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아닙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하현이 오른쪽에 있는 대하 선수 쉼터로 가려고 했을 때 브라흐마 파만이 마침 샤르마 카비 일행을 데리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브라흐마 파만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열정이 충만한 모습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내가 인도에서 오자마자 매일 당신의 이름을 몇 백번 들었습니다. 아주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라니까요!”“그런데 이렇게 오늘 처음 공식적으로 만났군요!”“역시 듣던 대로 젊고 유능해 보입니다. 대하의 대들보, 용문의 희망이라고 할 만하군요!”“다만 당신네 대하 말이 맞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걸출한 인재는 늘 사람들의 주요 견제 대상이 되는 거죠.”“당신의 명성은 높지만 예로부터 명장은 명이 길지 않은 법이죠.”“아, 이런. 내가 당신 면전에서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하하!”“대하는 반만년 문명이고 예의지국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이런 말에 별로 개의치 않겠죠?”거침없이 내뱉는 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는 능청스러운 미소가 그득했다.샤르마 카비 일행도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하현에 대한 자료를 많이 보았지만 바로 앞에서 사람을 마주해 보니 별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브라흐마 커크를 죽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아마 그들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을 봤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괜찮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개 입에서 상어가 나올 리 없잖습니까? 뭐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며칠 일찍 만났더라면 이렇게 수고롭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그렇죠?”“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스스로 능력이 있으니 아무려면 어떻습니까?”“공연할 큰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서 어떻게 스스로가 광대임을 깨닫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현의 말속에 뼈가 있었다.며칠 전에 브라흐마 파만이 하현 앞에 모습을
”브라흐마 성녀님, 인도의 하고많은 실력자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가장 높이 여기는 사람도 당신입니다!”하현은 조금도 숨김없이 호감을 드러내었다.“듣자 하니 당신은 인도 무학에서 미모로도 실력으로도 단연 최고라도 하더군요!”“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행운입니다!”“내 명의로 된 국술당이라는 무도관이 체임점으로 수십 개의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혹시 브라흐마 성녀님이 총교관이 되는 데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아, 걱정하지 마세요.”“국술당 지분 3할과 연봉 이백억 드리겠습니다!”“그리고 장담하건대 인도인이 감히 이 일로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브라흐마 성녀가 고개만 끄덕여 준다면 우리에겐 큰 영광이겠습니다!”“앞으로 연봉은 계속 올라갈 것이고 심지어 나중에 국술당이 상장하게 되면 당신의 재산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하현은 정말로 브라흐마 로샨을 끌어들이려는 듯 진지하고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샤르마 카비와 다타 구쉬는 자신들도 모르게 브라흐마 로샨을 쳐다보았다.그녀가 하현의 손을 바로 뿌리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의 안색은 점점 더 굳어졌다.어찌 되었든 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무학에서 가장 미인이었고 젊은 세대들 모두가 그녀를 흠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브라흐마 로샨이 하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갑자기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브라흐마 로샨은 눈썹을 펄쩍이며 황급히 하현에게서 손을 빼내 멋쩍은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당신이 이렇게 날 높게 평가해 주니 고맙습니다!”“하지만 내 능력으로는 당신들의 국술당에 몸담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하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브라흐마 로샨의 눈빛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하현은 연예인만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귀티 나는 자태와 용감한 기상이 말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었다.각자 자기 위치가 다르지만 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젊은 세대 중 하현과
브라흐마 로샨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하현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브라흐마 로샨, 만약 대우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시 얘기하면 됩니다!”“이백억이 모자라면 삼백억!”“삼백억이 모자라면 사백억!”“브라흐마 성녀가 내 체면을 세워 준다면 무성에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브라흐마 로샨의 발걸음이 비틀거렸고 그녀는 도망치듯 서둘러 걸음을 떼었다.하현이 지금 내뱉은 말이 언젠가는 비난의 화살로 돌변해 그녀에게 돌아올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하현이 일부러 이간질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도 젊은 실력자 두 사람은 하나같이 수상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던 것이다.한편 하현이 이렇게 브라흐마 로샨을 추켜세우는 것은 거꾸로 다른 인도인들을 한없이 비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들이 정말로 승리한다고 해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마도 브라흐마 로샨의 얘기일 것이 뻔했다.하현이 너무 비싸게 불렀다는 둥 자신이라면 이런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둥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그래서 다들 브라흐마 로샨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추측하느라 속이 뒤숭숭했다.“하현, 이 파렴치한 소인배!”브라흐마 파만은 결국 불같이 화를 내고 말았다.그는 하현의 몇 마디 때문에 철통같았던 인도 젊은 실력자들이 이미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지금 브라흐마 로샨은 어느새 고립되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하현이 제시한 연봉 때문에 브라흐마 파만도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세상 물정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브라흐마 로샨은 더 말할 것도 없다.“브라흐마 파만, 당신 이러면 안 되죠!”“비록 각자 자기 입장이 다 있겠지만 무도에는 국경이 없어요.”“브라흐마 성녀를 칭찬하는 게 어때서요? 좋아하는 게 어때서요?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훗날 인도 무림의 지존이 될 운명인 그녀를 칭찬하지 않고 설마 당신 같은 요승을 추켜세우란 말인가요?”하현은 인도인쪽으로 다가
진주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하현은 정정당당하게 계략을 쓰는 거지 얼굴도 내밀지 않은 어둠 속의 음모나 계략과는 달랐다.만약 브라흐마 로샨이 정말 이런 이유로 인도인들에게 냉대를 받는다면 그녀의 처지가 고달픔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왜 인도에 태어나 이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나?곧이어 양측 선수들이 모두 도착하는 것을 보고 극동무맹 대표가 단상에 올라 이번 시합의 규칙을 선포했다.이번에 인도인이 열여덟 명 출전했으므로 공평함을 기해 용문 쪽에서도 열여덟 명의 실력자들을 내보낼 수 있었다.다만 이 열여덟 명의 실력자들은 모두 이번 용문대회에 참가한 사람이어야 한다.용문 내부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이 차출된 셈이었다.인도인들은 원래 용문대회에 오기 위해 왔기 때문에 모두 실력자들로 구성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양측이 각각 열여덟 명씩 나온 상황에서 매일 세 차례씩 경기를 치른다.링 위에서 상대를 물리치거나 직접 링 위에서 내치거나 하는 사람이 이긴다.이긴 쪽은 계속 경기를 하거나 혹은 격일로 다시 경기에 나설 수도 있다.하지만 진 쪽은 바로 탈락해서 더 이상 출전할 자격을 잃는다.간단히 말해서 이번 대결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질 것이다.어느 한쪽이 강해서 계속 싸울 수 있다고 해도 6일 동안 상대를 몰아붙여야 되는 것이다.이렇게 한 것은 인도 측이 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의 정체를 철저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그래서 그들은 극동무맹, 남양무맹, 유라시아무맹에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3대 무맹은 이미 한쪽으로 잣대가 기울어져 있었으니 당연히 인도 쪽을 지지할 게 뻔했다.규칙을 선포한 뒤 사회자와 심판을 맡은 대표는 큰소리로 외쳤다.“첫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한 사람씩 링에 올라와 대결을 펼치겠습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곁눈질을 하며 뒤를 살폈다.세 사람의 젊은 실력자 외에도 용문에는 14명의 선수가 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이 14명의 선
”이번에는 용문 사람들이 질 것 같아.”“하 씨라는 사람은 그렇게 기고만장하더니 왜 첫판에 안 나오는 거야?”“첫판은 사기가 걸린 경기인데 지면 안 되니까 그런 거 같아. 아무래도 하 씨가 자신이 별로 없나 보지!”천심낙과 차조지가 링 한가운데로 올라서자 장내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이 경기에서 누가 이길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사회자가 ‘시작'을 알리자 장내는 이내 조용해졌다.이때 차조지가 천심낙 쪽을 향해 싱긋 웃으며 천천히 실크 장갑을 꺼냈다.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어서 덤벼 보라는 듯 천심낙을 향해 검지를 까딱거렸다.간단한 동작에도 자신감이 넘쳐났다.손엄명 일행은 이 모습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차조지가 결코 만만찮은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여러분,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브라흐마 파만이 벌떡 일어나 모두를 향해 웃었다.“차조지는 인도 선봉사 출신으로 일곱 살 때 무예를 익히고 열일곱 살 때 병왕에 올랐습니다!”“그 뒤로 5년 동안 문을 내걸고 수련에만 몰두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그리고 또 5년 후 그는 세상에 본인만의 권법을 창안해 냈습니다!”“나 브라흐마 파만이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닙니다!”“차조지가 만든 권법은 무학의 경지를 벗어난 것입니다!”“무학의 성지, 무학의 종가, 무학의 대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문을 내걸고 수련에만 몰두하며 탄생한 권법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이 있는지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그러니 손엄명, 당신들은 이번 판에 절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이미 정해져 있어요!”브라흐마 파만은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였다.그는 차조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차조지를 가장 먼저 내보낸 것이다.브라흐마 파만의 목표는 1차전에서 전력을 다해 천심낙을 제압하고 용문 쪽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손엄명은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한참 후에야 냉소를 흘렸다.“브라흐마 파만
이 광경에 현장에 있던 많은 대하 사람들이 모두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질렀다.천심낙은 용문 내외 팔당의 3대 실력자 중 하나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도 용문을 대표하는 실력자 세 명 중 한 명이 된 것이다.그런데 용문의 기대를 한껏 모았던 천심낙이 첫 수에서 밀렸단 말인가?사람들은 보고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구양연과 천정국 같은 사람들조차 안색이 어두워 보였다.용문 진영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진주희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차조지가 꽤 실력이 있어 보입니다.”“차조지의 권법이 꽤 위협적이긴 합니다.”“천심낙이 질까 봐 걱정 안 되십니까?”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무도의 경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권법을 이룩했다니 정말 비범한 사람이군!”“인도 젊은 세대 중에서도 단연 최고야.”“그렇지만 상관없어.”“내가 여기 있는 한 천심낙을 비롯한 세 사람의 승패는 아무래도 상관없어.”“게다가 그들은 어차피 모두 링 위에 오를 텐데 내가 걱정해 봐야 뭐해?”하현의 말을 들은 진주희는 쓴웃음을 지었다.하현이 무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떠올리며 진주희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참.”진주희가 갑자기 뭔가 다른 일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그날 국술당에서 우리가 황금궁의 체면을 밟은 뒤에 황금궁 쪽에서 틀림없이 뭔가 설욕할 준비를 단단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심지어 사람을 보내 우리 국술당을 염탐하거나 이간질시키거나 할 수도 있을 정도였죠.”“무학의 성지의 명성이 더럽혀지는 걸 참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그런데 이상하게도 요 며칠 동안 바람 한 점 없어요. 아무 움직임도 없었어요.”“일부러 정탐꾼을 내보냈는데 황금궁 쪽에서는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황소군답지 않은 행동이에요. 전혀 황금궁답지 않아요!”“조심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하현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에 고무된 차조지는 동작이 점점 빨라졌고 그의 권법은 더욱더 거세졌다.대하 쪽 관중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천심낙이 물러서자 마음속에 한없는 초조함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손엄명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링 위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첫판이 이렇게 끝날까 봐 노심초사했다.오직 진주희만이 하현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차조지의 권법이 더해지면 경기는 이대로 끝날 것 같습니다.”“그다음엔 어떻게 하죠?”하현은 여전히 눈을 희미하고 뜨고 천심낙을 바라본 뒤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권법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지. 한 번에 힘을 다 쏟은 뒤엔 쇠퇴하게 되고 그다음엔 완전히 기력을 소진하게 되지.”“인도인이 만든 권법은 빠르고 강해.”“한번 내뿜으면 도저히 당해낼 방법이 없어.”“그래서 이런 권법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리하게 피하다가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거야.”“천심낙이 그걸 간파했다면 차조지는 결국 이기지 못해!”하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링 위에서 차조지는 마지막 힘을 쏟아 주먹을 날렸다.그가 음흉하게 웃으며 자세를 바꾸려고 할 때였다.줄곧 뒷걸음질치던 천심낙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움직여 손바닥을 내동댕이쳤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기세를 몰아붙이던 차조지가 몸을 움찔하면서 뒤쪽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그대로 링 위에 내려앉았다.이어서 천심낙은 그의 뺨을 내리친 후 손바닥을 툭툭 털며 링 아래로 내려와 심드렁한 눈빛으로 차조지를 쳐다보았다.“뭐야?”“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눈만 꿈뻑거렸다.방금까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차조지가 왜 갑자기 천심낙에게 뺨을 맞고 쓰러졌을까?손엄명 일행은 하나같이 서로를 쳐다보았다.지금 뒷짐을 진 채 링에서 내려온 천심낙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자 브라흐마 파만이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젊은이가 실력자라면서 상대가 전력을 잃기도 전에 링에서 내려가면 자신이 진다는 것도 모르
용문 진영에서 진주희는 넋이 나간 듯 이 장면을 보고 있다가 잠시 후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다.“대표님, 이 녀석이 겨우 7일 동안만 대표님과 함께 수련했다는 걸 내가 몰랐다면 아마도 이 수법을 대표님이 가르쳤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내가 사람 뺨만 때리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군.”하현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천심낙은 결국 해냈어. 첫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고.”“둘째는 국전이라는 무게야. 첫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도 잘 알고 있거든.”“그는 이기는 것도 이기는 것이지만 힘을 덜 들이고 이겨야 했어.”“천심낙은 그걸 너무도 잘 해냈어!”“인도 쪽에서 샤르마 카비를 비롯한 세 사람이 함께 나서지 않는 한 천심낙의 적수는 없어.”하현은 예리한 혜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때 총교관으로서 사람들의 실력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눈은 있었다.과정을 볼 필요도 없이 하현은 첫판 대결에서 인도인이 이길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것을 이미 짐작했었다.인도인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천심낙 일행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다.말을 하면서 하현은 멀리 있는 브라흐마 로샨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그녀를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브라흐마 로샨은 얼굴이 점점 냉랭해졌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해 보였다.하현이라는 개자식이 자신에게 계속 도발하는 것이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하현에게 몸을 의탁할지 말지 마음속으로 고심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샤르마 카비는 브라흐마 로샨에게 눈을 흘기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었다.그는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주고받는 눈길을 막아버렸다.이에 더해 그는 엄중한 목소리로 브라흐마 로샨을 호통쳤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이 장면이 진주희의 눈에 띄었고 그녀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하현에게 말했다.“대표님, 사람 마음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