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밤 설은아가 둘러본 가게는 백 군데가 넘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모두 입어 보았지만 가격표를 보고는 포기했다.그랜드 하얏트 물건들은 다 고가 브랜드라 싼 물건들이 없었다. 하지만 설은아는 이런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현은 계속 참을성 있게 설은아 곁에 있었고, 설은아가 입어본 옷들을 다 기록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가게를 둘러 보았을 때 설은아는 일종의 미션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녀는 하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옷만 입어보고 돌아가자.”“그러자.”하현은 웃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게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려고 할 때였다. 이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자의 몸매는 요염하고 얼굴은 화장이 두꺼워 원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슬리퍼 차림에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남원 토박이 일수꾼 같아 보였다. 여자가 들어 와서는 마음에 드는 옷은 가격표도 보지 않고 바로 구매하도록 시켰다. 이런 대범한 모습은 자연히 그곳의 점원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를 하도록 했다. “이 옷 나도 할래!”요염한 여자가 설은아 앞으로 오더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안내원은 고개 끄덕이며 굽실거렸다. 필경 설은아는 벌써 여러 벌의 옷을 입어봤지만 하현이 돈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설은아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손님, 옷 좀 빨리 벗어주세요. 이쪽 여자분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이 안내원은 비록 공손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 속에는 일종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맛이 배어 있었다. 설은아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이때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솔직히 이 옷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아까 가격표를 보고는 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 안내원이 옷을 벗도록 했다. “이 옷이 마음에 드는데 아니면 창고에
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 이렇게 속물이에요? 이 여자는 손님이고, 나는 손님이 아닌가요?”솔직히 이 옷은 설은아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는데 거기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옷을 벗으라고 하니 그녀는 정말 굴욕감을 느꼈다. 맞은편 안내원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아가씨, 손님들도 상중하로 나뉜다는 걸 아셔야 해요.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분의 구매력을 당신과 견줄 수 있겠어요?”“아마 이 분이 한 번 사는 옷이 당신이 평생 사는 것보다 더 많을 걸요!”이 말을 듣고 그 요염한 여자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수를 확실히 알아야 돼요. 망신당하지 않으려면……”“자신의 분수를 좀 가늠해보고 다시 나랑 비교해 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구요!”이때 그 열쇠를 허리에 차고 있는 남자가 요염한 여자 곁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난뱅이들과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뭐해?”“요즘은 돈이면 다 돼!”“이놈들 아무리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날뛰고 싶다면 돈이라도 좀 보여줘봐!”설은아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 여자는 딱 봐도 셋째 마누라 같아 보였는데 이지경이 되도록 날뛰고 있다니. 그녀 역시 한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안이 이런 상황이라 옷 한 벌 사고 나면 끝이다. 그 다음 방세와 숙식은 어떻게 하지?“당신……”설은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갑자기 일어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게에서는 누가 많이 사냐에 따라 물건을 누구에게 팔지 결정합니까?”아까 그 남자가 하현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왜? 너 나랑 겨뤄볼래?”“이 어르신이 가진 집 한 채는 너희 같은 가난뱅이들이 평생 고군분투해도 얻을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흔들자,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원의 집값으로 따지면 이런 집 한 채는 적어도 6억에서 10억 정도 됐는데 이
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그녀는 이 때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 요염한 여인은 오래 전부터 이런 모습에 익숙했던 것 같았고 그녀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 가난뱅이야. 내 남편은 아주 대범한 사람이야. 4천 만원이면 네 몇 년치 월급이지.”“만약 내가 너라면 지금 당장 이 여동생은 놔두고 돈 받고 꺼지겠다!”한쪽에 있던 안내원도 일이 생길까 싶어 지금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이고, 저도 저의 이런 불쌍함을 알아봐 줄 수 있는 큰 오라버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었어요……”“아가씨,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이 오빠가 너를 위해서 4천 만원을 낼 테니까.”하현은 점점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안내원과 집 부자를 담담히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기왕 쇼핑몰에 왔으니 당신들 규정에 따라서 하지.”“돈만 있으면 되는 거죠? 이 상점에 있는 옷 전부 살게요……”“그리고 당신! 4천만 원은 내가 줄게. 근데 네 여자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이 여자가 내 여자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기를 바랄 뿐이야……”하현의 말투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지만 오히려 의심할 여지 없이 압도적이었다. 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그녀는 하현이 의외로 이런 기세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가장 관건은 그가 뜻밖에도 전부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가게의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을까?전부 다 산다면 몇 천만 원으로도 안될 것이다. “하현, 너 너무 정신이 없는 거 아니야? 너 여기 있는 옷들이 얼만지 알아?”설은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는 그저 데릴사위일 뿐이었다!이전에 서울에서 일할 때 모아둔 돈이 있다 해도 문제는 빌린 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가게 안의 그런 물건들을 살 수 있을까? 그 집 부자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잠시 후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선생님, 돈이 없으시면 지금 돌아가셔도 늦지 않습니다.”안내원도 하현과 낭비하는 시간을 계속 기다려 주지는 못했다. 거기다 직접적으로 나가라며 쫓아냈다.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하현은 말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허허허, 전화를 한다고? 돈이 없으면 돈 있는 척을 하질 말지, 무슨 전화를 하겠다는 거야? 내가 보니 이 전화는 오래 걸릴 거 같은데?”요염한 여자는 팔짱을 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 하현은 전화한다는 핑계로 도망간 거 같았다. 설은아도 민망한 얼굴이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면 되지. 왜 전화한다는 핑계를 대는 건지. 지금 그녀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한 동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30분쯤 지나자 가게 안에서 누군가 하이힐을 신고 급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그 가게 점장이 빠른 걸음으로 나와 핸드폰을 쥐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점장님, 여기 어떤 사람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그 안내원은 자신의 점장을 보자 마자 알랑거리는 얼굴로 건너갔다. “탁_____”쟁쟁거리는 소리가 나자 점장은 안내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을 한 대 갈겼다. 그리고는 설은아 앞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아가씨, 저희 안내원의 서비스가 좋지 않아 쇼핑에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변상하는 뜻으로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저희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점장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랜드 하얏트 역시 이전에 하현이 사들인 것으로 최근 천일그룹에 통합되고 있었다. 방금 그랜드 하얏트의 총매니저가 이 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이 그 가게에 쇼핑을 하러 갔는데 카드를 놓고 왔으니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하였다. 이 점장은 줄곧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집 부자인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들의 회장일 리가 없었다. 이 남자 말고 가게에
지금 이 집 부자는 점장과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이 이 순간만큼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요염한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한 사람은 하현의 신분을 추측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하현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이 큰 일이 별일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여인은 아직도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고 있었다!이건 그들을 죽이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벌써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지금 그 역시 그 졸부는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점장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방금 천주환씨한테 전화를 했는데 조금 있으면 와서 결제 해줄 거예요.”‘천주환’이 세 글자를 들었을 때 이 점장의 머리가 ‘쿵’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이 세 글자가 무엇을 의지하는지 몰랐지만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사장님, 이건 그 그랜드 하얏트 사장의 이름이었다!웬만한 사람은 사장의 성도 뭔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사장의 이름을 그대로 말할 수 있다니.게다가 방금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다니, 이건 모든 것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빠짐없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 점장은 겨우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 마음에 드시는 물것이 있으시면 가져가셔도 됩니다. 제 성의라고 봐주세요……”“성의?”하현은 웃었다.“내가 돈이 모자라서?”“네네, 안 부족하시죠, 저저……”점장은 ‘저’라는 말만 한참 하다가 이 한 글자 밖에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때 바로 양복 차림에 하현과 비슷한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하현 앞에 이르자, 그는 황송한 얼굴로 말했다. “하……”하현은 담담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젊은이는 숨을 깊이 들이 쉬며, ‘세자’라는 두 글자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난 후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금 인출 할 수 있죠?”하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저 4천만 원만 뽑을게요.”천주환은 감히 묻지도 못하고 달려가더니 잠시 후 봉투를 하현에게 건넸다. 하현은 쳐다보지도 않고 정문 쪽을 향해 봉투를 든 손을 흔들었다. 봉투 안에 있던 돈 뭉치들이 전부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주위를 끌었고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여기 4천만 원이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슬그머니 빠져나갈 채비를 하던 집 부자와 요염한 여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방금 이 젊은이가 그들에게 4천만 원을 줄 테니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까짓 돈이 뭐? 내가 거진 줄 아니? 꼴랑 이 4천만 원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요염한 여자는 불만이 가라앉지 않는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하현은 말 없이 그저 그 집 부자를 바라보았다. 집 부자는 하현의 표정을 보며 이 순간 자신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만약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눈앞에 있는 이 젊은이가 반드시 그가 무릎을 꿇도록 도와줄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랜드 하얏트 사장 천주환도 그 앞에서 공손하고 깍듯하게 하니 그 누구도 감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돈이 좀 있다고 그 앞에서 뭐라도 되겠는가?곧 이어 그 집 부자는 군소리 없이 바로 요염한 여자의 얼굴에 뺨을 때렸다. “어디서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 이 여자분께 무릎 꿇고 사과해!”요염한 여자는 어리둥절 했다. 이 순간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이 젊은이의 신분이 분명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집 부자가 이렇게 엉뚱하게 행동 했을 리 없다. 잠시 후 그녀는 ‘투둑’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설은아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가 사과를 마치자 이 집 부자는 그제서야 하현의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선생님 다른 볼 일은 없어서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하현이 고개를 끄덕이
여자는 천성이 쇼핑광이라고들 한다. 이 밤, 설은아는 이 옷들 속에 빠져있었다. 심지어 잠도 드레스 룸에서 잤다. 하현은 발등에 돌이 찍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쓴웃음을 짓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설은아의 관심을 이렇게 돌렸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하현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을 잊어 버렸다.왜냐하면 그녀는 방금 핸드폰 충전을 마쳤고, 벨소리가 다급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설은아는 아직 어리둥절했고 하현이 전화를 받으며 한마디 욕을 했다. “이렇게 아침 일찍 누가 전화를 합니까? 지금이 몇 신지 보지도 않은 거에요?”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은 놀라며 또 기뻐했다. 하현과 은아는 밤새 옷을 입어봤다. 설민혁과 두 사람은 모두 어디 가지도 않고 설은아의 집 아래층에 쳐 박혀서 밤새 전화를 했었다. 지금 전화가 연결되자 세 사람은 뛸 듯이 기뻤다. 설동수는 설민혁이 화를 낼 까봐 황급히 핸드폰을 뺏어갔다. “하현아. 나 네 큰 아버지 설동수야!”“어? 그러세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안 주무세요? 정신이 어디 이상해진 거 아니에요!?”하현이 이렇게 입을 열자 전화 맞은편에 있던 설동수는 거의 화가 폭발할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차분한 마음으로 말했다. “하현아, 은아는? 바꿔줄 수 있어? 내가 급하게 말할 게 있거든!”하현은 아직 잠이 덜 깬 은아를 한 번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가 아직 자고 있어서 전화 받기가 어려우니 무슨 일인지 저한테 말해보세요.”설동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현아, 전에 너희 집 식구들을 제명하고, 설은아를 해고 시킨 건 실수였어!”“어르신께서 방금 은아한테 재무부장을 새롭게 맡기기로 결정 하셨어!”“정말 좋은 소식이지? 은아한테 빨리 일어나 보라고 해. 별장으로 건너오라고. 어르신이 직접 결정하신 일이야.”지금 이 일은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필경 설동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일하는 거 안 좋아해요. 저는 제 아내가 저를 돌봐주는 걸 좋아해요.”하현의 말투는 담담했고, 맞은편에 있던 설동수와 두 사람은 화가 나서 거의 흰자위가 뒤집힐 뻔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어봤지만, 정말로 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도 이렇게 당당한 남자는 처음 봤다. “좋아, 그럼 도대체 너희들이 원하는 조건이 뭐야?”설동수는 계속 성질을 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투가 안 좋아서 하현이 또 전화를 끊을까봐 무서웠다. “조건은 아주 간단해요. 누군가 그녀를 해고 했으니, 그 누군가가 직접 그녀를 구하러 오면 돼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 내가 그녀를 해고 했으니 내가 직접 부탁할게!”설동수가 서둘러 말했다.하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큰 아버지, 정말 저를 바보로 아세요?”설씨 집안에서 그런 권력이 있었다면 지금 저에게 전화를 하셨겠어요?”“설씨 어르신께 청하라고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는 안 돌아갑니다.”“뚜뚜뚜……”하현의 태도는 비할 데 없이 완강했다. 설동수는 시간을 보았고 이미 아침 8시가 넘었다. 그는 지체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보고 할 수밖에 없었다. 설씨 어르신 역시 밤을 꼬박 샜다. 지금 설동수의 보고를 듣고 숨을 헐떡거리다 거의 기절할 뻔 했다. “뭐? 그 데릴사위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우리에게 순식간에 쓸려갈 수 있는 놈이 감히 이런 조건을 내 놨다고!”“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이때 설씨 어르신은 일종의 치욕스러움을 느꼈다.그의 손이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는데 한쪽은 그의 자존심이었고, 한쪽은 그의 가업이었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이미 그의 마음속에 답이 있었다. ……같은 시각, 그랜드 하얏트의 드레스 룸. 쉬고 있던 은아는 이미 깨어났다. 이때 그녀는 조금 이상한 듯 하현을 쳐다봤다. 남원에 온 후로 하현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