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령,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돼!”“그날은 내가 정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남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했을 뿐이야.”“용서해 줘. 제발!”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가령, 나한테 돌아와. 내 곁으로 돌아와!”“봐 봐. 난 이미 약혼반지까지 준비했어.”“그저 난 당신을 아내로 삼아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쓰레기! 이제 와 이렇게 후회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원가령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양호남이 꺼낸 반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반성이나 제대로 해!”“앞으로 좋은 여자 만나면 잘해줘!”“이제 와서 이런 말 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하현은 원가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비록 그녀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듯 양호남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태세였지만 하현은 그녀의 말투나 표정에서 미세하게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이건 어쨌거나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하현은 양호남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지만 이때 나서서 뭐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다.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큰일을 어떻게 선택할지는 원가령 본인의 일이었다.친구로서 필요할 때 하현은 얼마든지 그녀를 도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현,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에 원가령이 나한테 이러는 거라고!”“이 나쁜 놈아! 양유훤이 양 씨 가문과 결별하게 만들더니!”“이제는 원가령을 부추겨 나와 헤어지게 만들어?”양호남은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고 동시에 하현이 이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서도, 가령이를 위해서도 난 결정했어! 당신과 끝장을 보기로!”“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이야!”“감히 당신이 날 때릴 수 있을까?”“만약 당신이 날 이긴다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겠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날뛰는 양호남을 앞에 두고 하현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냉담하게 말했다.“양호남, 당신은 아직 나와 대적할 실력이 못 돼...”“그만하지?!”“스스로를 잘 생각해 봐.”하현의 말을 들은 후 떠들썩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현장에 있던 많은 남녀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자기가 무슨 천하제일인 줄 아나?양호남은 남양 3대 가문인 양 씨 가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함께 페낭 무맹에서 훈련을 받았고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도 매우 실력이 출중했다.심지어 페낭 무맹의 평범한 제자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도 못했다.그런데 얼뜨기 촌놈 하현이 감히 양호남을 멸시해?대적할 실력이 못된다고?누가 하현에게 이런 말을 할 용기를 준 것인가?양호남 자신도 하현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허세를 부리며 자신에게 덤빈 사람들을 많이 봐 왔지만 하현까지 이런 척할 줄은 몰랐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하현이 무슨 큰 능력이 있는 줄 알 것이다.“하 씨! 양 씨 가문 별장에서 재미 좀 봤다고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알아?”“그때는 우리가 좀 방심했었던 것뿐이야. 아직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와중에 당신이 덤비는 바람에 조금 재미를 본 것뿐이라구!”“이 형님이 정말로 때리면 당신은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어!”하현은 담담한 눈빛으로 양신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됐고!”“잠시 후에 내가 손바닥을 휘두르면 당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고.”“당신네 양 씨 가문 체면은 땅에 떨어질 거야!”“한 방에 날 죽여?”“당신이? 감히 그럴 실력이나 돼?”양호남은 마침내 서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반응을 보였다.지난번에 하현한테 뭉개진 건 사실이지만 돌아가서 몇 번을 복기하며 복수의 칼을 간 양호남이었다.그때는 자신이 잠시 부주의해서 그런 결말을 맞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감에 가득 찬 양호남을 마주한 하현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만 지을 뿐 다른 표정이 별로 없었다.하지만 원가령은 하현을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과 싸우지 마. 당신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어.”원가령의 눈에는 하현이 양호남의 적수가 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양호남은 어쨌든 양 씨 가문 유력 후계자였고 양 씨 가문이 아무리 쪼그라들었어도 외지인 하나 짓밟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원가령은 하현을 이용해 양호남을 화나게 하고 싶었지만 하현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하현, 왜 자꾸 여자 뒤에 숨기만 하는 거야?”“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거야?”양호남은 원가령의 행동을 보고 더욱더 잡아먹을 듯 하현을 노려보았다.“어쩐지 섬나라 사람들이 당신네 대하인들을 극동의 병신이라고 하더라니!”“역시 허튼 말이 아니었어!”양호남을 상대하기 귀찮았던 하현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제멋대로 날뛰는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이것도 원가령을 봐서 기회를 준 거야.”“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손을 대진 않겠어.”하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모욕의 삿대질을 하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하지만 누군가가 감히 대하를 모욕하고 조국을 욕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양호남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말을 들은 듯 껄껄 웃었다.“다시 한번 말해 봐! 뭐라고?”양호남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고 온몸의 뼈에서 ‘우두둑’하고 소리가 울렸다.여기서 하현이 한마디만 더 하면 바로 하현을 죽일 듯한 자세를 취했다.긴장한 원가령이 하현을 말리고 나섰다.“하현, 그만해. 당신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어.”하현이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지금은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해.”
얼굴을 가리고 일어선 양호남은 하현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이 자식이! 감히 기습 공격을 해?”“이 파렴치한 놈!”“퍽!”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손바닥을 내리쳤다.“이건 기습이 아닌 거지?”“퍽!”“그 정도 실력으로 나한테 덤비려고 했어?”“퍽!”“당신은 나랑 싸울 실력이 못 된다니까 아직도 못 믿는 거야?”“퍽!”“당신 정도의 수준으로 감히 극동의 병신 어쩌고 하는 말을 입에 담는 거야?”“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어?”“무릎 꿇고 사과하라니까 못 알아듣겠어?”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훈계하듯 말하며 좌우로 손바닥을 휘갈겼다.이리저리 휘둘리던 양호남은 계속 나뒹굴다가 구석에 있는 무기 선반에 부딪히고 말았다.훈련용 무기들이 잔뜩 쌓여 있는 선반이 휘청이며 물건들이 우수수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참혹하기 그지없었다.양신이를 비롯한 부잣집 자제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도무지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개자식! 죽여버릴 테야!”체면이 땅에 떨어진 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칼을 주워 하현의 명치 쪽을 향해 훅 찔렀다.“윽!”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한 걸음 다가가 양호남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단번에 높이 치켜올렸다.“양호남, 이까짓 솜씨로 우쭐거리며 날뛴 거야? 이 정도 칼에 내가 찔릴 거라 생각한 거냐고?!”하현은 말을 하면서 한 손에 힘을 꽉 주었다.벌겋게 달아오른 양호남의 얼굴이 점차 검붉게 물들었다.마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그의 두 손과 두 발이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주변에 있던 부잣집 자제들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그들은 감히 나서서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페낭 무맹 제자들조차 아무 반응을 하지 못하고 아연실색했다.바로 그때 하현의 등이 갑자기 아파왔다.마치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각목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현이 고개를 들어보니 원가령이 그의
”하현,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 거야.”정신을 차린 후 목이 빨개진 양호남을 바라보던 원가령은 마음이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훈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양호남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어. 당신처럼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방금 당신이 너무 심하게 손을 써서 하마터면 그가 목숨을 잃을 뻔했어.”하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가 우리 대하를 모욕하고 또 먼저 손을 썼기 때문에 내가 움직인 거야.”“대하를 모욕한 게 뭐? 당신을 모욕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게다가 그가 그렇게 말한 것도 대적할 실력이 못 된다면서 당신이 그를 도발했기 때문이야.”“그렇지 않았으면 양호남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원가령은 원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양호남은 거칠 것 없이 살았어. 그런데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 도발을 하니까 화가 나서 헛소리를 했고 결국 손을 쓰게 된 거야!”“원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그래서, 지금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하현은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고도는 한 여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애초에 이럴 필요도 없었던 거야. 남자친구인 척해 달라는 당신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양호남을 도발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그의 공격에 맞서지도 말고 가만히 맞고만 있어야 하는 거였어, 그렇지?”“하현,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응?”원가령은 양호남을 부축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어쨌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지 않아도 되는 거였잖아. 어떻게 외지인이 양 씨 가문 사람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수가 있어? 난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자신도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을 하현이 만신창이로 만든 것에 원가령은 못내 마음이 아팠다.동시에 그녀는 이런 악수를 둔 하현에게 다소 불만을 품은 것이다.하현은 가늘게 눈초리를 흘기고는 차가운 미소를 흘
”원가령, 난 괜찮아. 그냥 얼굴이 좀 아프고 목이 아파서 죽을 뻔했을 뿐이야!”양호남처럼 약삭빠른 남자가 원가령의 마음이 지금 한없이 약해져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그는 이 순간을 이용해서 하현과는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연약한 원가령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썼다.“원가령, 그거 알아?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당신을 잃는 것만큼 아프지는 않아!”“당신이 날 용서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맞아 죽는다고 해도 난 다 괜찮아!”“왜냐하면 당신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야!”비련의 주인공처럼 슬픔에 잠긴 얼굴은 그 효과가 엄청난 법이다.양호남은 계속해서 몰아붙였다.“원가령,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양신이도 얼른 거들고 나섰다.“원가령, 우리 오빠가 당신을 위해서 하현이 미치광이 같은 구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덤벼든 거야!”“질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게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우리 오빠가 지금 얼마나 다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우리 오빠가 지금까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해 왔었다는 거 잘 알잖아!”“그런데 당신을 위해 오늘 이렇게 목숨까지 걸었어! 그런데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거야?”“한 남자가 기꺼이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하는데 뭐가 부족한 거야?!”원가령은 애걸복걸하는 양호남의 얼굴을 보았다가 냉담한 눈빛으로 일관하는 하현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에 갈등으로 몸부림치는 괴로운 기색이 떠올랐다.한편에는 그녀가 가장 좋은 친구로 인정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이 기회를 틈타 하현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열렬한 사랑의 고백을 이어갔다.“원가령, 약속해! 절대 다시는 당신을 잃지 않을 거야!”“하늘에 맹세코 죽는 날까지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주머니 속에서 반지를
하현은 괴로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에게 이 모든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하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원가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당신을 알게 되어 참 기뻐!”“그동안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그래도 난 양호남에게 돌아가고 싶어.”말을 마친 그녀는 양호남의 곁으로 돌아와 다이아반지를 받으며 말했다.“양호남, 오늘부터 당신이 한 말 어기고 바람피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양호남의 품에 안겼다.“알겠어!”“이제부터 당신 말만 믿을게!”양호남은 욱신욱신거리는 통증도 잊은 채 원가령을 와락 껴안으며 하현이 보란 듯 그녀의 얼굴과 입에 입을 맞추었다.곧이어 그는 일부러 하현을 바라보며 승자의 자세를 한껏 취했다.이 얼간이 같은 놈이 감히 양 씨 가문 도련님인 양호남의 여자를 빼앗으려 해?흥! 어림도 없지!주제넘은 것도 정도껏이야!양호남은 원가령을 집으로 보낸 뒤 하현에게 맞은 분함을 어떻게 되갚아 줄까 곰곰이 생각해 볼 심산이었다.원가령은 미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양호남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둘째, 요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양호남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셋째, 양호남은 하현과 절대 비교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남양 3대 가문인 양 씨 가문의 역량과 가문 후계자의 지위는 하현의 신분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왜냐하면 그녀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레벨이란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레벨은 절대로 가질 수 없다.원가령의 눈에 양호남이 가지고 있는 레벨은 하현이 평생 이룬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레벨이었다.“잘됐다! 두 사람의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어!”“여러분 박수!”두 사람의 애틋한 포옹에 양신이와 부잣집 자
”꺼져! 여자 덕이나 보려는 놈은 아무도 반기지 않아!”양호남의 눈에는 하현의 심드렁한 얼굴이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보였는지 양호남은 한껏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였다.“원가령의 체면을 봐서 오늘 날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선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보내주겠어!”“하지만 내일은 기대해도 좋을 거야!”하현은 원가령을 힐끔 쳐다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로서도 오늘은 원가령을 봐서 양호남과 더 이상의 언쟁을 할 마음이 없었다.하지만 양호남이 내일 또 뭔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하현은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다.“하현, 잠깐만!”하현이 떠나는 것을 보자 원가령은 갑자기 뭔가 중요한 일이 생각난 듯 그를 불러 세웠다.그녀가 손짓을 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고 그녀의 얼굴에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 비쳤다.“양호남은 내 남자친구야. 당신은 내 친구고. 양유훤은 또 내 절친이야!”“당신과 양유훤이 양 씨 가문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며칠 후 양 씨 가문 기념일에 양가백약을 출시하고 양 씨 가문과 본격적으로 대립할 거라는 걸 알아.”“당신이 양유훤에게 주었던 그 양가백약의 비법이 원래 양씨백약의 조제법이었다는 것도 알아.”“그러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 일을 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어?”“그러니까 내 말은 그 조제법을 양호남에게 넘기는 걸 말하는 거야. 양호남에게 주면 좋겠어.”“그러면 양호남이 평생 당신이 다 못 쓸 만큼 어마어마한 보상을 해 줄 거야.”“그리고 모든 상황은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거야, 어때?”“양유훤과의 일은 내가 다 처리할게.”양호남이 오늘 하마터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자 원가령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양호남이 양씨백약의 원래 조제법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그래야 양호남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고 명예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뭐? 양씨백약의 원래 조제법?”양호남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하현, 당신이 어
왕인걸의 말은 이의진을 탓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다.순간 이의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왕 사장님이 안 물어보셨잖아요?”“물어봤으면 진작에 알려줬을 거예요.”“그리고 하현과 밥을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씀만 하세요. 내가 왕 사장님을 도와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죠!”말을 마치며 이의진은 자신이 하현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듯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이의진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자신의 오빠가 최희정을 압박하기만 한다면 데릴사위인 하현이 절대 최희정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의진의 말에 왕인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좋아, 좋아! 내일 내 사무실로 와.”이의진은 눈에는 점점 더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자신의 앞날에 환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다.이 씨 가족들도 모두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서 있었다.마음속으로는 역시 이의진이 인재는 인재라며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고 훗날 자신들의 뒤를 확실히 봐줄 인물이라고까지 여겼다.이러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이의진,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의진을 앞에 두고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환상 같은 꿈이 일순 깨져버렸다.“왕인걸, 당신도 성인인데 왜 그렇게 쉽게 속는 거야? 옳고 그름이 분간이 안 되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 알겠어!”왕인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하현을 배웅했고 이어 몸을 돌려 이의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의진은 낭패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상황은 전적으로 그녀가 자초한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몇 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하현이 그녀의 면전에서 체면을 뭉개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체면이 뭉개지는 하현의 말에도 이 관계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그러나 왕인걸은 이 씨 가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무시했다.그 대신 왕인걸은 재빨리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하현?!왕인걸의 목소리는 존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대도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진의 부모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이의진의 집안 친척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뭐야, 이게?하현?하 씨 성을 가진 데릴사위가 정말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는 얘긴가?이의진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왕 사장님, 지금 누굴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은 데릴사위일 뿐이에요!”왕인걸은 이의진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굽신거리며 말했다.“하현, 아! 형수님도 와 계셨군요!”“이곳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제 생의 영광입니다!”“정말 오늘은 대운이 열린 날인가 봐요!”“만나서 영광입니다.”“너무 반가워요!”왕인걸은 흥분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왕인걸과 하현이 아는 사이란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왕인걸이 반가워서 잔뜩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이의진은 입을 떡 벌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현이 자신의 직속상관, 그것도 왕인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설은아는 왕인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의상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왕 사장님, 안녕하세요.”그러나 하현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왕인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아내를 탐하려고 했던 자에게 한 손만 부러뜨리고 놓아준 것만 해도 하현은 많이 봐준 셈이었다.“하현, 지난번엔 내가 많이 잘못했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간민효한테 아주 호되게 혼났어!”“나도 내 잘못을 깊이 깨닫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하현의 냉담한 표정에서 초조함을 느낀 왕인걸은 마음이 떨려 허리까지 구부리며 안절부
”장청 캐피털은 사채업으로 시작한 회사야. 결코 깨끗한 회사가 아니라구!”“고명원도 사실 깨끗하지 않아!”“그런 더러운 인물과 호형호제하는 게 뭐가 그리 잘났어?”“지금은 옛날이 아니야!”“깨끗하게 돈을 벌어야 오래가지!”“고명원 같은 사람이 언제까지 기고만장하게 살 수 있겠어?”이의진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한껏 교만하고 오만한 자세를 보였다.“시대가 변했어. 더러운 방법으로 얻은 영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어. 결국 우리처럼 큰 회사가 정도를 걷고 있는 거지!”“맞아. 가문을 빛내려면 큰 회사에 들어가야 해!”이영산은 자신의 모친과 여동생이 자신을 위해서 하현을 마구 헐뜯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이참에 다 같이 퍼부어 하현을 짓밟고 싶었지만 그는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정도를 걸어야지! 정정당당하게!”이의진은 하현에게 훈계하듯 말했다.“당신이 내가 이룬 성과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이룬다면 설 씨 집안에서 당신한테 한 번 더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몰라!”여기까지 말한 이의진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룸 바깥 복도를 보았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보였다.그들은 당당하게 얼굴을 든 채 값나가는 명품 옷으로 온몸을 치장한 모습이었다.제일 앞에 선 사람은 더욱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들어왔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이의진은 하현을 몰아붙이다 말고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문 앞까지 달려왔다.“왕 사장님, 안녕하세요!”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왕인걸이었다.왕인걸은 여전히 지방시에서 맞춤한 옷을 입고 있어서 부티가 팍팍 풍겼고 이루 말할 데 없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다만 머리와 얼굴에 칭칭 감은 거즈가 그를 약간 바보스럽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이의진이 왕 사장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의진의 부모는 하나같이 얼른 일어나 자신들도 모르게 일어나서 맞이했다.“왕 사장님. 여기서
이 광경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넋이 빠지는 듯했다.왜?왜 고 사장이 데릴사위인 하현한테 사과를 해야 하지?설마 다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이 씨 가족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건 말건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습니다. 별일 아닌 일입니다. 이대로 없던 일로 하시죠.”“그렇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고명원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하현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하현,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겠습니까?”“나중에 여쭤볼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게나 티슈를 꺼내 번호를 적은 뒤 그의 앞에 내놓았다.“고맙습니다.”고명원은 보물이라도 얻은 듯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은 뒤 이 씨 가족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실례 많았습니다. 내가 식사를 방해한 것도 있고 하니 오늘 이 식사는 내가 계산하겠습니다.”몇몇 장청 캐피털 핵심 간부들도 모두 겁에 질려 굽실거리며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이제 좀 꺼져 주시죠!”하현은 말을 툭 내뱉으며 마치 고명원을 그의 부하처럼 대했다.이 광경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설은아는 이를 보고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현, 다음에 제가 식사 대접 제대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말을 마치며 고명원은 직원에게 가더니 마오타이 몇 병을 테이블로 보내라고 지시했다.그의 공손한 자세에 장내는 순식간에 충격에 빠졌다.이영산의 부모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방금 하현에게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퍼부으며 공사장에서 벽돌이나 나르라고 모욕했던 그들이었다.그러나 순식간에 하현이 장청 캐피털 고명원이 떠받드는 인물이 될 줄은 몰랐다.고명원이 공손히 차를 따르던 모습은 그들에게 직접 얼굴을 두들겨 맞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몰고 왔다.이영산은 더욱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했다.그
이의진도 눈살을 찌푸리며 거들었다.“하현,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사과해!”“그리고 무릎 꿇어!”“그렇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벽돌 나를 생각은 하지도 마!”“당신은 그냥 굶어 죽어!”하현은 이 씨 남매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3분, 고명원에게 어서 와서 차를 따르라고 해.”“나 하현이 말했다고 전해.”“어서 어서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을 넘길 시엔 차를 따르는 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야.”이영산을 비롯한 이 씨 가족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했다.하현이 이렇게 고명원을 도발하는 것은 그들을 불구덩이로 집어넣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이놈이 이 씨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야! 당신이 뭔데? 감히 고 사장님을 오라 마라, 차를 따르라 마라 하는 거야?”장발의 사내는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사는 게 지겨워?”장발의 사내는 여차하면 하현을 밟아 죽일 듯 눈을 부라렸다.그때 온몸에 거즈를 두른 남자가 뒤에서 들어왔다.알고 보니 소항 회관에서 하현과 충돌한 그 남자였다.남자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는 장발의 사내에게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소항 회관에서 그는 하현에게 단번에 걷어차였다.고성양의 손발은 부러졌다.엄도훈은 하현 앞에서 나라님 모시듯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이로 미루어 보아 하현의 신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장발의 사내는 남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그의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하현! 당신은 이제 죽었어!”이영산은 하현을 가리키며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의 최후를 한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따가 일이 생기면 당신 혼자 다 책임져! 절대 우리 끌어들이지 마!”이 씨 가족의 친척들도 모두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
장리나는 이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하현, 얼른 형님께 감사하다고 해야지!”“형님이 아니었으면 어디 가서 그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겠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다 혓바닥 깨물까 봐 겁도 안 나?”“하 씨! 당신 나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정말...”장리나는 하현에게 조롱이 가득 담긴 말을 퍼부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왔다.차를 마시고 있던 하현은 들고 있던 찻잔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이어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 몇 명이 들이닥쳤다.그들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는 긴 머리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씨 가족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모두 꺼져! 이 룸은 우리가 접수한다!”이영산은 오늘 아침 마침내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술기운을 내뿜으며 테이블을 세게 쳤다.“무슨 소리야? 우리 아직 다 못 먹었다구!”“우리 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이 여기서 밥을 먹을 건데 당신들 감히 이런 식으로 굴 거야?”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는 무심한 듯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고명원?고명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영산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방금까지의 원망과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무례하다고 느끼던 이 씨 가족들도 장청 캐피털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겁을 먹었다.고명원은 어쨌든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게 어떻게...”이영산은 말할 수 없이 난감한 표정이었다.그는 얼굴을 돌려 주변 친척들을 몇 번이나 쳐다본 뒤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거의 다들 드셨죠?”“고 사장님이 이렇게 내 사업을 챙겨주시고 수백억짜리 프로젝트도 맡겨주셨는데 이 룸을 원하셨다니 드려야죠!”“다
설은아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하현에게 제지당했다.그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이영산이 도대체 어떻게 기고만장한 허풍을 떠는지 보기 위해서였다.이제 막 좋은 볼거리가 시작되었는데 못하게 막아서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이영산의 부모도 소리를 듣고 와서 눈동자에 살벌한 눈빛을 떠올린 채 주시하고 있었다.데릴사위인 주제에 우리 아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에 와서 재를 뿌리겠다는 것인가?!하현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아들에게 아내가 하나 더 생겨 설 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아이고, 이게 누구야? 바로 그 전설의 데릴사위 아니야?!”“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머리가 좋았으면 노점에서 사 온 무 따위를 장모에게 선물했을까?! 흥!”“게다가 우리 영산이가 선물한 그림을 감히 가짜라고 모욕하다니!”“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꼴같잖게 센 척하기는!”이영산은 그동안 설 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포장해서 이 씨 일가들에게 한껏 허풍을 떤 것이 분명했다.장리나는 당연히 이영산의 편이니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은아는 이영산이 이렇게 낯짝이 두꺼울 줄은 몰랐다.순간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됐어! 뭐가 어떻게 되고 저렇게 되고 상관없어!”“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그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거야!”“자기 것이 아니라면 노력해서 얻을 생각을 해야지!”이 씨 가문 둘째 할아버지는 경험자 같은 자태로 말을 이었다.“젊은이, 내가 자네라면 지금쯤 순순히 설 씨 집안을 떠나 경비원이라도 해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했을 거야. 그게 데릴사위보다는 훨씬 나아!”“자네가 그러는 걸 자네 조상이 알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 거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씀입니다. 딱 봐도 데릴사위 경험자로서 하시는 말씀이신 듯하군요!”“뭐?
”물론 두 사람이 오늘의 이 성과를 이룬 데는 여러 친척들, 어른들, 형제, 자매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저와 제 남편이 이런 연회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이영산의 부친은 거만한 자세로 껄껄 웃으며 일어섰다.“여러분, 오늘은 마음 편히 즐겁게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82년산 마오타이든 뭐든 원하는 만큼 준비해 뒀으니까요!”이영산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일어섰다.“부모님, 여기 어르신들, 형제, 자매 여러분!”“오늘 저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저 이영산, 절대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건배!”말을 마치며 그는 호탕한 얼굴로 술 한 잔을 마셨다.“영산이와 의진이가 능력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 이렇게 빨리 출세할 수 있었던 거구요! 앞으로 우리 친척들 좀 많이 살펴 주세요!”“맞아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대단한 성과를 거두다니! 정말 대단해요!”“장청 캐피털 일을 따내다니!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성월TV도 마찬가지예요! 배후에 금정 간 씨 가문이 떡 받치고 있는 곳이죠! 따라서 이것은 금정 간 씨 가문과 연줄을 맺은 거나 마찬가지예요!”“이제 우리 이 씨 가문이 완전히 떴어요!”친척들은 하나같이 영광스러운 얼굴로 이영산 남매를 바라보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항렬이 가장 높은 둘째 할아버지가 테이블을 탁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자손을 낳으려거든 이영산 같은 아들을 낳아야지!”“우리 이 씨 가문에 이영산이 있으니 이제 우리 가문은 더 높은 곳으로 갈 일만 남은 거야!”이에 이영산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에 내걸며 호탕하게 웃었다.“둘째 할아버지, 숙모님, 숙부님. 과찬이십니다!”“저와 제 여동생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이 씨 가족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이 씨 가문에 꼭 보답하겠습니다!”이어 이의진도 곱게 화장한 얼굴
이튿날 아침, 밤잠을 설친 하현은 방을 나서자마자 설은아의 차에 몸을 실었다.차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하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분명 오늘 이영산이 밥을 사기로 했다고 어제 다 얘기를 했는데 결국 하현은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것이다.설은아의 스포츠카에 올라타서야 하현은 알게 되었다.이영산이 요 며칠 동안 무슨 개똥 같은 운이 그렇게 좋았는지 수천억짜리 공사를 수주했고 그와 함께 신분이 순식간에 치솟았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여동생, 이의진도 직장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승진하며 겹경사를 맞았다고 했다!최희정과 설재석 부부도 원래 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임시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설은아를 대표로 내세웠다.설은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영산은 하현을 콕 집어 말하며 꼭 데려오라고 했다.말하자면 자신의 높아진 위상을 하현에게 보여줌으로써 코를 납작하게 할 셈인 것이다.하현도 이영산이 절대 좋은 마음으로 자신을 부른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었다.설은아가 참석하라고 하니 함께 가 보는 것이다.낮 12시.하현과 설은아가 홍궁관 2번 룸에 도착했다.룸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안에는 커다란 테이블 다섯 개가 놓여 있어서 한 번에 오십 명 정도가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테이블당 최소 몇백만 원이 든다고 하니 이영산이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고 화색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은 상류층 자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설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씨 집안사람들이라고 하현에게 설명했다.이 씨 집안은 삼류 가문이었지만 그 수는 적지 않았다.게다가 금정 토박이였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의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며 한껏 자존심을 치켜세우고 다녔다.설은아와 하현의 등장은 이 씨 집안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이영산의 친부모는 이 자리를 주최한 장본인이지만 하현을 보고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문 바로 앞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