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우두커니 서있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부주임님, 그럼 저희 설씨 집안은 파산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할 필요 없습니다. 그룹 쪽에서 당신들에게 추가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하지만 합의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어서 3일 이후에 서명을 해야 해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한 번 와주실래요?”이 부주임은 더 할 나위 없이 친절했고 다른 고위층 임원들도 하나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설은아는 말했다.“여러분들의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하현 역시 일어선 김에 말했다. “수고했어요.”그 부주임은 온몸을 떨며 인삼차를 마신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한 일이죠! 천만에요! 다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이 부주임은 지금 거의 무릎을 꿇을 뻔했다. 뜨거운 눈물을 글썽였다. 이 분이 수고했다고 말씀을 하시다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천일그룹을 떠난 뒤, 설은아는 잠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설씨 어르신과 사람들은 지금 뜨거운 솥 위에 있는 개미처럼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설은아가 나오는 것을 보자 설씨 어르신이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은아야, 일은 어떻게 됐어?”설은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문제가 해결됐어요!”“천일그룹 쪽에서 우리 설씨 회사의 실적이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잠시 보류한 상태에요. 파산 절차는 밟지 않겠대요.” “거기다 우리에게 추가적으로 투자도 하고 업무도 주겠다고 했어요.”“다만 3일 뒤에 기본합의서에 서명을 하러 와야 한대요……”설은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 부주임은 설씨 회사가 자기가 운영하게 되면 반드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윗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 아닌가?설은아는 여전히 착하고 효성이 지극해서
설씨 어르신은 설민혁을 매몰차게 바라보다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네가 말한 문제를 내가 설마 모르겠어?”“내가 벌써 다 생각해 봤지!”“근데 너 그거 알아? 이번 일은 설은아의 체면 때문에 해결된 거야!”“만약에 기본 합의서에 사인하러 갈 때, 다른 사람이 나왔다고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떡할래?”“민혁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우리는 신중해야 된다는 거야!”“왜냐면 우리 가문의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설민혁은 살짝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할아버지 말도 맞다. 이번 일은 너무 커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설은아가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을 빤히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만약 이렇게 되면 자신은 앞으로 설씨 집안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겠는가?설마 남원에 와서도 설은아 밑에서 빌빌거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이 순간 설민혁은 흉악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고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설씨 어르신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설민혁은 이후에 설씨 가문의 기업을 이어받을 사람으로 아주 높이 평가되는 설씨 집안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빠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일은 설씨 집안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일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떠났고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만 남았다. 설민혁은 ‘탁’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이 망할 년! 도대체 그 전설의 하 세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설마 내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설민혁은 이를 갈았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자신이 앞으로 설씨 집안에서 설은아와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설지연은 지금 오히려 가볍게 웃어 넘겼다. 이 웃음소리에 설민혁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설지연, 너 왜 웃어? 이게 그렇게 웃겨?”“만약 설은아가 하 세자의 내통녀라면
남원, 임페리얼 회관.이곳은 남원에서 가장 호화로운 개인 회관 중 하나이다. 평일에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들이다. 이런 곳은 각 방면에서 부유한 2세대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룻밤에 소비하는 돈이 2억이 넘는다. 이런 곳은 부자들이 놀고 먹는 곳이다. 아래 동년배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따라갈 수 없는 곳이다. 지금 이 시각, 한 비밀 룸 안.왕태민은 맨 윗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여러분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데 술도 안 마시고 공주님도 안 부르면 어떡해요? 나 무시 하는 거에요?”그의 맞은편에는 평소에 혈기 왕성한 남원의 재벌 2세들이 적어도 열 몇 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2세들은 하나같이 의기소침해 있었다. 과거 이 자리에서 그들은 여자들을 이리 저리 끌어 안으며 놀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하나같이 모두 맑은 물들이었다. 앞에 있는 프랑스 와인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왕태민의 말을 들은 이 사람들은 감히 무시하지 못했고, 그 중에 창백한 얼굴빛을 한 재벌 2세 한 사람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왕 도련님, 놀리지 마세요!”“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세요?”“우리 집안 기업들은 전부 이미 천일그룹에 인수합병 됐어요! 거기다 채무불이행으로 지금 파산해서 통합되고 있는 중이에요!”“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어요. 왕 도련님이 모르고 저희를 좋게 받아 주신 거 아닌가요?”이 말을 하면서 이 2세는 씁쓸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과거에 얼마나 날뛰었던지 이것저것 다 무시하며 지냈었다. 남원의 최상급 가문인 하씨 집안도 깔보며 다녔으니, 그들 눈에 뭐가 대단해 보였겠는가? 하지만 이제서야 그들은 무엇이 진정한 최상급 가문이고, 무엇을 진정 하늘이라고 부르는지 깨달았다. 하씨 가문은 손을 쓰지 않았다. 전설의 하 세자가 가볍게 말 한마디 했을 뿐이다. 온 남원이 끊임없이 출렁거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가
“이번에 하 세자가 무슨 규정을 어겼는데요?”누군가가 머뭇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세자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혼자의 힘으로 20조의 그룹을 만들어낸, 3년 전 하늘 위에 일어선 남자. 그들이 볼 때는 마치 신처럼 보였다. 이 남자 때문에라도 그들은 지금 파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 중 누가 감히 그 사람에게 불만을 조금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왕태민은 주저하고 있는 2세들을 보면서 속으로 경멸했다. 이 녀석들은 원래 되는대로 살다가 죽기를 기다리면서 대단히 행패를 부렸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물론 왕태민은 깔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남원에 온 설씨 가문 얘기 들어 보셨죠?”이 말이 나오자 어떤 사람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재산이 4,5천억 원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집안이 감히 우리 남원에 오다니 장난하는 건가요?”“이렇게 작은 집안은 남원에서는 반년도 못 가서 뼈도 못 추리고 삼켜질 거 같은데요?”“이 가문의 어떤 사람이 하 세자의 환영 만찬에 갔다가 이 비서의 허락까지 받았어요!”“내가 듣기로는 이 설씨 가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천일 그룹의 손안에 있다 던데요? 그들도 우리랑 똑같이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왕태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것도 틀리진 않아요. 하지만 이 설씨 가문은 파산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듣기로 천일 그룹이 그들을 상당히 인정하고 있어서 추가로 더 투자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그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왕태민은 더할 나위 없이 무미건조하게 말했지만, 여기에 있던 2세들의 귀에는 대낮에 천둥 치는 소리로 들렸다. 어떤 사람이 떨리는 얼굴로 말했다
왕태민은 설민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어찌 너만큼 똑똑하겠어? 남원에 온지 며칠 만에 세력을 이용하는 법을 알다니.”설민혁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감히 그럴리가요. 이 설민혁은 단지 남원의 수심이 깊은 것을 알기 때문에 기댈 산을 찾은 것뿐이에요.”“이번 기회에 왕씨 집안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니 민혁이의 영광입니다!”“오늘부터 왕 도련님께서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민혁이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왕태민은 웃을 듯 말 듯 했다. “너는 네 집안도 팔아먹는데 내가 너를 무슨 근거로 믿으란 말이야? 그것도 네 혈육을!”설민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왕 도련님, 장사꾼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우리의 본성이잖아요!”“제가 설씨 집안 사람이라 해도 속해있지는 않아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게다가, 일단 성공하면 도련님이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셋째 삼촌 집의 그 두 자매요. 어느 남자가 원하지 않겠어요?” 왕태민은 소파에 기대어 부정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히 기억하지. 근데 일단 일이 실패하면 나는 이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야.”설민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얼굴이었다. “가봐!”……중형 주택단지 안에는 설씨네 임시 별장 외에 분양 주택들이 더 많이 있었다. 남원의 진정한 대가들은 본래 이런 곳에서는 살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설씨 집안은 남원에 온지 얼마 안됐고 이런 곳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설씨 어르신의 철 왕좌는 오늘 방금 서울에서 옮겨졌다.이때, 그는 이 철 왕좌를 거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여기에 긴 테이블까지 같이 올려두자 앉았을 때 그는 또 서울에 있었을 때와 같이 자태를 뽐냈다. 안타깝게도 설씨 집안이 남원에 들어오는 그 날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은 이미 바뀌었다. 남원의 수심이 너무 깊어서 설씨 집안이 남원에 섞여서 지내려면 아마 적
설씨 어르신의 명령을 듣고는 설씨네 한 사람이 거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그 2세들을 가로막고 미소를 띠고 말했다. “여러분, 여기는 개인 소유지입니다.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돼요.”“설씨네? 서울의 설씨네야?”한 덩치 큰 2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 설씨 가족은 별다른 걸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서울의 설씨 집안입니다. 천일 그룹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에요. 만약 우리 회장님을 만나고 싶으시면 예약을 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아마……”“퍽_____”설씨 집안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에 있던 2세가 뺨을 한 대 날려 그를 멍하게 만들었다. 때리고 난 후 2세는 그제서야 담담하게 말했다. “이 설씨 집안 참 재미있네. 의외로 작은 가문이 감히 자신들을 남원의 새로운 귀하신 몸이라 칭하면서 아직도 몇몇 형님들 앞에서 있는 척을 하고 있다니. 허허허……”다른 2세들도 냉소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들 가문의 기업이 모두 파산 위기에 처해있지만 과거에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물들이었다. 오늘 설씨 집안을 성가시게 굴려고 왔는데 어찌 이들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겠는가?설씨 어르신은 항상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했다. 지금 이 2세들은 하나같이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는 조금 무서웠다. 지금 그는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 “아랫사람들은 규율을 모르죠. 설씨 집안은 처음 와서 남원의 여러 큰 어르신들을 알지 못하니 이해해주세요. 들어오세요……”말을 마치고 설씨 어르신은 먼저 홀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하나같이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이 타고 온 차부터 시작해서 입고 있는 옷을 봐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그들의 태도를 볼 때 분명 일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설씨 집안이 천일 그룹의 높은 지위에 올랐고 지금은 그렇게 찌질 하지도 않으니 하나같이 설
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순식간에 비할 데 없이 나빠졌다. 자신은 어쨌든 설씨 집안의 회장이고, 설씨 집안의 배후에는 천일 그룹이 있었다. 왕씨 집안과 프로젝트 거래를 하고 있었고, 안씨 집안과도 합작을 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설씨네는 약간의 지위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설씨 어르신은 비록 조금 놀라긴 했지만 깊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말했다. “이 도련님 맞죠? 우리 설씨 집안은 사람을 정성껏 대하는데, 여러분이 성의를 다해 대해주시면 저희 설씨 집안도 자연히 여러분들을 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하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코를 비비는 얼굴을 하고 계시면 손님을 돌려보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돌려보내?”이겸은 크게 비웃었다. “오늘 이 일은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거에요. 우리에게 해명하지 않고는 당신 설씨 집안은 남원에서 한 발자국도 디디기 어려울 거라고 장담합니다!”“저승사자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포악함이 뭔지 우리가 제대로 알게 해줄게요!”이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다른 2세들도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찮은 설씨 집안이 감히 자신을 남원의 새 귀인이라고 자칭하다니, 우리 남원에서 당신들 같은 작은 가문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네?”“마음대로 전세를 내줘도 당신들 설씨 집보다는 많을 텐데 여러 형님들 앞에서 뻐기는 거야?”“믿든지 말든지 이 어르신이 너를 때려 죽이겠어!”“……”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이렇게 오만 방자하게 구는 2세들을 대하자, 그는 잠시 어떻게 해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 우리 설씨 집안이 당신들에게 무슨 미움을 샀는지 모르겠는데요? 귀찮으시겠지만 분명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바로 이때 약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곧이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설민혁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별장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겸은 그를 보자 눈동자가 살짝 반짝거렸다. 한줄기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씨
이겸은 차갑게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확실히 명시해주지!”“나는 너희 설씨 집안의 설은아가 도대체 얼마나 알랑거리는 수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에도 너희 설씨 가문은 파산 절차를 밟지 않게 됐잖아!”“설령 이것이 그녀의 솜씨라 해도 상업계는 규정을 지키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인데 이렇게 규정을 어기면 안되지!”“당신들이 이렇게 한다는 건 남원에 있는 모든 가문들과 맞붙겠다는 거랑 뭐가 달라!”이 말이 나오자 설씨네 사람들은 모두 문득 깨달은 표정이었다. 설지연이 가장 먼저 나서며 말했다. “어르신, 저는 이 일이 아주 잘못 됐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설은아가 나서자 마자 일이 해결될 수가 있어요!”“그녀는 분명 볼썽사나운 수단을 쓴 게 틀림없어요!”“우리 설씨 집안은 항상 바르게 행동했었는데 어디서 이런 년이 나온 거야!”“설은아가 이렇게 행동하면 남원 상업계의 규정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이건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집안을 해치는 일이라고요!”“어르신, 설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내쫓아서 우리 설씨 집안의 태도를 분명히 해주시기를 건의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해명을 하게 되는 셈이잖아요!”한 무리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지금 모두 들고 일어섰다. 이겸과 사람들의 태도도 아주 분명해졌다. 하나의 해명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설씨 집안 스스로 파산하라고?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파산을 하고 나면 그들은 뭘 먹고 사나?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설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내고 모두에게 분명히 해명을 하는 것이다. 설민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설씨 어르신을 한 번 돌아본 뒤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도련님, 이렇게 우리 설씨 집안에 공을 세운 사람을, 어떻게……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설민혁이 이렇게 말하자 이겸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들, 가장 바람직한 게 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게 해명을 하는 일이 중요한지, 사람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