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을 비롯한 여자들이 비명을 지었다.조삼서 일행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그들은 하현이 제멋대로 날뛰는 놈이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하현이 감히 용천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쏠 줄은 몰랐다.그는 후환이 두렵지 않은 걸까?“윽!”용천진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질 듯 휘청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용천진 같은 거물이 이렇게 체면을 구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러자 하현은 총을 들고 이번엔 용천진의 오른손을 겨누었다.“설은아 어디 있어?”용천진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몰라.”“또 쏠 테면 쏴!”아리따운 여자 손님들이 이 광경을 보고 용천진의 남자다운 기개에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진짜 남자가 따로 없었다.보통 남자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아마 벌써 겁을 집어먹고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좋아.”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탕!”그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고 이번에는 용천진의 오른팔을 뚫어버렸다.용천진은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혼미해졌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용천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하현은 유려한 손놀림으로 총구를 움직여 다시 용천진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내가 쏠지 안 쏠지 내기할까?”용천진이 이를 악물고 버티자 진주희가 다가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용천진, 난 하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당신이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다면 하현은 망설임 없이 당신의 머리를 날려버릴 거야!”용천진은 눈꺼풀을 움찔거리다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죽을 수는 있어도 모욕을 당할 수는 없었다.“내가 만찬장에 들어섰을 때 사청인한테서 연락이 왔어. 그래서 그녀로부터 뭔가를 알게 되었지.”“용천진,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말란 말을 하고 싶군.”“초심을 잊지 말라고!”“이번 판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명확한 생각이 있었을 거 아니야?”“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한두 가지
용천진의 얼굴빛이 매서워졌다.다른 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었다.자신이 거느리던 모든 것들이 용천두와 용천오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특히 용천오의 거만한 얼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용천오는 자신의 수행원이나 부하 중의 한 명에 불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어떻게 부하를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릴 수 있겠는가?용천진은 잠시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한 끝에 불필요한 오기를 거두기로 마음먹었다.용천오가 자신의 머리 위에 오른다는 생각이 그를 냉정하게 만든 것이다.냉정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보다 더 비참한 최후일 것이다.그러자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전화 한 통만 걸도록 해 줘.”진주희가 옅은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건넸다.용천진이 번호를 누르자 곧 맞은편에서 상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련님, 내리실 분부라도 있으십니까?”용천진은 안색이 일그러졌다.“설은아를 무성 황금 회사로 돌려보내. 지금 당장!”용천진은 말을 마치며 하현이 자신의 이마에 겨누고 있던 총부리를 천천히 밀어냈다.그리고 전에 본 적 없는 냉철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리고 또 한 가지.”“당신한테 빚진 이천억을 갚기로 결정했어. 이자까지 쳐서 삼천억을 줄게!”“또한 오늘 이 모든 상황이 우리 둘 사이의 전쟁을 평화로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라.”“하늘에 맹세코 더 이상 오늘 일은 따지지 않을게.”“하현, 내 성의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군!”“당신이 나와 동맹의 관계가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 오늘 이 모든 일들을 계획했어.”“결국 지금 당신이 여기 있게 되었지!”용천진의 말을 듣고 하현은 용천진의 야심과 강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굽힐 때 굽힐 줄 알고 뻗을 때 뻗을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피비린내 나는 모든 상황을 말 한마디로 끝내 버렸다.오늘 용천진은 말할 수 없이 체면을 구겼다.
하현의 얼굴에서 긴장한 기색이 사라지자 사청인의 얼굴에는 웃는 듯 마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하현을 바라보며 눈썹을 들었다 놓으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하현, 당신의 행동이 대담하고 예상치 못할 수준이라는 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감히 혼자 몸으로 자선모금 만찬장에서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 앞에서 용천진의 얼굴을 때리는 것도 모자라 총까지 쏘다니!”“용천진이 굴복하지 않고 당신이랑 끝까지 싸우겠다고 버텼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두렵지 않았어?”사청인의 목소리가 매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 듯 서늘했다.“하현, 당신이 너무 함부로 날뛴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사청인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뿐만 아니라 분노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졌다.다만 그녀는 강력한 포커페이스를 시전하며 겉으로 보이는 표정과 숨결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하현은 갑자기 사청인의 뺨을 사정없이 휘두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이런 여자는 얄밉고 짜증나지만 계속 접촉하다 보면 어느새 정복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쓸데없는 얘기 다 했어?”하현의 표정은 냉담했다.“얘기 다 했으면 앉아.”“오늘 일은 당신들한테 해명하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체면을 많이 봐준 거야.”하현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용천진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면 아마 바로 죽였을 거야. 내가 그런 것에 머뭇거리는 사람이 아니거든.”“어차피 방아쇠 한번 당기면 될 일인데 뭘.”하현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사청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의 강렬한 눈빛에 사청인은 간담이 서늘해졌고 가슴이 벌렁거렸다.“말해 봐! 용천진을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담판을 짓자고 한 거잖아?”“나와 동맹을 맺는 일, 당신이 용천진한테 제안한 거지?”하현은 찻잔을 집어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덤덤한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맞아. 내가 용천진한테 제안한 거야. 적의 적이 반드시 친구가 되란 법은 없지만 적어
사청인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돌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하현이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일 줄은 몰랐다.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예리함과 명석함은 용천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간단히 말해서 용천진은 하현 앞에서는 거의 초보자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하현은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사청인을 흘겨본 뒤 옅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사청인, 너무 걱정하지 마.”“내가 여기 앉아 있는 이상 용천진의 마음을 모두 다 알고 협력하기로 했다는 뜻이니까.”“협력이란 것은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는 거야.”“당신이 여기 있다는 건 용천진의 태도를 대변하는 거고.”“용천진이 무슨 조건을 내걸었는지 말해 봐.”“오늘 있었던 일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고 이제는 협력할 것에 관해서 얘기해 보자구.”하현의 말을 듣고 사청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하현이 설은아의 납치 사건으로 용천진과 완전히 척이 질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현도 나름의 기준과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용천진이 설은아를 해치지 않은 이상 대국을 위해 원한은 잠시 접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사청인도 용천진이 중요한 순간에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하고 설은아를 풀어준 뒤 협력하기로 한 결정에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두 사람은 끝까지 싸웠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결국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하현이 아니라 용천진이었을 것이다.“용천진이 머리를 숙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무성 전체와 서북부 전체가 당신을 우러러보기에 충분해!”여기까지 말한 후 사청인은 들고 온 에르메스 가방을 열더니 수표 한 장을 하현 앞에 내밀었다.“용천오가 약속한 삼천억이야!”“이천억은 설은아에 갚아야 하는 돈이고 나머지 천억은 이자야.”“이것으로 빚 청산은 마무리된 거야!”“이자를 천억이나 챙겨주었다는 건 용천진이 성의를 표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의 체면을 세워 준 것이기도 해.”“양측이 전쟁으로
사청인은 표정이 굳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뭣 때문에 내가 그래야 돼? 내가 뭣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용천진한테 그런 말을 해야 하냐고?”하현은 일어서서 테이블 위의 수표를 집어 들고 옅은 미소를 띠었다.“당신은 단지 다섯 번째 첩일 뿐이야. 영원히 용천진의 부인이 될 수 없어...”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사청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상기되었다.그때 진주희가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그녀는 수표 한 장을 손에 쥐고 사청인 앞에 가볍게 놓았다.무의식적으로 수표에 시선을 돌린 사청인의 눈꺼풀에 옅은 파동이 일었다.천억짜리 수표였다.수표는 하현한테서 나온 것이었다.아마 진작에 서명해 둔 것인 듯했다.수표를 보고 난 뒤 사청인의 눈빛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이게 무슨 뜻이에요?”“날 매수하려고?”“잘 들어요. 용천진의 여인은 그 누구도 매수할 수 없어요!”“우리는 오직 용천진의 이익을 위해 살 거예요!”“흥분하지 마세요.”진주희는 손을 뻗어 사청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하현은 당신을 매수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그는 단지 황제의 후궁들도 쓸쓸히 뒷방으로 밀려날 때가 있는데 하물며 부잣집 도련님의 첩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예요.”“좋게 말해서 첩이지, 나쁘게 말하면 노리개나 마찬가지니까요.”“젊었을 때 미리미리 자신을 위해 뭔가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늙고 쇠약해졌을 때 뭘로 먹고 살 수 있겠어요?”“첩으로 지낸 사람이 거지가 될 수는 없잖아요?”“거대한 산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기대던 사람이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일이죠. 오직 기댈 건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안 그래요?”사청인의 갸냘픈 어깨가 가늘게 떨렸고 잠시 생각에 빠진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설득당하지 않을 수가 없군.”“하현에게는 호의 잘 받았다고 전해줘요.”“그리고 이 말도 전해요. 그가 요구한 것을 용천진이 들어줄
큰 대청 한가운데 정교하게 장식된 의자가 기세등등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의자에 앉은 남자는 미동도 없이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숨도 내쉬지 않는 남자의 모습은 얼필 보면 죽은 사람 같았다.“개자식!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고 빚을 지면 돈으로 갚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이런 당연한 도리도 몰라?”덩치 큰 남자는 이희광을 향해 소리쳤다.“우리 아버지도 무학을 숭상했지만 연로하셔서 우리 가족 누구도 그에게 무학을 배우라고 감히 권하지 않았지.”“그런데 당신들이 겁도 없이!”“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그걸 우리 아버지가 손에 넣은 거지!”“아버지는 삼일 무료 강습이라는 홍보를 보고 무술을 배우러 오셨어.”“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뭘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사람이 어떻게 되었냐고? 숨을 거두셨어! 이게 말이나 돼?”“도대체 여기가 무도관이야? 아니면 죽음을 부르는 영안실이야? 이건 완전히 백해무익한 곳이잖아!”남자의 말에 다른 가족들도 모두 기세등등하게 말을 보탰다.“맞아. 능력이 없으면 무학을 가르치지 말았어야지! 사람을 망치는 것도 모자라 죽여?!”“당신 오늘 우리 아버지 목숨 값 제대로 치러야 할 거야!”“다들 이런 쓸데없는 말 할 필요도 없어. 그냥 달려들어 죽여 버리면 돼!”“흉악범이야! 흉악범!”십여 명의 유족들은 모두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며 이희광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그러자 이희광은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아닙니다. 어르신을 무리하게 끌어들여 무술 연습을 시키지 않았습니다.”“들어오자마자 칼 한 자루 번쩍 들고는 그 자리에서 벌렁 드러누워 버렸습니다.”이희광의 말에 가족들은 전단지 뭉치를 들고 큰소리로 따져 물었다.사람들은 이희광에게 변명의 기회를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그만!”하현은 고함을 지르고 얼른 그들 앞을 막아서고 직접 그들을 상대했다.하현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앞서 있던 몇 사람이 추풍낙엽처럼 쓸려가더니 그
”어르신의 건강이 안 좋아 보이길래 강습 신청을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하지만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무술을 배워야 한다며 아직 건장하시다고 말씀하셨어요.”“그리고 스스로 연습용 칼을 번쩍 드셨는데 갑자기 그대로 정신을 잃으셨어요...”“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멈추었고요.”“그러자 잠시 후 십여 명의 가족과 친척들이 나타났어요.”“그들은 우리 국술당이 사람을 죽였다고 몰아붙였어요.”“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때렸죠.”“내가 적절하게 막지 않았더라면 아마 맞아서 죽었을 거예요.”“그 과정에서 감히 반격할 엄두도 못 냈구요.”상황을 설명하는 이희광의 말투에 억울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는 용문 무성 지회의 사부로 줄곧 위세를 떨치며 제멋대로 다녔고 어디든 거칠 것이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맞기까지 했다.이런 일이 밖에 새어 나간다면 아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이희광이 하현에게 해명을 마치자 우람한 사내는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아버지는 당신들한테 죽임을 당한 거야!”“모두가 목격한 일이야!”“아버지는 아침마다 광장에 나가 군무를 추셨어. 파트너도 한두 명이 아닐 정도로 열정적이셨지.”“매일 오전 4시부터 광장에서 군무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동네에 민원이 자자할 만큼 열심이셨어.”“아버지의 건강이 얼마나 좋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야!”“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어?”“여기 온 지 채 2분도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이게 말이나 돼?!”“당신들 아니었으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겠어?!”여기까지 말하고는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서럽게 울부짖었다.“아이고, 아버지!”“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다 내 잘못입니다!”“내가 잘못 돌본 탓이에요!”“이런 엉터리 무도관인 줄도 모르고 막지도 못했으니 어이구 아버지!”많은 구경꾼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노인이 무도관에 들어왔을
뭔가를 간파한 하현은 벌떡 일어서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아버지는 아직 돌아가신 게 아니야.”“아니, 정확히는 죽은 적이 없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지금 살아 있는 거지.”“뭐? 죽은 적이 없다고?”“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봤다구! 그런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거야?!”“지금 숨도 못 쉬고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다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아마 지금은 맥이 살아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얼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때를 놓치면 영영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누군가 그를 구해 줄 사람이 필요해!”하현이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여기 모인 모두는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지 의술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다.그런데 설마 하현이 이 노인을 살릴 수 있다고?우람한 체격의 남자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현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들은 하현이 자신들의 계략을 간파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절대 그럴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이희광이 언짢은 듯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당주, 내가 이미 관청에 신고했으니 당주는 여기 있을 필요 없습니다...”“옆에 있는 도끼 좀 가져와 봐. 내가 이 노인을 치료해 보지.”하현은 이희광의 말을 자르고 벽에 걸려 있는 도끼를 가리켰다.그리고 그는 옆에 있던 숫돌을 가져와 숫돌 위에 도끼날을 문지르기 시작했다.“저, 저, 뭐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사람들은 하현의 행동을 보고 오싹해져 소름이 끼쳤다.“뭘 하려는 거야?”우람한 체격의 남자 불길한 예감이 드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하현을 매섭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무것도 아니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사람을 좀 구해 볼까 해서.”“당신 아버지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가사증이라고 해. 내가 지금 이 도끼로 당신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