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두 사람의 감정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그러나 이때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호남을 마주한 원가령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양호남의 손을 피했다.동시에 그녀는 한 발짝 하현 곁으로 다가가 차갑게 말했다.“양호남, 멀리 떨어져.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하진 않잖아!”“게다가 당신은 양다리를 걸친 쓰레기 같은 남자를 믿을 정도로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거야?”“더 말할 것도 없어! 난 이미 남자친구, 아니 약혼자가 있어!”원가령은 직접 하현을 끌어당겨 방패막이로 삼았다.그리고는 하현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난 하현을 버리지 않을 거야. 다시는 당신 같은 사람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구!”“나 같은 사람은 사랑에 모든 걸 다 바쳐. 당신 같은 쓰레기들이랑은 완전히 달라!”하현은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애처롭고 가련한 원가령의 표정을 보고 한숨만 내쉬며 양호남을 쳐다보았다.“양호남, 오랜만이야.”“당신이? 당신이 원가령의 남자친구? 아니 약혼자라고?”양호남은 일순 안색이 일그러졌다.“당신은 양유훤 그 천한 여자가 키우는 기둥서방 아니었어?”“그런데 지금은 양 씨 가문으로도 모자라 원 씨 가문 치마폭에 싸인 거야?”“그러고도 낯짝을 들고 다니는 거야?”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한바탕 소란스럽게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차차 하현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했다.이 얼간이 같은 놈이 양호남의 여자를 빼앗았다고?말도 안 되는 소리?!“닥쳐! 당신들 모두 닥치라구!”“당신들이 내 남자친구를 모욕하다니!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하현은 진정한 남자야. 여자 치마폭에 싸여 허송세월하는 남자가 아니라구!”원가령은 양호남의 표정을 보자 속이 후련해졌다.지금 그녀는 마치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사자처럼 포효하며 하현의 팔을 감싸고 있었다.“난 하현을 믿어.”“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
”원가령,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돼!”“그날은 내가 정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남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했을 뿐이야.”“용서해 줘. 제발!”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가령, 나한테 돌아와. 내 곁으로 돌아와!”“봐 봐. 난 이미 약혼반지까지 준비했어.”“그저 난 당신을 아내로 삼아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쓰레기! 이제 와 이렇게 후회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원가령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양호남이 꺼낸 반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반성이나 제대로 해!”“앞으로 좋은 여자 만나면 잘해줘!”“이제 와서 이런 말 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하현은 원가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비록 그녀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듯 양호남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태세였지만 하현은 그녀의 말투나 표정에서 미세하게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이건 어쨌거나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하현은 양호남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지만 이때 나서서 뭐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다.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큰일을 어떻게 선택할지는 원가령 본인의 일이었다.친구로서 필요할 때 하현은 얼마든지 그녀를 도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현,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에 원가령이 나한테 이러는 거라고!”“이 나쁜 놈아! 양유훤이 양 씨 가문과 결별하게 만들더니!”“이제는 원가령을 부추겨 나와 헤어지게 만들어?”양호남은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고 동시에 하현이 이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서도, 가령이를 위해서도 난 결정했어! 당신과 끝장을 보기로!”“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이야!”“감히 당신이 날 때릴 수 있을까?”“만약 당신이 날 이긴다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겠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날뛰는 양호남을 앞에 두고 하현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냉담하게 말했다.“양호남, 당신은 아직 나와 대적할 실력이 못 돼...”“그만하지?!”“스스로를 잘 생각해 봐.”하현의 말을 들은 후 떠들썩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현장에 있던 많은 남녀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자기가 무슨 천하제일인 줄 아나?양호남은 남양 3대 가문인 양 씨 가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함께 페낭 무맹에서 훈련을 받았고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도 매우 실력이 출중했다.심지어 페낭 무맹의 평범한 제자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도 못했다.그런데 얼뜨기 촌놈 하현이 감히 양호남을 멸시해?대적할 실력이 못된다고?누가 하현에게 이런 말을 할 용기를 준 것인가?양호남 자신도 하현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허세를 부리며 자신에게 덤빈 사람들을 많이 봐 왔지만 하현까지 이런 척할 줄은 몰랐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하현이 무슨 큰 능력이 있는 줄 알 것이다.“하 씨! 양 씨 가문 별장에서 재미 좀 봤다고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알아?”“그때는 우리가 좀 방심했었던 것뿐이야. 아직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와중에 당신이 덤비는 바람에 조금 재미를 본 것뿐이라구!”“이 형님이 정말로 때리면 당신은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어!”하현은 담담한 눈빛으로 양신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됐고!”“잠시 후에 내가 손바닥을 휘두르면 당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고.”“당신네 양 씨 가문 체면은 땅에 떨어질 거야!”“한 방에 날 죽여?”“당신이? 감히 그럴 실력이나 돼?”양호남은 마침내 서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반응을 보였다.지난번에 하현한테 뭉개진 건 사실이지만 돌아가서 몇 번을 복기하며 복수의 칼을 간 양호남이었다.그때는 자신이 잠시 부주의해서 그런 결말을 맞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감에 가득 찬 양호남을 마주한 하현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만 지을 뿐 다른 표정이 별로 없었다.하지만 원가령은 하현을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과 싸우지 마. 당신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어.”원가령의 눈에는 하현이 양호남의 적수가 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양호남은 어쨌든 양 씨 가문 유력 후계자였고 양 씨 가문이 아무리 쪼그라들었어도 외지인 하나 짓밟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원가령은 하현을 이용해 양호남을 화나게 하고 싶었지만 하현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하현, 왜 자꾸 여자 뒤에 숨기만 하는 거야?”“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거야?”양호남은 원가령의 행동을 보고 더욱더 잡아먹을 듯 하현을 노려보았다.“어쩐지 섬나라 사람들이 당신네 대하인들을 극동의 병신이라고 하더라니!”“역시 허튼 말이 아니었어!”양호남을 상대하기 귀찮았던 하현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제멋대로 날뛰는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이것도 원가령을 봐서 기회를 준 거야.”“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손을 대진 않겠어.”하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모욕의 삿대질을 하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하지만 누군가가 감히 대하를 모욕하고 조국을 욕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양호남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말을 들은 듯 껄껄 웃었다.“다시 한번 말해 봐! 뭐라고?”양호남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고 온몸의 뼈에서 ‘우두둑’하고 소리가 울렸다.여기서 하현이 한마디만 더 하면 바로 하현을 죽일 듯한 자세를 취했다.긴장한 원가령이 하현을 말리고 나섰다.“하현, 그만해. 당신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어.”하현이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지금은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해.”
얼굴을 가리고 일어선 양호남은 하현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이 자식이! 감히 기습 공격을 해?”“이 파렴치한 놈!”“퍽!”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손바닥을 내리쳤다.“이건 기습이 아닌 거지?”“퍽!”“그 정도 실력으로 나한테 덤비려고 했어?”“퍽!”“당신은 나랑 싸울 실력이 못 된다니까 아직도 못 믿는 거야?”“퍽!”“당신 정도의 수준으로 감히 극동의 병신 어쩌고 하는 말을 입에 담는 거야?”“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어?”“무릎 꿇고 사과하라니까 못 알아듣겠어?”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훈계하듯 말하며 좌우로 손바닥을 휘갈겼다.이리저리 휘둘리던 양호남은 계속 나뒹굴다가 구석에 있는 무기 선반에 부딪히고 말았다.훈련용 무기들이 잔뜩 쌓여 있는 선반이 휘청이며 물건들이 우수수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참혹하기 그지없었다.양신이를 비롯한 부잣집 자제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도무지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개자식! 죽여버릴 테야!”체면이 땅에 떨어진 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칼을 주워 하현의 명치 쪽을 향해 훅 찔렀다.“윽!”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한 걸음 다가가 양호남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단번에 높이 치켜올렸다.“양호남, 이까짓 솜씨로 우쭐거리며 날뛴 거야? 이 정도 칼에 내가 찔릴 거라 생각한 거냐고?!”하현은 말을 하면서 한 손에 힘을 꽉 주었다.벌겋게 달아오른 양호남의 얼굴이 점차 검붉게 물들었다.마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그의 두 손과 두 발이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주변에 있던 부잣집 자제들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그들은 감히 나서서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페낭 무맹 제자들조차 아무 반응을 하지 못하고 아연실색했다.바로 그때 하현의 등이 갑자기 아파왔다.마치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각목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현이 고개를 들어보니 원가령이 그의
”하현,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 거야.”정신을 차린 후 목이 빨개진 양호남을 바라보던 원가령은 마음이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훈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양호남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어. 당신처럼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방금 당신이 너무 심하게 손을 써서 하마터면 그가 목숨을 잃을 뻔했어.”하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가 우리 대하를 모욕하고 또 먼저 손을 썼기 때문에 내가 움직인 거야.”“대하를 모욕한 게 뭐? 당신을 모욕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게다가 그가 그렇게 말한 것도 대적할 실력이 못 된다면서 당신이 그를 도발했기 때문이야.”“그렇지 않았으면 양호남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원가령은 원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양호남은 거칠 것 없이 살았어. 그런데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 도발을 하니까 화가 나서 헛소리를 했고 결국 손을 쓰게 된 거야!”“원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그래서, 지금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하현은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고도는 한 여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애초에 이럴 필요도 없었던 거야. 남자친구인 척해 달라는 당신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양호남을 도발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그의 공격에 맞서지도 말고 가만히 맞고만 있어야 하는 거였어, 그렇지?”“하현,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응?”원가령은 양호남을 부축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어쨌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지 않아도 되는 거였잖아. 어떻게 외지인이 양 씨 가문 사람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수가 있어? 난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자신도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을 하현이 만신창이로 만든 것에 원가령은 못내 마음이 아팠다.동시에 그녀는 이런 악수를 둔 하현에게 다소 불만을 품은 것이다.하현은 가늘게 눈초리를 흘기고는 차가운 미소를 흘
”원가령, 난 괜찮아. 그냥 얼굴이 좀 아프고 목이 아파서 죽을 뻔했을 뿐이야!”양호남처럼 약삭빠른 남자가 원가령의 마음이 지금 한없이 약해져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그는 이 순간을 이용해서 하현과는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연약한 원가령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썼다.“원가령, 그거 알아?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당신을 잃는 것만큼 아프지는 않아!”“당신이 날 용서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맞아 죽는다고 해도 난 다 괜찮아!”“왜냐하면 당신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야!”비련의 주인공처럼 슬픔에 잠긴 얼굴은 그 효과가 엄청난 법이다.양호남은 계속해서 몰아붙였다.“원가령,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양신이도 얼른 거들고 나섰다.“원가령, 우리 오빠가 당신을 위해서 하현이 미치광이 같은 구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덤벼든 거야!”“질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게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우리 오빠가 지금 얼마나 다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우리 오빠가 지금까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해 왔었다는 거 잘 알잖아!”“그런데 당신을 위해 오늘 이렇게 목숨까지 걸었어! 그런데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거야?”“한 남자가 기꺼이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하는데 뭐가 부족한 거야?!”원가령은 애걸복걸하는 양호남의 얼굴을 보았다가 냉담한 눈빛으로 일관하는 하현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에 갈등으로 몸부림치는 괴로운 기색이 떠올랐다.한편에는 그녀가 가장 좋은 친구로 인정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이 기회를 틈타 하현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열렬한 사랑의 고백을 이어갔다.“원가령, 약속해! 절대 다시는 당신을 잃지 않을 거야!”“하늘에 맹세코 죽는 날까지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주머니 속에서 반지를
하현은 괴로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에게 이 모든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하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원가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당신을 알게 되어 참 기뻐!”“그동안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그래도 난 양호남에게 돌아가고 싶어.”말을 마친 그녀는 양호남의 곁으로 돌아와 다이아반지를 받으며 말했다.“양호남, 오늘부터 당신이 한 말 어기고 바람피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양호남의 품에 안겼다.“알겠어!”“이제부터 당신 말만 믿을게!”양호남은 욱신욱신거리는 통증도 잊은 채 원가령을 와락 껴안으며 하현이 보란 듯 그녀의 얼굴과 입에 입을 맞추었다.곧이어 그는 일부러 하현을 바라보며 승자의 자세를 한껏 취했다.이 얼간이 같은 놈이 감히 양 씨 가문 도련님인 양호남의 여자를 빼앗으려 해?흥! 어림도 없지!주제넘은 것도 정도껏이야!양호남은 원가령을 집으로 보낸 뒤 하현에게 맞은 분함을 어떻게 되갚아 줄까 곰곰이 생각해 볼 심산이었다.원가령은 미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양호남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둘째, 요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양호남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셋째, 양호남은 하현과 절대 비교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남양 3대 가문인 양 씨 가문의 역량과 가문 후계자의 지위는 하현의 신분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왜냐하면 그녀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레벨이란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레벨은 절대로 가질 수 없다.원가령의 눈에 양호남이 가지고 있는 레벨은 하현이 평생 이룬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레벨이었다.“잘됐다! 두 사람의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어!”“여러분 박수!”두 사람의 애틋한 포옹에 양신이와 부잣집 자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