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랜드로버 차량 행렬이 일제히 멈춰섰다.곧이어 문이 열리며 무도복을 입은 남자들이 걸어 나왔다.그들은 순식간에 용철구와 하현을 포위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들을 지켜보았다.용천진이 용문 전당의 힘을 이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현은 전에 용문의 내외 팔당과 삼십여섯 지회가 모두 용천진의 휘하에 있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그러나 간단히 흘려들었는데 지금 이 장면을 목격하고 보니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다.용천진이 실제로 뭔가를 시작하면 용천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을 보인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하현이 흥미롭게 이 광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첫 번째 차의 조수석이 열렸고 검은 무도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그녀는 매우 호리호리한 몸매였다.섹시할 뿐만 아니라 차갑고 늠름하기까지한 자태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그녀는 말할 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넘쳤고 몸에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딱 봐도 고수의 풍모가 느껴졌다.무엇보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여유와 자신감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그녀는 기세등등하게 지시하며 사람들을 호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어찌 보면 그녀는 황궁 같은 높은 곳에서 성지를 낭독하고 타인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예지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용철구와 그의 부하들은 탁심설의 말에는 개의치 않았다.그저 그녀의 말이 귀에 거슬리는 듯 마뜩잖은 표정을 보였다.탁심설이 높은 신분이라도 돼?그녀가 하현이 한 말을 보증한다는 거야?그렇다면 하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진짜 문주의 증표란 말이야?!그렇다면 하현은 정말로 용천진의 귀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용 씨 가문이 귀하게 받들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이런 생각이 들자 고수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무기를 떨어뜨리고 다시는 하현을 상대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어찌 보면 신선이 싸우는 싸움에 인간이 끼어서 괜히 험한 꼴을 당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나한테 함부로 죄를 뒤집어씌웠고 내가 내민 문주의 증표를 위조했다고 몰아붙이며 내게 칼을 들이댔어. 내 가족을 모조리 죽고 조상들 무덤을 다 파헤쳐 뼈를 날리겠다고 한 놈이라고!”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런데 고작 반 년치 급여를 못 받는 게 벌이야?”“용천진 사람으로서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사람이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하현이 감히 자신을 의심하며 덤벼들자 탁심설의 안색이 갑자기 일그러졌다.이때 용철구가 옆에서 냉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개자식! 네가 뭔데?”“네가 뭔데 우리 용문과 용 씨 가문에서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야?”“용천진이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날 우습게 보는 거야? 날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해?”“똑똑히 들어! 난 용 씨 가문 사람이야!”“아무리 핏줄이 약하다고 해도 내 성은 용 씨라고!”용철구는 영악한 미소를 얼굴 가득 그리며 말을 이었다.“반 년치 급여를 못 받는 것만으로도 네놈 체면을 엄청 세워 준 거라고!”“잘 들어! 당신 같은 하찮은 놈들 목숨 따위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알아들었어?!”“오늘 탁심설의 체면을 봐서 이대로 당신을 보내 주겠어!”“하지만 다음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그땐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아내도, 당신 가족도 모두 죽여버릴 거라고!”“참, 당신 아내는 특별히 제일 나중에 죽일지도 몰라. 아주 얼굴이 쓸 만하거든!”“맛있게 즐긴 뒤 죽여버리겠어!”“생각만 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은데!”분명 용철구는 오늘 하현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듯했다.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보내기엔 너무 억울했다.그래서 그는 제 버릇 남 못 주듯 거친 입으로 험한 말을 내뿜고 있었다.하현한테 맞은 뺨이 몇 대인가?지금 누구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됐어, 용철구. 나까지 창피하게 만들지 마!”“이제 와서 그런 헛소리하면 뭐해?”“남들이 우릴 보고 웃을 거야!”탁심설은 용
하지만 하현은 그에게 입도 뻥긋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하현의 손에 있던 검이 날아와 용철구의 목을 그대로 꿰뚫어 버린 것이다.“푸...”용철구는 피를 크게 내뿜으며 헉헉 소리를 냈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제멋대로 날뛰며 천하를 호령할 것 같던 용철구.땅바닥에서 온몸을 덜덜 떨며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용천오.장내는 태풍이 지나간 바다처럼 고요했다.아무도 입도 뻥긋할 수 없이 멍하니 서서 믿기지 않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하현이 이렇게까지 날뛰다니!용천오를 만신창이로 만들었으면 됐지 탁심설이 보는 앞에서 용천진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용철구의 목숨을 앗아가다니!사실 탁심설이 왔을 때 사람들은 신선계에서 누군가 내려와 용철구의 목숨을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때 용철구의 얼굴에는 하현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그는 탁심설이 오자 하현에게서 벗어날 기회를 얻고 자신이 맞닥뜨린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리고 재기를 도모하여 다시 하현을 공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그런데 하현이 손바닥 하나로 그를 날려버릴 줄은 몰랐다!그리고 지금은 그의 목숨까지 앗아가버렸다!난 단지 당신 아내를 노리고 당신과 당신 가족을 죽이려고 했을 뿐인데 정녕 날 이대로 죽일 셈이야?난 용 씨 가문 사람이야!얼마나 고귀한 핏줄인가 말이야?외지놈 주제에 감히 날 죽여?그것도 탁심설 앞에서!세상에 이런 오만방자한 놈은 보지 못했어!용철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험악한 얼굴을 한 채 몇 초 동안 몸부림치다가 결국 고개를 툭 떨구며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하현은 이제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지금 용천두뿐만 아니라 용천진에게도 미움을 사게 되었다!게다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용천오까지!이것은 용 씨 가문 전체의 미움을 살 만한 일이었다!누가 그에게 이런 배짱을 주었단 말인가?“개자식
”하현! 이 개자식아!”마침내 탁심설이 소리쳤다.그녀는 하현이 감히 그녀가 뻔히 보는 앞에서 용철구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어쨌거나 그녀는 몇 번이고 하현에게 경고를 했었다.그것은 그녀의 뜻이기도 했고 그녀의 뜻은 용천진의 뜻이기도 했다.그런데 감히 이 개자식이 사람을 죽이다니!순간 탁심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다만 분하고 화가 나도 피범벅이 된 것은 현실이라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받아들인 또 한 가지 이유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계속 함부로 날뛴 일이 알려진다면 이는 분명 용천진과 용천두 사이에 큰 앙금을 남길 것이다.이로써 양측의 암투는 더욱 가열차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심지어 용천두 쪽은 이 상황을 용천진의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사태가 이렇게 발전되는 것은 용천진에게 결코 좋을 것이 없었다.그러자 탁심설은 하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 씨!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용철구를 풀어주라고 했지?!”“우리가 그를 처리할 거야. 당신이 개입할 자리가 아니라고!”“그가 어떤 신분인지 알기나 해?”“감히 손바닥으로 때려죽여?”“지금 장난하는 거야?!”탁심설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와 살기는 이미 하현을 죽이고도 남을 만큼이었다.“당신들이 어떻게 처리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당신들은 급여를 삭감해. 난 나대로 사람을 죽일 테니까!”“각자의 방식대로 처리하자고. 서로 아무 상관없이 말이야.”“왜? 기분 나빠?”“기분 나쁘면 어디 한번 날 갈기갈기 뜯어봐?!”“하지만 그전에 용천진에게 그럴 용기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내가 용천오를 죽일 수 있는지, 용천진을 죽일 수 있는지 어떤지 그가 당신보다는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자선 파티에서 있었던 일은 그를 위해 내가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하지만
탁심설이 명령을 내리자 장내의 수십 명의 전당 고수들은 모두 조건반사에 응하듯 손에 든 병기를 들었다.동시에 그들은 살의를 내뿜으며 주위에 있던 용 씨 가문 고수들을 물러가게 했다.몇몇 용철구의 측근들은 오만불손한 얼굴로 길을 막으려 했지만 곧 전당 사람들에게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용문 전당 고수들의 강력한 일격에 용 씨 가문 고수들은 억울하고 분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3분 후 하현은 자신의 도요타 엘파 차량에 올라탔고 탁심설의 사람에게 최희정을 병원으로 데려다줄 것을 지시했다.탁심설은 언짢은 듯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에게 다가와 소리쳤다.“하현! 지금 뭐 하는 거야?”“내 말 못 들었어?”“용천진께서 만찬을 준비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잖아?!”하현은 시동을 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가서 용천진한테 전해.”“오늘 밤 이 모든 일은 약속했던 것과 다르다고.”“이제 난 그에게서 조금의 진정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전해.”“그가 날 그토록 만나고 싶다면 국술당으로 오면 돼!”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하현은 액셀을 밟고 훌쩍 떠나버렸다.탁심설은 초조하고 화가 나서 손에 든 화살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하현이 손가락을 튕겼다.나뭇잎 하나가 날아와 그대로 탁심설의 손에 있던 활을 툭 쳐서 날려버렸다.순간 탁심설은 팔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하현이 이 정도로 실력이 강할 줄이야!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다.그래서 용천진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것인가?탁심설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하현은 거침없이 액셀을 밟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명령을 내렸다.통화를 마친 그는 뒷좌석에 있는 설은아의 용태를 살피며 속도를 계속 높였다.어스름 황혼이 질 무렵 차는 국술당 입구에 멈춰섰고 루돌프 일행은 이미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다.하현이 설은아를 안고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용천오는 폐인이 되었고 용천두의 심복도 죽었어.”“용천진은 아마 지금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껄껄 웃지 않을까?”“나와 용천두가 충돌해 서로 죽자 사자 싸웠으니.”“만약 순리대로 간다면 내가 용천두를 죽일 것이고 결국 용천진은 손 안 대고 승리를 거두게 되겠지.”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당신들은 오늘 이 일이 용천두가 일부러 한 짓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용천진이 용천두를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생각해?”하현의 말을 듣고 진주희 일행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하현의 말이 맞았다.오늘 이 일은 얼핏 보면 우연하게 일어난 듯 보이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용철구의 등장도 그렇고 탁심설이 그를 구하러 나타난 것도 뭔가 의도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이 모든 것이 용천진의 계산이라면 용천진은 생각보다 음흉한 사람임이 틀림없다.진주희는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하현,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방금 이슬기 쪽에서 세운 인수 계획을 실행할 건가요?”“실행이라. 안 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이슬기가 여기까지 오기는 좀 불편하니까 조남헌, 당신이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인수하는 일을 맡아줘.”“명심해. 조금의 차질도 없이 빠르고 정확해야 해!”“진주희, 당신은 내 아내 가족의 안전을 맡아줘. 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하현의 명령을 받은 진주희와 조남헌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명령을 이행했다.두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나니 하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홀가분해진 하현은 가끔 남궁나연 일행이 가르치는 데 조금 조언을 하거나 학생들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여유가 생긴 하현은 자주 후원으로 나가
프런트 데스크의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보안 요원들이 다가와 두 눈에 경계하는 핏대를 잔뜩 세우고는 설유아 일행을 쳐다보았다.“우리는 무성상업연맹 소유였던 무도관을 인수하는 일을 하러 왔습니다.”“시간이 촉박해 아직 정식으로 통보하지는 못했습니다만.”“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정상적인 재산권 인수인계일 뿐 당신들의 일과 임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설유아는 미리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청산유수로 관련 사항을 전했다.“난 설유아라고 해요. 당신들 경영진한테 인수인계하려 왔다고 전해 주세요.”잠시 후 설유아의 뒤에서 보좌관 한 명이 공식 문서를 꺼내 프런트 데스크에 보여주었다.“무도관을 인수한다고?”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도 어제 있었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곧 십여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가 훤칠하고 예쁘장한 얼굴을 앞세우며 한 여자를 에워싼 채 걸어 나왔다.용천진이 거느리는 여자들 중 한 명인 모지민이었다.깔끔한 오피스룩에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려 곱게 화장한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어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매혹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했다.그녀의 눈동자에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겼고 꿰뚫어 보듯 설유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기 그지없었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설유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사장님, 그들이 이 문서를 들이밀며 무도관 인수인계 작업을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안녕하세요. 전 국술당의 설유아입니다. 갑작스러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지금 정식으로 무도관을 인수인계하러 왔습니다.”설유아가 당당하게 걸어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아름다운 여성분은 누구시죠?”설유아는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건넸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아직 앳된 기운이 물씬 풍겼다.모지민은 마뜩잖은 눈빛을 가득 담은 채 입을 열었다.“무도관을 인수인계한다고?”모지민은 차가운 미
”됐어,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마!”모지민은 귀찮다는 듯 설유아의 말을 끊었다.“오해한 것도 없고 친구건 말건 상관없어!”“내가 전화할 필요도 없어!”“지금 이 자산의 명의는 다 용천진이기 때문이야!”“우리 영업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당장 물러나. 순순히 물러나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용천진에게 전화 걸어서 하현이 부하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물어보라고 할 거야!”말을 마친 모지민은 손을 흔들며 누군가에게 지시했다.“이봐, 이 사람들 다 쫓아내!”그러자 경비원 십여 명이 달려 나와 손에 든 기기들을 휘두르며 위협을 주었다.설유아는 이런 대우는 처음이라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녀와 이쯤에서 타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요!”설유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국술당으로 돌아갔다.“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몽땅 용천진 명의로 바꿨다고?”설유아의 말을 듣고 하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급하게 움직일 것 없어. 일단 상황을 알아보자고.”그러고 나서 하현은 만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만천우도 어리둥절해하며 하현과 전화를 끊었다가 관청에 연락을 취했다.잠시 후 만천우는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현, 이번에는 우리가 용천진한테 당한 것 같습니다.”“용천오가 그에게 빚졌다는 수천억짜리 차용증을 용천진 그놈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관청 사람들이 정식으로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동결하기 전에 채권 방식으로 만들어 용천오에게 서명하게 한 뒤 그의 자산을 다 가져갔다고 합니다!”“용천오도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기꺼이 서명했다고 들었습니다.”“그들은 기막힌 타이밍에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관청에서도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동결할 틈이 없었습니다...”“아무래도 우리가 그 작자들에게 속은 것 같습니다...”“알겠어.”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어쩐지 어젯밤 용천진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탁심설을 보내서 날 보호해 주는 척하더라니.”“다른 용건이 있었던 거로군.”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