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희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순간 그녀의 모습이 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장타를 날렸다.그녀는 상대가 하현을 다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대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강경하게 맞서기로 선택했다.“쾅!”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혔고 수세에 몰린 진주희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올랐고 그대로 피를 토할 뻔했다.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피를 삼키고 돌아서서 발을 내디뎠다.진주희의 동작과 함께 노란색 그림자가 사방으로 날아오르더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부딪혔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시선을 돌렸다.기습한 사람은 중년의 인도 요승이었다.그는 노란색 승복을 입고 맨 앞쪽 머리에 검은 점 몇 개를 가지고 있었다.다만 그의 차림새는 출가한 듯 보였으나 전체적인 기세는 사납기 그지없고 요괴에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명실상부한 인도의 요승임이 틀림없었다.“넌 이제 물러가거라.”인도 요승이 다시 손을 쓰려고 했을 때 입구 쪽에서 오만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감히 우리 인도 요승의 일격을 막아내다니!”“인도파 뒤에는 우리 인도상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인도파를 건드린 건 우리 인도상회를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야.”“인도상회를 건드린 건 대하의 모든 인도인들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고...”“뒷감당할 수 있겠어?”남자의 말소리와 함께 입구 쪽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들어왔다.이 사람들은 모두 인도의 전통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치장한 모습이 한눈에 보기에도 기품이 넘쳐흘렀다.많은 금과 은으로 치장한 것으로 보아 벼락부자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특히 앞장서 있는 장발의 청년은 멋있고 유려해 보이는 외모에 타고난 상위의 기품까지 지니고 있었다.브라흐마 샤주도 높은 신분이었는데 이 장발의 청년을 보자 순식간에 브라흐마 샤주가 한 단계 낮은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장발의 청년이 다가오자 브라흐마 샤주는 벌떡 일어나
”증거?!”“여기 손님들과 딜러들이 모두 증인이야!”“당신이 속임수를 썼다면 쓴 거지 뭐가 그리 말이 많아!”브라흐마 샤주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면서 장발의 남자를 쳐다보았다.“원래 오늘은 당신이 매주 한 번씩 쉬는 휴일이라는 거 알아. 휴식을 방해해서도 안 되는데.”“정말 저놈은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야.”“부디 나를 위해 복수해 줘!”브라흐마 샤주는 하현을 직접 죽이려고 했지만 그도 잘 안다.진주희의 실력은 너무 무섭고 그녀는 자신의 부하들이 상대할 사람이 아니란 걸.하현을 제압하려면 차성도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차성도는 브라흐마 샤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손가락을 까딱했다.그러자 누군가가 그에게 샴페인 한 병을 가져다주었고 빈 잔을 채웠다.샴페인을 음미하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는 차성도.그는 느긋하게 샴페인을 들이켜고는 비로소 젖은 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은 다음 다리를 꼰 채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 이름은 차성도야. 인도 두 번째 계급인 차 씨 가문에서 왔지.”“인도상회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지. 모두 날 군의 스승, 군사라 불러.”“차 군사라 불러도 돼.”“이 호텔은 우리 인도상회가 지분의 50%를 차지하고 있어.”“브라흐마 샤주는 우리 인도상회 브라흐마 아부의 측근 중 한 사람이지.”“간단히 말해 이곳 인도상회는 우리 브르하마 아부가 관리하는 곳이란 거지.”“당신들이 이 구역에서 사람을 때리고 함부로 날뛴다고?”“브라흐마 아부가 지난 2년 동안 무성에서 너무 겸손하게 굴어서 다들 잊은 거 아니야? 브라흐마 아부가 어떤 사람이야?”“이제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첫째 이 바닥에서 벌어진 일은 이 바닥 룰로 처리해야지. 두 배로 배상하고 스스로 손을 잘라. 그렇게 하면 일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둘재, 30분을 줄 테니 더 강력한 후원자를 데리고 와.”“사람을 불러 봐! 그럼 내가
비록 진주희는 하현이 무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눈앞에 이백 명이 있었다.그녀는 일이 조용히 끝나기를 바랐지만 어쨌든 눈앞에 시커멓게 들어선 남자들을 보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진주희의 말을 들은 브라흐마 샤주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는 하현의 배경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뜻밖에도 곁에 있던 사람이 용문 집법당 부당주일 줄은 몰랐다.“당신이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부당주였군. 요즘 무성 상류층에서 당신의 명성이 자자하더군.”차성도는 눈빛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하지만 당신이 용문 집법당 부당주라고 해서 뭐? 뭐가 달라져?”“여기는 무성이야. 다른 곳과 달라.”“용문의 키를 쥐고 있는 용 씨 가문이 여기에 있어.”“밖에서도 떵떵거리던 용문 집법당도 무성에서는 함부로 날뛰지 못해!”“용 씨 가문 사람들이나 용문주를 내쫓을 수 없는 한.”“용문 집법당 부당주 신분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진주희는 심호흡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맥이 넓으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도 넓어지겠지.”“내 체면을 좀 봐서 우리 친구하는 게 어때?”진주희는 하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총을 가지고 있고 숫자도 이백 명이 훌쩍 넘는다.그래서 진주희는 자세를 좀 낮추더라도 하현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길 바란 것이다.“체면?”“친구?”차성도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와 인도상회는 친구도 많고 차릴 체면도 많아.”“다만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5대 문벌의 후계자라든가 아니면 10대 가문 후계자 정도는 되어야지. 아무리 못하더라도 그 지방의 유지 정도는 되어야지.”“솔직히 말해서 용문 집법당 부당주로는 아직 우리와 친구하기엔 부족하지.”차성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부당주는커녕 당주가 나타난다고 해도
어쩌면 현장에 있던 진주희가 총에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현이 어떻게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다만 그는 사과하거나 배상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차성도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데릴사위인 주제에 6대 파벌 중 하나인 도끼파를 어떻게 알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사이가 꽤 좋지.”브라흐마 샤주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미있군. 외지놈이 한여침을 알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도끼파는 6대 파벌 중 꼴찌야.”“한여침이란 작자는 밖에서는 거들먹거리지만 우리 쪽에서는 얼굴도 못 내밀어.”자신이 별로 거들떠도 보지 않는 세력을 들먹이며 뭔가 뒷배가 있는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라니 브라흐마 샤주가 보기엔 그저 꼴같잖은 일이었다.“한여침이 별로라면 만천우는 어때? 만천우 정도면 체면을 차려 줄 만한 사람인가?”하현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만천우와도 친분이 두텁지.”“만천우?”차성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무성 경찰서 책임자 만천우를 안다고?”하현은 솔직하게 말했다.“전에 누군가 나를 경찰서에서 빼 준 적이 있어. 그게 만천우야. 만천우가 손을 써서 날 빼내 준 거지.”“데릴사위 주제에 제법이군!”차성도는 하현의 솔직함에 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짐짓 시치미를 뗐다.그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당신이 만천우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만천구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진해 어르신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야!”“만천우도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역부족이야!”여기까지 말한 차성도는 두 손을 모아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말을 이었다.“자, 그럼 사람들을 불러 봐...”차성도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감히 인도상회를 공격하러 온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단순히 한여침이나 만천우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차성도였다.
”당신이! 감히 어떻게 날...”브라흐마 샤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하현이 차성도 같은 거물에게 손을 댔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차성도는 인도상회의 군사들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인도 두 번째 계급을 가진 신분이었다!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이 높은 계급이었다!하현이 감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가?그가 한 짓은 스스로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차성도가 데려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과 경호원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이 녀석은 방금까지 굽신거리지 않았던가?한여침과 만천우를 들먹이며 자신의 안위를 가늠하던 자가 아니었던가?방금까지 사정하던 그가 아니었던가?왜 갑자기 차성도의 머리를 깨버린 거지?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자신이 본 것이 사실임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진주희도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현이 항상 이런 스타일로 일을 처리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매번 볼 때마다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지금은 2대 200인 상황이었다.진주희는 하현이 함부로 차성도를 자극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성도의 머리를 깨버리다니!“개자식! 너 죽고 싶어?!”겨우 정신이 든 브라흐마 샤주는 인도파 무리들이 손에 쥐고 있던 총을 홱 낚아채더니 하현의 머리에 겨누었다.진주희는 흠칫 놀라며 얼른 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러나 하현은 브라흐마 샤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남은 술병 절반을 차성도의 목구멍에 들이대었다.총을 쏘려던 브라흐마 샤주의 온몸이 굳어졌다.만약 차성도가 여기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그의 목숨은 끝장이다.“야! 하현, 얼른 그 손 내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가족들 모두 몰살시켜버릴 거야! 조상의 무덤까지
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차성도를 바라보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를 달리 평가하게 되었다.하지만 양측이 이미 충돌이 일어난 이상 전쟁을 평화로 바꿀 가능성은 없었다.하현은 왼손을 뻗어 차성도의 얼굴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자, 한번 맞춰 봐. 내가 감히 이 술병 조각으로 당신을 찌를 수 있을까 없을까?”“날 죽일 수 있겠어?”차성도가 희미한 냉소를 흘렸다.그의 눈빛을 차가운 얼음덩이를 삼킨 것처럼 매서웠다.“날 죽인다고 해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야. 여전히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단 얘기지.”차성도는 이렇게 몰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당하게 하현을 상대하고 있었다.과연 군대의 스승이라 할 만했다.그는 인도 두 번째 계급의 가문 출신이었다.그의 눈에는 오직 방현진이나 간석준 같은 5대 문벌이나 10대 최고 가문 정도 되어야 자신과 비견될 만했다.데릴사위인 하현은 애초부터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신을 죽일 수는 있겠지.”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심지어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나도 같이 죽는 건 아니거든.”“어디 한번 해 볼 테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고 날카로운 술병 조각이 차성도의 목을 찔렀다.차성도의 목에는 조그마한 핏자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마치 자욱한 죽음의 기운이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그러나 차성도는 웬만한 부잣집 도련님이 하는 것처럼 허둥대거나 당황하는 구석이 없었다.자신의 목구멍에서 흘러내리는 핏줄을 무시한 채 오히려 매섭게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하현을 노려보았다.“정말 한번 해 볼까?”“당신이 나를 죽인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당신 가족도 같이 죽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조상 무덤까지 파헤쳐져서 바다에 뿌려 버릴 거라고!”“아예 씨를 말려 버릴지도 몰라!”차성도는
차성도는 하현이 인도라는 나라의 신앙과 문화를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차성도의 자신감과 강경함에 하현의 얼굴은 더욱 의미심장한 빛으로 가득했다.사실 지금 하현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차성도는 완전히 죽게 된다.브라흐마 샤주와 요승들은 겁에 질려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혹시라도 함부로 움직였다가 차성도가 죽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정작 차성도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이봐, 하 씨. 내가 굴복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차성도는 침착하게 하현을 바라보았다.“우리 인도인은 원래 이래. 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질 수는 있지만 절대 인도를 욕되게 하지는 않아!”“우리 인도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에겐 성심성의껏 은혜를 베풀지.”“하지만 감히 우리 인도인을 모욕한다면 우린 절대 가만두지 않아!”“그러니 나 하나 죽인다고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아.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는 한 반드시 당신한테 복수할 거야!”“게다가 당신은 날 절대 죽이지 못해. 난 믿어.”“어쨌거나 난 인도 두 번째 계급이야. 당신 같은 하인이 무슨 자격으로 날 죽이겠어?”“퍽!”차성도가 입을 마음대로 놀리기 전에 하현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쳤다.“인도인의 존엄?”“인도 두 번째 계급, 그게 그렇게 대단해?”“퍽!”“당신들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두 번째 계급이란 애초에 침략자에게 굴복한 지역의 귀족들일 뿐이야!”“자기 나라조차 버릴 수 있는, 침략자에게 바로 무릎 꿇은 자들이 첫 번째 계급이지!”“자국의 몇 천 년 역사와 강토와 문화를 넙죽 침략자들 손에 넘겨준 사람들이야!”“아직도 고개 빳빳이 들고 의기양양하다니?!”“퍽!”“수치스러워해야 마땅할 일을 자랑인 양 떠벌리고 다니는 인도인이라니!”“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인도는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정말 그렇게 재주가 좋으면 당신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그 첫 번째 계급도 완전히 없애버리지 왜?”“아무리
대하 정부의 오랜 행정 스타일로 볼 때 무성에서 이 일이 밝혀지게 되면 인도파는 무성에서의 오랜 입지를 완전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그만큼 대단한 사건이다.게다가 인도로서는 대하가 국경에 쉽게 진군할 수 있는 병력을 유치하는 데 핑곗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다.어쨌거나 거리낌 없이 대하 경내를 드나들며 도박장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대하를 업신여겼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이렇게 되면 우선 모든 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탄로 날 것이고 앞으로 인도 측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차성도의 입장에선 차라리 하현이 든든한 뒷배를 데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하현이 전화 한 통으로 대하 정부를 건드린다면 정말로 그건 차성도에게 치명타를 안기는 일이다.하현이 천군만마를 몰고 오는 것보다 훨씬 차성도를 떨게 하는 일이었다.그리고 지금 차성도가 떨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현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하현은 일을 크게 만드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정말로 브레이크가 없는 미치광이 같았다.이때 브라흐마 샤주가 입을 열었다.“하 씨. 당신 남자 아니야?”“이 바닥 일은 이 바닥에서 있었던 걸로 처리해야지!”“정부의 힘을 동원하러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하현은 냉소를 지으며 눈을 흘겼다.“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어?”“우리가 싸우는 동안 난 한여침에게 CCTV를 확인해 보라고 일렀지.”“지금 내 손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단 얘기라고.”“누가 옳고 그른지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거야.”“그런데도 당신네 인도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손님을 끝까지 억울하게 만들고 협박까지 일삼아 이 지경까지 몰고 왔어.”“내가 어떻게 관청에 신고하지 않을 수 있겠냐구?”“관청 사람도 오라고 하고 경찰서 사람도 오라고 하고 기자도 오라고 해서.”“무엇이 진실인지 함께 따져 보자구!”“인도인의 스타일도 좀 알려주고 말이야!”“파렴치한 소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