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그 데릴사위 인가 봐? 설씨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설씨 집안에서 지위가 하나도 없나 봐!” “저렇게 궁상스럽게 입은 걸 보니, 돈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이런 가난뱅이한테 2억이라니. 오래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는 않겠네. 나는 이 사람이 동의할거 같아.” “하지만 설씨 집안 사람들도 정말 재미있다. 이런 공연을 만들어서 우리를 모두 웃게 해주다니. 하하하……”“……”현장에 있던 한 무리의 손님들은 모두 의견이 분분했다. 재미있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 데릴사위가 지금 무릎을 꿇을 것인지 아닌지 추측이 무성했다. 설민혁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호통을 쳤다.“무릎 꿇어. 나한테 절해!”지금은 예전 같지 않았다. 지금 설민혁은 여러 개의 산이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는 하현 이 데릴사위가 지금 감히 함부로 덤벼 들거라 생각지 않았다. 하현은 담담하게 그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동자 속엔 찬 기운만 있을 뿐이었다. “무릎 꿇어!”설민혁은 하현의 어깨를 꾹 눌러 억지로 무릎을 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르신께 무릎 꿇으라고!!!”설민혁은 온 힘을 다해 하현을 땅에 쓰러뜨리려 했다.“탁_____”결국 하현은 갑자기 설민혁의 따귀를 후려 갈겼다. 설민혁은 그대로 7-8m 정도를 날아갔다……조용했다. 장내는 아주 조용했다. 설씨 집안 사람은 이 광경을 보고 아직 그렇게 흔들리진 않았다. 필경 하현이 설민혁을 여러 번 때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이 데릴사위는 이따금씩 신경질을 부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하객들은 어리둥절했다는 것이다. 이 데릴사위는 도대체 뭘 하는 건가?그는 뜻밖에도 설민혁을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하지만 그는 설씨 집안의 후계자가 아닌가!“탁탁……”설민혁이 막 발버둥치며 일어나려 할 때 하
설동수는 이때 의문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시간상으로는 벌써 도착했을 텐데, 제가 그 비서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요……”설동수는 곧 전화를 하고는 잿빛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큰 분이 이미 오셨다가 가셨다는데요?”“뭐? 오셨었다고?”“그 분이 말하길 설씨 집안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다는데요……”“알았다! 방금 그분이 왔을 때 하현 이 폐물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보고 화가 나서 떠났을 거야!”“분명 우리 설씨 집안이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야!”설씨 어르신은 노하며 소리쳤다.“하현 이 폐물 넌 죽어야 돼!”이때 많은 사람들이 반응했다.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 하현 때문에 화가 나서 큰 인물이 떠나버렸네! 설씨 집안의 가운을 망쳐버렸네!하현, 네가 바로 설씨 집안의 죄인이야! 이 순간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를 갈았다. 하현을 산 채로 잡아먹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설씨 어르신은 몸을 돌려 지금 설재석을 보며 표독스럽게 말했다.“나도 동의해! 이혼!”“설은아랑 그 사람이랑 이혼시켜라! 그 다음 그를 굴려버려!”“그가 우리 집에서 나가기 전에 그가 죽은 것만 못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분명, 설씨 어르신은 이미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뒤쪽의 설은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하현이 뜻밖에도 이렇게 큰 화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손님과 주인이 함께 기뻐해야 할 환영 만찬은 이렇게 끝이 났다. 손님들이 떠나갈 때 하나같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 거물을 만날 인연이 없었는데 보잘것없는 설씨 집안이 무슨 자격이 있겠어?데릴사위가 일을 참 깔끔하게 했네! ……밤. 설씨 집안은 남원에서 별장 한 채와 아파트 열 채를 임대했다. 하지만 금싸라기 땅인 남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나쁘지 않은 대우였다. 이때 설은아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얼굴 빛이 좋지 않았다. “은아
설재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현, 서울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네가 어떤 모습이었다고 생각해?”“폐물! 쓸모없는 놈! 쓰레기! 이게 너를 표현해주는 말이야!”“은아를 보호한다고? 설씨 집안을 보호해?”“뭘 가지고 보호 할건데?”희정 역시 비웃으며 말했다. “허풍만 떨면서 무책임하게 주둥이를 놀려? 하현! 내가 제발 부탁하는데, 허풍을 떠는데도 한계가 있어!” 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지금 상황은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달라요.”“서울에서는 제가 잠잠히 있었어요.”“하지만 남원으로 돌아온 이상 저는 왕이 되어 귀환한 거라고요!”이때 설은아도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하현! 당신 좀 현실적일 수 없니?”“왕이 귀환을 했다고!?”“당신이 능력이 좀 있다 해도 아직은 조금씩 노력하면서 성장해가야 돼!”“요즘 나는 당신을 보면 모든 게 달라진 거 같아.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당신 허풍 떠는 버릇 좀 고칠 수 없어?”“내 걱정 좀 덜어 줄 수 없어?”하현은 한숨을 쉬며 진지하게 말했다.“은아야, 너는 나를 믿기만 하면 돼. 나는 너를 잘 보호할 수 있고, 설씨 집안도 감싸줄 수 있어. 이 모든 건 다 너를 위한 거야.”“당신……”설은아는 지금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울에 있을 때는 하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서 그녀는 자신이 시집을 잘못 갔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원에 왔다고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가 있는 걸까? 설마 번화한 곳에 왔다고 바로 이렇게 그를 바보로 만들었단 말인가?설은아는 차갑게 말했다. “좋아, 당신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그럼 증명해봐! 어떻게 나를 보호 할 수 있다는 건지!”“지금 할아버지가 나를 왕씨 집안에 시집을 보내시려고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왕씨가 굽실거리도록 해보라고!”“그건……”하현은 잠시 멍해졌다. 만약 3년 전이었다면 왕씨
“입 다물어! 나는 당신이 이렇게 비현실적인 얘기 하는 거 듣기 싫어!”“하현, 당신 몇 살이야? 당신이 3살짜리 어린애인 줄 알아?”“우리 좀 현실적일 수 없을까?”“당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한걸음씩만 디디면 나는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어!”설은아는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하현은 입을 벌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 순간 설은아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설은아는 옷장에서 양복 한 벌을 꺼냈다. “이거 너한테 주려고 샀어. 내일 가족 모임 때 이거 입고 가자.”“내가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다시 기회를 줄게!”“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해. 오늘 같은 일이 생겨서는 안돼. 알았지?”하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이렇게 말을 마쳤다.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가 하엔 그룹의 회장이라고 했지만 설은아는 믿지 않았다. 남원에 와서 자신이 설씨 집안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설은아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사실 설은아만 안 믿은 게 아니라 설씨 집안 모두가 믿지 않았다. 하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밤새도록 말이 없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희정은 손바닥으로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하현을 깨웠다. 설재석은 하현을 노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찌질이. 아직도 안 일어나고 뭐해? 오늘 너는 반드시 은아와 이혼장을 받으러 가야 돼!”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이에요. 더군다나 저는 이혼하지 않을 거에요.” “너희들의 일? 너 말 다했어?”“하현, 내가 너한테 말하는데 그날은 우리 설씨 가문이 너를 데릴사위로 삼았었지만, 오늘은 너를 설씨 가문에서 내 쫓을 거야!”“너는 정말로 우리 설씨 가문에 기대서 계속 먹고 마실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우리 설씨 가문에게 너 같은 폐물은 필요가 없어!”“넌 자격이 없어!” 설재석은 욕을 퍼붓더니
“어? 쓸모없는 녀석! 네가 우리 설씨 집안의 큰 일을 망쳐놓고도 여전히 얼굴을 들이밀어?”“너 정말 우리가 널 때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오늘 셋째 삼촌이 설씨 어르신 앞에서 사정하지 않았으면 나는 너를 때려 죽였을 거야!”“폐물, 내가 너한테 충고하나 할게!”“……”순간, 한줄기 시선이 하현의 몸 위로 떨어졌다. 설씨 어르신은 오직 냉랭한 얼굴이었을 뿐, 하현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여기는 그저 남원이었기 때문에 설재석은 많은 인맥들을 가지고 있었고, 왕씨 가문의 일 역시 그가 연락을 하러 간 것이었다. 그래서 설씨 어르신께서 체면을 세워주신 것이다. 만약 여기가 서울이었으면 설씨 어르신의 성격에 벌써 하현은 쓸려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그는 하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씨 어르신이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설지연네 식구들이었다. 필경 설지연은 곧 왕씨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될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는 줄곧 마음에 들어 했던 설민혁네 식구들이 설지연네 식구들의 지위보다 못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설은아네 식구들은 먼저 앉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막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셋째 삼촌! 여기는 남원이지 서울이 아니에요!”“할아버지께서 지금 우리는 남원에서 새로운 귀인이니 가문의 규칙들도 좀 고쳐야 한다고 하셨어요.”“그러니, 여기에 앉으시면 안돼요!” 설민혁이 입을 열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설재석은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이 술집은 내 연줄로 예약한 거야. 지금 내가 앉지도 못하는 거야?”“삼촌 화부터 내지 마시고 새로운 규칙부터 들어보세요.”설민혁은 일어서서 팔짱을 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남원의 새 귀인은 귀인의 모양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늘 비록 가족 내부 회의이긴 하지만 이따가 왕 도련님도 오시니까 우리가 더 꼼꼼하고 규모 있는 모양새를 갖춰야죠. 우리 설씨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곧 종업원이 와서 작은 테이블을 하나 차려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수저와 그릇을 제외하고 차와 야채 두부만 있었다. 몇 명 종업원들 역시 세상 물정에 훤했는데 설재석 일가의 눈빛을 보며 의아해했다. “자! 빨리 앉아요. 서서 망신 당하지 말고요!”설민혁은 웃을 듯 말 듯 입을 열었다. 설재석의 얼굴은 하얗고, 파랗게 질렸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건너와 앉았다. 그들 일가는 어디까지나 설씨 집안 사람이었다. 설재석이 남원에서 인맥이 좀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다른 설씨 일가들이 한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어젯밤 하현 이 폐물이 설씨 집안의 큰 일을 망쳐놓았으니 말이다. 그들 일가를 쓸어버리지 않은 것 만해도 이미 많이 참아준 셈이다. 이때 하현이 갑자가 설은아의 손목을 잡아 끌면서 돌아보며 말했다.“설민혁,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너에게 하나 묻자. 설씨 집안에 2천억 원을 바쳤으면 어느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거야?”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설씨 집안이 지분 51%의 2천억 원을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은 그가 꺼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말하자면 그가 설씨 집안에 공헌한 것은 2천억 원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지금 설씨 집안은 남원에 올 자격도 없었다. 하현이 이 말을 하자 장내는 모두 멍해졌다. 한 사람 한 사람 놀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하하하하……”몇 십 초 후, 온 장내가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모두들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어르신, 이 모자람을 용서해주세요. 저는 어제 그가 바보짓을 했다고 믿습니다! 하하하!”“2천억? 이 집안은 2억만 꺼내도 나쁘지 않은데!”“셋째 삼촌의 일평생 명예가 맨 마지막에 이 데릴사위 때문에 망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네!”“어르신이 설은아에게 결혼을 재정비 하자고 하셨는데, 그녀가 아직도 거절했다고요? 이 바보 같은 놈 때문에요? 웃겨 죽겠네요!”“하지만 2천억 사위라면 왕씨 집안 사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설씨 어르신도 따져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왕 도련님, 그 큰 인물이 도대체 무슨 내력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왕태민은 신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거물급 인사는 우리 왕씨 집안도 관계를 많이 해서야 알게 된 건데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실 거에요!”“증거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그가 하씨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에요!”“3년 전, 하씨 가문을 다시 눈부시게 이끌어 갔던 하씨 후계자!”“하지만, 그는 은퇴한지 3년이 되었어요.”“이번에 강한 세력을 가지고 돌아오다니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어요!”“그 하씨 후계자를 한 번 만나려고 지금 얼마나 많은 거물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열을 올리고 있는지 몰라요.”“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그 하씨 후계자과 같은 대학을 다녔어요. 몇 번 만나 연락처도 남겼고요!”“기회를 잡아서 반드시 하씨 후계자과 만날 약속을 잡을 거에요.”“만약 하씨 후계자가 원한다면 설씨 집안에게 손을 내밀어 지지해줄 거에요. 그러면 설씨 집안 사람들은 아마 일류 가문이 될 거에요.” 왕태민은 여기까지 말하고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씨 가문의 후계자여! 지금 하씨 대문호 최정상의 인물들을 뛰어 넘는 자.그는 이미 한국 최정상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번에 돌아왔을 때 이렇게 크게 진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단하네요! 왕 도련님이 그런 인물을 아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그 하씨 후계자는 듣기만 해도 완강 하실 거 같아요!”“왕씨 도련님, 기회가 되시면 저희도 꼭 한 번 소개시켜주세요!”이 사람들은 지금 미친 듯이 왕태민을 우러러 보고 있다. 설씨 어르신은 지금 감탄하는 얼굴로 왕태민을 보며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 만약 왕태민을 자신의 손녀사위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설재석 부부는 지금 얼굴색이 복잡해졌다. 그
지금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도 이러쿵 저러쿵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은아야. 앞으로 이 데릴사위 좀 데리고 나오지 마라!”“너는 망신당하는 게 싫지도 않니! 우리는 망신당하는 거 싫어!”“맞아! 빨리 그를 문 밖으로 쓸어내! 체면 깎이잖아!”“우리 설씨 집안은 지금 남원의 귀하신 몸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한 데릴사위를 알게 되면 이후에 어떻게 사람들과 섞여서 지낼 수 있겠어?”“네가 체면 안 차린다고 우리도 차리지 말아야 되겠어?”“설재석, 너희 집 식구들은 정말 끝까지 썩었구나. 나는 너희 집 식구들에게 정말 실망했다!”설동수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설재석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이! 우리 집안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평소에 말솜씨가 좋았지만 오늘은 얼굴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너무 치욕스러웠다!원래 남원에 온 후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었고, 이전과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남원에 온 후 모든 것이 수치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설은아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여러 가지 빈정거리는 소리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 줄기의 눈물만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창피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었구나!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전에 하현에 대해 쌓아 놓은 약간의 호감마저도 전부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녀는 하현이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고, 하현이 못난 놈인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다만 그가 노력하기만 한다면 좋겠다! 남원에 온 이후 그는 착실하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현은 정말 그녀를 실망 시켰다. 심지어 절망하게 만들었다!비현실적이었다!다른 사람의 총애를 얻으려고 했다!한사코 체면을 세우려고 했다!어릿광대 같았다!이전에 이혼할 생각이 없었던 설은아는 지금 이혼을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녀는 이 사람이 그녀의 남편인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