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얼른 스님을 살리세요!”“대하인에게 죽임을 당하게 할 수는 없어!”선두에 선 한 인도인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장검을 들고 브라흐마 커크의 앞을 직접 막았다.다른 인도인들도 모두 반응하며 일제히 손에 든 총과 장검을 들고 하현을 죽이려고 나섰다.그러나 정작 하현은 이들의 움직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브라흐마 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들 인도의 비책이라는 것이 고작 이거야!”“그러면 당신은 오늘 원하는 것을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 같은데.”브라흐마 커크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들어 하현을 노려보았다.갑자기 늙어버린 얼굴에는 원한과 독기가 가득 번졌다.“우리 인도인은 원한이 있으면 기필코 갚고야 말지. 이 일은 절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야!”“그래?”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뿌리를 뽑지 뭐. 그래야 앞으로 아무도 날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하현의 말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살의를 느낀 인도 고수들은 순간적으로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들의 마음속에 브라흐마 커크를 향한 원망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브라흐마 커크는 왜 자꾸 끝까지 원한을 갚겠다는 둥 하면서 하현을 자극하는 것일까?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지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현의 기분을 더 자극해 봤자 목숨을 잃는 건 인도인이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그들은 손에 든 장검과 총을 들고 하현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부릉부릉!”바로 그때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잠겨 있던 대문이 양옆으로 나뒹굴며 열렸다.곧이어 금색 줄을 지어 선 랜드로버가 씽씽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문이 열리며 거만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절망적인 얼굴이었던 브라흐마 커크는 이 사람을 보고 이내 오만방자한 미소가 떠올랐다.“하현, 보아하니
하지만 누가 오든 하현이 브라흐마 커크를 죽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하현은 브라흐마 커크의 아들과 제자를 죽였고 이렇게 많은 부하들을 때려눕혔다.만약 오늘 여기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후환이 생길지도 모른다.뿌리를 뽑아야지 뒤탈이 없다!“하현! 당신 죽고 싶어!”하현의 무덤덤한 말투에 차영심은 표정이 급변했고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 너무 오만하군!”“지금 당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기나 해?”“황금궁이라고? 무성에서 황금궁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브라흐마 커크 스님이 우리 황금궁에서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냐고?”“감히 우리 앞에서 브라흐마 커크 스님을 죽이겠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 아니고야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려?!”“당신이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일도 아직 제대로 청산 안 되었는데!”“빈소에 무단으로 침입해 불법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당신은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도 못할 짓을 한 거야!”“브라흐마 커크 스님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허!”“도대체 누가 당신한테 이런 용기를 준 거야?”차영심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하현을 가리켰다.“황금궁의 집법전을 대표해 경고하겠어!”“당장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잠자코 기다리기나 해!”“감히 반항한다면 큰 코 다칠 거야! 잔인하다고 날 원망하지 마!”“어차피 당신은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사실도 있는데 지금 또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한다고?!”“나중에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저승에서 날 욕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차영심이 말을 마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의 뒤에 있던 남녀가 동시에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고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하현을 에워쌌다.차영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잡아먹을 듯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피에 굶주린 늑대들 같았다.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차영심 일행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조금도 봐주는 것 없이 차영심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차영심의 얼굴빛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급변하는 것을 보니 분명 그녀는 이 일들을 모두 다 알고 있는 듯했다.단지 그녀는 선택적으로 입을 다문 것뿐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하현을 노려보며 발뺌했다.“하 씨! 당신이 말한 건 내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야! 아무 증거도 없다고!”“당신이 아무리 말해 봐야 소용없어!”“하지만 난 당신이 함부로 흉기를 휘두르며 사람을 다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려는 걸 보았어!”“무엇보다 브라흐마 커크는 우리 황금궁에 계신 분이야!”“그런 분의 체면도 세워 주지 않고 이렇게 잔인하게 굴다니!”“당신의 이런 악랄한 행동은 이 바닥의 규칙을 깡그리 무시한 거라고!”“또한 당신은 외교 분쟁을 일으켜 우리 대하의 국제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혔어!”“그런 면에서 당신은 정말 큰 죄를 짓고 있는 거라고!”“우리가 아무 근거도 없이 당신을 몰아세우는 거라고 말하지 마!”“내가 지금 당신을 사살한다고 해도 당신은 마땅히 죗값을 받는 것뿐이야. 죽어도 싸다는 얘기지!”“그래서 당신이 억울하든 말든 지금은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제재를 받아야 해!”이쯤 되자 차영심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능력이 있거든 어디 명령을 어겨 보시든가!”“그러면 우리 황금궁이 왜 무학의 성지라고 불리는지 알게 될 거야!”황금궁 집법전이라고 하는 큰 언덕이 차영심에게 당당한 자신감을 준 것 같았다.무성에서 황금궁 집법전이라는 여섯 글자는 누구도 반항하지 못할 큰 집단이었던 것이다.용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를 깍듯이 대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해 봐야 뻔한 얘기였다.그녀의 오만방자함은 오늘 극에 다다른 듯 하늘을 찔렀다.브라흐마 커크는 이 모습을 보고 냉소를 금치 못했다.“하현 저놈은 잔인하고 흉포하기가 이를 데 없어!”“제자의 목숨을 걸고 위협한 뒤 날 급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저놈한테 당했겠어?”“당
차영심의 눈에 분노가 들끓었다.하현은 하찮은 인간일 뿐인데 감히 끊임없이 도발하다니 차영심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고 가차 없이 장검을 뽑아 하현의 목구멍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그리고 항복해!”“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거야!”“큰소리만 뻥뻥 쳤지 생각이란 없는 놈 같으니라고!”차영심의 말을 듣고 하현이 코웃음을 치는 순간 입구 쪽에서 굉장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한바탕 들려왔다.차영심 일행은 화를 버럭 내려다가 벤틀리의 번호판을 보고 지금까지 의기양양했던 눈빛이 돌변했다.황금궁 집법전 사람들도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그것은 연경의 번호판이었고 차 번호가 짧고 간결한 것이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도 범상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문이 천천히 열리자 전통의상을 입은 영지루가 싸늘한 표정으로 내렸다.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그녀의 이전 경호원들과는 달리 하나같이 관자놀이가 부풀어 오른 채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리고 이 사람들의 가슴에는 검은 도장이 찍혀 있었고 그 위에는 용 한 마리가 승천하고 있었다.차영심은 눈초리를 가늘게 모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용위?!”대하에는 용문, 용전, 용옥, 용위 4개의 초석이 있다.4개의 초석 중 용위가 가장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그들의 존재 의의가 대하에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간단히 말해서 용위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여자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걸 말해 주었다.차영심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몰랐지만 용위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들고 있던 장검은 어느새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영지루가 나오는 것을 보자 차영심은 의식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저기 죄송하지만...”“여기는 저희가
”개자식! 여기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인 줄 알아?”브라흐마 커크는 하현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차영심한테 내쫓겨서 그가 떠나는 줄 알고 펄쩍펄쩍 뛰었다.“이 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놈들...”말이 끝나기도 전에 잠자코 입 다물고 있던 용위 고수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 발 내딛더니 바닥에 있는 장검을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쉭! 쉭!”서늘한 칼날이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인도인들의 목에 떨어졌다.“윽!”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오자 브라흐마 커크 일행들은 목이 메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았다.그들의 눈빛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어리둥절함과 답답함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그들은 죽일 듯이 용위 고수를 노려보았다.상대가 이렇게 함부로 칼을 휘둘러 그들을 죽일지는 몰랐다.영지루는 이 모습을 본척만척하며 하현과 함께 차 문을 열었다.“하현, 어서 가. 우린 야식이나 먹자고. 같이 먹을 거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진주희에게 손짓을 한 후 차에 올랐다.벤틀리가 떠난 후 김규민은 비로소 손에 힘이 풀렸다.쥐고 있던 장검은 댕그랑 땅바닥에 떨어졌다.차영심 일행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이 오기 전에 많은 계획을 세웠고 물샐틈없는 후수를 마련해 두었다.하현이 완강히 저항을 하든 속수무책으로 잡히든, 아니면 어떤 큰 뒷배를 불러들이든 이 모든 상황들을 황금궁은 진압할 수 있었다.결국 이 바닥에서 무학의 성지 황금궁 한마디면 끝나는 일이었다.하현을 잡으면 브라흐마 커크를 지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그런데 이렇게 고귀한 신분이 용위를 데리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인도인을 해결하는 김에 하현까지 데리고 야식을 먹으러 가다니!차영심은 눈앞의 상황들이 너무나 믿기지가 않았고 무섭기까지 했다.감히 황금궁의 호위를 받는 사람을 죽이고 연경 번호판을 단 차량으로 용위 고수들을 이끌고 가다니!이런 고귀한 신분이 직접 나서서 손을 썼을 때 어떻게 뒷일을 예상하지 않고 앞에
”무성 신시가지는 용 씨 가문 용천오가 무성 파트너스를 설립한 후 첫 번째로 분양하는 사업입니다.”“무성 신시가지는 성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서 경치도 풍수도 아주 우수하다고 합니다.”“무성 신시가지에 입주하면 출세한다는 풍수 스님의 말씀도 있었고요!”“무성의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고 나아가 대하 서북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거라고 합니다.”“무성 신시가지의 1차 물량은 100채도 안 되는데 벌써 다 팔렸다고 합니다.”“이번에 분양하는 9999채는 무성 신시가지에 남아있는 마지막 물량이 될 것입니다!”“내일부터 용천오는 부동산에 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이익을 양도하는 차원에서 2차 물량을 싸게 분양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원래 8억이었던 집을 7억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TV 속의 기자는 흥분한 표정으로 보도에 열을 올렸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한껏 어필하고 있었다.덧붙여 용천오는 절대로 이익을 위해 이런 부동산 분양을 하는 것이 아님도 넌지시 알리고 있었다.TV 화면에서는 무성 신시가지의 모습이 계속 나왔다.성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단지의 모습은 보기에도 풍광이 아주 수려해 보였다.또한 국내 4세대 주거 컨셉의 주택, 주요 럭셔리 브랜드가 입주한 상가, 고급 경비 시스템 등이 있었다.이 모든 것들은 무성 신시가지의 주택 환경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하현이 뉴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마침 옆에 있던 최희정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왜? 부러워?”“용천오는 정말 대단해!”“저거 용천오가 이미 나한테 말했었잖아!”“그의 목표는 대하 서북부에 최고 부촌을 만드는 거라고 하더군!”“대하 서북구의 모든 권력자들을 거기에 입주하게 하는 게 목표라면서!”“99개 동이래!”“거기를 다 합치면 9999채나 돼!”“거기 한 채가 최소 7억이야!”“이곳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
최희정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자네와 용천오의 차이를 자네도 잘 알고 있군그래!”“용천오의 어마어마한 역량도 잘 알고 있다니 말이야!”“그래, 맞아. 부동산만 해도 용천오는 적어도 몇 조는 될 거야!”“그렇다고 자네, 용천오를 질투하고 미워할 필요는 없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이미 용천오 쪽 대리인이 선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예약이 폭주해서 내일 오픈할 때 추첨을 통해야만 집을 계약할 수 있다고 해!”“은행에 예금 십억 이상이 없는 사람은 분양 사무실에 발도 들여놓을 수가 없다는군!”“당첨률이 10대 1 정도라지!”“오늘 밤 무성 호텔이 완전히 꽉 차겠어!”“대하 서북부 지역의 권력자들은 거의 다 올 테고!”“다들 최고 부촌에 집을 사서 살고 싶은 거지!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왜? 자네도 한 채 사고 싶어?”“그런데 어떻게 이런 꼴로 살 수 있겠어?”“살 수 있다고 해도 들어갈 수나 있겠어?”최희정은 완전히 무시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에 대한 편견이 아주 확고한 것 같았다.하찮고 볼품없는 하현 때문에 자신의 딸이 부잣집에 시집을 못 가는 것이 분하고 원통한 것이다.하현은 일어나서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장모님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니 이곳의 매물에 아주 기대가 높은 것 같군요.”“내일 내가 직접 가서 한 채 사드릴게요.”“나중에 거기서 거주할 의향이 있다면 그냥 거주해도 됩니다. 어떻습니까?”최희정은 원래 하현에게 더 비아냥댈 참이었지만 하현의 말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일어서서 큰소리를 버럭 질렀다.“은아야, 너 들었니? 방금 이놈이 나한테 집을 사주겠다고 한 거?!”“나한테 무슨 집을 어떻게 사주겠다는 건지 내일 똑똑히 봐야겠어!”“내일 돼서 뭐 추첨에서 떨어졌네 어쩌네 그딴 소리 하기만 해 봐!”“추첨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 집을 사서라도 대령해야 할 거야?! 알았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추첨
분양 홀 곳곳에는 진줏빛 장식과 휘황찬란한 조명이 반짝반짝 빛났고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쫙 깔려 있어 고급스럽고 웅장한 멋을 더했다.로비 양옆에는 온통 예쁘장한 바니걸 차림의 도우미들이 열기를 후끈 달구고 있었다.고급차가 등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가 하나둘씩 입장하자 무성 파트너스 회원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무성의 각 분야에서 매주 중요한 인물들이었고 용천오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오만방자함의 근원이었다.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용천오도 없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현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대하 서북부 각지에서 온 재력가들은 지금 모두 무성 신시가지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모두들 이곳의 부동산이 8억이면 너무 싸고 가성비도 높다고 생각했다!무성 파트너스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나자 무성 TV의 아름다운 여성 진행자가 앞으로 나와 높은 단상에 섰다.“여러분,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입니다.”“무성 신시가지 최대 주주이자 주최자인 용천오 대표님을 소개하겠습니다!”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뒤쪽 통로로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쏠렸다.많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은 더욱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용 씨 가문은 10대 가문 중 최고로 꼽히는 집안이었다.용천오가 곧 용 씨 가문 문주의 자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존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6년 전만 해도 가문 내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용천오가 최근 몇 년 사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인물로 성장한 것이다!그가 이루어 놓은 경력만으로도 사람들은 전설적이라 부르며 그의 업적에 칭송이 자자했다.외부에서는 용천오가 문주 자리에 앉으면 용 씨 가문이 더욱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가장 중요하고도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아직 싱글이라는 점이었다.이것은 단연코 재력가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그래서 용천오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곧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