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광은 한여침과 흑장미 일행을 마뜩잖은 눈빛으로 훑어보았다.어쨌든 그는 용문 무성 지회 출신이다.용문에서는 어디서든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지위였다.이 바닥에서 용문 사람이라고 하면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다.그래서 이희광은 이가음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 용의자가 도끼파 패거리에 섞여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부하들을 이끌고 돌진해 왔다.무성은 용문의 본거지였다.오늘 다친 사람은 용문 무성 지회장의 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이희광은 당연히 사람을 잡아들여야 했다.이희광은 한여침 등 도끼파 패거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용의자가 당신들 도끼파 패거리와 어떤 관계인지는 상관하지 않겠어.”“당신들 뒤에 누가 있든 그것도 상관없어!”“그러나 내가 오늘 이곳에 온 단 한 가지 이유는!”“그 용의자를 잡아가기 위해서야!”“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때려죽여 관에 넣어서라도 데려갈 거야!”“이가음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바로 관짝에 처넣을 거라고!”이희광은 손을 흔들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올라가! 어서 그놈을 잡아!”“감히 반항하는 자가 있거든 바로 죽여!”“모든 일은 나 이희광이 다 책임질 거야!”“흥! 당신들은 절대 날 감당할 수 없을 거야!”이희광은 부하들이 손을 쓰기 전에 이미 한여침 일행 속으로 다가가 으름장을 놓았다.“단 당신이 용문 제자라는 것도 있고.”“당신이 혹시 남한테 속아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한 것 같으니.”“나도 그렇게 당신을 곤란하게 할 생각 없어!”“지금 당장 당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그리고 다시는 이곳 무성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해.”하현은 두 손을 뒷짐진 채 무덤덤한 모습으로 일관했다.“그렇지 않으면 날 건드린 것으로 간주해 바로 밟아 버릴 거야!”하현은 이가음의 아버지가 용문 무성 지회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그렇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하현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의할 의사가 없었
”뭐? 당신을 모욕한 죄?”“놓치면 다음은 없다고?”“아주 임금 납셨네! 네놈이 거드름 피우는 걸 아주 좋아한다더니.”“그 말이 딱 맞는군.”이희광이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야! 내 말 잘 들어. 수작 부리지 마!”“네놈이 외지인인 건 둘째치고 설령 천왕 노자라 할지라도 감히 이가음을 다치게 한다면 분명히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자, 모두 시작해!”이희광은 임무를 띠고 이곳에 왔다.이가음의 모친은 경홍근이 보낸 사람이 전한 소식을 듣고 격노하며 명령을 내렸다.누구라도 하현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그 혁혁한 공을 치하하겠노라고.그래서 이희광은 임무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그의 명령에 무도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녀가 동시에 하현에게 달려들었다.“퍽퍽퍽!”하현은 손을 휘저으며 한여침에게 손을 쓰지 말라고 한 후 직접 한 걸음 내디뎌 손바닥을 휘저었다.그의 움직임에 한순간에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땅에 쓰러져 울부짖었다.용문 무성 지회 사람들도 하현의 일격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개자식! 감히 용문 사람들한테 손을 대?”이를 본 이희광은 눈을 치켜세우며 발끈했다.그는 자신이 허리춤에 있던 장검을 뽑아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네놈을 한 칼에 도륙내 버릴 거야!”“당신은 그럴 능력도 못 돼!”하현은 무덤덤하게 웃었다.그리고 냉담한 표정으로 영패를 꺼내 이희광의 얼굴에 딱 내리쳤다.자신도 모르게 영패를 건네받은 이희광은 방금 전까지 잔뜩 화가 나 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순간 멍해졌다.그는 뚫어져라 영패를 바라보았다.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용문 출신인 이희광은 영패를 한눈에 알아보았다.용문 집법당 당주!말 몇 마디로 기세등등하던 이희광을 얼려버렸다.이희광은 눈가에 경련을 일이키며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으
”그래? 그래서 이런 기세로?”“이렇게 막무가내로?”“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하현의 표정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너의 그 존경하는 여사님은 지금 어디 계셔?”이희광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감히 쓸데없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이실직고했다.“무성 샹그릴라 호텔입니다.”“오늘 밤은 부인의 생신날이라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겁니다.”“그래서 축하 선물로 당신을 바치려고 했던 거구요...”여기까지 말한 이희광은 눈을 질끈 감았다.눈앞의 신분을 알고도 축하 선물이라는 말을 내뱉다니!아뿔싸!“딸이 다쳤고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어.”“그리고 애꿎은 어린 여자를 죽도록 때려놓고.”“뭐? 생일잔치?”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그렇다면 나도 부인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야겠군!”하현의 말을 들은 이희광은 불안하게 눈꺼풀을 펄쩍이며 무릎을 꿇은 다리가 벌벌 떨렸다.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30분 후 무성 샹그릴라 호텔.하현은 여유로운 자태로 뒷짐을 지고 선두에 서서 걸어갔다.이희광은 바들바들 떨며 하현의 뒤를 따라갔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화려하고 우아한 호텔 로비를 지나 하현은 대리석이 깔린 복도로 거침없이 진입했다.복도의 내부에는 보석으로 치장한 문이 있었고 안쪽에는 샹그릴라 호텔 VIP 연회장이 있었다.오늘 밤 이가음의 모친 생일 파티가 열리는 곳이었다.그녀의 딸은 아직 회복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요양 중이었다.하지만 이가음의 모친에게는 생일잔치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생일잔치는 단순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빌려 평소에 보기 힘든 거물들을 한 자리에 불러 무성 상류층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딸의 생사가 이런 생일잔치와 비교가 되겠는가?연회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복도 입구에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기념품이 쭉 늘어서 있는 가운데 예닐곱 명의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그 안에는 설유아의 친구들 얼굴이 캡처되어 있었다.목영신은 이가음의 모친이 출입하는 장면을 캡처해서 하현에게 주었고 신상 정보도 세심하게 준비해 보냈다.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본 후 하현은 고개를 들고 성형을 잔뜩 한 여자의 얼굴 위로 시선을 던졌다.“당신이 진기희야? 용문 무성 지회장의 제자이고 이가음의 모친 전속 수행원?”“어머? 내 이름과 신원을 다 알아냈다고? 허! 공부 좀 했나 보군!”하현이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신원을 확인하려 하자 여자는 조금도 물러서는 기색 없이 성형한 얼굴을 당당히 내밀며 교만한 기색을 보였다.“내 신분을 알았다면 어서 썩 꺼져!”“그렇지 않으면 내 말 한마디에 당신들은 몸 성히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시골 촌뜨기 두 놈이 감히 이런 곳에 와서 밥이나 빌어먹으려고?”“당신들은 거울도 안 봐? 당신들이 그럴 자격이 되는지 어떤지 모르겠어?”이 여자는 이가음의 모친 수행 비서로서 누가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누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하현 같은 사람은 당연히 초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진기희의 다른 일행들은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그녀들의 눈에 하현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한심한 남자일 뿐이었다.이가음의 부인 같은 높으신 분의 생일잔치에는 하객들의 신원을 아주 꼼꼼히 체크한다는 걸 알아야 했다.어디 길가의 개나 고양이가 함부로 기웃거릴 수 있겠는가?여기가 시골 잔치 마당인 줄 아나?게다가 하현의 옷차림은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리 보아도 돈이 있어 보이지가 않았다.그러니 진기희 무리들이 하현을 비아냥거리지 않겠는가?하현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희광을 돌아보고는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용문의 규칙을 잊었어?”이희광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호라, 요금 무성에서 감히 날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어?”진기희는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했다.“맞아. 내가 그 여자 때렸어. 뺨 세 대 때리고 발로 찼어.”“그래서 뭐?”“내가 너무 가볍게 해서 섭섭한 거야?”“그 여자가 뭔데 감히 우리 부인을 못살게 구는 거야?!”“우리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사람에게는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몰라!?”“그 여자는 당해도 싸!”“똑똑히 들어. 그 일 아직 끝나지 않았어.”“부인의 생신잔치가 끝나고 나면 직접 그 여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서 단판을 짓고 말 거야!”“부인께 무릎 꿇고 잘못을 빌지 않으면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왜? 시골 촌뜨기가 그 여자를 구하러 온 거야?”“아니면 그 여자랑 몸이라도 섞은 거야?”“아주 화끈 달아올라?”“능력도 안 돼 보이는구만. 흥!”진기희는 비아냥거리며 말을 마치자마자 누군가에게 손짓했다.그러자 용문 무성 지회 사람들이 몇 명 다가왔다.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쫓아낼 기세로 돌진했다.몇 명의 손님들도 이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돈도 없는 사람들이 이런 데를 기웃거리다 사람들한테 쫓겨나는 신세라니 이런 꼴사나운 광경은 처음이었다.그들을 머릿속에 이런 꼴같잖은 사람들은 그들의 발바닥을 핥을 자격도 없었다.이희광은 온몸을 벌벌 떨었다.하현의 신분과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감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벌벌 떨고 있는 이희광의 모습에 진기희 일행의 눈빛은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시골뜨기는 시골뜨기였다.몇 마디 으름장에 잔뜩 겁을 먹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다니!아마 이런 장소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용문 제자들은 모두 일당백인 실력자들이었다.이 두 놈이 놀라서 벌벌 떠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진기
”네놈이...”“감히 날 때려?!”진기희의 성형한 얼굴이 한껏 더 일그러졌고 그녀는 분노에 휩싸인 채 고함을 질렀다.“내가 누군지 알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스승님 행동이 사나우시네. 지금 당신 제자가 누구냐고 묻는데 대답 안 할 거야?”이희광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진기희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을 날렸다.집법당 당주인 하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희광은 지금 자신의 역할을 독하게 해내야 했다.진기희 따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기희의 얼굴은 돼지머리마냥 부풀어 올랐다.정교하게 깎은 그녀의 이목구비도 완전히 일그러졌다.순간 그녀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이, 이봐! 이쪽으로 빨리...”그러자 몇 명이 몸부림치며 일어섰다.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이희광은 그들을 모두 걷어차 버렸다.이희광은 사나운 얼굴로 앞으로 나가 용문 제자들의 종아리를 밟아 부러뜨렸다.돼지 멱따는 소리가 이어졌고 용문 제자들은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한 채 널브러졌다.“당신은...스승, 스승님?!”드디어 용문 제자 중 한 명이 이희광의 얼굴을 알아보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정신입니까?”“부인의 생신잔치에 선물을 준비하기는커녕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 소란을 만들다니!”“죽고 싶습니까?”“퍽퍽!”이희광은 사람들이 계속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완전히 기절시켜 버렸다.하현은 이희광의 이런 잔인함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이런 사람은 좋은 개가 될 수 있다.발아래 두고 지시만 내리면 알아서 물어 버린다.별말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하현은 입과 코가 비뚤어지고 피범벅이 된 진기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 정도면 초청장 없이도 들어갈 수 있겠지?”“부족하다면 더 보여줄 수도 있어!”“당신들...”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툭툭 내뱉는 하현을 보고 진기희는 온몸을 떨었다.특히 이희광의 정체가 밝혀지자 진기희는
처절한 비명이 온 사방에 퍼졌다.진기희는 그대로 옆구리 쪽을 걷어차여 가슴 보형물이 납작해졌다.곧이어 하현은 울부짖고 몸서리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입구 쪽으로 향했다.하현은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연회장에서의 환한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하현이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이희광은 얼른 하현 앞으로 나가 문을 발로 뻥 걷어찼다!펑 하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이것은 부인의 생일잔치가 망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이희광이 끝까지 갈 준비를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굉음과 함께 객석의 모든 하객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생일잔치 진행을 맡은 예쁜 여자 MC가 뜨거운 열정으로 말을 하고 있다가 그대로 얼어버렸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이가음의 모친은 무성에서 가장 높은 신분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용문 서른여섯 지회장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용문 무성 지회장이었다.얼마나 많은 무성의 귀족 2세들이 용문 무성 지회의 제자들인지 셀 수도 없다.그리고 오늘 생일잔치에 온 사람들은 비록 상위권 최고 신분은 아닐지라도 모두 꽤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이런 생일잔치에 어떤 미친놈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거리낌 없이 날뛰고 횡포를 부릴 수 있겠는가?“누구야?!”“누가 이렇게 소란을 피워?!”현장 질서 유지를 담당하던 용문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쏜살같이 달려와 앞장서서 호통을 쳤다.다른 손님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저 너머 입구 밖에 진기희 일행이 널브러져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이건 오늘 생일잔치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누가 함부로 이가음의 모친 얼굴에 먹칠을 한단 말인가?케이크를 자르려던 부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러나 그녀는 동요하지 않고 샴페인 잔을 쥔 채 불청객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비록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단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현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란 종업원에게 손을 흔들어 샴페인을 한 잔 청했고 목을 축인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샴페인 한잔 주셨으니 부인에게 기회를 드리죠.”“지금 당장 나가세요. 그럼 사지 멀쩡한 몸은 보전해 드리죠.”하현의 말을 들은 이가음의 모친은 코웃음을 치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놈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누구든 자기 사람들이 하현을 처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여사님,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원래 잘 하는 거 있잖아요?”“큰소리 뻥뻥 쳐 보시죠?!”“어째서 지금은 겁쟁이가 되셨어요?”하현은 샴페인을 쥐고 단상으로 향했다.“어쨌든 용문 무성 지회장 부인이잖아요.”“이러면 정말 실망인데.”“야! 어디서 건방이야!”“여기가 어디라고!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이때 중년 남자가 일어서서 양복 재킷을 벗어던지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채 기세등등하게 단상으로 향했다.“감히 우리 사모님 앞에서 허세를 부려?”“잘 들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온전하지 못할 거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남자를 쳐다보았다.웃는 듯 마는 듯한 하현의 표정을 보고 남자는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고 직접 호통을 치며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그의 몸이 포탄처럼 튀어나와 그대로 하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이 남자의 행동을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현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쏟아내었다.“이제 저놈은 망했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서 허세를 부려?!”“장 선배님이죠? 정말 셔츠핏 멋지네요!”“몸은 또 얼마나 단단한데! 여러 명이 동시에 덤벼도 끄떡없다고 하더라고!”“저 허여멀건한 놈은 재수가 없는 거지. 장 선배는 줄곧 여사님을 존중해 왔어. 그런 그가 저놈을 가만히 놔두겠어?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많은 사람들은 좋은 구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
”너희들은 기껏해야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야. 형홍익 같은 사람이 봐줄 사람들이 아니라고!”“데릴사위 따위가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고? 그렇게 잘났다고?”“허풍을 떨어도 좀 그럴싸하게 해야지! 흥!”우다금은 이 일에 하현이 중간 역할을 했을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아니, 언니!”우다금이 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최희정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비록 그녀도 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우다금의 말엔 참을 수가 없었다.“자네, 어서 자네가 도와줬다고 말해!”최희정은 우소희의 그 정도 능력으로는 SL그룹에도 못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어떻게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그래서 하현이 정말로 형홍익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특히 무성에서의 일을 떠올리자 최희정은 하현이 확실히 어떤 거물과 인연을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비록 죽일 듯이 하현을 싫어하는 최희정이지만 우다금이 뻔뻔스럽게 모든 일을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설은아의 난처한 표정을 본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모님...”“이, 이모라니?!”하현이 뭐라고 해명을 하기도 전에 우다금은 앞뒤 따져 보지도 않고 무지막지한 얼굴로 퍼부었다.“이모라니? 내가 어떻게 당신 이모야? 누가 당신 이모냐고?”“데릴사위 주제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쓸데없는 말 하지 마!”“우리 소희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너네들같이 속물 덩어리들과는 상대하지 않을 거야!”“아까는 온갖 이유를 대며 도와주지 않으려고 데릴사위 하나까지 핑계를 갖다 붙이더니 이제 와서 내 딸이 좋은 곳에 들어간다니까 어떻게든 생색내려는 거잖아?”“정말 이렇게 뻔뻔한 사람들은 처음 봐!”“내가 다시는 이 집에 발을 들이나 봐!”“우리 소희가 이제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고 절
말을 하면서 우소희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였다.결국 형 씨 가문 그룹에서는 그녀의 체면을 세워 주며 높은 급여를 제시한 것이다.이만큼의 연봉을 받는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우다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소희야. 정말 형 씨 가문 그룹이래? 잘못 들은 거 아니지?”“맞아, 똑똑히 들었어. 인사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틀림없이 그 목소리가 맞아.”우소희는 만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형 씨 가문이 정말 눈치 하난 빠르네.”이 광경을 보고 설은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과 형 씨 가문의 관계가 이렇게 공고하고 깊은 줄은 몰랐다.전화 한 통으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결하다니!설마 간민효 때문은 아니겠지?그녀는 방금 하현이 전화할 때 건너편에서 여자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았다.금정에서 형 씨 가문을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현은 질투의 그림자가 설은아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그렇다고 형나운에게 전화했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자신이 또 다른 여자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질투의 화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할지도 모른다!하현과 설은아가 서로 무언의 묘한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우다금은 이미 자신의 딸의 운명을 점찍었다.“잘됐어! 정말 잘됐어! 형 씨 가문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어!”“하늘이 도왔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기회로 삼아 그녀는 친척들 사이에서 한껏 콧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언니! 하늘이 도운 게 아니야!”최희정이 어떻게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하현이 언니를 도와준 거야!”이 말을 듣고 하현은 깜짝 놀랐다.최희정의 승부욕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하현? 그 데릴사위가?”최희정의 말을 들은 우다금은 곁눈으로 하현을 흘겨보면서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귀가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