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 너 오늘만 설씨 집안 대표로 천일그룹에 가!”“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 세자와 잠자리를 가져서라도 너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야 돼!” “그렇지 않으면! 흥!”전화 맞은편에서 설씨 어르신의 말투는 굉장히 무거웠다. 사실 그의 신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설동수가 나갈 때, 설민혁이 옆에서 유치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아무튼 설은아를 무조건 대표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때 설은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설민혁 일가를 편애하고 그들 집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하현이 다가와 설동수의 핸드폰을 ‘탁’하고 땅바닥으로 내리쳤다. 전화 맞은편에서 잡음이 한바탕 들려오더니 그 후에 소리가 뚝 그쳤다. 설동수는 어리둥절했다. 설재석도 멍해졌다. 설은아 역시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하현이 지금 화를 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희정은 초조했다. “하현, 너 뭐 하는 거야? 어르신이 우리 가족에게 기회를 주는데! 너 정말 우리 식구들이 설씨 집안에서 쫓겨나길 바라는 거야?”설재석도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설씨 어르신이 이런 말까지 꺼냈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정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니, 그들은 우리를 모욕 하는 거에요! 은아보고 다른 사람한테 가서 잠자리를 하라니요? 이게 할아버지가 손녀한테 할 수 있는 말인가요?”말을 마치고 하현은 싸늘하게 설동수를 응시하였다. “내가 3초 시간을 줄게. 꺼지지 않으면 내가 네 다리를 부러뜨려버리겠어!”“너……”설동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현 이 정신 병자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때렸던 것이 생각 나자 그는 순간 두려웠다.설동수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설은아 가족들은 모두 하현을 노려보았다. 비록 방금 설씨 어르신이 듣기 거북한 말을 하긴 했지만 아
한편, 설씨 집안이 임시로 임대한 별장 안. 설씨 어르신은 ‘탁’ 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지며 화를 냈다.“너희들이 정말 이렇게 나온다고?”설동수는 돌아와서 방금 일어난 일을 더 부풀려 말했다.설씨 어르신은 지금 안 좋은 기색으로 말했다. “좋아! 셋째 가족이 출세를 했다고 내 말을 안 듣는 구나!” “역시 그들은 설은아가 없으면 우리 설씨 집안이 일 처리를 못하는 줄 아나 본데!?”“민혁아, 이 일은 네가 직접 가서 처리해라. 프로젝트는 가져올 필요 없어.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잘 소통하고 오면 돼!” 설씨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설민혁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프로젝트를 따지 않아도 되고 단순히 인사만 하는 정도라면 천일 그룹의 고위직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일 뿐이니 이 일은 그가 전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설은아가 없으면 우리가 못할 줄 아나 봐요! 제가 이번에 은아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줄게요!”“그녀가 없이도 우리 설씨 집안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어요!”군령장을 썼으니 설민혁 역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자 둘이서 천일 그룹에 닿았다.……천일 그룹이 선택한 사무실 장소는 남원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몰 센터였다. 이 지역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남원 안에 있는 소위 대그룹, 대기업이 있는 금싸라기 땅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었다. 천일 그룹 아래층에 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천일 그룹의 설립은 하나의 큰 움직임이었다. 듣자 하니 하 세자는 요 몇 년 남원에 있었고, 더 나아가 남원 전역에 걸쳐 적지 않은 배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천일 그룹의 설립으로 몇몇 유명한 대기업들이 하나가 되었다. 모두 천일 그룹 계열사가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하 세자가 계획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설동수
설동수와 설민혁 부자 두 사람은 얼굴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오늘 거대한 뜻을 품고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설씨 가문은 파산 절차를 밟게 생겼다. 어쩌란 말인가? 그러더니 이 담당자는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안색이 달라지더니 웃는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원래 서울의 설씨 회사 사람들이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깜빡 했네요. 귀사의 설은아 아가씨는 오셨습니까?” “네!?”이 말에 설민혁 부자 두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왜 지금 갑자기 설은아 얘기를 꺼내는 걸까?설민혁은 깊이 생각한 뒤에야 조심스레 말했다. “담당자님, 저는 설민혁이라고 합니다. 설씨 회사의 부사장이에요.”“설은아는 전에 저희 회사의 재무부 부장이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녀는 이미 해고가 된 상태입니다.”“담당자님께서 그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건지 모르겠네요?”담당자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 됐네요. 그녀가 해고가 된 이상, 이 일은 잘 처리가 될 겁니다.”설동수와 설민혁은 기쁜 얼굴이었다. 설마 이렇게 막다른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인가?!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이 담당자는 직접적으로 말했다. “설은아 아가씨는 이미 귀사에 보직이 없어졌으니 내일 빨리 파산 절차를 밟으세요. 제가 내일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설민혁과 설동수는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 이…… 이게……”설민혁은 벌벌 떨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설은아 아가씨와 하 세자님의 비서 이슬기씨는 절친이에요. 이 비서님이 특별히 당부하셨으니 신중하게 처리를 해야 합니다.”“지금 설은아 아가씨가 회사에 없으니 아무 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빨리 파산 절차를 밟아야겠습니다.” 담당자가 이번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쉽게 말해 설씨 회사는 설은아가 없으면 파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설은아가 있었다면 흥정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직접적
곧 설동수와 설민혁 두 사람은 쫓겨났다.회사 밖 큰 길에 서 있는 두 부자의 안색은 극도로 안 좋아졌다. “설은아 이년은 분명 그 하 세자와 한통속 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담당자가 왜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하겠어!?”“은아가 슬기의 절친이라고? 귀신을 속여라!”설민혁은 지금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설동수는 머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이번에 일이 아주 성가시게 됐네. 설은아가 새롭게 권력을 잡지 않는 이상 그녀는 분명 우리 사정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우리가 그 식구들을 짓밟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해야 하는 건가?”“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설씨 회사는 내일 바로 파산하게 되고 우리의 재산을 빼돌릴 겨를도 없어……”두 부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 씁쓸해 했다.남원에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설은아가 다시 그들 머리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낸 지 하루도 안돼서 그들은 또 설은아에게 부탁을 하러 가야 하게 생겼다. 그들은 남원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설씨 어르신은 계속 거기에 머무르며 지금 설민혁 부자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다가가 물었다. “민혁아, 일은 어떻게 됐어? 천일그룹이 너희들을 곤란하게 한 건 아니지?”설동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일어난 일을 모두 말할 수밖에 없었다.“뭐? 우리 설씨 집안이 파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게다가 사정을 하려면 설은아만 보내야 한다고?”이때 설씨 어르신의 안색이 어찌나 안 좋아 졌는지 말도 말아라. 설동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버지, 그 책임자가 확실하게 말했어요. 만약 내일 설은아를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파산절차를 밟게 될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남은 49%도 지킬 수 없어요!”“설씨 회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설은아가 가서 사정하는 것 밖에는 없어요! 다른 사람은 안돼요!”“오늘
이 모습을 본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모두 의아한 얼굴이었다. TV를 보던 설유아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언니 지금 집에 없어요.”설지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유아야, 은아 언니가 어디 갔는지 말해줄래?”유아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몰라요. 아침 일찍 하현이랑 나갔어요. 어디 갔는지 몰라요.”“그렇구나. 삼촌, 숙모, 그리고 유아야. 우리 먼저 갈게요.”“은아가 돌아오면 우리에게 전화하는 거 잊지 마세요!”비록 어색하기 그지 없었지만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물건을 두고 바로 떠났다. 설유아는 별 생각 없이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과 마주 보고는 온통 의문스러운 얼굴빛을 띄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에게 선물까지 보내고? 우리한테 아부하는 거야?”설재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설마 이번에 또 그 폐물이 말한 대로 딱 들어맞은 건가? 설씨 어르신이 우리한테 구걸을 하다니? 나는 조금도 그를 꿰뚫어보지 못하겠어!”희정은 궁금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놀랐다. “여보, 이건 금장식, 양주, 그리고 제비집 요리, 상어 지느러미, 동충하초……”“이것들을 다 합치면 2천만 원은 넘을 거야. 그 집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시원스러워졌지?”“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부부 두 사람은 백 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다. 은아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젯밤 충전을 안 해놔서 지금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러나 은아도 핸드폰이 꺼져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현에게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자 두 부부를 더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때, 하현과 은아는 이미 가장 번화한 쇼핑몰, 그랜드 하얏트에 왔다. 그랜드 하얏트, 부자들의 쇼핑천국으로 불리는 곳. 듣기로 돈만 있으면 어떤 사치품이든, 당신이 꿈꾸며 바라왔던 물건들을 그랜드 하얏트에서 살 수 있었다. 설은아는 줄곧 이곳에 대해 들어왔었는데 직접 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 그녀는 호기
설은아의 핸드폰은 꺼져있었고 하현은 전화를 끊었다. 이쯤 되자 설민혁과 사람들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들은 분명 설은아 식구들에게 조금 잘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으면 오늘 이 지경까지 떠들썩하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 설씨 어르신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설민혁은 안 좋은 기색이었지만 전화를 받고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할아버지. 우리가 일 처리를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요. 그 폐물 녀석이 은아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를 모르겠어요.”“전화를 했는데 받지도 않고, 핸드폰이 꺼져있어요!”“삼촌과 숙모도 어디 갔는지 모른데요!”이 말을 듣자, 설씨 어르신의 핸드폰을 든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설은아를 찾지 못하면 설씨 집안은 파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이렇게 되면 그의 반평생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빨리 찾아와! 다 나가서 찾아. 내일 아침 전까지 그녀가 반드시 돌아와야 해!”“만약 그녀를 찾지 못하면 우리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서북풍을 마시러 가야 해!”“이 결과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설민혁은 당연히 이런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설씨 집안이 일단 파산하고 나면 그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그에게는 하인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느니 차라리 강물에 빠지라고 하는 편이 낫다! 계속해서 설씨 집안 사람들은 벌떼처럼 설은아와 하현 두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남원이 낯설었고 또 남원은 너무 컸다.이런 곳에서 짧은 시간에 어디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설씨 집안 사람들을 보았을 때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이었다. “설은아가 홧김에 일자리를 구하러 남원을 떠난 건 아니겠지? 우리가 그녀를 해고시켜 버려서?”어떤 사람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컸다. 집세가 끊겼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 그는
이날 밤 설은아가 둘러본 가게는 백 군데가 넘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모두 입어 보았지만 가격표를 보고는 포기했다.그랜드 하얏트 물건들은 다 고가 브랜드라 싼 물건들이 없었다. 하지만 설은아는 이런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현은 계속 참을성 있게 설은아 곁에 있었고, 설은아가 입어본 옷들을 다 기록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가게를 둘러 보았을 때 설은아는 일종의 미션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녀는 하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옷만 입어보고 돌아가자.”“그러자.”하현은 웃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게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려고 할 때였다. 이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자의 몸매는 요염하고 얼굴은 화장이 두꺼워 원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슬리퍼 차림에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남원 토박이 일수꾼 같아 보였다. 여자가 들어 와서는 마음에 드는 옷은 가격표도 보지 않고 바로 구매하도록 시켰다. 이런 대범한 모습은 자연히 그곳의 점원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를 하도록 했다. “이 옷 나도 할래!”요염한 여자가 설은아 앞으로 오더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안내원은 고개 끄덕이며 굽실거렸다. 필경 설은아는 벌써 여러 벌의 옷을 입어봤지만 하현이 돈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설은아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손님, 옷 좀 빨리 벗어주세요. 이쪽 여자분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이 안내원은 비록 공손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 속에는 일종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맛이 배어 있었다. 설은아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이때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솔직히 이 옷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아까 가격표를 보고는 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 안내원이 옷을 벗도록 했다. “이 옷이 마음에 드는데 아니면 창고에
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 이렇게 속물이에요? 이 여자는 손님이고, 나는 손님이 아닌가요?”솔직히 이 옷은 설은아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는데 거기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옷을 벗으라고 하니 그녀는 정말 굴욕감을 느꼈다. 맞은편 안내원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아가씨, 손님들도 상중하로 나뉜다는 걸 아셔야 해요.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분의 구매력을 당신과 견줄 수 있겠어요?”“아마 이 분이 한 번 사는 옷이 당신이 평생 사는 것보다 더 많을 걸요!”이 말을 듣고 그 요염한 여자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수를 확실히 알아야 돼요. 망신당하지 않으려면……”“자신의 분수를 좀 가늠해보고 다시 나랑 비교해 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구요!”이때 그 열쇠를 허리에 차고 있는 남자가 요염한 여자 곁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난뱅이들과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뭐해?”“요즘은 돈이면 다 돼!”“이놈들 아무리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날뛰고 싶다면 돈이라도 좀 보여줘봐!”설은아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 여자는 딱 봐도 셋째 마누라 같아 보였는데 이지경이 되도록 날뛰고 있다니. 그녀 역시 한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안이 이런 상황이라 옷 한 벌 사고 나면 끝이다. 그 다음 방세와 숙식은 어떻게 하지?“당신……”설은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갑자기 일어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게에서는 누가 많이 사냐에 따라 물건을 누구에게 팔지 결정합니까?”아까 그 남자가 하현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왜? 너 나랑 겨뤄볼래?”“이 어르신이 가진 집 한 채는 너희 같은 가난뱅이들이 평생 고군분투해도 얻을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흔들자,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원의 집값으로 따지면 이런 집 한 채는 적어도 6억에서 10억 정도 됐는데 이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
나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했다.“하현, 주광록은 여섯 은둔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주 씨 가문 출신이야.”“은둔가 주 씨 가문은 예전에 금정이 수도였던 시절의 왕가였어.”“그래서 금정 은둔가 중에서 주 씨 가문의 권세가 가장 강해.”“주 씨 가문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대개가 다 관청이나 관청 산하에 있지.”하현은 생각에 잠긴 듯 살짝 눈썹을 오므렸다.그는 요즘 보이지 않는 세력이 은둔가들을 공격하는 듯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그러나 은둔가 가문들이 자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없었다.짚이는 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나천우 부부와 헤어진 뒤 하현은 다시 집복당으로 돌아가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을 둘러보고 몇 가지 풍수적인 사항을 짚어본 뒤 그곳을 떠났다.설 씨 집안으로 돌아온 그는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었다.바로 그때 마세라티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차창 아래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김탁우였다.곧이어 조수석에서 내리는 설은아의 모습이 보였고 김탁우는 신사다운 점잖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이를 본 순간 하현은 눈빛이 차갑게 식었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설은아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곧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방문이 열리자마자 방금 돌아온 설은아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현이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당신, 방금 다 봤어?”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그가 당신한테 접근한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야.”“다음부턴 만나지 마.”하현이 자신을 힐난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설은아는 갑자기 화가 났다.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하현, 지금 상당히 선을 넘은 것 같은데!”“잊지
”오늘은 나천우 부부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의 실랑이는 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다음엔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가서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랍니다!”“나천우, 제수 씨. 나 먼저 갈게요!”“다음에 또 얘기해!”말을 마친 후 주광록은 차 열쇠를 들고 불쾌한 낯빛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나이도 젊은 사람이 저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사기꾼 주제에 감히 날 속이려 해?흥!어림도 없지!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뭐? 죽음의 기운?어이가 없어서 원!하현에 대한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거리던 주광록은 이참에 하현의 집복당에 대해서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샅샅이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불법적인 부분이 발견되는 즉시 그의 집복당을 당장 문 닫게 만들 작정이었다.앞으로 하현이 자신 앞에 어떤 얼굴로 찾아올지 두고 볼 참이다.“주 부장님!”“형님!”나천우는 양측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섰다.“형님! 가지 마세요!”“하 대사는 형님을 속이지 않습니다.”“믿어도 된다고요!”“나천우, 나 씨 가문 사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나빠? 풍수지리술 따위를 믿다니!”주광록은 언짢은 듯 한껏 무시하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진심으로 충고할게. 이 사기꾼과는 더 이상 왕래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된통 속아서 있는 돈 다 뺏기게 될 거라고!”“사업가로서 이런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에 의존하지 말고 사업 구상이나 잘 해!”주광록은 분명 나천우 부부까지 원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말을 마치자마자 주광록은 얼른 뒤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은 한숨을 내쉬었고 각자의 운명이 있음을 느끼며 더 이상 주광록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나천우와 임단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 부부를 따라 쫓아나왔다.하현은 주광록이 검은색 아우디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온통 죽음의 기운이 감돌던 아우디 차체는
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맞습니다. 바로 이 차 열쇠입니다. 당신 차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괜찮으시다면 차를 좀 보여주시겠습니까?”하현의 말을 듣고 주광록은 피식하고 웃었다.하지만 고위직에 있는 그는 이런 이유로 함부로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단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나천우를 쳐다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 사장, 당신이 소개한 이 친구가 농담을 꽤나 잘 하는군.”“오늘은 처음 만난 자리라 농담하는 걸로 알고 더 이상 따지지 않겠어.”“하지만 다음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나천우가 또 이런 사람을 소개한다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의 말이었다.나천우는 흔들림 없는 하현의 근엄한 표정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하 대사는 농담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조심스럽게 충고를 드리자면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만약 금정 지맥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나천우 부부도 하현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하현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나천우 부부는 오히려 하현의 말에 더 믿음이 확고해졌다.임단은 하현에게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주된 내용은 그들에게 있어 주광록은 인성 좋은 형님이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주광록이 꽤나 청렴한 관리임을 눈치챈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광록을 쳐다보았다.“주 부장님, 제 말이 거슬렸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들어봐 주시길 권합니다.”“혹시 최근에 이 차를 가지고 묘지를 가 본 적 있거나 어떤 불길한 물건을 본 적 있으세요?”“아니요!”주광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이 차는 최근에 새로 산 차예요. 최근에는 몰고 다닌 적도 없어요.”“난 묘지에 가 본 적도 없고, 불길한 물건을 본 적도 없어요.”“말하자면 이 차는 오늘 처음 운전한 겁니다!”“평소에 차 열쇠를
나천우는 주광록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형님, 사양하지 마세요.”“하현, 이 형님 좀 봐줘!”“이 형님이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그래!”주광록은 어쩔 수 없이 나천우의 체면을 생각해 몸을 곧게 펴며 말했다.“알았어. 자, 그럼 하 대사 좀 봐 보세요!”방금 두 사람이 악수를 했을 때 하현은 주광록의 몸에 죽음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죽음의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가?간단히 말해서 사람의 운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겉으로 보기에 그의 몸은 여전히 건강한 듯했지만 사람 전체에 생기가 뚝 떨어진 것이다.죽음의 기운은 보통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만 나타난다.하지만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염라대왕이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바로 이런 불길한 기운이 죽음의 기운인 것이다.하현이 자세히 주광록의 얼굴을 보니 역시나 온몸이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만약 그가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미 열흘이나 보름 전에 죽었을 것이다.관운이 그를 그나마 비호해 주었기 때문이다.다만 관운이 그를 지켜주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죽음의 기운이 퍼지면 결국 주광록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한참을 주광록에게 시선을 깊숙이 고정했던 하현은 그의 손에 차량 열쇠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아우디 A8인 것 같았다.하현의 눈에는 바로 이 열쇠가 불길한 기운의 집합체로 보였다.지금 이 순간도 죽음의 기운이 계속 퍼져 주광록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하현은 잠시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보기엔 부장님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아마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게다가 이 불길한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잦은 사고가 발생했거나 심각한 병이 덮쳤을 겁니다.”“
나천우의 말을 들은 주광록은 다 이해한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어르신도 참 강경한 스타일이시지.”“예전에는 나한테도 방법을 좀 생각해 봐 달라고 하셨었지. 아는 명의들 좀 소개해 달라고.”“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었어.”분명 주광록은 은둔가 나 씨 가문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천우의 아버지가 그에게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임단은 주광록에게 손수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많이 애써 주신 거 다 알아요.”주광록은 자리에 앉은 뒤 나천우 부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그런데 두 분이 이렇게 느긋하게 차도 마시러 나올 기분이 되었다니, 아마 문제가 해결된 모양이지?”“하하하! 확실히 해결되긴 했죠!””안 그랬으면 주 부장님의 혜안이 밝았다고 할 수 없죠, 안 그래요?”“그리고 이 모든 게 다 하 대사 덕분입니다.”“주 부장님, 제가 소개해 드리죠.”“이분은 저와 형제나 다름없고 저의 귀인이자 뛰어난 풍수지리사, 하현입니다!”“또한 우리 부부의 오랜 골치거리였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하현, 이분은 금정 관청 주택건설부 부장님이신 주광록, 내 형님이나 마찬가지야.”“앞으로 금정개발에 무슨 어려움이 있거나 누군가 집복당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언제든지 주 부장님한테 전화해. 그러면 그가 모든 걸 책임지고 해결해 줄 거야! 장담해!”하현은 나천우가 자신을 위해 금정의 인맥을 소개해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주 부장님, 안녕하세요.”주광록도 하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말했다.두 사람의 손바닥이 닿은 순간 하현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주광록을 바라보았다.죽음의 기운?한창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주광록의 몸에서 죽음의
하현의 말에 임단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원래 이 일을 몰래 진행하려고 했었다.그런데 하현의 조언을 듣고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몰래 땅을 취하려고 하면 상대는 이 땅에 뭔가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훼방을 놓으려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정개발이 이여웅과 경쟁하기 위해 완전히 악수를 두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손가락질하며 정신 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최소한의 대가로 이 쓰레기 매립장을 차지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충분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금정 화원 유적지를 찾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홍보도 없이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다.임단의 눈에 감격에 겨운 빛이 가득 흘러넘쳤다.그녀는 하현이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진작부터 그녀를 도울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임단으로서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양측 사이에 일어난 약간의 오해가 풀렸을 즈음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웅웅웅!”식사가 반쯤 이루어졌을 때 나천우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은 뒤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하현, 잠시 후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올 거야.”“당신이 이래저래 사람을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하지만 이 사람은 알고 있으면 당신의 풍수관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만약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당신은 금정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커질 거야.”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천우를 힐끔 쳐다보았다.은둔가의 나 씨 가문 나천우가 이렇게 진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상당한 신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누군데?”나천우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약 30분이 지나자 노크 소리가 들렸고 임단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나천우, 아, 제수씨도 계셨네요? 이제 두 분의 사업이 크게
”무덤에 가서 단련을 해요?”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대사님, 저는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껏해야 옆에 있는 공원에 가는 거예요. 무덤에 가지 않습니다!”“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가장 꺼리는 거예요!”노인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무덤에 가 본 적이 없는 그가 왜?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럼 길에서 현금을 주운 적이 있습니까? 그 안에 조심스럽게 접힌 종이가 있어서 혹시 그 종이를 들고 장수를 빌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하현은 노인을 자세히 응시했지만 음기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어딘가에서 음기에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니 돌아가셔서 계속 조심하세요. 어르신의 체질로 봤을 때 해가 뜨기 전에는 외출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하현의 말을 들은 노인 부부는 삼만 원을 남기고 떠났다.하현은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가 아직 남아 있는 손님들의 문제를 해결했다.다행히 이 손님들은 기본적인 택일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았다.거의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하현은 나박하에게 전화를 걸어 금정 남쪽 편에 있는 금공관으로 갔다.두 사람이 예약한 방에 막 도착하자마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나천우와 임단이 일어섰다.임단은 직접 하현에게 차를 따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당신이 금정개발을 위해 방법을 강구해 주었는데 내가 별로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어!”“게다가 당신이 써 준 종이에 물까지 묻혀 망가뜨리다니!”“다 내 잘못이야.”나천우도 미안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당신이 한 말이 자꾸 떠올랐어. 젊은 나이에 풍수지리술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금정의 지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지금까지 금정의 그 수많은 대사들은 좋은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결국 당신이 발견했어!”“당신한테 정말
”다만...”화성봉은 종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지맥도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물이 묻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이곳은 공중 정원의 유적지가 있었던 곳입니다.”“그런데 이곳의 좌표가 없으면 우리는 그 지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금정 화원의 진위 여부를 세상에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안타까워하는 화성봉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임원들의 시선이 갑자기 임단에게 쏠렸다.은연중에 그들의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슬몃슬몃 떠올랐다.“우선, 내가 전화해서 하현에게 물어보겠습니다...”임단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다음 날 아침.일찍부터 집복당에서 인테리어를 지켜보던 하현은 나천우와 임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그들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현에게 청했다.하현은 금정개발에 관련한 일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거절하지 않았다.서둘러 황보정에게 자신의 일들을 맡긴 뒤 그는 떠날 채비를 했다.그러나 하현이 문을 나서기도 전에 장용호가 당황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대사님, 큰일 났습니다. 누가 쓰러졌어요.”“우리 집복당 앞에서 사람이 쓰러졌어요.”“그는 최근 며칠 동안 밤마다 유령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해서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어요.”“줄을 서라고 했더니 결국 기절해서 입에 거품까지 물었어요...”장용호는 은근히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가 손을 쓰는 도중에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자신에게 오명이 씌였을 터였기 때문이다.하현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로비로 다시 들어갔다.로비에는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회색 가운을 입은 노인을 둘러싸고 있었다.노인은 완전히 기절한 채 가끔 경련을 일으키며 입가에 흰 거품을 물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안 죽는다고 버티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잖아요?”“진작에 집복당에 가자고 했건만 괜찮다고 그렇게 버티더니 이게 뭐예요? 시간만 끌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