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삭슥슥!”하현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부적 위에 뭔가를 그렸다.그는 예전에 전장에서 어떤 도사에게서 이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그 도사의 표현에 따르면 전신의 피는 모든 살인술을 깨뜨릴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사용법을 잘 알아야 했다.예를 들어 음기가 몸에 들어가면 지양을 해 주는 부적이 필요하다.하현은 옛 도사에게서 부적을 쓰는 방법을 꽤 많이 배웠다.복잡하고도 오묘한 부적 쓰기가 끝나자 하현은 오른손을 돌려 혼수상태에 빠진 수사팀장의 이마에 천천히 붙였다.“피식!”부적은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했고 희미한 핏빛이 흔들리는 사이에 수사팀장의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빛이 조금씩 사라져 부적 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부적은 바람에 흩날리며 잿더미로 변했다.꿈결에서나 볼 법한 장면에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사람들은 강호의 삼교구류에는 기괴하고 기이한 기술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이대성조차도 어리벙벙한 표정이 되어 하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정일교의 도사들이 쓰던 부적?”구양연이 알아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일교의 도사들은 인간 세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던데?!”“그 도사들이 쓰던 부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니?!”도교의 일종인 정일교는 강호의 무학 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그리고 정일교 도사들이 사람을 구하는 수단과 죽이는 수단은 모두 신비롭기 그지없어서 마치 전설 속의 신선술 같았다.그런데 그런 수법을 지금 하현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구양연은 역시 식견이 대단한 사람답게 일찌감치 하현의 재주를 알아보았던 것이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손놀림으로 재가 된 부적을 손에 넣었다.그런 다음 그릇을 가져다가 물 반 컵을 부어 재를 녹였다.하현은 지체 없이 그 물을 수사팀장의 입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마치 재를 녹인 물이 온기라도 머금은 듯 수사팀장의 입에 떨어질 때마다 그의 얼굴에 온기가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약 5분이 지났을 때 의식을 잃었던 수사팀장이 갑자기 똑바로 앉았다.그리고 그는 왈칵하고 더러운 것을 뱉어내었다.그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이제는 똑바로 앉을 수 있게 되었다.“됐어! 살아났어!”주변에 있던 그의 동료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수사팀장을 둘러쌌다.수사팀장을 자세히 살펴보던 동료들은 모두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이대성의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갔다.그는 자신의 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깨어나지 마! 깨어나지 말라고!”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법.수사팀장이 똑바로 앉은 지 30분 만에 이가음이 갑자기 ‘악'하며 비명을 질렀다.“악! 총 맞았어요. 내가 총 맞았다구요!”그녀는 이 말을 한 뒤 갑자기 ‘욱'하더니 가슴속에 맺혔던 피멍을 내뿜으며 정상으로 돌아왔다.이대성은 얼굴이 굳어졌다.“깨, 깨어났어?!”“아빠!”정상으로 돌아온 이가음은 이대상의 모습을 보고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아빠,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요!”“너무 무서웠어요!”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이대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그제야 사람들은 이가음이 이대성의 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동시에 하현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외로움이 가득 찼다.기괴하고 신기하고 무서웠다.그가 정말 이가음을 살린 것인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무학의 이론이 탄탄하고 실력도 강할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도 익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됐어요. 이제 깨어났으니 며칠 병원에서 요양하면 괜찮아질 거예요.”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자신의 손가락을 닦았다.“지회장님, 우리가 한 약속 잊지 마세요!”“내일 사람을 보내 무도관을 모두 내 명의로 옮기겠습니다!”이대성은
설유아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경홍근은 사람들을 이끌고 병원 로비에 앉아 있었다.사실 경홍근은 하현이 자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득의양양해 있었는데 이가음의 모친이 병원에 가서 억지로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이것이 하현의 첫 번째 선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다음에는 십중팔구 자신을 향해 뭔가 행동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그래서 이가음의 모친을 위해서 나서든 선수를 치기 위해서 나서든 경홍근은 자신이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 오기 전에 자신의 배후를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큰 뒷배의 묵인을 얻은 경홍근은 자신감이 치솟았고 하현 하나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경홍근의 곁을 따라다니는 사람들과 금전파 무리들 외에 그날 하현에게 뺨을 맞은 진 선배도 함께 와 있었다.그는 상처가 아물자 그때의 아픈 기억도 사라졌는지 병원을 휘저으며 큰소리로 병원 안의 환자와 의료진을 쫓아내고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하현이 나타나지 않으면 설유아에게 못된 짓을 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떠들어댔다.병원 전체가 시끌벅적해졌고 많은 의료진들이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다.몇몇 병원 경비원들이 대담하게 앞으로 나섰다가 금전파 일행들에게 속수무책으로 걷어차였다.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는 일에는 아주 일가견이 있는 금전파였다.전화를 끊은 설유아는 난장판이 된 병원 내부를 보면서 얼른 밖으로 나와 예전에 연기하던 실력을 펼치며 휴대용 다기를 들고 와 경홍근 일행에게 차를 끓여 바쳤다.“방주 어르신, 진 선배. 형부가 말했어요.”“그동안의 일은 이가음의 엄마가 와서 무릎을 꿇은 걸로 다 없던 일로 하겠다고요.”“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병원으로 몰려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이러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좋지 않잖아요?”“그러니 깔끔하게 병원비 보상하고 병원 사람들한테 사과하는 게 어떻겠어요?”“그러면
진 선배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보고 상관인 경홍근 곁에 있던 몇 명의 예쁜 여자들은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거렸다.하현이 무슨 운이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가음의 모친 뺨을 때렸다는 건 상관인 경홍근의 체면을 짓밟았다는 뜻이기도 했다.무성 6대 파벌 중 한 명인 경홍근은 지금까지 피는 흘려도 체면은 잃은 적이 없었다.그의 행동 규칙은 체면을 잃은 곳에서 반드시 다시 체면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실실거리고 있는 여자들 눈에 하현은 곧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경홍근은 담배를 쥐고 로비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그는 제멋대로 날뛰는 진 선배를 말리지 않았다.어떤 일은 자신의 신분으로 나서기가 좀 곤란하기 때문이었다.진 선배가 나서서 호가호위하는 건 그에게 꽤나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었다.설유아는 진 선배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물러섰다.“대홍포나 용정차를 준비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내가 대접이 소홀했네요...”“당신들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이 아가씨가 얼굴에 상처까지 입었는데도 이렇게 예의 바르게 차까지 끓여 바쳤는데 다기를 다 깨뜨리다니?!”“당신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의 기본 도리마저 저버리면 안 되죠!”“맞아요! 하나같이 상류층 사람처럼 잘 차려입었고만 행동은 개돼지만도 못하다니!”“당신들은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이렇게 버릇없이 굴면 어쩌자는 거예요?”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의료진과 환자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그들은 진 선배가 호가호위하며 제멋대로 구는 모습을 보이자 격분하여 한마디씩 거들었다.“입 닥쳐!”진 선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우리 일에 당신네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잖아! 더 이상 한마디라도 더 하면 내가 당신들 그 입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알았어?”말을 하면서 진 선배는 자신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딱 쳤다.그의 동작에 양복을
”삐걱!”바로 그때 병원 안전 계단의 문이 열리고 하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는 멀리 서 있는 설유아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오호! 하 씨! 드디어 나타나셨군!”진 선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얻어맞았던 얼굴을 일부러 슥 문지르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난 당신이 평생 움츠러든 거북이처럼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이렇게 나오다니! 흥! 용기가 가상해서 내가 한 가지 알려 주지!”“무성 촬영 세트장의 장부, 이가음의 모친이 당한 망신! 당신은 열 배 백 배 보상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 죽여 버릴 거야!”진 선배는 경홍근이 손을 쓰기 전에 특별히 뒷배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게 틀림없었다.그래서 진 선배는 지금 패기가 넘쳤고 전에 본 적 없는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들도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흘겼다.그녀들은 하현이 진 선배의 체면을 구기고 이가음의 모친을 짓밟고 감히 경홍근에게 덤비는 모습을 보고 재벌 2세나 강호의 고수쯤 되는 줄 알았다.하지만 실상 하현이 이런 평범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살짝 잘생긴 모습 말고는 어디에도 재벌 2세나 강호의 고수가 풍길 법한 호기로움이 없었다.아마 길가에서 마주쳤더라면 절대 눈길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하현을 몇 번 쳐다보던 그녀들은 더 이상 하현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에 가까운 시선을 던졌다.“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오늘 밤 설유아는 날 잘 모셔야 할 거야. 편하게 성심을 다해서 모셔야 할 거라고.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풀릴지 모르지.”진 선배는 아주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설유아는 모두 죽게 될 거야.”진 선배라는 작자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하현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기가 차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 선배를 담담히 바라보며 입을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꼬고 있는 경홍근을 보며 하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 우리가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요즘 좀 바빠서 당신을 찾아가 결판낼 겨를이 없었거든요.”“그런데 어떻게 직접 찾아왔어요?”“사는 게 너무 지루하신가?”“그래서 나한테 와서 스릴감 넘치는 일을 좀 찾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죽을 사'자를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었던 건가요?”경홍근의 눈동자가 차갑게 일렁거렸다.그는 손을 흔들어 미쳐 날뛰고 있던 진 선배 등을 제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젊은이가 말이 좀 거칠군.”“네놈이 이가음의 모친을 짓밟은 것으로 보아 뭐 실력이나 뒷배가 아주 없는 놈은 아닌 모양인데 말이야.”“하지만 알다시피 여기는 무성이야!”“대하 서북부에서도 가장 큰 도시로 대구, 금정, 남원 등에 뒤지지 않아!”“이곳에는 겉으로 드러난 무학의 성지 황금궁, 10대 최고 가문인 용 씨 가문, 4대 초석 중 하나인 용문, 그 외에도 들으면 절로 경외심이 드는 사람들이 차고 넘쳐.”“당신이 강을 건넌 맹룡이라 할지라도 어디서 배가 뒤집힐지 모르는 게 무성이라고!”“무슨 말인지 알겠어?”상관인 경홍근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긴 했지만 화도 잘 내는 성격이었다.이번에 그는 특별히 그의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윤허를 받은 뒤 하현에게 찾아온 터였다.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지위가 너무 높아서 용문이나 황금궁에서도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그런 경홍근이 모든 사람 앞에서 얼굴을 맞았다.완전히 제대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다만 그의 침착한 심성이 그의 화를 누르며 인내심을 발휘했을 뿐이었다.그는 중요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이렇게 해야 지금까지 하현에게서 받았던 모든 수모를 되돌려 주게 되는 것이다!하현은 경홍근이 마음속으로 와신상담을 하건 뭘 하건 무시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상관님.”“내
”하현, 말과 행동을 너무 단정적으로 하지 마!”“아직 당신은 어려서 많은 걸 파악할 수 없어!”경홍근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똑바로 앉았다.“인정해. 내가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어.”“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만 씨 가문이 당신을 지지한다고 해도 당신이 무성에서 함부로 횡포를 부릴 수 없다는 거야.”“이를테면 이런 거지. 나를 만나면 순순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든가.”“왜냐하면 내 뒤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지.”여기까지 말하고는 경홍근은 손가락을 탁 튕겼다.그러자 그를 본 여비서가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경홍근은 손수 상자를 열어 공손하게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조한철!명함 위에는 다른 것은 없고 손으로 쓴 세 글자만 있었다.용이 휘어져 승천하는 것처럼 힘차고 유려한 글씨였다.보기만 해도 무적의 기세와 포악함이 절로 느껴졌다.“조한철?!”하현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조금은 낯선 이름이었다.경홍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바로 조 세자야.”“내가 오늘 오면서 조 세자한테 다녀왔지.”“조 세자가 말했어.”“나 금전파가 곧 조 세자의 권위를 대변한다고.”“내가 체면을 잃는다는 건 조 세자가 체면을 잃는 거나 같아.”“하지만 세자는 도리를 잘 아는 분이지.”“그는 이렇게 명했어. 당신은 지금 이가음의 모친에게 가서 배상금을 열 배로 갚고 우리 금전파 정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그러면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셨어.”“아, 참. 당신 처제는 내 부하들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야.”경홍근의 표정은 아주 부드러웠지만 내뱉는 말은 아주 단호했다.“당연히 거절할 수 있어. 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거야.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얼굴을 가리고 있던 진 선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조 세자
”보아하니 당신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군.”“그렇지 않으면 조 세자가 5대 문벌 사람이라는 걸 짐작도 할 수 없었을 텐데.”경홍근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만함과 자신감을 내비쳤다.“뭐 어쨌거나 당신이 조 세자를 안다니 말하기가 훨씬 수월해졌군.”경홍근은 파일을 꺼내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툭 내던졌다.이가음의 모친에게 해야 할 보상 외에도 무성 촬영 세트장의 최근 며칠 동안의 손실, 진 선배의 병원비 등 자세한 내역이 들어 있었다.모든 내역은 상세하고 명확했다.“이 숫자의 열 배를 보상해야 해. 알아들었어?”경홍근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하현은 이를 듣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관께서 내 처제한테 배상하는 건 줄 알겠어요.”“뭣이?!”경홍근은 하현의 입끝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지적에 경멸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소용없어!”“잘못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돼.”“대충 계산해 봤는데 이번에 당신이 배상할 돈은 천억이야.”“이 천억을 배상하고 한 달 동안 당신 처제가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거야. 그러면 일은 깨끗이 끝나.”“문제없지?”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천억? 한 달?”“그게 다입니까?”하현의 말을 들은 몇몇 여자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었고 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떠는 허풍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어서 훅 불면 날아갈 기세였다.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하현의 말투를 들었다면 아마 상황을 주도하는 쪽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원래는 더 요구할 생각이었는데 우리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로 하는 거야.”상관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절세미인이어도 한 달 놀고 나면 싫증이 나는 법이거든.”“참, 한 가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