우현이 이렇게 많은 경찰서의 고위층들을 데리고 오다니, 남원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 지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최가 할머니는 최우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우현아, 너 정말 우리 최가의 체면을 세워줬구나! 최가의 앞날은 네 몫이야!”“할머니, 우리가 여기서 우현이에게 칭찬을 해줘야겠네요.”“그는 능력이 너무 대단해요! 우리 총수사반장님이 그를 내년의 부총수사반장으로 추천하셨어요!”“그때가 되면 그는 우리 경찰서의 4인자가 돼서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고 최씨 가문은 위엄 있어 질 거예요!”경찰서의 총수사반장은 경찰서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간단히 말해서 부총수사반장의 자리에 누가 앉게 되느냐는 총수사반장이 결정하는 셈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우현은 내년에 부총수
사실 지금 최가 사람들 중에서 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이 가장 지위가 없는 것은 확실했다. 최준은 말할 것도 없이 그는 강남의 3인자이고 지위도 높고 권력도 있었다. 아들은 곧 남원 경찰서의 부총수사반장이 될 것이고 젊고 유망했다. 최혜정은 크지는 않았지만 혼자 장사를 해서 1년에 몇 십억의 매출을 올렸다. 여민철은 남원 은행의 부은행장으로 자리가 꽤 높은 편이었다. 매년 그에게 일을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들에 비하면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완전 면목이 없다고 할 만했다. 원래 설은아 하나로 버티고 있었는데 하현 때문에 지금 설은아로도 지탱하기가 힘들어졌다. 지금 재석과 희정은 모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바로 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또 소리가 들려왔다. 몇 명의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중 선두에 선 한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최 어르신, 제가 초대를 받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남원의 2인자 왕태환씨군요!”“또 남원 경찰서 1인자 이윤재씨네요!”“저 분은 강남 경찰서 2인자 탁명선씨네!”지금 들어온 세 사람은 모두 남원 전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특히 탁명선은 경찰계에서 인맥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제자도 많았다. 비록 그가 내년에 물러난다고는 하지만 이 분은 아마 물러나도 실세 거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이 세 분이 왔으니 최씨 가문이라 해도 체면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다. “할머니,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탁명선과 몇 사람은 연이어 공수했다.하지만 그들의 지위로는 생신 축하를 드리러 왔다 해도 비교적 조심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처럼 수줍은 얼굴과 아첨하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최 할머니는 만족스러웠다. 지금 그녀는 탁명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록 최준의 지위가 높긴 했지만 그녀의 생일 잔치에 이렇게 많은 거물들이 올 수 있
이 말을 듣자 온 장내가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해졌다. 최우현의 신분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그가 뛰어난 인재라고 하다니 이거 보통 사람이 아니겠는데? 어떤 사람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최가에서 가장 요사스러운 인물이 최우현 아니었어? 근데 능력 있는 매부가 또 있다고?”“하긴 최가의 외손녀인데 어떻게 평범한 사람하고 결혼을 했겠어? 어떻게 하면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 선택 받을 수 있을까?”시선을 계속 돌리다 마침내 하현에게로 시선이 떨어졌고 온몸을 떨며 말했다.“이 분, 이 분의 기개는 정말……”군중 속에서 설씨 집안 사람들은 원래 안색이 좀 어두웠었다. 이때 논란이 이는 소리를 듣고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하나같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지연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최가가 왜 그렇게 은아네 식구들을 중시하는지 알겠어요!”“분명 하현이 대단하다고 엄청 허풍을 떨었을 거예요!”“최가 사람들이 그걸 진짜라고 믿다니, 지금 말하면 아마 웃겨 죽을 거예요!”설민혁 역시 냉소하며 말했다. “폐물은 폐물이네, 어디를 가든 망신을 당하니 말이야!”설씨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웃지마, 어쨌든 우리 설씨 집안 사람인 셈이니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에게서 좀 떨어져 있어!”설씨 어르신은 설은아 일가가 망신 당하는 것을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사실 최우현도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는 은아가 전설의 하 세자의 내통녀라는 소문이 돌았다. 최우현은 자기도 모르게 설은아의 남편이 바로 하 세자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의 직관은 아주 정확했으며 틀린 추측이 아니었다. 하현은 확실히 하 세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재석과 희정은 최우현이 하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갑자기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다. 지금 그들은 감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하현을 옆으로 끌어내리려고 하
설은아는 이때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도 왜 지금 밖에서 이런 소문이 떠돌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최우현이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한동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반응을 하며 한 걸음 내디드려 할 때, 생각지도 못하게 하현이 큰 소리로 말했다.“처남에게 대답할게. 내가 확실히 하 세자야.”하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인정해도 별거 아니었다. 그 김에 최가의 반응도 살펴 볼 수도 있었다. “헉!”지금 이 순간 모두들 놀라서 숨을 헐떡였다!이 놈이 정말 하 세자라고?그 당시 하씨 가문을 장악하고 맨손으로 수많은 그룹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거물!최가는 번성하기를 원했다!최우현은 이때 다른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매제, 앞으로 우리 최씨 집안은 당신에게 기대고 싶습니다. 우리를 잘 이끌어 주십시오!”최준의 눈빛도 좀 더 깊어졌다. 만약 눈앞의 이 분이 정말 하 세자라면 최가는 자신의 입장을 잘 생각해야 했고 다른 3대 일류 가문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때 마침내 설재석이 반응을 했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하현, 너 그만해!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헛소리를 해!”희정 역시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최가 할머니는 큰 소리 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단 말이야. 제발 부탁이니까 큰 소리 좀 그만 칠래?”설은아는 하현의 입을 직접 손으로 막고 싶었다. 오직 설유아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형부가 그의 신분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어떻게 오늘 스스로 폭로를 하는 거지?이때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최가와 협력하는 건 내가 원하기만 하면 말 한마디면 돼요.”“풉______”이 말을 듣고 재석과 사람들은 거의 피를 뿜을 뻔했다. 끝도 없이 허풍을 떨어 놓고 이렇게 한 마디만 하면 될 일이냐? 허풍 좀 그만 떨면 안돼!“아하하하______”이때 장내에는 떠들썩하게 웃어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민혁은 배를 움켜쥐고 엎드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