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바로 그때 병원 안전 계단의 문이 열리고 하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는 멀리 서 있는 설유아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오호! 하 씨! 드디어 나타나셨군!”진 선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얻어맞았던 얼굴을 일부러 슥 문지르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난 당신이 평생 움츠러든 거북이처럼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이렇게 나오다니! 흥! 용기가 가상해서 내가 한 가지 알려 주지!”“무성 촬영 세트장의 장부, 이가음의 모친이 당한 망신! 당신은 열 배 백 배 보상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 죽여 버릴 거야!”진 선배는 경홍근이 손을 쓰기 전에 특별히 뒷배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게 틀림없었다.그래서 진 선배는 지금 패기가 넘쳤고 전에 본 적 없는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들도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흘겼다.그녀들은 하현이 진 선배의 체면을 구기고 이가음의 모친을 짓밟고 감히 경홍근에게 덤비는 모습을 보고 재벌 2세나 강호의 고수쯤 되는 줄 알았다.하지만 실상 하현이 이런 평범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살짝 잘생긴 모습 말고는 어디에도 재벌 2세나 강호의 고수가 풍길 법한 호기로움이 없었다.아마 길가에서 마주쳤더라면 절대 눈길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하현을 몇 번 쳐다보던 그녀들은 더 이상 하현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에 가까운 시선을 던졌다.“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오늘 밤 설유아는 날 잘 모셔야 할 거야. 편하게 성심을 다해서 모셔야 할 거라고.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풀릴지 모르지.”진 선배는 아주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설유아는 모두 죽게 될 거야.”진 선배라는 작자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하현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기가 차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 선배를 담담히 바라보며 입을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꼬고 있는 경홍근을 보며 하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 우리가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요즘 좀 바빠서 당신을 찾아가 결판낼 겨를이 없었거든요.”“그런데 어떻게 직접 찾아왔어요?”“사는 게 너무 지루하신가?”“그래서 나한테 와서 스릴감 넘치는 일을 좀 찾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죽을 사'자를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었던 건가요?”경홍근의 눈동자가 차갑게 일렁거렸다.그는 손을 흔들어 미쳐 날뛰고 있던 진 선배 등을 제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젊은이가 말이 좀 거칠군.”“네놈이 이가음의 모친을 짓밟은 것으로 보아 뭐 실력이나 뒷배가 아주 없는 놈은 아닌 모양인데 말이야.”“하지만 알다시피 여기는 무성이야!”“대하 서북부에서도 가장 큰 도시로 대구, 금정, 남원 등에 뒤지지 않아!”“이곳에는 겉으로 드러난 무학의 성지 황금궁, 10대 최고 가문인 용 씨 가문, 4대 초석 중 하나인 용문, 그 외에도 들으면 절로 경외심이 드는 사람들이 차고 넘쳐.”“당신이 강을 건넌 맹룡이라 할지라도 어디서 배가 뒤집힐지 모르는 게 무성이라고!”“무슨 말인지 알겠어?”상관인 경홍근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긴 했지만 화도 잘 내는 성격이었다.이번에 그는 특별히 그의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윤허를 받은 뒤 하현에게 찾아온 터였다.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지위가 너무 높아서 용문이나 황금궁에서도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그런 경홍근이 모든 사람 앞에서 얼굴을 맞았다.완전히 제대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다만 그의 침착한 심성이 그의 화를 누르며 인내심을 발휘했을 뿐이었다.그는 중요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이렇게 해야 지금까지 하현에게서 받았던 모든 수모를 되돌려 주게 되는 것이다!하현은 경홍근이 마음속으로 와신상담을 하건 뭘 하건 무시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내
”하현, 말과 행동을 너무 단정적으로 하지 마!”“아직 당신은 어려서 많은 걸 파악할 수 없어!”경홍근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똑바로 앉았다.“인정해. 내가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어.”“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만 씨 가문이 당신을 지지한다고 해도 당신이 무성에서 함부로 횡포를 부릴 수 없다는 거야.”“이를테면 이런 거지. 나를 만나면 순순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든가.”“왜냐하면 내 뒤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지.”여기까지 말하고는 경홍근은 손가락을 탁 튕겼다.그러자 그를 본 여비서가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경홍근은 손수 상자를 열어 공손하게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조한철!명함 위에는 다른 것은 없고 손으로 쓴 세 글자만 있었다.용이 휘어져 승천하는 것처럼 힘차고 유려한 글씨였다.보기만 해도 무적의 기세와 포악함이 절로 느껴졌다.“조한철?!”하현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조금은 낯선 이름이었다.경홍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바로 조 세자야.”“내가 오늘 오면서 조 세자한테 다녀왔지.”“조 세자가 말했어.”“나 금전파가 곧 조 세자의 권위를 대변한다고.”“내가 체면을 잃는다는 건 조 세자가 체면을 잃는 거나 같아.”“하지만 세자는 도리를 잘 아는 분이지.”“그는 이렇게 명했어. 당신은 지금 이가음의 모친에게 가서 배상금을 열 배로 갚고 우리 금전파 정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그러면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셨어.”“아, 참. 당신 처제는 내 부하들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야.”경홍근의 표정은 아주 부드러웠지만 내뱉는 말은 아주 단호했다.“당연히 거절할 수 있어. 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거야.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얼굴을 가리고 있던 진 선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조 세자
”보아하니 당신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군.”“그렇지 않으면 조 세자가 5대 문벌 사람이라는 걸 짐작도 할 수 없었을 텐데.”경홍근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만함과 자신감을 내비쳤다.“뭐 어쨌거나 당신이 조 세자를 안다니 말하기가 훨씬 수월해졌군.”경홍근은 파일을 꺼내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툭 내던졌다.이가음의 모친에게 해야 할 보상 외에도 무성 촬영 세트장의 최근 며칠 동안의 손실, 진 선배의 병원비 등 자세한 내역이 들어 있었다.모든 내역은 상세하고 명확했다.“이 숫자의 열 배를 보상해야 해. 알아들었어?”경홍근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하현은 이를 듣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관께서 내 처제한테 배상하는 건 줄 알겠어요.”“뭣이?!”경홍근은 하현의 입끝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지적에 경멸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소용없어!”“잘못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돼.”“대충 계산해 봤는데 이번에 당신이 배상할 돈은 천억이야.”“이 천억을 배상하고 한 달 동안 당신 처제가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거야. 그러면 일은 깨끗이 끝나.”“문제없지?”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천억? 한 달?”“그게 다입니까?”하현의 말을 들은 몇몇 여자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었고 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떠는 허풍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어서 훅 불면 날아갈 기세였다.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하현의 말투를 들었다면 아마 상황을 주도하는 쪽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원래는 더 요구할 생각이었는데 우리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로 하는 거야.”상관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절세미인이어도 한 달 놀고 나면 싫증이 나는 법이거든.”“참, 한 가
용문 무성 지회 제자들 열두 명을 거느리고 들어온 이대성은 얼핏 위풍당당하고 웅장해 보였다.이대성이 나타나자 경홍근도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그는 이대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서 하현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놈아, 넌 이제 죽었어!”“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지회장님이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니 사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을 거야.”“어서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어!”경홍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이대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를 본 진 선배와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들뜬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꼴이라니!하현이 꼴사납게 당하는 모습을 이렇게 빨리 볼 줄이야!경홍근에게 맞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용문 무성 지회장한테도 맞게 생겼으니 아주 꼴좋다!경홍근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대성이 하현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그러나 순간 풀썩하고 이대성이 하현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이대성이 거느리고 온 사람들도 모두 하나같이 황송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이 모습을 보고 경홍근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무의식적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지회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이대성은 경홍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것은 우리 무도관을 당신 명의로 옮겼다는 문서야.”“수속은 이미 다 마쳤으니 서명만 하면 무도관은 이제 모두 당신 것이 되는 거지.”“그리고 오늘 일은 진심으로 미안해. 이렇게 사과하네.”부들부들 떨며 주눅 든 이대성의 모습을 보고 진 선배와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다들 이대성이 하현을 혼내주려고 온 줄 알았다.이렇게 무릎을 꿇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게다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다니!이대성의 자산 중 가장 알짜인 무도관의 명의를 모두 하현에게 넘긴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현이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이대성 같은 인물이 이렇게
하현은 앞으로 나와 손을 뻗어 경홍근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용천오도 이대성의 부인을 지키지 못했는데.”“용문이라고 이대성을 지킬 수 있겠어요?!”“상관님은 조한철이라는 세 글자로 내 앞에서 당당하게 위세를 떨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당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코를 벌름거리며 덤벼드니 뭐 내가 만족스럽게 해 드려야지요.”말을 마치며 하현은 명함을 집어 들고 천천히 경홍근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었다.이 장면을 보고 여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마치 하현이 조한철을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을 본 사람들 같았다.경홍근도 안색이 급변했다.“개자식! 감히 조 세자의 명함을 찢어?”“죽고 싶어 환장했어?”“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경홍근을 바닥에 쓰러뜨렸다.“내가 죽을지 말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당신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군요.”“이봐!”“어서 관청에 신고해!”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뱉은 한마디에 경홍근의 목숨이 달렸다.“상관 경홍근은 선량한 시민인 나에게 천억을 갈취하려 했으니 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해!”...30분도 채 되지 않아 목영신은 직접 팀원들을 이끌고 상관인 경홍근 일행을 무성 경찰서로 연행했다.물샐틈없는 조사를 거쳤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경홍근은 풀려나게 되었다.하지만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것만으로도 경홍근에게는 씻을 수 없는 망신이었다.그는 무성 6대 파벌 중 한 명이고 그의 뒤에는 조한철 같은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대우를 받았다고?도저히 무성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일이었다!가장 치명적인 것은 경홍근은 풀려났지만 진 선배 일행은 결국 다 구속되었다는 것이다.이유는 간단했다.진 선배 일행들에게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많아서 계속 더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진 선배는 설유아의 비싼 고급 다기를 깨뜨렸기 때문에 거액의 배상도 해야 했다.
조한철을 보고 있던 경홍근은 한달음에 달려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 세자.”조한철은 손바닥을 닦으며 값비싼 대홍포 한 잔을 받아 입을 헹군 후 말했다.“상관, 여기가 무슨 명승유적지라도 됩니까?”무미건조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경홍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상관인 경홍근이 오늘 아침에 한 번 왔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그렇다면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상관 경홍근이 그 오만방자한 놈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제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체면을 완전히 구겼을지도 모른다.그렇지 않았다면 경홍근이 이렇게 빨리 다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상관 경홍근은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그는 황송한 자태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 세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해서 조 세자의 체면까지 구겼습니다.”“오늘 잃어버린 체면을 되찾으려고 당당하게 조 세자의 명함을 내밀었어요.”“그런데 그놈이 명함을 박박 찢어 버리고 우릴 무성 경찰서에 신고를 해 버렸어요.”경홍근은 조 세자 앞에서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다.“참, 그놈은 이대성 부부도 손쉽게 제압한 모양이더군요.”“용천오도 이대성 부부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어요.”“용천오가 그 외지인을 제압하지 못했다?”조한철의 얼굴에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 앉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참 재미있는 놈이 나타났군.”“하지만 별거 아닙니다.”“용천오가 요즘 무성 신시가지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 용 씨 가문 내의 몇몇 원로들도 그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하더군요.”“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가 이대성을 함부로 감싸려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에요.”“게다가 용천오는 용 씨 가문 세 후계자들 중 최강도 아니고요.”“상대가 정말로 용천오를 억눌렀든 아니든 간에 그놈이 충분히 강하다는 걸 말하기엔 부족하죠.”“그런 사람 앞에서 굳
경홍근의 말에 조한철은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곱게 생긴 하녀의 보필을 받으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만 씨 가문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용한 셈이군요.”“혹시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 씨 가문과 영 씨 가문은 아주 막역합니다.”“용 씨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만 씨 가문에게 함부로 미움을 살 수 없는 이유죠.”“무성에서 만 씨 가문이 위세를 떨칠 수 있는 것도 뒤에 영 씨 가문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고요.”“영 씨 가문?”경홍근이 놀라서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대용두가 있는 그 영 씨 가문?”조한철은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로 말했다.“무성은 서북부 변방의 땅이지만 사실 무성은 유서가 깊은 곳이에요.”“그 하 씨 성을 가진 놈이 날뛰며 여기저기서 미움을 사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며칠 전에는 인도인들에게까지 미움을 샀다고 들었어요.”“그래서 혹시 만 씨 가문이 일부러 밖에 배치해 둔 바둑알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어요!”조한철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는 두 미녀를 바라보는 경홍근의 눈에 부러움이 잔뜩 깔렸다.그는 흠칫 정신을 다잡고 눈을 뗀 다음 입을 열었다.“조 세자? 그게 무슨 뜻입니까?”조한철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머리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예요. 바둑알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경홍근이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눈을 번쩍 떴다.“조 세자, 나의 얕은 식견으로는 바둑알이라는 것은 손을 쓸 때 앞잡이로 세우거나 아니면 위세를 드러낼 때 세우는 것인데...”“현재 상황으로 볼 때 하현이라는 바둑알은 만 씨 가문의 위세를 떨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성에서의 영 씨 가문의 이익까지 연결되어 있어요!”“다만 무성은 유서가 깊어서 만 씨 가문도 함부로 하다간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약간은 두렵지 않겠습니까?”경홍근의 눈에는 의심에 가득 서린 기색이 감돌았다.만 씨 가문이 무성의 관청을 장악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