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시작해!”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하현을 보고 브라흐마 샤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동시에 그는 손에 든 총을 하현에게 겨누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십여 명의 인도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폭동을 일으키듯 포효하며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이 광경을 본 여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폭력적인 장면은 선천적으로 여자들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했다.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진주희는 위엄 있는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진주희는 전신은 아니지만 용문 대구 지회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첫 번째 인물로서 전신급에 가까운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그녀는 동작도 빠르고 결단력도 있어서 소녀 같은 여리여리한 겉보기와는 달리 손을 쓸 때는 누구보다 강단이 있었다.그녀는 마치 날카로운 표범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칼집에서 칼을 꺼내 사방팔방으로 휘둘렀다.“촥촥촥!”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인도 경호원들이 모두 진주희의 칼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몇 명은 손목과 갈비뼈가 부러져 일어서질 못했다.총을 손에 든 브라흐마 샤주는 이 광경을 보고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렸다.아무리 생각해도 데릴사위 옆에 따라다니는 진주희의 실력은 여자의 솜씨로 보이지 않을 만큼 출중했다.“좋아, 그새 실력이 늘었는데!”“그래도 손을 움직일 때는 좀 더 재빠르게 낚아채듯이 해야 해!”“우리 대하의 무학은 아름다움도 추구하지만 결국 적을 죽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니까!”“동작을 멋지게 하려는 데 너무 힘주지 않는다면 실력이 훨씬 더 좋아질 거야!”하현은 그 와중에 진주희에게 가르침까지 주고 있었다.진주희는 하현의 말을 깊이 새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하현, 알겠어요. 다시 한번 해 볼게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브라흐마 샤주에게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말했다.“또 없어? 사람들 더 오라고 해?”“윽!”
진주희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순간 그녀의 모습이 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장타를 날렸다.그녀는 상대가 하현을 다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대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강경하게 맞서기로 선택했다.“쾅!”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혔고 수세에 몰린 진주희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올랐고 그대로 피를 토할 뻔했다.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피를 삼키고 돌아서서 발을 내디뎠다.진주희의 동작과 함께 노란색 그림자가 사방으로 날아오르더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부딪혔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시선을 돌렸다.기습한 사람은 중년의 인도 요승이었다.그는 노란색 승복을 입고 맨 앞쪽 머리에 검은 점 몇 개를 가지고 있었다.다만 그의 차림새는 출가한 듯 보였으나 전체적인 기세는 사납기 그지없고 요괴에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명실상부한 인도의 요승임이 틀림없었다.“넌 이제 물러가거라.”인도 요승이 다시 손을 쓰려고 했을 때 입구 쪽에서 오만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감히 우리 인도 요승의 일격을 막아내다니!”“인도파 뒤에는 우리 인도상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인도파를 건드린 건 우리 인도상회를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야.”“인도상회를 건드린 건 대하의 모든 인도인들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고...”“뒷감당할 수 있겠어?”남자의 말소리와 함께 입구 쪽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들어왔다.이 사람들은 모두 인도의 전통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치장한 모습이 한눈에 보기에도 기품이 넘쳐흘렀다.많은 금과 은으로 치장한 것으로 보아 벼락부자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특히 앞장서 있는 장발의 청년은 멋있고 유려해 보이는 외모에 타고난 상위의 기품까지 지니고 있었다.브라흐마 샤주도 높은 신분이었는데 이 장발의 청년을 보자 순식간에 브라흐마 샤주가 한 단계 낮은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장발의 청년이 다가오자 브라흐마 샤주는 벌떡 일어나
”증거?!”“여기 손님들과 딜러들이 모두 증인이야!”“당신이 속임수를 썼다면 쓴 거지 뭐가 그리 말이 많아!”브라흐마 샤주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면서 장발의 남자를 쳐다보았다.“원래 오늘은 당신이 매주 한 번씩 쉬는 휴일이라는 거 알아. 휴식을 방해해서도 안 되는데.”“정말 저놈은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야.”“부디 나를 위해 복수해 줘!”브라흐마 샤주는 하현을 직접 죽이려고 했지만 그도 잘 안다.진주희의 실력은 너무 무섭고 그녀는 자신의 부하들이 상대할 사람이 아니란 걸.하현을 제압하려면 차성도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차성도는 브라흐마 샤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손가락을 까딱했다.그러자 누군가가 그에게 샴페인 한 병을 가져다주었고 빈 잔을 채웠다.샴페인을 음미하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는 차성도.그는 느긋하게 샴페인을 들이켜고는 비로소 젖은 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은 다음 다리를 꼰 채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 이름은 차성도야. 인도 두 번째 계급인 차 씨 가문에서 왔지.”“인도상회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지. 모두 날 군의 스승, 군사라 불러.”“차 군사라 불러도 돼.”“이 호텔은 우리 인도상회가 지분의 50%를 차지하고 있어.”“브라흐마 샤주는 우리 인도상회 브라흐마 아부의 측근 중 한 사람이지.”“간단히 말해 이곳 인도상회는 우리 브르하마 아부가 관리하는 곳이란 거지.”“당신들이 이 구역에서 사람을 때리고 함부로 날뛴다고?”“브라흐마 아부가 지난 2년 동안 무성에서 너무 겸손하게 굴어서 다들 잊은 거 아니야? 브라흐마 아부가 어떤 사람이야?”“이제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첫째 이 바닥에서 벌어진 일은 이 바닥 룰로 처리해야지. 두 배로 배상하고 스스로 손을 잘라. 그렇게 하면 일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둘재, 30분을 줄 테니 더 강력한 후원자를 데리고 와.”“사람을 불러 봐! 그럼 내가
비록 진주희는 하현이 무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눈앞에 이백 명이 있었다.그녀는 일이 조용히 끝나기를 바랐지만 어쨌든 눈앞에 시커멓게 들어선 남자들을 보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진주희의 말을 들은 브라흐마 샤주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는 하현의 배경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뜻밖에도 곁에 있던 사람이 용문 집법당 부당주일 줄은 몰랐다.“당신이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부당주였군. 요즘 무성 상류층에서 당신의 명성이 자자하더군.”차성도는 눈빛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하지만 당신이 용문 집법당 부당주라고 해서 뭐? 뭐가 달라져?”“여기는 무성이야. 다른 곳과 달라.”“용문의 키를 쥐고 있는 용 씨 가문이 여기에 있어.”“밖에서도 떵떵거리던 용문 집법당도 무성에서는 함부로 날뛰지 못해!”“용 씨 가문 사람들이나 용문주를 내쫓을 수 없는 한.”“용문 집법당 부당주 신분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진주희는 심호흡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맥이 넓으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도 넓어지겠지.”“내 체면을 좀 봐서 우리 친구하는 게 어때?”진주희는 하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총을 가지고 있고 숫자도 이백 명이 훌쩍 넘는다.그래서 진주희는 자세를 좀 낮추더라도 하현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길 바란 것이다.“체면?”“친구?”차성도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와 인도상회는 친구도 많고 차릴 체면도 많아.”“다만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5대 문벌의 후계자라든가 아니면 10대 가문 후계자 정도는 되어야지. 아무리 못하더라도 그 지방의 유지 정도는 되어야지.”“솔직히 말해서 용문 집법당 부당주로는 아직 우리와 친구하기엔 부족하지.”차성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부당주는커녕 당주가 나타난다고 해도
어쩌면 현장에 있던 진주희가 총에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현이 어떻게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다만 그는 사과하거나 배상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차성도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데릴사위인 주제에 6대 파벌 중 하나인 도끼파를 어떻게 알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사이가 꽤 좋지.”브라흐마 샤주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미있군. 외지놈이 한여침을 알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도끼파는 6대 파벌 중 꼴찌야.”“한여침이란 작자는 밖에서는 거들먹거리지만 우리 쪽에서는 얼굴도 못 내밀어.”자신이 별로 거들떠도 보지 않는 세력을 들먹이며 뭔가 뒷배가 있는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라니 브라흐마 샤주가 보기엔 그저 꼴같잖은 일이었다.“한여침이 별로라면 만천우는 어때? 만천우 정도면 체면을 차려 줄 만한 사람인가?”하현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만천우와도 친분이 두텁지.”“만천우?”차성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무성 경찰서 책임자 만천우를 안다고?”하현은 솔직하게 말했다.“전에 누군가 나를 경찰서에서 빼 준 적이 있어. 그게 만천우야. 만천우가 손을 써서 날 빼내 준 거지.”“데릴사위 주제에 제법이군!”차성도는 하현의 솔직함에 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짐짓 시치미를 뗐다.그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당신이 만천우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만천구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진해 어르신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야!”“만천우도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역부족이야!”여기까지 말한 차성도는 두 손을 모아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말을 이었다.“자, 그럼 사람들을 불러 봐...”차성도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감히 인도상회를 공격하러 온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단순히 한여침이나 만천우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차성도였다.
”당신이! 감히 어떻게 날...”브라흐마 샤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하현이 차성도 같은 거물에게 손을 댔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차성도는 인도상회의 군사들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인도 두 번째 계급을 가진 신분이었다!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이 높은 계급이었다!하현이 감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가?그가 한 짓은 스스로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차성도가 데려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과 경호원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이 녀석은 방금까지 굽신거리지 않았던가?한여침과 만천우를 들먹이며 자신의 안위를 가늠하던 자가 아니었던가?방금까지 사정하던 그가 아니었던가?왜 갑자기 차성도의 머리를 깨버린 거지?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자신이 본 것이 사실임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진주희도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현이 항상 이런 스타일로 일을 처리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매번 볼 때마다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지금은 2대 200인 상황이었다.진주희는 하현이 함부로 차성도를 자극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성도의 머리를 깨버리다니!“개자식! 너 죽고 싶어?!”겨우 정신이 든 브라흐마 샤주는 인도파 무리들이 손에 쥐고 있던 총을 홱 낚아채더니 하현의 머리에 겨누었다.진주희는 흠칫 놀라며 얼른 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러나 하현은 브라흐마 샤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남은 술병 절반을 차성도의 목구멍에 들이대었다.총을 쏘려던 브라흐마 샤주의 온몸이 굳어졌다.만약 차성도가 여기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그의 목숨은 끝장이다.“야! 하현, 얼른 그 손 내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가족들 모두 몰살시켜버릴 거야! 조상의 무덤까지
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차성도를 바라보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를 달리 평가하게 되었다.하지만 양측이 이미 충돌이 일어난 이상 전쟁을 평화로 바꿀 가능성은 없었다.하현은 왼손을 뻗어 차성도의 얼굴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자, 한번 맞춰 봐. 내가 감히 이 술병 조각으로 당신을 찌를 수 있을까 없을까?”“날 죽일 수 있겠어?”차성도가 희미한 냉소를 흘렸다.그의 눈빛을 차가운 얼음덩이를 삼킨 것처럼 매서웠다.“날 죽인다고 해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야. 여전히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단 얘기지.”차성도는 이렇게 몰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당하게 하현을 상대하고 있었다.과연 군대의 스승이라 할 만했다.그는 인도 두 번째 계급의 가문 출신이었다.그의 눈에는 오직 방현진이나 간석준 같은 5대 문벌이나 10대 최고 가문 정도 되어야 자신과 비견될 만했다.데릴사위인 하현은 애초부터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신을 죽일 수는 있겠지.”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심지어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나도 같이 죽는 건 아니거든.”“어디 한번 해 볼 테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고 날카로운 술병 조각이 차성도의 목을 찔렀다.차성도의 목에는 조그마한 핏자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마치 자욱한 죽음의 기운이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그러나 차성도는 웬만한 부잣집 도련님이 하는 것처럼 허둥대거나 당황하는 구석이 없었다.자신의 목구멍에서 흘러내리는 핏줄을 무시한 채 오히려 매섭게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하현을 노려보았다.“정말 한번 해 볼까?”“당신이 나를 죽인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당신 가족도 같이 죽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조상 무덤까지 파헤쳐져서 바다에 뿌려 버릴 거라고!”“아예 씨를 말려 버릴지도 몰라!”차성도는
차성도는 하현이 인도라는 나라의 신앙과 문화를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차성도의 자신감과 강경함에 하현의 얼굴은 더욱 의미심장한 빛으로 가득했다.사실 지금 하현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차성도는 완전히 죽게 된다.브라흐마 샤주와 요승들은 겁에 질려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혹시라도 함부로 움직였다가 차성도가 죽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정작 차성도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이봐, 하 씨. 내가 굴복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차성도는 침착하게 하현을 바라보았다.“우리 인도인은 원래 이래. 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질 수는 있지만 절대 인도를 욕되게 하지는 않아!”“우리 인도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에겐 성심성의껏 은혜를 베풀지.”“하지만 감히 우리 인도인을 모욕한다면 우린 절대 가만두지 않아!”“그러니 나 하나 죽인다고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아.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는 한 반드시 당신한테 복수할 거야!”“게다가 당신은 날 절대 죽이지 못해. 난 믿어.”“어쨌거나 난 인도 두 번째 계급이야. 당신 같은 하인이 무슨 자격으로 날 죽이겠어?”“퍽!”차성도가 입을 마음대로 놀리기 전에 하현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쳤다.“인도인의 존엄?”“인도 두 번째 계급, 그게 그렇게 대단해?”“퍽!”“당신들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두 번째 계급이란 애초에 침략자에게 굴복한 지역의 귀족들일 뿐이야!”“자기 나라조차 버릴 수 있는, 침략자에게 바로 무릎 꿇은 자들이 첫 번째 계급이지!”“자국의 몇 천 년 역사와 강토와 문화를 넙죽 침략자들 손에 넘겨준 사람들이야!”“아직도 고개 빳빳이 들고 의기양양하다니?!”“퍽!”“수치스러워해야 마땅할 일을 자랑인 양 떠벌리고 다니는 인도인이라니!”“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인도는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정말 그렇게 재주가 좋으면 당신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그 첫 번째 계급도 완전히 없애버리지 왜?”“아무리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설은아는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부장님이 이천억, 아니 이조를 준다고 해도 난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설 대표님,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아니 그냥 잠 한 번 자는 것 가지고 뭘 그래요?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닙니까?”“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어서 꿈도 못 꾼다고요!”“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혼도 한 번 했겠다 잠 한 번 자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남의 편의를 봐주고 내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죠.’“이번에 잘 하면 앞으로도 대표님은 육 씨 도련님의 사람이 되어서 금정에서 편하게 사업할 텐데, 그런 기회를 발로 차버려요?”“대표님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정에선 사업하기 힘들어져요!”“왜 돈을 앞에 두고 내팽개치려는 거예요?”이국흥은 이 바닥에서 닳을 대로 닳은 인물이었다.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비열함 따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이리저리 이로울 대로 몰아가고 있었다.정신력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라면 그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뻔뻔스러운 행동에 쉽게 넘어가고도 남았다.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이 부장님, 내가 돈이 필요하긴 해요!”“하지만 돈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팔진 않을 겁니다!”설은아에겐 분명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좋아요, 안 받으셔도 됩니다!”“없던 일로 하죠!”이국흥은 테이블을 탁 치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은 우리 금정은행에 따로 오백억 빚이 있습니다!”“계약대로 다음 달에 갚아야 하고요!”“기한이 지나면 우리 금정은행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 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대표님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겁니다!”
”대출이 갱신이 안 되어서 우리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어요.”“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고 공장 생산도 중단되었어요.”“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정말 파산할 거예요.”설은아는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했다.“이 부장님,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부장님도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요. 우리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 씨 가문이 있어요.”“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이국흥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설 대표님,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대표님 회사는 지금 장부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위험평가를 통과할 수가 없어요!”“내가 직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업윤리를 어겨 가면서까지 대표님을 도와드릴 순 없잖습니까?!”“안타깝지만 우리 은행에서 이번 대출 연장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하지만 우리 은행에서 대표님께 기회를 안 드리는 건 아닙니다...”말을 마치며 이국흥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남 천문채 육 씨 도련님이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군요.”“이건 이천억을 빌린다는 차용증입니다. 대표님이 여기 서명만 하면 당장 효력이 발생하고요.”“언제든지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 씨 도련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룻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육 씨 도련님?!설은아는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분명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선 겨울 칼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직업윤리도 없고 염치도 없으세요?”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국흥은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무슨 말씀인지 알 텐데요.”“난 대표님이 육 씨 도련님의 요구대로 했으면 합니다!”“그분이 누굽니까? 서남 천문채에서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면서 왜 그러
”아, 아니...”“대, 대사님! 대사님!”이때 나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으며 하현을 쫓아가려고 발버둥쳤다.임단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나천우를 뒤따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나천우 부부가 급한 마음에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하현을 뒤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나천우를 뒤쫓아온 형나운은 나천우의 전화기를 툭 쳤다.“천우 오빠, 또 일을 그르치려고 그래?!”그녀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다.“지금 하현이 화가 나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부하들이 쫓아간들 어쩌겠어?”“하현이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나천우는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형나운, 우리가 잘못했어.”“우리가 눈이 멀었나 봐.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제대로 볼 줄 몰랐으니 말이야!”“하지만 너랑 나랑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부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잘 좀 봐달라고 말 좀 해 줘!”“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돈 문제는 절대 신경 쓰지 마!”“맞아.”이때 임단도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형나운, 그러면 주소라도 알려줘. 우리가 가서 삼고초려라도 해 볼게!”“좀 진정해. 이렇게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형나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해 볼게.”그 시각 진회강 강변에 위치한 금정은행 본사 앞.설은아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하현이 설은아의 모습을 보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녀의 사정을 급히 떠올리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하현이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아보니 형나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사장 부부가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요.”“내 얼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