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소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옆에 있던 화이영이 놀라서 입을 열었다.“우 간호사,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요?”“지금 환자 너무 위험하다고요!”“빨리 처치해야 해요!”“이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우 간호사 당신만이 무도 고수예요!”“우리는 환자의 내면 바이탈을 안정시키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당신밖에 없다고요!”우소희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난감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부원장님,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무학의 이론으로 수습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에요...”“좀 더 고명한 사람을 따로 모셔오는 게 좋겠어요...”말을 마치는 우소희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좋은 핑곗거리를 찾아 둘러댄 자신의 순발력에 갈채를 보낼 따름이었다.그러자 화이영은 얼굴이 급변하며 소리쳤다.“우 간호사!”“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농담을 하고 있는 거예요!”“당신이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하지만 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할 뿐 절대 질투심 따위는 갖지 않을 거예요!”“여기 모두가 의사이고 의료 윤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인 사람들이에요!”“그러니 부담 같은 건 갖지 말아요!”“중요한 건 당신이 어제 죽음의 문턱에 들어가려는 환자를 살렸다는 거예요.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해냈다고요!”“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환자를 살리지 못할 리가 있겠어요?!”“자, 농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앞으로 나서요...”“어서 환자를 살려요!”“그렇지 않으면 인명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왕 사장님이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요. 우린 절대 감당할 수 없어요!”“당신 제대로 알아야 할 거예요! 이 환자는 일반 환자가 아니라 은둔가 왕 씨 가문 금지옥엽이라는 걸!”“그들은 당신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에요...”화이영은
이 말을 듣고 왕문빈은 긴장이 풀렸다.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우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 간호사, 제발 부탁해.”“내 딸을 구해 줘. 백억! 아니, 아니. 천억! 천억이라도 바칠 테니까!”“제발 우리 딸 좀 구해 줘!”천억이라는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의료진들은 모두 눈꺼풀일 펄쩍 뛰었다.그들이 메스를 잡고 환자의 배를 가르고 긴 시간 사투 끝에 환자를 살려도 평생 받아 보지 못한 돈이었다!그런데 우소희는 단번에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이다!인생, 정말 한 방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자, 그럼...”“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우소희는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왕자혜의 곁으로 갔다.하현이 사고 현장에서 보였던 동작들을 천천히 회상하며 그녀는 오른손을 부르르 떨면서 왕자혜의 가슴에 있는 혈을 꾹 눌렀다.왕자혜의 몸이 순간 파르르 떨리자 우소희는 도저히 더 이상 누를 수가 없었다.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사람을 살려내게 된다면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부귀영화가 함께하는 꽃길이 된다는 걸 그녀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다.반대로 여기서 실패하고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그녀는 죽음보다 더 처참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은둔가 왕 씨 가문이 그녀를 잡아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 게 분명했다.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결국 실패할 확률은 100%에 가깝다.게다가 우소희조차도 자신이 지금 누른 혈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혹시 운이 좋으면...어쩌면...우소희가 무겁고 어두운 표정을 보이자 왕문빈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왕문빈의 부인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우 간호사. 천억으로는 부족해?”“사람만 구해 준다면 이천억도 줄 수 있어!”이천억?이 말을 듣고 우소희는 왕 씨 가문에서 왕자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더욱 뼈아프게 알게 되었다.왕문빈의 부인은 왕 씨
우소희는 왕문빈의 부인에게 참혹하게 얻어맞았고 몇몇 경호원들에 의해 보안실에 잠시 구금되었다.그녀는 한참을 통곡하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화이영은 가장 먼저 우소희로부터 하현의 전화번호를 받아 얼른 통화를 한 후 한달음에 집복당으로 갔다.하현은 집복당 로비에 앉아 있었고 끓인 찻물을 찻잔에 넣을 겨를도 없이 화이영이 들이닥쳤다.“당신이에요?”하현의 얼굴을 보고 화이영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교통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던 사람이 하현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다시 만나는 날 집복당에 와서 바닥이나 청소하라던 하현의 말을 떠올리자 화이영의 안색이 갑자기 일그러졌다.하지만 하현이 주광록을 살렸다는 것 자체가 그의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하지만 화이영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오만함이 하현을 향해 순순히 고개 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하 대사, 맞죠?”“왕자혜 쪽에 문제가 생겨서 우소희 간호사가 수혈을 했는데 그 후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어요.”“우리는 최선을 다해 조치를 취해 보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이 상황에서 환자는 기껏해야 30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거예요.”우소희가 환자에게 수혈을 했다?하현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우소희가 그렇게 대담한 행동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은둔가 왕 씨 가문을 상대하는 사람이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다니!순간 하현은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화이영의 차에 올라탔다.그리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은둔가 왕 씨 가문 사람들이 날 찾으러 올 거라 생각했었는데.”화이영의 등장이 적잖이 하현을 놀라게 한 것이 분명했다.화이영은 핸들을 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우소희가 개인적인 욕심에 거짓말을 했지만 그녀도 결국 우리 병원 사람이에요.”“그녀의 행동 때문에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고 왕 씨 가문은 크게 분노하고 있어요.”“지
”나는 비록 의사도 아니고 의술도 모르지만 어젯밤 왕자혜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내었으니 오늘도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심지어 난 당신의 천식도 치료해 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건 원래부터 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나중에 우리 집복당에 와서 바닥 닦는 건 잊지 말아요.”하현의 말을 들은 화이영은 싸늘한 기운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왕자혜의 목숨을 구한 뒤 왕 사장님 부부가 더 이상 우리 병원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 집복당에 가서 바닥을 닦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 하녀라도 되어 시중들 테니까요!”그녀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분명 그녀의 오만한 자존심은 그녀로 하여금 하현에게 함부로 고개 숙이게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하현만이 왕자혜를 구해 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미안하지만 당신은 내 하녀가 될 깜냥이 못 돼요!”“아 정말!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화이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난 예쁘고 분위기도 있고 학력도 높아요. 신분은 어떻고? 그런데 뭐? 당신 하녀가 될 깜냥이 못 된다고요?”하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한 눈빛으로 말했다.“나한테는 형나운이라는 하녀가 있거든요.”“뭐 아직도 마음에 딱 드는 건 아니지만.”“내 하녀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형나운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처음에 화이영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내 정신이 퍼뜩 들었다.형나운이라면 은둔가 형 씨 가문 딸이었다.그런 그녀가 하현의 하녀라고?!도저히 뭐가 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그녀의 마음속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하지만 만약 하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정말로 하현의 하녀가 될 자격이 없긴 했다!차는 번개처럼 빠르게 금정병원 특수 병동에 도착했다.병실 입구의 복도에는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고
곧 사하담은 왕자혜의 맥에서 손가락을 떼었고 가늘게 눈을 떴지만 조금도 미동이 없는 표정이었다.몇 분이 지나고 나서 왕문빈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선생님, 내 딸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 겁니까?”“살아날 수 있을까요?”은둔가 왕 씨 가문은 사업을 크게 하긴 하지만 무학에 있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강호의 생리에 대해 잘 모른다.왕문빈은 지금 무학의 성지에 가서 고수를 찾을 시간도 없고 아내가 수소문해 데려온 이 사하담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복잡해요. 아주 복잡하게 되었어요!”사하담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따님의 경우 원래는 단순 평범한 교통사고였는데 하필이면 무학을 수련한 몸이라 내면에서 끊임없이 마찰이 일어나고 있어요...”“평소에는 이런 내면이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겠죠!”“하지만 지금 이런 몸은 오히려 목숨을 구하는 데 독이 되고 있습니다!”“아주 복잡해졌어요!”사하담의 말을 들은 왕문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럼 선생님의 힘으로도 내 딸을 어찌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그 정도는 아닙니다.”사하담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었다.“따님의 상황을 해결하려면 좀 복잡하고 번거로운 면이 있다는 뜻입니다...”“최소 10년 내공을 소모해야만 따님의 복잡한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여기서 힘을 다 쏟으면 몸에도 무리가 상당히 갑니다. 그런데 강호에도 아직 상대할 사람들이 많아서 참 어렵군요.”“10년 내공을 모두 다 쏟게 되면 아마도...”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사하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환자의 내면을 진정시키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고 힘든 일인가?10년 내공을 소모해야 할 만큼?무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을 속이려는 것인가?그러나 사하담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하나 사리에 들어맞는 것을 보고 하현도 일일이 따질 마음은 없었다.어쨌든 사하담이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상황을 부풀려 보수를
사하담의 모든 동작은 매우 신중하고 안정적이었다.그가 여기저기 혈을 누르자 왕자혜의 얼굴이 조금씩 변화하는 게 보였다.그녀의 얼굴색이 붉어졌고 호흡도 정상적으로 보였다.그녀를 둘러싼 기기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언제든 회복할 자세가 된 것 같았다.화이영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역시 사하담이에요! 그 이름이 결코 헛되지 않았어!”“혈색이 돌아왔어!”하현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사하담의 동작을 지켜보기만 했다.사하담의 손이 마지막으로 왕자혜의 단전의 혈을 찍으려고 했을 때 하현이 차갑게 내뱉었다.“그만!”“더 이상은 안 됩니다!”“환자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겁니까?”이 말을 들은 사하담은 놀라서 손바닥을 삐끗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가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하현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염라촉명수를 어디서 배운 거죠?”하현의 말을 들은 사하담은 눈꺼풀이 갑자기 떨리고 안색이 일그러졌다.젊은이가 어떻게 자신의 수법을 알아차린 걸까?이것은 그가 묘강에서 배운 수법이었다.염라촉명수는 죽어 가는 사람의 생기를 북돋우고 빛을 되찾게 하여 마치 회복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이다.과거 묘강에서 범인을 심문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전해지지 않았다.무학의 성지 사람들조차도 이런 수법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젊은이가 알고 있는 걸까?왕문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이봐, 당신 뭐야? 왜 사하담 선생님의 일을 방해하는 거야?”“왕 사장님, 바로 이분이 하현입니다.”하현이 갑자기 나서서 사하담의 행동에 아는 척을 하고 나선 것에 질투가 나긴 했지만 화이영은 하현을 위해 입을 열었다.“교통사고 현장에서 왕자혜를 구한 사람이 하현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딸을 구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왕문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왕문빈의 눈동자
왕문빈은 금정의 대단한 가문의 수장답게 냉정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부원장, 당신이 악의가 없었다는 거 잘 알아.”“당신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지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하지만 분수를 지켜야지!”왕문빈의 얼굴에 냉기가 가득했다.“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병원에 너무나 많이 실망했어.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데려온 사람을 또 믿을 수 있겠어?”“그러니 제발 나가 줘.”왕문빈의 부인도 성이 난 얼굴로 말했다.“꺼져!”“어서 꺼지라고!”“당신들이 방금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내 딸은 벌써 깨어났을 거야!”“똑똑히 들어! 내 딸이 당신 때문에 살아나지 못한다면 나 정말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하현은 왕문빈의 부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사하담을 바라보며 말했다.“왕 사장님, 부인. 사하담의 처치에는 문제가 있습니다.”“저를 믿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그래?”“그럼 어디 한번 보여 줘 봐?”왕문빈의 부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젊은이, 사람이 제대로 못 배웠군. 어영부영 비위나 맞춰 환심이나 사려고?!”“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함부로 날뛰어도 되는 거 같냐고?”“게다가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절대 속일 수 없어, 알아?”“다행히 우리도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다 모니터링하고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신 말에 완전히 속아넘어 갔을 거야!”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왕문빈의 부인 말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지금 왕자혜가 깨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고 혈색도 돌아오고 있는데 어떻게 사하담의 처치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왕문빈은 자신의 부인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살짝 손을 흔들어 화이영에게 빨리 이 사람을 데려가라고 지시했다.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왕 사장님, 부인. 두 분이 날 믿지 않으니
”두 분이 소중히 여기는 사하담은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법으로는 절대 따님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도요.”“그래서 그는 염라촉명수라는 수법을 써서 마지막에 따님을 잠깐이라도 소생시키는 척하려는 겁니다.”“그 후 자신은 돈을 가지고 떠나면 그뿐인 거죠. 하늘로 높이 나는 새가 되어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을 겁니다.”“은둔가 왕 씨 가문의 수완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그가 연경, 대구, 심지어 외국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내용처럼 술술 내뱉었지만 하는 말마다 사하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사하담, 이번 기회에 한몫 크게 벌어 보려는 거 이미 다 알고 있어요.”“하지만 당신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금정에서 여섯 은둔가가 어떤 존재인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존재인지 말입니다.”“당신이 그들을 속인 후 운 좋게 도망쳤다면 그걸로 끝이겠지요.”“하지만 만약 그들이 당신을 24시간 동안 붙잡아두면 당신은 아마 죽게 될 겁니다!”“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이럴 때 목숨을 건 모험을 당장 그만두고 이 일에서 손을 뗄 거예요. 내 말, 알아듣겠습니까?”말을 마친 뒤 하현은 유유히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개자식! 어디서 날 모욕하고 있는 거야?!”“당장 관청에 고발할 거야!”사하담은 분노에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저에 대한 모욕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왕문빈의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사하담, 선생님의 명성에 대해선 익히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선생님을 믿어요.”왕문빈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하담, 우리 딸이 깨어난 뒤 바로 떠나지 말고 잠시 머물러 주겠습니까?”“내 딸이 회복된 뒤 직접 당신을 양부로 인정한 다음에 떠나면 어떻겠습니까?”“그러려면 물론 수양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죠!”사하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왕
김나나의 아름다운 얼굴에 잠시 멈칫하던 경찰이 입을 열었다.“이양표의 진술에 따르면 그에게 뇌진탕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그날 밤 사람들을 데리고 와 그의 동생을 죽인 사람입니다.”“현재 이양표는 뇌신경이 눌려 눈이 먼 상태입니다.”“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어쨌든 증거는 충분하니까요!”“우리 법의 양형 기준에 의하면 사형도 피할 수 없습니다.”“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말을 마치며 경찰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영웅이 미녀를 구했는데 오히려 결과가 지경이 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양표가 눈이 멀었다고?!이양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이양범을 죽인 사람이라고?사형도 피할 수 없다고?!김나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끝났다!완전히 망했다!사람을 구한 공을 가로채려다 이 지경에 이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봐! 어서 연행해!”경찰들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손짓을 했다.그들은 넋이 빠져 있는 김탁우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우고 데려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경찰관님, 오해입니다. 정말 오해라고요!”김나나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경찰들에게 달려들었다.“그날 밤 사람을 구한 건 우리 오빠가 아니었어요...”최희정과 설재석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김탁우가 아니라고?”“네, 아니에요! 정말이에요!”김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우리 오빠가 한 게 아니에요. 하현이에요! 하현이 사람을 구했어요!”“하현이 이양표를 때려 뇌진탕에 걸리게 한 거라고요!”“이시운! 어서 말해! 당신이 거짓 진술했다고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고!”“우리가 당신한테 입막음용으로 십억을 줘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라고!”“우리 오빠 같은 거물이 어떻게 하현 대신에 모든 죄를 덤터기 쓸 수 있어? 절대 그럴 수 없어!”“농담하는 거야?!”이시운은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졌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변할 수
김나나는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이양범이 죽었다고요?”“이여웅 부자가 죽었어요?”경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입니다.”“게다가 우리는 이양표를 다치게 한 사람이 이 두 사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증거에 근거하여 수사를 하니까요.”“수사에 협조해서 조사해 보면 꼭 유죄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김탁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뒤 경찰들을 노려보았다.“당신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김탁우는 경찰들이 자신을 잘못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결국 경찰서 측이 이양표의 진술을 받아 보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졌길래 경찰서 사람들이 모든 단서들을 무시하고 감히 자신을 범인으로 몰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설마 하현 이놈이 이 사건의 모든 흔적을 지울 만큼 엄청난 능력을 가진 건 아니겠지?자신이 그의 공을 가로채려 할 때를 기다려 모든 혐의를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는 건가?설마?순간 김탁우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는 이내 이런 생각을 지웠다.하현이 건방지고 거침없기는 했지만 경찰서와 관청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경찰서와 관청은 주 씨 가문이 쥐고 있었다.주 씨 가문은 항상 공명정대를 중시한 집안이었다.그런데 어떻게 하현이 그런 주향무를 매수해 사건의 흔적을 다 지우게 할 수 있겠는가?경찰들은 근엄한 얼굴로 김탁우에게 예의를 갖춘 뒤 입을 열었다.“김탁우, 우리도 당신이 억울하다는 걸 압니다.”“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설은아의 증언이나 이시운의 증언이나 모두 당신이 로열 회관에 들어와 사람을 구하고 이양표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킨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나중에 이양표
하현은 자조 섞인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다른 사람 말은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야?”“당신을 믿으라고? 어떻게 당신을 믿으라는 거야?”설은아는 달려들어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지금 내 앞에 이런 사진이 있는데!”“내 비서도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했는데!”“나더러 어떻게 당신을 믿으라는 거야?”“하현!”“내가 전에 당신을 너무 많이 믿었던 거지!”하현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을 떼었으나 그때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어 제복을 입은 몇몇 경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여러분, 저희는 금정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우리 신분증입니다.”최희정은 그들의 신분증을 힐끔 쳐다보았고 일개 직급 낮은 경찰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냉랭한 태도로 돌변했다.“무슨 일이죠?”“이양표 사건이라면 어제 다 조사하지 않았어요?”설재석도 입을 열었다.“맞아요. 우린 이미 어제 사실을 다 말했는데.”“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선두에 선 경찰은 냉랭한 표정으로 사무적인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이양표는 사람을 능욕하려고 했으니 마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하지만 구조자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양표를 때리고 뇌진탕까지 일으켰어요. 중상에 해당하는 상해를 입었죠.”“이양표의 동생 이양범은 시신으로 발견되었고요.”“그래서 우리는 구조자인 김탁우를 이양범을 죽인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김탁우, 당신은 저희와 경찰서로 가서 수사에 좀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김탁우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수사에 협조를 해달라고요?”최희정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이양범이 죽은 건 그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에요!”“이양표가 뇌진탕을 입은 건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어요!”“우리는 양해 각서에 아직 서명도 안 했어요!”“그런데 지금 우리 사람을 경찰서에 데려가 수사하겠다니?! 농담
이시운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계속 뒤로 물러서다 벽에 몸이 가로막혔다.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하지만 당신이 그랬다고 해도 난 당신을 탓하지 않아.”“그날 밤 당신은 은아를 위해 앞장서다가 얻어맞았어. 하마터면 그놈들한테 끌려가 고초를 당할 뻔했지.”“그래서 난 당신을 용서했어.”“이 일이 이렇게 끝나면 나와 은아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빚진 게 없게 되지.”“김 씨 남매가 당신한테 준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하현은 화도 내지 않고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이시운의 아픈 곳을 콕콕 찔렀다.이시운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지고 핏기를 잃어갔다.김탁우는 핏기 잃은 이시운의 모습을 보고 김나나에게 눈짓을 했다.김나나는 얼른 앞으로 나서며 하현을 향해 호통쳤다.“하 씨! 자꾸 사실을 왜곡하며 진실을 흐려놓지 마!”“이시운은 현장에 있었던 장본인이야. 그녀 입으로 우리 남매야말로 은아를 구한 영웅이라고 말했잖아!”“당신은 이미 은아를 보호할 능력도 자격도 없어. 그러니 우리 남매처럼 능력 있는 사람한테 은아를 맡겨!”최희정도 이때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정말 다시 한번 똑똑히 자네 민낯을 봤네!”“이게 자네가 바라던 건가?!”“난 자네가 정말 능력이 있는 줄 완전히 착각했어!”“보아하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우리 집에 데릴사위가 되지도 않았을 거야!”“퉤!”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그녀는 이시운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김탁우가 그 사이에 주위 사람들을 구워삶았을 줄은 몰랐다.자신을 구한 공로를 선점하기 위해 김탁우가 이시운을 매수할 줄은 정말 몰랐다.설은아가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자 김탁우가 눈치를 채고 선수를 쳤다.“은아,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었는데 깜빡했어요.”“난 그날 우연히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원래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어. 괜히 당신과 하현의 감정만 상하게 하니까!”“하지만 하
”자네, 은아한테 아무 일이 없으니 우리도 이쯤에서 그만하겠네!”“하지만 경고하는데 앞으로 함부로 날뛰지 마!”“질투 난다고 별짓을 다 하고 그래!”최희정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협박의 의미가 가득 담긴 말이었다.“자네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금정 김 씨 가문 김탁우의 능력을 능가하겠어?”“그러니 당장 김탁우한테 사과해. 그러면 없던 일로 칠 거야!”“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마!”설재석도 차갑게 말했다.“자네, 우리가 자네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소중히 새겨들어, 알겠어?”“자네 따위가 김탁우보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래서 이렇게 사람을 때린 건가?”설은아의 마음속이 갈팡질팡했다.비록 그녀의 이성은 하현의 능력이 그녀를 구하기에 충분하다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의 증거가 모두 확실하니, 하현이 중간에서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처럼 들릴 법한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뭔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설은아도 김탁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담담하게 이시운에게 말했다.“이시운, 들어와!”이시운은 최희정 일행을 따라 들어왔지만 하현을 보고도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하현의 목소리를 들은 이시운은 화들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안녕하세요.”“이시운, 마침 잘 왔어!”김나나가 이시운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그날 밤 우리 오빠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은아를 이양표에게서 구했잖아? 그렇지?”“당신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잖아!”“그래서 우리 오빠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왔지!”“영웅이 미녀를 구한 거야!”“이시운, 모든 걸 다 털어놓고 말해 봐!”말을
”삐걱!”바로 그때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최희정과 설재석, 김나나 세 사람이 함께 나타났다.그들 뒤에는 양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이시운이 있었다.그녀는 하현을 보는 순간 의아해하며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였다.병실이 온통 어질러진 것을 본 김나나는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김탁우를 일으켜 세우고 하현을 향해 연신 고함을 질렀다.“하 씨! 이게 무슨 짓이야?”“우리 오빠가 병문안 온 것뿐인데 왜 사람을 때려?”“질투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가 있어?”“당신은 이미 은아랑 이혼한 사이인 건 둘째 치고!”“여전히 데릴사위라 할지라도 질투심 때문에 사람을 칠 순 없어!”“이렇게 대단한 척할 거면 그날 밤엔 왜 은아를 구하러 오지 않은 거야? 당장 이양표를 혼내러 와야 하는 거 아니었냐고?!”최희정이 옆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말했다.“자네, 여기서 대체 뭐 하는 짓인가?”“내가 말하지 않았나? 은아를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절대 재혼 허락하지 않는다고!”“자넨 이미 우리 집안에서 쫓겨난 사람인데 무슨 자격으로 여기 나타난 거야?”“그것도 모자라 은아한테는 생명의 은인인 사람에게 손을 써?!”“아주 목숨을 내놓은 모양이지?!”설재석도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고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의 눈에 하현을 향한 증오가 불타올랐다.그때 설은아가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입을 열었다.“엄마, 하현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게다가 로열 회관의 일은 그도 몰라서 그랬을 거예요. 만약 알았더라면...”“만약? 세상만사에 만약이라는 게 어디 있어?”최희정은 화를 버럭 내며 소리 질렀다.“만약 김탁우가 널 구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얼마나 비참한 신세가 되었을지 모르겠어?”“이 쓸모없는 놈이 너의 생명의 은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내가 정말 널 잘못 키웠어!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하현이 험악한 표정으로 들이닥쳤다.“김탁우! 당신 지금 이 사람 남편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그런 말을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는 거 알아?”“하현, 그러지 마...”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설은아는 당황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그녀는 ‘생명의 은인’인 김탁우에게 하현이 충동적으로 손을 쓸까 봐 두려웠다.걱정스러워하는 설은아의 모습에 하현은 김탁우에게 시선을 돌린 뒤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은아한테 실질적인 해를 끼친 건 아니라서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거야.”“하지만 다음은 절대 이런 일 없어!”“다음은 없다고?”김탁우는 하현의 말에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감히 이런 곳에서 함부로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김탁우는 하현 앞에 다가가 위아래로 훑어본 뒤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하 씨! 유람선에 있을 때 당신은 하고 싶은 대로 다했잖아?”“그런데 왜 난 당신 아내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왜 난 당신 건드리면 안 되냐고?”“왜? 또 한 번 날 건드려 봐! 그러면 당신 아내가 불쌍히 여겨 날 사랑하게 될지 누가 알아?”“걱정하지 마!”“난 어떻게든 해내고 말 거야!”“당신 아내를 내 침대에 눕힐 뿐만 아니라 당신 아내의 마음까지 싹 다 훔쳐 버릴 거야!”“그때가 되면 사는 게 죽느니 보다 더 괴롭다는 걸 알게 될 거야!”차갑게 내뱉은 뒤 김탁우는 한껏 도발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다 한 걸음 물러서며 큰소리로 말했다.“하현, 그럼 우리 설은아 잘 부탁해. 그리고 딱 기다려! 설은아는 나와 결혼하게 될 테니까!”“설은아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다 당신 잘못이야! 내가 절대 가만 안 둬!”“퍽!”하현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김탁우를 더 이상 참고 볼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와 얼른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내가 정말로 당신한테 손을 못 쓸 줄 알았어?”“내 아내가
”당신을 평생 지켜줄 뿐만 아니라 한평생 최선을 다할 거예요!”“은아, 나랑 결혼해 줄래요?”“결혼까진 못 하겠으면 그럼 우선 여자친구라도 되어 줄래요? 네?”김탁우의 진지한 표정과 성형으로 빚은 그의 반들반들한 얼굴은 애틋함으로 가득 들어찼다.영화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하지만 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왜 갑자기 돌변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김탁우, 미안해요.”“내 마음속엔 여전히 하현이 자리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 줄 자리가 없어요.”“그동안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협업하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당신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할 거예요.”“이양표에게서 절 구해 주신 일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그러나 고마움과 감정은 별개예요!”“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반드시 보답할게요!”설은아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억지로 어떻게 할 순 없어요...”“억지로 딴 참외는 결코 달지 않아요.”설은아의 말을 듣고 김탁우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는 설은아아게 복수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설은아 뒤에 있는 대구 정 씨 가문이 탐이 났다.그래서 항상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던 김탁우가 요즘은 점잖은 척 신사인 척 행동해 왔던 것이다.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설은아를 침대 위에 때려눕히고 싶었다.공식적으로 거절을 당한 김탁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바로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바로 설은아를 침대에 눕히려고 했다!설은아 같은 금지옥엽이 정조를 잃으면 스스로 운명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이렇게 해야 자신이 출세할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맞선 하현에게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김탁우의 눈동자에는 당장 설은아를 잡아먹을 듯한 야수의 탐욕
화이영이 자신에게 옴팍 뒤집어씌울 듯한 모습을 보이자 하현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됐어요! 됐어! 알았어요! 당신 말대로 할게요!”“왕 사장님께 고맙다고 전해 줘요!”“알겠어요!”화이영이 활짝 웃었다.“참, 하현. 당신 실력이 너무 출중해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잖아요? 우리 병원에 고문으로 초빙할까 하는데 어때요?”“연봉 십억. 평소에는 털끝만큼도 방해하지 않을게요.”“특별히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만 SOS를 칠게요!”“게다가 십억 연봉은 기본급일 뿐, 환자를 치료한 수익금은 전부 당신한테 줄게요, 어때요?”화이영은 이런 기발한 생각이 병원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높은 연봉으로 하현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하현은 화이영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결국 그는 고개를 저었다.“호의는 너무 고마워요.”“하지만 말했다시피 난 의사가 아닙니다.”“내가 아는 것은 살인술뿐이에요.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두 번 다 뜻밖의 사고였고 마침 내가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만약 난치병을 맞닥뜨렸다면 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내 본업은 사람들의 풍수를 살피고 관상을 보는 것입니다.”“그리고 참, 잊지 마세요. 내일부터 매일 집복당에 와서 바닥을 닦아야 해요!”“혹시라도 오지 않을 시엔 날 원망하는 일 없길 바라요!”말을 마친 후 하현은 부동산 등기 서류를 들고 떠났다.화이영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개자식! 어떻게 저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VIP 라운지를 떠난 하현은 시간을 확인한 뒤 맞은편 입원 병동으로 걸어갔다.설은아가 아직 여기에 입원해 있으니 당연히 발걸음을 했다.게다가 온전히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으므로 이시운이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을 것이다.하현은 최희정이 자신에게 퍼부을 불평 가득 섞인 말도 두렵지 않았다.설은아의 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