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하현!”“하현! 이 개자식!”자신을 구해 달라는 이가음의 모친 전화를 받은 뒤 용천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이가음의 모친을 구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체면이 구겨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현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알리게 된다는 것이었다.심지어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하지만 문제는 무성 신시가지의 일로 그는 하현에게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아직 눈앞에 거슬리는 찜찜한 일이 남아 있었고 여전히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이런 때 하현을 계속 자극한다면 언제 다시 하현과 전면전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용천오는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이런 시점에서 하현이 전면전을 선택한다면 용천오는 집안의 두 라이벌에게 좋은 일만 시켜 주게 되는 꼴이 된다.이렇게 되면 자신이 수년 동안 쌓아왔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그래서 그는 지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지회장의 부인 목숨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하현! 이놈! 내가 상석에 앉기만 하면 당장 네놈의 목부터 칠 것이야!”용천오는 평생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꼈다.그는 지금 화를 분출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용천오, 당신은 우리한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쳤어요.”마영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영아의 말에 용천오는 냉정을 되찾아 천천히 말했다.“당신 말이 맞아.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좋은 꼴만 시키지.”하지만 그가 마음을 추스르고 냉정해지려고 했을 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선물 상자 같은 것을 들고 왔다.“방금 어떤 사람이 이걸 보내왔습니다. 직접 열어보라고 했구요.”용천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바라보았다.명절도 아니고 큰일도 없는데 웬 선물?누가?하지만 용천오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부하를 시켜 얼른 상자를 열어 보게 했다
용천오는 와신상담을 해야 할지, 아니면 결사의 각오로 출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그때 하현은 용천오에게 심부름꾼을 시켜 서화를 선물한 일을 완전히 잊고 있은 채 병원에서 설유아의 재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루돌프 팀이 아직 떠나지 않은 것은 설유아에게 있어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하룻밤이 지난 후 설유아의 외상은 완전히 호전되었다.그녀는 정신도 아주 맑아졌다.완전히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식욕도 생겼다.“방금 처제 주려고 주문한 거야. 처제가 좋아하는 닭고기 죽이야. 내가 이미 좀 식혀 놨으니까 바로 먹어도 될 거야.”하현은 표장지를 열고 미소를 머금은 채 죽 그릇을 설유아의 침대맡에 놓았다.하현은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음식을 배달했다.배달은 최근 그에게 생긴 필수 기술이 되었다.“형부, 손이 아파서 그런데 먹여 주시면 안 돼요?”설유아는 약간 힘없는 표정으로 말했다.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렇게 컸는데 다른 사람한테 먹여 달라고 하면 나중에 어떻게 시집갈 거야? 시집 못 갈까 봐 두렵지도 않아?”“쳇!”설유아는 콧방귀를 뀌며 빙그레 웃었다.“난 시집 안 갈 거예요. 왜냐하면 결혼하면 형부는 지금처럼 날 이렇게 보살펴 주지 않을 테니까”하현은 설유아의 이마에 딱밤을 놓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지금처럼 보살펴 주는 형부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야? 처제가 결혼하면 난 죽는다는 소리야?”설유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뾰로통하게 말했다.“모르겠어요. 형부한테 부탁할래요.”“앞으로 난 형부 같은 사람 찾기로 결심했어요!”“못 찾으면 결혼도 안 할 거예요!”하현은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나 같은 사람을 찾는다면 아마 장모님이 처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거야!”“게다가 나 같은 절세의 좋은 남자는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야.”“세상에 똑같은 사
설유아의 모습을 보고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두 자매의 성격이 어떻게 이렇게 그들 모친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조그마한 손실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성격과 인품의 최희정에게서 이런 서글서글한 성격의 딸이 나왔다니 조상이 은덕을 톡톡히 쌓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하현은 설유아와 계속 이렇게 노닥거릴 때가 아니란 걸 문득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럼 나도 더 이상 처제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긴장하지 말고.”“내일 그들이 무릎 꿇는 걸 지켜보면 돼.”“알았어요. 형부.”설유아는 하현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긴장이 조금 풀리자 마침 다른 일이 생각이 난 듯 설유아가 눈을 번쩍였다.“형부, 가음이는 어때요?”“듣기로는 아직 정신이 말짱하게 깨어나진 않은 것 같던데 정말 내가 쏜 그 총 때문이에요?”자기 얘기가 끝나자 마음씨 착한 설유아는 참지 못하고 절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몰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하지만 처제가 쏜 총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거야.”“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그래요? 그럼 왜 그런 거예요?”설유아가 의아해하며 말했다.“너무 놀라서 충격이 심했던 거 아니에요? 왜 아직도 나아지지 않는 거죠?”하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총으로 다친 건 피부 외상일 뿐이야. 조금 놀라긴 했겠지만 그렇게 많은 충격을 받을 일은 아니지, 안 그래?”“다만 의사든 간호사든 모두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치료가 잘 안되는 거야.”“서양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도 있어. 그럴 땐 우리 동양의학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하현은 여기까지 말한 뒤 더 깊게 설명하기 복잡해서 화제를 바꾸었다.“그 친구한테 뭘 그렇게 관심이 많아? 그 친구와의 일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았으면서 처제는 화도 안 나?”설유아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반짝였다.“원래는 화가 많이 났었죠.”“하지만 문득 깨
얼마 후 설은아의 전용 차량인 마이바흐 한 대가 차고에서 나왔다.마이바흐는 예전부터 무성 황금 회사의 자산으로 사장의 전유물이어서 타 본 사람도 별로 없어 아직 새것처럼 반짝반짝했다.하현은 감탄해하는 눈빛으로 뒷좌석에 올랐다.설은아는 하현이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아침 식사를 건네준 뒤 운전기사에게 출발해도 된다고 말했다.“벌써 용천진한테 연락한 거야?”“이렇게 빨리? 상대가 이천억을 돌려주기로 한 거야?”설은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용천진이 누구야? 무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잖아?!”“용천진은 용 씨 집안 젊은 세 사람 중 으뜸으로 불리며 줄곧 그 사실에 심취해 있었어.”“보통 사람들과 함부로 만나기는커녕 TV로도 보기 힘든 사람이라고.”“머무는 숙소만 해도 열여덟 개인데 매일 무작위로 한 곳을 골라 머문다고 하더라고.”“한 번 입었던 옷은 다시 입지 않는대.”“모든 행적을 절대 비밀로 하기 위해서라지.”하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용천진은 용문 장로회와 서른여섯 지회 중 절반의 지지를 얻고 있고 용문 내의 세 개의 당과 외부의 다섯 개 당 중에서도 절반의 당주가 그를 지지하고 있어.”“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죽일까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어쨌든 그의 자리는 옛날 동궁 태자와도 같으니까 말이야.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선종한 사람이 몇이나 돼?”“용천진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건 상석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지.”하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말한 뒤 짐짓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용천진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럼 오늘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야?”설은아는 안색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우리가 만날 사람은 용천진의 다섯 번째 첩이야.”“첩?”하현은 꺼림직한 표정을 지었다.설은아는 하현의 표정을 보며 지그시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응, 첩이야. 용천
하현이 옅은 미소를 띠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왜? 당신이 말하는 걸 보니 흐름상 그녀는 슈퍼스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설은아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연예계의 그늘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잖아. 사청인은 몇몇 거물들의 잠자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그렇게 그렇게 점점 인기가 떨어지게 되어 조연이나 전전하게 된 거지.”“몸도 마음도 큰 상처와 모욕을 받았을 거야.”“그러다 용천진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의 여자 중 한 명이 된 뒤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그뿐이야?”하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사청인은 지금 용천진의 노리개일 뿐인데 용천진을 대신해 우리와 협상할 자격이 돼?”설은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청인이 용천진의 첩이 된 뒤 그의 세력을 빌려 한 가지 일을 했어. 그녀를 핍박했던 연예계 거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가족들까지 가만두지 않았어.”“심지어 연예계 거물들의 조상들 무덤까지 파헤쳐 뼈를 날려버렸지!”연예계에서 거물들의 잠자리를 거절한 대가로 핍박받던 여자가 얼마나 한이 많았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지 설은아는 한탄하듯 말을 맺었다.하현은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말했다.“독한 사람이군!”“용천진이 애지중지하겠어, 안 그래?”설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애지중지할 뿐만 아니라 모시다시피하지!”“용천진의 72명 첩 중 유일하게 한 회사를 독자적으로 장악하고 있어.”“그녀가 장악하고 있는 회사는 무성 최고급 쇼핑과 오락의 중심지인 무성 백양몰이야.”설은아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내가 여러 인맥을 통해서 그녀와의 자리를 마련한 거야. 오늘 그녀가 운영하는 투우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평화적으로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어.”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투우장? 평화적인 마무리?”“그럴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 거야?”“확률이 높진 않겠지.”설은아가 한숨을 내쉬
설은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나지막이 말했다.“그녀는 내가 세 번쯤 만나자고 계속 말하니까 겨우 응하며 투우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어.”“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어. 첫째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굳이 시간을 내서 우리를 만나고 싶지 않았겠지.”“둘째 그녀는 우리 쪽에서 안달이 나게끔 튕긴 거야. 일단 선수를 잡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셋째 그녀는 이번 기회에 내가 누구인지, 그녀와 협상할 자격이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도 몰라.”하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미있는 여자군. 어쩐지 아무 배경도 신분도 없는데 용천진 같은 거물을 쥐락펴락하더라니.”사청인이라는 여자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하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남을 해칠 마음도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남을 경계하는 마음까지 없어서는 안 된다.한 시간 후 차는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같은 건물이 있는 무성 교외에 도착했다.이곳은 건축 양식이 매우 독특해서 일종의 고대 투우장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동남서 세 방향으로 3미터 높이의 스탠드가 있었고 반대쪽에는 투우가 드나드는 곳이 있었다.그리고 맨 가운데는 축구장같이 움푹 팬 곳이 있었다.주위에는 뾰족한 가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강철 난간도 많아서 바람이 불기만 해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분명 이곳에서 성난 소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지금 투우 경기는 없었지만 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가 꽤 있었다.어떤 이들은 침묵하고, 어떤 이들은 분노하고 어떤 이들은 마치 닭의 피를 본 것처럼 흥분했다.주위의 바닥에는 배팅한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이곳의 수입은 얼핏 봐도 상당할 것 같았다.설은아는 하현을 데리고 들어와 귀빈석 쪽으로 향했다.“난 무성 황금 회사 설은아예요.”설은아가 신분을 밝히자 입구의 경호원은 무전기를 들고 신원을 확인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나와서 설은아와 하현을 데리고 들어갔다.하현이 줄
명문가 자제가 오랫동안 곁에 둔 양귀비 같은 여자는 존재감부터 남달랐다.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은 드러내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의심할 여지 없이 이 여자는 용천진의 다섯 번째 첩 사청인이였다.사청인 옆에는 역시 안하무인하고 오만한 자태의 남자가 서 있었다.남자는 가늘고 긴 담배를 비스듬하게 물고 이따금씩 담배연기를 내뿜었다.누아르 영화에서 보던 조직의 포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사납고 난폭한 느낌에 함부로 다가서기 힘들어 보이는 인상이었다.이 남자는 사청인의 경호원이었고 신분도 절대 나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발아래 사람들을 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 터였다.설은아는 하현에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눈짓을 한 후 미소를 머금고 사청인 앞으로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었다.“사청인 사장님, 안녕하세요.”“무성 황금 회사의 설은아입니다.”“오늘 만나 뵙기로 약속했죠. 채무에 대해서 얘기하기로.”“사청인 사장님과 얘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군요.”설은아의 말에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사청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거야?이건 용천진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아니면 사는 게 지겨워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보자는 건가?눈을 위아래로 내리깔며 설은아를 훑어보던 남자는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는 설은아가 사청인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대단한 조상을 두었길래 간덩이가 이렇게 부었나 생각했다.감히 함부로 돈 얘기를 꺼내다니?그것도 빚 독촉이라!“당신이 뭔데 여기 와서 빚 독촉을 하는 겁니까?”“그 돈 정말 사청인 사장님이 빌린 거 맞아요?”“제대로 알아보고 왔어야 할 겁니다!”“우리 사청인 사장님이 당신들한테 돈을 빌렸다고?”“지금 장난하는 겁니까?!”돈을 돌려받을 수
화려한 옷을 입은 몇몇 남녀들은 이를 보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분명 이런 장면들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는 듯했다.사청인도 이런 방법으로 사람의 혼을 빼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설은아가 어떤 투우를 선택하든 그 투우는 사고를 당할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독극물로 죽거나 중상을 입고 죽어 나가거나.어차피 사청인의 투우장에서 벌어지는 승부는 그녀가 결정하는 것이었다!“사청인 사장님, 이건 좀 심하신 것 아닌가요?”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녀는 비즈니스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보가 아니었다.만약 자신이 정말로 사청인과 함께 베팅을 한다면 십중팔구, 혹은 백 퍼센트로 자신이 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심지어 오늘 이 자리는 사청인 본인이 설은아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판을 뒤집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심하다고?”사청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그리고 차갑고 도도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무성에서, 그것도 대하 서남에서도 감히 나한테 빚 독촉을 하러 온 사람은 없었어요.”“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체면을 많이 봐준 줄 아셔야지.”“난 당신과 이런 사소한 일을 하기 위해 천보만보 물러섰는데 당신은 하지 않겠다 이 말인가요?”“왜? 우리가 만만해 보입니까? 무시하는 거예요?”여기까지 말하고 사청인은 냉담하게 고개를 치켜세웠다.그녀는 여전히 앉아 있었지만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듯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그게...”설은아는 고민에 빠졌다.사청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핑곗거리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동의한다면 자신의 이천억을 그냥 날리게 되는 것이다.순간 비즈니스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한 설은아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설은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하현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가 할게요.”하현은 사람들 앞으로 스스로 나서며 사청인을 향해 당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