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꼬고 있는 경홍근을 보며 하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 우리가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요즘 좀 바빠서 당신을 찾아가 결판낼 겨를이 없었거든요.”“그런데 어떻게 직접 찾아왔어요?”“사는 게 너무 지루하신가?”“그래서 나한테 와서 스릴감 넘치는 일을 좀 찾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죽을 사'자를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었던 건가요?”경홍근의 눈동자가 차갑게 일렁거렸다.그는 손을 흔들어 미쳐 날뛰고 있던 진 선배 등을 제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젊은이가 말이 좀 거칠군.”“네놈이 이가음의 모친을 짓밟은 것으로 보아 뭐 실력이나 뒷배가 아주 없는 놈은 아닌 모양인데 말이야.”“하지만 알다시피 여기는 무성이야!”“대하 서북부에서도 가장 큰 도시로 대구, 금정, 남원 등에 뒤지지 않아!”“이곳에는 겉으로 드러난 무학의 성지 황금궁, 10대 최고 가문인 용 씨 가문, 4대 초석 중 하나인 용문, 그 외에도 들으면 절로 경외심이 드는 사람들이 차고 넘쳐.”“당신이 강을 건넌 맹룡이라 할지라도 어디서 배가 뒤집힐지 모르는 게 무성이라고!”“무슨 말인지 알겠어?”상관인 경홍근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긴 했지만 화도 잘 내는 성격이었다.이번에 그는 특별히 그의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윤허를 받은 뒤 하현에게 찾아온 터였다.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지위가 너무 높아서 용문이나 황금궁에서도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그런 경홍근이 모든 사람 앞에서 얼굴을 맞았다.완전히 제대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다만 그의 침착한 심성이 그의 화를 누르며 인내심을 발휘했을 뿐이었다.그는 중요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이렇게 해야 지금까지 하현에게서 받았던 모든 수모를 되돌려 주게 되는 것이다!하현은 경홍근이 마음속으로 와신상담을 하건 뭘 하건 무시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내
”하현, 말과 행동을 너무 단정적으로 하지 마!”“아직 당신은 어려서 많은 걸 파악할 수 없어!”경홍근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똑바로 앉았다.“인정해. 내가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어.”“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만 씨 가문이 당신을 지지한다고 해도 당신이 무성에서 함부로 횡포를 부릴 수 없다는 거야.”“이를테면 이런 거지. 나를 만나면 순순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든가.”“왜냐하면 내 뒤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지.”여기까지 말하고는 경홍근은 손가락을 탁 튕겼다.그러자 그를 본 여비서가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경홍근은 손수 상자를 열어 공손하게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조한철!명함 위에는 다른 것은 없고 손으로 쓴 세 글자만 있었다.용이 휘어져 승천하는 것처럼 힘차고 유려한 글씨였다.보기만 해도 무적의 기세와 포악함이 절로 느껴졌다.“조한철?!”하현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조금은 낯선 이름이었다.경홍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바로 조 세자야.”“내가 오늘 오면서 조 세자한테 다녀왔지.”“조 세자가 말했어.”“나 금전파가 곧 조 세자의 권위를 대변한다고.”“내가 체면을 잃는다는 건 조 세자가 체면을 잃는 거나 같아.”“하지만 세자는 도리를 잘 아는 분이지.”“그는 이렇게 명했어. 당신은 지금 이가음의 모친에게 가서 배상금을 열 배로 갚고 우리 금전파 정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그러면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셨어.”“아, 참. 당신 처제는 내 부하들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야.”경홍근의 표정은 아주 부드러웠지만 내뱉는 말은 아주 단호했다.“당연히 거절할 수 있어. 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거야.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얼굴을 가리고 있던 진 선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조 세자
”보아하니 당신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군.”“그렇지 않으면 조 세자가 5대 문벌 사람이라는 걸 짐작도 할 수 없었을 텐데.”경홍근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만함과 자신감을 내비쳤다.“뭐 어쨌거나 당신이 조 세자를 안다니 말하기가 훨씬 수월해졌군.”경홍근은 파일을 꺼내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툭 내던졌다.이가음의 모친에게 해야 할 보상 외에도 무성 촬영 세트장의 최근 며칠 동안의 손실, 진 선배의 병원비 등 자세한 내역이 들어 있었다.모든 내역은 상세하고 명확했다.“이 숫자의 열 배를 보상해야 해. 알아들었어?”경홍근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하현은 이를 듣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관께서 내 처제한테 배상하는 건 줄 알겠어요.”“뭣이?!”경홍근은 하현의 입끝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지적에 경멸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소용없어!”“잘못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돼.”“대충 계산해 봤는데 이번에 당신이 배상할 돈은 천억이야.”“이 천억을 배상하고 한 달 동안 당신 처제가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거야. 그러면 일은 깨끗이 끝나.”“문제없지?”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천억? 한 달?”“그게 다입니까?”하현의 말을 들은 몇몇 여자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었고 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떠는 허풍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어서 훅 불면 날아갈 기세였다.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하현의 말투를 들었다면 아마 상황을 주도하는 쪽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원래는 더 요구할 생각이었는데 우리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로 하는 거야.”상관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절세미인이어도 한 달 놀고 나면 싫증이 나는 법이거든.”“참, 한 가
용문 무성 지회 제자들 열두 명을 거느리고 들어온 이대성은 얼핏 위풍당당하고 웅장해 보였다.이대성이 나타나자 경홍근도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그는 이대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서 하현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놈아, 넌 이제 죽었어!”“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지회장님이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니 사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을 거야.”“어서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어!”경홍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이대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를 본 진 선배와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들뜬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꼴이라니!하현이 꼴사납게 당하는 모습을 이렇게 빨리 볼 줄이야!경홍근에게 맞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용문 무성 지회장한테도 맞게 생겼으니 아주 꼴좋다!경홍근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대성이 하현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그러나 순간 풀썩하고 이대성이 하현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이대성이 거느리고 온 사람들도 모두 하나같이 황송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이 모습을 보고 경홍근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무의식적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지회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이대성은 경홍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것은 우리 무도관을 당신 명의로 옮겼다는 문서야.”“수속은 이미 다 마쳤으니 서명만 하면 무도관은 이제 모두 당신 것이 되는 거지.”“그리고 오늘 일은 진심으로 미안해. 이렇게 사과하네.”부들부들 떨며 주눅 든 이대성의 모습을 보고 진 선배와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다들 이대성이 하현을 혼내주려고 온 줄 알았다.이렇게 무릎을 꿇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게다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다니!이대성의 자산 중 가장 알짜인 무도관의 명의를 모두 하현에게 넘긴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현이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이대성 같은 인물이 이렇게
하현은 앞으로 나와 손을 뻗어 경홍근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용천오도 이대성의 부인을 지키지 못했는데.”“용문이라고 이대성을 지킬 수 있겠어요?!”“상관님은 조한철이라는 세 글자로 내 앞에서 당당하게 위세를 떨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당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코를 벌름거리며 덤벼드니 뭐 내가 만족스럽게 해 드려야지요.”말을 마치며 하현은 명함을 집어 들고 천천히 경홍근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었다.이 장면을 보고 여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마치 하현이 조한철을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을 본 사람들 같았다.경홍근도 안색이 급변했다.“개자식! 감히 조 세자의 명함을 찢어?”“죽고 싶어 환장했어?”“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경홍근을 바닥에 쓰러뜨렸다.“내가 죽을지 말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당신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군요.”“이봐!”“어서 관청에 신고해!”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뱉은 한마디에 경홍근의 목숨이 달렸다.“상관 경홍근은 선량한 시민인 나에게 천억을 갈취하려 했으니 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해!”...30분도 채 되지 않아 목영신은 직접 팀원들을 이끌고 상관인 경홍근 일행을 무성 경찰서로 연행했다.물샐틈없는 조사를 거쳤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경홍근은 풀려나게 되었다.하지만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것만으로도 경홍근에게는 씻을 수 없는 망신이었다.그는 무성 6대 파벌 중 한 명이고 그의 뒤에는 조한철 같은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대우를 받았다고?도저히 무성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일이었다!가장 치명적인 것은 경홍근은 풀려났지만 진 선배 일행은 결국 다 구속되었다는 것이다.이유는 간단했다.진 선배 일행들에게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많아서 계속 더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진 선배는 설유아의 비싼 고급 다기를 깨뜨렸기 때문에 거액의 배상도 해야 했다.
조한철을 보고 있던 경홍근은 한달음에 달려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 세자.”조한철은 손바닥을 닦으며 값비싼 대홍포 한 잔을 받아 입을 헹군 후 말했다.“상관, 여기가 무슨 명승유적지라도 됩니까?”무미건조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경홍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상관인 경홍근이 오늘 아침에 한 번 왔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그렇다면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상관 경홍근이 그 오만방자한 놈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제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체면을 완전히 구겼을지도 모른다.그렇지 않았다면 경홍근이 이렇게 빨리 다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상관 경홍근은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그는 황송한 자태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 세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해서 조 세자의 체면까지 구겼습니다.”“오늘 잃어버린 체면을 되찾으려고 당당하게 조 세자의 명함을 내밀었어요.”“그런데 그놈이 명함을 박박 찢어 버리고 우릴 무성 경찰서에 신고를 해 버렸어요.”경홍근은 조 세자 앞에서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다.“참, 그놈은 이대성 부부도 손쉽게 제압한 모양이더군요.”“용천오도 이대성 부부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어요.”“용천오가 그 외지인을 제압하지 못했다?”조한철의 얼굴에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 앉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참 재미있는 놈이 나타났군.”“하지만 별거 아닙니다.”“용천오가 요즘 무성 신시가지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 용 씨 가문 내의 몇몇 원로들도 그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하더군요.”“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가 이대성을 함부로 감싸려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에요.”“게다가 용천오는 용 씨 가문 세 후계자들 중 최강도 아니고요.”“상대가 정말로 용천오를 억눌렀든 아니든 간에 그놈이 충분히 강하다는 걸 말하기엔 부족하죠.”“그런 사람 앞에서 굳
경홍근의 말에 조한철은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곱게 생긴 하녀의 보필을 받으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만 씨 가문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용한 셈이군요.”“혹시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 씨 가문과 영 씨 가문은 아주 막역합니다.”“용 씨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만 씨 가문에게 함부로 미움을 살 수 없는 이유죠.”“무성에서 만 씨 가문이 위세를 떨칠 수 있는 것도 뒤에 영 씨 가문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고요.”“영 씨 가문?”경홍근이 놀라서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대용두가 있는 그 영 씨 가문?”조한철은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로 말했다.“무성은 서북부 변방의 땅이지만 사실 무성은 유서가 깊은 곳이에요.”“그 하 씨 성을 가진 놈이 날뛰며 여기저기서 미움을 사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며칠 전에는 인도인들에게까지 미움을 샀다고 들었어요.”“그래서 혹시 만 씨 가문이 일부러 밖에 배치해 둔 바둑알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어요!”조한철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는 두 미녀를 바라보는 경홍근의 눈에 부러움이 잔뜩 깔렸다.그는 흠칫 정신을 다잡고 눈을 뗀 다음 입을 열었다.“조 세자? 그게 무슨 뜻입니까?”조한철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머리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예요. 바둑알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경홍근이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눈을 번쩍 떴다.“조 세자, 나의 얕은 식견으로는 바둑알이라는 것은 손을 쓸 때 앞잡이로 세우거나 아니면 위세를 드러낼 때 세우는 것인데...”“현재 상황으로 볼 때 하현이라는 바둑알은 만 씨 가문의 위세를 떨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성에서의 영 씨 가문의 이익까지 연결되어 있어요!”“다만 무성은 유서가 깊어서 만 씨 가문도 함부로 하다간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약간은 두렵지 않겠습니까?”경홍근의 눈에는 의심에 가득 서린 기색이 감돌았다.만 씨 가문이 무성의 관청을 장악했지
”네? 얼마나 매력적이길래요?”여자라는 말에 조한철은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원래 다른 취미가 별로 없던 그는 어느새 원기가 많이 충만한 것 같았다.경홍근은 일찌감치 자료를 준비한 듯 얼른 핸드폰을 열어 몇 장의 사진을 조한철에게 보내주었다.조한철은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하나는 아주 성숙한 여인이고 하나는 아주 보송보송한 꽃봉오리 같군요, 아주 매력적이네요. 자매가 아주 아리따운 꽃이에요!”“자매꽃이 모처럼 보이니 그럼 마지못해 한번 손을 써 볼까요? 하하하!”조한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비서에게 손짓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방 감독관에게 전화해.”...조한철이 전화를 걸어 손을 쓰고 있을 때 하현은 일전에 일어난 일은 마음에 두지 않고 설유아를 안정시킨 후 이대성이 가져온 계약서를 들고 차에 올랐다.그는 무성 중심부로 차를 몰아 고풍스러운 건물 앞에 멈춰 섰다.이곳은 옛 풍모를 그대로 간직한 무도관이었다.주변이 떠들썩한 가운데 오로지 홀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무도관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이대성의 부친이 이대성에게 물려준 것으로 국술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우아함과 엄숙함이 묻어나는 이름이 이곳의 환경과도 아주 잘 어울렸다.“당주, 오셨습니까?”순간 몸집이 큰 남자가 국술당 입구에서 깍듯이 나와 인사를 했다.그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하현을 보자마자 얼른 다가와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당주, 국술당이 당신 명의로 넘어간 일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이대성 전 지회장께서 관련 사항을 잘 인도하라고 제게 당부하셨습니다.”“공인과 장부, 부동산 증서 등 다 준비해 두었습니다.”하현의 면전에서 무참히 짓밟혔던 이희광은 완전히 사람이 바뀐 듯 하현에게 더없이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하현 때문에 이대성이 용문 무성 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가 가진 국술당까지 내놓았다는 걸 이희광은 이미 전해 들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