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민은 설민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어찌 너만큼 똑똑하겠어? 남원에 온지 며칠 만에 세력을 이용하는 법을 알다니.”설민혁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감히 그럴리가요. 이 설민혁은 단지 남원의 수심이 깊은 것을 알기 때문에 기댈 산을 찾은 것뿐이에요.”“이번 기회에 왕씨 집안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니 민혁이의 영광입니다!”“오늘부터 왕 도련님께서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민혁이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왕태민은 웃을 듯 말 듯 했다. “너는 네 집안도 팔아먹는데 내가 너를 무슨 근거로 믿으란 말이야? 그것도 네 혈육을!”설민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왕 도련님, 장사꾼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우리의 본성이잖아요!”“제가 설씨 집안 사람이라 해도 속해있지는 않아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게다가, 일단 성공하면 도련님이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셋째 삼촌 집의 그 두 자매요. 어느 남자가 원하지 않겠어요?” 왕태민은 소파에 기대어 부정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히 기억하지. 근데 일단 일이 실패하면 나는 이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야.”설민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얼굴이었다. “가봐!”……중형 주택단지 안에는 설씨네 임시 별장 외에 분양 주택들이 더 많이 있었다. 남원의 진정한 대가들은 본래 이런 곳에서는 살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설씨 집안은 남원에 온지 얼마 안됐고 이런 곳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설씨 어르신의 철 왕좌는 오늘 방금 서울에서 옮겨졌다.이때, 그는 이 철 왕좌를 거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여기에 긴 테이블까지 같이 올려두자 앉았을 때 그는 또 서울에 있었을 때와 같이 자태를 뽐냈다. 안타깝게도 설씨 집안이 남원에 들어오는 그 날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은 이미 바뀌었다. 남원의 수심이 너무 깊어서 설씨 집안이 남원에 섞여서 지내려면 아마 적
설씨 어르신의 명령을 듣고는 설씨네 한 사람이 거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그 2세들을 가로막고 미소를 띠고 말했다. “여러분, 여기는 개인 소유지입니다.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돼요.”“설씨네? 서울의 설씨네야?”한 덩치 큰 2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 설씨 가족은 별다른 걸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서울의 설씨 집안입니다. 천일 그룹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에요. 만약 우리 회장님을 만나고 싶으시면 예약을 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아마……”“퍽_____”설씨 집안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에 있던 2세가 뺨을 한 대 날려 그를 멍하게 만들었다. 때리고 난 후 2세는 그제서야 담담하게 말했다. “이 설씨 집안 참 재미있네. 의외로 작은 가문이 감히 자신들을 남원의 새로운 귀하신 몸이라 칭하면서 아직도 몇몇 형님들 앞에서 있는 척을 하고 있다니. 허허허……”다른 2세들도 냉소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들 가문의 기업이 모두 파산 위기에 처해있지만 과거에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물들이었다. 오늘 설씨 집안을 성가시게 굴려고 왔는데 어찌 이들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겠는가?설씨 어르신은 항상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했다. 지금 이 2세들은 하나같이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는 조금 무서웠다. 지금 그는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 “아랫사람들은 규율을 모르죠. 설씨 집안은 처음 와서 남원의 여러 큰 어르신들을 알지 못하니 이해해주세요. 들어오세요……”말을 마치고 설씨 어르신은 먼저 홀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하나같이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이 타고 온 차부터 시작해서 입고 있는 옷을 봐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그들의 태도를 볼 때 분명 일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설씨 집안이 천일 그룹의 높은 지위에 올랐고 지금은 그렇게 찌질 하지도 않으니 하나같이 설
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순식간에 비할 데 없이 나빠졌다. 자신은 어쨌든 설씨 집안의 회장이고, 설씨 집안의 배후에는 천일 그룹이 있었다. 왕씨 집안과 프로젝트 거래를 하고 있었고, 안씨 집안과도 합작을 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설씨네는 약간의 지위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설씨 어르신은 비록 조금 놀라긴 했지만 깊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말했다. “이 도련님 맞죠? 우리 설씨 집안은 사람을 정성껏 대하는데, 여러분이 성의를 다해 대해주시면 저희 설씨 집안도 자연히 여러분들을 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하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코를 비비는 얼굴을 하고 계시면 손님을 돌려보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돌려보내?”이겸은 크게 비웃었다. “오늘 이 일은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거에요. 우리에게 해명하지 않고는 당신 설씨 집안은 남원에서 한 발자국도 디디기 어려울 거라고 장담합니다!”“저승사자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포악함이 뭔지 우리가 제대로 알게 해줄게요!”이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다른 2세들도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찮은 설씨 집안이 감히 자신을 남원의 새 귀인이라고 자칭하다니, 우리 남원에서 당신들 같은 작은 가문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네?”“마음대로 전세를 내줘도 당신들 설씨 집보다는 많을 텐데 여러 형님들 앞에서 뻐기는 거야?”“믿든지 말든지 이 어르신이 너를 때려 죽이겠어!”“……”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이렇게 오만 방자하게 구는 2세들을 대하자, 그는 잠시 어떻게 해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 우리 설씨 집안이 당신들에게 무슨 미움을 샀는지 모르겠는데요? 귀찮으시겠지만 분명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바로 이때 약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곧이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설민혁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별장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겸은 그를 보자 눈동자가 살짝 반짝거렸다. 한줄기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씨
이겸은 차갑게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확실히 명시해주지!”“나는 너희 설씨 집안의 설은아가 도대체 얼마나 알랑거리는 수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에도 너희 설씨 가문은 파산 절차를 밟지 않게 됐잖아!”“설령 이것이 그녀의 솜씨라 해도 상업계는 규정을 지키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인데 이렇게 규정을 어기면 안되지!”“당신들이 이렇게 한다는 건 남원에 있는 모든 가문들과 맞붙겠다는 거랑 뭐가 달라!”이 말이 나오자 설씨네 사람들은 모두 문득 깨달은 표정이었다. 설지연이 가장 먼저 나서며 말했다. “어르신, 저는 이 일이 아주 잘못 됐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설은아가 나서자 마자 일이 해결될 수가 있어요!”“그녀는 분명 볼썽사나운 수단을 쓴 게 틀림없어요!”“우리 설씨 집안은 항상 바르게 행동했었는데 어디서 이런 년이 나온 거야!”“설은아가 이렇게 행동하면 남원 상업계의 규정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이건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집안을 해치는 일이라고요!”“어르신, 설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내쫓아서 우리 설씨 집안의 태도를 분명히 해주시기를 건의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해명을 하게 되는 셈이잖아요!”한 무리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지금 모두 들고 일어섰다. 이겸과 사람들의 태도도 아주 분명해졌다. 하나의 해명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설씨 집안 스스로 파산하라고?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파산을 하고 나면 그들은 뭘 먹고 사나?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설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내고 모두에게 분명히 해명을 하는 것이다. 설민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설씨 어르신을 한 번 돌아본 뒤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도련님, 이렇게 우리 설씨 집안에 공을 세운 사람을, 어떻게……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설민혁이 이렇게 말하자 이겸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들, 가장 바람직한 게 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게 해명을 하는 일이 중요한지, 사람
설씨 어르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겸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무의식적으로 설민혁을 한 번 쳐다보았다. 설민혁은 그에게 눈짓을 한 번 준 뒤에야 큰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그럴 수는 없어요. 이렇게 되면 아마 설은아는 제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목적은 바로 상석에 앉는 거에요!”“이……”“이게 뭐야?”이겸은 갑자기 냉소를 터뜨렸다. “설 사장도 이렇게 말하니 우리가 체면을 세워드리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만약 당신들이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설은아가 계속 권력을 잡으면 당신들은 끝장이에요!”“가자!”이겸은 말을 마치고 먼저 나갔다. 2세의 무리들은 지금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될 수 있다고?모두들 기세등등하게 와서 결국 이렇게 끝났다고? 이제 말이 되나?……홀을 나서자 어떤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겸, 이렇게 할거야?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어!”“맞아, 우리의 목적은 우리 가문이 파산하지 않도록 하는 거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을 물러나게 하는 게 아니야!”“아무리 못해도 설씨 집안을 끌어들여서 같이 죽어야지!”2세대들은 모두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득을 얻었다는 말인가?지금 이 순간 돌아보니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한 기분이었다. 이겸이 웃으며 말했다.“설씨네가 왜 파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을까? 설씨 가문에 하 세자와 내통녀가 있기 때문 아니야?”“그런데 문제는 이 일을 누가 감히 떠벌릴 수 있겠어?”2세대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한데, 누가 감히 밖에서 하 세자의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죽는 게 무섭지 않은가?이겸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해. 지금 설씨 집안은 분명히 우리에게 해명을 해줘야 해.”“우리도 하 세자의 일을 그들에게 암시해 줬고, 그들의 일을 우리
한편, 하현과 은아는 집으로 돌아왔다. 설재석과 희정은 모두 불가사의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너 어떻게 맞췄어? 설씨 어르신이 직접 은아한테 오시다니?”“왜냐면 사실 제가 결정했기 때문에 그래요.”하현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들은 설재석과 사람들은 모두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하현을 더 이상 비웃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은아가 어떻게 이 귀찮은 일을 해결했냐는 거야. 우리 은아가 이렇게 대단한가?”설재석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그는 설은아가 하 세자의 내통녀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하 세자 같은 큰 인물이 은아가 남편을 데리고 천일 그룹에 간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있었겠는가?이때 설은아도 너무 의아해했다.“맞아요! 오늘 그 주임의 태도가 아주 이상했어요. 어째서 내가 맹수가 된 느낌이었을까?”설은아는 평소 아주 똑똑했지만 오늘은 그냥 멍해있었다. 한 순간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도 그녀조차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힐끗 보며 그가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하현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되었기 때문이다.하현은 웃었다. “은아야 너 잊었어? 내일 밤 우리 환영만찬에 가기로 했잖아. 이슬기 비서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설재석이 바로 말했다. “일리가 있네. 천일 그룹의 이슬기 비서는 자기 아래에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어!”“그녀가 한마디만 하면 이런 귀찮은 일은 한 번에 해결되지!”“딸아, 너 그 비서랑 잘 지내라. 이슬기 비서가 있으면 설씨 집안의 자리는 분명 굳건해질 거야!”설은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슬기언니가 그냥 한 말인 줄 알았어.” “이슬기 비서도 큰 인물이잖아. 큰 인물이 하는 말이면 분명 그렇게 되지!”하현은 웃었다. “지금 설
집을 나서기 전 설은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현, 내 생각엔 우리가 할아버지께 그들이 한 말을 말씀 드려야 할 거 같아. 우리가 설씨 집안의 대표로 가야만 합의서에 서명을 할 수 있다고.”“내 생각엔 할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천일 그룹 쪽에서 네가 서명을 하도록 지정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도 소용이 없을 거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전화 한 통 할게. 할아버지를 존중해드려야지.”설은아는 정말 효성이 지극하다.곧 그녀는 설씨 어르신께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애써 전화기를 들고 있는 것이 전해졌다. “은아야! 무슨 일이야?”“할아버지, 저 지금 천일 그룹에 합의서 사인하러 간다고 말씀 드리려고요.”설은아가 공손히 말했다.“아아, 그 일로 전화한 거야? 민혁이랑 지연 두 사람이 벌써 갔어. 너는 갈 필요 없어!”설씨 어르신은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너는 빨리 출근해. 회사에 네 사무실을 마련해 뒀으니까.”말이 끝나자 마자 설씨 어르신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설은아는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왜 그래?”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민혁이랑 지연이가 벌써 나 대신 사인하러 갔대! 그들이 어떻게 감히!”설은아는 지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서울에 있을 때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러고 있다니, 그들은 천일 그룹이 허락하지 않을까 봐 두렵지도 않나?설씨 어르신이 이 정도까지 어리석을 줄이야?“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설은아는 며칠 동안 설씨네 별장에 가지 않았고, 설씨네 식구들은 또 그녀에게 애써 숨기려 했기에 그녀는 누가 찾아와 귀찮게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현은 잠시 생각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일이 생겼든, 무슨 이유이든, 설씨 집안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이건 너에게 속한 거야. 어떤 사람도 가져갈 수 없고,
이때 다들 왜 그렇게 좋은 프로젝트와 자원을 설씨 회사에 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원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였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큰 소리로 축하해주었다. 심지에 그 자리에 있던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일어서서 주위의 축하를 받았다. “다음으로 설씨 회사의 대표가 기본 합의서에 서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최종적으로 합의서에 서명하는 담당자는 전에 그 영업부 부주임이었다. 그 임원은 천일 그룹을 대표해서 결과를 발표했을 뿐이었다.“어? 설은아 아가씨는요?”부주임이 고개를 내밀고 앞에 있던 몇 사람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은아는 지금 다른 일로 바빠서 저희가 은아 대신 서명을 하러 왔습니다.”설민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지연도 옆에 서서 말했다.“고위 임원들 앞에서 이미 결과를 발표하셨고 어차피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는 저희 설씨 집안에 주시는 것이니 누가 사인을 해도 똑같지 않나요?”부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 은아 아가씨가 일이 있으시다면 당신들이 서명하세요. 잘못 쓰시면 안됩니다.”“네네, 감사합니다!”설민혁은 격양된 얼굴로 합의서를 받아 들고 진지하게 쳐다보고는 ‘쓱쓱쓱‘하며 ‘설민혁’ 세 글자를 적었다.“먼저 앉아계세요. 제가 도장 하나 들고 올게요……”부주임은 기본합의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장면을 지켜본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민혁아, 나는 방금 이 부주임이 우리에게 서명하지 못하게 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우리 설씨 회사를 좋게 본거 같아!”“그러니 설은아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었던 거지!”“빨리 할아버지께 전화 드려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자.”설지연이 부추기며 말했다. 설민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물론 이 결과가 설지연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에 왕태민과 협력하지 않았더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