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장내가 흔들릴 정도로 우덕의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그리고는 공손한 표정으로 심무해, 원청산 등이 있는 곳을 향했다.“청장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맹주님,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원 대표님,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하셨는데 나중에 꼭 한잔 올리겠습니다!”솔직히 말해 우덕의는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이었다.기업청장은 그렇다 쳐도 원청산과 심무해는 그야말로 진정한 거물이었다.그들의 신분은 이런 일개 기업의 행사 자리에 함부로 나설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우덕의는 그렇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원천신의 칭찬이 그를 신선이나 된 듯 붕 뜨게 만들었다.그래서 그는 스스로 앞장서서 이 거물들과 친분을 과시했다.기업청 청장은 의아한 미소를 지었고 원청산은 콧방귀를 뀌었다.황천화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오히려 심무해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바로 손바닥을 휘갈겼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렸다!때마침 앞으로 나온 우덕의는 예상치 못한 심무해의 행동에 얼굴을 가리고 비틀거렸다.하마터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바닥에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순간 우덕의의 얼굴에 큰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떠올랐다.순식간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수십 개의 눈이 우덕의를 향해 있었다.그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그도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역량이 심무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우덕의는 얼굴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맹주, 이, 이게 무슨 뜻입니까?”“무슨 뜻이긴!”심무해는 냉소를 지으며 우덕의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우덕의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다리를 움켜쥔 채 땅바닥에 넘어졌다.끙끙 소리를 내며 온몸을 부르르 떨던 우덕의의 입에서 하마터면 핏덩이가 뿜어져 나올 뻔했다.우덕의는
”어떻게 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원가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양호남이 우덕의 같은 남자가 되기를 바라며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었다.하지만 1분 후 우덕의는 죽은 개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졌고 뺨이면 뺨, 다리면 다리, 심무해가 때리는 족족 맞고 있었다.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변할 수가!원가령은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양호남조차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됐습니다. 심 맹주님. 개업하는 데 이렇게 피를 보면 되겠습니까?”우덕의가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멍들고 말도 못 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덕의가 죽든 말든 그건 하현에게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오늘 여기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은 분명 그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원가령 일행은 깜짝 놀라 돌아섰고 입을 연 사람이 하현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모두 비꼬는 웃음을 지었다.“하 씨! 당신이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감히 심 맹주님의 행동을 막고 나서다니!”“당신 같은 소인배가 감히 심 맹주님을 막아서?! 당치도 않아! 당신...”눈을 부릅뜨고 굳은 얼굴로 말을 하던 양호남이 갑자가 뚝 멈췄다.끊임없이 이어지던 비명이 뚝 그쳤기 때문이다.방금까지 우덕의를 쥐 잡듯 때리던 심무해가 행동을 멈추었다.심무해는 앞으로 두어 걸음 나서서 공손한 얼굴로 하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하현,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내가 경솔했어!”“이 모든 것은 다 내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야.”“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줄 테니까.”사람들은 심무해가 하현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모두 아연실색했다.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광경을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노부인은 눈꺼풀이 파르르
순간 우덕의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설설 기며 하현 앞으로 굴러와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찰관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 하늘 높으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제발 대인답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이 하찮은 놈을 불쌍히 여기시어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우덕의는 자신의 뺨을 수십 대 후려갈겼다.“제발 기회를 주십시오!”그리고 십여 명의 그의 심복들도 황공히 얼른 무릎을 꿇었다.감찰관의 공적은 다들 어느 정도 들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곧이어 하현의 낡은 가게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원천신 일행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눈가에는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그녀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우덕의는 하현에게 혼쭐을 내주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그런데 왜?왜 갑자기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것인가?이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하현은 그냥 대하의 촌뜨기 아니었던가?설마 그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우덕의를 무릎 꿇릴 만큼?원가령은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눈앞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녀는 하현의 가게가 손님은 하나도 없고 파리만 날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었다.하현이 목놓아 눈물을 흘리고 몹시 원통해하며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게 될 줄이야!바윗덩이 같은 무거운 좌절감이 원가령의 마음을 짓눌렀다.그녀는 어금니를 와그작 깨물었다.괴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하현, 순풍에 돛 단 듯 사업 번창하길 바랍니다.”“하현, 이 상처치료제는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감찰관, 축하하네.”원가령이 이를 악물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
노부인의 얼굴은 사흘 밤낮을 지샌 사람처럼 새하얗게 변했다.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뒤쪽에서 고개를 내민 원청산을 보았다.“하현, 개업 축하해.”“남양 무맹을 대표해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원청산이 손을 흔들자 남양 무맹 제자들이 현판을 들고나왔다.현판 위에는 ‘양가백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양가백약!”글자 아래에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남양 무맹.구매 계약서도 주문서도 없이 양가백약, 남양 무맹이라는 여덟 글자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현판을 보고 모두 깨달았다.남양 무맹의 상처치료제는 모두 하현의 가게에서 구입할 것이라는 것을!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현판이 이곳에 있는 한, 양가백약은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관청이든 깡패들이건 아무도 감히 양가백약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이 현판만 있으면 남양 무맹이 뒤에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된다.돈을 넘어서는 천군만마 그 이상이었다!“뭐라고?!”원천신 일행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현기증이 난 듯 휘청거렸다.노부인 일행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페낭 무맹이 페낭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물며 남양 무맹이라니!남양에서 남양 무맹의 입김은 실로 말할 것도 없었다.이 현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비견할 만했다.이것만 있으면 하현과 양유훤의 개가죽 연고 가게는 틀림없이 날개 돋친 듯 남양 전역으로 확장할 것이다!노부인 일행은 지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현과 양유훤이 일어서기만 하면 양 씨 가문 절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양 씨 가문의 양씨백약이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겠는가?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이 제발 꿈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눈을 꼬집고 봐도
”하현...”원가령은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았다.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곳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남자가 서 있는 것 같았다....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원가령의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양호남은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하현은 심무해를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고 기업청 최고 책임자는 스스로 서류철을 갖다 바쳤다.남양 무맹 대표는 직접 현판을 써서 가져왔다!이런 일이 양호남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일어난다고 해도 몇십 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아무리 생각해도 양호남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아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였다!그가 전신으로 태어난다면 모를까!하지만 양호남 같은 사람이 일대의 전신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그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이런 생각이 원가령의 머릿속을 휘젓자 그녀의 마음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찼다.“뭐야? 하현은 진정한 거물이었어!”“남양 3대 가문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였어!”“그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던 것은 나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었어!”“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야!”“대하의 촌뜨기라고 생각했는데.”“운 좋게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감옥에 갔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하현 같은 사람 백 명 천 명이 와도 양호남한테 안 될 줄 알았는데.”“이제 보니 양호남 같은 사람 만 명, 억 명이 와도 그의 앞에서는 감히 무릎을 꿇을 자격도 없는 거였어.”“잘난 척한 사람은 바로 나였어!”순간 원가령은 자신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충격?후회?현실 부정?아니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원가령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심지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하마터면 구역질
안타깝게도 양 씨 가문 노부인은 양호남을 자리에 앉히기 위해 양유훤을 모함해 물러나게 만들면서 이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이 일로 그녀는 양 씨 가문의 앞길을 망친 꼴이 되었고 동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양 씨 가족들의 시선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노부인에게로 향했다.그들의 눈동자에 원망의 날이 매섭게 서 있었다.그들은 양 씨 가문 어르신으로서 노부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노부인은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며 이를 악물었다.아무리 해도 지금 이 국면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노부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이 얼마나 의기양양한지, 반대로 양 씨 가문은 얼마나 망신스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순간 노부인은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한 하현을 죽이고 싶었다.“할머니...”하현의 뒤에 서 있던 양유훤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정말 후회되세요?”양유훤의 말에 노부인의 눈꺼풀은 마치 불에 덴 낙타처럼 펄쩍였고 살의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양유훤을 쏘아보았다.“양유훤, 감히 날 할머니라고 부르다니?!”“네가 우리 양 씨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날 그렇게 부르느냐? 우리 양 씨 가문에는 너 같은 불효녀를 둔 적이 없어!”“왜?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고 싶으냐? 날 후회하게 만들고 싶으냐?”“허! 어림도 없다!”양유헌이 담담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자 노부인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신세가 된다고 해도! 내 앞에서 잘난 척 좀 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우리 양 씨 가문은 너처럼 체면이 당당하게 서진 못하지만 그래도 몇천억의 가산이 있어!”“우리가 지금 문을 닫고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앞으로 몇백 년은 끄떡없어!”“우리 양 씨 가문을 뭉개버리려고? 양 씨 가문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으냐?”“양유훤, 하현. 잘 들어
정의의 편?정의를 지켜?이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마터면 여수혁의 얼굴을 칠 뻔했다.여수혁이 정의를 내걸고 배신을 해?!여수혁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얼른 앞으로 나서며 세상 정의로운 얼굴로 말했다.“당신들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염치도 모르고 나를 회유해 양유훤의 자산을 동결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은밀하게 그 자산을 이전하길 바랐어!”“하지만 나같이 정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당신들과 한패가 될 수 있겠어?”“당신들이 날 믿도록 하기 위해 난 일부러 고육지책으로 하현을 찾아가 얻어맞기까지 했어!”“결국 당신들은 날 믿었고 난 그 틈을 타 얼른 고소를 취하했지. 동결한 자산이 양유훤에게 돌아간 지 이미 오래야!”“이미 모든 절차는 완료되었어.”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그때 분명 여수혁은 자신에게 뺨을 맞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기꺼이 하현의 개가 되겠다고 했던 여수혁의 입에서 어떻게 ‘정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정말 여수혁은 보통 얍삽한 놈이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사실을 들추어낼 마음이 없었다.효과가 있으면 된 것이었다.여수혁의 말에 노부인을 비롯한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양유훤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아무도 모르게 동결된 자산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단단히 문단속을 해 놨기 때문이었다.쌍방에서 몰래 뒤를 친 것도 모자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하현을 보니 양호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화를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나 튀어나와 악랄하게 악담을 퍼부었다.“양유훤, 무슨 근거로 양 씨 가문 자산을 빼돌린 거야?!”“넌 이제 양 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양 씨 가문의 자산은 우리 양 씨 가문의 것이어야 해!”양신이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쳤다.“맞
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노부인은 원래 같으면 입에 발설하지 않았을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녀는 능력도 없는 하현이 감히 양 씨 가문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에 격분하며 비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장난하는 거야?!노부인의 치밀한 계략 아래 한 세대를 쥐락펴락하는 전신들도 함부로 그녀 앞에서 날뛰지 못했는데 하물며 대하 외지인이 감히?거칠 것 없는 노부인의 말에 원천신과 원가령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어쨌든 하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양 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양 씨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다!그리고 양 씨 가문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 노부인이었다!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양호남이었다!오늘 이 정도 체면이 깎인다고 뭐 어떻게 되겠는가?!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렇습니까?”노부인의 말에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 짐작이 맞으신 듯합니다.”“어르신께 약을 먹은 사람은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하현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후방에서 희미한 탄식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독사의 입에 있는 독, 말벌 꼬리에 있는 침. 둘 다 지독한 독이지만 가장 지독하고 치명적인 독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하구봉과 강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양유훤은 감정에 격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그녀는 양제명에게 달려들었고 미소 띤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양제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깨어나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남양의 전신이 회복된 것인가?이는 앞으로 남양이 여전히 그의 천하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입가에 경련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