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장검을 든 십여 명의 인도 고수들이 무서운 아우라를 풍기며 걸어 나왔다.이 사람은 아마 인도인 최고의 고수일 것이다.이들의 중앙에는 금빛 가사를 입은 큰 스님이 있었다.그의 표정은 냉랭하고 용맹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에 말할 수 없는 위엄과 위세가 풍겼다.진주희는 이 사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이 스님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직감이 바로 들었기 때문이었다.“스승님!”“브라흐마 커크 스승님!”스승님을 보자 브라흐마 아부와 김규민이 동시에 입을 열었고 얼굴에 가득 화색을 띠었다.그들은 큰스님이 오셨으니 모든 일은 이제 술술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이 스님이 바로 인도 3대 성승 중 하나이고 선봉사의 고수인 황금궁에 있던 브라흐마 커크였다!이미 전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칭송이 자자했으며 그만큼 실력이 무시무시하기로 유명했다.브라흐마 커크가 나타나자 김규민은 이제 곧 하현은 브라흐마 커크에게 요절이 날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다.브라흐마 커크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본척만척한 채 손에 든 염주를 돌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는 하현과 처음 만났지만 하현과 인도인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눈앞의 이놈 때문에 인도인이 오랫동안 무성에서 쌓아 놓은 초석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순간 브라흐마 커크는 하현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그는 큰 스승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불경을 되뇌며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가라앉혔다.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자신의 심복 제자인 브라흐마 아부의 생사는 아직 상대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브라흐마 아샴이 죽고 브라흐마 아부마저 죽으면 브라흐마 커크의 대물림은 완전히 끊기게 된다.브라흐마 커크의 무서운 기세, 조금도 흔들림 없는 매서운 눈빛에도 하현은 조금도 주눅 들거나 불안해하는 것 없이 끝까지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젊은이, 내 제
”앗!”땅에 떨어지는 순간 비명은 극에 달했다.방금 전까지 오만방자하던 브라흐마 아부는 입과 코에서 피를 뿜으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그는 일어서려고 발버둥쳤지만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말하자면 그는 시작과 과정은 창대했지만 결말은 초라했다!그가 자랑처럼 내걸었던 브라흐마라는 성 씨는 인도에서 고귀한 성 씨였다!그리고 그는 젊은 세대의 자존심이었다!인도 3대 성승 중 하나인 브라흐마 커크의 심복 제자였고 인도상회의 부이사장이었다!더욱이 무성 상류층의 큰 인물, 용천오와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브라흐마 아부는 자신의 신분이 이렇게 높은데 누가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있으랴 자신했었다.경찰서 사람들도 기껏해야 자신을 48시간 동안 가두는 조치밖에 하지 못했다.외교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하현이 손쓸 틈 없이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다.이익을 최고로 여기는 인도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완전히 망가진 지금 이 순간 브라흐마 아부는 전부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다!몸이 망가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도인이었다!브라흐마 아부는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아부!”“브라흐마 아부!”브라흐마 아부가 피를 토하자 인도인들이 제각각 반응을 보였다.어떤 인도인이 날듯이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워 조심스럽게 맥을 짚었지만 이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가망이 없어!”브라흐마 커크도 안색이 어두워지며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망이 없다고?!”그는 인도 3대 성승 중 하나로서 몇 년 동안 끝없는 비바람을 겪었다.그러나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자신의 뒤가 끊어지는 것을 본 브라흐마 커크는 절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자신의 신분을 떳떳이 밝혔건만 하현 이놈은 그의 면전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제자를 만신창
”저승길 가는 네놈을 후회로 가득 차게 만들 생각이거든!”“다음 생에는 고귀한 인도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브라흐마 커크는 험악한 얼굴로 칼을 빼 들었다.하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타깝게도 당신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해.”“당신의 아들도 나보다 못하고 당신의 제자도 나보다 못했어. 그러니 당신도 보나마나겠지!”“전신급에 겨우 발을 반쯤 내디딘 사람이 어떻게 내 앞에서 콧방귀를 뀌겠어?”브라흐마 커크가 눈을 부라리며 이를 갈았다.“그래, 알았어!”“아무 두려움도 없다는 거지?!”“그렇다면 우리 인도의 비술이 얼마나 뛰어나고 무서운지 보여줄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라흐마 커크의 손에는 어느새 부적이 하나 붙어 있었다.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손가락으로 부적을 한 움큼 태우고는 자신의 미간에 찍어 발랐다.“휙!”부적 파편들이 떨어지는 순간 하현은 브라흐마 커크의 숨결이 순식간에 몇 배로 치솟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특히 브라흐마 커크의 눈동자는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사악한 악마처럼 핏빛으로 변했다.말할 수 없는 위압이 공간을 에워싸고 하늘을 가득 메워 버리는 것 같았다.전신급 위력이었다!“인도 최면술?”하현의 눈꺼풀이 조심스럽게 움츠러들었다.“자기 최면을 통해 잠재력을 완전히 폭발시킬 줄은 몰랐군.”“당신 이 일의 뒷감당이 어떨지 알고나 하는 거야?”“뒷감당?”“네놈을 죽일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브라흐마 커크가 섬뜩하게 웃었고 순간 손에 든 칼을 들고 앞으로 내달렸다.마치 금빛 바퀴가 허공을 가르는 것처럼 칼날이 번쩍이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십여 명의 인도 고수들도 울부짖으며 다 함께 돌격해 왔다.그들의 손에 있는 장검이 눈부시게 빛났다.하지만 이 모습을 보고도 하현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인도인들을 차례로 물리쳤다.현장은 몸싸움으로 서로 뒤엉켰고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달았다.방금 그곳을 떠나
브라흐마 커크가 최면술을 쓴 후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려고 하현은 자신의 힘을 억누른 채 단칼에 그 자리에서 그를 찌르지는 않았다.그리고 브라흐마 커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그의 손에 있는 단검의 속도도 상당히 빨랐고 덕분에 하현의 날쌘 공격에도 박빙의 승부를 보일 수 있었다고 그는 자신했다.순간 장내 곳곳에서 금속성 충돌음이 끊이지 않았다.“쨍그랑!”“촹!”하현이 연달아 칼을 빼들자 브라흐마 커크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단검을 휘두르며 칼을 높이 들었다.마치 공기 중에 폭풍을 일으키듯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촹!”하현은 반으로 잘린 장검을 들고 브라흐마 커크의 칼을 막았다.다만 일부러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은 관계로 하현은 뜻밖에도 상대의 칼에 밀려 뒤로 후퇴했다.김규민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재빠르게 뒷걸음질쳤다.그녀는 하현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튈 세라 감히 너무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전신급이군!”하현은 굳건히 서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신은 분명 전신의 반열에 겨우 반쯤 발을 걸친 정도일 뿐인데 인도 최면술로 아주 최상의 경지를 유지하고 있어!”“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는 것도 같고!”“다만 이 달콤함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당신은 잘 모르겠지, 안 그래?”하현이 보기엔 지금 브라흐마 커크의 실력은 최면술로 잠재력을 끓어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다.최면술의 기세가 떨어진다면 브라흐마 커크의 기세도 바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 완전히 망가져서 평생 손을 쓸 수도 없을 지경이 될 것이다.“말로는 무슨 말로?”“오늘 내가 네놈의 목숨줄을 끊을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난 널 죽이고 말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라흐마 커크는 포효하며 음산한 얼굴로 하현을 향해 다시 한번 돌진했다.그의 칼이 하현에게 떨어졌다.“솩!”칼끝이 하현에게 닿기도 전에 그의 살의는 도처에 퍼졌다.브라흐마 커크의 칼날을 보
이를 본 김규민도 냉소를 띠며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이제 넌 끝났어!”“인도 선봉사의 칼인데 어떻게 저걸 막겠어. 칼이 쪼개지면 넌 보는 눈이 멀게 돼! 더 이상 진실을 가려낼 수 없지!”“잘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넌 죽을 수밖에 없어!”“내가 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어!”“자신보다 나은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결국은 때에 따라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준걸인 거지.”“물론 네가 무릎을 꿇은 후에 브라흐마 커크 스님이 널 죽일지 말지는 별개의 문제지만!”비꼬는 김규민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인도 사람들은 모두 입을 히죽히죽거렸다.그들은 하현이 단칼에 죽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것도 보고 싶긴 했다.브라흐마 커크조차 냉소를 금치 못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하현의 의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하현이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꼭 보고 싶었고 처참하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다.그러나 여기저기 쏟아지는 조롱에도 하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정말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군!”“김규민, 김 씨 가문도 무학의 대가이고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과도 얽혀 있는데.”“무학의 기본 원칙도 몰라?”김규민이 비아냥거리며 되물었다.“무학의 기본 원칙?”“천하의 무공은 난공불락이지. 빠르면 절대 깨지지 않는다, 뭐 그런 거?”“누굴 세 살 바보로 아나? 이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나 참 기가 막혀서. 그렇게 당당하면 지금 당장 보여줘! 지금 이 상황에서 빠른 게 다 무슨 소용이야?”“유치해서 정말!”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 말 말고 또 다른 말이 있을 텐데.”“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모든 전략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하현은 말을 마치며 손에 쥐고 있던 장검 반 토막을 갑자기 휘두르더니 순식간에 파편이 되어
”빨리! 얼른 스님을 살리세요!”“대하인에게 죽임을 당하게 할 수는 없어!”선두에 선 한 인도인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장검을 들고 브라흐마 커크의 앞을 직접 막았다.다른 인도인들도 모두 반응하며 일제히 손에 든 총과 장검을 들고 하현을 죽이려고 나섰다.그러나 정작 하현은 이들의 움직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브라흐마 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들 인도의 비책이라는 것이 고작 이거야!”“그러면 당신은 오늘 원하는 것을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 같은데.”브라흐마 커크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들어 하현을 노려보았다.갑자기 늙어버린 얼굴에는 원한과 독기가 가득 번졌다.“우리 인도인은 원한이 있으면 기필코 갚고야 말지. 이 일은 절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야!”“그래?”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뿌리를 뽑지 뭐. 그래야 앞으로 아무도 날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하현의 말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살의를 느낀 인도 고수들은 순간적으로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들의 마음속에 브라흐마 커크를 향한 원망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브라흐마 커크는 왜 자꾸 끝까지 원한을 갚겠다는 둥 하면서 하현을 자극하는 것일까?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지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현의 기분을 더 자극해 봤자 목숨을 잃는 건 인도인이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그들은 손에 든 장검과 총을 들고 하현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부릉부릉!”바로 그때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잠겨 있던 대문이 양옆으로 나뒹굴며 열렸다.곧이어 금색 줄을 지어 선 랜드로버가 씽씽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문이 열리며 거만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절망적인 얼굴이었던 브라흐마 커크는 이 사람을 보고 이내 오만방자한 미소가 떠올랐다.“하현, 보아하니
하지만 누가 오든 하현이 브라흐마 커크를 죽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하현은 브라흐마 커크의 아들과 제자를 죽였고 이렇게 많은 부하들을 때려눕혔다.만약 오늘 여기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후환이 생길지도 모른다.뿌리를 뽑아야지 뒤탈이 없다!“하현! 당신 죽고 싶어!”하현의 무덤덤한 말투에 차영심은 표정이 급변했고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 너무 오만하군!”“지금 당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기나 해?”“황금궁이라고? 무성에서 황금궁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브라흐마 커크 스님이 우리 황금궁에서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냐고?”“감히 우리 앞에서 브라흐마 커크 스님을 죽이겠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 아니고야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려?!”“당신이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일도 아직 제대로 청산 안 되었는데!”“빈소에 무단으로 침입해 불법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당신은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도 못할 짓을 한 거야!”“브라흐마 커크 스님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허!”“도대체 누가 당신한테 이런 용기를 준 거야?”차영심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하현을 가리켰다.“황금궁의 집법전을 대표해 경고하겠어!”“당장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잠자코 기다리기나 해!”“감히 반항한다면 큰 코 다칠 거야! 잔인하다고 날 원망하지 마!”“어차피 당신은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사실도 있는데 지금 또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한다고?!”“나중에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저승에서 날 욕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차영심이 말을 마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의 뒤에 있던 남녀가 동시에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고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하현을 에워쌌다.차영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잡아먹을 듯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피에 굶주린 늑대들 같았다.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차영심 일행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조금도 봐주는 것 없이 차영심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차영심의 얼굴빛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급변하는 것을 보니 분명 그녀는 이 일들을 모두 다 알고 있는 듯했다.단지 그녀는 선택적으로 입을 다문 것뿐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하현을 노려보며 발뺌했다.“하 씨! 당신이 말한 건 내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야! 아무 증거도 없다고!”“당신이 아무리 말해 봐야 소용없어!”“하지만 난 당신이 함부로 흉기를 휘두르며 사람을 다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려는 걸 보았어!”“무엇보다 브라흐마 커크는 우리 황금궁에 계신 분이야!”“그런 분의 체면도 세워 주지 않고 이렇게 잔인하게 굴다니!”“당신의 이런 악랄한 행동은 이 바닥의 규칙을 깡그리 무시한 거라고!”“또한 당신은 외교 분쟁을 일으켜 우리 대하의 국제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혔어!”“그런 면에서 당신은 정말 큰 죄를 짓고 있는 거라고!”“우리가 아무 근거도 없이 당신을 몰아세우는 거라고 말하지 마!”“내가 지금 당신을 사살한다고 해도 당신은 마땅히 죗값을 받는 것뿐이야. 죽어도 싸다는 얘기지!”“그래서 당신이 억울하든 말든 지금은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제재를 받아야 해!”이쯤 되자 차영심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능력이 있거든 어디 명령을 어겨 보시든가!”“그러면 우리 황금궁이 왜 무학의 성지라고 불리는지 알게 될 거야!”황금궁 집법전이라고 하는 큰 언덕이 차영심에게 당당한 자신감을 준 것 같았다.무성에서 황금궁 집법전이라는 여섯 글자는 누구도 반항하지 못할 큰 집단이었던 것이다.용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를 깍듯이 대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해 봐야 뻔한 얘기였다.그녀의 오만방자함은 오늘 극에 다다른 듯 하늘을 찔렀다.브라흐마 커크는 이 모습을 보고 냉소를 금치 못했다.“하현 저놈은 잔인하고 흉포하기가 이를 데 없어!”“제자의 목숨을 걸고 위협한 뒤 날 급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저놈한테 당했겠어?”“당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